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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다문화가족의 사회통합 진전 양상과 한계

3.1. 경제적 자립을 위한 일 찾기와 제한된 일자리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를 기반으로 농촌 다문화가족의 경제적 안정 상황을 분석한 앞장과 같이 본 사례조사에서도 임신 중이거나 초기 양육기 시기를 제 외하고는 남편과 외국인 아내들은 농가인 경우 부부 공동으로 농업에 종사하 거나 부인이 시간제 등의 일자리를 가지고 취업한 상태였고 비농가의 경우는 부부 모두 취업한 상태였다. 특히 외국인 아내들이 일을 가지게 된 동기는 다 양했지만 기본적으로 남편의 수입으로 가정생활을 안정적으로 꾸려나가지 못

하는 상황을 타개하고자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농가의 경우 대부분 농토가 임대인 상황에서 집집마다 부채를 가지고 있었고 농업의 품종에 따라 생산량에 차이를 보여 가정의 경제적 상황이 안정적이지 못하였다. 그러나 여성결혼이민자들이 결혼 이후 열심히 농사일에 매진하고 농 사 품종 등을 개량하면서 농사에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한편 농촌 지역에 사는 다문화가족을 위한 지원 정책을 활용하여 농가 수익 을 확장하는 사례도 발견되어 일부 지원 사업이 농촌지역의 다문화가족의 경 제적 안정에 기여한 측면을 파악할 수 있었다.

<사례 1> 처음에는 몰랐죠. 결혼해 보니 빚이 몇 억 있는 기야. 그래 젤 처음에 진짜 많이 울었습니다. 빚이 몇 억이야. 인제 계산할 때는 중국에서는 아예 그 숫자를 생각을 상상조차 못하는 돈이잖아요. 이렇게 농사지으면서 예를 들어 하우스를 지었잖아 요. 그러면 다 내 돈으로 할 수 없잖아. 그러면 융자, 뭐라하노. 빚 내가 하고. 대 출. 대출받아가 하고. 그담에 뭐 또 그 빚이지 싶어. 그리고 뭐 지금 집도. 시댁에 집도 옛날에 맹 돈 없을 때 지은 집이니까 또 융자받아가 짓고. 그래가 빚이 있는데 농사라는 거는 진짜 내 맘대로 안 되거든요. 올해는 잘됐다 내년에는 잘 안 되면 그 빚이 또. 이렇게 오고. 그런 빚이죠. 계속 방울도마도 하고 그런 농사를 하다가 방울도마도는 일꾼이 있어야 돼 마을에. 우리 식구끼리 하거든요. 한번 따면 뭐.

근데 농촌에 고령화다보니 다 할머니가 돼가 일을 못해요. 일을 못하니까 그 농사 를 지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딴 거를, 오이로 바꿨거든요. 우리는 배따라기를 했 어. 그기 인제 뭐라할까, 맹 운이 좋았다 해야지. 오이로 바꾸고 시아버지, 남편, 나, 열심히 일해서 이제 빚은 다 갚았어요.

<사례 9> 우리도 살림도 꾸린 과정이 어떻게 됐냐면, 집사람이 농민후계자로 선정이 됐어요.

3년 전에. 여성농민후계자 교육을 받으면 뭐 앉아 있는 거죠. 그래가지고 2억을 지 원을 받아가지고. 축산업 후계자가 되어가지고 정부에서 2억을 지원 받았죠. 그 지 원 받아가지고 땅을 샀는데 8800만원 줘가지고 땅을 사가지고 소집을 지어버리니 까 돈이 좀 부족해요. 그래 가지고 나는 내 기술로 하니까 돈이 좀 남았지. 그 돈으 로 해가지고 뒤에 땅을 사고 이래가지고 재산이 많이 늘어났지요. 이건 센터 다니면 서 정보를 알게 되어서 내가 신청했어요.

그러나 이와 같은 사례 이외에는 농가이지만 농업을 통해 안정적 수입이 확 보되지 않으면 남편과 외국인 아내가 시간제 일을 시작하여 가정경제의 안정 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한편 농촌에 살지만 비농가인 경우는 남편의 직업이 택

배회사 직원, 가구배달, 공장일, 일용직, 어린이집 운전기사 등 불안정한 직업 군에 속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 성장과 함께 외국인 아내들은 경제적 활동을 시작한다. 외국인 아내들이 초기에 시작하는 일들은 휴대폰 공장, 농공 단지 판매원, 영어강사, 어린이집 돌보미, 단기 통역일 등 다양한 일에 종사하 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 저임금과 시간제 일로 시작하다보니 경제적 활동의 지 속성이 보장되지 않는 일을 수행하고 노동시장에서 외국인에 대한 차별도 경 험하게 된다.

