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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으로서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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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기억과 미적 상상력

2. 기억으로서의 예술

2-1. 기억 내용의 회복

마르쿠제는 예술적 실천이 의식과 인식의 억압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술은 근원적인 욕망을 가리키는 에로스를 일으 키며 이를 통해 실천을 추동한다. 본래적 욕망의 내용에 대한 기억 은 에로스를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망각에 대해 살펴보면서 그것이 일종의 억압의 결과임을 알았다. 망각을 초래하는 억압은 본능에 가 해지는 분리와 변형으로 나타난다. 본능의 변형에 따라오는 의식의 왜곡은 개인으로 하여금 지배질서에 굴종케 한다. 이러한 의식의 왜 곡은 기억의 통제와 훈련으로 일어난다. 기억의 훈련은 자신의 본래

적인 욕망은 망각케 하고 지배체제가 제공하는 욕망에 길들이는 것 이다. 이것은 지배질서를 상징하는 권위와 지배의 가치를 자신의 욕 망과 동일시하게 만든다. 이런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은 기억으로써 가능해지는데 예술이 바로 기억을 돕는 활동이다.

프로이트 이론에 따르면 정신 과정에서 일어나는 억압의 일차적 인 원인은 고통이다. 현실에서 고통을 일으키는 기억의 내용은 무의 식 안에 억압된다. 마르쿠제는 지배 권력의 개인적인 정신 활동에 대한 통제 도구가 고통의 위협임을 간파한다. 개인이 지배질서에 굴 복하고 거짓 필요를 욕망하며 대중 매체를 통해 탈승화된 성욕을 수용하는 것은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해 원래의 리비 도적 활동에 가해지는 금기와 처벌과 같은 고통을 피하기 위해 리 비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통제로 인해 개인은 지배질 서가 요구하는 것은 기억하고 그에 반하는 것은 망각하게 된다. 마 르쿠제는 그러한 망각에 주목한다.

과거의 고통을 잊는 것은 그것을 야기한 힘들을 용서하는 것이 다. [...] 시간 안에서 치유되는 상처는 독을 품은 상처이다. 이 시간에의 굴복에 저항해 그 권리에 대한 기억을 보전하는 것은 해방의 견인차로서 사유의 가장 고귀한 책무이다.(EC 232)

‘과거의 고통’은 본능과 욕망의 변형을 일으킨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 안에서의 치유’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고통을 망각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맥락에서 ‘시간’이란 저항할 수 없는 자연적인 원리 이자 지배질서를 의미한다. 마르쿠제의 이러한 언명은 실제 역사 속 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예컨대 혁명의 실패, 전체주의의 발흥과 전쟁, 대량 학살과 같은 고통스러운 기억 들이 잊혀지는 것에 대한 경고인 것이다. 고통은 객관적인 기준으로 는 그 정도를 측정할 수 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에 속하는 감정 이다. 고통을 기억하는 것은 개인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일어나는

주관적인 감정과 욕망이 기억하는 것과 같다. 인간의 역사는 단순한 연대기적 사건이 아니라 그 안에서 욕망의 갈등이 빚어지는 삶의 총체로서 기억되어야 한다. 마르쿠제에게 기억은 시간의 무상함, 즉 세계의 지배적 원리에 맞서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은 인간의 열정과 감정을 소멸시킨다. 예술은 시간 속에서 “충동, 열정, 지성” 같은 의 식, “사랑과 증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같은 주관적 감정들”을 가진 인간,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인간성을 담고 기억케 한다.110) 이 런 감정과 인간성을 포괄함으로써 예술은 “특수한 사회적 상황에서 보편성을, 객관성 속에서 욕망하는 주체를 드러낸다.”(AD 23) 마르쿠제는 구체적인 삶의 내용들에 대한 기억이 “예술의 근원 이 되는 바탕”이라고 말한다.(AD 56) 예술적 “상상력은 개인의 삶 이 유의 삶이었던 과거의 기억을 간직”(EC 142)하는데, ‘유의 삶’은 본래의 통합적인 인간성을 간직했던 삶을 가리킨다. 마르쿠제에게 통합적인 인간성이란 에로스적 욕망, 그리고 감성과 이성을 함께 지 닌 자아를 가리킨다. 그러나 그 인간성은 억압되고 파편화되어 본래 의 형상을 상실했다. 이제 “예술의 상상력은 실패한 해방의, 배반당 한 약속의 ‘무의식적 기억’을 형성한다.”(EC 144) 유적 삶으로의 회 복을 가져올 ‘해방’은 실패했고, 근원적인 욕망의 만족에 대한 ‘약속’

은 배반당했다. 이렇듯 실패와 배반으로 인한 고통은 그 욕망의 내 용이 ‘무의식적 기억’ 속에 억압되게 한다. 그런데 예술은 그 구체적 인 감정과 함께 욕망의 대상을 상기시킨다.

무의식에 갇힌 욕망을 기억해냄은 그것이 억압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함과 다름없다. 마르쿠제에게 기억, 인식, 욕망은 서로 닿아있 다. 억압적인 현실을 인식함은 비억압적인 상태에 대한 기억에서 발 생하며 그를 향한 욕망으로 이어진다.

