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
이 이론의 뿌리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합리적 선택이론의 가설로 는 현실세계의 경제행위가 제대로 설명될 수 없음을 비판하고, 대안 으로서 합리성뿐만 아니라 제도에 관심을 집중한 ‘신제도경제학’ 이론 에서 찾을 수 있으며, 노스(Douglas C. North)가 대표적인 학자이
29) 논의와 흥정의 논리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 참조. Thomas Risse-Kappen,
"Let's Argue!: Communicative Action in World Politics," International Organization, Vol. 54, No. 1 (2000), pp. 8-11; 김학성, 「한반도 평화체제 에 대한 이론적 접근: 현실주의, 자유주의, 구성주의의 비교」 (서울: 통일 연구원, 2000), pp. 165-167.
다. 정치학에서는 미국의회의 행태 연구를 통해 처음으로 합리적 선 택 제도주의가 도입되었다.30) 합리적 선택이론의 가정에 따르면, 의 원들의 다양한 선호순위와 이슈의 다차원적 성격 탓에 항상 안정적 다수가 확보되기 어려워야 하지만, 실제로는 의회의 결정은 의외로 안정적으로 이루어져왔다. 이렇듯 가정과 현실의 차이에 주목한 학자 들은 제도개념을 도입하여 그 이유를 밝혔다. 즉 절차규칙 및 상임위 원회와 같은 의회의 제도는 협상을 위한 거래비용을 낮춤으로써 입법 과정에서 관습적으로 드러나는 집단적 행위문제들의 상당부분이 해결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 제도 개념
노스에 따르면, 제도는 사회에 적용되는 게임의 법칙, 즉 인간이 고 안한 제약으로서 인간사이의 상호작용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즉 제도 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분야의 모든 교환과정에서 인간의 상호작 용을 특정방식으로 구조화한다. 이처럼 인간의 상호작용에 안정적인
― 그러나 반드시 효율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 ― 구조가 설정됨으 로써 불확실성이 감소될 수 있다. 이 맥락에서 제도는 단순히 제약일 뿐만 아니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31)
노스는 제도의 범주에 ‘비공식적 제약,’ ‘비공식적 규칙,’ ‘공식적 규 칙’의 세 가지를 포함시킨다.
첫째, 비공식적 제약은 타인과의 일상적인 상호작용을 지배하는 것 으로서 흔히 행위코드, 행동규범, 관습 등과 같은 사회적으로 전달된
30) Peter A. Hall & R. C. R. Taylor, "Political Science and the Three New Institutionalisms," pp. 942-943 참조.
31) Douglass C. North, Institutions, Institutional Change and Economic Performance (Cambridge: Cambridge Univ. Press, 1990), pp. 3-7.
유산, 즉 문화의 일부분이다. 여기서 문화는 지식, 가치, 기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교육과 모방을 통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32)
둘째, 비공식적 규칙은 행위자가 다른 행위자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규정함으로써 이해의 갈등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 나 규칙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단순화하고 활 동을 조직하는 틀을 부여하는 것으로서 특정 기준과 수단이 보완될 때, 통제력을 가질 수 있다. 비공식적 규칙의 종류로는 공식적 규칙을 확장, 개량, 수정하는 위원회, 사회적으로 승인된 행위규범, 내적으로 강제되는 행위기준을 들 수 있다.33)
셋째, 공식적 규칙은 정치조직의 위계구조, 기본적인 의사결정구조 와 의제통제 등과 관련된 ‘정치적(사법상의) 규칙,’ 재산권을 규정하는
‘경제적 규칙,’ 교환에 대한 합의와 관련된 ‘계약’의 형태를 띠는 것으
로서 일차적으로 이기심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공식적 규칙은 일반적 으로 새로운 규칙을 고안할 수 있는 교섭력을 지닌 사람들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만들어진다. 규칙의 고안과정에는 항상 위반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위반의 정도를 측정하며 위반자를 통제하는 ‘순응비 용’(compliance costs)이 고려된다. 만약 이 비용이 규칙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초과할 경우, 규칙은 만들어지기 어렵다.34)
(2) 제도와 행위의 관계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의 제도 개념은 행위의 합리성에 집착하는 합 리적 선택이론의 현실세계에 대한 설명의 한계를 보완해준다. 즉 현
32) ibid, pp. 36-37.
33) ibid, pp. 38-40.
34) ibid, pp. 46-48.
