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미각이 동반될 때 체험의 질이 증폭된다.
미각적 체험은 제철음식을 맛볼 때 절정에 이른다(강영조 2003, 48). 이런 ‘맛보 기’는 음식의 맛을 알려고 먹어보는 것, 맛맛으로 먹으려고 조금 차린 음식, 그리고 몸소 겪어보는 것이다(황기원 2009, 10). 정약용 역시 식물을 완상할 때 음식이나 마실 것을 준비하여 미각적 감각을 충족시키며 완상하였다.
2.1 음식
음식 소비는 가장 일상적인 인간행위이다. 이런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사회전반 의 다양한 현상을 조명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정혜경, 안정혜 1995, 10-11).
어느 시기에 어느 장소에서 어떤 음식을 소비했는가는 그 시기의 문화적 특징을 대
130) 정약용, 「죽란시사첩 서(竹欄詩社帖序)」, av013_006 : “與之約曰杏始華一會. 桃始華一會. 盛夏蓏果旣 熟一會. 新涼西池賞蓮一會. 菊有華一會. 冬大雪一會. 歲暮盆梅放花一會. ”
변한다.
정약용은 뜰에 복사나무, 배나무 등의 과실수를 심어 열매를 취하고 채마밭을 경 영하여 채소를 취하였다. 철따라 수확되는 신선한 과일과 채소는 식물소재를 완상 할 때, 안주나 주전부리로 미각을 즐겁게 하였다. 봄날에는 미나리 푸성귀로 안주 거리 삼고131), 여름에는 말젖 같은 포도나무 열매로 타는 목을 축였다.132) 제철음 식을 먹는다는 것은 미각을 즐겁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완상한 것을 온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이런 식물소재의 미각적 즐거움은 열매를 선물함으로써 공유하기도 하였다.
... 그리고 먹고 남은 여분은 비 온 뒤마다 바랜 잎은 따내고 먼저 익은 것을 가려 서 저자에 내다 팔고 혹 월등하게 크거나 탐스러운 것이 있으면 각별히 편지를 써서 가까운 벗이나 이웃 노인에게 보내어 진귀하고 색다른 것을 맛보게 한다면 이것도 후 한 뜻이리라. ...133)
뜰의 과일 중 먹고 남은 여분은 시장에 내다팔아 경제적으로 이익을 취하기도 하였지만, 특히 월등하게 크고 탐스러운 것은 가까운 벗이나 이웃에게 보내어 진귀 하고 색다른 미각을 선물하였다. 같은 미각을 공유함으로써 추억을 만들고 동질성 을 형성하였다.
식물은 자신의 일부를 통해서 먹을 것을 제공하기도 하고, 먹을 장소를 제공하기 도 하였다. 화로에 둘러 앉아 소고기를 구워먹는 행위는 추운 겨울날에 자주 나타 났다. 화로의 따뜻함이 추위를 물리쳐 주고, 고기를 먹어 영양분을 보충하였다. 이 런 겨울날 고기를 구워먹는 행위는 주로 소나무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정약용이 1778년 화순현의 금소당에서 지인들과 함께 눈 내리는 밤에 지은 시이다.
남쪽 지방 내리는 눈 눈 오다가 비 오다가 南雪或雪或霏微 대나무에 쌓인 눈꽃 바람에도 아니 날려 雪花壓竹風不飛 검은 홰나무 반쪽엔 명주필이 걸리었고 槐身半駮素練挂 둥그런 소나무 머리 푸른 바늘 듬성듬성 松頂一羃靑針稀
131) 정약용, 「봄날 담재에서 지은 잡시(春日澹齋雜詩)」, av001_141 : “... 미나리 푸성귀로 안주거리 삼 았는데(芹菜靑調作乳黃) ...”
132) 정약용, 「또 더위를 씻는 여덟 가지 일(又消暑八事)」, av006_202 : “... 말젖 같은 열매엔 즙 생겨 목을 축일 만하네(馬乳成漿渴可沾) ...”
133) 정약용, 「윤윤경(尹輪卿)에게 주는 말(爲尹輪卿贈言)」, av018_003 : “... 已食之有餘. 每雨後摘其褪 葉. 取其先熟. 赴城市粥之. 或有肥碩超等者. 別作尺牘. 以遺親朋隣老. 以分珍異. 斯厚意也. ...”
<그림 4-17> 김홍도, 설후야연(雪後野宴), 시기미상, 견본담채, 100x48cm, 기메미술 관소장.
깊은 집에 큰 석쇠로 쇠갈비를 불에 굽고 深堂大丳燒牛肋 소주 부어 따르니 붉은 노을 빛이로세 火酒倒寫紅霞色134)
다음 시는 화순현의 차군정 앞의 소나무 아래에서 읊은 시이다.
