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 짧은 글 긴 생각 ㅣ
우리는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을 안다. 샤일록이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 주면서 기한 내에 원금 과 이자를 갚지 못하면 그 대신 ‘가슴살 1파운드’를 받기로 한 기이한 차용계약서를 쓰는 장면이 나온다. 안 토니오는 배를 담보로 돈을 빌리려고 했지만, ‘배’는 담보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가슴살 1파운드’로 부족 분을 채웠다.
배가 풍랑을 만나 난파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안토니오는 샤일록으로부터 빌린 원금과 이자를 기한 내에 갚지 못할 상황이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샤일록은 차용증서에 적힌 대로 안토니오의 가슴살 1파 운드를 도려내려고 했다. 안토니오는 담보로 잡힌 배를 다 잃고 파산했는데도 빚을 갚아야 했다. 결국 이자 와 원금은 어떠한 상황이라도 기한 내에 반드시 상환해야 한다는 금융의 차가운 논리가 그대로 드러난 대 목이다.
우리가 돈을 빌릴 때는 어떠한가. 집을 담보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다. 집값이 올라 대출 빚을 갚고도 남 으면 다행이지만, 집값이 떨어지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담보로 잡은 집을 팔아도 대출 빚을 다 갚지 못 하면 다른 재산을 가지고서라도 나머지 빚을 갚아야 한다. 무한책임대출(소구)이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주 는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좋은 제도다. 그러나 돈을 빌릴 수밖에 없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나쁜 제도다. 재활 할 수 있는 기회조차 모두 빼앗겨 회생의 희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소비자 입장에서 회생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따스한 제도를 도입하려고 한다. 지난 9.1대책에서 국토교통부는 주택기금의 ‘내 집 마련 디딤돌 대출’에 대해 제한적으로 유한책임대출(비소구)제도를 도입하 겠다고 하였다. 대출 받은 사람은 집값이 떨어져도 담보로 잡힌 집을 처분해 빚을 갚고, 나머지 재산을 가지 고 회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다. 안토니오의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재판관은 “가슴살 1파운드는 도려내되, 차용증서에 없는 피를 흘리게 해서는 안 된다”라는 판결로 안토니오를 극적으로 회생시켰다. 이 러한 대목이 유한책임대출이 갖는 의미일 것이다.
유한책임대출제도의 도입을 앞두고 대출자의 의도적인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면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 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안전장치를 갖추면 된다. 그러나 주택금융이 갖추어야 하는 사회적 기능과 공 익적 기능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금융이 좀 더 따스하게 사람들 곁에 있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그런 차 원에서 보면 유한책임대출제도는 따스한 금융 실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주택금융, 사람을 품다
김덕례 |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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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 201506 통권 제40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