실세계를 더욱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합리적 행위뿐만 아니라 제도의 역할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스는 행위자의 교환과정에서 효율적인 경쟁 및 결과가 발생하지 못하는 이유를 거래 비용의 존재에서 찾고 있다.35) 노스는 거래비용을 인간의 불완전한 정보 획득에서 발생하는 비용으로 이해한다. 신고전학파의 주장처럼 효율적 경쟁의 결과를 얻기 위해 거래비용을 감소시키려면, 행위자의 정보처리 방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제도는 바로 그 러한 방법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즉 제도는 행위를 규정하는 동 기부여와 환경이해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유발시킨다는 것이다.36)
경제행위에는 항상 거래비용이 발생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재화 나 서비스의 교환과정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고, 생산과정, 즉 재화의 물리적 속성 변환과 토지, 노동, 자본의 투입에서 발생하는 비용에도 조직, 감독, 조정, 감시 등을 위한 거래비용이 발생한다. 무엇보다 행 위자들간에는 항상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 보처리 방법의 문제 해결이란 맥락에서 제도는 거래비용과 재화의 물 리적 변환에 소요되는 전환비용을 결정해주는 교환구조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다만 제도가 교환과정의 조정과 생산의 문제를 얼마나 잘 해 결할지는 참여자의 동기(효용함수), 환경의 복잡성과 그 환경을 이해 하고 순위를 부여하는 참여자의 능력(측정과 집행)에 의해 결정된 다.37)
노스는 계약이나 교환행위에서 자동적인 협력이 존재할 수 없으며, 항상 제도적인 신뢰성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경제사를 통해 입증하 고 있다. 또한 이론적으로 제도가 행위자들의 협력을 보증해줄 수 있 는 근거로서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처벌이 언제 필요한지를
35) ibid, pp. 15-16.
36) ibid, p. 25.
37) ibid, p. 34.
알게 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대화 메커니즘을 작동시킴으로써 배신 여 부를 감시할 수 있다. 둘째, 처벌을 통해 공동체가 이득을 얻지만, 비 용은 대개 소수 개별집단이 부담하게 된다. 즉 처벌은 공공재의 성격 을 띤다. 따라서 처벌이 요구될 때, 처벌을 실행하는 행위자는 상응하 는 동기부여를 얻어야 한다. 이처럼 강제력을 가진 제3자의 집행은 거래비용을 낮추는 데는 기여하지만, 엄청난 경제적 비용을 요구한 다.38) 즉 제도는 항상 비용을 감소시키는 역할만을 하지 않는다. 현 실적으로 제도체계는 비용을 낮추는 제도와 비용을 높이는 제도의 혼 합체로서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이 맥락에서 고전경제학의 가정처럼 시장은 완전하지도 반드시 효율적이지도 않다.
이러한 제도와 행위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기반으로 노스는 행위자 가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목표달성을 위한 선택을 한다는 신고전학파 들의 목적합리성 가설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한다. 그 대신 행위자의 정보가 불완전하고, 선택의 길잡이로서 주관적인 모델을 고안하며 정 보의 피드백에 의해 자기의 모델을 수정하기는 하지만, 매우 불완전 하게 수정할 수만 있다는 의미에서 ‘절차적 합리성’(procedural
rationality) 가설이 이론적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39)
(3) 제도의 변화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는 제도변화와 관련하여 두 가지 문제를 제기 하고 있다. 하나는 제도변화의 동인 및 원천이고, 다른 하나는 제도변 화의 속도 및 경로에 관한 것이다.
첫 번째 문제와 관련하여 조직, 지식 및 이념, 적응효율성
38) ibid, pp. 57-58.
39) ibid, pp. 108-109.
(adaptive efficiency), 상대가격 등의 개념이 제시된다. 노스는 먼 저 목표달성을 추구하는 조직의 행위에서부터 출발한다. 조직이 목표 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보와 지식이 필요하며, 이는 대개 특정한 제 도적 맥락의 결과이다. 지식이 제도적 맥락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전달할 수 있는 지식뿐만 아니라 실천과 경험을 통해서 획득되고 소통될 수 있는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40)을 염두 에 둔 것이다.
조직의 목표달성 행위는 경험학습과 기술 및 지식에 대한 투자와 제도적 제약을 바꾸기 위한 자원 투입이라는 두 가지 방향에서 전개 된다. 여기서 조직(행위자)과 제도의 상호작용이 발생하게 되는 데, 노스는 그것이 신고전학파의 주장처럼 분배효율성(파레토 최적)을 지 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적응효율성’을 지향하기도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서 행위자의 이익에 의해 그 방향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제도틀에 내재된 동기부여가 경험적 학습과정과 암묵적 인 지식의 발전방향을 결정하고, 개별 행위자로 하여금 의사결정과정 을 통해서 현재의 체계와는 다른 체계로 서서히 발전해나가도록 이끈 다는 것이다.41) 이 과정은 행위자에게 항상 성공만을 보장하지는 않 으며, 실패를 통해 배워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노스는 제도변화의 중요한 원천으로서 ‘상대가격’의 변화 ― 요소가 격 비율의 변화(노동과 토지간 비율, 자본에 대한 노동 또는 토지에 대한 자본의 비율변화)와 정보비용 및 기술의 변화 ― 와 이념 및 이
40) 폴라니(M. Polanyi)가 만든 개념으로서 프로운동선수들은 경기에 대한 지식은 대표적 예가 될 수 있다. 이들은 특정한 규칙틀 내에서 경기를 하지만, 규칙만 이해한다고 해서 훌륭한 경기를 펼칠 수는 없다. 반복 적인 실천과 경험을 통해 경기의 기술과 지식이 습득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암묵적 지식은 아마추어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41) Douglass C. North, Institutions, Institutional Change and Economic Performance, pp. 80-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