<사례 5> 한국 와서는 제가 많은 일 했어요. 식당 하고 모텔에서 청소도 해봤고. 공장에서도 일 해봤고. 못할 거 같았는데 다 했더라고요. 그래도 우리나라보다 일자리 없다고 그런 데가 아니잖아요. 움직이면 또 돈 벌 수 있어요. 조금이라도 시간이 길지만, 지루하고 힘들지만 돈을 벌기는 벌잖아요. 지금도 알바 하고 있긴 하지만, 가끔 알 바 나가요. 저런 데 갔다 오면 몸이 힘든 일 진짜 한국에 와서 처음 배웠던 일들이 에요. 그래서 진짜 노동 힘들더라고요. 일할 때는 국가별 저한테는 저 외국인인데 오히려 한국 사람처럼 다 이렇게, 일을 시키고 하니까 조금 힘들긴 하더라고요. 솔 직히 말하면 베트남 하고 필리핀 애들 같이 일하는데 걔들은 반말 쓰고 얘기 하면 받아들이는데 제가 반말 쓰면 니가 왜 반말 쓰냐고, 그러면서도 혼난 적이 많았어요.

<사례 8> 보건소 통역 일은 1년 계약이에요. 1년 계약해가지고 1년만 하고 그 다음 해에 그만뒀어요. 저는 알바 되게 많이 했거든요. 00에서 다 저 얼굴 알아요. 그 정도로 여기저기 일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통역. 다음은 가게. 여기 그 현수막 가게. 현수 막 가게에서 제가 기계 있어요. 기계 누르는 거. 디자이너 따로 있고, 디자인 하고 다음에 출력했을 때 제가 기계에다 천을 넣고 다음에 눌러요. 거기서 알바 하는 데 사장님 너무 좋은 사람이에요. 저한테 돈 많이 줘요. 제 가정, 생활을 다 알아 요. 그래서 저한테 돈을 많이 줬었어요. 그랬다가 저는 마트 일, 롯데 슈퍼에서 일 했어요. 그 때는 오픈 때에요. 그 때, 저는 빵가게에서 일 했어요.

이와 같은 단기간 일자리를 전전하는 외국인 아내도 있었지만 자녀양육에 전 념한 이후 한국어 능력을 키우고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고자 하는 사례인 경우 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데 놀고 있는 여성으로 취급받는 느낌을 받아 스트레 스를 받았던 경험도 회고하였다. 이것은 농촌 지역에 사는 외국인 아내에 대한 주변의 이중적인 잣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로 보인다.

<사례 7> 사실 처음에 왔을 때 비슷한 시기에 온 필리핀 분들도 많았어요. 필리핀 분들은 같은 교회에서 왔으니까. 그 분들은 오자마자 애기 낳고 바로 취업한 분들이 많았 어요. 그런데 대부분이 공장이나 그런 데는 갔지만, 시골 분들은 옛날 분들은 안 좋은 게 뭐냐면 모든 걸 보고 계시잖아요. 그 사생활이 없어요. 저는 솔직히 아이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었고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잖아요. 세 명 보고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데 주변에서는 맨날 애만 보고 저러고만 있다, 일도 안 한다, 그런 거 굉장히 스트레스였던 거예요, 저한테는. 그런데 저는 준비 기간도 필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사회를 나가려면. 근데 저는 이제 배우면서 아이들도 키우 면서 준비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있었지 그런데 그 분들은 처음에 바로 나 가는 분들은 잘되는 분들 많지 않아요.

한편 다문화가족 관련 지원 사업이 진행되면서 한국어 능력과 고졸 이상의 학력을 지닌 농촌의 외국인 아내들은 통번역, 다문화강사, 이중언어강사, 방문 도우미 등 같은 일자리에 종사할 수 있게 된다. 기존에 지역에서 일했던 일자 리들과는 상대적으로 노동강도가 약하고 안정적인 직종으로 외국인 아내 사이 에는 선망의 직업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다문화사업 관련 일자리는 자격에 있어 학력과 언어적 능력이 요구되 며 일자리의 규모가 제한적인 한계점도 있다. 또한 한국인과 근로시간과 임금 체계에도 차이가 있어 실제 다문화 관련 일을 수행하는 외국인 아내들은 한국 인과 차별되는 일자리로 여기는 측면들도 나타났다.

