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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체제전환국 시장화 사례 비교
시장경제란 경제 내 존재하는 다수의 자원이 시장을 통해 분배되 는 경제를 의미한다. 즉, 가격이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 는 체제인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경제체제를 구축할 때, 체제 의 발전 전략으로서 계획경제체제를 채택하였다. 기존의 발전된 자 본주의 경제를 따라잡기(catching up)위해 중공업 우선의 성장 전 략을 추진하였다. 중공업 우선 성장을 위해서는 경제 내 자원과 노 동력을 특정 산업에 집중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 주체들의 자유 로운 의사결정 대신 당과 국가의 경제 조직이 경제 목표와 방법을 결정하고 경제 관료들에 의해 집행이 이루어지는 관료적 조정방 식16)을 경제운영 메커니즘으로 선택하였다.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있어서 시장은 궁극적으로 소멸될 경제공간이었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발전 전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경공업 부문은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개별 경제 주체들의 소비는 억 제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부문 간 불균형 발전이 경제발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산업 간 연관효과가 발생해야 하는데, 특정 산업의 집중 육성은 이러한 연관효과를 낳지 못한다. 이에 따라 경제구조의 비효율성은 심화되고 계획과 현실 사이에는 심각한 괴리가 발생하게 된다. 현실 경제의 저발전이 심화되면서 개별 경제 주체들은 제한된 범위에서 생계유지를 위한 경제활동으로 계획 외 경제활동을 선택 하게 된다. 계획 부문에서 획득할 수 없는 재화와 서비스를 시장을 통해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시장을 억제하고자
16) 시장의 자원배분 역할을 지양하고 이 역할을 계획으로 대체하고자 했던 사회주의 국 가에서는 계획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관료들이 행정·명령을 통해 경제를 운영하였다.
관료적 조정은 수직적 위계에 의거한 정치경제적 지배방식을 의미한다. János Kornai, Socialist System: The Political Economy of Communism (Princeton:
했음에도 현실에서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는 거의 없었다.
계획경제체제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인민의 경제적 요구를 충족시 켜 주지 못한다는 점이 현실화되면서 당은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도 경제발전전략을 수정하는 개혁을 선택하게 된다. 개혁의 방향은 생 산 주체들의 자율성을 일정한 수준에서 허용하고 의사결정의 비효 율성을 줄이기 위한 분권화를 시행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경제 의 조정방식으로 시장이 다시 등장할 수 있는 조건이 강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에 대한 각 국가들의 대응은 자신들이 처한 정치적·
경제적 조건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났다.
시장화 현상에 대한 사례 분석은 북한경제에서 나타나고 있는 시 장화 및 이와 관련한 현상을 분석하는 데 시사점을 줄 수 있다. 본 장에서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시장화가 진행되는 양상과 이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대응을 통해 기존의 사회주의 경제구조에 시장화 현 상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자 한다. 본 장에서는 중국과 베트남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과 베트남의 경우,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하던 시기에 시 장에 대한 인식과 시장화 현상에 대한 정책적 대응에 있어서 북한과 유사한 측면이 있기에 두 국가의 시장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 대응과 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는 각 국가가 처한 상황이 다르 기 때문에 중국과 베트남의 경로도 차이점이 존재하며 경제적 성과 도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북한 또한 향후 시장경제에 대한 구체적 인 정책 및 조치는 북한경제 상황에 맞게 이루어질 것이다.
다만, 위 국가들은 현재 전면적인 경제 개혁·개방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현재 북한의 경제와 시장화 조건과는 상이한 측면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각 국가들의 사회주의 경제 수립 시기부터 개혁·개방 초기 시기까지로 한정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가. 중국의 경제개혁: 시장의 통제와 확대
(1) 사회주의 경제 제도 건설 시기: 축소 및 억제기(1949~1957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한 1949년, 중국공산당은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노선을 선포하였으나 경제적으로는 길었던 전쟁이 가져온 폐허 상태를 복구하고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출발점 에 서 있었다. 이 시기(1949~1952년) 중국공산당은 신민주주의 개 혁을 통해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추진하였다. 1949년 10월 중화인민 공화국 수립을 선포한 중국은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였다. 경제 부문에서 붕괴된 기반 시설을 복구하고 경제발전의 기반을 마련하고 사회주의 산업화를 건설하고 자 하였다. 관료자본을 몰수하여 사회주의 산업화를 추진하였고, 농 촌 분야에서는 토지 개혁을 통해 소작인들에게 토지를 분배하였다.
