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마르쿠제의 프로이트 수용과 재해석
2. 마르쿠제의 프로이트 해석
2-1. 마르쿠제 프로이트론의 특성
마르쿠제가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해석을 제시했을 때 그의 해 석은 자의적이며 왜곡되어 있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신프로 이트학파로 분류되는 에리히 프롬은 마르쿠제와 논쟁을 벌이며 그 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은 역설적이게도 마르 쿠제 프로이트론의 특성을 오히려 정확히 짚어주고 있다. 따라서 프 롬의 비판과 평가를 살펴보는 것은 마르쿠제의 프로이트론을 간명 하게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신프로이트학파의 비판에 따르면, 모든 정신활동을 리비도의 작 용으로 설명하려는 이론적 태도는 구체적인 사회역사적 상황에 대 한 고려나 포착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한 태도는 모든 시대와 공간 에서 인간의 정신활동을 리비도에 의거해 일면적으로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로이트 이론을 리비도적 개념으로 파악하 려는 마르쿠제의 해석 방식으로는 프로이트 이론의 사회역사적 특 성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프롬은 마르쿠제가 쾌락원칙과 현실원칙의 이분법을 강조하며, 억압이라는 용어를 일반 적인 의미에서의 정치적 강압과 다르지 않게 사용한다고 지적한다.
프롬이 보기에 개인 심리와 달리 정치적 억압은 사회경제적인 요소 들로 설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마르쿠제는 사회적 강압의 요소들과 개인적 억압의 요소를 구별하지 않음으로 인해 오히려 사회적 요소 들을 희석시켰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마르쿠제가 프로이트 이론의 유물론적인 특징을 퇴보시켰다고 비판한다. 비판의 근거는 마르쿠제 의 논의가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프롬이 보 기에 프로이트 이론의 유물론적 근거는 “경험적이고 생물학적인 지 식과 분석”에 있었다.52) 삶과 죽음, 사랑, 욕구, 의식과 같은 철학적 사변들도 이 유물론적 근거 위에 두기 때문에 프로이트 이론은 의
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르쿠제는 프로이트의 경험적인 개념 들을 철학적(그것도 불명료한) 고찰의 주제로 다시 환원시킴으로써 프로이트의 업적을 훼손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53)는 것이다.
그러나 프롬의 지적은 역설적으로 프로이트 이론에서 역사성을 도출시키려는 마르쿠제의 노력을 잘 보여준다. 마르쿠제는 일찍이 역사적 유물론의 본질 개념이 실천적 함의를 지녔다는 사실을 밝힌 것처럼, 프로이트의 본능 이론은 인간의 활동성을 추동하는 힘을 분 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했다. 그는 추동력의 핵심에 리비도 가 있다고 여겼다. 그가 보기에 프로이트 이론의 유물론적 근거는 생물학적 실험이나 임상 경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리비도를 바탕으 로 한 본능 이론에 있었다. 마르쿠제는 비역사적이고 비과학적인 개 념으로 배척받는 리비도 이론이 오히려 인간의 본능에 가해진 역사 적 강압과 변형을 설명해 줄 수 있다고 보았다. 그 ‘비역사적인 개 념’ 안에는 이미 ‘역사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 개념의 특성은 이렇게 그 반대의 요소들을 포함한다.
즉 그들의 역사적 실체는 어떤 사회적 사실들을 (‘문화적’ 신프로 이트학파가 하듯이) 첨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내용을 펼침으로써 재포착되어야 한다.(EC 35)
마르쿠제는 프로이트 이론이 제시하는 개념들 자체가 인류의 발달 사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본다. 그 의미를 밝히기 위해 그는 프로이트 개념의 사회적인 확장을 시도한다. 그가 보기에 프로이트 이론은 자체적으로 사회적인 함의를 포함하고 있다. 이를테면 정신 기능에서 쾌락원칙과 현실원칙의 대립 구도는 역사적인 과정 속에 서 성립된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대립이 형성되는 역사 과정에서 개인적인 정신활동이 억압되는 것은 정치적 억압과 같은
52) 프롬, 앞의 책, p. 39.
53) 위의 책, p. 50.
선상에 있다. 즉 정신활동 안에서 벌어지는 두 원칙 간의 갈등은 사 회적인 갈등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 이론을 확대 재해석하려는 마르쿠제의 노력은 인간이 어떻게 비본질적인 현상을 극복하고 본질을 실현시킬 수 있는가를 궁구하는 전통적인 사유와 관련되어 있다. 그는 프로이트 이론에서 비본질적인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실천의 노력을 발견하려 했다.
이에 대해 마르쿠제는 자신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이 논문의 목적은 정신분석 자체가 아닌 정신분석의 철학에 공 헌하려는 것이다. [...] 프로이트는 인간의 이론, 즉 엄격한 의미 에서 ‘정신의 논리’를 전개했다. 이런 이론으로 프로이트는 철학 의 위대한 전통, 그리고 철학적 표준 아래 자신을 위치시킨다. 우 리의 관심은 프로이트 개념의 수정된 혹은 진전된 해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사회적 함축에 있다.(EC 7)
실지로 마르쿠제는 『에로스와 문명』에서 사변적인 주제들을 비중 있게 다루며 계속되는 저술활동을 통해 프로이트의 개념을 사회철 학적인 의미로 전개하고 있다. 그는 사회철학을 프로이트 이론 안에 삽입하려는 독특한 시도로서 에로스와 죽음본능이라는 인간의 이중 적인 본능 구조를 생명과 죽음이라는 사변적 주제로 해석한다.
