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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재원확보와 제도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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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등교육재원확보와 제도개혁

독과점구조의 타파가 중요한 것은 독과점구조하에서는 고등교육에 투하되는 자원이 비효율적 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미래의 경제성장에 고등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제를 수용 한다면 고등교육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또 하나의 정책적 주안점은 부족한 재원의 확보방 안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육재정지원의 주체를 크게 보면 정부, 가계와 기업으로 구분할 수 있는 데 이들이 교육비용을 부담하는 동기는 서로 다른 것이 일반적이다. 정부의 경우, 재정부담에 따 른 정치적 득실(재정지원분야에서의 정치적 이득과 다른 분야에서의 정치적 손실)이 중요하고, 가 계의 경우 교육을 통해서 얻게 되는 개인적 만족감과 이익이 중요할 것이며, 기업의 경우 세금혜 택 등의 경제적 이익, 사회전체적인 이미지 제고 등이 중요한 동인일 것이다. 이들 각 경제주체가 부담하는 교육재정을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정부의 예산지원, 가계의 등록금, 기업의 기부금, 혹은 후원금으로 단순화시켜볼 수 있다.

먼저 등록금의 경우, 의무교육을 제외한 학교교육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수익자부담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교육사업의 공공성을 중시하여 교육활동의 비용을 초과하여 영리활동이 될

76) KDI 의 신광식연구위원의 견해가 대표적인 예이다.

77) 최근 교육부는 이러한 정책을 구체화하여 각 지방자치단체가 관내의 지방대학 졸업생들을 공무원으 로 특채하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이 안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는 지방대학, 기업체 등과 함께 권역 별 지방대 육성대책 위원회 등을 구성하여 지역 우수졸업자에 대한 장학금 지원 및 공무원 특별채 용, 기업체의 지역대학 발전기금에 대한 지방세 감면 혜택, 지역대학간 연계 강화 등을 추진하도록 하여 수도권으로의 인재유입을 막는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것이다(중앙일보 2000년 3월 1일자).

정도로 학생등록금을 과다하게 책정할 수 없다는 기본방침이 유지되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등록 금 책정에 관해 지속적으로 규제하였다78). 다른 형태의 민간재원인 기부금의 경우, 공교육에 대한 학부모 부담, 부정비리의 소지 때문에 제한적으로 허용하였으며 허용하는 경우에도 그 관리에 관 하여 구체적으로 규제하였다. 기부금 자체를 별로 중요한 재원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반증이 다79).

1990년대에 교육자치제가 실시되고 학교운영위원회가 설치되는 등 교육에 대한 지방 및 단위 학교의 역할과 책임이 강조되면서 민간재원에 주목하게 되었다80). 그러나 소위 공적 소비(public consumption)의 전통이 미약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기부에 따른 편익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 기부 금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81). 반면에 국민의 높은 교육열로 미루어 전체적인 교육비 부담의사액은 상대적으로 높을 것으로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문제는 전체적인 크기 를 키우는 것보다도 공교육투하분의 비중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한국의 교육시스템에서 사교육비의 비중이 매우 큰데 사교육비의 특성은 교육투자의 혜택을 보다 분명하게, 직접적으로 수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기 자식에게 직접적으로 혜택이 갈 수 있다는 확신만 있으면 교육비를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이러한 특성을 잘 활용하여 사교육비를 공교육으로 흡수 확보하는 방안으로 모색 된다.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교육투자에 따른 성과의 專有率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교육투자에 따른 성과를 측정하는 잣대가 장래의 인적 자본의 축적과 관련이 있다기 보다 공급이 제약된 좋 은 대학에 들어가는 자격을 취득하는데 유용한 것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82). 교육투 자 성과의 잣대가 지대추구의 가능성을 높이는 정도에 주어져 있다는 것은 그 성과를 얻기 위한 경쟁이 상당부분 사회전체적으로 낭비적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공교육에 보다 많은 민간재 원이 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단계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공교육의 내용에 따른 인적자본의 축적 크기 자체가 성과의 척도가 되도록 유인하는 방법이다. 이는 결국 고등교육

78) 정부의 등록금 규제에는 물론 물가안정이라는 공공적 목표도 포함되어 있다.

79) ‘부당찬조금품징수 고발센터’를 운영하여 기부금품 모금에 대한 감시를 강화한 것이 단적이 사례이 다.

80) 일반적으로 정부의 정책은 민간재원의 규모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복지국가의 성격이 강화되고 의무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학교교육에 대한 공공부담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였다. 그러나 정부개입에 따른 조직의 방만화와 비효율성의 문제가 지적되면서, 그리 고 경제 전체적으로 경쟁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면서 학교부문에도 상당한 변화가 일고 있다. 인 구특성도 민간재원의 가용한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예컨대 자녀수가 줄어들면 전체 인구 중에서 학교교육에 대한 직접 이해당사자의 범위가 줄어들기 때문에 교육관련 세금의 인상을 통한 교육재정의 확대는 조세저항을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자녀수가 줄어들면, 자녀당 교육 에 대한 관심의 강도는 훨씬 높아지기 때문에 학부모의 추가적인 교육비 지불의사 역시 높아진다.

