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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결

문서에서 프로그램 (페이지 120-125)

최근 몇 년 사이 디지털콘텐츠 산업의 성장은 두드러진다. 플랫폼이 디지털콘텐츠 시 장 확대를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절은 ‘눈부신 성장’ 속에서 디지 털콘텐츠 창작노동자들의 작업환경, 노동조건, 삶의 질 등의 실태는 무엇인가, 어떤 변화가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부분적인 탐색이다.

1) 시장확대와 산업 성장에 따른 수익이 공정하게 배분되고 있는가?

2) 시장 확대와 수익 창출을 위한 플랫폼 기반 디지털콘텐츠 시장 시스템은 창작노동

있는 구조에 기초하고 있는가?

3) 플랫폼 업계에서 설정한 디지털 콘텐츠 창작물의 플랫폼 게재 방식에 맞춰 살아 남는 것이 기본적인 경쟁력이라는 논리가 옹호될 때, 살아남는 자는 누구이며, 축출되 는 자는 누구인가?

4) 플랫폼이 시장확대와 수익창출을 위해 만든 시스템이 차별적 결과를 야기하지 않 는가?

심층면접 분석을 요약해 보면

1) 플랫폼을 통해 디지털콘텐츠를 생산 유통하는 방식은 창작노동자가 자유롭게 결정 하는 것이 아니다. 웹툰의 경우 1화당 70컷 내외, 올컬러 등이 플랫폼에서 요구하는 표준적인 작업분량이며, 매주 연재해야 한다. 완결까지 휴재는 용인되지 않는다. 이는 플랫폼에 의해 표준화 되어 있고, 이러한 기준은 시장 확대와 수익 창출을 최대화 하 려는 목적에 따라 설정되어 왔다. 창작노동자의 노동환경이나 그것이 삶에 미치는 영 향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렇게 정해진 생산 유통 방식과 작업량은 창작노동자의 노동 조건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대부분의 디지털콘텐츠 창작노동자들은 잠자고 먹는 시간을 아껴가며 작업을 하고, 이는 경력있는 작가도 혼자 연재기일과 분량을 맞추기 어려운 구조이다. 가까운 독자와의 거리는 디지털콘텐츠 창작의 특성의 하나로 자리 잡았는데, 이는 창작노동자에게 심리적 중노동을 유발할 뿐만아니라 노동환경 악화의 요인이 되고 있다. 플랫폼은 이용자의 활발한 활동을 촉진하지만 창작노동자의 고충 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프리랜서 창작노동은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능력과 노력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 다는 통념이 있지만, 이는 사실상 허구이고 신화일 뿐이다. 잠자고 밥먹는 시간을 줄 여가며 연재기일을 맞추고 작업분량을 채우는 창작노동자에게 자유롭게 처분할 시간 은 없다. 또한, 한 작품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작품 전체 제작기간에 비추어 보면, 화 당 받는 선지급금(MG)이 작품 유통으로 발생하는 수익을 차감하지 못할 경우, MG가 수익의 전부가 되는데, 이 경우에 작품 전체 제작과정 대비 발생하는 월 수입은 최저 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게 된다.

2) 디지털콘텐츠 창작노동자는 과중노동이 표준화 되어, 인간다운 삶이 실종되고, 창 작활동의 지속가능성 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있다. 우선, 인간관계에서 고립되고, 개별 화되어 있는데 이는 관계 유지 활동에 필요한 시간을 내기 어렵게 만드는 작업량과 방식 등 노동환경에 의해 초래된다. 디지털콘텐츠 창작노동자의 일과 생활은 ‘끝장 노 동’과 그로인한 ‘일상생활 실종’으로 설명될 수 있다. 창작 활동을 하는 기간동안 창 작노동은 창작노동자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집어 삼킨다. 창작노동자들은 시간관리

를 통해 개인적으로 일과 생활의 균형을 이루고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찾으려고 노 력하기도 하지만 불균형과 지속불가능성은 개인적 시간관리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렵 다.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부작용이라기 보다는 예상되는 결과물에 가깝다. 과중노동 에서 유발되는 손목, 허리, 척추, 시각 등의 신체적 건강 악화 뿐만 아니라 디지털콘 텐츠 창작노동자들은 정신건강의 악화를 겪는다. 창작노동자의 SNS 활동에 대해 업 체는 규율적 단속을 통해 창작노동자를 길들이고, 창작노동자의 신념, 사상 표현의 자 유는 제한된다. 회사는 창작자의 SNS 인지도를 작품 홍보 등의 수단으로 활용하지만 악성 댓글이나 SNS 상에서의 공격에 대해서는 무책임한 태도를 취하고 창작자가 오 롯이 혼자 감당해야 할 몫으로 떠넘긴다. 나아가 연재처 상실 등 경제적 불이익으로 귀결되는 사례는 창작자들의 신념과 사상에 따른 표현을 위축시키는 기제가 된다.

