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에 대해서 파악해 볼 수 있다. 다음 문단에서는 정원에 채울 동물들과 집안에 둘 가구 및 도구 그리고 책에 대해 열거하고 사계절의 운치 및 날씨에 따른 승경을 묘사하고 정원 안에서 어떻게 즐길 지를 글로 남겼다. 정원에서 아침이면 꽃에 물 을 주고, 저녁엔 오이밭에서 오이를 따는 소일거리를 하기도 하고 산과 달을 벗 삼 아 시간을 보낸다. 시와 글을 읽고 쓰기도 하고 음악과 차를 곁들여 즐기기도 한 다. 이경종은 이 글에서 정원의 입지를 잡는 것부터 정원에 식재한 수종 및 각종 물건을 비롯한 정원에서의 완상방식까지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경종은 이조판서까지 지낸 당시 사대부 문화를 대표할 만한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사대부들이 남긴 실제정원이 아닌 의원(意園)에 대한 기록은 그들 이 자유롭게 조성하고 향유했던 정원문화와 정원에서의 행위를 읽어 볼 수 있다는 데에서 의의가 있다.
취미로 삼았다.
또한 한 분야에 자신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여 표현한 ‘벽(癖)’으로 불리는 다양 한 현상이 나타난다. ‘벽(癖)’이란 그 일을 하는 행위 자체가 즐겁고 기뻐서 온전히 자신을 잊고 몰입하는 순수한 행위였다. 특별한 동기 없이 이익과 남들의 시선을 떠나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에는 꽃의 아름다움에 빠져 마니아적인 성향을 보이는 ‘화벽(花癖)’의 경향도 나타난다. 이전 시기에도 물 론 강희안의 『양화소록(養花小錄)』을 비롯하여 이황의 매화시 같은 화훼 관련 저 술과 시문이 적지 않았지만, 18-19세기의 그것은 사물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집중 되었다(정민 2007, 182).
조경식물에 관심을 많이 쏟은 인물은 유박(柳璞, 1730-1787)으로, 그는 유득공 의 7촌 당숙이 되는 인물로 황해도 배천에 백화암(百花菴)을 짓고 온갖 꽃을 길렀 으며 꽃 재배의 체험을 바탕으로 『화암수록(花庵隨錄)』을 남겼는데 그의 백화암 을 위해 이용휴(李用休, 1708-1782), 정범조(丁範祖, 1723-1801), 유득공(柳得 恭, 1749-1807), 이헌경(李獻慶, 1719-1791), 채제공(蔡濟恭, 1720-1799), 목 만중(睦萬中, 1727-?) 등 쟁쟁한 문인들이 기문과 시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식물 을 재배하고 감상하는 소회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심우경 2006, 99).
네 계절의 화훼를 모두 백가지 구했다. 큰 것은 재배하고, 작은 것은 화분에 담아 둑을 쌓아 백화암 가운데 두었다. 몸을 그 사이에 두고 소견하면서 세상을 잊고 기쁘 게 자득하였다, 분매(紛梅)와 금취(禁醉, 국화품종)은 찬찬히 정신을 살피고, 왜철쭉 과 영산홍은 멀리서 형세를 보며 웅위함을 취한다. 단약(丹藥)과 계도(桂桃)는 마치 새 여인을 얻은 것과 같다. 치자와 동백은 큰손님을 마주한 듯 아리따운 모습이 손에 잡힐 듯하다. 석류는 생각이 시원스럽다. 파초와 괴석은 마당가에 두어 명산으로 삼 는다. 유송(瘐松)에서 태고의 모습을 얻고, 풍죽(風竹)은 전국의 기상을 띠고 있다.
섞어 심어 시자로 삼는다. 연꽃은 마치 주무숙(周茂叔)을 마주한 듯 공경스럽다. 기 이한 것, 예스런 것을 취해 스승으로 삼고, 맑고 깨끗한 것은 벗으로 삼는다. 번화한 것은 손님으로 삼는다.11)
유박은 사시사철 정원을 빛낼 꽃과 나무들을 구하고, 큰 것은 땅에 심고 작은 것 은 화분에 담아 둑에 배치하였다. 매화와 국화는 가까이에서 음미하고, 철쭉과 연 산홍은 멀리서 그 빛깔과 형세를 감상하였다. 그 밖의 식물들은 여인이나 손님 등
11) 유박,『화암수록(花庵隨錄)』, (심우경 2006, 99에서 재인용)
마치 사람인 듯 의미를 부여하여 마당에 배치하였다.
이 밖에도 원예를 전문적으로 다룬 유서(類書)12)도 등장한다.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의 『산림경제(山林經濟)』와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임원 경제지(林園經濟志)』가 그것이다. 『산림경제(山林經濟)』는 각종 원예작물의 재 배법을 논한 ‘제4지 치포(治圃)’ 와 화목, 화초, 정원수의 배양법을 논한 ‘제6지 양 화(養花)’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는 ‘예원 지(藝畹志)’, ‘섬용지(贍用志)’, ‘이운지(怡雲志)’에서 원예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렇듯 18-19세기에는 원예에 관련된 다양한 글과 전문서들이 등장하여 그 시 대의 문인들이 원예에 얼마나 관심이 있었는지를 반영하고 있다.
2.2 사대부공동체, 아회(雅會)
조선후기 정쟁으로 분화된 지식인 집단은 내적 결속을 다지며 문화 교류를 강화 하였고, 공적인 모임보다는 사적인 모임인 아회(雅會)가 성행하였다. 아회의 배경 으로서 정원은 문화를 교류하고 공유하기 위한 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아회와 고동서화 및 화훼의 완상, 유락(遊樂)의 공간으로서 정원은 활용되었고, 정 원을 완상하며 지은 글과 그림은 조선후기의 예술을 한층 발달시키는 매개체가 되 었다. 성시산림(成市山林)의 문화가 유행하면서 문인들의 모임도 멀리 명승명소를 찾아가는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 잘 가꾸어진 정원에서 열렸다.
또한 아회에는 일정한 동료와 정기적으로 혹은 반복하여 모임을 갖는 경우가 적 지 않다. 일반적으로 ‘정기적인 아회’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별이나, 한 달 을 주기로 개최되었고 모임 참석자가 거의 일정하며, 모임에서는 내부 규칙이나 범 례가 정해져 있었다. 범례, 규칙이 있거나 참석자가 고정된 아회는 대부분 내규를 지키기 위하여 책을 만들었고 이를 참석자에게 배포하였다. ‘정기적인 아회’는 특정 인물에 의하여 열리기도 하였지만, 아회 참석자 전원이 순번을 정하여 차례대로 모 이거나, 모임 구성원의 경사가 있을 때 특별한 모임을 갖기도 하였다. 또한 개인이 모임을 마련하고 주위 동료를 초청하여 유흥을 즐긴 ‘초청에 의한 아회’는 대부분 초청자의 자택이나 별장에서 이루어졌다(송희경 2005, 143).
12) 내용을 사항별로 분류하여 편찬한 책으로, 다양한 분야의 관련된 문장을 뽑아 유별(類別), 운별(韻別), 자별(字別) 등으로 분류하여 편찬함으로써 검색에 편리하도록 한 일종의 공구서이다. (최환 2003, 1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