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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제후국이던 이집트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동시에 대영제국의 보호령으로 귀속된다. 인도식민지 및 수에즈 운하 의 보호와 중동 지역 패권 유지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 탓에 대전 개시 전부터 영불제국의 제국주의적 침탈에 노출되어 오던 이집 트가 공식적으로 영국의 영향권 아래 편입되는 시점이었다.

대전 종결 후 1922년 독립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지만 영국군은 계속 주둔하며 주요 이해관계가 달린 사안에는 개입할 권리를 유지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영국군의 군사적 요충지로 활용된다. 1947 년 영국군이 최종적으로 철수하면서 이집트의 반식민 상태는 종결되지 만, 대지주 그룹과 봉건적 후원관계로 연결된 군주제, 근대화 실패로 인한 정치경제적 낙후, 이슬람 전통 세력의 저항이라는 유산을 물려받 게 된다.25)

25) 이집트 반식민지 상태로부터의 유산과 Free Officer 장교단의 쿠데타의 흥기 요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다음 참조. Hazem Kandil, Soldiers, Spies and Statesmen:

Egypt’s Road to Revolt (London: Verso, 2012), pp. 1~14.

이와 같은 반봉건 상태의 이집트에 향후 정치적 지형을 결정할 세 집단이 등장한다. 자유장교단(Free Officers)으로 대변되는 장교단, 무슬림형제단(Muslim Brotherhood)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슬람전통 주의자 집단, 그리고 와프트(Wafd)당이라는 정당 형태로 정치적 의지 를 표출시킨 민족주의적 자유주의자(Liberals)가 그들이다.26) 전자인 자유장교단이 1952년 쿠데타 이후 주도적으로 이집트 정치를 좌우해 왔다면, 후자의 두 세력은 반대 세력으로서의 기능을 해왔다. 자유주의 자 그룹과 전통주의자 그룹은 역사-문화적 배경, 핵심 이념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대립적이었으며, 이들의 갈등은 이집트 독재체제가 장수 하는데 일조했다. 세 집단의 갈등과 전술적 협조는 시민의 저항운동의 전개를 매개로 이집트 근대 정치사를 좌우해 왔다.27)

이슬람주의자들의 핵심 대중 조직은 무슬림형제단이다. 이 조직은 영국 보호령 시절인 1928년, 코란(Quran)과 수나(Sunnah, 선지자 모 하메드와 그의 초기 추종자 및 코란 해석자들의 가르침과 관행으로 명백히 구현된 규범적 삶의 양식), 그리고 하디스(Hadith, 선지자의 가르침과 행위에 대한 기록과 구전에 의거한 이슬람 전통)는 완벽한 삶의 방식이자 정치 조직 교본이며, 따라서 이에 근거한 이슬람 정부 (Islamic Government)를 건설하여야 유럽식민주의와 근대물질세속 주의가 확산시킨 부조리와 부정의를 해소할 수 있다는 전통주의적 이 념의 주창자 하산 알바나(Hassan al- Bannah)와 그의 추종자들에 의 해 창립된다.

26) 이집트 주요 정치 세력의 기원, 이념적 지향과 현재 활동 상황에 대해서는 다음 참조. Bruce K. Rutherford, Egypt after Mubarak: Liberalism, Islam, and Democracy in the Arab World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2), pp. ix~xlviii.

27) Officer 그룹의 흥기와 독재체제의 건설 및 진화 과정은 본 챕터의 [2. 독재체제의 붕괴 원인 분석] 편에서 보다 자세히 다뤄질 예정이다.

1950년대에 형제단은 현대 이슬람 근본주의(Fundamentalism) 운 동의 시조 중 한 명으로 일컬어지는 사이드 큐틉(Sayyid Qutb)의 지도 하에 나세르의 세속적 권위주의체제에 맞서는 전투적 이슬람 조직으로 급진화의 길을 걷게 된다.28) 이슬람 율법 샤리아(Shari’a)는 인간계 모든 사안을 관장할 수 있는 완결체적 규범이며, 샤리아에 의해 규율되 는 정부를 구성할 때 정의로운 정치공동체 구성이 가능하다고 주장하 며, 나세르 군사정부를 포함하여 외세의 주구(Agent)에 의해 수립된 세속정권을 타파하고 정의 수립을 위한 성전을 촉구(Jihad)한다. 그가 1966년 나세르 대통령 암살 혐의로 사형에 처해진 후, 이슬람 세력은 극단적 전투 조직으로 변모한다. 특히, 1981년 사다트(Sadat) 대통령 암살을 결행하여 이집트 권위주의체제가 ‘국가안보체제’로 변신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을 제공한다.

