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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末麗初에 나타난 思想界의 변화로 禪宗의 유행을 지적할 수 있다. 禪宗思想은 개 인주의적인 경향을 지녀서, 당시 중앙정부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지방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려 했던 地方豪族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선종사상과 함께 지 방호족의 세력형성에 이념적 기반을 제공했던 것으로 風水地理說이 중요시되어 왔다.

풍수지리설은 정해진 明堂을 중심으로 한 國土再構成案의 성격을 띠었으므로, 慶州 중 심의 지역관념에서 벗어나려 했던 지방호족에게 적극적으로 수용될 수 있었다.

당시에 유행하였던 풍수지리설에 대해서는 道詵(827~898)의 그것이 주로 알려져 왔 다. 곧 도선의 풍수지리설은 王建에게 수용되어 지방호족을 아우르면서 高麗를 建國하 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이해되었다. 그러나 도선은 桐裏山門의 禪僧이었음을 유념하여 야 한다. 따라서 도선 풍수지리설의 진면목은 그의 禪思想과의 관련 속에서 추구될 필 요가 있다.

도선에 대한 연구는 일찍부터 이루어져 왔다. 日人 學者인 今西龍은 관련자료의 분 석을 통해 도선의 행적이 후대에 윤색되는 과정을 살핀 바 있다.1) 하지만 이 분야의 본격적인 연구는 李丙燾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먼저 圖讖과 風水地理의 개념을 정리 하면서, 풍수지리설을 미신적인 도참사상과 연결하여 地理圖讖으로 규정하였다. 그리 하여 도선은 圖讖的 형식에 의해 地理衰旺說과 地理順逆說 내지 寺塔裨補說을 말하였 고, 禪僧으로서의 면모 이외에 術僧 즉 地理圖讖家로서 陰陽地理에 관한 著述을 남긴 데 특색이 있다고 하였다.2) 그의 연구는 풍수지리설의 유행을 高麗時代 政治勢力과의 관계 속에서 분석함으로써 이후의 연구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후 李龍範은 종래 부정적으로 인식되던 풍수지리설이 나말려초의 사회전환기에 國土再計劃案的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견해를 제기하였으며,3) 이는 崔柄憲에 의해

1) 今西龍,〈新羅僧道詵に就きて〉(《東洋學報》2-2, 朝鮮學會, 1912 ;《高麗史硏究》, 近澤書店, 1944).

2) 李丙燾,《高麗時代의 硏究 — 特히 圖讖思想의 發展을 中心으로 — 》(乙酉文化社, 1948 ; 亞細亞文 化社, 1980).

3) 李龍範,〈處容說話의 一考察 — 唐代 이슬람商人과 新羅 — 〉(《震檀學報》32, 震檀學會, 1969).

서 더욱 계승 발전되었다. 최병헌은 一行의 地理法과 연결되는 도선의 풍수지리설은 국토재계획안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이해하였다. 그리하여 그것은 한반도의 역사무대를 동남부의 慶州 중심에서 중부지방인 松嶽으로 옮기게 함으로써, 王建이 後三國을 統一 하는데 유리하게 작용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나말려초의 禪師들에게 풍수지리적 인 인식이 폭넓게 나타났음에 주목하여, 당시의 禪師들은 일반적으로 풍수지리에 대한 지식을 갖추었다고 보았다.4) 이 외에 도선의 풍수지리설은 도참이 아닌 密敎의 영향으 로 나타났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徐閏吉에 따르면 도선의 풍수지리설은 裨補思想에 중심이 있으며, 도선뿐 아니라 그와 法脈이 연결되는 慧徹이나 智藏도 密敎僧이라고 파악하였다. 곧 그는 도선의 비보사상은 밀교의 擇地法에 따라 나온 것으로 도참과는 구별되는 密敎的 法用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5)

한편 도선의 풍수지리설을 그가 속한 桐裏山門의 사상적 특성과 관련하여 파악한 연구가 있어 주목된다. 金杜珍은 동리산문의 禪宗思想은 唯識, 즉 法相宗思想과 밀접 한 관련이 있으며, 풍수지리설이 도선에 의해서 정리되는 것은 동리산문의 이러한 사 상경향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도선의 嗣法弟子인 慶甫가 後百濟 甄萱과 연결되었음에 주목하여, 後三國 戰亂期에 玉龍寺는 물론 동리산문에 이르기까 지 견훤을 檀越로 하였다고 지적하였다.6)

이상의 연구성과를 통해 道詵의 風水地理說에 대한 이해는 상당히 진척되었지만, 오 히려 그의 禪思想과의 관련 속에서 그것을 천착하려는 시도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 하였다고 생각된다. 이에 本稿에서는 도선이 桐裏山門의 禪僧이었음에 주목하여 그의 禪思想이 唯心論的인 경향으로 성립되었음을 밝혀보고자 한다. 나아가 唯心論的인 그 의 사상경향은 唯識, 즉 法相宗思想을 아우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바탕으로 그의 風水地理說이 형성될 수 있었음을 이해하려고 한다.

기존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本稿에서는 다음의 문제들을 究明하고자 한다. 첫째, 道詵의 행적을 검토하면서 그가 속한 桐裏山門과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둘

4) 崔柄憲,〈道詵의 生涯와 羅末麗初의 風水地理說—禪宗과 風水地理說의 관계를 중심으로 하여—〉

(《韓國史硏究》11, 韓國史硏究會, 1975).

5) 徐閏吉,〈道詵과 그의 裨補思想〉(《韓國佛敎學》1, 韓國佛敎學會, 1975) 및〈道詵 裨補思想의 淵 源〉(《佛敎學報》13, 東國大學校 佛敎學硏究所, 1976).

6) 金杜珍,〈羅末麗初 桐裏山門의 成立과 思想 — 風水地理思想에 대한 再檢討 — 〉(《東方學志》57, 延世大學校 國學硏究院, 1988).

째, 羅末麗初 禪僧들에게 나타나는 風水地理的인 인식을 그들의 사상경향과 관련하여 검토해보려고 한다. 셋째, 道詵의 禪思想에 주목하여 그것이 어떠한 경향으로 나타났 는지를 고찰해보려고 한다. 이를 위해 桐裏山門에 소속된 다른 禪僧들의 사상경향과 비교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다. 넷째, 道詵의 禪思想과 風水地理說은 어떻게 연결되었 는지에 대해서 살피고자 한다. 그리고 그의 풍수지리설이 뒤에 圖讖으로 변질된 원인 을 그의 사상경향에서 찾으려 한다.

이러한 시도를 통하여 道詵의 唯心論的 禪思想과 羅末麗初에 활동하였던 여러 禪僧 들의 사상경향을 비교함으로써, 당시 思想界의 변화와 그 재편과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史料의 부족으로 추측과 비약이 적지 않다.

많은 叱正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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