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타하라 하쿠슈 시를 중심으로
Ⅳ. 기타하라 하쿠슈 시에 나타난 탈근대 - ‘문화의 상대성’과 ‘글로벌리즘’
하쿠슈는 1918년 도쿄 니치니치(東京日日)신문에서 모집한 ‘국시(國 詩)’의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그는 「‘국시’ 모집에 대한 감상」이라는 제목 의 글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동양 특히 일본의 예술은 주로 인간 및 대자연의 생명을 직감하는 것에 서 생겨난다. 이 직감력, 예민함은 모두 동양인의 특성으로 오로지 연역적 인 서구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상징적 예술의 진수는 고래 동양 에서만 독점하게 되었다. 거기다 원시 일본인은 영적(靈的)이며 실로 독창 적이었다.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를 알지 못하고 오직 서구의 예술 만을 모방하는 것은 극히 어리석은 일이다.
이 담론이 ‘국시’라는 틀에서 나왔다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여기서 “원시 일본인”은 “독창적”인 존재로서 발견되고 있다. 십년 전, 서구 세기말 데카다 니즘의 동시대적 표현으로 독창성을 겨루었던 하쿠슈가, 아득한 과거로 거슬 러 올라가 ‘원시인’을 이상 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담론은 「예술의 원광」(1922년) 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난다.
개개의 자연상(自然相), 혹은 개개의 인간 감정의 상징으로서 얼마나 말이란 것이 감각적이며, 정신적이며, 본질적인지, 이를 생각하면 실로 놀 랍다. 적어도 처음 말이 만들어졌던 그 때, 원시인의 감정, 감각이 얼마나 직접성을 띠었으며, 또 얼마나 진지하고 소박했는지.
이 ‘원시인’의 동시대적 존재로서 발견된 것이 홋카이도와 가라후토의 여 행에서 해후한 아이누 족 이었다. 아이누 족은 일본의 근대화와 함께 변경으
로 쫓겨나 일본인과의 균질화를 강요당했던 ‘내부 식민지’의 피해자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하쿠슈는 그 아이누 사람들의 생활을 접하고, “이곳을 통해 우리의 숨결이 소생한다”(「시오쿠비미사키(汐首岬)」, 근대 풍경(近代風景)3권 6호, 1928년)라고 언급하거나, “그, 아이누, 눈썹이 빛난다/ 백발이 가슴에 드리운 다”30)(「늙은 아이누의 노래(老いしアイヌの歌)」, 닛코(日光)3권 2호, 1926)라는 식의 생동감 있는 표현을 연출하고 있다. 그리고 여행기 안에는
“장엄한 생김새와 위엄 있는 풍채를 가진 자”(후렙 ·토립(フレップ・ト リップ),아르스 1928년)라고 언급하면서, 이상적인 공동체를 원시 기독교 시대에서 찾았던 ‘톨스토이’31)(同)로 오인하고 있다. 즉, 일종의 영웅처럼 묘 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아이누 흡수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도
사교의 문의 경우와 같이 일본 근대의 아이누 억압의 역사를 간과한 채
“사라져 가는 산송장”( 「늙은 아이누의 노래」, 앞의 책)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화자는 ‘자신=일본 근대’의 암부에 메스를 가하고 있지 않다. 즉, 왜 “사라져 가는”가를 되묻는 인식이 없다. 또한, 타자(다민족) 안에서 자기(자민족)의 과 거의 한 시기를 발견하는 시선 역시 식민주의적이다. 게다가 하쿠슈와 같은 내지의 시인들이 문자가 없는 아이누의 말을 시나 여행기 안에서 평준화된 음률과 문자, 즉, 일본어나 로마자의 문자로 옮겨놓은 ‘소리’에 계속 반응하면 서도, 폭력적으로 지워 없애거나, 자신들의 ‘일본어=국어’의 코드에 그 화성 감(和聲感)을 돋보이도록 흡수해 갔던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32) 이 안에 도 역시, 근대에 잠복하는 폭력성이나 식민주의 측면이 무의식 가운데 내재되 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점은 역시 빠져 있다.
30) 그 외에도 하쿠슈는 아이누를 표상하는 시로 “사라져 가는 살아있는 시체/ 빛나는 거기다 백색 시체”와 같이 아이누를 ‘백색’의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청순 한 것, 희미한 것, 확실하게 한정하기 어려운 것 등을 상징하는 말로 그 속성을 갖춘 물상(物象)을 파악하기 위해 당시 자주 사용되었다.
31) 일본에서는 톨스토이와 관련해 톨스토이 연구(1916-18년)라는 잡지가 나올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그의 사상은 동시대 문학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32) 注 3) p.298 참조.
