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단가연동제’와 ‘납품단가 조정체계’구축을 위한 최근의 논의는 원자재 가 격상승으로 계약체결 당시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으므로 변경된 상황에 맞게 사후 적으로 계약을 수정하여 납품단가를 조정해야만 공정하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 다. 그렇다면 원칙은 어떠한가? 즉 일반적인 계약관계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 루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마치 일반적인 계약관계에서는 사정이 변경되 었을 경우 이를 계약에 반영하여 공평하게 해 주는 것이 바람직한데 하도급관계 는 그렇게 하지 못하므로 비정상적인 것처럼 간주하는 것은 문제이다. 따라서 계 약에서의 기본원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계약체결 후 사정이 변하는 경우, 예를 들어 계약 당사자가 갑자기 중병에 걸 린다거나 인도하기로 한 물건이 사고로 소멸해 버린 경우, 유가가 폭등하여 상품 공급비용이 급등하는 경우 등은 하도급 계약 외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다. 민법영 역에서 이러한 계약사정의 변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1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16) 아직까지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국가마다 다양한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논쟁의 핵심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계약의 기초를 이루는 사정에 중대한 변경이 생겨 급부의 대가적 균형이 현저하게 파괴되거나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어 계약내용을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 일방에게 심각한 불이익을 초래하는 경우에도 계약의 구속력을 그대 로 인정해야 하는가? 둘째, 신의칙(信義則)에 입각하여 그 효력을 부정한다면, 계 약관계의 해소만을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변경된 사정에 알맞게 계약내용을 새롭 게 조정하도록 할 것인가? 결국,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한 납품단가 상승의 문 제가 바로 계약체결당시의 사정이 사후적으로 급격히 변동한 경우로 민법상의‘사 정변경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 영역이므로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여기서부터 찾아 가야 할 것이다.
계약체결 전의 상황이 계약체결 이후 변한 경우 법원(국가)이 계약관계에 손쉽
16) 역사적 전개과정에 대해서는 Shirley R. Brener, “Outgrowing Impossibility: Examining The Impossibility Doctrine In The Wake of Hurricane Katrina”, 56 Emory Law Journal 461, 2006 참조.
게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전통적인 미국법원의 입장이다. 손해는 결국 있는 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현상유지의 관점을 유지하며 국가의 계약에 대 한 불간섭원칙을 강조해 왔다. 국가가 계약관계에 개입하는 것을 자제할 때 계약 과 관련된 위험의 사적 사전적 처리를 촉진시킬 수 있고 이러한 것이 국가의 간 섭보다 상대적으로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결국, 정의와 형평의 실현이라는 명 목으로 국가가 당사자들의 계약관계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는 시장에 국가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을 것인가와 관련된 것으로 어려운 문제이 다. 계약체결 후 상황이 변하여 계약당사자 중 일방이 예상하지 못한 손해를 볼 경우 기존 계약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보다 손해를 공평하게 반반씩 나누어 부담하는 것이 일반적인 정의 관념에 부합하는 듯하다.17) 그러나 사법, 특히 계약 법은 개인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생활관계를 다루는 영역이며 계약을 체결하는 당사자는 이를 통해 근본적으로 위험의 분배에 참여하게 된다. 모든 것 이 예측하기 어렵고 변수가 많은 현대사회에서 위험이란 인간의 모든 경제활동에 상존하는 요소이다. 따라서 이러한 위험 내지 손실의 분배에 있어 국가가 지나치 게 개입하기 보다는 각 개인의 사적자치의 영역을 확장시키면서 이에 대한 책임 도 지게 하는 쪽으로 정책적 방향이 설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18)
민법에서는 경제사정이 변동되어 애초에 체결한 계약관계가 형평성을 잃더라도 계약관계는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보며, 변경된 사정을 계약관계에서 특별히 고 려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사정변경원칙 불인정). 계약이란 본질적으로 거 래 당사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미래의 위험을 자신들의 책임 하에서 사전에 분 담하는 법적 수단이고 이것은 시장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경된 상황이 계약에 자동적으로 반영되도록 하는 납품단가연동제는 계약의 본질적 기능을 훼손할 수 있다.19) 또한 당사자들 간 자발적 협상을 유도
17) Trebilcock, The Limits of Freedom of Contract, Harvard University Press, 1993 p. 145
18) Dawson, Judicial Revision of Frustrated Contracts: The United States, 64 B.U.L. REV. 1, 31 1984. pp.