창작활동을 지속불가능하게 만드는 작업량을 기준으로 세우고 살아남도록 하는 것은

‘끝장 노동’과 ‘일상생활 실종’이 가능한 집단을 특정짓고, 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집 단을 축출한다. ‘끝장 노동’과 ‘일상생활 실종’의 구조적 요인은 돌봄노동 등 재생산 노동을 불가능하게 한다. 즉, ‘돌봄노동 하지 않는 창작자’를 가정하고, 돌봄 책임을 부담하는 창작자를 배척하는 구조이다. 이는 쉽사리 여성의 커리어를 희생하는 선택 을 하게 만들고 여성을 축출하는 차별적 장치이며, 돌봄노동에서 탈피가능한 인간을 상정함으로써 돌봄을 방치하고 돌봄노동을 회피하도록 만드는 메카니즘으로, 이는 반 사회적이다.

3) 디지털콘텐츠 생산과 유통에 성차별적이고 성별고정관념을 토대로 한 장르문법이 작동하며 각색과 수정지시 등을 통해 플랫폼은 이러한 성차별적 인식과 성별고정관념 이 생산 소비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한다. ‘여성향’, ‘남성향’ 구분과 ‘여자 그림체’,

‘남자그림체’ 나누고, 기존 장르문법에 맞지 않는 것은 맞추도록 수정 요구되며, 별도 로 구분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남자 영웅과 여자 전리품‘이라는 판타지나 무협의 문 법에 맞지 않는 여성 주인공 판타지 작품은 플랫폼에 의해 로맨스 요소를 넣어 로맨 스판타지로 각색된다.

디지털콘텐츠 작품의 단가 책정에 있어서 성별 격차의 정황이 있다. 단가 책정 기준 등이 공개되지 않고, ‘비밀유지’ 계약으로 주로 주변에서 알음알음 얻게 되는 정보를 통해 단가 책정의 성별 격차가 정황적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경력이나 작품 성공도 등 일반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기준이나 요소로 설명이 되지 않는 단가 책정의 사례 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가 책정 기준을 공개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항의와 단가 기준을 설명하라는 요구는 쉽게 묵살된다.

거대 플랫폼 작품 게재의 기회와 주요 정보 접근이 업계의 인맥과 계보에 의해 점유 되는 경향이 있어, 인맥과 계보를 갖지 못하면 정보접근에서 불이익을 받으며, 기회를

권력은 남성에게 집중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남성연대는 성차별적이며 여성혐오적 실천을 통해 유지되며, 이는 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 장르문법이 통용되는 메카니즘 의 일부를 구성한다.

플랫폼은 창작의 자유, 표현의 자유, 선택의 자유를 옹호하는 ‘자유로운 시장’을 가장 하고 작품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창작자 몫으로 떠넘기지만, 실제로는 적극적으로 개 입하고 의도적으로 방관하고 있다. 우선, 장르문법에 맞는 작품 제작을 유도한다. 성 차별적 고정관념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작품을 제작하도록 하고 독자가 많이 접근하도 록 유인책을 적극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반면, 작품이 성차별이나 성적 대상화 등의 문제로 비판을 받을 때는 나몰라라 하지만, 이는 플랫폼이 작품의 성차별적이고 여성 혐오적 내용에 관대하기 때문에 ‘걸러지지 않는’ 것에 불과하다. 플랫폼은 단지 자유 롭게 조정되는 공간을 제공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생산부터 유통에 적극적으 로 개입하거나 의도적으로 방관하고 있다. 이러한 개입과 방관을 통해 여성혐오적이 며 성차별적 디지털 콘텐츠 제작을 조장하고 있다.

발제 4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 노동환경 개선과제

윤정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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