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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언론의 무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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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정치적 자유이며, 국민 개인의 천부적 권리의 일부이다. 이는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봉건전제주의 사상과 경제 통제에서 벗어난 신흥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자유 발전을 위한 정치 투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컨대 영국의 메리 여왕(1516-1558) 시대 1557년 ‘로열라이선스’ 출판회사를 설립하고 출판인쇄 관련 사항을 엄격히 규제하였다. 출판 자유의 제한을 타파하기 위해 ‘출판자유’라는 구호로 항쟁했던 영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밀 턴은 ‘사상의 자유시장’과 ’자동 조정 원리’를 제시했다. 밀턴의 출판자유 사상은 미국의 건 국 아버지들과 프랑스의 볼테르나 독일의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미쳤다. 다시 말해 미국의 독 립전쟁, 프랑스의 대혁명 그리고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밀턴이 출판의 자유를 외친 이후, 1855년 미국 의회는 공식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인정 해 주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완수된 후 <인권 선언(Declaration of the Rights of Man and of the Citizen)>79)은 모든 국민은 “발언하고 기술하고 인쇄할 수 있다.”고 규정 했다. 1791년 12월 15일 미국에서는 <권리 장선(United States Bill of Rights)>80)을 발표 되었는데, 첫 번째 법안 곧, <수정 헌법 제 1 조(The First Amendmen)>에서 “국민들의 언 론 및 출판의 자유”를 방해하면 안 된다고 규정했다.

출판 및 언론 자유의 발전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자본주의 통치 이념의 확 립에 따라 부르주아의 자유주의 이론 도입의 맥락도 달라졌다. 르네상스 이후의 계몽 운동 시대에는 민중들의 의식에도 자각이 일어났다. 개인이 정치적 권리를 추구하는 데 효율적인

79)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의 11조에서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소통은 인간의 가장 귀 중한 권리의 하나이다. 따라서 모든 시민은 자유로이 발언하고 기술하고 인쇄할 수 있다. 다만, 법 에 의해 규정된 경우에 있어서의 자유의 남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80) 미합중국 권리장전(美合衆國 權利章典) 곧,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서 제10조까지를 말한다. 연방정 부의 권력을 제한하여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자는 취지(趣旨)에서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이 주도하여 발효되었다. 그 중 수정헌법 제1조는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종교 행위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여서는 안 된다. 또 의회는 언론 및 출판의 자유 또는 국민들이 평화적으로 집회를 할 수 있 는 권리와 고충 처리를 위해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하여서는 아니 된 다.”라고 규정했다.

수단은 바로 출판과 언론의 자유였던 것이다. 이때 모순되는 것은 바로 봉건통치 계급의 사 상 통제 및 봉쇄이다. 그러나 개인 자유를 추구하는 원동력은 바로 자본주의 생산 방식의 발 전이다. 예를 들어, 인쇄기계의 발명 및 대규모 기계화 생산이 바로 그것이다. 부르주아 계급 의 통치가 고정화된 단계로 발전한 후에 봉건통치와 투쟁하기 위해 발전한 자유주의 이론은 더 이상 시대 발전의 맥락과 일치하지 않았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적 책임이론’이 태어나게 되었다.

