Ⅶ1. 연구목적 및 연구내용
2. 정치경제적 사건
우리가 세대를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기계적으로 나누지 않는 이상, 세대구분의 기준은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나 상황의 변화, 그리고 그에 대한 특정 세대의 경험과 반응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점 에서 만하임의 ‘결정적 집단경험’, 즉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공동경험은 여전히 유용한 개념이다.24 이 절에서는 북한 청소년 들이 유사한 연령대에서 공통으로 경험하였을 주요한 정치경제적 사 건들을 개괄하고, 이러한 사건을 이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살 펴본다.
이 연구의 분석대상인 연령집단은 10대 중반에서 20대 후반까지의 연령집단으로, 1980년대 중반에 태어나 학령기에 고난의 행군을 맞은 연령집단부터 경제난 시기에 태어나 경제난 상황 속에서 유아기를 보 내고 시장이 활성화되는 시기에 학교에 입학한 연령집단까지를 포괄 한다. 이들이 출생 후 경험하였을 1990년대 이후 북한의 주요한 정치
24_박재흥, 뺷한국의 세대문제뺸, p. 120.
Ⅰ
Ⅱ
Ⅲ
Ⅳ
Ⅴ
Ⅵ
Ⅶ
경제적 사건을 연대기별로 표시하면 다음 <그림 Ⅱ-2>와 같다. 사회 주의권 붕괴, 김일성 사망, 고난의 행군, 7·1 경제관리개선조치와 종합 시장제 등 일련의 경제개혁, 화폐개혁, 김정일 사망과 김정은 정권의 등장 등이 그에 해당한다.
그림 Ⅱ-2 주요 정치경제적 사건
30대
20대
10대
1974 1984 1994 2004 2013
89 94 95 02 03 09 12
사회 주의 붕괴
김일 성 사망
김정 일 사망 김정 은 정권 고난
의 행군
종합 시장
화폐 개혁 7.
조1 치
가.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세계청년학생축전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동구 사회주의권과 소 련의 붕괴는 북한 정권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북한의 대외무역 과 협력의 주요 상대국이었던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이 해체되자 북 한의 경제 침체는 가속화되었고, 북한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합영·합 작, 경제특구정책 도입 등 부분적인 개혁·개방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사회주의권 붕괴 소식이 상당한 시간을 경과한 이 후 고도로 통제된 형태로, 역사적 교훈 위주로 전달되었다. 따라서 이 세계사적 사건은 그 역사적 비중에 비해 북한 주민들에게 그리 깊은 기억을 남기지 못하였다. 더군다나 10대, 20대의 젊은 세대들은 당시 에는 학령기 이전의 어린 나이였거나 태어나지조차 않았기 때문에,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던 사건으로 몇몇 청소년들이 언급한 것 은 오히려 1989년에 북한에서 개최되었던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다.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 개최된 세계청년학생축전에는 남한 의 대학생 임수경이 참석하였고, 이 사실을 북한의 기성세대들은 많이 기억하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유입되 고 ‘임수경 식’ 유행이 유통되면서 북한 일반 주민들의 한국에 대한 인 식의 변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임수경의 차림새를 보고 젊은 여성들이 이를 따라하는 풍조가 나타났으며, 북한 주민들이 한국 사회 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기도 하였다.25
연구 과정에서 접한 청소년 중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과 축전에 참가했던 임수경에 대해 이야기한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이는 본인 이 직접 겪은 사건에 대한 기억이기보다는 부모 세대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거나, 기록영화를 통해 접한 사실을 기억하 고 있는 것이었다.
