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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相關性

문서에서 老子의 自然에 대한 해석 (페이지 52-56)

Ⅳ. 노자?의 자연에 대한 김형효의 해석

4. 자연의 相關性

김형효가 해석하는 󰡔노자󰡕의 자연은 是非의 양 측면이 동시에 공존하는 파르 마콘(pharmakon)과 같다. 파르마콘은 플라톤의 철학에 등장하는 개념인데, 플라 톤은 표면적으로는 이데아의 명확성을 주장했지만 󰡔티마이오스󰡕에서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이데아라는 자기 동일적인 현존개념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파르마 콘이라는 이중성의 의미로 짜여 있다고 보았다.86) 파르마콘의 개념은 문자 그대 로 ‘약과 독’이 다르지만 사실상 약과 독이 서로 별개의 다른 것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존재의 양가성에 지나지 않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파르마 콘은 이중적 존재양식을 드러내는 용어이다. 파르마콘은 약인 동시에 독의 異他

86) 데리다, 󰡔그라마톨로지󰡕(민음사 1996), 김성도 역, 560쪽 참고.

性을 함의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러한 파르마콘의 개념에 따르면, 약을 오직 약이라고만 할 때 그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김형효는 󰡔노 자󰡕의 자연 개념을 설명할 때 파르마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87)

자연의 존재론적 구조는 자기성과 고유성이 없이 우리가 앞에서 말한 상관적 차연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자연은 자기동일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자연이 자기 동일적인 존재 양식을 띠지 않기 때문에 자연은 상관적 차연의 존 재인 것이다. 그래서 자연은 자기와 타자의 것이 서로 안에서 복합적으로 연결되 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만물은 緣生으로 自生으로서의 독자적인 존재양 식을 고유하게 지니지 않는다. 이런 연생의 존재구조는 곧 만물을 지배하는 법칙 으로 양가성이 함께 존재한다. 이것은 일종의 상관적인 차이를 동시에 한 묶음으 로 다루는 緣坐의 法과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연좌의 법은 자연이 야누스처럼 이중적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가리킨다. 이때 의 이중성은 일원성과도 다르며 이원성도 아니다. 이중성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不一而不二의 논리를 표시하므로, 선택적 택일의 논리와 의미 차원을 달리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노자󰡕}2장에서 善/惡, 美/醜, 有/無, 前/後, 長 /短, 高/下, 難/易, 音/聲 등이 모두 상관론적 사유의 구조와 다르지 않으므로 이 것들은 대대법적인 緣生과 같다. 이 연생의 의미는 만물이 無自性임을 가리킨다.

자연의 또 다른 특징으로 無爲를 들 수 있다. 자연의 무위성은 유무의 두 측면 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노자󰡕의 1장에서 무의 무위성이 無欲으로 기술되고, 유 의 무위성은 무불위적 有欲으로 기술되고 있다. 여기에서 有의 무불위적 유욕은 소유욕적인 욕심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연기 관계의 얽힘으 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래서 노자는 늘 마음의 욕심을 경계하면서 무욕으로 마음 의 욕심을 비우라고 말했던 것이다. 자연의 緣起的인 욕망의 그물망을 비판적으 로 기술하지 않는다. 오히려 존재론적으로 모든 사물이 서로 어울려 공존하는 인 드라망의 구조처럼, 만물은 서로 비추면서 끝없이 서로를 비추고 있는 보석들의 찬란한 光輝에 비유된다. 그러므로 자연은 무의 무욕과 유의 유욕으로 짜여 있 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무위하면서 무불위한’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김형효가 해석하는 󰡔노자󰡕의 자연은 그의 표현대로라면 데리다의 文字學的 사

87) 김형효, 󰡔사유하는 도덕경󰡕(청계 2004), 64쪽.

유와 유사하다.88) 말은 택일의 논리에 해당하는데, 긍정과 부정, 是와 非, 약과 독을 동시에 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은 선택으로 주어진 대상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골라서 언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말의 논리는 문자학의 논리와 달리 흑백논리에 해당된다. 그러나 자연은 이중성의 논리처럼 문자학적인 사유를 통해 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자학적인 사유란 말하기의 흑백 논리에 대 해, 자연과 세상의 근원적인 사실이 이중적으로 짜여진 구조를 상징적으로 표현 한 것이다. 문자학적인 논리는 말하기가 양자택일적 흑백 논리에 해당하는 것에 비해서 이중적인 양가성의 사실을 모두 함의한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문자학적인 사유는 상관적 차이를 한 묶음으로 하는 이중성의 도와 같다. 이 도를 노자는 竝作으로 표현했는데, 병작이란 주인과 소작인이 同封法則의 정신에 따라 반반씩 서로 나누어 갖는 제도를 말한다. 여길보는 유욕을 인간의 소유욕적 인 욕심이 아니라, 만물이 서로 依他起性的으로 상호 의존하면서 무성하게 피어 나고 사라지는 것을 일컫는 개념으로 읽었으며,89) 이식재는 만물이 상호 병작과 병생을 하면서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불사하듯이, 성인의 마음도 자연의 질서에 따라 만물의 竝育을 도와주는 자연 친화적인 자세를 갖고 있다고 보았다.90) 그 래서 성인의 마음은 자연과 마찬가지로 만물의 공생과 병생을 도와주지만, 그것 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자연처럼 일을 해도 나 중심으로 일을 하 지 않으므로 만물 자연에 순응하되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공을 이루어도 거기에 주인으로 군림하려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다.

김형효가 말하는 자연은 불변의 무와 가변의 유가 서로 마음과 몸처럼 의지하 고 있기 때문에 유와 무가 서로 얽혀 있는 것이다. 또한 만물이 서로 차이의 다 름 속에서 서로 간에 주고받는 연기의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만물은 각각 자기 안에 상반된 차이의 성격을 포함하고 있는 이중 긍정으로 약 과 독은 서로 상존한다는 플라톤적인 파르마콘의 사유방식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유방식은 또한 佛家에서 말하는 연기법적인 사유방식과도 유사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김형효가 말하는 󰡔노자󰡕의 자연은 단순한 無欲이나 無爲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有欲과 有爲와의 동거, 즉 상반된 것들의 얽힘이 88) 김형효, 󰡔노장 사상의 해체적 독법󰡕(청계 1999), 53쪽.

89) 김형효, 󰡔노장 사상의 해체적 독법󰡕(청계 1999), 44쪽.

90) 김형효, 󰡔사유하는 도덕경󰡕(청계 2004), 76쪽.

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은 서로의 차이로써 있게 하면서 서로 상반되는 것을 포용 할 수 있는 적극적인 행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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