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록
I. 서론
2. 통합인문 교양교육의 변화 필요성
대학이 처한 거시적인 위기 상황 하에서 교양교육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인 문학 교육은 그 어느 때보다 고등교육이 제공해야 할 핵심적인 중요성을 부여받고 있다. 한 때 교양교육은 전공교육을 뒷받침하기 위한 기초교육 혹은 수준 높은 문 화를 향유하기 위한 엘리트들의 소양교육 정도로 여겨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오 늘날 교양교육은 탈맥락적이고 탈기원적인 정보의 범람 속에서 방향을 상실하지 않고 자기 삶의 목적과 가치를 형성해 나가면서 주어진 정보들을 반성적으로 수용 하고 통합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종합적인 인지능력과 창의적인 사고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장소가 되고 있다. 또한 통합인문 교양교육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삶 의 양식과 의사소통의 경험 양식으로서 민주주의 국가가 제공해야 할 중요한 공동 체 교육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인문학 교육의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최근 10여 년간 우리가 자 주 접하는 인문학에 대한 반응은 위기와 몰락의 목소리들이다. 이런 인문학의 위 기담론은 주요하게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관련되어 있는데, 대학을 경영주의와 성과주의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바라보는 시선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러한 시선이 단지 대학의 경영자들만의 것이 아니라 소비자-학생의 시선들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대학을 상품을 제조하는 공장으로 이해하는 경영자-교수의 관점 과 상당힌 비용을 지불해가며 그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학생의 입장에서 학문 을 바라본다면 인문학은 가장 고비용의 저효율을 가진, 환급성이 거의 제로에 가 진 상품이다. 그렇다보니, 최근 대학에서 인문학 학과들은 학생들에게 외면 받고 인력시장에서는 천대받는 처지에 놓여있다. 이미 중위권 대학들에서 인문학 학과 들은 계열별로 통합되거나 폐과되는 수순을 상당부분 밟고 있으며, 상위권 대학들 에서도 인문학 학과들은 취업도 안 되면서 공부하는 것은 지나치게 벅차서 학생들 이 기피하는 학문이 되어가고 있다. 실용성과 경제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현 세적 가치에서 인문학은 한마디로 가장 비현실적이고 한가한 학문으로 취듭된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인문학 안에서는 생존을 위한 다양한 자구책을 구상하면서 점 차 전공중심주의를 탈피해 여러 학과와의 연합을 형성하거나 실용학문과 결합할 수 있는 융합적이고 다학제적인 방안을 모색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인문학은 다른 한편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필요성이 절실히 요청되는 학문이기도 하다. 학문분과로서의 인문학에 대해서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지만, 교양교육에서는 오히려 인문학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최 근 서점가에서 개론서 형태의 인문학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도 이러한 맥락 과 관계된 것으로, 세분화된 전문지식이 어느 때보다 중시되면서 발생하는 인간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사유의 힘으로 사람들은 인문학을 찾는다. 이러한 입장을 대표하는 학자인 도정일은 현대 사회의 위기의 핵심에는 ‘인간의 위기’가 놓여있 다고 하면서 인문학의 상상력이 중요함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인간을 사유하고 그의 문화적 성취를 연구하는 것이 인문학이다. 인문 학적 사유의 지평에 언제나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 ‘인간’이다. 현대 서구 인문학의 영향 아래에서 지난 1세기 동안 전 세계에 걸쳐 인문학적 연구 와 교육을 지배한 것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 해체이고 인간의 폐기다. 우 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인문학이 나서서 인간을 폐기하고 해체하지 않더 라도 문명의 더 강한 세력들(이를테면 시장, 자본, 미디어)이 충분히 인간 을 해체해 놓았다는 사실이다. 인간을 해체하고 강등시키는 문명의 세력 들로부터 ‘인간을 회복’하는 것이 현대 인문학이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9)
도정일에 따르면 소비사회와 투명사회로 인해 내면성이 더욱 고갈되어가는 현대 사회에서 인문학은 인간의 가치를 회복시킬 수 있는 최고이자 최후의 학문이다.
반면 경제발달의 측면에서도 인문학은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는데, 이는 스티브 잡스로 대변되는 최근 기술 분야의 발달이 기술 내부의 발전에서 동력을 얻기 보 다는 상상력과 창의성 같은 인간적인 것과의 결합에서 시너지를 내고 있기 때문이 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의 경제정책 역시 인문학적 창의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는데, 송승철의 다음 글은 이러한 맥락을 잘 짚어주고 있다.
