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자아정체성 개념에 관한 철학적 이해
2. 자아정체성(Self-Identity)에 대한 철학적 탐색: “나는 누구인가?”
테일러는 우리가 자신의 진실한 본연을 명백히 표현해낼 때, 이 명백한 표현을 통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규정하고 실현한다고 주장한다. ‘명백한 표현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테일러는 다음과 같 이 설명한다.
우리가 인간다울 수 있는 자기의 독자적인 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다면, 우리는 우선 우리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발견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미 [예전부터] 전제되어 있는 것에 따라 순전히 기존의 생활 모델을 참고 로 삼는 일만으로는 이런 [새로운 자기] 발견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새로운 자기] 발견은 자신을 다시 새롭게 분명히 제시함으로써만 이루어지 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우리 속에 있는 그런 독특한 생활양태를 용인함으 로써, 즉 우리 안에 있는 본원적·독창적인 것을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함으 로써 우리 안에 있는 존재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이다(Taylor, 1991/ 송영배 역, 2001: 83).
테일러는 위 글에서 ‘자기발견’이 ‘자신을 새롭게 분명히 제시함’으로써 가 능해진다고 보았다. 이때 ‘새로운 나’는 다른 누군가의 말이 아닌 나의 고 유한 말과 행동으로 표현됨으로써 발견된다. 즉, 내가 나 자신을 보고, 그
9) 이때, 내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무조건 ‘내 마음이 가는대로 사는 것’
이 아니라 ‘진짜 내 마음이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이 두 가지 행위는 유사해보이지만, 여기에는 그 목적 혹은 관심사에 있어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전자가 외부의 요구로부터 자유롭게 본인의 생각과 감정에 충실한 삶 을 살기 위해 ‘자기진실성’을 추구한다면, 후자는 나 자신을 왜곡하지 않고 진실하게 살아가기 위해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고자 ‘자기진실성’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것을 나 자신으로 인식하며, 인식된 대상으로서의 나를 자신의 말과 행동 으로 명백히 표현해낼 때 우리는 ‘나를 발견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발견되는 나의 모습은 누군가에 의해 혹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언 어에 의해 규정되고 묘사되는 내가 아닌, 자기진실성에 입각한 나의 본연, 곧 나의 진실한 자아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나를 규정하는 나의 고유한 언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테 일러는 덧붙인다.
자아로서 내가 누구냐는 것. 즉 내 정체성은 본질적으로 세계가 내게 중 요성을 갖는 방식으로 규정된다. 그리고 널리 논의된 바와 같이, 이러한 세 계는 내게 중요하며, 나의 정체성이라는 문제는 오로지 내가 그 문제에 대 해 타당하게 받아들여 온 해석의 언어를 통해서만 풀어낼 수 있다. 자기 해 석으로부터 분리된 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것은 완전히 오도 된 질문(근본적으로 답이 있을 수 없는)을 던지는 것이다(Taylor, 1989: 34).
위에서 테일러는 자신의 언어를 통해 해석된 대상은 스스로에게 타당성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반영한 자 신의 언어를 통해 세계를 해석하고 인식하며, 그 해석과 인식의 대상이 자 기 자신이 될 때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모습을 규정해낸 다는 것이다. ‘나의 고유한 언어’는 곧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나 의 고유한 이해의 틀이며, 나의 해석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나의 고유한 언어로 나 자신을 해석한다는 것은 나의 가치가 반영된 틀을 통해 나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이며, 나의 정체성은 바로 그 해석된 결과로서 형 성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한 사람의 정체성은 그 자신의 자기 해석으로부터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테일러의 주장은 타당성을 갖게 되 며, 우리는 그가 제시하는 자아가 ‘자기해석적’ 특성을 가짐을 알 수 있다.
나 자신의 정체성이 나의 해석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주장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해석한 만큼 자기 자신이 된다’
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에게 해석되지 않는 나의 면면은 나의 일부 분이 아닌 것일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해석’이 의미하는 바를
보다 명확히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테일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러나 그 (의미에 대한) 탐색이 얼마나 많이 명백히 표현되는 것을 수반 하는가를 인식할 때 비로소 의미에 대한 우리의 염원이 생기기 시작한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그것을 명백히 표현하는 것을 통해 찾는다. 그리고 근 대인들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의미가 얼마나 우리 자신의 표현의 힘에 의존하는지를 절실히 깨달아 왔다. 여기서 발견한다는 것은 발명에 의존하 고 발명과 서로 섞이는 것이다. 삶에 대한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의미 있는 적절한 표현들을 구성하는 것에 의존한다(Ibid, 18).10)
테일러에 따르면, 내가 누구인가를 나의 언어로 해석하고 표현해낸다는 것 은 곧 그 대상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과 같다. 특히 테일러의 관 점에서 해석으로서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은 이미 정해진 어떤 의미를 발견 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해석과 표현을 통해 의미를 창출해내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해석한다는 것은 우선적으로 그 대상을 인식 하고, 인식된 그 대상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 대상을 인식한 다는 것은 그것과 모종의 관계를 맺는 것이며, 그 대상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보다 적극적으로 그것을 나의 세계로 들여와 그것이 내 삶 에서 차지하는 자리를 규정하는 것이다. 이때 해석된 대상은 나와 관계를 맺은 대상이며 내 삶을 구성하는 의미 있는 대상이 된다. 따라서 자기해석 적 자아에 의해 해석되지 않은 나의 모습은 내가 아닌 것이 아니라, 해석 되지 않은 그 시점에서 나에게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나에게 의미를 갖지 못하는 존재가 되는 것, 혹은 내가 나 자신에 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 그리고 내가 나 자신에게 의미 있는 방식으 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 등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의미가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불만족을 느끼거나 눈을 돌리며 의미를 추구하는 것일까?
