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절에서는 북한 청소년들의 세대경험에 영향을 미친 1990년대 이 후 사회문화적 환경의 변화에 대해 살펴본다. 배급제 붕괴와 시장 활 성화에 따른 생존방식의 변화, 가족 구성과 학교교육의 변화, 외부문화 의 유입과 정보 유통 활성화 등이 북한 청소년들의 경험을 구성하는 주요한 사회문화적 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가. 생존방식의 변화
북한에서는 1990년대 중반 배급체계가 붕괴되었고, 현재까지도 배 급체계는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다. 간간히 평양을 중심으로 배급이 재 개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그것마저도 지속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북한의 주민들은 직장의 월급과 국가배급에만 의존해 서는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선행연구에 의하면, 북한이탈주민 34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 사에서 배급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응답자 비율은 2008년 57.3%,
2009년 64.1%, 2010년 63.2%, 2011년 76.8%로 계속 높아졌다. 반면
배급을 받았다고 응답한 북한이탈주민은 2008년 5.5%, 2009년 6.4%,
2010년 2.6%, 2011년 8.9%로 답하고 있어 실제 북한에서는 극히 일부
주민에게만 식량이 배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31배급 수혜 정도는 지역별로 차이가 있어, 평양 거주자 중 60%가 식량배급을 받았다고 응답한 데 비해, 강원도 거주자의 75.0%, 함경남도 거주자의 71.4%,
31_황나미, “북한주민의 공공 식량배급 수혜상황과 영양취약 아동규모추계,” 뺷보건복지 포럼뺸, 통권 제185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2.3), pp. 61~62.
함경북도 거주자의 66.7%, 양강도 거주자의 63.3%가 식량배급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응답하고 있다.32 또한 배급이 된다 하더라도 그 양이 적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시장과 연계된 사적 경제활동을 통해 생활 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서 2008, 2009, 2011년에 실시한 탈북자 조 사결과를 비교해 보면 장사 경험이 있는 북한이탈주민이 60~70%에 달하고 있고, 그 비율이 점점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직장에서 받는 임금 이외의 비공식 수입이 있었던 응답자 비율이 2008년에는
31.1%, 2009년 30.2%, 2011년에는 60.5%로 크게 증가하였다. 장사 경
험이 있었던 비율도 2008년에 전체 조사대상자 296명 중 168명으로
56.8%, 2009년에는 370명 중 206명으로 66.7%, 2011년에는 114명 중
79명으로 69.3%를 차지해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준다.33
2010년부터 2012년 사이에 탈북한 북한이탈주민 2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도 이와 유사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북한 에서 장사나 8.3 노동34 등 비공식일만을 한 사람이 전체 응답자 175
명 중 82명으로 46.9%, 비공식일과 공식일을 병행한 사람이 55명으로
31.4%를 차지했고, 공식일만 했던 사람은 38명으로 21.7%에 불과했
다.35 이러한 연구결과는 80%에 가까운 주민들이 장사일만으로 생계
32_위의 글, pp. 61~62.
33_김병로, “탈북자 면접조사를 통해 본 북한사회의 변화,” 뺷현대북한연구뺸, 15권 1호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 2012), pp. 52~53.
34_기업의 노동력 수요가 감소한 상황에서 노동자가 경제외적 강제의 속박에서 벗어나 기 위해 기업에 비용을 지불하는 형태의 계약관계를 의미한다(이석기, “북한의 노동: 2000년대를 중심으로,” 뺷KDI 북한경제리뷰뺸 (서울: 한국개발연구원, 2012.11), p.
83).
35_김화순, “시장화시기 북한 주민의 일유형 결정요인,” 뺷통일정책연구뺸, 제22권 1호 (서울: 통일연구원, 2013), p.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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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해결하거나 공식직장과 장사일을 병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 로, 이는 경제난 이전 시기에 배급과 공식 직장에 의존하였던 생존방식 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본 연구 과정에서 심층면접을 실시한 청소년들의 경우에도 부모들 이 대부분 공식적인 직장에 적을 걸어놓고 장사를 하거나, 직장일과 장 사를 병행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청소년들이 부모의 공식 직장은 잘 모르고 장사를 했다는 것만을 인지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청소년들도 중학교나 대학교 재학 중 부모의 장사일을 돕거나 방학기 간을 이용해서 장사를 하거나, 심지어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장사를 하 는 경우도 있었다.
국가의 배급망에 긴박되어 생계를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또는 자신의 장사활동을 통해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사회경제적 환 경은 이들 청소년 세대의 세대공간을 기존 세대의 세대공간과 구분하 는 중요한 차이점이다. 특히 경제난이 시작된 이후에 태어난 10대 후 반 이하의 청소년들은 국가의 보호와 시혜를 한 순간도 직접 체험해볼 수 없었던 세대라는 점에서 이전 세대와 구분된다.
북한 주민들이 시장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시장이 분화되 고 상인들 간의 경쟁도 격화되었다. 북한 당국은 시장활동을 일정한 수준에서 통제하기 위해 정책을 자주 변경하고 있어, 시장활동의 불안 정성이 매우 높다. 그 대표적인 예가 화폐개혁이다. 시장활동과 관련된 변동성을 늘 예측하고 이에 잘 대응하지 못할 경우 하루아침에 큰 경 제적 손실을 입는 경우가 많고, 이는 삶의 불안정성을 가져오는 요소가 된다. 또한 비합법성이 큰 상행위일수록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 문에 대부분의 주민들은 적발과 처벌의 위험을 무릅쓰고 불법행위를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장사
하는 과정에서 범한 불법행위로 인해 법적 처벌을 받기 일쑤이고, 심한 경우에는 추방이나 사형과 같은 심한 처벌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가 정의 안정성과 청소년의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이다.
