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식민지기 전라북도 만경강의 하천개수사업

-‘식민지 공공성’을

둘러싸고-마쓰모토 다케노리(도쿄대)

셋으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 공공성을 담론의 성질·효력(공공성)과 이들 담론이 유통하는 공간(公共空間)으로 나눠 분석하고 있다(발표자도 이 사용법을 따르고 있다). 둘째, 식민지 공공 공간을 실체로 파악하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즉 식민지 조선에서 대중사회가 성립했다는 인식을 전제로 식민지 공공 공간의 실재(實在)를 강조한 나미키 마사히토(並木 真人, 일본 페리스 여학원대학 교수)논문2)과 대중사회와 식민지 공공 공간의 환상이라고 비판한 조경달의 저작3) 또한 식민지 공공 공간을 실체로서 파악한 점에서는 모두 잘못됐음 을 지적하고자 한다. 셋째, 국가와 민족이라는 ‘상위가치’ 관점에서 벗어난 ‘구조적으로 해 석이 부재된 영역’, 즉 식민지 권력과 조선인 사회의 ‘권력’, ‘교섭’의 국면(윤해동의 ‘회색 지대’)이야 말로 식민지 공공 공간이 성립한다고 하는 논점이다.

발표자는 식민지 공공 공간을 실체로서가 아닌 식민지 권력-조선사회의 관계성으로 봐야 한다는 윤해동의 주장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왜 ‘구조적으로 해석이 부재했던 영역’에 논의 를 한정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식민지 공공공간을 논한다면 국가-‘구조적으로 해석이 부재 했던 영역’-민족이라는 세 영역의 배치를 전재로 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서 “식민지 공공 공간”의 특징을 분석할 수 있다고 사료된다.

세 영역 배치를 분석의 전제로 할 경우 조경달의 정치문화론이 참고가 된다. 조경달은

‘정치나 투쟁이 발생할 때 그 내용이나 전개의 현실(현재의 형상, 바람직한 상태)을 규정한 다. 정치과정에 관한 모든 문화’를 정치문화로 규정한 후에 ‘일반적으로 정치문화는 지배자 와 피지배자 사이에 공유됨’에 비해 식민지 사회에서는 공유되지 않고 ‘식민지 지배라는 근 대적 폭력에 맞서나가며 정치사회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심성을 규정해 간다‘고 밝히고 있다. 4) 조경달의 지적은 앞의 세 영역에 대한 관계성을 논함에 있어 중요하다.5)

2) 나미키 마사히토(並木真人), 「조선의 식민지 근대성·식민지 공공성·대일협력(朝鮮における植民地近 代性・植民地公共性・対日協力)」 『国際交流研究』 5(2003年).

3) 조경달(趙景達),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과 민중(植民地朝鮮の知識人と民衆)』(有志舎, 2008年).

4) 조경달(趙景達), 『식민지 조선과 일본(植民地朝鮮と日本)』(岩波書店, 2013年), 1~2쪽 인용.

5) 식민지 조선에서 하천개수사업에 관해서는 두 논문이 주목된다. 우선 만경강 개수사업을 분석한 히로세 데이조(広瀬貞三)의 논문(「식민지 조선에서 만경강 개수사업과 토지수용령」 『후쿠오카대학 연구부논집A』제10권 제3호(2010년))은 사업용지 확보를 위해 식민지 권력의 토지수용 실태를 밝 히고 있다. 논문에 의하면 「조선토지수용령」은 조문상으로는 토지관계인이 의사를 피력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전혀 실시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식민지 권력이 사업을 신속하 게 실시하기 위해 조선인 토지 소유자의 사권(私權)에 대해 권력적으로 대응했음을 시사하고 있 다. 김종근의 논문(「일제하 京城의 홍수에 대한 식민정부의 대응양상분석-정치생태학적 관점에서」

『韓國史硏究』제157호(2012년))은 ‘경성’의 한강개수사업에 주목하며 토목건축노동자 등이 모여 산 신흥 조선인 거주지역 주민의 진정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권력은 제방공사를 실시하기는커녕 오히 ‘폐동(廢洞)’을 강요한 일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민족, 계층간 차이와 차별이야말로 식민지 하천개수사업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두 논문은 하천개수 사업을 둘러싼 식민지 권력-조선민족간

그런데 조경달은 ‘유교적 민본주의’를 조선 정치문화의 원리로 파악하며 구체적인 현상으 로 공론(公論), 민란(民亂), 면회(面會), 이회(里會), 진정(陳情) 등 정치적 행위에 주목하 고 있다. 그리고 조선총독부가 ‘병합’ 직후인 1912년에 공포한 ‘경찰범처벌규칙(警察犯処 罰規則)’ 제1조 ‘부당하게 많은 사람의 의견을 모아 관공서에 청원 또는 진정을 하는 자‘에 대해 구류 또는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에 착안하여, 식민지 권력이 조선의 정치문화를 부인 하는 방침으로 식민지 지배에 임했음을 밝히고 있다.6) 이후에 소개할 예정이지만 만경강 하천개수사업에 대해 조선인 지역주민은 집회·시위와 지방행정기관에 대한 진정(陳情)을 반복하고 있다. 집회·시위는 탄압 대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陳情)은 일정한 효과를 거둔 듯하다.7) 타 지역에서는 일본인 유력자 또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진정(陳情) 활동을 하고 있다.8) 조선인 지역 주민들로 조직된 집회와 진정은 형태적으로는 조경달이 지적하듯 조선의 정치문화에서 기원한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행위에 대해서 그(그녀)들은 식민지 권력에 의한 탄압을 회피하거나 일본인 유력자들의 탄압에 대항·대응 할 필요가 서서히 임박한다. 이로 인해 그(그녀)들의 정치적 행위는 ’유교적 민본주의‘ 원리 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전술성(戰術性)을 띨 수밖에 없었다.9)

의 대립관계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하고 있다.

6) 조경달, 앞의 책, 8쪽.

7) 김종근의 논문에서는 결과적으로 조선인지역 주민의 진정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동아일보의 보도 등으로 인해 ‘공론’화에 성공했음을 소개하고 있다(김종근, 앞의 논문, 300∼304쪽.).

8) 일본인 유력자에 의한 진정활동에 관해서는 지수걸에 의한 충청남도 대전·공주·조치원의 사례분석 이 있다. (「일제시기의 재조선(읍 단위)일본인 사회와 조선의 “식민자치”-충청남도 공주·대전·조치 원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야지마 히로시·김용덕편(宮嶋博史・金容徳 編) 『근대교류사와 상호인 식Ⅱ-일제지배기(近代交流史と相互認識Ⅱ-日帝支配期)』(應大学出版会, 2005년).).

9) 보통학교 설치문제를 분석한 이기훈의 논문(이기훈, 「1920~30년대 보통학교와 지역사회」 윤해 동・황병주 편, 앞의 책)에서는 총독부의 보통학교 설치정책이 행정구획인 면을 단위(3면1교, 1면 1교)로 추진된 것에서 ‘제국주의 공간지배의 폭력성’(위의 논문, 317쪽)을 읽을 수 있다. 이 ‘폭력 성’ 위에 지역 주민측의 보통학교 설립추진운동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면 을 단위로 하는 청원운동으로 개편되어 간다. 식민지 권력의 강제성·폭력성과 그에 대한 지역 주 민측의 전술적 대항·대응이라는 구도는 하천개수사업을 둘러싼 지역주민의 진정을 분석하기 위해 서라도 유효하다고 생각된다.

문서에서 근대의 시작 도시개발과 종교·문화 (페이지 139-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