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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봉(蘆峰)이라는 호를 쓰게 된 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그의 고향 인근의 노봉이라는 지명을. 썼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양원. (陽園)은 선조인 東陽 申翊聖( 의 호), 태어난 漢陽, 도학의 스승으 로 삼는 紫陽 朱子( 의 호), 華陽 宋時烈( 의 호), 希陽 任憲晦( 의 호 의) 五陽에 자신을 포함하여 六陽 으로 호를 삼았다 신기선. , 「陽園說」 , 陽園遺集 권12, 239쪽 참조.
2) 노대환, 동도서기론 형성 과정 연구 일지사( , 2005), 9 .쪽 동도서기의 개념은 한우근 교수가 「개 항당시의 위기의식과 개화사상」 , 한국사연구 (1968)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했다.
3) 신기선, 「農政新編序」 , 農政新編 , (광인사, 1885).
4) 신기선의 사상에 대한 주요 연구는 다음과 같다 김문용. , 「신기선 평전」 , 시대와 철학 한국철학( 사상연구회, 1993), 265~277쪽 ; 권오영, 「신기선 사상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부속대학원 석 사학위논문(1983) 참조. ; 노대환, 「19세기 후반 신기선의 현실인식과 사상변화」 , 동국사학 53
동국대 사학회 박정심 신기선의 유학경위 를 통해 본 동도서기론의 사상적 특징
( , 2012) ; , 「 」 ,
역사와 현실 60(한국역사연구회, 2006), 315~351쪽 ; 손문호, 「신기선 연구 - 한 절충주의자의 사상」 , 호서문화논총 15(서원대 호서문화연구소, 2001), 105~117쪽 ; 이명주, 「신기선의 동도 서기 교육론」 , 교육사학연구 18(2008), 61~86쪽 ; 정재걸, 「동도서기론 연구( ) ,Ⅰ」 교육사학 연구 4(서울대학교 교육사학연구회1992), 101~119 .쪽
5) 권오영, 「신기선 사상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부속대학원 석사학위논문(1983) 참조. 6) 김문용, 「신기선 평전」 , 시대와 철학 한국철학사상연구회( , 1993), 276 .쪽
7) 노대환, 동도서기론 형성 과정 연구 일지사( , 2005) 292 .쪽
8) 박정심, 「신기선의 유학경위 를 통해 본 동도서기론의 사상적 특징」 , 역사와 현실 60(한국역사 연구회, 2006), 342 .쪽
9) 이명주, 「신기선의 동도서기 교육론」 , 교육사학연구 18(2008), 82~83 .쪽
10) 대표적으로 陽園遺集 諧謔遺書 明美堂集 韶護堂集 深齋集 을 부분적으로 발췌하고 역 주하여 1권으로 편찬했다 여기서. 陽園遺集 경우는 시와 상소문을 위주로 일부분을 발췌하고 역주하였다 차용주. , 고전문학 09,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5)
11) 경종 1 (1721)년 에 王世弟인 延 君礽 (후에 英祖)의 대리청정을 지지했던 노론 4대신 金昌集 李, 頤 를 포함한 노론 주요 세력이 조정에서 삭출과 함께 죽임을 당하고 이듬해 잔
, ( , ,
命 李健命 趙泰采
여 세력까지 조정에서 삭출되어 유배되고 희생되었던 사건을 말한다.
12) 申銋 : 1642 1725.∼ 左參贊으로 老論의 옥사에 대하여 변호하는 상소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가 영조가 등극하여 해배되었으나 귀향 중에 죽었다, .
13) 申思喆 : 1671 1759.∼ 대사헌으로 있다가 파직되었다.
14) 申晳 : 1681 1723.∼ 司諫으로 있다가 파직되어 유배지에서 죽었다.
15) 申聖夏 : 1665 1736.∼ 연안부사로 있다가 파직되었다 그의 부인은 노론의 박세채의 딸이다. . 16) 申昉 : 1685 1736.∼ 홍문관 교리로 있다가 삭출되어 부친 신성하와 함께 향리에 칩거하였다. 17) 신기선, 「祖考學生府君家狀」 , 陽園遺集 , 권12, 260 .쪽
18) 申驥顯 : 1747 1793.∼ 정조 8 (1784)년 에 문과 급제하였다. 1789 (년 정조 13)에 은언군을 옹호 했던 상소로 정언에서 파직되고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19) 은언군(恩彦君) : 1754~1801. 이름은 李䄄이다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정조와는 이복형제다 그. . 의 아들 常溪君 李湛(?~1786)을 정조의 후계로 추진하다가 모반죄에 휘말려 아들은 자살하고 그 는 유배지를 전전하였다 후에. 1801년 그의 부인과 며느리가 천주교도이라는 것이 발각되면서 사 약을 받았다.
菐
20) 정조실록 권28 ,권 정조 13년 10월 24일 병자. “請逆賊驥顯弟龜顯 爲先施以 島定配之典, 絕 .”
21) 노대환, 「19세기 후반 신기선의 현실인식과 사상변화」 , 동국사학 53(동국대 사학회, 2012) 4 쪽 참조.
22) 신기선, 「先考進士府君家狀草」 , 陽園遺集 권12, 265 .쪽 伯父亦頻勸曰: “幾亡之吾家 幸有今日, ,
. , , , , , .
天意誠不偶然 今兩親向老 以吾先赫世之令名 苟有才德 其於重光門戶 快雪憤恥 何難之有 而吾
, , , . . .”
則失學無成 汝方齠年讀書 吾門興替 專在於汝 汝其勉旃 必惜寸陰
23) 신기선, 「先考進士府君家狀草」, 같은 책 권12, 265 . “쪽 壯節公之見危授命 西湖公之遯世無悶 象, ,
, , , .
村先生之文章德業 東淮東江之忠孝大義 汾厓府君之氣節風致 將蓋有光於當日 而南谷素心之所未
, , . , , ,
宣 蒼谷德溪之所未試者 豈不彰著於後世耶 然而不遇於時 厄窮以終身 使其光門戶報國家之大志
. ! . . ··· : ‘ ;
畢竟寥寥而無成 嗚呼 痛哉 此豈獨吾門之不幸而已哉 蓋府君嘗論東賢曰 論道學則栗谷爲首
. , , , , ,
論功德則尤翁爲大 尤翁之功 巍巍乎與三聖齊 衛斯道於板蕩之世 救斯人於夷獸之中 向無尤翁 吾 .’”
其被髮左 矣袵
24) 신기선, 「仲氏梨山先生六十一歲壽序」, 같은 책 권7, 154 . “쪽 箕善早失所怙 受學於先生 先生之, .
, , , . , , ,
於箕善 實兼父師之恩 而箕善之於知先生也 亦或庶幾焉 顧乃不肖無狀 涉世不謹 墮落坑塹 以貽
, ? , , . , , ,
先生憂 可勝恨哉 自頃以來 先生愈窮約靖處 而憂病又從以侵尋 然充養有素 眞元內勁 松栢之壽 .”
蓋未可量也
25) 承政院日記 , 고종 3년 9월 27 .일 26) 承政院日記 , 고종 19년 7월 2 .일
27) 조정에 출사한 영향도 있었겠지만 박규수를 포함하여 다양한 사람들의 문집에 그와 교유한 서찰 이 실린 것을 보면 폭넓고 포용적인 교유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28) 신기선, 「祭族叔桂田相國」 , 陽園遺集 , 권6, 141 . “쪽 嗚呼 象汾世遠 擧宗零落 公惟繩武 倚爲! , , ,
. , , , .”
準式 小子薰德 爰自蒙騃 屬逾袒免 義同師弟
29) 신기선이 족숙인 신응조를 위하여 쓴 제문이 1편 보이나 그의 문집에 주고받은 시나 서찰조차, 실리지 않은 점은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30) 신기선, 「上白陽徐丈」, 같은 책 권5, 123~125 .쪽 신기선이 1867년 서응순에게 보낸 편지에 ‘3 년 전에 방문했다 고 하니 상경한’ , 1864년에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서장. (徐丈)으로 존칭하 는 것을 보면 스승에 준하여 예우한 것으로 보인다.
31) 신기선, 「絅堂問答」, 같은 책 권16, 348~349 .쪽
32) 신두선, 「家狀」, 같은 책 권16, 387 . “쪽 十四歲上京受業于族叔桂田丈 閉戶潛玩 時甲子宮役 雜, . ,
, , . : ‘ , .’
戲奇玩 轟鬧于門外 而恬若不聞 人有問之則曰 吾素不悅 且今國恤不可爲也 瓛齋朴公及諸名流 .”
多來訪而歎美之
33) 신기선, 「是日得金小坡玉均書」, 같은 책 권1, 19 .쪽
34) 신기선, 「師友問答」, 같은 책 권15, 317 . “쪽 丙寅八月四日 箕善偕仲氏 往謁希陽任先生于淸州德. ,
. , .”
