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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리스틱과 넛지

2. 넛지의 운용

사람들의 휴리스틱을 기초로 한 넛지는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다음에서 디폴트, 앵커 링, 라벨링, 사회적 규범, 심리적 거리, 프레이밍에 대해 차례대로 살펴본다.

가. 디폴트(Default)

디폴트는 특별한 이익이 주어지지 않는 한 현재 상태를 바꾸지 않고 유지하려는 심리 성향인 사람들의 현상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을 이용한다.7) 디폴트는 대표적으로 사람 들의 손실기피 또는 후회회피 성향을 보여주는 것이다.8)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미래에 가질 것으로 예상되는 것보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사람들의 선택을 설계함에 있어 디폴트는 거부 비율을 줄이고, 특히 선택 옵션이 많거나 선택이 복잡한 구조 로 이루어진 경우 그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9) 디폴트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휴대전 화를 새로 구매하는 경우 자동으로 깔려 있는 앱이나 초깃값들이다. 디폴트는 사용자의 활 용 습관과 행동을 규정할 수 있기 때문에 휴대전화나 컴퓨터와 같이 일상을 기반으로 한 기계의 경우 특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정책적 활용의 예는 국가별 장기기증률 차이를 연구한 에릭 존슨(Eric Johnson)과 대니 얼 골드스타인(Daniel Goldstein)의 논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10) 이들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벨기에, 포르투갈 등은 90.0%가 넘는 장기기증률을 보인다. 스웨덴이 그나마 낮은 85.9%이다. 반면, 인접한 국가인 덴마크, 네덜란드, 영국, 독일의 경우 네덜란

7) 공현희(2014).

8) 박세훈, 김문용(2009).

9) 공현희(2014).

10) Eric J. Johnson and Daniel G. Goldstein(2009).

드가 27.5%로 가장 높고 영국 17.17%, 독일 12%, 덴마크는 4.25%로 상당히 수치가 낮다.

에릭 존슨과 대니얼 골드스타인은 이 결과의 차이를 장기 기증 여부를 묻는 방법의 차이에 서 찾았는데, 디폴트 설정이 ‘장기 기증 동의’로 되어 있는 경우 장기 기증 동의율이 82%에 달한다고 보고하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디폴트 환경이 ‘장기 기증 미동의’로 되어 있는 경우 에는 동의율이 42%로 떨어졌다. 디폴트 설정을 자유롭게 한 경우에는 72%의 동의율을 보 여 디폴트가 사람들의 선택방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밝혔다.

자료: Eric J. Johnson and Daniel G. Goldstein(2009), pp.1338-1339.

<그림 2-1> 국가별 장기기증률

나. 앵커링(Anchoring)

앵커링 효과에서 앵커(anchor)는 배를 정박할 때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고정하는 닻을 의미한다. 따라서 앵커링 효과란, 판단기준을 미리 제시함으로써 상대방이 판단할 때 의도 된 범위 내에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기업에서 할인 판매를 진행하는 경우 정상가를 적어두고 할인가를 다시 적는 경우가 많다. 이는 소비자가 정상가 를 기준으로 판단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정상가에 비해 얼마나 싼지’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첫인상으로 판단의 근거와 범위를 정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는

대니얼 카너먼의 실험이 있다. 1부터 100까지 적힌 숫자판을 돌리게 한 후 UN에 가입한 아프리카 국가의 비율을 물었더니 무작위로 나온 숫자판의 숫자를 근거로 대답했다는 실험 이다. 다시 말해 숫자 10 이하가 나온 그룹은 25%라고 응답했고, 65 이상이 나온 그룹은 45%라고 대답함으로써 의미 없는 숫자판의 숫자가 질문에 대한 대답의 기준이 되어버린다 는 것으로, 숫자판에 나온 숫자가 ‘앵커’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11) 앵커링이 가장 효과를 크게 발휘할 때는 상대가 명확한 비교정보나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로, 기준을 먼저 정해버림으로써 상대가 제시된 제안 외에 다른 대안을 생각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원하 는 방향으로 선택하게끔 유도할 수 있다.

다. 라벨링(Labeling)

라벨링 효과는 어떠한 사람이나 상품, 정책 등이 ‘~한 것이다’라고 라벨을 붙이는 것에서 나타나는 효과이다. 라벨링 효과는 환경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넛지의 한 종류이다.12) 각종 식품에 친환경 마크나 상품에 붙어 있는 재활용 마크가 바로 라벨링을 활용한 넛지 정책이다. 라벨링 효과는 낙인효과와는 또 다른 것인데, 낙인효과는 실무적이기보다는 부정 적인 인식이나 감정에 더 집중한 것으로 볼 수 있다.13)

라벨링 효과는 단순히 상품만 아니라 사람들의 친환경적인 행동을 자연스럽게 고무시킬 방안이 될 수 있는데, 전문가의 의견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라벨링을 활용할 수도 있다. ‘전 문가의 의견’, ‘전문가의 권위(authority)가 담긴 의견’이라는 라벨링을 붙인다면 환경 라벨 링처럼 정부가 인증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된다.

