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소녀-되기의 시간성과 복수화된 주체
4.1. 소녀-고아들의 반(反)기억 서사
1990년대 문학(장)에서 배수아의 소설은 거의 빠짐없이 ‘새롭고 낯설다’는 표현을 동반하며 조명되어 왔다. 1993년 소설과 사상에 「천구백팔십팔년 의 어두운 방」을 발표하며 등단한 배수아는 첫 소설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1995)에서 7~80년대에는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는 도시의 아이들을 그려냄으로써192), 90년대에 등장한 ‘신세대’의 새로운 문화적 감수성을 대변 하는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매김 되었다. ‘문화의 시대’에 등장한 신세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폭발적이었던 1993년~1994년 무렵의 시선에서193) “헤 이즐넛 커피, 피자, 다이어트 코크, 디즈니 만화와 홍콩 영화와 같은 문화적 코드를 감수성의 기원으로 삼는 아이들의 등장”194)은 그 자체로 ‘신세대 문 학’의 출현으로 번역되었던 것이다. 배수아 소설의 새로움과 낯섦은 기존의 한국문학의 과잉된 이데올로기와 역사적 무게로부터 이탈한 ‘이단적’ 텍스트 로서 비평(장)의 환호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195)
그러나 배수아의 소설의 ‘새로움’은 신세대적 감수성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복합적인 측면들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당시 비평가들의 분석에도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당대의 배수아 문학에 관한 비평을 크게 ⒜신세 대 문화의 코드와 관련성을 부각하면서 그것이 새로운 세대의 ‘성장소설’임 을 보여주는 경우196)와 ⒝신세대의 글쓰기, 서술/재현 방식으로서의 ‘이미
192) 정과리, 「어른이 없는, 어른된, 어른이 아닌」,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해설, 고려원, 1995, 265~267면.
193) ‘신세대’라는 말은 1988년 한국일보의 기획 기사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본격적 으로 이 ‘신세대’의 등장이 관심을 모은 것은 1990년대 초반이었다고 한다. 특 히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 신세대: 네 멋대로 해라(미메시스, 1993)의 출간 이후 탈권위주의적, 개인주의적 성향을 가진 하위문화 세대로서
‘신세대’를 둘러싼 논쟁은 본격적으로 심화되기 시작한다. 김호기·박태균, 「신세 대 논쟁」, 논쟁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 메디치미디어, 2019. 225-226면 참조.
194) 김동식, 「우리 시대의 공주를 위하여—배수아론」, 문학과 사회 1996 여름, 762면.
195) 권명아,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부대낌과 상호작용의 정치, 갈무리, 2019, 1900면.
지’에 주목한 경우197), ⒞가족 해체의 현실에 관한 ‘반영론적’인 관점198) 등 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글들은 배수아의 소설에서 성장 ‘없는’ 세대의 성장이나, 실재에 우선한 이미지, 가족해체라는 현상 등을 읽어내고 있는데, 세부적인 설명에는 차이가 있지만 이들은 대체로 그녀의 소설이 후기 산업 사회 현실의 반영 또는 포스트모던 글쓰기와 연관됨을 읽어내며 90년대 등 장한 새로운 세대의 자화상이라는 점에서 합의점을 도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때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배수아 소설의 특이성이 주 로 소년과 소녀로 대변되는 ‘아이들’의 형상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첫 소설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에서 사회에 융화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어른-아이들의 형상은 장편소설 랩소디 인 블루(1995)에서는 소녀의 1인칭 성장담의 형식으로, 바람인형(1996)과 부주의한 사랑
(1996)에서는 유년기의 동화적 상상으로 변주되어 나타나는데, 이 점은 일 관된 주제의식을 공유하기보다는 매 작품마다 다른 것들을 시도한 그녀의 소설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지표라 할 수 있다. 기실 배수아의 작품이 포괄하는 성장의 테마, 유년기의 동화, 기억과 이미지는 모두 이 ‘아이들’의 형상을 매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당대의 비평들은 배수아의 ‘아이들’을 신세 대적 문화의 ‘기호’나 ‘반영’ 또는 반성장의 ‘표지’로 규정함으로써 오히려 이들을 성장/반성장, 실재/이미지의 구도 어느 한 쪽에 환원되도록 만들어 버린 측면이 있다.199) 본고는 배수아의 아이들, 정확히는 ‘소녀들’이 발생시
196) 정과리의 해설(「어른이 없는, 어른된, 어른이 아닌」)과 성민엽의 해설(「성장 없는 성장의 시대」)이 대표적이다.
197) 김동식(앞의 글), 김미현(「이미지와 살다」, 부주의한 사랑 해설, 1996), 신 수정(「포스트모던 테일」, 문학동네, 1998) 등이 있다.