10) 괄호 안의 내용은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전 문단의 내용을 참고하여 연구자 가 추가한 것이다.
곽덕주(2005)에 따르면, 삶의 의미와 가치에 관한 질문은 우리의 실존적 불안 혹은 행복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그는 보르도(Bordo, S. R.)와 파 스칼(Pascal, B.), 블루멘버그(Blumenberg, H.) 등의 철학자들의 글에 기반 을 두어 이 점을 짚어내며, 그러한 질문이 갖는 교육적인 가치에 관해 탐 색한다. 그는 우리가 교육을 통해 전달받은 지식을 ‘나의 삶’ 혹은 ‘나의 삶 이 나아갈 방향’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하거나 ‘나의 관점’에 비추어 재구 성하고 창조할 때 지식의 개인화가 이루어지며, 그것이 바로 ‘지식에 대한 일인칭적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개인화된 지식 은 우리의 삶을 총체적으로 반추하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는 특 히 현대사회에서 두드러지는 지식의 불확실성이라는 조건이 이 역할의 교 육적 가치를 강조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현대사회에서의 지식에 대 한 회의가 그 지식을 이해하는 틀이 되는 자신의 삶에 대한 건강한 회의주 의를 불러일으키고, 그 결과 우리는 삶의 의미와 가치에 관한 질문을 스스 로에게 던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곽덕주의 주장은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본 절에서 논의되어 온 바를 명확히 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첫째, 이것은 ‘의미 있는 것을 추 구하는 일의 가치’를 밝혀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곽덕주, 2005: 4), 삶의 의미와 가치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우리의 실존적인 욕구와 닿아 있 다. 즉, 각자의 삶에 있어서 의미 없는 것에 불만족을 느끼며 보다 의미 있 는 것을 추구하는 우리의 태도는 실존적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우리 자 신의 불가피한 선택인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방식으로 자 기 자신을 규정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실존적인 욕구에서 비롯된 거부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지식을 자신의 삶 및 자신의 관점에 비추어 이해하고자 하는 것을 ‘지식에 대한 일인칭적 태도’로 볼 때, ‘지식’의 자리에 ‘나 자신’을 대치시킨다면 자기해석적 자아의 특성을 규정해내는 하나의 틀이 제공된다. 자기해석적 자아에게 의미 부여의 대상 은 지식이 아닌 자기 자신이다. 다시 말해, 자기해석적 자아는 ‘나 자신’에 대한 ‘나의 해석’과 ‘나의 이해’를 추구한다. 그렇게 자기해석적 자아는 자
기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을 형성한다. 따라서 자기해석적 자아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일인칭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일인칭적 자아정체성’을 형성한다고 할 수 있다.
자기해석적 자아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일인칭적 태도를 견지한다는 점에 서 자신을 자기 외부의 객관적인 척도로 진단하고 파악하는 욕구충족적인 심리적 자아와 대비되는 특성을 갖는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자기해석적 자아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묻고 그 답의 준거를 자기 자신에게서 찾고자 하는 자아인 데에 반해, 심리학적 욕구충족적 자 아는 그 답의 준거를 자기 밖의 객관적인 척도에서 찾고자 하는 자아이며,
“객관적인 척도에 비추어볼 때,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다른 형태의 질 문에 답을 구하는 자아이다.
자기해석적 자아의 해석 행위의 동력이 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 은 자아와 정체성을 다루는 논의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질문으로서 우리는 이 질문을 삶을 살아가며 지속적으로 마주한다. 이 간단한 문장구조를 가 진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이 질문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있을까? 과연 우리는 이 익숙한 질문에 얼마나 명확히 답을 할 수 있을까?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다가와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을 던 진다고 가정해보자. 우선, 당신은 적잖이 당황하게 될 것이다. 그가 무엇을 물어보는지, 무엇을 대답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도 당신이 어떤 건물 안에 있는 상황이라면, 당신은 곧 대답할 수 있을 것 이다. “나는 이 건물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대답이 적절한지 확신할 수 없는 당신은 그의 눈치를 살피지만 그는 또 다른 답을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신은 이어서 대답한다. “나는 이 건물에서 근무하고 있는 OOO입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변동이 없고, 당신을 응시한다. 당 신은 좀 더 답답함을 느끼지만 다시 한 번 친절하게 답을 한다. “제가 근 무하고 있는 회사는 7층에 위치한 ****이고, 저는 인사팀 과장입니다.”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