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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교훈과 북한의 지역개발 과제

1 . 동서독과 남북한의 비교

통일 후 10년동안 동독지역에서 추진되어온 지역개발의 성과와 과제로부터 남북한에 대한 교훈과 시사점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서독과 남북한이 어 떠한 차이와 유사점을 갖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1 ) 남북한과 동서독의 총량적 비교

현재의 남북한과 통일 당시의 동서독은 인구규모나 경제규모 등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통일 당시 인구규모에 있어서 서독과 동독의 비율이 약 4:1 이었던데 반하여, 1999년 기준으로 남한과 북한은 대략 2:1의 비율을 보이고 있 다. 또한 통일 당시 1인당 국내총생산의 경우 서독과 동독이 대략 3:1의 비율이었 던 것에 반하여, 남한과 북한은 10:1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동서독과 남 북한간의 인구 및 경제력 격차는 남한의 통일비용 부담이 서독의 경우보다 더 높을 수밖에 없으며, 남북한간 경제력 격차의 해소에 동서독의 경우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고 있다.69)

<표 5- 1> 남북한과 동서독의 주요 지표 비교

남 한 북 한 서 독 (1989) 동 독 (1989) (천명) 46,858 ('99) 22,350 (' 97)1 ) 62,063 16,614 (km2) 99,314 122,762 248,252 108,588

인구밀도 (인/km2) 472 182 250 153

전체취업자수(만명) 1,983.7 ('94) 1,597.1 (' 94) 2,774.2 888.6 취업자

고용비율 (%)

1차산업 13.6 ('94) 25.7 (' 94) 3.9 10.8 2차산업 23.9 ('94) 48.0 (' 94) 39.7 50.4 3차산업 62.5 ('94) 26.3 (' 94) 56.4 38.8 1인당 GDP ($) 6,800 ('98) 600 (' 98) 19,283 5,840 국토면적당 총도로연장

(km/1000km2) 875.9 ('98) 190.7 (' 98) 698.8 437.0 국토면적당 총철도연장

(km/1000km2) 67.3 ('98) 42.5 (' 98) 255.8 229.7 주: 1) 조선중앙년감 2000

자료: St atist isches Bundesamt , 1991, 배진영, 통일이 동서독의 산업입지와 산업구조에 미친 영향, 1994 , p. 85에서 재인용.

FAZ- Informat ion sdien st e , 1990 , 독일 경제사회통합 연구를 위한 단기조사단, 1990 , p . 322에서 재인용.

통계청, 남북한 경제사회상 비교, 1999

2 ) 남한과 서독의 비교

앞에서도 언급된 바와 같이 통일 후 동독지역의 경제재건과 지역개발과정에서 연방정부와 서독지역 연방주들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동독지역 개발의 주요 재원은 연방정부와 서독지역의 10개 연방주들로부터 갹출되었는데, 이것은 이들 연방주들이 견실한 재정상태하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 남한은 통일 당시의 서독에 비해 크게 취약한 경제력을 보이고 있다. 1998 년 남한의 1인당 국내총생산액은 10년동안의 물가상승을 감안할 때, 통일 당시

69) 동서독지역간의 경제적 격차를 25%포인트 축소시키는데 1조 마르크(1 마르크 500원 기준 500조원) 와 7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남북한간의 경제력 격차축소에는 동서독의 경 우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 될 수밖에 없다.

의 서독은 물론, 동독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그리고 통일 직전인 1989년 서독정 부가 720억 달러의 세계최대 무역흑자70)를 기록하였던데 반해, 1999년말 남한의 정부부채는 111조 8,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3%를 차지하고 있다. 이 러한 몇 가지 지표를 비교해 볼 때, 현시점에서 통일이 된다면 서독정부가 동독 지역에 했던 것과 같은 대규모 경제지원을 남한정부가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이 다.