洞朴參奉家 先以書通姓名 後入納拜
35) 신기선, 「師友問答」, 같은책 권15, 317 . “쪽 先生視箕善曰: ‘吾初聞才名時 慮其輕浮 今看完實, , , .’”
甚可喜也
「 」
37) 임헌회, 「答申箕善」 , 鼓山先生文集 권7, 31 .쪽 임헌회는 서찰에서 신기선의 출사를 바라지 않, 았지만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신중한 처세를 당부한다.
~
38) 신기선, 「與田子明愚」 , 陽園遺集 권5, 29 . “쪽 嗚呼 天之生丈夫 豈偶然哉! , ? 生乎斯世而不欲做
? , , , ,
聖人可乎 吾儕今日只有窮理力行 以盡吾性分之所固有 而又須衛道明理 大惠我宇宙之蒼生 使不
. , , , .”
至於夷狄禽獸之域矣 古來聖賢之立訓敎人 不啻詳悉 而猶不能無未了之債 任此債者其不在吾輩乎 39) 신기선, 「明剛問答」, 같읕 책 권15, 327 .쪽
40) 신기선, 「陳情疏」, 같은 책 권15, 317 .쪽
41) 신기선, 「丙丁日記」, 같은 책 권1, 366~372 .쪽
42) 박은숙, 「罪人申箕善鞫案」 , 추안급국안중 갑신정변관련자 심문 진술기록 아세아문화사· ( , 2009) 쪽
267~302 .
43) 신기선, 「奉使日記」, 같은 책 권17, 372~383 .쪽
44) 신기선, 「학술」 , 유학경위 , 41 . “쪽 若近世西人之所謂耶蘇敎者 鄙俚淺妄 乃夷俗之陋者耳 不足, , , .”
與辨也
45) 갑오경장 주청한 것 : 1898년 9월에 김홍륙이 고종의 커피에 독을 넣은 역모 사건이 발생 하였다 중추원에서 부의장 신기선을 대표로 의관들이 연좌법과 노륙법의 부활을 고종에게 주청. 했던 일을 말한다 이는 갑오경장 때에 근대 사법제도가 서구의 법제도 도입으로 인한 영향으로. 왕권 약화와 함께 법률기강의 해이함으로 발생했다고 보고 구법을 추진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로 나륙법(拏戮法) : 역모 등의 대역죄인 경우 가족까지 연좌하여 처벌하는 법이며 대역참형, (大 은 대역은 십악 의 번째 죄로 임금이나 아버지를 죽이고 종묘나 왕릉을 파헤치는
) : ( ) 2 ,
逆斬刑 十惡
대역죄로 인하여 목을 베어 죽이는 형벌을 말한다.
46) 백천, 「양원 신기선의 생애와 대외 인식」 , 역사학연구 61(호남사학회, 2016), 114쪽 참조. 47) 신채호 논설, 「일본의 삼대충노」 , 매일신보 (1908. 4. 8). 신채호는 그가 책을 빌려주고 성균관
에 추천한 적이 있었는데 그가 일진회의 송병준 동아개진교육회 조중응과 함께 일본의 삼충노, , (三忠奴) 로 지목하고 비난하였다.
48) 신기선, 「農政新編序」 , 農政新編 (광인사, 1883). “自泰西諸國通好中邦 天文地質測算之學 創有, ,
; , , , . ,
新聞 火輪器機精巧之製 逈出凡品 凡民生日用之 可以用力半而取效倍者指屈 至於農桑之法 尤多
, , . , , ,
妙諦 水旱不能爲灾 沃瘠可使同功用 天之氣地之性 曷智巧之所逮 窮人力之所辦 萬萬非舊日中土 .”
農學之所能及也
49) 박은숙, 「罪人申箕善鞫案」 , 추안급국안중 갑신정변관련자 심문 진술기록 아세아문화사· ( , 2009) 쪽 신기선은 정령 내용 중에 궁내에서 연병을 하고 순사를 설치하는 것 은 불가하다는
267~302 . ‘ ’
의견을 내었고 또한 김옥균과 국왕의 승인 절차의 문제를 제기하고 다투고 퇴궐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50) 신기선, 「辭議員召命疏」, 같은 책 권17, 372~383 . “쪽 劈破等級革罷奴婢之文 初無註脚 全欠曲, ,
, , , , , , . . ···
折 遂使煽亂之民 藉口而起 氓庶之威 重於將相 縛打之辱 及於卿 冠屨倒置 倫理喪盡 夫所
, : ‘ , , , , ,
謂開化者 不過曰 恢張公道 務祛私見 使官不尸素 民不遊食 開利用厚生之源 盡富國 兵之術而強 .”
已
51) 신기선, 「奉使日記」, 같은 책 권1, 375 . “쪽 聞靑陽新有擾端 發自淸州 止宿長命驛 堤川所謂義將. , .
, , , . ,
柳麟錫 遣其徒申錫祖來言曰聖勅如是懇惻 使諭又此委曲 固當卽地解兵 而區區之意 本以日人久爲
. , , , , .”
國讎 甲午以後逼我君父 變我制度 竟至弑我國母 剃我君臣 此實我東生民不共戴之仇也
52) 신기선, 「抵城外 辭學部大臣疏」, 같은 책 권3, 63 . “쪽 學之爲部 盖兼古之成均兩館 主張一國之敎, ,
, . , , , .
術 奬成多士之文藝者也 敎莫先於倫綱 文莫先於經傳 而我國宗敎吾道宗旨 莫重於衣冠文物也 今
, , . , , ,
剃令雖停而迄未有光復巾髻之明詔 軍隊巡檢 㲯毿自如 語學生徒 剃服可駭 則國必變夷 不待辛有
. , . , .”
伊川之哭而可知也 國漢文之幷同 將以壞文字而廢經傳也 太陽曆之新行 所以從外俗而革正朔也 53) 신기선, 「抵城外 辭學部大臣疏」, 같은 책 권3, 63 . “쪽 內閣新制 立憲政規 乃所以奪君柄而創民權, ,
. , , .”
也 凡此皆前日逆徒之所爲 八域士民之切齒搤腕 以致今日之亂者也
54) 신기선, 「학술」 , 유학경위 , 41 . “쪽 若近世西人之所謂耶蘇敎者 鄙俚淺妄 乃夷俗之陋者耳 不足, , , .”
與辨也
55) 고종을 시해할 목적으로 김홍륙(金鴻陸)이 공홍식(孔洪植)을 시켜서 고종과 태자가 마시는 커피 에 독약을 투입한 사건이다.
56) 나륙법(拏戮法) : 역모 등의 대역죄인 경우 가족까지 연좌하여 처벌하는 법.
57) 대역참형(大逆斬刑) : 대역은 십악(十惡)의 2번째 죄로 임금이나 아버지를 죽이고 종묘나 왕릉, 을 파헤치는 것을 말한다 참형은 목을 베어 죽이는 것을 말한다. . 唐律 「, 名例」.
58) 이등박문이 1898년 8월 23에 서울을 유람한다는 명목으로 방문했으나 전문 15개조로 이루어진 경부철도합동조약을 맺으면서 경부선 부설권을 가져간다 남산음사는 일본 공사 서기이자 시인이. 었던산길성의(山吉盛義)가 만들고 회장으로 있었는데 남산음사에서 주관하여 이등방문을 위하여, 술자리를 마련했다 당시 신기선은 법무대신 겸 중추원부의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
59) 신기선, 「邀飮春畝侯」, 같은 책 권1, 13 .쪽
60) 필자가 이렇게 보는 것은 다음과 같다. 1881년 2월에 조정에서는 먼저 청국에 영선사(領選使)를 파견하고 이어 일본에도 시찰단 파견을 결정했다 일본 조사시찰단이. 1881년 2월에 먼저 파견되 지만 실질적인 근대식 병기 제조법의 습득을 위한 유학생은 1881년 11월에 먼저 보낸다 아마도. 화이관 입장으로 보면 개화의 창구로서 청 일을 대하는 관점은 오히려 청나라에 비중을 더 두었 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신기선은 갑신개화인사와의 교유 영향으로 반대 입장일 수 있지만 청에. , 대한 비중이 일본보다 낮지 않다는 근거는 문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61) 신기선, 「贈山米溪東歸序」 , 陽園遺集 권7, 159~160 .쪽
62) 특히 陽園遺集 권 에1 1906년에 읊었던 시 「寄日本三島侍講」을 1908년에 대동학회월보 제2 호에 다시 싣는다 저자가 이듬해 운명한 것을 보면 그가 동도에 대한 끝없는 신뢰와 함께 동도. , 서기에 대한 모델을 일본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3) 신채호는 일진회의 송병준 동아개진교육회 조중응과 함께 일본의 삼충노, (三忠奴) 중에 하나로 지목하 고 비난했다. 신채호 논설 일본의 삼대충노, 「 」 , 매일신보 (1908. 4. 8).
64) 국권 ··· 것이다 : 신기선이 1909년 사망했기 때문에 그의 아들 호영이 은사금을 대신 수령했 던 것도 그러한 지적 중에 하나이다. 매일신보 (1911. 1. 14).
