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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전통적 특성은 공동체였으며, 이런 특성은 어떤 나라

나 사회를 보더라도 보편적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공동체가 우리 전통에서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특성도 이념형적으로 보아서는 거의 타 사회의 것들과 별 로 다름이 없다. 전통적인 요인과 개인적인 요인에 대해서 좀더 부연 한다면, 전통사회에서의 개인은 대부분 그가 속해 있는 공동체와 일 체감(identification)을 갖고 있었다. 혼자 길을 가다가도 앞에 가는 사 람이 있으면 그와 동행하고자 하며, 혼자 일할 때 사람이 지나가면 불러서 막걸리를 함께 마신다. 집안에 행사가 있어 음식을 장만하면 이웃이나 친지들을 초대하여 기쁨을 함께 나눈다. 이러한 일체감이 전통적 인간관계의 본질이었다. 다만 우리의 전통 공동체의 특성은 혈연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같은 지역 내에 모여서 살기 때문에 크 게 보아 가족적인 특성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가족적 특성은 같은 조상숭배의식을 가질 때에만 그 결속력이 한층 더 강화된다는 것이며 그것이 우리 전통공동체의 중요한 특성을 이루는 한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가족 중심적이며 조상 숭배적 공동체의 특성은 그것이 유교적인 지도이념 하에서 유교의 의례주의적 인 요소가 첨가되며 부각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음주행위에 대한 요인 을 설명함에 있어서 공동체와 개인이라는 두 개의 범주를 가지고, 이 러한 공동체적인 요인과 그 대책강구를 위한 모색과 분석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대에 이를수록 이 공동체적인 음주요인이 조금씩 약화되 면서 개인적인 요인이 부상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개 인적인 요인은 아직 공동체적인 요인에 비해서는 극히 미미한 것이 다. 따라서 앞으로 공동체적 요인과 개인적인 요인을 분석할 이 글의 지면도 4:1 정도로 할당하였음을 미리 밝혀 둔다.

현대에 들어와 사회(society)라는 개념 속에서의 개인의 정체성은 이전의 전통사회처럼 타고나거나(natural), 부여받는(inherited) 것이 아

니라 자신들의 의도와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형성된 자율적인 결사체 를 통하여 획득하도록 조장된다. 여기서는 자신의 개성이 부각되고 공동체 의식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우리(we)'라고 하는 것이 어느 특정한 조건하에서만 사용되어지는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나름대로의 타당한 행동양식이 나타나며 음주행위도 마찬가지이다. 인간관계 역시 계약적인 유대관계로 바뀌며 그런 관계 를 맺기 위한 매개체의 하나가 ‘술좌석’이라 할 수 있다.

전통사회와 현대사회를 퇴니스의 이념형으로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즉, 전통사회에서는 동질성(homogeneity), 인격성(personality), 통 일성(integrity), 연대의식(solidarity), 조화(harmony) 등의 특징들이 나타 나고, 현대사회에서는 그와 반대로 이질성(heterogeneity), 비인격성 (impersonality), 익명성(anonymity), 파편화(fragmentation), 갈등(conflict) 등의 특징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공동체에서는 그 공동체의 뜻을 거슬리는 의미에서의 개 인주의를 용납하지 않았으며 개인은 공동체의 유기적 구성원으로 존 재할 뿐이었다. 개인의 탈선행위는 용납되지 않았으며 공동체의 가치 규범과 어긋나는 행동은 매우 신랄하게 정죄되었다. 이것은 집단의 동질성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는데, 여기에서는 개인의 의견은 수렴되 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이미 만들어진 객관적 규범이 주어져 있기 때 문에 개인은 그 자체로 인정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행동규범은 익명성의 환경에 처할 때와 인격성이 나타낼 수밖 에 없을 때에 현격하게 달라진다. 다시 말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그 들의 공동체를 떠나면, 그 순간부터 자신들의 행동을 감시하거나 규 제하는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공동체내에서의 인간 관계에서는 권위가 언제나 존중되었으며, 친족의 혈연관계는 안정감 과 자기 만족감의 근거가 되었다. 이 안에서는 절대적인 연대의식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친족으로부터 거리감을 크게 느 끼지 않았다.

반면에 산업화와 도시화라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은 전통적 공동체 를 와해시킴으로써 개인에게 익명성의 고독과 불확실성의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이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타인으로부터 점점 더 고 립되어 철저히 개인으로 남게되었다. 예컨대 도시에서는 모든 인간관 계가 자기 이익에 따라서 형성되거나 해체되어 버리기 쉽다. 그렇게 되면 인간관계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이용되어지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릴 위험이 높게 된다. 전통사회에서는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이웃 과의 만남이 이루어졌으나, 이제 변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이러한 만남 의 필요성이 약화되었다. 따라서 사회의 중심이 공동체에서 개인으로 이전하였으나, 개인은 공동체의 몰락으로 고독감과 이질성이라는 문 제를 안게 된 것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음주행위는 그 어느 쪽으로나 공통 요인이 될 수 있게 된다. 고독함 속에서 책을 읽던가, 술을 마시는 것은 전적 으로 개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이러한 현상은 또한 개인들로 하여 금 목적의식의 결여, 의미와 주체의식 등을 상실해 버리는 결과를 가 져왔다. 뿐만 아니라 개인주의의 이와 같은 심화현상은 규범이나 소 속감정이 약화된, 그래서 불안정감을 느끼는 사회 병리적 인간들을 양산하게 된 것이다. 이런 사회 병리적 현상은 술이라는 매개체를 통 하여 보완하려 할 때 더 무서운 병리를 양산할 지도 모른다.

이처럼 변화된 사회에서 인간의 삶의 조건을 규정짓는 두 가지 질 서를 공동사회(Gemeinschaft)와 이익사회(Gesellschaft)로 구분할 수도 있다. 공동체(community)의 특성은 개인의 개성(individuality)보다 공동 유대(common bond)가 더 강조되는 사회를 뜻한다. 따라서 개인적 정 체성인 ‘나(I)’보다도 공동체적 정체성인 ‘우리(We)’가 더 강하게 나타

나는 특징이 있다. 사람들은 그러한 공동체 안에서 어느 정도의 자기 에게 주어진 사회적 체면을 유지할 수 있고, 권위와 불평등도 어느 정도 인정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집단을 중시하는 “우리” 문 화와 현대적인 개인의 “나”를 중시하는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이것은 두 개의 문화가 평행적으로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를 결합한 새로운 집단을 중심으로 문화가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중간집단의 문화’라 할 수 있으며, 소문자 “우리(we)"라는 공동 체적 집단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 에 현대인의 음주행태는 이 중간집단 지향적인 면에서 분석될 것이 다. 중간집단이란 회사나 단체, 클럽이나 동호인 등 나아가 각종 직장 등을 지칭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