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4-23> ‘실용적 기법’ 개념도
구분 완상 시기 향유 방식 완상 요소 홀로 즐김 한가로운 오후나
달이 뜬 저녁, 밤 예술적 승화 미미한 감각
-시 각 뿐 아 니 라 촉 각 이 나 후 각 적 요 소 등 함께 즐김 꽃이나 열매가 가
장 아름다울 때
감각의 공유, 예술적 승화
화려한 감각
-식 물 의 꽃 이 나 열 매 등 의 시 각 적 요 소
<표 4-15> 완상의 주체에 따른 완상방식
식물소재를 완상할 때, 음식은 맛을 통한 직접적인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뜰에 과실수를 심어 열매를 취하고, 채마밭을 경영하여 채소를 취한다. 이 수확물은 안 주나 주전부리로 미각을 즐겁게 한다. 또한 열매를 지인에게 선물함으로써 감각을 공유한다. 식물소재는 음식을 먹는 공간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식물소재를 완상하 며 먹은 음식은 다음에 다시 그 음식을 먹을 때 배경으로서 식물소재의 기억을 되 살리고, 식물소재 역시 특정음식을 상기시키는 매개물이 된다. 정약용이 소나무를 보며 겨울에 그 아래에서 고기를 구워먹을 생각을 한 것이 그 예이다.
음식과 달리 술과 차는 꽃과 잎의 향기를 마시는 행위였다. 술은 모임에서 빠질 수 없는 것으로, 모임의 흥취를 돋우었다. 주로 적은 인원의 모임일 때는 차를 마 셨다. 차를 마시는 것은 일상생활의 일부로, 허약해진 몸을 보완하는 기능도 있었 다.
식물소재가 주는 감각적 자극은 사람의 흥취를 돋운다. 이런 돋아진 흥취는 음악 이나 문학 등의 예술 활동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정약용 역시 정원에서 얻은 감각 적 자극을 예술 활동으로 승화시켰다. 시 짓기와 악기 연주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정약용은 꽃이 피고 단풍이 지는 좋은 날이 되면 지인들을 불러 모임을 가졌다. 계 절에 따라 변화하는 식물소재는 이런 모임이 이루어지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또 한, 모임에서 함께 식물소재를 완상하고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다양한 교류가 일어 났다. 야외활동을 할 때에도 식물이 주는 감각적 자극은 활동을 더욱 즐겁게 하였 다. 예를 들어 활쏘기를 할 때, 소나무 숲에서 하여 소나무 사이로 들려오는 바람 소리와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소리를 함께 완상하였다. 바둑을 둘 때는, 치자나무 그늘에서 두는데 오랜 시간 앉아 바둑을 두며 치자 꽃이 풍기는 향기를 함께 즐겼던 것이다.
제5장 결론
이 글에서는 18-19세기 사대부 정원의 주요요소인 식물소재를 중심으로 식물소 재의 선정과정과 연출기법 그리고 완상방식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시간적 범위는 18-19세기로 하였다. 개인의 역량을 표현하기 위한 '벽(癖)'과 ' 치(痴)'로 인한 다양한 한국적 문화가 발달한 시기이며, 그 한 갈래로서 꽃을 심고 정원을 가꾸는 일이 크게 유행하였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완상이나 연출은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 므로 18-19세기의 지식인이자 식물에 대한 조예가 깊었던 인물인 다산 정약용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연구의 방법은 정약용의 글을 중심으로 분석하였으 며, 동시대의 그림과 대표적인 저술서를 보조 자료로 하였다.
본 연구를 위해 우선 18-19세기 조선에서 유행처럼 번진 정원 조영의 이유와 경향을 살폈다. 18-19세기 조선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도시문화가 발달하면서 이 익과 폐단 속에 이상적 주거를 갈망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정원의 조영이 유행처럼 번졌다.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완상문화는 이를 더욱 가속 화하였다. 이러한 배경으로 나타난 정원의 유형은 도시 내 산림(山林)을 구현한 직 접적 조영과 생각으로 이상향의 공간을 그린 의원(意園)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 정 원에서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원예취미를 마음껏 펼쳤으며, 사대부의 사적 모임인 아회(雅會)의 장소로서 문화교류의 중심지가 되었음을 살펴보았다. 이런 사회적 배 경은 정약용이 정원생활을 영위하는 기본적 바탕이 되었다. 정약용은 경제․정치의 중심지 서울에 살면서, 시대의 흐름을 배우고 이를 생활에 실천하였다. 원예취미로 서 정원을 조영하고, 사적 모임인 ‘죽란시사’를 직접 경영하면서 사회의 흐름에 발 맞추어 나간 내용을 제3장에서 다루었다.
제3장에서는 정약용의 정원생활에 대해 고찰하였다. 정약용은 젊어서부터 정원경 영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따라서 한양의 명례방에 있는 집에서 뿐만 아니라, 귀양 지에서도 정원을 조영하였다. 정약용의 삶을 크게 수학기․관직시절․유배시절․노년기 의 4기로 나누어 상황에 따라 조성한 정원의 경향을 파악하였다. 정약용은 다양한 지역과 생활여건을 경험하였는데, 이는 당시의 시대상에 따른 정원 조영의 경향을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정약용이 열망하던 이상주거의 특징은 매우 소박한 산림의 운치가 있는 ‘청복(淸 福)’의 삶이었다. 또한 그의 실학적 사상을 바탕으로, 경제관념까지 포함한 실질적
인 모습이었다. 정약용은 이런 이상주거에서 선비의 품격을 갖추고 지인들과 함께 향유하는 것을 추구하였다. 그의 이상주거에 대한 꿈은 그가 강진의 유배생활과 해 배 후 고향에서 보낸 노년기에 현실적으로 구현하였다.