~
~
65) 承政院日記 , 순종 3년 1월 25 . “일 此重臣性操堅確 學識淵富 立朝三十餘年 勞蹟茂著 汲汲以, , , ,
, , ? , , ,
扶植斯文爲己任 逝單遽至 傷 曷喩䀌 卒帝室會計監査院卿申箕善葬需 令宮內府 從優輸送 節惠之
, .”
典 待諡座擧行旨 奉承
66) 김윤식, 「謚狀」 , 陽園遺集 권18, 387 . “쪽 공의 아들 昊永이 상중에 매여 있으면서 임금의 명 을 감히 오래 지체하지 않고 대략 공의 행적을 모아 나에게 시장을 요청했다.[公之子昊永累然在
, , , ]”
哀疚之中 以君命不敢久宿 畧摭公平日行蹟 屬允爲狀
67) 김윤식, 「謚狀」, 같은 책 권18, 387 . “쪽 所著儒學經緯 已行于世 睿學輯要 倣栗谷先生聖學輯要, . ,
. , .”
而獻于東宮者也 又有雜著纂集 震史重畧 小學節要 綱目辨疑等書 藏于家, , ,
~
奬
68) 「책문(策問)」 : 1900년에 학부 훈령으로 성균관장 이종원(李鍾元)이 경의문제(經義問題)를 출제 하여 향교에 보내 대책을 지어 올리게 했는데 신기선이, 1899년 학부대신으로 이 제도를 계획하 면서 지었던가 아니면 관련 기관의 요청을 받고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
.
.
69) 일찍이 1871년에 김옥균에게 서찰을 받고 지은 시가 보인다 또한 출사하여 개화 담당하는 부. 서에서 개화인사들과 함께 근무하였고, 1883년에는 김옥균과 함께 옥당교리로 제수 받아 일했다. 더구나 개화인사로 분류된 안종수를 위하여 「農政新編序」를 지어주었다.
70) 산양강회록(山陽講會錄) 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문인들이 산양(山陽)에서 모여 강학한 후 에 강학 내용과 문인들 간에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엮은 것이다 여기에 문인 정재규. (鄭載圭)·기 우만(奇宇萬) 외에 최익현(崔益鉉), 김평묵(金平黙), 신기선(申箕善), 신두선(申斗善) 등 여러 학파 문인들의 서찰을 수록하였다.
71) 신기선, 「瀛洲問答」 , 陽園遺集 권16, 349 . “쪽 申錫休問 或曰, , ‘衆人之心曰人心 聖人之心曰道;
?’” ‘ . . ; ’”.
心 否 君不知人心道心之意也 發於形氣者人心也 原於性命者道心也 72) 기우만, 「南雲宋公行狀」 , 松沙先生文集 권48, 550 .쪽
73) 신기선, 「題甲午靖匪錄後」 , 陽園遺集 권9, 191 .쪽 목천 수령이 명망가나 노숙한 선비를 제쳐 두고 17세의 젊은 유학자 신기선에게 기문을 요청한 사유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높은 문장 실력, 만큼은 인정했음을 알 수 있다.
74) 신기선, 「樂安朴孝子 閭記㫌 」, 같은 책 권9, 198 .쪽
75) 백주(栢舟)의 ··· 맹세하고 : 공백(共伯)이 죽자 그의 아내 공강(共姜)이 재가(再嫁)에 불응하고 절개를 지킨 것을 읊은 시이다. 詩經 「柏舟」.
76) 척란(隻鸞)의 ··· 경우 : 난고봉과(鸞孤鳳寡)와 같은 말로 짝 잃은 봉황이 자기 그림자를 짝한, 다는 뜻이다 곧 배우자를 잃은 사람을 의미하고 나아가 수절하는 과부를 말한다. .
77) 신기선, 「烈婦張氏 閭記㫌 」 , 陽園遺集 권11, 196 .쪽 78) 신기선, 「鶴城襟紳契序」, 같은 책 권7, 164 .쪽
79) 신기선, 「竹巖精舍相揖禮笏記跋」, 같은 책 권11, 226 .쪽 80) 신기선, 「贈山米溪東歸序」, 같은 책 권7, 180 .쪽
81) 이 서문은 1867년 겨울에 죽암정사에서 공주 인근 유학자와 3달여를 기숙하며 공부하고 헤어지 면서 그 아쉬움과 함께 유학자로서 처세를 다짐하는 글이다 내용으로 보면. 禮記 를 중심으로 공부했던 것으로 보이며 성현의 글을 통해 성현의 길로 나아갈 것과 이를 바탕으로 세상을 구제, 하겠다는 책임감과 자부심이 넘친다 또한 죽암정사는. 金炳心(? 1868)〜 이 공주 인근에 자신의 수 양과 후학 양성을 위해 지은 서숙이다.
82) 1867(고종4) : 원문 ‘丁亥’는 1887년으로 저자가 전남 고흥 여도에 유배 중인 때로 그 시기가 맞지 않는다 필사과정에서 오류로 보인다. . 陽園遺集 권11의 「竹巖精舍相揖禮笏記跋」이 丁卯
월에 작성되었다 따라서 이 서문도 같은 해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1867) 5 . .
83) 신언녀(申言汝) : 신기선(申箕善)의 호가 노봉(蘆峰)이며 자는 언녀, (言汝)이다.
84) 노곡(老谷) ··· 하였다 : 공주 인근의 유생들이나 자세한 이력은 확인되지 않는다 단 김경립. , 은 김병심의 아들로 이름이 지균(志均)이며 자는 경립(景立)이다 공부했던 일행 중에는 신기선의. 권유로 임헌회 문하가 되었다 신기선. , 「明剛問答」 , 陽園遺集 권15, 328 . “쪽 臘月四日 與金景,
, , , . .”
立 朴元汝大陽 朴聖集魯成 二人幷初謁者 進謁先生 先生甚喜
85) 범준(范浚氏) : 송나라 학자(1131~1162)로 호는 난계(蘭溪)이다 당시에 진회. (秦檜)가 국정을 좌우하자 범준은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난계에서 후학들을 교육하면서 여생을 보냈는데 학자들, , 이 그를 향계선생(香溪先生)이라 칭하였다 그가 지은. 「心箴」에, “茫茫堪輿 俯仰無垠 人於其間, , ,
. , , , . , , , .
渺然有身 是身之微 太倉稊米 參爲三才 曰惟心爾 往古來今 孰無此心 心爲形役 乃獸乃禽 惟口
, , , . , , , . ,
耳目 手足動静 投間抵隙 爲厥心病 一心之微 衆欲攻之 其與存者 嗚呼幾希 君子存誠 克念克
이라 했다 권
, , .” . 45.
敬 天君泰然 百體從令 宋元學案
86) 법도[大防] : 대방(大防)은 백성들이 악에 빠지는 것을 막고 세상의 질서유지를 위해 문란함을 방비하는 큰 둑이란 뜻이다 원칙적인 예의나 법칙을 말한다. .
87) 오계(五季) : 당( )唐나라가 망하고 송( )宋나라가 일어나기 전인 907년부터 959년까지 후량(後 후당 후진 후한 후주 가 이어진 여년의 혼란한 시기를 말한다
), ( ), ( ), ( ), ( ) 50 .
粱 後唐 後晉 後漢 後周
88) 아이들이 ··· 불렀다 : 이 노래는 앞 글 선왕‘ (先王)이 ··· 이것이다 의 뒤에 와야 할 것으로’ 보이나 우선은 그대로 둔다 이 노래는 강구요. (康衢謠)라고도 하는데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린 지, 년이 지나 백성들을 살펴보기 위해 평상복으로 거리에 나갔다가 어느 번화가를 지나는데 어
50 , ,
린애들이 서로 손을 잡고 노래했다고 한다.
89) 6 [경 六籍] : 詩經 · 書經 · 周易 · 春秋 · 禮經 · 樂經 의 여섯 경전를 말한다. 90) 사유(四維) : 예( )· ( )· ( )·禮 의義 염廉 치( )恥를 말한다.
91) 맹자가 ··· 하였다 : “人皆有不忍人之心 先王有不忍人之心 斯有不忍人之政矣, , . ··· 猶其有四
, , , , . ,
體也 有是四端而自謂不能者 自賊者也 謂其君不能者 賊其君者也 凡有四端於我者 知皆擴而充之
, , , , , , ”. .
矣 若火之始然 泉之始達 苟能充之 足以保四海 苟不充之 不足以事父母 孟子 「公孫丑 上」 92) 하늘이 ··· 우연이겠는가? : “每激昻而自誦曰: ‘天生男子 豈偶然哉, ? 其所以自任者已不淺矣’”.
송시열, 「重峯趙先生行狀」 , 宋子大全 권207, 17 .쪽
93) 도척(盜蹠) : 춘추 시대 노( )魯 나라 사람으로 무리 수천 명을 모아 천하에 횡행하며 온갖 못된 짓을 하고 또 무고한 사람을 많이 죽였다 한다.
