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배경
사회적 농업(social farming) 실천 및 관련 정책을 사회적 경제의 영역에 정위(定 位)할 수 있는 근거는 여럿이다. 첫째, 사회적 농업은 “급여를 받는 노동을 수행할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가령, 지적·신체적 장애인, 출소자, 약물중독자, 소수자,
55) 2021년 12월에 국회에 ‘농촌 지역공동체 기반 경제·사회 서비스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 었으나, 2022년 10월 현재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검토 중인 상태다.
이민자 등)의 통합을 지향하거나, 불리한 여건에 있는 사람들(the disadvantaged) 사람들의 재활·돌봄·교육을 촉진하거나, 아동이나 노인 등 특정 집단에게 농촌 지 역에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목적을 지닌 영농 실천”(Iacovo & O'Cornor, 2009, p.11)이라고 정의되듯이, 근본적으로 연대를 지향하는 실천이기 때문이다.
연대는 호혜와 더불어 사회적 경제 실천을 견인하는 핵심 가치라는 점에서56) 사 회적 농업은 사회적 경제와 궤를 같이한다.
둘째, 사회적 농업의 근대적 기원을 이루는 이탈리아에서 사회적 농업은 “불리 한 여건에 있는 사람들의 재활 및 사회적 포용이라는 지역 수준의 이해관심에 부 응하는 동시에 전통적인 농촌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새로운 접근방법을 채택한 사 회적 협동조합”(Fazzi, 2011, p.120) 형식으로 전개되었다. 물론, 사회적 농업을 실 천하는 모든 단위들이 법률상 사회적 경제 조직인 것은 아니다. 다만, 사회적 농업 이라는 실천과 그 개념의 역사적 형성 과정에서 ‘사회적 경제’라는 관점이 결정적 으로 중요했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57)
셋째, 사회적 농업은 ‘새로운 관계’ 형성, 특히 “농업 영역과 여타의 영역(고용, 복지, 교육 등)을 구분하는 경계선을 가로지르는 전형적인 사회혁신 실천”(김정 섭·나현수, 2019, p.11)인데, 이것은 사회적 경제 실천의 조건이면서 연대라는 가 치를 공유할 때 가능한 일이다.58)
56) 가령, 장원봉(2007)은 사회적 경제를 이해하는 몇 가지 관점을 정리하면서 라빌(Laville)이 주창한
‘연대의 경제(solidarity economy)’를 새로운 사회적 경제라고 칭하였다. 이것은 사회적 경제를 일종의 사회경제적 조절 메커니즘으로 이해하려는 관점인데, 분석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 닌다. “①국가와 시장에 의해서 충족되지 못하는 다양한 시민사회의 필요에 대응한다는 사회적 목 적을 가지고, ②폭넓은 시민사회의 주도성과 그것들의 결속을 보장하는 참여주의 모델로서 사회적 소유를 실현하며, ③호혜와 연대의 원리를 토대로 축적되는 사회적 자본에 기초한, 경제에 대한 시 민사회의 정치사회적 개입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장원봉, 2007, p.27).
57) 이탈리아에서 사회적 농업이 어떤 배경 속에서 사회적 경제 실천의 한 갈래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소개한 문헌으로는 Fazzi(2011)와 김정섭(2022)을 참고하라.
58) “세상은 연대의 가치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적 경제가 가지는 호혜의 원리가 국가의 재분배 역할과 시장의 교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완전히 환상이다. 하지 만 사회적 경제를 통해서 국가의 재분배 역할과 시장의 교환 역할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시민사회의 정치사회적 개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절실함도 분명한 사실이다. …(중략)… 그것은 규범적인 호
여기에서는 현재 시행 중인 ‘사회적 농업 활성화 지원사업’을 사회적 경제의 관 점에서 검토하려 한다. 사업시행지침에 지원사업을 신청하려는 대상자가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고 명시하였는데, 그중 세 번째 조건이 “지역사회의 주 민, 조직, 단체 등과 네트워크를 이루어 지속적으로 협력할 것”(농림축산식품부, 2022a, p.598)이다. 이것은 ‘사회적 농업 활성화 지원사업’이 시작된 2018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가 계속 견지해 온 관점이다. 지역사회 내 협동과 연대라는 가치 가 이 정책사업의 시초부터 강조되었음을 보여준다. 즉, 사회적 농업을 단순히 새 롭게 부각되는 경제활동 부문으로 인지하고 그것에 참여할 농업경영체들을 지원 한다는 통상적인 보조금 지원 정책의 시각이 아니라, 사회적 농업 실천 그 자체를 사회적 경제의 일환으로 본 것이다.