198) 최인자는 앞서 배수아 소설의 ‘아이들’에게 신세대라는 꼬리표를 붙여졌음을 지적하며, 그들을 “상품 이미지에 사로잡힌 소비 시대의 기형아처럼” 이해되도 록 만드는 것이 이미 ‘어른’인 누군가의 시선에서 그 존재 자체를 “저 멀리 던 져버리고” 마는 일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최인자, 「상처로 봉인 된 기억 되찾기」, 바람인형 해설, 문학과지성사, 1996)
199) 최근 권명아는 1990년대 중반 당시에는 배수아의 ‘아이들’의 정체를 규정하고 논의할 만한 개념이 한국 사회에 없었음을 지적하며, 배수아 문학에 등장하는
‘아이들’을 개념보다 먼저 포착된 ‘리얼리티’로 재의미화하며, 이들을 비정규직 노동과 아르바이트, 자발적 실업과 부정기적 노동 등의 새로운 형태의 노동으로
키는 고유한 시간 형식에 주목함으로써 좀처럼 서사적으로 환원되지 않는 배수아의 재현과 여성 주체화의 모델 사이의 연관을 포착하고자 한다. 여기 서 ‘소녀들’이 중요한 것은 배수아의 작품에서 어른이 아닌 존재로서의 ‘미 성년’들은 사회적 나이 관념과 무관하게 ‘소녀’와 ‘소년’으로 불리고 있지만, 소녀의 삶은 소년과 결코 동일한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 은 이미 성차화되어 있으며, ‘고아의식’200)을 가진 주인공 소녀는 언제나
‘오빠’의 삶과는 다른 성장 과정을 겪는다.201) 이 절에서는 첫 소설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1995)에 실린 「엘리제를 위하여」와 바람인형(1996)에 실린 「프린세스 안나」를 통해 배수아의 소설에서 지속적으로 형상화되는 소 녀-고아의 형상을 짚어보고, 이들의 유년기의 서사가 어떻게 장편소설 랩 소디 인 블루(1995), 부주의한 사랑(1996)에서 기억의 문제로 심화되는 지를 살피고자 한다. 이는 구체적으로 배수아의 소설들에서 ⑴ 소녀들의 불 운의 반복과 자리바꿈의 양상을 살펴보고, ⑵ 그러한 운명적 시간으로부터 달아나거나/사라지는 소녀들의 기억법을 살피며, ⑶ 자기 안의 불일치하는 시간으로서 소녀-되기의 주체화와 과정과 시간성을 규명하는 작업으로 이 어질 것이다.
배수아의 소설 속 주인공 소녀가 가진 ‘고아의식’의 문제는 90년대에 제 출된 작품론에서도 종종 지적되어 왔다. 소설의 어린 여자아이는 “아버지에 의해서 부여된” ‘공주’라는 호칭을 근원적인 자기 이미지로 소유하고 있지 만202), 이러한 호칭 체계가 작동하는 가족/집은 부모의 이혼과 재혼을 통해 붕괴된 상태로 비추어진다. 따라서 먼 친척 또는 양부모가 친부모를 대리하 는 상황은 이 아이들의 “실존적 조건”203)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 유념할 것
삶을 이어가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로 명명한다. 권명아, 앞의 글, 191-192 면.
200) 「배수아 신작장편 「부주의한 사랑」 고아의 눈에 비친 부조리한 삶」, 경향 신문, 1996.12.3.
201) 권명아는 일찍이 배수아의 소설을 적극적으로 여성주의 관점에서 조명한 비 평가에 해당하는데, 당대의 여성적 정체성 형성의 메커니즘 속에서 신경숙과 배 수아의 ‘소녀들’을 분석한 바 있다. 권명아, 「패밀리 플롯으로 서사화되는 자기 정체성과 역사 그리고 소설」, 작가세계 12(1), 2000.
202) 김동식, 앞의 글, 764면.
은 배수아 소설의 어린 소녀들에게는 아버지만 부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 니도 언제든 부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항상 그 부재의 자리를 대체 하는 것은 어머니의 언니, 여동생(이모)들이다.
1994년 문학과 사회에 발표된 소설 「엘리제를 위하여」는 배수아 소설 의 아이들이 어떻게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마저 떠나보내고 ‘고아들’의 세계 로 진입하게 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텍스트이다. 이야기에는 엄마와 소아 마비에 걸린 동생과 함께 아버지 없는 생활을 보내는 열세 살 소녀(‘나’)가 등장한다. 자신을 피아니스트로 키우고자 하는 엄마 때문에 무더위에도 시 내의 피아노 학원에 가야만 하는 ‘나’는 이미 붕괴된 가족 구조 속에서 아 버지가 돌아올 것이라는 환상도 가정에 대한 편안함도 느끼지 않는 인물이 다. 소녀는 다만 소아마비인 동생이 언젠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불안 을 느끼면서, 엄마에게 전해들은 아빠의 “유전적 결함”204)이 자신에게도 있 는지, 언젠가 자신도 동생처럼 되고 마는지 걱정할 뿐이다. 그러나 이내 소 녀는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이모에게 맡겨지는 상황에 처한다. 아픈 동 생은 요양원으로 보내지고, 홀로된 소녀는 자신이 결국 동생처럼 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생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머니가 언 제나 하곤 했지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동생은 잘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침을 잘 흘리고 공부는 아주 못했다. 어머니 가 그 아이는 곧 죽을 거라고 말하던 것이 언제였나. 오늘이던가. 아니면 아주 오래 전부터인가. 무엇 때문에 그렇지? 아버지 때문에. 그래, 그것 때문이야. 동생이 그의 아이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나는, 나도 아버지의 아이가 아닌가. 나도 언젠가는 남동생처럼 침을 흘리고, 다리를 절고, 공부도 못하고 어머니 말고는 아무도 같이 놀아주는 친구도 없고 말을 더듬게 될까? 모두가 속으로 은근히 없었으면 하고 바라는 그런 아 이가 될까. 그리고 그것 때문에 죽게 될까.
「너를 만나려고 경혜네 집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었어.」
203) 신수정, 앞의 글, 81면.
204) 배수아, 「엘리제를 위하여」,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고려원, 1995, 69면.
이하 소설 본문의 직접인용은 이 판본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