라. 사회적 규범(Social Norm)

사람들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판단해야 하는 경우, 종종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참고하여 판단한다. 이를 사회적 규범에 따른 판단 또는 ‘동조현상’이라고 말한다.14) 일례로, 한 개인

11) The Guardian(2011.11.16), “In Praise of...Daniel Kahneman”, 검색일: 2020.6.3.

12) Ulf J. J. Hahnel et al.(2015).

13) 한청 타임즈(2019.12.28), “[사회]스티그마 효과 Stigma Effect 낙인효과”, 검색일: 2020.6.5.

14) 안기정 외(2018).

이 스스로 속해 있다고 믿는 특정 그룹 내 구성원들 간에 공유되는 규칙은 해당 개인의 행동을 촉진하거나 제한하는 지침으로 기능한다.15) 사회적 규범은 ‘내가 속한 집단의 사람 들이 그렇게 행동한다면, 나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판단하도록 만듦으로 써 의사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일종의 휴리스틱이다. 이러한 판단의 이면에는 다수가 판단한 내용은 비교적 정확할 것이라는 가정이 있고, 다수의 사람과 다르게 행동하 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의 성향이 있다.16) 사회적 규범은 행동의 종류에 따라서 집단이 개인에게 요구하는 압력의 수준을 달라지게 할 수 있는데, 집단에 중요한 가치나 규범일수 록 개인에게는 더 강한 수준의 압력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17)

사회적 규범의 구현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광범위한 활용이 가능한 휴리스틱의 하나 인 사회적 규범은 희소성(scarcity), 일관성(consistency), 호혜(reciprocity) 등의 성격으 로 구현될 수 있다. 예를 들면, 희소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은 사회적으로 희소한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이라는, 사람들 간에 공유된 관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또한 일관성은 일종의 트렌드를 통해 규범을 형성하는 방법으로, 일관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노출하면 사람들의 신뢰도가 높아져 결국 이로 인해 메시지가 규범화되는 효과를 노려볼 수 있다.

호혜는 공정성과 관련된 사회적 규범이다. 준만큼 돌려받는다는 심리는 사회적으로 그것이 공정하다는 인식을 갖게 한다.18)

마. 심리적 거리(Psychological Distance)

거리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심리적 거리감에 따라 사고방식이 다른 방향으로 활성화되고 해석 또한 달라짐을 의미하며, 해석수준이론(construal level theory)이라고도 부른다. 여 기서 말하는 심리적 거리란, 실제적인 공간적 거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거리·시간 적 거리·확률적 거리 등 다양한 개념을 포괄한다.19)

15) 김류원, 정세훈(2017).

16) 유동호, 이지은(2015).

17) 유동호, 이지은(2015).

18) 강내원(2012).

19) 김민철, 이경렬(2015).

<표 2-1> 심리적 거리감에 따른 해석 수준

먼 거리 가까운 거리

상위수준 해석 포괄적 목표/추상적

1차적/중심적 바람직성

하위수준 해석 구체적 목표/현실적

2차적/부차적 실행가능성 자료: 김민철, 이경렬(2015), p.122.

사람들은 심리적 거리가 멀다고 느끼면 추상적으로 판단하는 반면, 심리적 거리가 가깝다 고 느끼면 구체적으로 판단한다.20) 따라서 특정 행동을 효과적으로 독려하려면 전달하려는 메시지나 홍보가 수용자의 심리적 상태를 해당 메시지나 홍보에 가깝게 느끼도록 만들 필요 가 있다.21)

바. 프레이밍(Framing)

프레이밍의 핵심은 어떤 사건이나 대상에 특정한 틀을 씌우게 되면 사람들은 해당 사건이 나 대상에 유사한 이해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북극과 북극곰을 같은 프레임 에 넣고 설명해주면, 사람들은 나중에 북극이라는 말만 들어도 북극곰을 함께 떠올리는 것 과 같은 맥락이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은 그의 프레임 이론을 의제 설정 과정과 연결하여 설명하였고,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라는 주제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가치와 관점을 통해 대응한다고 주장하였다.22)

정치학에서는 프레이밍을 ‘담론 공동체(discursive community)’를 형성하기 위한 일종 의 전략적 도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23) 언론을 통해 해석의 틀을 제공함으로써 정치적으로 더 많은 지지와 관심을 확보할 수 있는 정치적 행동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본다면, 프레이밍 을 사람들이 특정 사건을 보고, 조직화하고, 해석하는 과정에 개입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20) 김민철, 이경렬(2015).

21) 김재휘, 김태훈, 박인희(2010).

22) 정인숙(2013).

23) 전미선(2019).

사람들의 편견이나 생각의 고착화를 만들어낼 방법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또 다른 방식으로는 호감(likability)을 활용한 방식으로 구현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환 경 부담금’이라고 명명되는 경우와 ‘환경 기여금’이라고 명명되는 세금의 경우, 같은 세금을 접한다고 하더라도 ‘기여금’이라는 긍정 프레임을 붙였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더욱 적극적 일 수 있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