현재 농림축산식품부의 사회적 농업 활성화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조직은 83개 다. 그 가운데 대부분은 영농조합법인 혹은 농업회사법인, 즉 농업법인이다. 그렇 지만 협동조합, 사회적 협동조합, 비영리사단법인인 곳도 전체의 20%를 넘는다.
영농조합법인이거나 농업회사법인 중 유한회사의 법인격을 갖춘 곳 중에도 사실 상 협동조합에 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곳도 적지 않다.59) 사회적 농업 실천 단 위, 적어도 정부 지원사업 대상이 되는 실천 단위의 상당수가 사회적 경제 조직으 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한국의 사회적 농업 정책은 불가분 사회적 경제 정책의 영 역에 진입해 있는 형국이라 말할 수 있다.
소만으로 가능하지 않으며, 잘 정리된 시장전략으로도 달성되지 않는다. 현실적인 힘을 가질 수 있 는 새로운 사회적 관계의 형성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물론 현실적 힘을 갖는 사회적 관계의 형 성은 그것의 일관된 정당성과 합리성에 기초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경제의 개념화는 사회적 목적의 정당한 실현과 합리적 추구를 동시에 충족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연대 의 가치가, 일관된 현실적 힘을 통해서 유지되어온 시장과 국가의 핵심적인 재생산 자원인 이윤과 권력만큼 사회적 경제에게 일관된 현실적 힘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은 매우 중요한 문제 이다.”(장원봉, 2007, pp.30-31).
59) “영농조합법인이 의사결정원칙 등의 거의 대부분 측면에서 협동조합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현행 법률상의 법인 형식으로서는 ‘민법상의 조합’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는 영농조합법인이 무한 책임 회사이며 공동자산에 관한 소유권 형태가 합유(合有)임을 뜻하는데,'협동조합 기본법'상의 협 동조합이 유한책임 회사이며 공동자산의 소유권 형태가 공유(共有)에 가깝다는 것과 다르다.”(김정 섭·김미복, 2013, p.23).
한국에서 사회적 농업 실천이 사회적 경제 실천의 일부분으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를 단지 실천 단위의 법인 형식만을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다. 실제로 이들 조 직이 사회적 농업을 실천하는 가운데 협동과 연대의 가치를 얼마나 지향하며, 그 활동 중에 그런 가치를 얼마나 구현하느냐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사회 적 농업이 사회적 경제 실천의 일종이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기보다는 사회적 농업 실천 자체가 협동과 연대를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농업은 궁극적으로 는 지역사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포용을 추구하는 실천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농업은 특별한 돌봄이 필요하거나, 그런 돌봄이 없을 경우 기본적인 서비스에 접근하는 것을 거부당할 수 있는 소외된 집단들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를 향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회적 농업은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편견과 차별로부터 ‘통합’이라는 보호를 제공하며, 존엄하게 생활할 권리를 증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사회 적 농업은 사회적 보호를 지향하는 다부문적(multisectoral)이고 다차원적인 접근방법 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 농업을 통해 사람들은 먹거리 보장과 소득 보장 측면에서 보 완적인 수단을 얻을 수 있고, 고용이 가능해지며, 사회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얻을 수 있 으며, 돌봄과 살림살이 경제 영역에서 무급 또는 유급의 일자리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적자원 측면의 투자가 가능해진다. 뿐만 아니라 서비스에 대한 접근으로부터 배 제된 주변부의 인구 집단을 낙인찍기나 차별 같은 폐단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그럼 에도 많은 이들이 지적하기를, 사회적 농업은 서로 다른 여러 부문이나 분야가 교차하 는 곳에서 실천해야 하는 것이어서, 일종의 큰 도전에 직면한다. 그 도전은 농촌 발전 분 야에서 여러 활동이 부문별로 나뉘어 이루어지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이 같은 부문 별 접근방법에 도전함으로써, 사회적 보호 수단으로서 사회적 농업은 지역사회 안에서 복지, 사회적 포용, 지속가능성 등을 증진하려는 목표를 지닌 농촌 발전 정책의 패러다 임을 방법론적으로 재검토할 기회를 제공한다.”(Iacovo et al., 2015, p.327).
사회적 농업이 지역사회 안에서의 협동과 연대에 바탕을 두고 실천되어야 한다 는 현실적 이유를 김정섭·조승연 외(2020, pp.40-42)는 몇 가지로 제시하였다. 첫 째, 사회적 농장 운영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도출되는 것으로, 사회적 농업 실천 에 따르는 비용을 공적 자금으로 지불해 주는 제도적 장치가 확립되지 않은 한국 에서는 개별 농업경영체가 부담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지역사회 안의 여 러 단위들이 사회적 농업 실천에 동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사회적 농업 활
동 참여자들이 얻을 수 있는 심리적·사회적 편익을 제고하려면 사회적 농장이 적 은 수의 참여자를 응대하는 게 바람직하다. 지역사회 안에 여러 사회적 농장이 협 동한다면, 참여자를 분산 배치하여 편익을 증대할 수 있다. 셋째, 사회적 농업 참여 자와 농업인이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농장 단독으로는 여러 가지 어려 움을 겪을 수 있는데, 그것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농장과 지역사회 안의 다양 한 직능 기관·단체의 연대가 필수적이다. 넷째, 사회적 농장은 다양한 인적·물적 자 원을 필요로 하지만 그들을 상시 고용하기 어려운 조건에 있다. 지역사회 내의 여러 분야 행위자들과의 협력 관계에서만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재 사회적 농업 활성화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사회적 농장들이 지역사회 안에 서 협동과 연대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정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한 자료는 없다.
