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그동안 학교교육에서 소홀히 다루어져온 개인의 자아정체성 형성이 갖는 교육적 의미와 가치를 밝히고, 한 개인의 자아정체성을 그 자 신의 성찰과 해석의 과정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후기 근대 사 회에 적합한 자아정체성 교육의 모습을 찰스 테일러의 ‘자기진실성’ 개념을 중심으로 탐색하고자 하였다. 본 장에서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고, 연 구의 의의 및 한계를 밝히고자 한다.
개인의 자아정체성은 전통적으로 출생과 동시에 사회적 지위에 따라 부 여받는 불변하는 실체로서 인식되었다. 그러나 후기 근대 사회에 접어들며 자아정체성에 대한 이해는 유동적인 담론의 산물이자 개인의 선택에 의해 계속해서 변화하고 형성되어 가는 것으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주어지는’
자아정체성이 아닌 새롭게 ‘형성되어 가야할’ 자신의 정체성을 마주하게 된 개인은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서 실존적인 불안함을 느끼게 되었고, 이와 같은 개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아정체성 교육이 요청되었다.
그러나 자아정체성에 관한 기존의 연구들과 중등학교 교과서 및 교과 운 영 과정 등을 살펴본 결과, 오늘날 학교교육에서 이루어지는 자아정체성 교육은 이와 같은 시대적 요청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난 다. 현재 학교에서의 자아정체성 교육은 ‘도덕’ 혹은 ‘진로와 직업’ 등의 일 부 교과에 한정되어 이루어지고 있으며, 내용적으로도 두 교과가 ‘나를 알 고, 내가 나아갈 길을 계획하고 준비하도록’ 하는 형태로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자아정체성 교육은 주로 자아정체성 개념에 관한 심리학 적 이해와 접근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왔다. 자아정체성 개념에 대하여 심 리학적 관점을 취하는 연구들은 많은 경우 임상학에 기초한 에릭슨의 정체 성 논의는 프로이드 이론에 근거하는 욕구충족적 자아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 경험과학적이고 통계적인 연구방법을 따라 개인의 자아정체성을 탐 색하는 이러한 심리학적 접근의 연구들은 일반화 가능한 인간의 특성에 근 거하여 만들어낸 객관적인 척도를 교육현장에 제공한다. 이 척도는 아이들
의 현 상태를 진단하는 유용한 기준이 된다. 그리고 진단의 결과와 아이들 의 목표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처방의 형태로 자아정체성 교육이 이 루어진다. 진단과 처방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자연스레 “나는 어떤 사람인 가?(What am I?)”를 묻고, 객관적인 지표와 사실들(what)로 설명될 자신 의 모습을 기다리게 된다.
이러한 심리학적 관점의 자아정체성 교육은 아이들로 하여금 객관화된 자아정체성을 내면화시켜 개인의 고유성을 사상시키고, 결국 자신의 진정 한 자아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는 시대적 으로 요청되는 개인의 성찰과 해석의 과정으로 형성되고 변화해 가는 유동 적인 자아정체성을 탐색해 나갈 수 있게 하는 교육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 은 것으로 보인다.
이제 개인의 성찰과 해석의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자아정체성을 탐색하 도록 하는 대안적 자아정체성 교육이 요청된다. 본 연구는 “나는 누구인 가?(Who am I?)”라는 질문에 기초하여 진실된 자신의 존재의 의미(who) 를 묻기를 요구하는 찰스 테일러의 논의에 기초하여, 자아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탐색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테일러는 개인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하여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방식으로’ 진지하게 답을 구하고, 그 답을 ‘명백히 표현’해냄으로써 자신의 자아정체성을 이해하고 스스로 규 정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
이때, 그가 규정하는 ‘자기진실성’의 개념은 루소의 ‘자연’의 개념에 뿌리 를 둔다. 즉, ‘스스로에게 진실한 방식으로’ 답을 하는 것은 곧 ‘나의 내면 의 자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곧 우리 각자가 지향하는 선과 가치를 담은 자신의 고유한 ‘이해와 해석의 틀’에 따라 스스 로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테일러는 바로 이와 같은 ‘진실된 나’, ‘내면의 목소리’, 그리고 ‘고유한 이해와 해석의 틀’을 명백히 표현해낸 것이 곧 우리의 자아정체성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아의 표현은 그 개인이 의미 있는 타자와의 대화에서 습득한 언어를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자신과 루소의 차이를 밝힌다. 즉, 루소의 ‘내면의
목소리’는 철저히 타자로부터 분리된 나만의 목소리를 뜻하지만, 자신이 진 실하고자 하는 ‘내면의 목소리’는 타자와의 대화로부터 습득된 언어로만 표 현될 수 있는, 타자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것이다. ‘타인과 의 대화를 통해 습득한 언어로 자기 자신을 진실하게 표현해냄으로써 형성 되는 자아정체성’이 바로 테일러가 제시하는 철학적 탐색으로서의 자아정 체성이다.