17-18, 36-37 참조
19) 원재료 가격 상승분의 구체적인 반영방식과 당사자 간 분담비율 등은 개별거래의 특성에 맞 게 원 수급사업자가 협의해 결정할 사항으로, 당사자 간 협의절차 없이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그대로 납품단가에 반영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한다면 시장기능이 형해화될 우려가 있다. 연동제 와 같은 자동적인 가격보장시스템은 기술혁신 및 경영혁신을 통한 원가절감 유인을 없애버려, 궁극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게 된다. 연동제하에서 납품업체는 원재료 가격상승분을
하는‘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20)’차원을 넘어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단가조정‘협의 권’을 줄 경우 애초의 계약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계약관계에 직접적으로 개입하 는 것이 되어 계약의 기본원칙이라는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21) 노동조합의 단 체협상권과 비교하는 경우가 있으나, 노동계약에 대한 국가개입(노동법)의 근거는 사회적 기본권을 규정한 헌법 제32조와 제33조인 반면, 대 중소기업 간 거래관계 에 대한 국가개입(하도급법)의 근거는 경제질서를 규정한 헌법 제119조 제2항이므 로 국가권력의 정당성과 한계에 대한 헌법적 근거를 달리한다.
그대로 납품단가에 전가시키게 되고, 그 결과 독과점적 원사업자는 최종 소비자 판매가격에 인 상분을 다시 전가함으로써 결국 소비자가 모든 부담을 떠안게 될 수 있다. 또한 원가산정과 기 준가격 설정 등 실제 운영에 있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원가구성비나 원자재 구입가 격 등이 업체별이나 제품별로 모두 상이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연동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현실 적으로 어렵다. 신동열,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 시행에 따른 공정위의 정책방향 , 경쟁저 널 144호, 2009. 참조
20)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납품단가연동제의 대안으로 시장경제원칙인 ‘자율성’을 지키면서, 위 탁자와 수탁자 사이의 납품단가 조정협의를 담보하기 위한 법적 근거 및 절차규정을 신설하였 다. 당사자 간 교섭력의 차이로 자율협의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를 감안, 하도급법령상 근 거 및 절차규정을 신설하여 성실한 조정협의를 의무화하고 있는 것이다. 단계적으로 살펴보면
① 계약이후 발생한 사정에 따라 원 수급사업자가 납품단가를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을 미리 하 도급 계약서에 명시하도록 의무화(하도급법 시행령 제2조 제6호) ② 납품단가 조정협의 신청권 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동시에 상대방에 대해서는 조정협의에 성실히 응해야 할 의무를 부과 (하도급법 제16조의2 제1항) ③ 당사자 간 조정협의가 성립되지 않을 경우, 객관적 제3자인 하 도급분쟁조정협의회를 통한 조정절차 개시(하도급법 제16조의2 제2항) 등이다. 이러한 의무에 기초한 성실한 조정협의를 기피할 경우 다양한 제재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21) 조합을 통한 단가협의는 납품업체 간의 경쟁을 제한하는 카르텔에 해당할 수 있고 하도급 업체가 아닌 다른 사업체들도 형평성을 이유로 카르텔을 예외적으로 인정해 줄 것을 요청할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조합이 원하는 협의 결과를 얻기 위해 원사업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공동의 납품 중단 등의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며, 최종적으로 이에 따 른 제품가격 인상부담은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납품업체들이 조합의 단체협 상을 통해 평균적인 가격을 획일적으로 적용받게 될 경우 기술력에 바탕을 둔 경쟁의 유인이 사라지고 단체협상 결과 기술력 있는 납품업체와 그렇지 못한 납품업체가 동일하게 취급되는 경우 후자의 무임승차 문제가 발생한다. 기술혁신과 경영혁신을 통한 원가절감 노력보다는 납 품단가 협상에만 치중함으로써 납품업체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이는 다시 완성품의 품질 저하를 야기해 원사업자의 경쟁력 약화로 직결된다. 조합에 의한 일괄적 협상방식은 개별 업체 별, 지역별, 제품별 특성을 구체적으로 고려할 수 없다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고 개별 납 품업체의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신동열(200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