그게 북한에서 전국 뭐 청년학생이라고 그거 한 다음에 북한이 망했다고 그렇게 들었어요. 저희 엄마가 그냥 말했어요. 북한 그 거 축제하고 망했다고. 그 다음에 남한은 올림픽하고 일어섰다 고. (…) 그냥 그때 엄마들만 알 뿐이지 학생들은 별로--, 부모 님들한테서 듣지 학교적으로 뭐 알린다든가 그건 게 전혀 없어
요.26 (사례 13 구술녹취록, 2013 I/7-8)27
25_김석향, “1990년 이후 북한 주민의 소비생활에 나타나는 추세 현상 연구,” 뺷북한연구 학회보뺸, Vol. 16, No. 1 (북한연구학회, 2012), pp. 194, 201.
26_녹취록에 사용된 기호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은 생략된 인용, --는 말늘임 표시,
(( ))은 연구자의 부연설명을 의미한다.
27_이 글에서 녹취록을 인용하는 방식이다. 괄호 안의 표시는 구술자 사례 13의 2013년 첫 번째 구술녹취록 중 7~8쪽에서 인용한다는 뜻이다.
Ⅰ
Ⅱ
Ⅲ
Ⅳ
Ⅴ
Ⅵ
Ⅶ
나는 그때 13차랑 뭔지도 모르고요. 실은-- ((임수경 방북은)) 그때 기록영화 보고 알았죠. 통일의 꽃 림수경이라고 김일성하 고 사진도 찍고 뭐 이랬댔는데--. 무슨 림수경이 그 다음에 경 찰하고 살고. 그게 기록영화, 아 때부터. 아, 한 몇 살 땐가, 어릴 때 본 거 같은데. (…) 느낌은 없었고요, 림수경이 좋다는 거--.
그러니까 13차라면 무슨 뭐, 크게 뭐 외국이고 뭐 이걸 생각 않 고 림수경을 우리 먼저-- 저는 이렇게 생각했으니까. 아무튼 김 일성이하고 사진 찍고 이러니까 ‘저것도 좋은 사람이로구나.’ 했 는데. (사례 9 구술녹취록, 2013 I/39-40)
나. 김일성 사망
1994년 7월 8일, 정권 수립 후 약 50년간 북한 사회를 이끌어왔던 최고지도자 김일성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대다수의 북한 주민들에게 아버지를 잃은 것과 같은 큰 정신적 충격과 슬픔을 가져다주었다. 20대 초반의 청소년들은 유아기에 이 사건을 겪어서 그 충격을 직접 기억하 지 못하고 김일성 사망에 대해 자기 스스로는 별다른 느낌을 갖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대부분 부모 세대로부터 전해 들은 김일성 사망 당시의 정황을 이야기하면서 이를 자신들이 직접 겪은 김정일 사 망 시의 정황과 비교하고 있다. 이에 비해 당시 초등학교 학령기였던 20대 후반의 북한이탈주민들은 김일성의 사망에 대해 생생히 기억하 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
네, 그냥 죽었다니까 죽은가보다. 저는 기억나는 게 없는데, 저 희 엄마랑 말하는 게 김일성 죽었을 때는 진짜 사람들이 ((김일 성이)) 잘해준다 해가지고, 믿어가지고--, 진짜로 그 사람이 좋 다고 생각하고 막 사람이 진짜 많이 울었다고 해요. 그런데 김정 일에 대해서는 완전 틀린 거예요. 사람들이 울고 싶지 않아서.
저희 김정일이 딱 죽기 전에 넘었는데, 김정일이 죽은 사람들이 랑 같이 왔거든요. 오면서,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는 게 “아, 김정 일이 죽어도 막 울음이 안 나오는 거 내가 어떻게 울어.” 할 수
없이 우는 척 하고. 어떤 사람은 울지 않았다고 잡아간 사람까지 있대요. 그래서 말하는 거예요. 김정일에 대해서는 되게 아니다 싶었는데, 김일성이 때는 진짜로 믿고 울었대요. (사례 13 구술 녹취록, 2013 I/9)
엄마도 말하는 게, 김일성 때는 진짜 좋았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김일성에 대한 기억은 좋아요. 되게 자애롭고. 막 그런 진짜 기록영화에도 되게 멋있게 나오지 않아요. 그냥 웃는 거만 나오고 그러고 하니까, 되게 저는 좋았어요. (…) ((김일성 이 살아있었으면 더 잘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있은 거 같아요. 엄마가 말하는 게 계속, 김일성이 땐 진짜 공산주의고 좋았다니까, 나도 그때 태어나지 왜 지금 태어났을까 하는 좀--.
