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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가 연구 개발의 기본이다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55-61)

기초가 연구 개발의 기본이다

ReSEAT 전문연구위원

성용길

국 유학 중 경험했던 R&D에 관한 이야기다. 1975년 봄, 나 는 미국 유타 대학교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 대학 대 학원 재료공학과 생체재료 연구실에서 안드라데 교수의 지도 아 래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연구팀에 합류한 초기엔 매주 목요일 아 침 일찍 시작되는 세미나에 참석하여 분위기를 익혔다. 한 주 간 연 구한 내용을 발표하고 지도 교수와 함께 토론하는 세미나였다. 한국 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분위기와 활발한 토론이었다.

당시 안드라데 지도교수는 미국국립보건원(NIH)의 대형 “친수성 하이드로 겔(Hydrogel)의 연구 프로젝트”를 가지고 계셨다. 교수, 연구원, 포스 닥, 대학원생들과 연구팀을 구성해 생체 재료를 집중적

으로 연구 개발하고 있었다. 안드라데 교수는 연구를 위해 유럽에 자주 출장을 다니셨다. 친수성 고분자에 관한 하이드로 겔 연구가 유럽에서 더욱 활발히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달 착륙 선점을 두고 미국과 러시아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때 이었던 만큼, 전 세계가 경쟁적으로 새로운 첨단 과학 연구를 시도하고 있었다. 미국은 인간 중심의 생체 재료 과학을 개척하기 위해 뜨거운 경쟁을 펼치고자 했다. 유타대학교는 미국 내 다른 대학들에 비해 생체 재료 및 의공학과가 일찍 창설되었는데, 의과 대학과 공과대학, 이과 대학들이 공동으로 참여해 연구팀이 구성되어 국가의 대형 프로젝트를 전개했고, 나도 이 연구에 참여했다. 생체재료에 관한 하이드로 겔 연구를 집중적으로 시작하면서, 학술 논문과 특허 문헌들을 100여 편 넘게 심층 분석하고, 세부적인 연구 계획을 세웠다.

가장 먼저 기초 연구를 시작해야 했는데, 친수성 고분자와 물 분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친수성 고분자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이 중 친수성 폴리(하이드록시 에틸 메타클리레이트)와 가교제를 특별히 선정해 연구를 시작했다. 콘택트렌즈의 주재료인 2-하이드록시 에틸 메타클리레이트, 2,3-디2-하이드록시프로필 메타클리 레이트, 에틸렌 디-메틸메타클리레이트, 테트라에틸렌 디에틸 메타클리 레이트 등을 바탕으로 각종 수화 겔을 만들어 연구시료를 완성했고, 이 기본 시료들이 물속에서 얼마나 팽윤될 수 있는지 정량 평가하고 하이드로 겔 속에 있는 물 분자와 친수성 고분자 사이에 상호작용이

기초가 연구 개발의 기본이다 53 어떤지, 이 가운데 물질들이 어떤 상태로 존재하는지 등을 탐구하기로 했다.

우리 인체의 수분 함량은 약 65%고 이 중 혈액 속에 약 95% 이상의 물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물들은 세포와 조직 속에도 상당량 들어 있다. 인체의 손상된 조직이나 기관을 대체할 새로운 조직과 기관은 생체재료를 통해 만드는데, 이 생체재료는 반드시 물을 함유하고 있어야 한다. 인체 조직과 접촉하는 새 조직의 수분 함량이 많아야 부작용을 줄이고 잘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생체 적합성이 좋고 유화 되어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생체재료 실험을 위한 첫 연구 관문은 친수성 고분자와 물 분자 사이의 상호작용 현상을 규명하는 일이었다. 여기에 사용할 물은 최소한 3차 증류수와 같은 순수한 물이어야 한다. 순수한 물을 얻기 위해 미리포아 큐 정수기 장치를 통과한 물을 몇 번이고 증류하며 실패한 고생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정밀한 실험이 이렇게 작은 일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야하는 일일 줄이야. 한국에서 공부할 때는 정말 미처 몰랐던 일이었다. 그래도 시설 좋은 미국 대학의 연구실에서는 적극적으로 노력만 하면 해결이 가능했으니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음 단계는 펄스-NMR의 실험 장치 설치와 측정법을 익히는 일이 었다. 펄스-NMR 실험 장치는 일반 분광기와는 달리 핵자기공명현상을 이용해서 펄스를 찍고, 그 펄스-스펙트럼으로부터 프로톤(H1)과 주변의 친수성 고분자 사슬에 있는 프로톤들과의 상호작용을 측정해 내는