<사례 8> 현재 일로 센터 통역 일을 하는데 이게 가만히 앉아서 들어주는 게 그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스트레스 받아요. 저는 이 일 때문에 집에 가도 처음에는 되게 화 가 나고 갑자기 제 기분이, 제 감정이 조절을 못해요. 노력해서 조절해 보려고 해 도. 그래도 여기 시골이라 이거 안하면 일자리가 별로 없거든요. 통번역에 대한 일 자리가 별로 없어요. 결국 만약 여기 그만둔다고 하면 공장으로 들어가야 해요. 공 장으로 들어간다고 하면 겁이 나는 거예요. 이렇게 사무실에서 앉아서 일했는데 갑 자기 공장으로 들어간다면... 예전에는 알바는 해봤지만 지금 거기서 12시간 서 있 어야하고 냉동고에서 일해야 하잖아요. 그러면 내가 버틸 수 있을까? 그것도 많이 고민하고 있고요. 그래서 아까 말했잖아요. 일을 계속 할 수가 없다는 게, 제가 장 사하려고 생각하거든요.

<사례 2> 저는 통번역 일을 하면서 되게 보람을 느끼거든요. 근데 친구들은 저 많이 찾아오는

거에요, 친정 부모님 초청, 그런 거 국적 취득 그거 때문에 제가 뭐 번역해주니까

또 서류상으로 제가 준비해주니까 그거 많이 해요. 3년째. 그리고 정식으로는 온 게 올해부터 일이 많을 때도 있죠. 센터에 있는 모든 프로그램에는 제가 다 투입하 고 있죠. 왜냐면 초기 입국 친구들은 아예 못 알아 듣잖아요. 그러면 수업 들어가서 통역 해줘야되죠. 똑같이는 못 받잖아요. 저기 사회복지사 선생님들하고 월급은 다 르잖아요. 그것도 좀 그렇죠. 일은 많은데. 통번역은 뭐지. 여성가족부에서 하는 거 니까. 저기 사회복지사니까 호봉도 있고, 네 우리는 호봉이 없어요. 가족수당도 없 죠. 월급 받고 보니 그러니까 우리는 너무 못 받는 거 많아요. 특히 호봉을 인정 안해주잖아요. 10년 하든, 20년 하든 다 똑같은 거니까. 좀 차별이 되는 생각이거 든요. 우리가 외국사람이라 그런가. 그렇죠.

또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여성결혼이민자는 다양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일부 여성들은 자격증을 따고 일자리를 구하지만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편견 으로 일자리를 단념하는 사례도 있었다. 한편 남편의 고령화로 인해 이제 가장 의 역할을 수행해야만 하는 사례의 경우 불안정한 계약직 노동보다는 4대보험 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찾고 싶지만 농촌이라는 지역적 한계로 새로운 직장을 얻는 것이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례 4> 저는 요양보호사 자격증 땄거든요. 땄는데 일했었어요. 이게 어르신, 제가 들어가잖 아요. 어르신들도 외국 사람이다 의식이 좀... 선생님 아니고 배우는 선생님 아니고 내가 그 사람 집에 가서 일 하는 거, 씻겨주는 거, 파출부 그런 거 의식. 근데 내가 그냥 그거 다 무시하고 내 엄마, 아빠처럼 생각하고 했는데 힘든 거예요. 내가 잘해 주면 뭐해요, 그 사람들 의식 안 바꾸는데. 관두었어요.. 우리 위해 일자리를 좀 고 민해주면 좋겠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자리? 왜냐하면 엄마들이 젊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사례 10> 한국에 와서 두 달 만에 과외 했어요. 나도 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나는 답답했

어. 내가 어떻게 한국어를 배우는 거야, 나는 이제 움직여야 돼, 나는 집에만 있으

면 뭘 배울까, 그냥 이것저것. 소문나서 선생님이 잘 가르쳤다고, 그래서 학교에서

연락 와서 교육청에서 방과 후 강사가 필요하니까 우리 학교에서 일할 수 있어요,

이렇게 물어봤어요. 그래서 남편한테 얘기했어요. 방과 후 강사 2006년부터 했어

요.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영어 강사 하고 있어요. 2014년부터는 학원 영어 강사,