알려진 몇몇 사례들을 볼 때, 사회적 농장들이 보여주는 협동과 연대의 실천 정도 는 상당히 큰 편차를 보인다. 단순하게는 하나의 사회적 농장이 지역사회의 사회 복지기관 한두 곳과 결합하여 사회적 농업을 실천하는 곳에서부터, 크게는 지역 에 형성된 폭넓은 사회적 경제 협력 연결망 안에서 전략적으로 사회적 농업 실천 을 확산해가는 곳도 있다.
5.2. 사례 60)
전라북도 완주군에 농림축산식품부의 ‘사회적 농업 활성화 지원사업’에 참여 하는 농장은 2022년 현재 6곳이 있다. 성인 및 청소년 발달장애인, 뇌병변장애인, 고령 노인, 정신장애인, 독거노인, 다문화가정 아동 등 배경이 다양한 이들 226명 이 6개의 사회적 농장61)을 오가며 사회적 농업 활동에 참여한다. 이례적으로 밀도
60) 이 절의 내용은 주로 이효진(2022)의 자료를 참고하고 관계자들과의 면담 조사를 통해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다.
61) 고산면(꿈바라기 농장, 기쁨의 농장), 봉동읍(마음꽃 농장, 키울협동조합), 용진면(완주로컬푸드꿈 드림영농조합법인), 소양면(사회적 협동조합 더불어해봄) 등이다. 완주사회적 경제네트워크는 사업 시행지침상으로는 하나의 지원 대상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개의 사회적 농장이 결합되어 있다. 이렇
가 높고 실천이 활발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 배경에는 완주 지역에 형성된 사회 적 경제 조직들의 연결망과 협력 활동이 있었다.
사회적 농장 사회적 농업 활동 내용 참여
인원 사회적 협동조합
완주사회적 경제 네트워크
꿈바라기 농장 청년 발달장애인 돌봄 및 자립 도모[화전마을] 12
기쁨의 농장 뇌병변장애인 및 고령 노인 돌봄 5
마음꽃 농장 정신재활(경증) 돌봄[마음꽃복지센터] 8
키울협동조합 발달장애아동(18명) 및 가족(52명) 돌봄 70
완주로컬푸드꿈드림영농조합법인
중등학교 발달장애 청소년 진로체험[완주중학교 특수학급] 12 고등학교 발달장애인 돌봄(4명), 농업인턴십습(1명)[고산고등학교] 5 성인발달장애인(5명) 및 가족(9명) 농업교육 14
사회적 협동조합 더불어해봄
뇌병변장애인 돌봄 10
발달장애인 돌봄 10
다문화가정 아동 돌봄 10
고령 독거노인 돌봄 20
지역청소년 농업체험 10
독거노인 반찬나눔 서비스 40
자료: 이효진(2022, p.94)을 참고하여 저자 작성.
<표 3-11> 완주군의 사회적 농업 활동 개요
완주군에서 사회적 농업이 비교적 빠르게 확산하는 데 크게 기여한 조직은 ‘사회 적 협동조합 완주사회적 경제네트워크’62)이다. ‘완사넷’은 완주군에서 활동하는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상호 연대를 토대로 지역순환경제를 실현한다는 목적하에 2017년 12월에 설립한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2022년 현재 완주군에서 활동하는 협 동조합, 마을기업, 지역창업공동체 등 84개의 조직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다.
‘완사넷’이 사회적 농업 활동에 착수한 것은 2018년이다. 당시 농림축산식품부 가 ‘사회적 농업 활성화 지원사업’을 처음 시행하면서 참여자를 공모할 때 ‘완사 넷’의 이름으로 응모하였다. 응모할 때는 ‘완사넷’이 하나의 단위였지만, 내부적
게 한 단위 안에서 사업을 진행하다가, 확장된 형태로 실천하고자 할 경우 별도의 지원사업 대상으 로 분화해 나가기도 하였다. 키울협동조합과 사회적 협동조합 더불어해봄이 그 사례다.
62) 이하, ‘완사넷’이라고 약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