사교의 문과의 차이라고 하면, 시의 화자의 위치에 선 근대인과는 반대 측의 존재로서 그 미질(美質)을 파악하려고 한 점이다.사교의 문의 기독교 교도라든가 인도인과 같은 타자를 ‘야만스러운 자’로 파악하는 시선이 아닌, 오히려 아이누를 고유의 문화를 갖는 자부심 강한 사람으로 발견해 내고, 자 연과 일체가 되는 생활을 영위하는 이상 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하쿠슈가 홋카이도와 가라후토를 여행한 것은 관동대지진(1923년 9월)이 발발한지 2년 후 쯤으로, 급속한 개발로 인해 도시풍경이 격변해 가는 시기라 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즉, 대지진 이후 도시를 중심으로 자연 풍경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도시 주민의 라이프스타일 역시 변화해 갔다. 이러한 시대 상을 배경으로 아이누 사람들의 자연과 일체화된 ‘원시 생활’이 이상향으로 등장한 것이다. 또한 시 안에 표현된 ‘원시’적인 방법으로 나무를 깎는 아이누 의 모습에서, 인도 고래의 방법인 차루카로 실을 뽑으며 영국의 근대 식민주 의와 투쟁했던 비 폭력자 간디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제국 일본의 ‘국민 시인’임을 자처했던 하쿠슈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일본 근대의 권력을 비판하는 시를 쓴 가네코 미쓰하 루(金子光晴, 1895-1975)도 동남아시아를 유랑할 때(1929-1932), 타자를 문화의 상대적으로 파악해 묘사하고 있다.
문명이 없는 쓸쓸한 밝음이
문명의 한 표류물(漂流物), 나를 응시한다.
후추와 고무의
플랜터(planter, 플라스틱 등으로 만들어진 식재용 용기) 등을 바라 본 것처럼.
- 「니파 야자의 노래(ニッパ椰子の唄)」제7연, 문학자(文学者)1939
위의 인용문은 동남아시아의 자연을 상징하는 ‘니파 야자’를 생생하게 묘 사하고 있다. “문명이 없는”, “밝음”은 앞서 언급한 아이누의 표상처럼 ‘야만 스러운 자’로 파악한 것이 아니라, 서양 근대의 식민주의에 착취되는 아시아 인도, 유랑자이지만 문명인인 ‘나’도 상대화된다. 그런데 미쓰하루는 아시아 인의 자연에 순종하는 생활이 식민주의의 폭력으로 인해 파괴되고 철저하게
이용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인생의 방향을 전환한다.
미쓰하루는 전시 하의 언론 탄압 속에서도 위험을 무릎 쓰고 제국주의를 비유한 시 「상어(鮫)」(1930년)를 발표하여 서구 근대의 식민주의를 비판한 다. 예컨대, “우리는 기독교도와 향료를 찾아 이곳에 왔다./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상륙시의 이 말은/ 우리는 노예와 약탈품을 찾아 이곳에 왔다.”라고 풍자 하고 있으며, “녀석들은 일제히 말한다./ 우정이다. 평화다. 사회애(社会愛) 다./ 녀석들은 그리고 종진(縱陣)을 형성한다. 그것은 법률이다. 여론이다.
인간 가치다./ 똥(糞), 또한, 그래서, 우리는 뿔뿔이 흩어진다”라는 표현으로 침략자의 기만을 간파한다. 그의 시는 또 전체주의, 파시즘, 전쟁, 민중의 참 상, 사상 탄압, 천황제 기구를 지탱하는 자들을 계속해서 비판한다.
미쓰하루가 전쟁을 일으킨 원흉으로 일본 특유의 국가·정치 기구를 비판하 거나, 윤택한 자연·풍토와 오랜 봉건적인 제도와 서로 얽힌 생활로 인해 폐쇄 되고 일그러진 일본인의 심성을 비판할 수 있던 것은, 그가 바로 그 속에 아시 아의 영원(永遠)33), 즉 정치나 인습과 같은 인위(人爲)를 초래하고 있는, 부 정하고 부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부정적인 아시아의 영원이 있음 을 간과했기 때문이다.34) 미쓰하루로 인해 근대시는 간신히 일본 근대의 식민 주의에 대해 자각적이고, 자기 비판적인 지평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하쿠슈의 아이누나 미쓰하루의 「니파 야자의 노래」는 ‘문화의 상대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일종의 포스트모던 적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다음과 같은 시도 ‘달’에서 본 세계의 시뮬레이션이며, ‘지구인’이라 고 하는 글로벌리즘에 근접하고 있는 점에서 탈 근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3) “동양의 영원이란 단순히 인간화되지 않는 자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구미(일본)이 밀어붙였던 것이라는 의미에서 하나의 역사적 현실이다“(코우라 루미꼬(高良留美子),「무죄성의 신화(無罪性の神話)」,문학과 무한한 것(文学 と無限なもの),지쿠마서점,1972)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34) 사와 마사히로(沢正宏), 시가 성립되는 곳-일본의 근대시, 현대시에의 접근(詩の成 り立つところ-日本の近代詩、現代詩への接近), 한림서점, 2001, p.207-210 참조.
달에서 본 지구는, 원(圓)일까, 보라색 빛인,
깊은 냄새의.
나는 서있었다, 바다의 물가에.
지구만은 밤하늘에 어린, 막 태어난.
크게, 떠 있던, 지구는.
그 어깨에 공기가 타올랐다.
구름과 이별했다.
파도소리를, 나는, 초목과
불을 뿜는 산의 지동(地動)을 들었다.
사람의 호흡을.
나는 꿈을 꾸고 있었던가, 보라색의 그 빛을, 나의 동쪽에서.
아니, 이미 알고 있었다. 지구인이 오래 전부터 신을 찾고 있었음을, 또 만들었음을.
- 「달에서 본 지구(月から見た地球)」(초출근대 풍경1권 1호, 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