네, 어쨌든 그런 생각이 좀 있었던 거 같아요. (사례 14 구술녹 취록, 2013 I/20, 22)
특히 김일성 사망 시 학령기 연령이었던 20대 후반의 북한이탈주민 들 가운데는 김일성 사망 사건을 기억하고, 이를 김정일 사망과 비교해 서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김일성이 죽은 때는 제가 열 살 때인가 그때인데 기억이 생생한 게, 웃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고. 다 울어가지고 있었던 그런 기억이 나요. 동상에 가도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가지고 꽉꽉 메 워가지고, 그리고 기절하는 사람도 많고 그랬는데. 이번엔 ((김 정일 사망 때)) 그런 거 하나도 못 봤어요. 그리고 저랑 친구랑 맨날 집에 붙어 있다가, 박혀 있다가, “야 그래도 동상 한 번 가 야 되지 않니?” 걔는 그만하면 김일성주의 정수분자라 그럴 정 도로 그런 당일군 가족인데도 집에 붙어가지고 안 나가는 거예 요. 그러다가 한 번은 나가봐야 되지 않나 해가지고 둘이서 나갔 는데, (…) 갔는데도 사람들이 없어가지고, 몇 명 씩 알든 모르 든 사람들이 몇 명 모여야지 그 동상 올라가는 계단으로 가서 인사하고 이렇게 내려오고 하는데, 사람들이 없어가지고 오래 서서 기다리는 거예요. 기다리다가 가서 사람 차면은 인사하고, 내려오면서 하는 소리가 “야, 왜 이렇게 사람들이 없냐?” (사례 11 구술녹취록, 2013 I/9-10)
Ⅰ
Ⅱ
Ⅲ
Ⅳ
Ⅴ
Ⅵ
Ⅶ
청소년들은 김일성이 생존해 있었던 시기를 직접 경험한 경우는 물 론이고 이 시기를 직접 겪지 못했거나 기억하지는 못하는 경우에도, 부 모 세대에게 들은 이야기와 학교교육, 공식 언론매체 등을 통해 김일성 을 좋은 지도자로 기억하고, “김일성 때”에 대해 우호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의 구술자들이 김일성 사망에 대해 언급하 면서, 이를 김정일 사망 당시의 정황과 비교하고 있는데, 이는 청소년 들이 직접 경험한 “김정일 시대”의 경제적 어려움과 김정일의 사망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이 이와 대비되는 김일성 시대를 좋은 기억으로 채 색하도록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 고난의 행군
‘고난의 행군’이라는 대명사로 명명되는 1990년대 중반의 경제난은 해방 이후 북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자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북한 사회와 주민 의식의 변화를 촉발시킨 계기가 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 연구에서 규명하고자 하는 북한의 새로운 세대는 이 사건을 즈음하여 태어난 연령군부터 가장 민감한 성장기인 중학교 학령기 때 이 사건을 경험한 연령군을 포괄한다.
북한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구소련,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사회주 의 배급제를 유지하였다. 1980년대 후반에는 중국의 개혁·개방에 영향 을 받아 부분적으로 라진·선봉에 특구를 지정하는 등 경제난을 해결하 려 노력하였지만, 1990년을 전후로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면서 경제상 황이 급속히 악화되었다. 1990년대 초반 핵 위기와 대외관계 악화, 1990년대 중반의 김일성 주석 사망과 자연재해가 겹치면서 최악의 경 제난을 겪게 되고, 1995년부터 소위 ‘고난의 행군’에 접어들게 된다.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