그 어찌 일산되어 더운 기운 막을 뿐인가 豈唯繖蓋屛炎熱 또다시 생황되어 맑은 가락 들려주네 復有笙竽奏淸絶 달빛 아래 차를 끓여 중과 함께 맛을 보고 月下烹茶僧共澹 흰 눈 속에 고기 구워 손님 함께 즐긴다오 雪中燒肉賓俱悅135)
소나무 사이를 스치는 바람이 내는 생황 소리의 청각적 감각과 쌓인 눈 사이로 듬 성듬성 올라온 푸른 바늘같은 솔잎을 보며 고기를 구워먹었다. 김홍도(金弘道, 1745-?)가 그린 <설후야연(雪後野宴)>에 달이 뜬 밤에 눈이 쌓인 소나무 아래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있는 모습이 확실하게 표 현되어 있다. 성협(成夾, ?-?)의 <야연(野 宴)>에서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성 협의 그림에서 왼쪽 두 번째 남자는 털로 된 귀마개를 한 것으로 보아 겨울임을 알 수 있다. 그림 위쪽으로 드리운 가지에는 뾰족한 잎이 아직도 달려있는 것으로 보아 소나무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정약용의 글 과 동시대에 활동한 화가들의 그림에서 눈 내린 후 소나무 아래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행위를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조선후기의 사회적 풍습이었음을 알 수 있다.
134) 정약용, 「눈 내리는 밤에 조 사마와 함께 술을 마시며(雪夜同曹司馬飮)」, av001_038 135) 정약용, 「차군정 아래에 노송 한 그루가 있는데(此君亭下有古松一株) ...」, av001_034
<그림 4-18> 성협, 야연(野宴), 19세기, 지본담채, 20.8x28.3cm, 국립 중앙박물관소장.
2.2 술과 차
술과 차를 마신다는 것은 꽃과 잎의 향기를 마시는 행위이다. 식물소재를 시각 적, 미각적 감각보다 더욱 본능적, 원시적으로 완상하는 방법이다. 술과 차는 혼자 마셔도 좋고, 벗이 있어 같이 마셔도 좋다. 혼자 마실 때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꽃 이나 달 등의 자연을 벗 삼아 술을 마시며 시름을 덜기도 하고 차를 마시며 정신을 맑게 하고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벗이 있어 함께 마시면 풍류가 된다.
꽃피는 좋은 시절에 벗을 불러 좋은 모임을 가지고자 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이다. 정약용 역시 지인을 초대할 때, 술과 안주를 미리 마련해두어 번거롭게 부 탁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136)을 권장하였다. 술을 마시면 흥이 나고, 흥이 오르면 보다 적극적으로 시를 짓고 노래를 읊조리고 내면의 생각을 토로하는 등 흥취(興 趣)를 돋우게137) 한다. 죽란시사 모임에서도 술은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었으며,
136) 정약용, 『야사첩(埜僿帖)』, (다산종합도록, 『다산 정약용, 마파람이 바다 위에 불어』, 강진군, 2009, pp.88-91) : “... 사방 수십 리에 고사(高士)와 시승(詩僧) 대여섯 명과 벗을 맺고 매양 꽃피는 시 절이면 불러서 운을 내어 시를 짓고, 술과 안주를 미리 마련해 두어 번거롭게 부탁하는 일이 없게 한다.
...”
137) 정약용, 「눈 내리는 밤에 조 사마와 함께 술을 마시며(雪夜同曹司馬飮)」, av001_038 : “... 취기 돌
술에 취해 도심 내에서도 산림의 원포(園圃)와 같은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매개체138)였다. 또한 정약용은 술을 따르며 마음의 시름까지 보태 따라 시름을 잊 고 즐거움을 취해 밤새 술을 즐기기도 하였다.139)
정약용은 특히 꽃을 완상하며 다양한 종류의 술을 즐겼다. 대낮부터 국화꽃을 독 대하고 앉아 술을 마시기도140) 하였으며, 밤에는 국화그림자를 즐기며 친구들과 밤 새 술을 마셨다.141) 국화를 완상하며 마신 술은 단연 국화주였다. 정약용은 국화꽃 을 술잔에 담아142) 국화꽃 향과 함께 술을 즐겼다. 연꽃을 완상할 때도 술을 곁들 였다. 서지(西池)에 연꽃이 만개할 때면 호안의 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연꽃 향을 안주삼아 술을 마셨다.143) 정약용의 연꽃을 완상하며 술을 마시는 방법이 재미있 다. 줄기가 붙은 연잎을 따서 연잎에 술을 따른 다음 가운데를 비녀로 찔러서 줄기 로 술이 흘러내리게 하고는, 그 줄기를 마치 코끼리의 코 모양과 같이 굽혀서 이를 빨아먹었다.144) 이를 코끼리코 술잔(碧筩杯)145)이라 하였다. 이외에도 정약용은 소나무 잎으로 빚은 송엽주(松葉酒)146)를 즐겨 마셨다.