2-2. 본능 구조의 억압적 분화: 에로스와 죽음본능
프로이트로부터 철학적 함축을 이끌어 내려는 마르쿠제의 시도 는 에로스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서 드러난다. 마르쿠제는 프로이트 가 정립한 에로스 개념 즉 생물학적 결합에의 욕구, 리비도 집중, 죽음본능과 대비되는 생명본능 등을 대부분 받아들이면서, 여기에 철학적 의미를 덧붙인다. 그는 다음과 같이 생명본능으로서의 에로 스 개념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또한 죽음이라는 비존재에 대한 부
정으로 재정의한다.
(프로이트의) 메타심리학은 존재의 본질을 정의하려고 시도하면 서, 그것을 에로스로 정의한다. [...] 죽음본능은 에로스에 대립하 여 비존재(존재의 부정)의 원칙에 합치한다.(EC 124-125)
그리고 그는 생물학적 결합 욕구라는 에로스의 속성에 ‘도덕성’을 부여하고 이를 기반으로 사회적인 연대가 가능함을 역설하기도 한 다.
특정한 사회적 기준들에 부합하는 모든 윤리적 행위에 앞서, 모 든 이데올로기적 표현에 앞서, 도덕성은 유기체의 ‘속성’, 아마도 반역적인 공격성으로 향한 에로스적 충동 즉 생명의 ‘더욱 큰 통 합체’를 창출하고 보전하려는 에로스적 충동 안에 뿌리 내리고 있는 속성일 것이다.(EL 10)
마르쿠제는 여기서 사회적 윤리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인간 유기체 가 지닌 속성으로서의 도덕성을 설정하고 있다. 그는 이 도덕성이 에로스적 충동으로부터 자라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로써 에로스는 인간이 도덕적 원리에 따라 ‘생명의 통합체’를 이루려는 충동의 근 원으로 정의된다. 에로스적 충동은 비도덕적인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운동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지니는 것이다. 마르쿠제의 에로스 개념이 프로이트와 구별되는 지점은 이러한 사회적 실천력의 강조 에 있다.
또한 에로스와 죽음본능의 이원적 구도가 성립되는 과정에 있어 서도 마르쿠제는 프로이트와 다르게 사회역사적인 조건들을 핵심적 인 원인으로 파악하고 있다. 먼저 프로이트는 생물학적 실험을 통 해, 생명본능과 죽음본능은 생명체에 내재된 것으로서 두 본능의 이 원화는 자연스럽게 이뤄진다고 추정한다.54) 그러나 마르쿠제는 본
stages:
1 2-3 4 5 6 7
쾌락원칙 현실원칙
(필요, 생존 위한 투쟁)
비유기 체적 물질
생명의 기원
긴장의 발생
↗ 퇴행충동 ↘
에로스 생식세포의 결합 →
비유기체적 물질로의 →
복귀 충동
성욕 조직화된 에로스 →
승화 등
외면화된, 내면화된 →
파괴성
집단형성
인간과 자연의 지배 도덕 죽음본능: 파괴 충동
열반원칙
능의 이원화는 생물학적 과정만이 아니라 역사적 과정을 통해 형성 된다고 설명한다. 다음의 도식은 본능의 역사적 분화 과정을 보여준 다.(EC 136)
도식을 볼 때, 쾌락원칙에서 현실원칙의 지배로의 이행은 생명체 의 자기유지를 위한 선택일 뿐만이 아니라, 문명의 발달과 결부된 인류사적인 진화의 선택으로도 나타난다. 쾌락원칙의 지배는 생명체 의 탄생에서 시작해 이 생명체의 본능이 에로스와 죽음본능으로 갈 라질 때까지 계속된다. 생명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존을 위한 투 쟁과 긴장으로부터 벗어난 궁극적인 쾌락, 즉 긴장과 고통이 없는
54) “조금 다른 두 개의 세포가 결합하여 어떻게 생명체의 갱생을 가져올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원생동물의 교미를 화학적, 혹은 물리적 자극의 응용으로 대치시키는 실험을 통 해서 이러한 질문에 대한 결론적 답변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 다. [...] 즉 개체의 생명 과정은 내적인 이유로 화학적 긴장의 폐지, 다시 말해 죽음으로 향하고, [...] 정신생활 및 신경생활 전반의 지배적인 경향은 자극에서 비롯된 내적 긴장 을 줄이거나 일정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 혹은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쾌락원칙 속에서 발견된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죽음본능의 존재를 믿 는 가장 강력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Freud, 「쾌락원칙을 넘어서」(1920), 『정신분석 학의 근본개념』, pp. 332-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