‘사회책임이론’은 저널리즘이 ‘’언론의 자유’를 향유하면서 동시에 사회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이론은 1947년에 미국에서 발효되었다. 미국언론자유위원회(The Commission on Freedom of the Press)는 3년의 조사를 거쳐 1947년 3월 <자유롭고 책 임 있는 언론(A Free and Responsible Press)>라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이 보고서를 토 대로 ‘사회책임이론’이 발전하였다. 이 이론은 자유는 의무를 수반하므로 언론은 사회에 책임 을 져야 하며, 사회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언론 업무 정책의 기초라고 주장한 다. 또한 ,‘사회책임이론’은 언론이 ‘통제적인 언론자유’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부의 적당한 ‘간섭’을 주장했다. 곧, 공공이익과 사회적 이익이 미디어에 의해 손해를 입을 때 정 부의 해당 부서는 미디어의 행위에 ‘간섭, 단속’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사회책임이론’이 발생할 수 있었던 계기는 두 차례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통적인 자유주의 저널리즘 이론이 곤경에 빠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디어의 강력한 전파효과는 미디어의 사회 통합 역량을 더욱 부각시켰다. 초기 언론자유 이론의 출발 점은 국민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미디어 기업의 연합으로 인한 이윤과 효율의 자극 하에서 미디어 조직은 초기의 언론자유 이론과는 다른 결과를 냈다. 초기에는 국민 개인이 자율적인 주체로서 능동적으로 언론을 이용해 개인 출판 자유를 실현시킴으로써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미디어 기업과 자본주의 자유 시장경제가 관계를 맺음으로써 국민 개인이 미디어의 소비자가 되었고, 광고주에게 팔려 상 품성을 갖게 되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중 국민 개개인은 이성에 의지한 자율적인 주체의 능동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선전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즉, 매스커뮤니케이션에 의해 ‘태도와 행위’가 변하도록 조정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통치자의 입장에서 보면 첫 째, 언론미디어는 반드시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확실한 통치를 할 수

있고 사회도 안정적으로 운행할 수 있다. 둘째, 정당 간의 이익 쟁탈은 언론 자원을 이용하 여 서로 비방하고 정보를 통제한다. 심지어 여론을 조종하여 대중을 ‘오합지졸’로 만들어 자 본주의의 민주적 제도에 영향을 미치고 민주주의의 ‘초심(初心)’을 잃게 만든다. 셋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자본 독점의 단계로 진입함에 따라 언론미디어의 소유권도 점차 소수의 독점 재단에 의해 장악되었. 예를 들면,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의 <新闻报>81), 퓰리처(Joseph Pulitzer)의 <뉴욕 월드>82)가 그것이다.

이 신문들은 모두 큰 재벌의 손아귀에 장악되었고, 더 큰 이윤을 얻기 위해 많은 수용자  자원을 쟁탈하였다. 때문에 신문업계에서는 악성 경쟁이 일어났고 수용자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대중들의 입맛에 맞춘 대량의 자극적인 보도가 나왔다. 곧, 과장이나 조작 등의 방법으 로 각종 ‘황색 저널리즘’83) 신문을 만들어 미풍양속을 해쳤던 것이다. 마치 레닌이 자본주의 출판자유의 본질을 간파한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언론의 자유는 “정치 경제적으로는 지배 계급에 속하면서 물질적 생산 자료를 장악한 사람들이 소유한 자유이다.” 또한 “부유한 자본 가가 신문을 이용해 대중을 기만하고 우롱하며 가난한 사람을 타락시킨다.” 자본주의적 상업 화의 심화에 따른 자본과 언론의 연합으로 신문업의 경쟁은 계속 격화되고 있다. <언론의 4 이론>에서 지적한 대로, 자유주의의 가장 큰 결점은 바로 자유와 남용을 구별할 수 있는 고 정된 공식을 제공하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모호하고 확실하지 않으며, 때때로 일치하지 않 는 것이다. 때문에 <언론의 4 이론>에서는 자본주의 자유 언론은 무책임하다고 판단했다. 그 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책임이론’이 나왔고, 자유주의 언론사상을 수정하는 의미에서

‘사회책임이론’은 자유주의 언론사상과 함께 여전히 자본주의 언론사상의 두 축을 이루고 있

81) 허스트는 1895년에 뉴욕에서 발행되는 <모닝 저널>을 매수하여 <저널 아메리칸>으로 개명하여 저 속하고 선정적인 지면을 구성하게 하였다. 퓰리처의 <월드>와 같이 오늘 저널리즘 사상에 남아 있 는 ‘엘로우 저널리즘’이라는 이름에 기여했다.

82) 1883년에 퓰리처는 <뉴욕 월드>를 매수하여 선정적인 뉴스보도와 캠페인 등으로 미국 최대 발행부 수를 자랑했다.