94) 도학(道學)을 ··· 무리이다. : “鷄鳴而起 孶孶爲善者 舜之徒也 鷄鳴而起 孶孶爲利者 蹠之徒, , ; , ,
, , , ”. , .
也 欲知舜與蹠之分 無他 利與善之間也 孟子 「盡心章 上」
95) 원문 ‘明倫▣而立人極 制禮法而存大防; ’에서 빠진 글자 ▣는 ‘ ’綱으로 보인다.
96) 이 글은 재종형의 회갑을 맞이하여 축하 글과 아울러 7언 율시를 지은 글이다 서문의 순서로. 보면 출사 이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재종. (再從)은 증조부를 함께하는 일가로 6촌지간이다 신. 기선의 조부 신철현(申喆顯)이 신완(申琬)에게서 출가하여 신기(申 )의 후사가 되었기 때문에 그 의 형제는 없다 또한 족보에서도 그와 부합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
97) 再從兄▣▣(伯氏) : 빠진 두 글자 ▣▣는 본문 내용에 비추어 백씨(伯氏)로 보인다.
98) 회갑일[懸弧之甲] : 현호(懸弧) , “는 옛날에 아들을 낳으면 뽕나무 활을 문의 왼쪽에 걸었다 에서” 온 말이다. 禮記 「內則」.
99) 형제 우애[常棣] : 상체(常棣)는 아가위나무다 그 꽃이 한데 다닥다닥 붙어 있어 곧 형제간에. 우애 있는 것을 비유한다. 詩經 「常棣」.
100) 외손[宅相] : 진( )晉나라 위서(魏舒)가 어려서 외가인 영씨(寧氏) 집에서 자랐는데 그 집터의, 미래를 점친 자[相宅者]가 장차 귀한 외손‘ (外孫)이 나오게 될 것 이라고 예언한 말대로 위서가’ 나중에 사도(司徒)의 지위에까지 올랐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어 상택, (相宅) 혹은 택상(宅相)이 외손 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晉書 권41, 「魏舒列傳」.
101) 떠들썩한 ··· 비치고 : 원문의 “極輝動筵 碧潭照盃, ”는 대구로 보인다 따라서. “動筵”은 “壽 의 필사 오류로 보인다
” .
筵
102) 대청[堂奧] : 당오(堂奧)는 본래 학문의 깊은 뜻이나 방의 아랫목을 말한다 본문 취지에 맞게. 대청으로 번역한다.
103) 만종(萬鍾) : 6 ( ) 4 ( )석石 두斗가 1 ( )종鍾이니 6만 4천 석이 되니 많은 봉록을 의미한다.
104) 동양 : 신익성(申翊聖, 1588~1644)이다 본관은 평산. (平山)으로 자는 군석(君奭), 호는 낙전당 이다 선조의 딸 정숙옹주 와 혼인해 동양위 에 봉해졌다
(樂全堂) . (貞淑翁主) (東陽尉) .
105) 부인 : 원문의 종옥(種玉)은 중국 漢나라 때 양공(羊公)이 옥을 심어 미인 아내를 얻었다는 고 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106) 구름 ··· 했네 : 간운(看雲)은 고향을 그리워 하다는 의미와 초야에 은거하여 살다는 의미가 있으나 본문의 취지로 보면 재종형의, 10여년 객지 벼슬 생활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107) 거북 ··· 즐기듯 : 구련부조(龜蓮鳧藻)는 거북의 천년 장수와 물오리 떼의 화목함을 말하고 그 와 같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주자의 모친 축수시. (祝壽詩) 중에, “거북이 연잎에 오르듯 천년 장
수를 누리고 물오리가 물풀 만나 즐기듯 일가 풍요롭기를 바라네, .[願上龜蓮千歲壽 永令鳧藻一家,
보인다 권
]” . 1, .
肥 朱子大全 「壽母生朝」
108) 이 글은 1871년 겨울에 신기선이 공주 인근 향리에 사는 이승한 김규찬 두 벗과 노봉아래 취· 규당에서 공부할 때 틈틈이 지은 시를 모아 책으로 만들고 지은 서문이다 공부했던 취규당의 위. 치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그들이 함께 지은 시에서. , ‘華陽山’, ‘錦江’, ‘蘆峰’ 등의 시어를 보면 충 남 서천군 화양면에 있는 화양산 일대로 보인다 화양면은. 1914년 행정구역 개혁을 할 때 화양산 의 이름을 따서 지었으며 이 금강 일대에 갈대밭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면 이 근처 서원에서 과, 거 공부를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09) 갱가(賡歌) : 갱가는 군신 간에 화답하는 노래를 말한다 순임금이 말하기를. , “신하들이 기쁘면 임금이 흥기하고 백관도 화락합니다.[股肱喜哉 元首起哉 百工 哉煕 ]”라 하니 고요, (皐陶)가 화답하 길 “임금이 밝으면 신하들도 어질어 만사가 편안하리다.[元首明哉 股肱良哉 庶事康哉]”라고 하였 다. 書經」 「益稷」.
110) 이남(二南) : 周나라 文王이 도읍을 풍( )豐으로 옮기면서 옛 땅을, 「周南」과 「召南」으로 나누어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의 채읍(采邑)으로 삼았다 문왕의 덕화로 풍속이 아름답게 된 이 두 지역. 의 시를 채집하여 周南「 」
·
「召南」으로 이름을 붙였다.111) 봉( )鳳과 홍( ) :鴻 봉은(鳳隱)은 이승한(李承漢)의 호이며 자는 운경(雲卿)이다 노홍. (蘆鴻)은 김 규찬(金奎燦)의 호이며 자는 찬여(燦汝)이다 이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확인하기 어렵다. . 112) 사무사(思無邪) : 論語」 「爲政」. 공자가 말하기를, “시 300편을 한마디로 말하면 생각에 사특
함이 없는 것이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 , ]”라 했다 원문은. 詩經 「駉之什」에, “駉駉牡馬, 보인다
, , , , , , ” .
在坰之野 薄言駉者 有 有駰 騢 有 有魚 以車祛祛 思無邪 思馬斯徂驔
113) 이 글은 신기선이 중앙 조정에서 성천부사로 부임하는 승선 이재완을 전송하며 아쉬움과 함께 당부의 말을 담은 서문이다 신기선이. 1877 (년 고종14)에 문과 급제하고 정칠품 가주서(假注書)로 있을 때 4살 연하였던 이재완은 승정원에서 동부승지(同副承旨)로 있었다 이 해. 9 ,월 이재완은 성천 부사(成川府使)에 제수를 받았으나 끝내 신병을 이유로 부임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년. 12월 에 세자시강원 보덕(世子侍講院輔德)에 제수되어 나간 것을 보면 신기선이 그를 위해 지은 서문, 은 빛을 바랬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훗날 그를 포함한 형제 조카들이 친일에 나간 것 또한 이. 글에서 정치에 임한 자세를 일견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114) 원문 ‘舜八’을 ‘舜七’으로 수정한다 원문의. ‘舜八’은 이재원(李載元, 1831 1891)∼ 의 자로 이재 완의 사촌형이 된다 서로 역임한 벼슬과 이름이 비슷하여 필사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 .
115) 이재완(李載完) : 1855(철종 6) ?.∼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순칠(舜七), 호는 석호(石湖)이다. 남연군 이구(李球)는 창응 정응 최응 하응, , , 4형제를 두었다 이정응은 친자 이재원을 이창응에게. 출계시키고 자신은 이신응의 아들 이재완을 양자로 받는다, . 1875 (년 고종12) 문과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1905년 을사조약 후 보빙대사(報聘大使)로 일본에 다녀왔으며 육군부장, (陸軍副將) 등을 역임했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일본으로부터 은사금과 함께 후작(侯爵)이 되었다.
116) 청현직(淸顯職) : 학식과 명망이 높은 사람으로 규장각(奎章閣)·홍문관(弘文館) 등에 임명되었던 벼슬 관직을 말한다 지위나 봉록은 높지 않으나 이에 임용된 사람은 뒷날 고관이 될 수 있었다. . 117) 당상관[衣緋拖紫] : 비( )緋는 비옥(緋玉)의 줄인 말로 붉은빛의 관복과 옥관자(玉冠子)이며 자
는 고관이 차는 보라색 인끈으로 당상관 의 관복을 말한다
( )紫 (堂上官) .
118) 탱자나무 ··· 것을 : 東漢의 구람(仇覽)이 덕망으로 백성을 교화한다는 소문이 있자 왕환, (王 이 주부 로 삼고서 주부는 진원 에게 죄를 주지 않고서도 교화했다고 하는데 매나
) ( ) , “ ( ) ,
渙 主簿 陳元
새매가 될 뜻은 없는가?” 하니 구람이, “매나 새매가 되는 것은 봉새나 난새가 되는 것만 못하 다.” 하였다 그러자 왕환이 사죄하면서. , “탱자나무나 가시나무는 봉새나 난새가 깃드는 곳이 아 니다[枳棘非鸞鳳所棲 百里豈大賢之路, ]”라 하였다. 後漢書 권76, 「循吏列傳 仇覽」.
