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일_2020.10.10 심사기간_2020.11.01-14 게재확정일_2020.12.04
물질적 상상력의 4원소 개념을 통해 본 시적 이미지의 표현
Expression of Poetic Image in Bachelardian Notion of Material Imagination
권오경, 구미대학교 비주얼게임컨텐츠스쿨
Kwon, Oh Kyung_School of Visual Game Contents, Gumi University
차례 1. 서론
1.1. 연구 배경과 목적 1.2. 연구 범위와 방법
2. 가스통 바슐라르의 ‘상상력’ 개념 2.1. 몽상과 상상력
2.2. 물질적 상상력의 4원소 2.3. 상상력의 현상학
3. 상상력을 통한 시적 이미지의 발현 3.1. 상상력으로 발현되는 시적 이미지 3.2. 시집 표지 디자인과 시적 이미지
4. 4원소와 시적 이미지의 표현 4.1. 불: ‘포유류의 사랑’
4.2. 물: ‘우유는슬픔기쁨은조각보’
4.3. 흙: ‘밀서’
4.4. 공기: ‘미제레레’
5. 결론 및 제언 References
물질적 상상력의 4원소 개념을 통해 본 시적 이미지의 표현
Expression of Poetic Image in Bachelardian Notion of Material Imagination
권오경, 구미대학교 비주얼게임컨텐츠스쿨
Kwon, Oh Kyung_School of Visual Game Contents, Gumi University
요약
중심어
가스통 바슐라르 상상력
시집 표지 디자인 시적 이미지
이 연구는 시집 표지 디자인 과정에서 비롯된 디자이너의 체험에서 동기화된 것으로, 시집 표지 디자 인에서 결과로 도출된 ‘시적 이미지’를 대상으로, 그것의 발현 과정에서 무엇이 작동하는지 밝히고 발 현 결과인 이미지 표현에 대해 ‘상상력’ 개념을 적용하여 고찰한 것이다. 이를 통한 ‘시적 이미지 표현 연구’의 저변 확대 측면에서 연구의 필요성을 갖는다. 연구의 목적은 이미지 표현에 대한 새로운 관점 에서의 고찰을 시도하여, 그것을 후속 연구에서 디자인 및 이미지 표현 작업에 적용하는 시각적 실험 의 기초적 토대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연구 방법에서 분석의 이론적 틀이 되는 것은 가스통 바슐라르 (Gaston Bachelard)의 ‘상상력’ 개념이다. 시를 읽을 때 ‘시적 상상력’을 통하여 시인과 독자라는 두 의식이 만나는데, 이 과정 중에 ‘울림’을 통해 디자이너만의 새로운 시적 이미지를 도출할 수 있게 된 다. 즉, 주관적 상상계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 바슐라르의 개념을 통해 디자이너만의 고유한 이미지 발 현을 설명할 수 있으며, 그 결과인 표현에 대한 분석은 물질적 상상력의 4원소 개념인 ‘불, 물, 흙, 공 기’를 적용하여 고찰할 수 있다. 그 근거는, 물질적 상상력이 근본적으로 ‘시’로부터의 상상력을 의미 하는 것이며, 연구 대상인 시집의 표지 디자인 과정 중 도출된 이미지의 표현 과정과 결과에서 바슐라 르의 4원소를 근간으로 한 물질적 상상력의 작용을 추정할 수 있는 시각적 단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연구의 순서와 내용은, 2장에서 바슐라르의 상상력 개념에 대해 살펴보고, 이어 시적 이미지와 그것이 발현된 매체인 시집 표지의 디자인에 대해 다룬 후, 4장에서 물질적 상상력의 4원소 개념을 적용하여 시안 스케치 과정과 결과로 표출된 이미지를 종합한 ‘시집 표지에 드러난 시적 이미지 표현’에 대해 고찰한다. 결과적으로, 바슐라르의 상상력 개념이 어떻게 시적 이미지 표현에 적용될 수 있는지 밝히 고, 이와 같은 연구를 통해 이미지 표현 및 해석 방법론에 대한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
ABSTRACT
Keyword Gaston Bachelard imagination poetry book cover design
poetic image
Motivated by the experience in designing the covers of poetry books, this study examines what happens in the manifestation of the
poetic images
that resulted from the cover design for poetry books and according to which theoretical background the expression of the images resulting from the manifestation can be interpreted. With this, the study aims to increase the expandability of the theoretically based research on the method for expressing poetic images, attempts to interpret the expression of images from a new perspective, and adopts this interpretation as a venue for visual experimentation by applying it to the actual design and image rendering during follow-up research. The theory that is applied to the study onthe expression of poetic images
is Gaston Bachelard’s concept ofimagination
. Poetry reading is like the encounter of two minds, those of the poet and the reader, through poetic imagination. In this process, a designer can identify a new unique poetic image throughreverberation
. In other words, the manifestation of a designer’s unique images can be explained by Bachelard’s concept that discussed the importance of the subjective imaginary order, and the expression of its results can be examined by applying the concept of the four elements of physical imagination. It is because physical imagination essentially means imagination frompoetry
, and the visual leads that are grounded in Bachelard’s four elements can conjecture the action of physical imagination that is discovered from the process and products of the expression of the images on the covers of the different poetry books that are subjects of the study.1. 서론
1.1. 연구 배경과 목적
이 연구는 시집 표지 디자인 과정에서 비롯된 디자이너의 ‘체험’에서 동기화된 것으로, 무엇이 디자이너를 통해 시에서 시적 이미지로 발현하게 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인 이미지 표현은 어떻 게 생성되었고 해석될 수 있는지에 대해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상상력 개념을 통해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기초 조형 연구 분야인 ‘시적 이미지 표현’ 연구의 다각화 및 다양성의 지평을 넓힐 뿐 아니라, 후속 연구에서 진행할 시적 이미지 표현 실험에서의 기초 선행 연구로서의 성격과 의미도 갖는다.