나. 가족
경제난과 자생적 시장화는 가족 관계에도 변화를 초래하였다. 앞 절 에서 살펴보았듯이 고난의 행군기에 기근과 전염병 등으로 많은 주민 들이 사망하였고, 그중에서도 생산조직과 군대에 동원된 장년층 남성 의 경우에 사망률이 높았다. 이들은 주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청소년 들의 입장에서는 장년층 남성의 높은 사망률은 곧 아버지의 부재를 뜻 하는 것이다.
고난의 행군이 종료된 이후에도 의료체계 등 사회안전망은 정상적 으로 복구되지 못하였고, 경제난 시기 기아의 흔적으로 주민들은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 기아 지수의 추정에 의하면 북한 전체 인 구 중 영양실조의 비율은 1990년 21%, 1996년 30%, 2001년 34%, 2012년 35%로 추정되고 있다.36 이러한 수치는 고난의 행군이 종료된 이후에도 경제적 빈곤으로 인한 영양결핍이 모든 연령대에 걸쳐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2007년에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유병경험율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의 재북 당시 유병경험율은 본인 51.6%, 배우자
37.3%, 부모 61.9%, 형제자매 37.7%, 자녀 24.8%로, 전체적으로 상당
히 높다.37 이 조사는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수치
36_International Food Policy Research Institute, “2012 Global Hunger Index,”
(2012), <http://www.ifpri.org/book-8018/node/8058>; 문경연·김판석, “북한 경제난의 인구학적 영향과 경제에의 함의,” p. 137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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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를 북한 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이를 통해 북한 주민 들이 질병에 노출되어 있는 정도가 높을 것이라는 점을 추정할 수 있 다. 이와 같이 북한 주민들의 영양실조율이나 유병경험율이 높다는 것 은 북한 청소년들에게는 보호자의 질병이나 사망으로 인한 생활의 불 안정과 고통이 야기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연구 과정에 서 접한 많은 청소년들의 삶 속에서 가족 구성원의 질병이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에 기인한 고통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사망과 질병으로 인한 가족해체 이외에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른 가 족 해체 현상도 증가하고 있다. 고난의 행군기에 여성들은 가장을 대 신하여 장사일로 가정의 생계를 책임졌다. 이후 시장경제가 활성화되 면서 직장에 나가야 하는 남성보다는 상대적으로 이동이 자유로운 여 성이 시장경제활동의 주체로 나서게 되었다. 소위 ‘달리기’ 등을 하며 생계활동을 하는 여성과 남성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지역공간에 고정 되었던 가족의 안정성이 크게 낮아지게 되었다.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극심한 식량 부족과 가족 구성원의 잦은 부재로 인해 사실상의 이혼과 가족의 해체가 광범위하게 일어났다.38 가족이 해체되지는 않더라도 이전 시기에는 가정일을 도맡아 하던 여성이 지방을 오가며 장사를 하 고 가정을 장기간 비우게 되면서, 어린 자녀들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아 졌다. 최근에는 여성들의 탈북으로 인한 가족해체 현상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39 정확한 수치가 제시되고 있지는 않지만 여성의 탈북 증가로 인해 북한에서 여성들의 행방불명이 많아지면서 남편이 아내를
37_박경숙, 뺷북한사회와 굴절된 근대: 인구, 국가, 주민의 삶뺸, p. 199.
38_조정아 외, “자아와 내면세계,” 뺷북한 주민의 의식과 정체성뺸 (서울: 통일연구원, 2010).
39_국내입국 북한이탈주민 중 여성의 비율은 2006년 이후 지속적으로 70%를 상회하고 있다.
상대로 이혼을 청구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40 이와 같은 가족해체 현상은 안정적인 가정환경에서 보호받아야 할 청소년들이 방치되거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 학교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교육을 ‘사람들을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존재로 키우는 사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교육의 목적은 ‘자주성과 창조성을 가진 공산주의혁명인재로 키우는 것과 노동계급의 혁명위업에 복무하 도록 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 교육에서의 계급성, 유일사상체계의 확립과 ‘혁명과 실천’의 밀접한 결합을 이루는 것이 강조된다.41 이와 같은 교육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북한은 1970년대에 ‘11년제 전반적 무상의무교육’을 실시하면서 평등주의적 교육제도를 완성하였다.
그러나 경제난 시기에 수해로 인해 학교 시설이 크게 파손되었고 경 제난으로 인해 교사들이 학교에서 이탈하고 학생들의 출석률도 저하 되면서 학교수업은 파행적으로 운영되었다. 2000년대 들어 학교 시설 복구와 교사들의 학교 복귀가 이루어졌지만, 경제적 사정과 교육정책 및 주민들의 교육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 인해 일반 초중등학교의 출석 률은 경제난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4년 UNICEF가 북한의 학교 실태에 대해 조사관찰한 바에 의하면 초중등
40_보도에 의하면 최근 북한에서 이혼이 급증하고 있고, 이혼사유가 ‘외도’ 또는 ‘불임’의 이유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탈북으로 인한 ‘위장이혼’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北,
‘외도’로 이혼한 부부 알고보니…,” 뺷동아일보뺸, 2013년 5월 16일,
<http://news.donga.com/3/all/20130516/55185289/1>). 이러한 현상은 경제난 이 후 시장화의 확산과 상대적으로 이동이 쉬운 여성들의 탈북이 늘어난 것과 관련이 있다.
41_김일성, “사회주의교육에 관한테제(1977.9.5.),” 뺷김일성저작집 32뺸 (평양: 조선로동 당출판사,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