장치다. 다행이 이 펄스-NMR 장치가 연구실에 설치되어 있어 편하게 스핀-래티스 이완 시간(T1)과 스핀-스핀 이완 시간(T2)를 측정하는 연구를 했다. 거의 한 해 동안 이 펄스-NMR 실험장치에 죽기 살기로 매달리며 실험으로부터 얻은 자료 데이터(T1, T2)를 분석하고 검토해 그래프를 만들었다.

그 결과 다른 연구자들이 얻은 실험 데이터보다 더 자세한 자료와 이전에 나타나지 않은 곡선과 변곡점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참 신기한 결과였다. 몇 번이고 재차 검토 한 뒤 결과를 지도 교수에게 보고하고 매주 목요일 아침에 열리는 세미나에서도 발표를 했다. 크나큰 성공이었다.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은 연구 결과를 토대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그 다음 과제는 열역학적인 새로운 접근 방식의 열분석 기법을 사용해 친수성 하이드록시 에틸 메타클리레이트와 물 분자의 상호 작용을 알아내는 일이었다. 먼저 열분석 기법에 맞는 시료의 알루미늄 셀을 구입해 각종 시료를 만들고 시간에 따른 온도 상승 커브를 실험 실측해 흡열-발열 곡선을 얻어야 했다. 순수 고분자 상태를 관찰하는 것은 하이드로 겔 상태의 시료 상에서 관찰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었다.

이들을 체계적으로 측정 정리해 종합 검토를 했는데, 언제 해가 뜨고 밤이 오는 지모를 정도로 재미있게 실험을 진행하였다. 이렇게 해서 얻은 펄스-NMR 측정 결과와 DSC실험 결과들을 비교하고 검토하는 작업을 종합해서 마지막에 논문을 완성했다. 이 논문은 SCI급 학술지, 미국고분자학회지에 투고해 채택 통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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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의 작성이다. 학위논문은 가능하면 국제학회에서 발표하여 논문의 수준과 질의 평가를 개관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5 인의 심사위원으로 구성되는 박사학위 논문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높이 받을 수 있다. 이런 사실을 국내 대학에 있을 때는 전혀 몰랐었다.

실력이 없거나 훈련을 덜 받은 상태로 미국에 유학가게 되면 죽도록 고생만 하고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아둬야 한다.

한국에서 따뜻한 밥을 먹고, 일가친척 친지 부모님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을 때 정신 차리고 열심히 기본 공부를 잘 닦아둬야 한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다. 박사학위를 얻으려고 유학을 간다면 밤낮으로 열심히 공부를 해서 우수한 성적을 얻어야 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서 우수한 논문을 써야한다. 여기에도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처음엔 워낙 고생을 하다 보니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 싶은 마음에 유학 온 것을 후회하기도 하지만, 학위를 얻고 나서는

“참 잘 왔구나!”, “이젠 나도 해냈다!” 하는 자신감이 생긴다. 고국에 있는 부모님과 가족들에게도 면목이 선다. 또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을 음미할 수도 있다.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고생스러운 미국 유학 시절을 견뎌내고 나니, 어느 새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박사이자 학자가 되었다는 자부심에 마음이 든든하고 힘이 생겼다. 나도 이제 어서 고국에 돌아가 훌륭한 후배들을 가르치며 보람되게 살자고 다짐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 지나고 보니 이제는 그 열정이나 인내력에 감사할 뿐이다. 기초는 모든 연구 개발의 기본이다! 이것만을 기억하면 스스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백금도가니 파손의 원인은 ‘기본의 부재’다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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