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자신의 현재 삶에 대한 만족으로부터의 믿음, 좌절의 극복으로부터의 믿음, 현실과의 타협을 통한 믿음 등 사회에 대한 믿음을 지니는 요인은 상당히 다양할 것이다. 이렇게 여러 계기를 통해 사회에 대한 믿음을 지닌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믿음’은 크게 4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들이 믿는 것이 상당히 성취가능성이 높은

‘작은 욕망’이라는 점, 중산층의 평범한 삶을 추구한다는 점, 예측 가능하고 평가가 구체 적인 것에 집중한다는 점, 타인에게 무관심하다는 점이 이에 해당한다.

(1) 무한한 가능성이 제거된, 한계 지어진 작은 욕망

먼저 믿음의 내용 중 초점을 가장 맞추어야 할 특징은 한계 지어진 작은 욕망이라는 사실 이다. 기성세대들이 사회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는 청년층을 생각한다면 이들은 이 사회 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믿음을 지닌 청년들이라고 간주할 것임에 틀림없 다. 하지만 실제로 이 유형의 청년층은 사회에 대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하면 된 다.’라는 식의 무한한 가능성 및 잠재성을 꿈꾸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의 기저에는 항상 절대적 권력층들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경영남1은 자신이 현실에 서는 약자 같다고 느꼈으며, 공대여2는 갑이라고 불리는 절대적 권력층을 배제하고 생각 할 수밖에 없으며 그들을 고쳐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하며 자신이 사는 현실세계 에서는 그들에 의한 불평등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취준남1도 자신이 이 사회에 서 노력을 하면 보상을 받는 것은 확실하지만, 절대적 권력층과의 경쟁을 가정해보면, 그 가정 자체가 웃긴 것이라고 생각하며, 현실은 이러한 권력층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끼 리의 경쟁이라고 단정 지으면서 공대여2와 동일한 입장을 취했다.

절대적 권력에 의해 한계 지어진 욕망들은 그들이 미래 생활에 영위하고 싶은 삶의 모습에

03 한 만큼 대우받는 사회에 대한 믿음 / 39

도 영향을 미친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목표 지향적이고 무엇을 성취하기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목표는 항상 성취가 가능한 것이었으며 미래의 목표에서도 이러한 성향을 보였다. 꿈이라고 하기 무색할 만큼 현실적이었다. 공대 학생들은 모두 기 업에 취직하는 것이었으며, 고시남1은 회계사 시험에 합격해서 회사에 들어가는 것, 취준 남1도 일반 기업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누구 하나 현실에서 이루기 어려울 법한 큰 욕망을 품고 있는 사람이 없었으며, 자신이 그나마 성공할 수 있는 분야를 꿈으로 상정하고 그 안에서 만족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취준남1이 미래를 묘사할 때 ‘드라마에 나오는 상 위 1%의 가정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으로 돈 어느 정도 벌고, 가족들 먹여 살릴 만큼만 됐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했는데, 이미 상위 1%의 가정은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 상적인 가정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렇게 여태껏 사회가 인정하는 방식으로 대우받고 생활해오며 사회에 대한 믿음도 지 니고 있는 청년층마저도 상위 1%의 생활양식을 그저 현실에서는 도달하지 못할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자라오면서 절대적 권력층에 대한 영향력을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받아왔으며, 그 속에서도 자신들이 만족할 만큼의 생활을 보냈으므로 그 것을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공통적으로 이 유형의 사람들은 자신과 경쟁하는 대상들을 범위 지을 때 절대적 권력층을 배제했으며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들이 미래에 꿈꾸는 생활 역시도 상위 몇 퍼센트의 권력층들이 누리는 것들을 제외한 세상에 서 만족할만한 상태이다. 그들은 이미 이러한 현실에 적응했으며, 불만은 있을지라도 이에 저항하기보다는 그냥 눈감고 넘어가는 쪽을 택하며 살아왔다. 그것이 그들의 삶에 도 도움이 된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유형의 사람들은 절대 갑, 그리고 흔히 말하는 ‘금수저’에 대한 불평등에 대항 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들을 인정하며 자신의 실속을 차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것 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지만 살아오면서 무의식적으로 인정하고 자신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지니게 된 것 같다. 이는 현실타협형이 현실에 안주하게 되는 현상과 비슷하다. 경영남2는 불평등한 권력이 주어지는 현실에 계속 부딪히게 되니까 비판에 대 한 확신도 없어지면서 생각을 바꿨으며, 이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배제하기 시작했다. 공대여2도 마찬가지로 우리나라가 심하게

40 / 서울 시민의 꿈과 삶 - ‘한 만큼 대우받는 사회’를 꿈꾸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학연, 지연에 치우치는 현상을 지적하면서도 이에 대한 저항의지보다는 자신이 살아갈 방 법을 궁리하는 쪽에 중심을 두었다.

