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풀뿌리 반체제 저항 운동으로 시작된 시리아 사태가 아사드 정권의 강경 진압을 거쳐 내전으로 확대된 지 5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16년 9월 현재, 시리아가 처해 있는 상황은 전쟁 의 종식과는 거리가 멀다. 주민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제공받아야 할 공공 서비스가 완전히 파괴된 지역이 적지 않으며 학교를 가지 못해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이 전염병에 노출되어 있다. 기아와 성폭력은 전쟁 수행을 위한 무기로 변했다. 각 지역을 개인 수하에 두려는 군벌들 과 과격 집단들, 아사드 체제에 충성하는 군과 보안기구, 해외에서 몰려 온 의용병들과 반체제 민간 및 군사 분파들이 뒤섞여 인간 안보를 위협 하고 있다. 이미 2만 명 이상의 시리아 주민이 사망했고 2,400만 전체 인구 가운데 절반 이상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주지하다시피 시리아 난민 사태는 인류가 경험한 최악의 난민 문제가 되리라는 전망이다.137)
137) 시리아 내부에서 발생한 난민의 수는 660만 명으로 추산되며 2011년 내전 발발
하지만 2016년 6월 7일, 시리아 의회에서 행한 연설 속에서 아사드 대통령은 반정부 세력과의 평화 교섭이 적들의 함정에 불과하다고 주 장하면서 시리아의 모든 영토를 곧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호언했다.
이러한 아사드의 자신감은 불과 1년 전인 2015년 7월 연설에서 보여 준 그의 태도와는 180도 다른 것이었다. 당시 그는 반정부 세력이 국토 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으며, 정부군이 상대적으로 중요한 지역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지역들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음을 인정했 었다. 물론 아사드가 자신감을 회복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러시아의 군사 개입이다. 폭격과 미사일 공격, 군사 훈련 등 러시아의 지원에 힘입어 아사드 정권의 중추라 할 알라위파의 집중 거주 지역인 시리아 서북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일관되게 시리아를 지원해 온 이란과 함께, 러시아는 북부 알레포 주의 반정부 세력을 거의 괴멸시켰으며 수도 다마스쿠스 주변에서도 반정부 세력을 약화시켰고 남부에서는 반정부 세력의 확장세를 저지했 다. 이를 계기로 아사드 정권은 이슬람 테러 조직 ISIS를 소탕하는 데 주력하면서 시리아의 동서를 연결하는 전략 거점 팔미라를 탈환하고 ISIS가 거점으로 삼고 있는 타부카를 향해 진격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 다. 타부카를 장악하게 되면 ISIS의 수도인 라카까지는 1시간 거리에 불과하다. 이는 시리아 정부군이 쿠르드인이나 기타 반정부 세력보다 먼저 ISIS를 붕괴시킬 수 있음을 의미하며, 동시에 아사드 정권은 서방 이나 반정부 세력과 타협하지 않더라도 극적으로 전략적인 입장에 서 게 된다. 아사드 정권이 ISIS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서방
이후 현재까지 국내를 탈출하여 외국으로 유입된 난민의 수는 유엔에 등록된 숫자 만도 460만 명에 달한다. UNHCR, “Syria Regional Refugee Response,”
Interagency Information Sharing Portal, <http://goo.gl/49ZhQW>. (검색일:
2016.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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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들도 대테러 전쟁의 파트너로서 아사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미국 역시 지금은 아사드의 퇴진보다 ISIS 타도를 목표로 내걸 고 있는 만큼 아사드와 제휴하고 있는 셈이다.138)
물론 아사드가 호언한 것처럼 정권 측의 승리가 눈앞에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주요 거점에서는 반정부 세력이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남아 있으며 아사드가 탈환한 영토 역시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반정부 세력은 북서부의 이들리브에서 공세를 강화하고 있고 시리아 남부나 다마스쿠스 교외에서도 상당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군이 라카나 딜 아르주르에서 ISIS를 소탕하려는 시도 자체 도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군 안에 병사와 물자가 부족하고 경제는 파탄 직전이며 국민들의 원성도 쌓여가는 상황이니, 내전이 종식되더 라도 아사드 정권이 이전처럼 전 국토를 보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전 발발 5년이 지난 현재까지 아사드 체제가 생존해 온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본론에서 고찰한 다양한 요인들을 종합하면서 아사드 정권이 생존할 수 있었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을 적시한다면, 한마디로 정권이 국가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고 시리아 주민들은 아사드 정권 이외에 그 어떤 정권이나 세력으로부터도 대안 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하페즈와 바샤르의 2대에 걸친 아사드 집권기 45년은 시리아 국가를 아사드 정권과 동일하게 인식할 수밖에 없는 여건을 조성했고, 주민들에 대한 사회, 복지, 교육 및 기타 생존과 관련한 모든 요소들의 제공자는 아사드 정권뿐이었다. 다른 반정부 세력은 물론, 세력 확장에서 주목할 만했던 ISIS 조차도 ‘제공자 (provider)’로서 아사드 정권을 대신하지는 못했다. 여타 중동 국가들
138) 현재 ISIS 소탕 작전에서 가장 큰 성과를 내고 있는 세력은 시리아의 쿠르드인 반정 부 세력 ‘시리아민주군(SDF)’과 아사드군 그리고 기타 소규모의 반정부 세력들이 다. 미국은 SDF를 지원하면서도 아사드 정권을 묵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는 달리 시리아에서 주민들과 엘리트의 이반이 최소에 그쳤던 가장 큰 원인은 여기에 있다. 시리아 정세를 연구하는 케데르 카두르는 “정 권이 국가를 무기로 사용”했다고 단언한다.139)
시리아 군은 정권을 교체하고 국민국가를 유지하려던 다양한 세력 들, 요컨대 세속주의적인 온건파 야당이나 이슬람주의 세력들의 초기 시도를 무자비하게 억압·분산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런 반면, ISIS에 대해서는 그들이 정권의 대체 세력으로 자처하면서 스스로의 공공 서 비스 제공 시스템을 구축 및 확장시켜 나가도록 방치해 두었다. 이는
“아사드냐, ISIS냐”라는 이분법적 선택지를 주민들로 하여금 받아들이 도록 만들었으며, 결과적으로 다수의 주민들은 아사드를 선택할 수밖 에 없는 상황이었다.140)
139) Khaddour, “The Assad Regime’s Hold on the Syrian State,” p. 7.