무바라크 집권기 대중운동에 보다 치중하는 온건파가 대세로 등장하 면서 자유주의 세력과 연대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2005년에는 제도권 내 합법 투쟁을 선언하며 총선에 참가하여 88석을 얻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엄격한 샤리아의 적용과 율법학자들에 의한 이슬람공화 국 건설을 주장하는 강경전통주의파 살라피스(Salafis) 그룹과 선을 그 으며 자유주의 세력과 연대한 온건파 형제단은, 2011년 무바라크 정권 붕괴 직후, 자유정의당(Freedom and Justice Party)을 창당, 무르시 (Mursi)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킨다.29) 살라피스 그룹의 과격한 이념 및 거리 투쟁으로 인해 무정부 상태는 지속되고, 선명선 경쟁의 악순환 고리에 빠진 무르시 정부의 전통주의 회귀정책은 결국 2013년 군부가

28) John Calvert, Sayyid Qutb and the Origins of Radical Islamism (London:

Hurst and Company, 2010), pp. 157~228.

29) Salafis 그룹의 이념과 정치활동에 대해서는 다음 참조. Rutherford, Egypt after Mubarak: Liberalism, Islam, and Democracy in the Arab World, pp.

xix~xxi.

재등장하는 기회를 선사하게 된다.

지식인, 전문가 및 중소 상공인들을 기반으로 하는 이집트 자유주의 자 그룹은 고전적 자유주의 가치를 구현할 헌법제정과 법치를 추구한 다. 이들의 기원은 19세기 말 아메드 오라비(Ahmed Orabi)의 지휘로 외세 및 봉건 세력에 반기를 든 유라비 반란(Urabi Revolt)에서 기원한 다. 자유주의 근대화 목적의식과 민족주의 이념의 결합으로 탄생된 이 운동은 오라비의 추종자였던 사드 파샤(Saad Zaghlul Pasha)의 와프트당의 창당으로 연결되고, 독립 후 입헌군주제하에서 제1당으로 서 이집트 건국에 기여한다. 그러나 부패한 파룩(Farouk)왕의 봉건-가 산제적 통치와 이슬람주의자들의 저항으로 야기된 혼란 상황을 극복하 지 못하고 1952년 군사쿠데타를 맞게 된다.

군부의 와프트당 해산으로 정치 조직을 상실한 자유주의 그룹은 제 도권 내 사법부에서 군부의 전횡에 맞서 근대 법질서 및 자유주의 정의 관념 수호에 진력한 최고법원 재판관들에 의해 명맥을 유지한다. 무바 라크 통치기 제도권에 재진입한 와프트당과 더불어 2010년에는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장인 엘바라데이가 이끄는 ‘변화를 향한 국민 회의(National Assembly for Change)’가 총선에 참가하면서 대중적 지지 기반을 넓히기 시작했다. 2011년 민중봉기 시 자유주의 세력은 이슬람 온건파와 연대하여 무바라크 정권을 종식시키는 데 공헌한다.

자유주의 집단은 이슬람 세력에 비해 대중적 지지도 면에서 약세에 처해있고, 군부를 중심으로 한 체제수호 통치계급에 비해서는 경제적·

물리적 자원 면에서 열세에 있다. 국제사회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이 세력이 이집트 정치의 핵심 세력으로 자리 잡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948년 이집트-이스라엘 전쟁 기간 중 군주제 정부의 부패와 무능 력과 미영 세력의 압박에 국가적 위기 상황을 절감한 일단의 장교들을

중심으로 자유장교단이 형성된다. 1952년 이들은 쿠데타로 군주제를 폐지하고 정권을 장악한다. 범아랍주의(Pan-Arabism)의 반서방-민족 주의 정서와 전쟁 기간 중 절감한 ‘조국근대화’ 사명을 핵심적 목표로 설정한 군부는 나세르(Nasser) 주도하에 혁명적 국가 재건 작업을 개 시한다. 군사집정관(Military Praetorian)체제가 군주제하 와프트 자 유주의 내각을 대신하여 초기 국가 건설의 주역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범아랍주의와 더불어 아랍세계를 떠받치는 경쟁적 조류로서 범이슬람 주의(Pan-Islamism)의 실현을 추구하는 무슬림형제단과 여러 세대를 걸치는 전쟁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군부통치는 초기의 이념적 사명감을 상실하며 전형적 독재정권의 경로를 겪게 된다. 무바라크 통치기에 이르러서는 가산제적 대통령 중심체제로 진화하게 되는데, 2011년 민중봉기로 붕괴의 길을 겪게 된다.30) 그러나 이집트 군부는 2011년 무바라크 정권 붕괴 후 설립된 과도정부로서 형제단 정권이 정치적·사회적 혼란을 극복하지 못하자, 또다시 병영을 이탈하고 쿠데타를 감행한다. 나세르 쿠데타의 데자뷔 (Deja-vu) 현상이 목하 진행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