110) “사랑과 증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같이 심리학의 영역에 속한 주관적 감정들은

“정치경제학적인 입장에서는 ‘생산력’이 될 수 없지만 모든 인간에겐 결정적이며 현실을 구성하는 것”이다.(AD 5-6)

인식적 능력으로서의 기억은 오히려 왜곡된 인간성과 왜곡된 자 연 안에서 발견될 수 있는 조각과 파편들을 다시 모으는 합명제 이다. 이런 기억된 재료는 형상의 영역이 되고, 예술에서 ‘시적 진리’로서 -사회의 실재적 변형에 있어서는 충분치 않은 오직 시 적 진리로서- 억압적 사회에 의해 저지된다. 이러한 형상들은 당 연히 ‘내적인 이데아들’이라고 불릴 수 밖에 없는데, 그것들은 억 압적 사회에서 유포된 직접적인 경험에서 주어질 수 없기 때문이 다. 그것들은 오히려 사물들의 직접적으로 주어진 형식들이 ‘부정 적인’ 것으로, 진리의 부정인 것으로 나타나는 경험의 ‘지평’으로 주어진다.(CR 70)

마르쿠제는 기억을 ‘합명제’로, 기억의 재료를 이데아로 지칭한다.

이 말은 기억이 진리에 대한 통합적인 인식능력이라는 것을 의미한 다. 그러나 마르쿠제에게 ‘시적 진리’로서의 이데아는 인간 바깥이 아니라 ‘내적 이데아’로서 인간 안에 있다. 여기서 ‘이데아’는 인간성 의 본질이며, 근원적인 욕망이다. “억압적 현실원칙에 의해 두 영역 으로 찢어진”(EC 179) 인간 존재는 기억을 통해 본질적인 존재와 구별되는 것으로 인식된다. 이 본질은 “사물들의 직접적인 경험에서 주어진” 것들에서는 인식될 수 없으므로 이것들에 ‘부정적인 것’으 로서 규정된다.

마르쿠제가 보기에 이런 ‘진리 인식’이 활발히 일어나는 곳은 예 술의 세계이다.111) 예술은 “감각에 호소하고 감각적 필요를 만족시 키는”(AFR 54) 비생산적인 활동으로서 이성의 지배에 저항한다.112) 예술 활동은 기술합리적인 이성 우위의 지배질서 즉, 수행원칙의 지 배 아래서 왜곡된 현실에 반대해 감성과 쾌락의 원리에 따른다. 따 라서 예술의 구성물은 상이한 인식을 가능케 한다. 상이한 인식이란

111) 예술은 “타협하고 진정시키는 기능과 인식적인 기능, 아름다움과 진리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 아름다움은 진리로 이끄는 것이다.”(AFR 54)

112) 생산원리가 인간활동의 기준이 되면서 소위 ‘합리적 이성’에 비해 생산성에 어울리지 않는 감성이 억압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감성적 활동은 저항이 될 수 있다.

기존의 질서 안에서는 실현되지 않은 ‘비현실적인’ 욕망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욕망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무의식에 억압되어 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술의 구상 활동은 억압되어 있는 것을 기억하는 것과 같다. 예술에서 상상과 기억은 구분되지 않는 다. 예술의 내용은 인간의 내면 안에서 감정적으로나 감각적으로 경 험했던 것이므로 완전한 환상은 아니다. 기억의 내용은 ‘환상과 현 실 사이’에 놓인다.

혁명은 예술에 보전된 영구성에서 한계와 잔여물을 발견한다. 그 것은 한 조각의 속성으로서도 불변하는 자연의 파편으로서도 아 니라 다만 지난 삶에 대한 기억으로서 발견된다. 즉 환상과 현실 사이의, 거짓과 진실 사이의, 기쁨과 죽음 사이의 삶에 대한 기억 이다.(AD 23)

예술의 내용인 ‘지난 삶’과 그에 대한 ‘기억’은 모든 개인들이 한편 으로는 역사 속에서, 또 한편으로는 각자 개별적인 삶 속에서 겪었 던 경험들을 모두 포함한다. 마르쿠제는 이 기억들이 ‘사이’의 삶에 대한 기억이라고 말한다.113) 이 기억의 내용은 ‘거짓과 진실’, ‘환상 과 현실’, ‘기쁨과 죽음’처럼 대립되는 것들 ‘사이’에 존재하며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진리를 가리킨다. 현재적인 삶의 기준은 왜곡되어 있으므로, 이 기준으로 진실을 규정할 수 없다. 따라서 ‘사 이의’ 기억인 예술은 현재에 속하지 않은 다른 기준의 적용을 받으 므로 왜곡되지 않은 인식에 더욱 가까이 가게 한다. 억압되지 않은 것을 기억하는 것은 허구적인 것에 대한 인식과 동시에 왜곡된 현 존재의 부정을 요구한다. 현존재의 부정은 기존의 지배적인 가치규

113) ‘사이의 삶’에 대한 기억이란 일종의 변증법적 운동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예술은 대 립항들 간의 변증법적 관계를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만족 상태를 그려 내는 것이다. 라이츠는 같은 인용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인다. “마르쿠제의 미학 이론은 삶의 본능과 죽음본능 간의 해방적인 변증법적 관계와 예술을 통한 회상이 라고 그가 주장하는 것을 발전시킨다.”(Charles Reitz, 2000, p.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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