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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he Island’는 인간복제 등 생명윤리 문제와 함께 유비쿼 터스 환경의 최첨단 의료기술과 고도로 발달한 생체정보학이 가 까운 미래에 다가왔음을 보여준다. 매일 아침 등장인물의 배설물 은 자동 분석되어 의료인에게 전송된 후 식단 조절 등에 활용된 다. 악몽 등으로 인한 수면장애는 정신감정 감지에, 몸속에 주입 된 초소형 카메라는 24시간 신체자료 전송에 활용된다. 환자 팔 찌, 로봇 수술이 일상화되어 있고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생활 전체 에 적용된다. 그러나 높은 기술의 이면에는 환자안전과 보안의 문 제가 도사리고 있다.1)

보건의료서비스는 개인 차원의 삶의 질과 국가 차원의 사회경제적 발 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보건의료서비스는 사회경제적 상태, 건강행태, 환경요인 등과 더불어 중요한 건강결정요인(determinants of health) 이며(European Commission, 2003, pp.42-43), 보건의료서비스의 이용량 증가는 국민의료비 지출의 증가를 초래하고, 국가재정의 지속가 능성을 위협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박인화, 2012, p.539)하기도 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보건의료서비스는 그 총량의 지속적

1) ‘The Island(2005년 ’아일랜드‘라는 제목으로 국내 개봉)’의 주요 내용은 오진아 등 (2015), pp.332-336의 내용을 축약한 것임.

서 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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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가와 수요의 다양화라는 특징을 띨 것이다. 경제발전과 소득 수준 개선 이 의료서비스 수요를 증가시킨다는 것은 여러 연구를 비롯하여 경험적 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560개 시계열 및 횡단면 자료를 통해 OECD 회 원국들의 의료비 지출 요인을 분석한 연구에서 GDP로 대표되는 국민소 득은 각국의 의료비 지출 수준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로 나타났다 (Hitiris, T. & Posnett, J. 1992, pp.173-181). 또한 소득수준 향상은 필수의료뿐만 아니라 선택적 진료의 수요를 높이는(윤석준, 윤지현, 2013, p.64), 이른바 ‘요구의 다양화’를 가져온다.

인구고령화 및 만성질환 중심의 질병구조 역시 보건의료서비스 수요를 증가시키는 요인이다. 2009년 전체 건강보험진료비의 31.6%를 차지했 던 65세 이상 인구의 진료비 비중은 2015년 37.8%로 증가하였다(국민 건강보험공단, 2016, p.6). 2025년 국민 2명 중 1명이 만성질환을 보유 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김강립, 2015, p.50), 대표적인 만성질환인 당뇨병에 대한 지출을 추정한 한 연구에서 우리나라의 당뇨병 총지출이 2010년 73억 달러에서 2030년 103억 달러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기도 하였다(Zhang et al., 2010, p.296). OECD는 인구고령화 와 만성질환이 한국 보건의료체계가 맞닥뜨린 중요한 당면 과제임을 지 적한다.

“보건의료체계의 미래 지속가능성은 노인인구와 만성질환 환자를 위한 보건의료의 질 및 효율을 개선할 수 있는 역량에 달려 있 다.”(OECD 대한민국정책센터, 2014, p.28)

현재 한국의 의료체계가 인구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라는 과제 앞에 질과 효율성 측면에서 우수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보건의료

서비스 공급자, 소비자, 학계 전문가, 정부가 참여한 위원회에서 한국의 종별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종별 전체 19,686 15,849 16,203 17,653 18,245 18,561 19,770 24,259 22,999 22,702 23,912 23,975

(100.0) (100.0) (100.0) (100.0) (100.0) (100.0) (100.0) (100.0) (100.0) (100.0) (100.0) (100.0) 상급종합병원 462 496 532 581 626 653 708 1,437 969 893 884 856

보건의료체계의 비효율과 인구구조 변화 등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 하여 다양한 정책적 대안이 제안된 가운데 본 연구에서는 최근 관심이 높 아지고 있는 ‘정보통신기술(ICT: 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과 보건의료서비스의 결합’이란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용 어에 나타나듯이 ICT에는 정보기술과 통신기술이 합성되어 있다. 즉, IT 를 이용하여 자료(data)를 의미 있는 정보로 변환하고, 그 정보를 정보원 과 정보 목적지 사이에 전달・교류・공유(고응남, 2015, pp.25-26)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 의미를 준용하여 보면, 보건의료서비스 영역에서 ICT 를 융합시킨다는 것은 건강증진과 질병예방 및 치료 등의 과정에서 발생 하는 자료들을 발굴하여 정보화하고, 정보의 교류를 통해 ‘개인의 건강증 진 및 지속가능성 제고’라는 보건의료서비스의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도 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보건의료서비스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ICT는 이미 주목받는 수단이었다. 예를 들어 UN의 전문기구인 국제전기통신연합 (ITU: 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은 세계보건기구 (WHO)와 연계하여 e-Health를 활용한 치료 및 건강증진활동의 발전과 확산에 나서고 있으며(박민정, 2014, pp.1-17), OECD 역시 증가하는 국민의료비와 만성질환에 대응을 위해 ICT와 보건의료 분야의 관계 설정 을 위한 다양한 제안을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ICT 가 전통적인 보건의료서비스 전달방식에서는 불가능했거나 새롭게 대두 되는 요구를 충족시키며, 그 과정에서 비용효과적인 서비스 전달과 더불 어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시장 창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면서 보 건의료와 ICT 융합을 핵심적인 미래 먹거리 분야로 지정, 투자를 확대하 겠다는 청사진이 지속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표 1-2〉 주요 국가 R&D 전략에서의 ICT와 보건의료 융합 과제 현황