이들이 꿈꾸는 작은 욕망들은 그저 평범한 삶을 추구하는 청년층을 양산했다. 상당히 긍정적이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한 유형이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미래의 삶은 지극히 평범했다. 그들은 딱 중산층 정도의 수준을 바라고 있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화려 한 삶은 이루지 못할 것으로 꿈꾸는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자신들이 마 지노선으로 설정한 수준 내에서 만족을 얻기를 바랐다. 특히나 이 유형에 속한 남성들 은 행복한 가정, 안정적인 한 가정의 남편, 화목한 가족의 가장 등 일반적인 가정의 가 장이 되기를 원했다. 자신의 가정환경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겠지만, 이 속에서는 어 떤 큰 이상이나 포부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마지노선이 중산층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결코 낮은 수준의 욕망이라고 할 수 없다. 이 들은 중산층의 삶을 상당히 높게 평가했으며, 열심히 노력을 해야 그 정도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중산층을 목표로 설정한 것은 자신들이 열심히 노력 해야 보상받을 수 있는 수준이 최종적으로 중산층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작은 욕망이라 고 평가되지만 결코 그들에게 작지 않은 욕망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이 사회에 대한 믿음을 지닌다는 근본적인 의미는 자신이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사 회에 대한 믿음이다. 이들이 이토록 믿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많은 부분에서 예 측 가능하고 평가가 구체적인 것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계산 가능하고 비교할 수 있는 정량적인 것에 초점을 맞췄으며, 모든 사람의 노력을 자신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따라서 노력한 만큼 얼마만큼의 보상이 주어졌으며, 이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 서 얼마나 정당한 것인지 나름의 평가를 내린 것이다. 그들이 눈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것들만 논의의 대상으로 치기 때문에 상당히 주관적이고 정성적인 노력과 보상을 간과할 수 있다. 노력에 대한 정의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인식하는 것도 다를 수 있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평가 가능한 시간이나 시험 결과나 스펙 등으로 간주하고 있 었다. 이 때문에 자신들의 노력을 보이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하며 보여주기 식의 노력에 취중하고 있었으며 그것이 옳다고 확신하고 미래에도 그런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는 태 도를 보였다.

03 한 만큼 대우받는 사회에 대한 믿음 / 41

이런 태도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이들이 평가하는 것은 상당히 정량적인 부분에 치우쳐있고, 이러한 관점으로 상대의 노력들을 평가한다. 노력에 따른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하고 보상이 없다는 것은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는 체계가 그들의 논리의 근간이 되기 때문에 타인의 불평과 불만은 이 유형의 사람들에게 핑계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타인의 상황보다는 개인의 삶이며, 더 구체 적으로는 자신의 노력이다. 이들은 개인이라면 누구나 자신과 다름없을 것이라고 생각 하면서, 개인의 특수한 사회적 상황이나 개인적 배경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 가 자신보다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 냈으면 이는 분명 자신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 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보다 못한 결과를 보였으면 자신이 그 누군가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에 확신한다. 이렇게 정량적인 부분에만 평가의 가치를 두는 경향 은 타인의 개인적 요소들이나 사회구조의 문제점을 간과하여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 리는 태도를 나타나게 하며, 종국적으로는 각 개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진전된다.

다시 말해, 사회에 대한 믿음은 청년의 무한한 꿈을 지지하고, 개인들이 더불어 살아가 는 그러한 사회에 대한 믿음이 아니다. ‘하면 된다.’라는 말을 믿고는 있지만 청년층의

‘하면 된다.’는 것은 ‘하면 중산층까지는 될 것이다.’라는 말을 의미한다. 그들에게 사회 는 평범한 삶마저도 큰 꿈이 되어버린 곳이다. 그나마 이들이 이러한 사회에 대해 만족 과 믿음을 지닐 수 있던 것도 결과위주의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왔으며, 이들 역시 도 이에 익숙해져서 예측 가능한 것들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타 인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에, 만족스런 사회에서 불만을 제기하는 개인들은 그들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