83) 퓰리처는 “신문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르치는 도덕 교사”라고 믿는 한편, “재미없는 신문은 죄 악”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그는 만평과 사진을 화려하게 쓰고, 체육부를 신설해 스포츠 기사를 비중 있게 다루었으며, 흥미와 오락위주의 일요판도 처음 시작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독 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선정주의에 호소함으로써 이른바 ‘옐로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을 탄 생시켰다. 하지만 퓰리처는 신문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전문 언론인 교육기관인 ‘컬럼비아대의 저널 리즘 스쿨’을 세웠으며, 유언으로 퓰리처상을 만들었다. 컬럼비아대학교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운영 하는 퓰리처상은 오늘날 미국의 권위 있는 보도, 문학, 음악상이 되었다.

다.

언론의 자유는 출판의 자유에서 유래한다. 1951년 국제언론협회(International Press Institute)84)에서는 저널리즘의 자유에 관련하여 명확히 “언론 자유의 4 가지 기준”을 제시 했다. 곧, 기자의 취재의 자유, 전파의 자유, 출반의 자유, 그리고 표현의 자유가 그것이 다.85) 1966년 연합국대회(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는 <국제인권 장전>의 두 번 째 하부 공약(公約)인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 19조에서 ‘언론의 자유’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리고 자유의 권리와 그에 상응한 의무도 명확하게 규정하였다.86) 이러한 ‘부자유와 무책임’으로서 언론 발전 역사를 볼 때, 저널리즘은 항상 자유와 책임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다. 소련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저널리즘의 가치는 저널리즘의 기능으 로 체현된다. 저널리즘은 가면 갈수록 사회, 정치, 경제 사이의 교량으로서 더 중요한 역할을 발휘하고 있다. 저널리즘이 자유와 책임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사회, 정치, 경 제에 대해 끼치는 영향도 달라질 것이다. 중국이 마르크스의 저널리즘 자유사상을 계승함으 로써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 및 마르크스 언론의 중국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중 국 언론이 자유와 책임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향후 어떻게 해야 하는지

84) 국제신문협회는 국제 민간 조직으로 1951년 5월에 프랑스 파리에서 창립되었다. 총부는 취리히이 며, 비서실은 원래 런던에 있었지만, 후에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비엔나로 옮겨갔다. 이 조직의 취지 는 언론자유를 확보하고 저널리즘 및 업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공동 협력을 촉진시키는 것이었 다.

85) 취재의 자유는 기자들에게 취재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곧 기자가 신문을 취재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기자는 인간과 사건에 대해 취재할 권리가 있으므로 정부 기관이 인위적으로 방해해 서는 안 된다. 전파의 자유는 기자가 신문을 소속 언론사 편집부에 먼저 알리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되며, 민중이 합법적인 도구로 신문을 청취하거나 전달하는 것을 간섭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자유 출판은 언론기관이 자유롭게 출판 발행하는 자유에 대하여 방해나 제한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표현의 자유는 비평, 평론의 자유를 가리킨다. 언론인과 대중이 신문 미디어를 통해 자유롭게 각종 의견을 표현하며, 시정(時政)을 평론하며, 정보와 관료를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 다.

86) 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ICCPR)는 국제인권장전(International Bill of Human Rights)의 일부분이다. 그 중 제19조는 자유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규정 하였다. 1 모든 사람은 간섭 없이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 2. 누구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져야 한 다. 이 권리는 국경의 제한이 없이 구도로, 서면으로, 인쇄로, 예술형식으로 통하든 아니면 다른 미 디어를 선택하든 모든 정류의 정보를 수집, 접수, 전달할 자유가 있다. 3. 본 문서의 제2항에서 제 공하는 권리의 행사에는 특별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 따라서 특정 제한 사항이 적용될 수 있지만 이 러한 제한 사항은 법률에 의해 제공되는 것과 같은 경우에만 적용되며 다음과 같은 사항이 필요하 다. (a), 타인의 권리 또는 명예에 대한 존중; (b) 국가 안보 또는 공공질서 또는 공공 보건(위생) 또 는 공공 도덕을 보장한다. 아래 사이트 참고함.(2018년 9월 13일 검색됨)

https://www.ohchr.org/en/professionalinterest/pages/ccpr.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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