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崇本息末

문서에서 老子의 自然에 대한 해석 (페이지 30-33)

Ⅲ. 노자?의 자연에 대한 왕필의 해석

2. 崇本息末

53) 대빈호, 󰡔노자철학 연구󰡕(청계 2002), 임헌규 역, 184쪽.

왕필은 세 가지 저술을 세상에 남겼는데, 그것은 󰡔老子注󰡕, 󰡔易注󰡕, 󰡔論語釋疑󰡕

이다. 이들 저술을 통해서 우리는 왕필이 유가와 도가의 학문을 위주로 자신의 철학체계를 구축했음을 알 수 있다. 왕필은 󰡔老子指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노자󰡕의 글을 논변으로 따져 보려는 자는 󰡔노자󰡕의 종지(旨)를 잃 고, 이름(개념)으로 따지려는 자는 본의를 어기게 된다. 그러므로 그 근본적 핵 심 의미는 태초의 始原을 논해서 스스로 그러한 본성을 밝히고, 幽明의 극치를 연역하여 미혹과 欺罔을 바로잡는 것이다. 자연스런 순리대로 해서 인위적으로 하지 않고, 덜어낼 뿐 베풀지 않으며, 근본을 높임으로써 말단을 살리고, 어미 를 지킴으로써 자식을 보존하며, 저 교묘한 꾀를 낮추고 일이 드러나기 전에 미리 하며, 다른 사람을 책망하지 않고 반드시 자기로부터 구하는 것, 이것이 그 전체의 요지이다. 法家는 가지런히 같게 함을 숭상하여 형벌로써 단속하고, 名家는 참을 판단하는 것을 숭상하여 언어로써 바로잡고, 儒家는 온전한 사랑 을 숭상하여 명예로써 부추기고, 墨家는 검약함을 숭상하여 矯正으로 세우고, 雜家는 여러 장점을 숭상하여 모두 합하여 행하려 한다. 형벌로 物을 단속하면 반드시 교묘한 거짓이 생기고, 이름으로써 정해두려 하면 용서하는 것이 없어 지고, 명예로써 부추기면 숭상 받으려고 서로 다투고, 바로 잡음으로써 세우려 하면 어그러짐이 일어나고, 이것저것 섞어서 행하면 혼란이 일어난다. 이것은 모두 그 자식을 쓰고 그 어미를 버린 것으로 物이 실어주는 근본을 잃은 것이 니 족히 지킬 만하지 못하다.

그러나 이르는 곳이 같아도 길은 다르고, 결과는 합치해도 취향이 달라서, 배 우는 자가 그 이르는 결과에 현혹되고 그 취향에 미혹된다. 즉 획일화시키는 것을 가리켜 法이라 하고, 참을 판단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名이라 하고, 순수 한 사랑을 살펴서 그것을 儒라 하고, 검약함을 비춰보고 그것을 墨이라 하고, 얽매이지 않음을 보고 그것을 雜이라 하니, 제각기 비춰 본 데에 따라 이름을 바로잡고 각자 좋아하는 것을 좇아서 뜻을 정한다. 그러므로 어지럽고 잡다한 논의가 있게 되고 갖가지 취향에 따른 논쟁이 여기에 말미암는다. [...] 󰡔노자󰡕

의 글을 거의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아! 근본을 높이고 말단을 살리는 것일 뿐일진저. 그 말미암는 바를 관찰하고, 그 돌아가는 바를 살피니 말은 宗旨에 서 멀지 않고, 일은 宗主를 잃지 않는다. 글이 五千言이나 하나로 관통하고, 뜻

은 다양하지만 전체적으로 類를 같이한다.”54)(왕필 󰡔노자지략󰡕)

위의 인용문에서는 노자의 사상이 各家보다 높고 또 다양한 제자백가들의 학 문에서 장점을 취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왕필은 󰡔老子注󰡕에서 󰡔노자󰡕}본래의 의미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유 방식을 전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왕필은 자신의 학 문 방법으로써 ‘崇本息末’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그의 철학과 사유체계에 두루 적 용되는 방법론이다. 이는 일종의 本末論이라 할 수 있는데, 말 그대로 근본과 말 단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왕필은 본말을 뿌리와 가지, 어미와 자식 등의 의미 로 사용한다. 이런 점에서 왕필에게 崇本息末은 ‘근본을 지켜서 말단을 온전히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뿌리를 지켜서 가지를 온전히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崇本息末은 ‘근본을 높이고 말단을 그치게 한다’는 뜻으로 번역되 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崇자와 息자를 표면적으로 드러난 의미만으로 해 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息자는 본래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는 글자이다. 그러나 여기 에서 주목할 것은 息末에서 息자는 두 종류의 상반된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다. 한 종류는 止(그치다), 休(휴식하다) 등의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것이며, 다른 종류는 生長(자라나다), 勞(힘쓰다), 塞(채우다) 등의 뜻으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것이다. 왕필은 이러한 두 가지 종류의 의미 중 崇本息末에서의 息자를 󰡔노자주󰡕

나 󰡔노자지략󰡕에서 生, 長, 勞, 塞 등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또 왕필은 崇本息 末이라는 말 대신 崇本擧末(노자주 38장), 守母存子(노자주 38장), 得本知末(노자 주 52장), 固根營末(노자주 54장), 圖根營末(노자주 59장), 全有必反(노자주 40 장) 등 다양한 표현들을 곳곳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息자와 같은 위치 에서 사용되고 있는 글자들을 살펴보면 擧(들다), 尊(존숭하다), 知(알다), 營(영 위하다), 全(온전히 하다) 등으로 모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 다.55)

왕필이 말하는 崇本息末의 다른 표현들에서 崇자의 위치에 있는 글자들을 살 펴보면 守(지킨다), 得(얻다), 固(방비하다), 圖(꾀하다), 反(돌아가다) 등의 글자 들로 모두 ‘지킨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글자들이다. 또한 왕필은 󰡔노자󰡕}10장 54) 임채우, 󰡔왕필의 노자󰡕(예문서원 2001), 273쪽에서 재인용.

55) 임려진, 󰡔왕필의 철학󰡕(청계 2001), 김백희 역, 97쪽.

‘生之畜之’에 대해 “不塞其原也, 不禁其性也”라고 해석하는데, 여기에서 낳아지고 길러지는 모든 것은 이미 그 근원이 있고 본성이 있는 것이며 그러한 근원이나 본성은 막히거나 금지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崇本에서 崇자는 ‘막지 않는다’, ‘금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곧 ‘지킨다’는 의미인 것이다.

息자가 그 겉으로 드러난 ‘그치게 한다’는 형식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온전히 하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듯이 ‘崇’자도 마찬가지로 드러난 의미와는 다르게

‘높이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키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드러난 세계에만 생각이 묶여 드러난 의미와는 다르게 ‘높이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지키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기존의 생각에 대한 전환을 의미한다. 왕필은 드러난 세계에만 생각이 묶여 드러난 세계 배후의 보이지 않는 세계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禮를 강조하여 사람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막아야 한다고 보았던 漢代 의 생각에 반대하여, 보이지 않는 근본적인 것을 지켜서 저절로 모든 것이 잘 이 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유의 전환은 왕필이 내건 崇 本息末의 주장이 근본을 높이고 말단을 그치게 하는 反有爲의 철학이 아니라, 자 연을 강조하면서도 인위를 거부하지 않고 자연적 有爲의 철학임을 보여주는 것 이다.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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