자신이 부담하는 교육비가 자신의 자녀가 취학중인 지역의 학교에 투자된다는 확실한 신뢰감이 형 성된다면 주민들의 자발적인 교육재정 부담의지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학교간 학생이동이 쉬워질수록 이러한 분위기는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81) 예컨대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그래도 학교에 관심이 있다고 하는 초중등학교의 학교운영위원 중 75%가 학교발전기금(기부금, 후원금 등 포함)을 전혀 기부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각 종단체에 기부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전체 가구의 70%를 상회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와 비교되는 것이다.

82) 대표적인 예로 과학고나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의 학생들이 내신성적의 불리함을 이유로(즉 특정 대학에 가는 것이 불리해진다는 이유로) 집단자퇴하는 소동을 들 수 있다.

에 대한 평가시스템이 사회적으로 정착하고 그에 따라 자원이 배분될 수 있도록 경쟁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방법으로 요약될 수 있다. 둘째, 공교육에서 성과의 개인 전유율이 높은 교육방법과 프 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 있으므로 두 번째 문제에 대해 간단히 생각해 보자.

원론적으로 볼 때 교육성과의 개인 전유율이 높은 교육방법과 프로그램을 공교육이 개발하는 가 장 좋은 방법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구분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교육공급에 대한 진입장 벽을 없애 버린다면 개인의 필요에 따라 차별화된 교육서비스의 개발이 활발해 질 것이고 이들간 의 경쟁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한 개인이 원하는 교육성과는 주어진 자원하에서 효율적으로 달성 될 것이다. 이 때 문제는 공교육이 지향하는 공공성의 상실이다. 예컨대 의무교육이라든가, 사회적 으로 소외받는 계층에 대한 배려라든가 하는 공공적인 부문이 위축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원론 적으로 볼 때 이 문제는 공공재원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공공성이 분명한 분야에 대 해서는 정부가 책임지고 공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되 나머지는 과감하게 민간의 자율에 맡긴다면 어렵지 않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기부금이라는 것도 어떤 의미 에서 무의미해질 것이다. 기업이 인재에 대해 스스로 필요한 내용을 학습시키는 체제를 구축할 유 인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결국 일극적 서열구조만 효과적으로 완화시킬 수 있다면 재원확보의 문제는 단순화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고등교육에서 손을 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일극적 서열구조를 무너뜨리는 것은 그야말로 전체 국민의 의식개혁까지 포함하는 혁명적 변화를 요구하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고등교육 재원의 문제도 결국 '현실‘(일극적 서열구조)에 얽매인 정부가 차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차선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한가지 대안은 일극적 서열구조하에서도 정부가 완전히 손을 떼자는 방안이다83). 명시적이지는 않으나 이 안의 전제는 국공립대학도 민영 화를 통해 자유경쟁화시킨다는 것이다. 수요조건이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는 서열구조를 더욱 고착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소위 명문대학들은 여러 가지 형태의 등록금인상84) 등을 통해 가용자원을 독점화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적절히 활용하는 경우 서열구조가 더욱 분명해질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단기적으로 등록금 인상만으로 충분히 기존의 수요구조(일류대 선호)를 변 화시키지 못하게 될 것이므로 교육수요자들의 전체적인 교육비를 크게 상승시켜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장기적으로 상당히 완화될 것이다.

이러한 방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서열구조가 설령 더욱 심화된다고 하더라도 고등교육재원 확보의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한계상황에 처한 대학들은 과감 히 도태시킬 수 있으므로 대학산업에 투하되는 재원이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서 이미 언급한 서울집중의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는 찾기 어렵다.

이러한 주장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일극적 서열구조하에서 일정 서열의 밑부분(서울에서 멀리 떨 어진 대학들)을 잘라내고 국민적 인식의 우선순위에 있는 대학들끼리의 경쟁을 통해 재원확보와 효율성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서 논리적으로 가장 중요한 고리는 서열구조하에서도 정부간섭만 없으면 경쟁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미 언급했듯 정부의 정책이 일극적 서열구조의 고착화에 상당 부분 기여 했기 때문에 사전적으로 보면 이러한 견해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 보이지만 사후적으로 보면 비 현실적으로 보인다. 일극적 서열구조는 정부(교육부)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는 사안이다.

83) 대표적인 예로 안재욱(1997), 한국의 사립대학교(자유기업센터)를 들 수 있다.

84) 기여입학제는 그 중의 한 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