자 목이 말라 자꾸 더 마시고픈데(酒酣喉焦思復飮) 귤이며 유자 배 석류 이것저것 먹어보네(橙橘梨榴恣所 噉) 김생은 젓대 불고 최생은 노래 부르자(金生吹笛崔生唱) 조공은 박자 치며 감탄 소리 비장타가(曹公擊 節聲悲壯) 갑자기 노기 등등 흰자위를 부라리며(忽作白眼怒睢盱) 공경 재상 질타하길 오랑캐와 종놈처럼 (叱呵公相如虜奴) ...”
138) 정약용, 「죽란화목기(竹欄花木記)」, av014_018 : “... 언제나 조회에서 물러나와서는 건을 젖혀 쓰고 난간을 따라 걷기도 하고, 혹은 달 아래서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니, 고요한 산림과 원포의 정취가 있어 서 수레바퀴의 시끄러운 소음을 거의 잊어버렸다. ... 여러 사람이 날마다 이곳에 들러 취하도록 마셨는데, 이것이 이른바 죽란시사라는 것이다. (每朝退. 岸巾循欄而步. 或月下酌酒賦詩. 蕭然有山林園圃之趣. 而輪鞅 之鬧. 亦庶幾忘之. ... 日相過酣飮. 玆所謂竹欄詩社者也.) ...”
139) 정약용, 「죽란사에 국화가 활짝 피어 몇몇 사람과 함께 밤에 마시다(竹欄菊花盛開 同數子夜飮)」, av003_062 : “... 가을빛 속에 꽃이 피어(花開秋色裏) 다정한 사람들 밤에 서로 찾았지(親識夜相過) 술 딸며 시름까지 보태 딸고(酒瀉兼愁盡) 시가 지어지면 즐거운 걸 어떻게 해(詩成奈樂何) ...”
140) 정약용, 「꽃 아래서 홀로 잔질하다(花下獨酌)」, av003_063
141) 정약용, 「죽란사에 국화가 활짝 피어 몇몇 사람과 함께 밤에 마시다(竹欄菊花盛開 同數子夜飮)」, av003_062 ; 「밤에 윤이서ㆍ한혜보와 함께 술을 마시며 국화를 읊다(夜與尹彝敍韓徯父飮酒賦菊花)」, av002_061 ; 「국화 시절에 혜보ㆍ무구와 함께 죽란사에서 모임을 갖다(菊花同徯父无咎竹欄宴集)」, av003_151
142) 정약용, 「밤에 윤이서ㆍ한혜보와 함께 술을 마시며 국화를 읊다(夜與尹彝敍韓徯父飮酒賦菊花)」, av002_061 : “... 청초한 기풍 범할 수가 없거늘(淸標不可犯) 술잔 속에 기꺼이 들어가리요(肯入酒杯無)”
143) 정약용, 「서지에서 다시 노닐며(重游西池)」, av002_107 : “숲 속 정자 아래에 말을 매두고(繫馬林亭 下) 버드나무 가에서 바람 쏘일 제(臨風水柳傍) ... 술병이 바닥나도 이대로 앉아(壺乾勿遽起) 조금 더 맑 은 향기 맡아봐야지(且復挹淸香)”
144) 정약용, 「더위를 없애는 여덟 가지 일(消暑八事)」, av006_199 : “... 부용의 자태가 사람을 머뭇거리 게 하누나(芙蓉顔色使人遲) ... 술 마시기에 알맞은 코끼리코 술잔도 겸하였다네(一榼兼宜彎象鼻) ...”
145) 줄기가 붙은 연잎을 이용한 술잔. 위(魏)의 정시(正始) 연간에 정각(鄭慤)이 삼복 더위에 빈료(賓僚) 들을 데리고 사군림(使君林)으로 피서를 가서 큰 연잎을 연격(硯格) 위에 올려놓고 술을 따른 다음 잎 가 운데를 비녀로 찔러서 줄기로 술이 흘러내리게 하고는, 그 줄기를 마치 코끼리의 코 모양과 같이 굽혀서 이를 빨아먹었는데, 그 이름을 벽통배(碧筩杯)라고 하였다 한다. (단성식,「주식(酒食)」, 『서양잡조(西 陽雜俎)』,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146) 정약용, 「다산화사(茶山花史)」, av005_090 : “... 새로 빚은 송엽주로 마른 창자 축여주지(新醅松葉 潤枯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