기(device)를 통한 자가 건강관리는 만성질환자뿐만 아니라 건강한 일반 인들에게도 이미 활용되고 있다. 의료기관이 보유한 대용량의 정보를 빅 데이터화하여 환자 맞춤형 서비스 제공에 활용하고, 적법한 범위에서 수 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노력도 이미 의료기관-IT기업 합작 형태로 시작되 었다.

그러나 ICT와 보건의료서비스의 융합에 장밋빛 전망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정부 부처에서 수시로 관련 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것2)은 빠 른 기술 수준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한다는 의미도 있겠으나, 융합활성화 를 저해하는 제도적 제약 요건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기도 하다. ICT와 의료서비스 융합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원인으로 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3)

첫 번째로 ‘의료’라는 영역의 적용 범위를 둘러싼 인식 차이이다. 전통 적인 의료서비스 전달은 ‘(적정 면허를 보유한) 의료인에 의한 직접 제공’

을 특징으로 하지만, ICT는 의료전문직의 권위를 약화시키거나 심한 경 우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 원격의료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의료인-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 문제, 건강관리서비스에서의 의료영역과 비의료영역이 중첩되는 그레이존(gray zone)에 대한 ‘의료행위’ 성격의 차이, 건강정 보 모니터링을 위한 기기가 과연 의료기기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할 것인 가에 대한 논란에는 ICT와 보건의료서비스의 융합에서 ‘의료’의 적용영 역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에서 출발한다.

두 번째로 의료서비스가 가져야 할 가치에 대한 인식 차이이다. 흔히 의료서비스에서 건강권 보장을 위한 보편적이고 형평적인 가치와 산업으

2) 김정곤, 이서진(2016)의 분석에 따르면, ICT와 보건의료서비스의 융합과 관련한 정부부처 의 사업 계획과 제도적 지원 방안은 기획재정부 등 4개 부처 24개 사업에 달함(김정곤, 이서진, 2016, p.12).

3) ICT와 의료서비스 융합에 대한 제약 요인은 제2장 제3절에서 보다 자세히 검토하였음.

로서 육성해야 할 가치는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된다. 이 가치가 극 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소위 ‘의료영리화 논쟁’이다.

세 번째로 기술적 문제들 가운데 여전히 해소가 더딘 문제들이 남아 있 다. 대표적인 사례가 개인정보보호의 문제이다. 전국민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건강보험자료라는 ‘빅데이터’는 공중보건 측면이나 산업적 측면에서 모두 활용가치가 높지만 민감한 개인정보의 공개범위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쟁점 사안이다. 분절화된 데이터 관리와 표준화되지 못한 공유와 교류의 한계 역시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정보 격차와 비용 격차로 대표되는 ‘격차’와 관련한 이슈이 다. 4대 정보취약계층(장애인, 저소득층, 농어민, 장노년층)의 정보화 수 준이 일반인의 80%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미래창조과학부, 한국정 보화진흥원, 2015, p.36)이나 최근 유전체 정보 등을 활용하여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개인맞춤형 의료에서 핵심적인 바이오의약품이 보험급여 에서 제외되어 소비자의 경제적 부담이 작지 않다는 점은 ICT 융합의 효 과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고령화가 초래할 만성질환 증가와 의료비 부담 급증, 보건의료체계에 내재한 비효율성의 극복, 의료서비스의 질과 형평성의 강화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시대적 변화인 ICT를 외면하고 전통적인 전달방식만을 고수하 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다만 ICT는 궁극적으로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보건의 료서비스에 융합되어야 한다. 기존의 ICT-보건의료서비스 융합연구는 주로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성장동력’이라는 결과에만 초점을 맞춘 경향 이 있었다. 물론 기술 발전이 가져올 긍정적 미래상을 그려내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가의 ‘미래 기술’에 대한 예측은 여전히 필요하 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ICT가 한국 보건의료체계가 직면한 과제들의 해

결에 어떻게 기여하도록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보건의료적’ 관점에서의 접근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