나는 영어 강사만 아니고 이제는 안정된 직업으로 바꾸고 싶어요. 생각에 학원 강

사는 안정되지 않아요. 왜냐하면 앞으로 계속하는 직업이 아니라서 그리고 남편이

아파서 뭐 4대보험, 퇴직금이나 그런 게 또 안 되어 있는, 가입비 없어요. 간호조

무사 공부해서 되면 다섯시 반까지 거기서 일하고 뭐 여섯시까지 일하거나 남은

시간에 내가 애들한테 뭐 가르쳐 줄 수도 있고 뭐 다른 일도 있을 수도 있고 뭐 그렇게 하고 싶어요.

인터뷰 사례를 통해 농촌의 다문화가족은 기본적으로 가족형성 초기에 경제 적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기에 경제적 안정을 위해 자녀의 초기 성장 이후에는 부부 모두 농업에 종사하거나 취업을 하고 있었다. 일부 농가의 경우 결혼 이 후 부부 모두의 노력으로 농업에 성공하거나 농촌 다문화가족의 농업지원 정 책을 활용하여 가정경제의 안정적 기반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 남편의 경제적 활동으로는 가정경제의 안정과 자립 기반을 마련하기 어려워 외국인 아내들이 구직활동에도 참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 아내들이 찾을 수 있는 일자리는 비정규적이며 시간제 노동에 참여하거나 저임금 직종에 머무르는 한계를 보였고, 자격증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를 위해 자격증을 갖추어도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 인식으 로 지속적인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현재 농촌 지역 외국인 아내들에게 안 정적이며 사회통합적인 일자리로 인정받는 일자리는 다문화 관련 사업과 연관 된 일자리(통번역사, 이중언어강사, 다문화강사)이지만 자격 조건과 제한된 수 의 일자리로 평가 받고 있다.

한편 농촌 다문화가족의 경우 부부간의 연령 차이가 10세 이상인 경우가 다 수라 남편의 고령화에 따른 가장의 역할이 외국인 아내가 담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안정적 일자리를 발굴하는 것이 경제적 사회통 합의 측면에서 요구되는 사항이다. 본 사례조사에서도 다수의 여성결혼이민자 가 가족의 경제적 안정을 위한 일자리 발굴과 지원을 당면 과제로 언급하고 있 다. 이 문제는 구직을 위한 가족 단위의 개인적 노력과 함께 지역과 국가 단위 에서 사회통합의 과제로 고민해야 할 요소이며 일반적 일자리의 발굴보다는 농촌이라는 지역적 현실을 감안한 사회적 경제 단위의 일자리 창출과 개발이 요구될 사항인 것으로 보인다.

3.2. 자녀 성장 과정에서 부( 父) 역할의 부재와 교육적 지원의 한계

농촌 다문화가족에서 가정생활에서 제기되는 사회통합의 문제는 자녀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의 역할 부재와 외국인 어머니의 교육적 지원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주 초기에 겪는 가정생활 내의 문제는 외국인 아내의 한국어 습득 부족으 로 인한 의사소통과 문화 차이로 인한 가족 간의 갈등 문제이고 이 과정에서 남편의 도움이 필요하다. 남편들도 이 과정에서 가정생활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기에 힘든 측면이 있던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사례 6> 처음에 진짜, 아마 애기 엄마는 일 년 동안 매일 울었어요. 아마 그것밖에 생각이 안 나요, 지금. 맨날 우는 것만, 그냥 이유도 없이, 그냥 눈 뜨자마자. 그런데 이제 처음 1년, 2년 이 때가 좀 힘들겠더라고요. 아마 시집오신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남자도 힘든 거 같아요. 저도 애기 엄마 와서 음식 같은 거 못하고 하니까 제가 음식을 다해가지고 같이 식사를 하고 그렇게 얼마를 했지요.

위 사례와 같이 부부만의 핵가족으로 구성된 가족의 경우 남편의 노력과 도 움으로 외국인 아내의 가정생활에 대한 적응은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되는 양 태를 보인다. 그러나 시부모와 동거하는 사례일 경우 가정 내 남편이 기본적으 로 수행하는 부부 역할은 줄어들고 부부간의 소통도 적어지면서 점차적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사례들도 나타났다.

