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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 말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진행된 체제전환과 분단국가들의 통일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적나라한 실상을 가장 극명하게 대비시켰던 역사적 사건 이었다. 20세기 동구 사회주의 몰락의 대미를 장식했던 동서독의 통일은 자본주 의 선진국과 사회주의 선진국간의 통일이라는 측면에서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 었던 사건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통일독일은 유럽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동유럽의 구 사회주의권 국가들에게 독일은 과거 소련의 역할을 대체하는 강국(Big Brother)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통일독일이 이렇게 유럽의 중심으로 부각되 는 동안 과거 공업선진국이었던 동독지역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하였을까? 그리 고 이러한 변화가 아시아의 분단국인 남한과 북한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분단 40년, 통일 10년간의 동독 지역 변화를 살펴보았다.

1 . 점진적이면서도 안정적이었던 동서독의 교류협력 : 통일의 기반 우리는 독일의 통일이 급진적 방식의 흡수통일이기 때문에, 독일식 통일은 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의도적으로 통일을 추구해 서 이것을 달성시킨 예는 남북예멘과 남북베트남의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모두 전쟁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이룩된 것이었다. 전쟁 없이 평화적으로 통일 을 이룩한 독일의 사례를 우리가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리고 우리는 독일이 40년의 분단기간 동안 꾸준히 교류협력을 통해 상호신뢰의 기반을 구축하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도 안될 것이다. 이러한 교류를 통해 동서 독주민들이 서로의 사회경제적 실상을 잘 알게 되었으며, 통일 이후에도 커다란 동요 없이 체제통합을 이룩해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독일의 통일은 외형적으로 급진적 방식을 따르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점진적 인 통일의 길을 걸어왔던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통일 후 동독지역의 변화를 살펴보기에 앞서서, 사회주의시절 동독의 지역특성과 동서독간 교류협력 추진과정을 살펴보았다. 사회주의 동독은 자립경제의 구축이라는 경제정책 기조 하에 중화학공업중심의 도시경제와 농업 생산협동조합(LPG)중심의 농촌경제를 구축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부 대 도시들로 투자가 집중되면서, 공업중심의 남부지역과 북부 농촌지역간의 지역격 차문제가 심화되기도 하였다.

분단기간 동안 동서독간의 관계는 갈등관계로부터 협력관계로 점차 발전되어 갔다. 1949년에 각각 서독과 동독에 독립정부가 들어선 이후 1958년의 베를린봉 쇄, 1961년의 베를린장벽 구축 등으로 긴장관계가 이어지기도 하였으나, 빌리 브 란트(Willy Brandt) 서독총리의 동방정책이 추진되기 시작한 1970년대 초반 이후 부터는 양국간의 협력관계가 통일시점까지 이어졌다. 분단기간 동안 동서독의 교류협력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서독이 정경연계에 의한 교류협력을 추 진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하였던 것은 무엇보다도 서독이 안정적인 정치 경제적 역량을 확보하였기 때문이다.90)

90) 중국-대만과 동독-서독의 교류협력사례를 볼 때 경제적 역량이 우위에 있는 쪽(중국, 서독)에서 정경 연계방식을, 열세에 있는 쪽(대만, 동독)에서 정경분리방식을 선호하였다.

이러한 동서독의 교류협력사례는 남한의 정치경제적 역량이 남북관계의 정상 화와 활성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더라도 제 도적 기반 위에서 단계적으로 각 분야의 교류협력을 균형적으로 확대해 가야 할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2 . 통일의 지역적 명암 : 통일의 교훈

지난 10년 동안의 동독지역 변화는 굳어져 있던 신체의 일부가 수술과 물리치 료를 통해 점차 정상화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막혔던 혈관과 마비되었던 근육이 정상화되면서 초기에 극심한 고통도 따랐고 후유증도 남아있지만, 동독지역은 이제 독일의 일부로서 점차 제 기능을 찾아가고 있는 것 이다.