119) 닭 ··· 없다 :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칼을 능력에 쓰이게 된 것을 위로한 것이다 이는 조정. 을 떠나서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 외직도 앞으로 더욱 원대한 경륜을 펼칠 바탕이 될 것이라는 격 려를 한 것이다 공자가 무성. (武城)의 수령이 되어 예악을 가르친 자유(子游)를 찾아가 웃으면서 말하길, “닭을 잡는 데에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느냐.[割鷄焉用牛刀]” 보인다. 論語 「陽貨」.
120) 이 글은 초야의 처사로서 평소에 충효를 실천한 서공의 유고에 대한 서문이다 저자는 서공이. 충효단을 세워 평소에 충효의 예를 다하고 대흉년이 든 해에 이웃을 진휼한 공을 기렸다 또한. 충효는 멀리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부터 실천해야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다만 서공. 의 유고를 확인 수 없으나 이 해, 4월에 저자가 서울에서 국청을 받았던 점을 참고하면 후반기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121) 왕상(王祥)과 맹종(孟宗)의 효성 : 왕상은 진( )晋나라 사람으로 한겨울에 계모를 위해 얼음을 깨서 잉어를 잡아 봉양했다[王祥氷鯉]는 고사가 있으며 맹종은 오, ( )吳나라 사람으로 한겨울에 노 모를 위해 눈 속에서 죽순을 구해서 봉양했다[孟宗雪筍]는 고사가 있다.
122) 절의를 지킨 죽음[伏節] : 복의(伏節)는 복절사의(伏節死義)의 줄인 말로 절의를 죽음으로서 지 킨다는 뜻이다. 宋史 권409 「張忠恕列傳」에, “欲求伏節死義之臣 必求犯顔敢諫之臣, ” 보인다. 123) 전장에서 순직한 충성[死綏] : 사수(死綏)는 군대가 패하면 장군은 마땅히 책임을 지고 죽어야
한다는 말에서 나왔다. 좌전(左傳) 문공(文公) 12년에, “사마법(司馬法)에 장군은 수레에 오르는 끈을 잡고 죽는다.[死綏]” 하였다.
124) 승하[禮陟] : 예척(禮陟)은 제왕의 죽음을 말한다. “은나라 선왕(先王)들이 예로써 올라가 하늘 에 짝하니 나라가 오랜 세월을 지켜왔다, .[殷禮陟配天 多歷年所]”라 했다. 書經 「君奭」.
125) 반곡행소(攀哭行素) : 흰옷을 입고 통곡하며 고기를 먹지 않으면서 애도(哀悼)하는 것이다. 126) 방상삼년(方喪三年) : 부모의 상례(喪禮)로 임금의 상을 입는 것을 말한다. 禮記 「檀弓 上」에
임금을 섬김에 직언으로 대면하여 간쟁하되 숨김은 없어야 하며 좌우로 돌보며 죽을힘을 다하
“ ,
여 복근(服勤)하고 방상 삼년, (方喪三年)을 입는다 라 하였다.” .
127) 국휼(國恤) : 백성 모두 복( )服을 입는 왕실의 상( )喪을 말한다 그 대상은 태상왕. (太上王)·상왕 왕 왕세자 왕세손과 그 비와 빈 등이다 국상 국애 라고도 한다
(上王)· · · . (國喪), (國哀) .
、
128) 망곡수복(望哭受服) : 망곡(望哭)은 먼 지방에서 임금이나 부모의 상( )喪을 당하였을 때 그곳을 향하여 절하고 곡하는 의식이며 수복, (受服)은 가벼운 복상(服喪)으로 갈아입는 것을 말한다. 129) 한 번의 왕명[一命] : 일명(一命)은 처음으로 관등(官等)을 받고서 관리가 되는 것을 말하며 보
통 9품관을 가리킨다. 周禮 「大宗伯」.
、
130) 이글은 고흥의 선비 몇 사람이 論語 「, 學而」의 구절을 취하여 삼호계(三乎契)라는 모임을 갖 고 저자에게 조언을 구한 글이다 신기선은 계의 명칭이 비록 난정계에서 시작됐으나 불철저한. 유학적 자세로 노장사상을 가진 것으로 폄하하고 또한 구로회나 기영회와 같은 문장과 명덕을, 모방할 수준이 아님을 전제하면서 유학 사상에 충실한 여씨 향약계를 본받을 것을 당부한다 따. 라서 삼호계의 모임은 그 바탕을 예를 갖추기 보다는 평소에 자신을 수양하는 자세로 배우고 익 히며 예의 뜻을 알고 실천할 것을 말했다, .
131) 난정(蘭亭) : 중국 소흥부성 서남쪽 30여리에 있는 정자이다 진. ( )晉나라 왕희지(王羲之) 등 명 사 42인이 상사일(上巳日)에 회계산(會稽山)에 있는 난정에서 푸닥거리로 재앙을 쫓는 계사(禊事) 를 하고 술을 마시면서 시를 지었다. 그 내용은 왕희지의 「蘭亭記」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132) 청담(淸談)은 ··· 없느니라 : 진송(晉宋) 시대에 일부 학자들이 노장(老莊)을 숭상하여 천하
만물이 허무(虛無)를 근본으로 한다고 보았다 특히 죽림칠현. (竹林七賢)의 완적(阮籍)같은 이는 예 의에 벗어난 행동이 많았다 이와 같이 신기선도 난정계가 노장. (老莊)을 숭상하는 경향이 있는 것 으로 보고 폄하한 것으로 보인다.
133) 당( )唐나라 구로(九老) : 백거이(白居易)가 은퇴하여 낙양(洛陽)에 머물 때에 호고(胡杲) 등과 함께 만든 아홉 노인의 모임이다. 白樂天詩後集 권20에 구로도(九老圖)의 시에 그 서문이 있다. 134) 송( )宋나라 기영(耆英) : 문언박(文彦博)이 서경 유수(西京留守)로 있을 적에 백거이(白居易)의
구로회(九老會)를 모방하여 부필(富弼), 사마광(司馬光) 등 13인의 학덕(學德) 높은 노인들과 함께 만든 낙양 기영회(洛陽耆英會)를 가리킨다.
135) 남전(藍田)의 향약(鄕約) : 송나라 산서성(山西省) 남전현(藍田縣)의 여씨 형제가 향약을 조직하 고 그 규약을 기술한 呂氏鄕約 을 말한다.
136) 송윤행(宋允行) : 윤행(允行)은 송민섭(宋敏燮)의 자이다 시에 능하여 신기선과 주고받은 시가.
있다 또한 그를 위해 지은. 陽園遺集 권2, 「柳泉齋記」 ; 陽園遺集 권9, 「宋允行輓」 참조. 137) 論語 「學而」,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 , ? , ?”
138) 쓸모없는 물건[弁髦] : 변( )弁은 치포관(緇布冠)으로 관례(冠禮)를 하기 전에 잠시 쓰던 갓이며, 모( )髦는 총각의 더벅머리로 관례가 끝나면 풀어버리니 쓸데없는 물건이라는 비유로 쓰인다. 139) 쓸데없는 형식[笆籬] : 울타리 가에 있는 물건이란 뜻으로 쓸모없는 것을 말한다 파리변물. (笆
의 줄인 말이다
) .
籬邊物
140) 예의 ··· 이겠는가? : 공자가 말하길, “禮云禮云 玉帛云乎哉, ? 樂云樂云 鍾鼓云乎哉, ?”라고 했 다. 論語 「, 陽貨」.
141) 회례[會禮] : 본 뜻은 서로 만나 예를 갖추다 이다 크게는 군신 간에 정의‘ .’ . (情誼)를 나누는 잔 치 모임에서 적게는 향리의 향음주례(鄕飮酒禮)와 같이 모임에서 만나 지켜야 할 예절을 말한다. 142) 원문의 “ ”柔 는 문맥에 맞게 “遊”로 수정한다.
143) 이 글은 송봉호가 고흥 향리의 갑자생과 공부하고 예를 닦기 위해 만든 모임에 이들을 격려한 서문이다 회원. (會元)은 근원으로 모이다 또는 만나다는 의미로, 60간지 중 갑자년을 말한다 당. 시에 이들은 1864 (년 고종1) 갑자생으로 나이가 24세이고 신기선은 1851년생으로 41세였다. 144) 천간지지 ··· 이름이니 : 道德經 에, “吾不知其名 强字之曰道”라 했다 인간의 편의에 의해.
인위적으로 지어진 명칭으로 자연의 본질을 말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
145) 바깥일은 ··· 썼으니 : 옛날에 십간(十干) 중의 갑( ),甲 병( ),丙 무( ),戊 경( ),庚 임( ) 5壬 일은 강일 을, ( ),乙 정( ),丁 기( ),己 신( ),辛 계( ) 5癸 일은 유일(柔日)로 이라고 하여 한 데서 온 말인데,
에, “바깥일은 강일을 가려서 일처리를 했다[ ; , .