또한 통일 당시 서독은 연방제를 토대로 지역간 균형발전을 이룩한 상태였지 만, 남한은 수도권문제 등 지역균형발전 측면에서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 다. 따라서 동독지역의 발전에 경제적 역량을 집중시킬 수 있었던 서독과는 달 리, 남한의 경우에는 남한내의 균형발전 문제에도 지속적으로 역량을 투여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여건을 종합해 볼 때, 남한은 통일 후 서독의 경우보 다는 제한적 범위 내에서 북한지역의 경제재건을 지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지역의 경제재건과정에 국제사회의 참여와 지원이 필수적인 것이다.

또한 제도적 수준의 차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통일 당시 서독은 헌법인 기본 법(Grundgesetz)을 토대로 안정적인 제도적 기반을 갖고 있었다. 동독인들이 통일 독일의 새로운 기본법(헌법) 제정보다는 서독의 기본법을 그대로 수용하고 서독 의 각종 제도를 그대로 따랐던 것은, 무엇보다도 서독의 제도에 대한 신뢰가 컸 기 때문이다.71)물론 통일 당시 동독의 지식층들은 서독의 제도를 그대로 따르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사회주의 동독의 장점과 자본주의 서독 의 장점을 살린 제 3의 길을 모색하였지만, 이것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내 지는 못했다. 무엇보다도 동독인들의 다수가 빠른 시일 내에 서독제도를 받아들 이기를 원했기 때문에, 새로운 제 3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힘을 얻지 못 하였다.

반면에 통일시점에 우리 남한의 제도적 기반이 서독의 그것만큼 안정적인 수

70) OECD, Main Economic Indicators, 1991, p.25, 박광작외 2인 공역, 새로운 출발을 위한 전환전략, 1994, p.21에서 재인용.

71) 위르겐 코카, 김학이 역, 독일의 통일과 위기, 1999, p.180.

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지, 그래서 북한사람들의 신뢰를 얻어낼 수 있을 지는 확신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72)

그리고 통일 당시 서독이 주변국에 가지고 있던 영향력과 현재 남한이 갖고 있는 그것과의 차이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일 당시 서독은 유럽통합을 주도하 는 새로운 강자로 국제사회에 부각되고 있었던 반면, 우리 남한은 중국과 일본이 라는 강대국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적은 상태이다.73)이러한 상황은 남한의 경우 통일과정에서 과거 서독보다 주변국으로부터 더 많은 영향 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3 ) 북한과 동독의 비교

북한의 경제력은 통일 당시 동독의 경제력보다 크게 미약한 상태이다. 1998년 북한의 1인당 국내총생산액은 10년 동안의 물가상승을 감안할 때 통일 당시 동 독의 1/1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제연합의 식량 및 농업기구(FAO;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에 따르면, 북한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국민 들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국가이며, 1996년부터 1998년 사이에 전체 국민의 60%가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74)

72) 국제통화기금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1997년부터 1998년 사이에 전세계 169개국의 제도적 수준을 비 교해본 결과 남한은 최고수준의 1분위에서 최하위 5분위까지 5개 등급 가운데 2분위에 포함되고 북 한은 최하위인 5분위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OECD 가입국인 남한이 상위 33개국이 포함된 1분위 에 포함되지 못하고 필리핀, 태국, 몽고, 폴란드 등과 함께 2분위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남한의 제도적 수준이 국제적으로 어떠한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International Monetary Fund, World economic outlook, 2000, p.111.

73) 독일의 경우, 독일 통합 과정을 때마침 속도가 붙고 있던 유럽 통합 과정에 링크 시킴으로써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주변국의 통일 독일에 대한 우려와 견제를 없앨 수 있었다. 그러나 한반도의 경우 유럽 통합에 비견될 수준의 어떤 동아시아 지역 통합과정도 관찰되지 않고 있다. 또한 서독은 분단 시절 구 사회주의국가들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이 매우 컸는데, 소련의 수입량 중 약 20%, 동독의 수입량 중 55%, 폴란드의 36%, 헝가리의 41%, 체크의 39% 등 평균 30%를 상회하면서 서유럽 자본 주의 국가 중 경제적 영향력이 단연 우위를 지키고 있었다. 이해영, 2000, p.25, p.72.