우리 한반도에서 통일이라는 단어와 가장 밀접하게 연상되는 문제 가운데 하 나는 남북한간의 인구이동문제이다. 통일이 되면 북한주민들이 대규모로 남하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통일 이후 인구이동의 문 제가 크게 제기되지 않았다. 지난 10년 가까운 시기 동안 동독지역에서 서독지역 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숫자는 186만명에 이르지만, 통일초기 2~3년을 제외하고 는 인구이동이 안정되었다. 이렇게 인구이동이 빠르게 안정될 수 있었던 것은 통 화통합, 동독지역에서의 임금상승 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 한 급진적 경제통합이 동독지역의 경제기반을 일시에 붕괴시키는 정책적 잘못을 범했다는 지적도 있으며, 통일 직후 경제적 측면에서 동독지역에 대한 일정한 과 도기가 필요했었다는 주장도 있다.

통일독일의 연방정부는 동독지역의 경제재건을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추진하 였다. 공동과제 지역경제구조의 개선 사업은 민간기업의 동독지역투자에 대한 투자비용보조와 기반시설지원 등을 통해 고용창출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고, 통

독교통프로젝트, 텔레콤 2000 등의 사업들은 교통 및 통신인프라의 개선에 중요 한 기여를 하였다. 또한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공동으로 추진한 도시정비사업을 통해 동독지역 전체 주택의 절반 정도가 개・보수되거나 신축되었다.

이러한 적극적인 정부의 투자에 힘입어 동독지역의 사회경제적 인프라는 크게 개선되었고 동서독간의 격차도 상당부분 줄어드는 성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단 기간내에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도 동반되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는 동서독간의 사회경제적 격차가 내면적으로는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는 점 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다시 증가하기 시작한 동독지역의 실업률은 서독의 두 배를 넘고 있으며, 지니계수를 통해 비교해본 사회적 불평등의 정도에 있어서 동 독지역이 서독지역보다 불평등 정도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또한 동독지역내에서도 대도시지역과 농촌지역간의 경제적 격차가 더욱 심화 되고 있는데, 지역격차 심화의 주체가 사회주의시절의 정부로부터 시장으로 바 뀌었던 것이다. 이것은 사회주의 시절 국가에 의해 심화되었던 지역불균형문제 가 통일 이후 시장에 의해 확대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또한 통일 이후 경제적 효율성위주의 개발이데올로기가 환경적 측면을 압 도했던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치이데올로기의 공백을 경제이데올로기가 채워가면서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통일독일 10년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교 훈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첫째,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특정지역에서 급 격한 인구유출입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통일 이후 북한의 지 역개발을 위해서는 북한지역의 안정적 정주기반부터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러 한 측면에서 볼 때 대량실업과 인구유출의 가능성이 높은 중공업 및 농업중심 지역에 대한 특별한 고용 및 주거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 기존 국영기업의 개편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문제이다. 동독지역의 경우 대부분의 도시들이 대 규모 국영기업에 도시경제를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 때문에 성공적인 국영 기업의 민영화 여부가 도시경제 활성화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였다. 따라서 북

한지역의 경우에도 수도 평양은 물론 남포, 함흥, 청진 등 주요 도시의 대규모 국영기업들이 성공적으로 정비될 수 있도록 관련 정책이 조율될 필요가 있을 것 이다.

셋째, 투자재원의 조달 문제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지난 10년간 동독지역의 인 프라 및 산업투자부문에 지원된 약 1조 마르크의 공공자금 가운데 90% 이상은 서독정부와 주정부의 재정으로 충당되었다. 그러나 우리 남한의 경우에는 정부 의 취약한 재정능력 때문에 독일의 경우와 같은 재원조달방식을 적용하기가 현 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 대신에 국제금융기구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한 재원 조달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 것이다.

통일독일의 연방정부는 동독지역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공공정책을 추진해 왔 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계속 추진해가야 한다. 정치적 통일은 10년전에 달성 되었지만 사회경제적인 통일, 심리적 통일은 아직도 머나먼 여정을 남겨두고 있 다. 그들이 통과하고 있는 험난한 통합의 과정을 면밀히 분석함으로써 남한과 북 한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확인해내는 작업은 새로운 천년을 맞이한 우리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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