禮記 「表記」 大事有時 小事無時 日有筮 外事用剛
라고 했다
; , ]” .
日 內事用柔日 不違龜筮
146) 천일(天一) : 周易 「繫辭傳上」에, “천( )天은 1이고 지( )地는 2이며 ··· 천의 수는 25이고 지 의 수는 30이다 무릇 천지의 수는. 55 ,니 이는 변화를 이루며 귀신을 행하는 것이다.” 보인다 주. 자가 오행의 생성의 이치를 말하면서 “하늘은 1로 수( )水를 내면 땅은 2로 화( )火를 내고 하늘은,
으로 목 을 내면 땅은 로 금 을 낸다 하였다 3 ( )木 4 ( )金 .” .
147) 송치윤 봉호(宋致允鳳浩) : 치윤(致允)은 송봉호(宋鳳浩)의 자로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송간. 의 후손이며 간재 전우 의 문인으로 문학이 뛰어났다
( )侃 , (艮齋) (田愚) . 高興郡誌 .
148) 간계(間界) : 양 경계 사이의 완충지대의 뜻이나 본문에서는 실력 차이 정도의 의미로 쓰였다‘ ’ .
149) 원문의 “ ”禊 는 “契”로 수정해야하나 통용하기 때문에 그대로 둔다, .
150) 이 서문은 송평숙이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사귀고 만든 사원계에 대한 당부의 서문이다 송평. 숙이 젊어서 서울에서 유람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향리 고흥에 돌아와서 뜻이 맞는 네 부류 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계모임을 하였다 비교적 신분관념이 강한 신기선이 신분관에 매인. ‘ 자들이야말로 속 좁은 소장부가 아니겠냐 라고 말하는 의외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
151) 횡거(橫渠) 선생 : 북송(北宋)의 학자 장재(張載, 1020~1077)의 호가 횡거이며 자는 자후, (子 이다 그는 유교의 기본이념인 인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으로 지어서 서재 서쪽에 걸 ) .
厚 「西銘」
어둔 바가 있다.
152) 장재(張載)가 말하기를, “천지에 충만한 것을 내가 그것을 몸으로 하며 천지의 주재를 내가 그, 본성으로 한다 백성들은 나의 동포이고 사물은 나의 벗들이다. .[天地之塞 吾其體 天地之帥 吾, ; ,
라고 했다 권
. ]” . 1, .
其性 民吾同胞 物吾與也, 張子全書 「西銘」
153) 색목(色目) : 신분 각 계층을 각각 한 색( )色으로 보고 네 신분 계층의 사람을 사색으로 말했 다 원래 황인종을 제외한 인종을 말하거나 사색당파를 말한다. .
154) 송평숙(宋平叔) : 송주형(宋柱衡, 1839~1901)으로 평숙은 그의 자로 본관은 여산, (礪山)이다. 어려서 부친이 죽고 현모와 숙부 밑에서 자랐다 노사. (蘆沙) 기정진(奇正鎭)에게 배운 인연으로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이 1896년 의병을 일으켜 체포되었을 때 교분이 있었던 선유사 신기, 선에게 달려가 적극 구원했다고 한다 기우만. , 「南雲宋公行狀」 , 松沙先生文集 권48. 또한 신기 선이 그의 자호(自號)를 위해 써준 「南雲說」이 있다. 陽園遺集 권11.
155) 전횡(田橫)의 빈객 :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자 제나라 왕이었던 전횡이 유방을 피해, 500명을 거느리고 섬으로 들어갔다 유방은 그를 회유하여 낙양으로 부르자 전횡은 이에 응했다 그는 부. . 하 2명과 낙양 근처에 와서 부하에게 말하기를, “지금 한왕(漢王)은 황제가 되고 나는 포로가 되 었는데 그를 알현하려 하니 너무도 치욕스럽다, .……황제가 나를 부른 것은 내 얼굴을 보기 위해 서이니 너희들은 내 머리를 들고 가서 보여 주도록 하라, .” 하고 자결하였다 전횡의 말대로 부하. 들은 그 말대로 한 뒤에 그의 무덤 옆에서 자결하였다 또한 섬에 있던 남아있던 부하들도 그 소. 식을 듣고 모두 자결하였다. 史記 卷94 「田儋列傳」.
156) 중봉(重峯) : 조헌(趙憲, 1544 1592)∼ 의 호이다. 1592 (년 선조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 에서 의병을 모아 영규 대사 등 승병과 연합하여 청주를 탈환하였다 뒤이어 전라도로
(沃川) (靈圭) .
향하는 왜군을 방어 위해 금산(錦山)으로 향하다가 관군의 방해로 대다수 의병이 해산되고, 700 여 의병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분전하다가 모두 전사하였다.
、 、 、
157) 이 서문은 고흥에 사는 송주헌이 다른 지역으로 공부하러 떠날 때에 지어준 격려의 글이다 공. 자가 말한 위기지학(爲己之學)과 항상심(恒常心)을 가지고 독서와 궁리를 통하여 수양할 것을 당 부하고 있다 신기선은 송주헌과 유배 초부터 교유하였고 송씨 일가를 위해 여러 편의 글을 지어. , 주었다 연재 송병선이 송주헌의 조부 송진성. (宋鎭誠)에게 「鶴鳴齋重修記」를 지어 준 것으로 봐서 신기선과의 학통 관계를 짐작할 수가 있다 본문에서 송계헌. (宋桂憲)과 송주헌(宋柱憲)은 다른 자 료에서도 섞여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으나 저자와 관련된 인물은 송주헌(宋柱憲)이다.
158) 원문 “ ”桂 는 “ ”柱 로 수정한다.
159) 일상적인 틀[科臼] : 과거시험에 정해진 문체나 형식에 따라 짓는 상투적인 글을 말한다 여기. 서는 일상적인 틀을 답습하는 것을 말한다.
160) 송주헌(宋柱憲) : 1872 1950.〜 본관은 여산(礪山)으로 자는 윤장(允章)이며 호는 삼호재(三乎 이다 고흥 두원면에서 출신이다 송간 의 후손으로 한천 송력 의 세손이다
) . . ( ) ( ) ( ) 8 .
齋 宋侃 寒泉 宋櫟
증조부는 송영환(宋榮煥)이다 그는 순종황제 복위 운동 등 항일운동 관계로 옥고를 치렀다 시문. . 집으로 三乎齋集 이 있다.
161) 論語 「憲問」.
162) 자장(子張)의 녹( ) :祿 자장이 녹 구하기를 배우려하자 공자가 말하기를, , “多聞闕疑, 慎言其餘, 라 했다
; , , . , , ” .
則寡尤 多見闕殆 慎行其餘 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 論語 「爲政篇」
163) 본성[性分] ··· 할 것 : 「大學章句序」에, “當世之人 無不學 其學焉者 無不有 以知其性分之, , ,
, . , , ,
所固有職分之所當爲 而各俛焉 以盡其力 此古昔盛時 所以治隆於上 俗美於下 而非後世之所能及 라고 했다
” .
也
164) 사람으로 …… 라 하니 : 공자가 말하기를, “南人有言曰:‘人而無恒 不可以作巫醫, ’, 善夫! 不 라고 했다
” . ) .
恒其德 或承之羞, 論語 「子路」
165) 다른 사람이 …… 천 번하라. :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果能此道矣 雖愚必明 雖, , , . , , 장
” 20 . 柔必强 中庸
166) 돌피[稊稗] …… 말라 : 어설픈 학자로 웃음거리가 되지 말고 노력하여 훌륭한 학자가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 “오곡이 좋은 식물이지만 잘 익지 못하면 돌피만도 못하다, . 대저 인( )仁도 완숙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五穀者 種之美者也 苟爲不熟 不如荑稗 夫仁亦在乎, , , .
라고 했다
]” . .
熟之而已矣 孟子 「告子」
糓
167) 원문 계( )桂를 주( )柱로 수정한다.
168) 이 글은 김덕유가 보성에서 서예를 가르쳤는데 그의 문하생들이 봄과 가을에 그의 집에서 예, 와 서예를 익히는 모임을 가지기로 한 것에 대한 격려의 서문이다 저자가 김덕유의 서재를 위하. 여 「攻玉齋銘」을 1887년에 지은 것으로 보면 이 즈음에 서문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
169) 예업(藝業) : 군자가 닦아야할 학업으로 예( )禮
·
악( )樂의 글과 사( )射·
어( )御·
서( )書·
수( )數의 법 인 여섯 가지를 육예 를 말한다 공자는 도에 뜻을 두고 덕을 굳게 지키며 인에 의지( )法 (六藝) . “ , ,
하고 예의 세계에서 노닐어야 한다,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游於藝]”고 했다. 論語 「述而」. 170) 장수유식(藏修游息) : 열심히 공부하고 수양한다는 뜻이다. 禮記 「學記」에, “군자는 학문할
적에 장( )藏하고 수( )修하고 유( )游하고 식( )息한다 하였는데 주.” , ( )註에 “장이란 마음에 항시 학업 을 생각함이요 수란 수습, (修習)을 폐하지 않음이요 유란 일없이 한가하게 노닐 때에도 마음이, 학문에 있음이요 식이란 일을 하다 쉴 때에도 마음이 학문에 있음을 이른 것이니 군자가 학문에, , 있어서 잠시도 변함이 없음을 말한다 라고 하였다.” .