그 결과, 중국공산당은 경제의 주요 부문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고, 높은 경제적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신민주주의 개혁의 성과를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사회주의 경제의 건설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1953~1957년의 기간 동안 제1차 5개년 계획을 실시하고, 이 과정에서 계획경제체제를 완성하였다. 구체적 으로는, 사회주의 3대 개조(三大改造)를 완성하고 중공업 우선 발전 전략을 통한 사회주의 공업국가 건설, 농업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실 시하여 사회주의적 소유를 확립하고 중앙집권적 사회주의 경제로의 전환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특히, 이 시기 중국 정부는 기존의 사적 부문에서 경제활동을 하던 노동력을 국영기업과 협동단체로 이동시 킴으로써 사적 경제 부문을 축소시켜 나갔다. 그 결과, 국민소득에 서 사적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1953년 79%에서 1957년 7%로 대폭 하락하였다.17) 생산 부문에서는 국유기업이 65%, 공사합영기업이
35%를 차지하였고, 생산합작사 건설을 통한 농업협동화 추진 결과 1956년 말에는 전체 농가의 약 96%가 참여하게 되었다.18)
(2) 대약진 운동의 전개와 실패, 그리고 시장의 부분적 허용 (1958~1965년)
1958년 5월에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8기 2차 회의에서 당의 노선 으로 사회주의 건설총노선, 대약진 운동, 인민공사 운동을 골자로 하는 ‘삼면홍기(三面紅旗)’가 채택되면서 경제건설노선으로 대약진 운동이 결정되었다. 대약진 운동의 목표는 중국적 특색을 가진 사회 주의 건설을 통해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고 사회주의 건 설을 가속화한다는 것이다. 이 운동은 공업과 건설 분야에 대중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근대화를 실현하고, 농업 부문에서는 인민공사 운동을 통해 농업 부문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강화하고 생산성을 제 고시키고자 하였다. 행정기능과 생산기능을 병행하는 인민공사를 전국적으로 각 향마다 1개씩 설치하고 사실상의 지방정부 역할을 수 행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1958년 전국적으로 인민공사 설립 운동 을 완료하고 이에 따라 모든 토지는 공유하고 매매를 금지하는 공유 제를 기반으로 농촌 사회를 개조하였다.
중국공산당은 대약진 운동을 통해 단기간에 주요 생산물의 생산 을 2배 이상으로 증가시키는 것을 목표로 추진하였으나 실패로 돌아 간다. 공업 부문에 대한 무리한 동원에 따른 농업노동력의 부족은 생산성 저하를 야기하였고, 자연재해까지 겹치면서 발생한 식량위
17) Xin Ren, “The Second Economy in Socialist China,” in The Second Economy under Marxist States, ed. Maria Los (London: Palgrave Macmillan, 1990), p.
143.
18) 이종수·김재홍, “대약진 운동기 중국의 토지운영체계에 관한 연구,” 농업과학연구, 제31권 2호 (2004), p. 167.
기는 농촌사회에 심각한 기근을 발생시켰다. 농촌사회의 위기는 공 업부문으로 이어져, 계획은 달성되지 못하였고 경제 상황은 오히려 악화되었다. 계획의 실패는 자연재해와 중소분쟁에 따른 소련 기술 진의 철수 및 원조 중단과 같은 외부적 요인도 작용한 결과이지만, 근본적 원인은 당시 중국 경제 상황에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급진 적 경제정책을 추진한 데 있었다. 즉, 규모화와 공유화는 객관적 조 건과 생산성 증대를 위한 유인체계를 고려하지 않고 대규모 노동력 동원과 사회주의 중국 건설이라는 심리적 유인에 기댄 낙관론이 낳 은 결과였던 것이다.
대약진 운동에 따른 정책 실패가 명약관화해지면서 1961년 1월 중 국공산당 제8기 대회의 9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9중전회)에서 조 정정책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였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를 책임지고 일선에서 물러난 마오쩌뚱을 대신하여 행정권을 장악한 류사오치를 비롯한 실용주의자들은 ‘팔자방침’을 내걸고 경제 부문에 여러 조정 정책들을 도입하였다. 기존의 급진적인 경제정책을 부분적으로 수 정하여, 개별 경제 주체들의 생산의지를 높일 수 있는 정책들을 도 입하기 시작하였다. 대약진 시기에 실패한 경제정책을 반면교사 삼 아 과도한 집체화를 축소하고 시장경제적 요소들을 다시 도입하여 경제적 효율성을 제고하고자 하였다. 농업 부문에서는 ‘삼급소유제’
를 실시하여 협동화의 규모를 축소하였고, 공업 부문에서도 기본 건 설규모를 축소하고 소비재 공업의 발전과 자립적 기술체계를 확립 하기 위한 정책들을 실시하였다.
이 시기 시장에 대한 중국 당국의 시각은 이전과 다소 달라진다.
계획 부문에서 생산된 생산물만으로는 수요를 충당할 수 없다는 것 이 자명해지면서 1960년대 초부터 시장을 다시 도입한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 경제도 다소 활성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가재도구와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