“과거 수출주도형 경제의 동력이 선진경제의 주문생산이었듯, 학문연구 분야도 중심부로부터 하청을 받는 구조였다. 연구의 주제, 방향, 목적은 중심부에서 이미 결정된 상태에서 완제품의 일부를 하청받는 구조일 때 시급하게 요청된 것은 전체적인 통찰을 함양하는 교양교육이 아니라 특정 한 기술과 전공지식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우리나라 일부 기업들이 교양과 인문학적 소양을 재고하게 된 이면에는 선진 제품을 모방하기도 쉽지 않은 경제질서의 국면변화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10)
중요한 점은 인문학의 갱생을 주장하는 위의 두 가지 관점이 모두 전공학문으로 서의 인문학이 아닌 교양교육으로서의 인문학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정일 의 경우에는 인간의 가치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인문학을 고등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교육단계에 놓아야 한다고 보는 반면, 송승철의 경우에는 경직된 분과학문주의와 전공중심주의로 인해 현실과 괴리되어 자멸해가는 인문학을 새롭게 정착시키기 위 해서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소수의 상위권 대학과 인문학을 교양교육 차원으로 수용하는 교육 중심의 대학으로 나눌 것을 주장한다. 교양교육으로서의 인문학이 고등교육의 가장 기초적인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일치하고 있는 것 이다.
인문학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또 하나의 관점은 민주적 시민교육과 관련해서이 다. 이를 대표하는 학자는 존 듀이(John Dewey)로, 그는 민주적 시민성 교육은 하나의 특정한 교육과정으로 완수되고, 목표치의 학습 성과를 도달하는 방식으로
9) 도정일, “인문학적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창립 100주년 기념 강좌』, 2014년 10월 15일 강연록, 3쪽.
10) 송승철, “인문대를 해체하라! -‘전공인문학’에서 ‘교양인문학’으로,” 『안과밖』, 영미문화연구, 제34 호, 2013, 164쪽.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그에 따르면 민주적 시민성과 관 련된 시민교육은 한 번의 학습과 평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육 시스템 안 으로 녹아들어가 전체적인 방식에서 학습자의 태도와 실천에 녹아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가 개개인이 서로 협력하고 서로를 통합적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지지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자, 이를 가로막는 장벽들을 스 스로 파악해서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인문학과 예술에서 찾았다. 또한 마사 넬 스미스 (Martha Nell Smith)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재정위기와 관련해 당시 총장이 었던 마크 유도프(Mark Yudof)가 2009년에 국영 TV에서 했던 발언을 문제 삼으면 서11),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 자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대학과 학문을 시장경 제의 프레임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비판하면서 듀이의 주장을 계승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인문학은 인간의 조건을 문제 삼고 이를 알고자 하는 지식의 심장이 다. 인문학은 경제성을 따지는 기업적 관점이 아니라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공적 인 자산의 개념으로 보아야 하며, 생동감 넘치는 강한 민주주의가 유지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수 학문이자 교육이라고 주장한다.12)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본다면, 통합인문 교양교육은 자칫 추상화와 파편화, 계량 화로 치우칠 수 있는 삶에 대한 태도를 타인에 대한 공감과 소통으로 견인해 내는 교육이다. 또한 통합인문학은 다양한 관점과 배경에서 도출된 지식들을 통합적으 로 사고하도록 해줌으로써 외부의 문명사적인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도 복잡 성과 순환성, 상호의존성이라는 공동체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측면이 있다. 또한 통합인문학은 타인과의 관계맺음을 통해서 스스로를 실현시키고 공동 체적 가치에 대한 책임을 일깨워줌으로써 민주주의를 강화시킬 수 있는 시민교육 이다. 마지막으로 통합인문학은 현재에 만족하거나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꿈과 희망이 실현될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식들을 모색 해보는 미래적 교육이다. 이런 점에서 통합인문학은 한 인간의 내적인 견고성을 키워주는 동시에 지식정보화 사회가 요청하는 변화들에 대해서 통찰력 있게 대응
11) 마크 유도프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경영 상황은 상당히 괜찮습니다. 우리는 그와 관련해서는 꽤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립대학이 운영하는 병원은 만원이고, 의료 사업이나 의학연구, 환자간호 사 업도 상당히 잘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진짜 문제는 이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영문학부의 봉급 을 지불해야 합니까? 우리가 해야 합니다. 그럼 누가 인문학과들, 예를 들어 사회학과에 비용을 지불 해야 합니까? 우리가 처한 어려움은 바로 이것입니다.” Martha Nell Smith, 「The Humanities Are a Manifesto for the Twenty-First Century」, Liberal Education, Winter, 2011, p.50.
12) Martha Nell Smith, ibid., p.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