74) Nautilus Institute, Northeast Asia Peace and Security Network Daily Report, 2001.1.9, http://www.nautilus.org.

산업구조에 있어서 북한은 제조업 고용비율이 동독과 비슷하나 농업 등 1차산 업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3차산업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다. 이것은 통일 후 북 한의 산업구조 개편과정에서, 농업부문이 동독의 경우보다 더 커다란 변화를 겪 게 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북한의 주거수준은 통일 당시의 동독 수준 보다 크게 낮은 상태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통일 이후 동독지역에서 노후주택 의 개선사업이 가장 커다란 도시개발의 과제 가운데 하나로 부각되었던 것을 고 려할 때, 북한의 주거부문은 동독지역의 경우보다 더 많은 정비수요를 갖고 있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표 5- 2 > 동독과 북한의 주거관련 지표 비교

동독 (1990) 북한 (1997)

주택보급률 (%) 100 60–701)

1인당 주거면적 (m2) 28 7

주: 1) 1996년말 기준으로 북한인구 2200만명, 가구당 평균 가구원수 4 .5인, 주택재고 340 만호 등을 가정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북한은 통일 이후 산업구조개편과 지역개발 추진 과정에서 동독의 경우보다 더 많은 과제를 안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이어진 경제난과 자연재해로 전체 산업생 산이 60~70% 가량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산업생산 감소는 통일 직후 동독지역에서 발생한 산업생산 감소와 거의 비슷한 규모이다.75)북한지역 에서 동독지역에서와 같은 급진적 산업구조재편이 발생할 경우 1990년대 경험했 던 경제난보다 더 심각한 경제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교통인프라에 있어서 북한과 동독은 유사한 특성도 보이고 있는데, 수송 의 주요 수단이 철도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교통체계가 사람보다는 화물위주로

75) 통일직후인 1991년까지 동독지역의 산업생산은 70%나 감소하였고, 900만개의 일자리는 620만 개로 감소하였다.

구성되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교통체계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통일 이후 독일연 방정부는 동서독지역간의 연계교통인프라 확충에 있어서 철도에 많은 투자를 하 였는데, 이것은 환경친화적이고도 운송효율이 높은 철도의 고유 특징뿐만이 아 니라 유럽연합차원의 국제교통망 구축에 있어서도 철도가 핵심적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우에도 남한에 비해 철도중심적인 교통체계를 갖고 있 는데, 향후 통일이 되거나 북한이 개방될 경우, 동북아를 포함한 장거리 수송의 증가로 철도의 기능은 보다 강화될 전망이다.

<표 5- 3 > 남북한 수송분담구조의 변화 비교

(단위: %)

1970 1975 1980 1985 1990 1993

철도 남한 84.3 64.1 53.1 45.3 30.0 25.3 북한 93.2 93.1 92.9 92.7 92.7 92.8 도로 남한 15.7 35.9 46.9 54.7 70.0 74.7

북한 6.8 6.9 7.1 7.3 7.3 7.2

주: 수송톤- km 기준 (비영업용화물 제외)

자료: 교통부, 교통통계연보, 각년도, 교통개발연구원, 통일대비 남북한 종합교통망 구축계획, 1998

4 ) 통일 당시의 정치외교적 여건 차이

통일 시점의 정치외교적 여건의 차이도 간과할 수 없는 사항이다. 동서독은 통 일당시 전승 4대국에 점령된 완벽하지 못한 주권국가였다. 이것은 통일과정에서 동서독이 서로 긴밀한 협력을 통해 신속한 통일과정을 추진하게 끔 만든 압력이 되었다. 외세의 개입에 의해 동서독의 통일과정이 지연될 수도 있었으나, 이것을 의식한 동서독 국민들은 더욱 단결된 모습으로 통일과정을 완수하였다.

그러나 남북한이 주권국가로서 주변국들과 형성하고 있는 정치・군사・경제 적 구도(북한–중국–러시아, 남한–미국–일본)를 감안할 때, 남북한이 통일과 정에서 동서독처럼 긴밀한 협력을 이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군사적으로 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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