<사례 2> 아빠는 특별한 역할이 없어요. 왜냐면 저는 남편 하는 역할을 어머니가 다 하니까.

별로 남편은 그런 거 없어요. 양육에 대해서 도와주는 거 없고. 또 집안일도 거의 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시지, 남편은 외동아들이다 보니까 별로 안 움직이게 하려하 고 많이 안 시켜요. 농사일도 그러고. 농사일은 주로 우리 아버지가 많이 하시고.

우리 소통이 별로 없죠. 없는 것 같아요, 얘기도 안하고 또 성격 차이도 많이 나니

까. 말을 잘 안 해요. 처음에는 되게 많이 속상하고 했거든요. 남편이 특히 저한테

챙겨주거나 애들한테도 챙겨주거나 할 줄 몰라요. 너무 속상해가지고 계속 저만 스

트레스 받으니까 자꾸 잔소리가 되거든요. 잔소리하니까 듣기 싫어요. 듣기 싫으니

까 방에 들어가요. 문 닫고 방에 들어가요. 아유. 그때부터 저는 아이고. 말하지 말

자. 말하면 내가 더 스트레스 받으니까. 그냥 치우자. 하니까. 계속 그렇게 됐어요.

가족형태별로나 개인적 성격에 따라 다른 부부관계의 모습을 보였지만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과정에서 농촌 지역의 한국인 남편은 양육에 참여하는 모습 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한국어가 서툴고 한국사회의 정보에 약한 외국인 아내 가 자녀양육과 교육을 담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에 대해 여성결혼이민 자들은 자녀 성장 과정에서 부재한 아버지의 역할을 대부분 지적하고 있었다.

<사례 4> 아빠는 교육 신경 안 쓰세요. 그냥 대화 정도. 그러니까 해줄 때는 하고, 안 하면 나중에는 농사 일, 아빠 일 하면 어떠냐, 그래서 그냥 공부 못하면 농사해, 그러는 데 농사 하려해도 머리 있어야지, 점점 방향이 발전하는데, 기계 그 쪽으로 영어도 해야하는데... 그냥 하는 거 아니고, 힘으로 하는 거 아니고... 그런데 아빠는 난 돈 벌어주면 된다고 생각해요.

<사례 8> 애들 교육인데, 제 애들 교육은 지금은 혼자하고 있어요. 우리는 주말 부부예요.

주말에 오거든요. 오늘 오는 날이에요. 저는 혼자 애기 감당하고 있어요. 그거는 좀, 자주 오지 않고 본인도 바쁘고 하니까 애기하고 지내는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지금 큰 애가 중1이에요. 얘가 주말에 바빠요. 저보다 더 바빠요. 청소년 수련관 가서 뭐 배워야 되지, 친구 만나야 되지, 또 여기 센터에서 컴퓨터 배워야 되지, 얘가 엄청 바빠요. 그래서 주말에 아빠 오는데, 애가 대화하는 시간이 별로 없었어 요. 그러니까 대화한 시간이 없으니까 아들이 뭘 원하는지 아빠가 몰라요. 그리고 아빠가 항상 애기 때 그런 거 있잖아요. 무서우니까. 아빠가 화나면 무서우니까 말 을 못해요. 아들이. 그러니까 이제 교육 문제, 양육 문제. 교육 문제는 아닌 것 같 고 양육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서로 이렇게 떨어져서 만나는 시간도 별로 없고, 이게 같이 생활해야 정이 가는 거잖아요. 부모라도 이렇게 떨어져 지내니까 정이 별로 없었어요.

<사례 10> 만약에 가르치거나 교육, 학교 숙제 이거는 남편이 못해요. 왜냐하면 자기 생각에 머리가 없어요. 못 도와준다고 생각을 해요. 옛날과 공부하는 방식이 다르고 지금 은 어떻게 가르치는 거 신랑이 좀 그래요. 그래서 나는 그 정도도 이해해요. 나이 워낙 많으니까(60대). 나는 공부할 때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인터넷 찾고 문제집 중고서점 인터넷 서점 있어요. 그냥 사용했던 책, 4천 원, 3천 원 책 값 있어요.