171) 김덕유(金德有) : 자세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단. , 陽園遺集 권11, 「攻玉齋銘」에, “고흥 낙 산아래 석촌(石村)에 우거한다 고 했다 고흥 과역면 월악산.” . (月樂山) 아래 석촌이 있고 김녕 김, 씨 세거지로 보아 이 곳으로 추정된다.
172) 구등노목(鉤藤老木) : 온난한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이다 한방에서 두통 현기증 등의 진정제로. ‧ 사용된다 수령이 오래되면 잎사귀에서 갈고리. ( )鉤 모양으로 매의 발톱처럼 생겼는데 이를 구등
이라한다 따라서 그의 글씨가 힘이 있게 휘감겨 나오는 글씨체였던 것으로 보인다
(鉤藤) . .
173) 유생들[靑衿冠童] : 청금(靑衿)은 詩經 의 청청자금‘ (靑靑子衿)’에서 유래한 푸른 깃의 옷 이‘ ’
란 뜻으로 유생(儒生) 또는 학생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관동. (冠童)은 관례를 한 사람과 하지 않 은 아이라는 뜻으로 모든 남자를 말한다.
174) 진결(眞訣) : 비결과 같은 의미이나 화려하게 글을 쓰는 기법이나 요령의 뜻으로 쓰였다, . 175) 마음이 ··· 바르다 : 유공권(柳公權)은 당( )唐 나라 목종(穆宗)때 학자이자 서예가이다 경학. (經
에 밝고 글씨에도 능하여 자성일가 하고 벼슬이 중서사인에 이르렀다 일찍이 황제가
) ( ) .
學 自成一家
필법을 묻자 그는 마음이 올바르면 필법도 바르게 됩니다, ‘ [心正筆正]’하니 황제는 필법의 비유가, 자기에게 간하는 것임을 깨달았다는 고사가 있다.
176) 안씨(顔氏)의 경계 : 북제(北齊) 안지추(顔之推, 531~591)의 顔氏家訓 은 입신치가(立身治家) 의 법도와 잘못된 시속(時俗)의 변정(辯正)을 말하여 자손에게 훈계한 내용이다 본문의. 안씨의 경계는 바르게 글을 쓰는 자세를 논한 「顔氏家訓雜藝」편의 내용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177) 주자[晦翁]의 명( ) :銘 회옹(晦翁)은 주희(朱熹)의 호다 그가 벼루 옆에 붙인 명. ( ) , “銘에 붓을 잡아서 먹을 적시고 종이를 펴서 글씨를 쓸 때 한결같이 그 속에 집중해야 점은 점으로 획은 획, , 으로 만든다 마음을 놓으면 거칠어지고 화려함을 취하면 미혹해지니 반드시 일이 여기에 있게. , 하여야 그 덕이 신명하다.[握管濡毫 伸紙行墨 一在其中 點點劃劃 放意則荒 取姸則惑 必有事, , , . , ,
라고 했다 ]” .
焉 神明其德, 「朱文公書字銘」
178) “ ”陣 은 “眞”으로 수정한다.
180)
179) 이 글은 고흥에 유배 중인 저자가 중형 두선(斗善)의 수연을 맞이해 축하 서문과 아울러 7언 축수시를 지어서 보낸 것이다 그의 큰형인 종선. (鍾善)은 백부 석조(奭朝)에게 출가하였기 때문에 중형이 집안의 후사를 이었다 저자의 부친이 일찍 별세한 뒤에 빈곤한 집안이었지만 중형이 돈. 독한 행실과 담박한 생활로 가훈을 잘 받들고 성현의 학문을 목표로 마음을 잘 다스린 것을 기리 고 있다 다만 저자가 유배 생활로 술. 1잔 받들지 못한 것을 서글퍼하며 연로하신 모친과 함께 장수를 빌었다 이글은 중형의 회갑년도인. 1892년에 글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180) “幷七律”은 필사할 때 누락된 것으로 보고 추가한다.
181) 이산(梨山) : 신두선(申斗善, 1832~1916)의 호이며 자는 중여, (仲如)이다. 1878 (년 고종19)에 감역관(監役官)·주부(主簿)를 거쳐, 1882년 외직으로 은진
·
삼가 현감을 지냈다가 1898년에 성균 관장으로 재임용되었다. 1884년 이후 관직에서 물러난 것은 갑신정변에 연루되어 유배를 간 신기 선와의 관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182) 언방(彥方) : 후한(後漢) 학자인 왕렬(王烈)의 자이다 의로운 처세로 이름나서 고을에서 송사. 가 있으면 그에게 시비를 가려 달라고 청하였는데 소송 당사자들이 왕렬을 찾아가다가 중
(訟事) ,
도에 화해하거나 멀리 왕렬의 집이 보이면 부끄럽게 여겨 돌아갔다고 한다 어떤 도둑이 소를 훔, . 치다가 잡히자 “무슨 벌이든 달게 받겠으나 언방에게는 알리지 말라 고 애걸하니 왕렬이 그 말, ” , 을 듣고 도둑에게 살림에 보태도록 베를 보냈다고 한다. 後漢書 권81 「王烈傳」.
183) 중궁(仲弓) : 공자 제자인 염옹(冉雍)의 자이며, 덕행이 있는 제자로 알려져 있다. 論語 「顔
에, “ , : ‘ , , ’ , .
淵」 仲弓問仁 子曰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 勿施於人 在邦無怨 在家無怨 보인다
: ‘ ’” .
仲弓曰 雍雖不敏請事斯語矣
184) 자천(子賤) : 공자 제자인 복불제(宓不齊)의 자이다 공자는. 子賤에 대해 “군자로다 이 사람이, 여 노나라에 군자가 없었다면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러한 덕을 취했겠는가! .[君子哉若人 魯無君子 라고 하였다 또한 에 자천이 선보 지방을 다스릴 때 거문고를 타
]” . ,
者 斯焉取斯 論語 「公冶長」
면서 당( )堂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도 고을이 잘 다스려졌다고 했다.
185) 문옹(文翁) : 漢나라 景帝 말기에 촉군 태수(蜀郡太守)로 재직하면서 성도, (成都)에 관학(官學) 을 설치하고 고을의 자제들을 가르쳤으며 그들의 요역(徭役)을 면제해 주었다 또한 성적이 뛰어. 난 이는 고을 관리로 임명하였다. 漢書 권89 「文翁傳」.
186) 선정(先正) : 문묘(文廟)에 배향된 유현(儒賢)을 지칭하나 본문에서는 옛적의 성현을 말한다, . 187) 조박(糟粕) : 학술 예술 따위 학문을 옛 사람이 다 밝혀내고 남은 찌꺼기라는 뜻이다 춘추 시· .
대 제( )齊 환공(桓公)이 대청에서 글을 읽는데 장인, (匠人) 편( )扁이 대청 아래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환공에게 묻기를, “감히 묻겠습니다 대왕께서 읽고 있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 하자 환, 공이 성인의 말씀이라고 대답했다 그가 다시 묻기를. , “성인이 살아 있습니까 하니 환공이 이미?” , 죽었다고 답했다 그가 말하기를. “그러하다면 대왕께서 읽으시는 글은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입니 다.[然則君之所讀者 古人之糟粕已夫, ]”라고 했다. 莊子) 「天道」.
188) 대인(大人) ··· 자이다. : 孟子 「離婁 上」에, “오직 대인만이 임금의 잘못된 마음을 바로잡 을 수 있다 임금이 어질면 어질지 않는 일이 없고 임금이 의로우면 의롭지 않은 일이 없고 임. , , 금이 바르면 바르게 되지 않는 일이 없으니 한번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하면 나라가 안정된다, .
보인다 [惟大人爲能格君心之非 君仁莫不仁 君義莫不義 君正莫不正 一正君而國定矣, ; ; , ]” . 189) 죽음의 구덩이[坑塹] : 신기선이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국문을 당한 것을 말한다.
190) 중양절 ··· 맞으니 : 중양절(重陽節)은 음력 9월 9일 세시 명절이다 신두선의 수연잔치를. 9 월 9일에 치렀으나 생일 날짜와 같은지는 알 수가 없다.
191) 빛나는 ··· 비추네 : 수요(壽曜)는 노인성(老人星) 별칭으로 남극 하늘에 떠서 인간 수명의 연 장 여부를 점친다는 수성(壽星)이다 그 별을 보면 장수한다고 한다 본문에서 덕스런 기운 은 곧. . ‘ ’ 장수를 뜻하니 오래토록 건강하게 오래살기를 바란 것이다.