철학적 탐색으로서의 자아정체성의 추구는 ‘성찰과 해석의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유동적인 자아정체성 개념을 그 기초로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아정체성 교육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자아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탐색의 출발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적 탐색으로서의 자아정체성의 형성 을 추구하는 교육은 피교육자인 학생이 그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끌어나갈 때 실현 가능성을 갖는다. 테일러의 논의를 교육학적으 로 고찰한 르네 아실라의 ‘자기 이방인화(self-defamiliarization)’는 학생을 그 질문의 자리로 이끌어갈 수 있는 매우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 은 학생이 가지고 있던 자기 자신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완전히 ‘낯설게’
만드는 것이다. 분명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흔 들리고, 실존하는 자신을 낯선 대상으로 직면하게 되는 ‘지적 곤란(aporia)’
의 순간에 개인은 불안함과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나’의 존재가 더 이상
‘내가 알던 내’가 아님을 느낄 때, 개인은 “나는 누구인가?”를 진지하게 물 을 수밖에 없다. 철학적 탐색으로서의 자아정체성 교육은 바로 이와 같이
‘학생을 지적 곤란의 상태로 몰아감으로써’ 교육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가 능성을 갖게 된다.
지적 곤란의 순간에 빠져 자기 자신에 대한 기존의 인식으로부터 자유로 워진 학생은 이제 ‘진실한 자기 자신’에 대해 탐색할 준비를 마친다. 이제 그에게 요청되는 작업은 ‘언어로 자신을 명백히 표현해내는 것’이다. 테일 러가 제시하는 철학적 탐색으로서의 자아정체성은 ‘의미 있는 타자와의 대 화를 통해 습득된 언어로 스스로를 명확히 표현’할 때 형성된다. 이를 교육
장면에 대입하여 본다면, 학생에게 의미 있는 타자는 교사가 되고 교사와 학생 간의 대화는 수업이 되며 대화를 통해 습득되는 언어는 교과 내용이 된다. 교사는 학생에게 끝이 없는 질문을 던져 그를 지적 곤란의 상태로 내몬다. 그리고 불안함과 혼란스러움에 처한 학생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제기하게 된다. 교사는 학생에게 어떠한 답도 주지 않지만, 학생이 수업을 통해 습득한 언어(교과내용)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 는 데에 필요한 추가적인 질문들을 제시하며 학생이 자신의 자아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처럼 철학적 탐색으로서의 자아정체성 교육은
‘교과’ 수업을 통해 학교 현장에서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학교 는 교과를 통한 교육을 하는 공간이기에, 교과 수업을 통해 이루어지는 철 학적 탐색으로서의 자아정체성 교육은 특정 교과 혹은 특정 단원이 아닌 학교의 교과과정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는 자아정체성 교육이 된다. 그와 같은 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에서 학생이 경험하는 수업 시간은 그의 자아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시간이며, 그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자아정체성 교육의 실현을 위해서는 몇 가지 노력이 요청된 다. 첫째는 교사 교육에 대한 요청이다. 철학적 탐색으로서의 자아정체성 교육의 성패는 무엇보다도 학생에게 ‘의미 있는 타자’의 역할을 할 ‘교사’에 달려 있다. 학생을 지적 곤란의 상태로 몰아넣고, 그에게 ‘언어’로서의 교과 를 제시하며, 그 ‘언어’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해내도록 안내하는 일련의 과정이 교사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교사는 그 교과의 언 어가 펼치는 세계를 먼저 경험한 자여야 한다. 교사는 그 교과의 언어로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먼저 경험한 자여야 한다. 교사 자신에게 그 교과가 하나의 두드러진 자기 표현의 ‘언어’여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적 탐색으로서의 자아정체성 교육의 실천을 위해서는 그와 같은 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연구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둘째로 철학적 자아정체성 교육의 실현을 위해서는 각 교과 교육 분야 연구자의 후속적인 연구들이 요청된다. 본 연구는 철학적 탐색으로서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