정약용은 다양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혈연과 혼인으로 형성된 교유망, 관 직에서의 인연으로 이어진 사교모임, 스승으로서의 제자와의 인연이 그것이다. 정 약용은 이들과 함께 정원을 향유하였고, 그 시대의 문화를 공유하였다.
이런 이론적 고찰을 바탕으로 분석의 틀을 만들어 식물소재와 관련된 정약용의 글을 분석하였다. 순차적으로 식물소재의 선정과정과 연출기법 그리고 완상방식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정원 내 식물소재는 작정자(作庭者)의 취향과 주변의 환경 여건, 필요성에 의해 서 선택되므로, 어떤 ‘여건에 의한 선정’이 이루어졌고 어떤 ‘의도에 의한 선정’이 있는지, 이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정약용이 거주했던 장소의 특징을 유형 화 해본 결과 다음과 같은 여건별 특성을 도출하였다. 지역적으로 중부․남부지방, 입지적으로 도시․향촌, 개인사적으로 소년시절․관직시절․유배시절․노년기로 분류하였 다. 이런 상황적 바탕으로 정약용은 감각적 즐거움을 위해서, 실용적 목적에 의해 서, 식물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고려하여 식물소재를 선정하였다. 고찰해본 결과 정약용의 식물소재 특징은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모든 여건에서 감각적 연출을 위 한 식물소재가 선정되었다. 도시지역과 관직시절에서는 상징성을 중시한 선정이 나 타났고, 향촌지역과 유배시절․노년기는 실용성을 중시한 경향이 나타났다. 이런 여 건과 의도 속에서 정약용이 선정한 수종으로 총 81종이 도출되었다.
정약용의 식물소재 연출의 특징을 연출한 의도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식물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 위한 ‘상징적 구사’, 심미적 즐거움을 위한
‘감각적 연출’, 기능적 필요성과 가치 창출을 위한 ‘실용적 기법’이 그 세 가지이다.
이 세 가지 연출 의도는 서로 중복되어 연출되기도 하였다. 즉, 실용적 의도로 연 출하였으나 감각적 부분까지 고려하기도 하였고, 감각적 아름다움을 상징적으로 승 화하기도 하였다.
정약용은 단순히 식물 자체의 형태나 색만을 지각한 것이 아니라, 식물에 담긴 의미도 고려하였다. 이 지각과정은 정약용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환경적 요인인
‘시대적 통념’, ‘사회적 위치’, ‘개인적 관심’ 등을 통해 그 상징성을 추출해 내었다.
정약용은 상징적 구사를 위한 식물소재를 화분이나 사랑채 앞에 식재하여 항상 눈 에 띄는 장소에 연출하였다. 감각적 연출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첫째, 빛
을 활용하여 식물소재를 다양하게 연출하였다. 둘째, 계절을 고려하여 식물소재를 연출하였다. 셋째, 식물소재가 자극하는 오감을 모두 연출하고 완상하였다. 넷째, 식물소재를 여러 요소와 함께 복합적으로 연출하였다. 다섯째, 다른 사람들과는 다 른 방법으로 식물소재를 완상하였다. 위의 다섯 가지 특징을 바탕으로 식물소재를 사시사철 즐긴 연출방법을 도식화하였다. 정약용은 식물의 고유한 생태적 특성을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활용하였고, 수익이 높은 작물을 심어 가계를 경영하여 식물 소재를 실용적으로 활용하였다.
정약용의 식물소재 완상방식은 사람과 음식과 행위에 따라 그 특징이 나타났다.
홀로 즐길 때는 식물소재의 미미한 감각을, 함께 즐길 때는 화려한 감각을 완상하 였다. 정약용은 식물소재를 완상할 때 음식을 곁들여 미각적 감각을 극대화하고, 지인에게 음식을 선물함으로써 감각을 공유하였다. 정약용은 식물소재가 주는 감각 적 자극을 예술 활동으로 승화시켰다. 시 짓기와 악기 연주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모임에서 함께 식물소재를 완상하고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다양한 교류가 일어 났음을 살펴보았다. 또한 식물소재는 야외활동을 할 때, 감각적 자극을 줌으로써 상승효과가 나타나도록 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다산 정약용의 시문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식물소재와 연출방법, 완상방식에 대해 고찰하였다. 정약용이 경험한 다양한 삶의 여건에 따른 정원문화 를 살펴본 것은 18-19세기 조선의 사대부가 향유하였던 정원문화에서 나타나는 양상을 다각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단초가 되었다. 또한 글로 남아있는 자료를 다 양한 자료를 통해 구체적으로 시각화하는 시도를 하였다는 점에서 작게나마 본 연 구의 의의가 있겠다고 하겠다.
정약용이 남긴 문헌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서, 인문학자들이 번역해 놓은 자료에 의존한 한계가 있었다. 또한 연구과정에서 식물소재가 일부 잘못 번역 된 부분이 발견되어, 식물의 고유한 특성과 작정자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고 증의 과정이 필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