192) 도연명 ··· 입고 : 도령(陶令)은 팽택 현령(彭澤縣令)을 역임한 도연명(陶淵明)을 말한다 그가. 팽택 현령으로 있을 때 위에서 감독이 오게 되자 아전이 의관을 갖추고 만나 뵈라고 하자 “오두 미(五斗米)를 위하여 구차히 향리의 소아(小兒)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 라 하고 즉시 인끈을.”
풀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宋書 권93 「陶潛」.
193) 노래자 ··· 여전했네 : 노래자는 춘추(春秋) 시대 초( )楚 나라 사람으로 효성이 매우 뛰어나 서 나이, 70에도 어린애처럼 오색(五色) 옷을 입고 부모 곁에서 새 새끼를 가지고 장난을 함으로 써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하였다. 史記列傳 「老萊子」.
194) 원문의 “ ”慨 는 문맥으로 볼 때 “蓋”로 보아 수정한다.
195) 원문의 ‘ ’阮은 ‘ ’坑으로 수정한다. 196) 원문의 ‘ ’晬는 ‘ ’睟로 수정한다.
197) 이 글은 고흥에 거주하는 남양 송씨의 화수계를 위하여 지은 서문이다 남양 송씨는 고려 말에. 송침(宋琛)이 문하시중을 지내고 남양군(南陽君)에 봉해지면서 그 본관이 유래되었다 조선 초 고. 흥에 송호(宋浩)가 거주하면서 그 후손이 많아졌다 저자는 종족 간에 화목하지 못한 병폐를. 4가 지 들고 조상들이 후손을 보는 마음으로 종족의 화합을 당부하고 있다, .
198) 자운(子雲) ··· 같으니 : 자운은 漢나라의 학자 양웅(揚雄)의 자이다 그의 선조가 양. ( )揚지역 의 제후인 백교(伯僑)였는데 양웅, (揚雄)에 이르기까지 5세 동안 아들이 1명씩 있었고 그나마 촉 지방으로 난을 피해 왔기 때문에 촉 지방에는 양웅 외에는 다른 양씨가 없었다 게다가 양웅
( )蜀 , .
에게 아들 1명이 있었으나 일찍이 요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漢書 권87, 「揚雄列傳」
199) 가죽이 ··· 붙이겠는가? : 생존 근거가 없다면 사물이 존립할 수 없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기사에 라 했다
14 , “ ” .
左傳 僖公 年 皮之不存 毛將安傅, ?
200) 수장(壽張) : 당나라 수장 지역의 장공예는 9 ( )세世의 친족을 한집안에서 거느리며 생활하였다. 이에 고종(高宗)이 그 집을 방문하여 그 비결을 물으니 그가 붓과 종이를 요청하여, “참을 인
을 백 번 쓰자 고종이 감복하여 상으로 비단을 하사했다
( )”忍 . 舊唐書 .
201) 강주(江州) : 강주 땅 陳氏의 종족은 칠백 명이었다 밥 먹을 때마다 넓은 자리를 펴고 어른부. , 터 차례로 앉아 함께 먹었다 기르던 개 백여 마리가 한 우리에서 먹는데 한 마리 개가 오지 않. , 아도 여러 개들이 먹지 않았다 한다. 五代史 .
202) 삼상(參商) :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삼성. (參星)은 동쪽 하늘에 상 성(商星)은 서쪽 하늘에 있어서 뜨고 지는 시각이 서로 틀려서 서로 만날 수가 없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 春秋左傳 昭公 元年.
203) 규조(圭組) : 관원들이 지니는 홀( )笏과 인끈으로 전하여 높은 벼슬아치를 가리킨다.
204) 송경숙(宋敬淑) :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의집(義集)이다 전우. (田愚)와 교유하였으며 재야에, 서 도학에 힘쓰고 후진양성에 힘썼다 저서는 시문집으로. 畏己齋私稿 가 있다.
205) 원문에 ‘了了’는 ‘孑孑’로 수정한다.
206) 이 서문은 년도가 기록되지 않았다 다만 정사년. , (1857, 철종 에 출생한8) 30여명이 신분을 크 게 가리지 않고 계모임을 만들고 그 중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 송백춘이 찾아와서, 계의 취지를 설명하고 이의 계명과 서문을 요청하여 지은 글이다.
207) 송백춘(宋伯春) : 1931년에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과의 서찰에는 이름이 훈섭(勳燮)으로 되 어 있다. 松沙先生文集 6권 「答宋伯春勳燮」, 160 .쪽
208) 납갑법(納甲法) : 한( )漢 나라 경방(京房) 등이 周易 의 팔괘(八卦)를 십간(十干)
·
오행(五行)·
오 방(五方)과 서로 배합하여 그 이치를 해설한 법이다 이를테면 건곤. (乾坤)의 효( )爻는 갑을(甲乙)·
목( )木·
동( )東이고 간태, (艮兌)는 병정(丙丁)·
화( )火·
남( )南에 배속하는 등이다 이는 후세의 복서가. 들이 괘효를 간지와 오행에 분배하는 기초가 되었다. 夢溪筆談 권7 「象數」.209) 노공(潞公) : 송나라 때 노국공(潞國公)에 봉해진 명재상 문언박(文彦博)이다 네 황제를 섬기며. 년 동안 장상 요직을 맡아 치적을 이루었다 사마광 등 인과 함께 낙양기영회
50 (將相) . (司馬光) 13
라는 노인의 모임을 만들었다
(洛陽耆英會) . 宋史 「文彦博」.
210) 남전(藍田) : 중국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지명이다 이 곳에 살던 여대충. (呂大忠) 형제들이 그 고을 사람들과 자치 규범을 만들었는데 후세 향약의 기준이 되었다, . 小學 「善行」.
211) 농사짓는 사람들[黃冠襏襫之徒] : 황관(黃冠)은 농사짓는 모자이고 발석, (襏襫)은 거친 천으로 만든 농민 옷으로 농민을 말한다. 禮記 에, “농부는 황관을 쓰는데 황관은 풀로 만든 것이다, .”
212) 이 글은 박철현의 문집 遠齋集 에 대한 서문이다 지금은 비록 그의 집안이 현달하지 못하고. 있지만 명망가의 후손으로 집안의 전통을 잘 이은다면 기대할 날이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저. 자는 박철현과 교유관계가 없었지만 그가 임헌회와 기정진의 문인이며 그의 아들 중백, , (重栢)과 교유한 인연으로 서문을 쓴 것으로 보인다.
213) 경행(經行) : 경명행수(經明行修)의 줄인 말로 경서에 밝고 행실이 바르다는 뜻이다 과거에 의. 하지 않고 학문과 덕행이 높은 이를 천용(薦用)하는 인재 등용 방법의 하나이기도 했다.
214) 근원이 ··· 있다 : 맹자가 말하길, “근원이 있는 샘물은 끊임없이 솟아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흘러서 구덩이를 모두 채우고 나아가 바다에 이른다 근본이 있는 것은 이와 같으니 공자가 이. 점을 취한 것이다 근원이 없으면. , 7, 8월 장마로 구덩이에 모두 물이 가득해도 그 마르는 것은 가만있어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명성과 소문이 실정과 지나친 것을 군자는 부끄러워한다. .[源泉
, , , , , . , ,
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 有本者如是 是之取爾 苟爲無本 七八月之間 雨集溝澮皆 라고 했다
, , , ]” . .
盈 其涸也 可立而待也 故聲聞過情 君子恥之 孟子 「離婁 下」
215) 단사(壇社) : 국가에서 토신(土神)에게 제사하는 사직단(社稷壇) 안의 동쪽에 자리한다.
216) 원재집(遠齋集) : 박철현(朴喆炫, 1831~1888)의 문집이다 그의 호는 원재 자는 원식. , (元式), 본관은 진원(珍原)으로 장성출신이다 그의 장인은 유영. (柳泳)이며 처가 인연으로 고흥에 옮겨 산, 것으로 보인다 재야에서 수양과 후진양성을 했으므로 문집은 시문과 서찰을 위주로 되어 있다. . 묘갈명은 그의 아들 박중면(朴重勉)의 스승인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이 썼다.
217) 위남(葦南) : 박희중(朴熙中, 1368~1446)의 호이다 자는 자인. (子仁)이다 조선 초에 주요 관. 직을 역임하고 예문관 직제학을 지냄 또한 명필로도 이름이 있다. . 1437 (년 세종19)에 이조참판 제수와 함께 진원군(珍原君)으로 봉( )封해져서 진원 박씨의 본관으로 삼았다.
218) 명검(名檢) : 명교(名敎)의 의미로 예의법도를 말한다 곧 언행을 검속하여 조심한다는 뜻이다. . 219) 사천(泗川) : 박정영(朴挺榮, 1639~1688)으로 자는 사직(士直)이다 우암 송시열의 추천으로.
사천현감(泗川縣監)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