그거 내가 사고 그 다음에 집에서 내가 월, 화, 수, 목, 금, 내가 출근하기 전에

표시했어요. 여기 하세요, 여기까지 하세요, 그거. 나는 이런 다 이야기 할 사람

없어요. 그냥 화장실 가서 펑펑 해요. 아니면 우리 아이들. 그냥 내가 힘들어, 엄

마가 너무 힘들어 이렇게 하는 말이 아니라 그냥 같이 놀아서 그렇게 스트레스

푸는 방법, 애들 보면서. 친구와 그렇게 말하면서.

자녀 성장과 함께 다문화가족이 당면한 문제는 자녀교육에 대한 지원이지만 아버지의 무관심과 부재로 외국인 아내는 자녀교육을 위해 혼자서 고군분투하 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도 한국의 교육체제에 대한 이해와 정보 가 일반 가족보다 부족하기 때문에 항상 자녀교육의 지원에 대해 불안감을 표 시하고 있었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다문화가족의 경우 자녀의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교육적 지원을 해주고 싶지만 학교 이외에는 교육기관이 부족하고 사교육에 집중할 경우 경제적 부담으로 방과 후에는 방치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언급한 다. 더불어 다문화가족 자녀 중 개인적 역량이 뛰어나 학습에 부각을 나타내도 부모들이 어떤 지원을 해줘야 할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농촌의 학교들이 작은 학교로 적은 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양 질의 교육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막상 학생들이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었으며 학교보다는 사교육을 통해 자녀들을 관리하는 방법 을 모색하였지만 경제적 문제로 결국은 최소한의 교육적 지원을 해주고 있다 고 언급한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농촌지역의 다문화가족 중 청소년기에 접어 든 자녀들에 대하여 부모들은 학교가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 주 기를 희망하였다.

<사례 2> 애들이 읍에 나가는 거 보면 되게 멀잖아요. 그리고 제가 누구 태워줄 수도 없고.

읍에 나가야 문화생활 같은 것도 할 수 있고. 안 그러면 못하거든요. 계속 학교에서 4시 반에 마치면 집에 와가지고 폰 만지고 있고. 그렇다고 봐주는 사람도 없고. 문 화생활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사례 4> 애들 교육환경 이런 건 정보 많이 알아두면 좋겠는데, 애들 키우는 거. 제가 해도 한 가지만 있잖아요. 그거 다 못 해주고 좀 더 아는 사람이 지도해주고 이렇게, 이 렇게 해주면 더 쉽게 나가는데 그런 거 좀 아쉬워요. 학원 보다는 옆에 사람이 이런 거 프로그램이 있으면 애기들한테 해주는 거잖아요, 선생님. 그런 거 해주면…….

학교에서 지원하는 거 별로 없고.

<사례 10> 학원에 못 보내니까. 그런 지원 있으면 좋겠어요. 또 다른 거는 없어요. 아이들

교육만 중요해요. 왜냐하면 나는 너무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우리 애들도 성적도

많이 받고 싶지만 좀 그래요. 너무 없어요. 그러니까 지원 뭐 방문교육이 있지만 근데 몇 살까지 있어요. 12세나 아니면 뭐 그냥 보통 한국어 배우는 거예요. 근데 뭐 수학 같은 경우 학원이 같은 경우 가르치는 방법은 없어요.

<사례 6> 학생 뭐 대여섯 명밖에 안 되는데 이거 집중 교육하면 왜 공부를 못할 수가 있냐 이 말이죠. 선생님들도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일단 선생들을 어떻게 좀 하고 싶은데, 제가 사실 야단도 치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 이게 학교에 애들이 거의 다 다문화가정 애들이에요. 애들이 그러는데 학교에서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지 않나, 이들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교육이…….

현재 농촌 다문화가족의 가정생활에서 사회통합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자녀 성장에 따른 교육지원이 가장 부각되고 있었다. 농촌지역은 최근 다문화 가족을 형성하는 이주 초기의 사례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고, 이제는 다문화가족의 정착기로 이 과정에서는 자녀 성장에 따른 교육지원이 가장 해 결해야 할 과제로 사례조사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현재 농촌 다문화가족의 가정생활에서 사회통합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자녀 성장에 따른 교육지원이 가장 부각되고 있었다. 농촌지역은 최근 다문화 가족을 형성하는 이주 초기의 사례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고, 이제는 다문화가족의 정착기로 이 과정에서는 자녀 성장에 따른 교육지원이 가장 해 결해야 할 과제로 사례조사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