140) Ibid., pp. 3~4.
Ⅳ. 투르크메니스탄 사례연구
백우열(성균관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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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1. 투르크메니스탄 독재체제: 연구 필요성과 현황
가. 최근 중동사태의 비교권위주의 연구에의 함의
최근 중동사태는 2000년대 초중반 본격화된 현대 권위주의 정권 연구를 본격화하는데 큰 계기가 되었다.141) 기존의 비교권위주의 연구 의 핵심 지역이 남아메리카와 더불어 중동(Middle East)이었고142) 제4 의 민주화 물결이 2000년대 중반 동유럽, 코카서스(우크라이나, 조지 아), 그리고 중앙아시아(키르기즈스탄)에서 발생한 ‘색깔 혁명’에 이어 2010년대 초반 중동(튀니지, 리비아, 이집트, 시리아, 예멘)의 재스민 혁명에서 본격화되는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wishful thinking)을 유발하였다.
그러나 정치적 현실은 최근 재스민 혁명으로부터 비롯한 일련의 중 동사태 이후 튀니지를 제외한 다른 국가들은 민주주의로의 이행보다는 기존 권위주의로의 회귀(이집트, 예멘), 또는 다른 유형의 권위주의로 의 전환 및 강화(리비아), 그리고 내전 발발(시리아) 등의 부정적인 방향 으로 전개되고 있다. 또한 이 중동사태 이후의 중동 및 주변 권위주의 정권들의 체제 붕괴 및 전이 또는 복구와 지속성 강화의 사례는 중앙아 시아, 코카서스, 동북아시아(특히 북한), 동남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
141) 비교정치연구에서 일반적인 연구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세 번의 민주화 물결과 더불어 권위주의 정권의 민주화, 그리고 민주주의의 공고화라는 연구 주제가 정치 학계를 주도했으며 기존의 린쯔와 스테판 등 일군의 제3세계(중동,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정치 연구자들이 구축한 여러 이론적·실증적 연구 는 1990년대 말까지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의 저서 참조.
Huntington, Political Order in Changing Societies; Huntington, The Third Wave: Democratization in the Late Twentieth Century.
142) 이와 관련해 다음 참조. Chehabi and Linz, eds., Sultanistic Regimes; Guillermo O’Donnell and Philippe C. Schmitter, Transitions from Authoritarian Rule, Vol. 4: Tentative Conclusions about Uncertain Democracies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6), pp. 1~72.
의 권위주의 정권들에게 큰 주목을 받았다.143)
이러한 맥락에서 중동사태는 지리적으로 근접한 코카서스와 중앙아 시아의 권위주의 정권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었 다.144) 그 이유는 이 지역 국가들은 중동 지역 국가들과 유사하게 대부 분 권위주의 정권으로 분류되며 종교적(이슬람-수니/시아), 사회적(부 족(tribe) 및 씨족(clan) 중심), 경제적(지하자원-석유/가스 의존), 역사 적(아랍, 투르크, 페르시아 제국들의 후예)으로도 매우 유사하기 때문 이다.
또한 민주화이론의 하나인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로의 민주주의의 확산(democratic diffusion) 논리를 기반으로 중동사태는 중동과 매 우 근접한 코카서스와 중앙아시아 권위주의 정권들이 주목하고 경계하 고 학습하는 정치 현상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동사태가 미친 영향 을 중심으로 한 중동의 권위주의 국가 체제 지속성 연구는 중앙아시아, 코카서스 권위주의 국가 체제 지속성, 나아가 북한과 같은 동북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의 권위주의 국가 체제 지속성과의 비교연구의 중요한 시발점이라 하겠다.
나. 중동 비교민주주의 연구에서의 투르크메니스탄 연구의 필요성
본 “최근 중동사태에 비추어본 북한 체제 지속성 연구”는 중동 자체 보다는 중동 지역의 개별 국가들이 여러 문화적·정치적 차별성에도
143) 예를 들어 Sarah Lange, “The End of Social Media Revolutions,” The Fletcher Forum of World Affairs, vol. 38, no. 1 (2014), pp. 47~68.
144) Ekaterina Koldunova, “The Impact of the Arab Spring on Central Asia:
Regional and Macro-regional Implications,” in Security in Shared Neighbourhood: Foreign Policy of Russia, Turkey and the EU, eds. Rémi Piet and Licínia Simão (London: Palgrave Macmillan, 2016), pp. 145~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