바슐라르는 이성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의 인식론적·객관적 세계보다 이미지와 상상력을 중심 으로 하는 ‘주관적 상상계’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 철학자이다. 그는 ‘상상’을 이성보다 한 차원 밑에 있거나 방해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인간 활동에서의 ‘근원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의 이론 중 물질적 상상력과 상상력의 현상학에 관한 저술을 살펴보면, 바슐라르가 말한 상상력은 대부 분 ‘시’로부터의 상상력과 이미지임이 드러난다. 이와 같은 점에서, 그의 상상력 이론은 시로부 터 시작된 시적 이미지 표현 연구에 적용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또한, ‘시’는 시인의
‘주관적 상상력의 통합체’라는 점에서, 시가 디자이너만의 고유한 ‘시적 이미지’로 변모하는 과 정에서 발생하는 주관적 표현을 존중하는 이론, 즉 주관적 상상계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 바슐라 르의 개념을 적용하여 연구하는 것이 합당하다 하겠다. 시로부터 시적 이미지에 이르는 과정은 바슐라르의 ‘상상력의 현상학’을 중심으로 다뤘고, 4장에서 연구 대상인 ‘시적 이미지 표현’은 바슐라르의 물질적 상상력의 근간이 되는 4원소인 ‘불, 물, 흙, 공기’ 개념을 적용하여 고찰하였 다. 이는 각 시집 표지의 이미지에서 시로부터 상상된 4원소의 물질적 이미지와 연관되는 시각 적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2. 연구 범위와 방법
연구의 전개는 먼저, 2장에서 연구의 이론적 배경인 바슐라르의 상상력 개념을 다뤘다. 상상력 이 활동하는 무대인 ‘몽상’, 4장에서 이미지 표현 연구의 근거가 되는 ‘물질적 상상력의 4원소’, 그리고 시로부터 시적 이미지에 이르는 과정에 적용되는 ‘상상력의 현상학’에 대해 살펴보았다.
3장에서는 시적 이미지가 드러나는 매체인 시집 표지의 디자인과 시적 이미지에 관해 다루고, 4장에서 결과적으로, 바슐라르의 물질적 상상력의 4원소인 ‘불, 물, 흙, 공기’를 각각 ‘포유류의 사랑’, ‘우유는슬픔기쁨은조각보’, ‘밀서’. ‘미제레레’ 시집의 표지 이미지에 적용하여 ‘시적 이미 지’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고찰하였다. 대상인 시집 표지는 4원소를 적용하여 연구할 수 있는 물질적 이미지의 힌트를 지닌 표지로 선정하고, 연구 대상에 적용되는 4원소 개념은 그것에 대한 바슐라르의 주요 저작에서의 주장이 중심이 되었다.
2. 가스통 바슐라르의 ‘상상력’ 개념 2.1. 몽상과 상상력
바슐라르는 “상상력이란 지각 작용체에 의해 받아들이게 된 이미지들을 변형시키는 능력이며, 무엇보다도 애초의 이미지로부터 우리를 해방하고, 이미지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라고 말한 다(Bachelard, G., 2017/1943, pp.19-20). 그가 이러한 상상력의 주된 무대로 생각한 것이
‘몽상(rêverie)’이다. 무의식과 의식을 분리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달리 바슐라르는 무의식과 의식 사이에서 ‘의식이 깨어있는 꿈’인 몽상에 대해 말했 다. 몽상이란 깨어있는 상태에서 꾸는 꿈으로 합리적·과학적 사고가 아닌 직관·직접적 체험에 서 비롯된 의식의 작용과 같다. 밤에 꾸는 꿈은 꿈꾸는 자기 자신의 자아를 잃은 그림자와 같지 만, 몽상은 의식이 존재하며 지속되는 활동이다. 몽상이 현실 밖, 시간과 장소 밖에 있을 때조차 도 몽상하는 자는 자리를 비운 자가 그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Bachelard, G., 2007/1960). 즉, 시를 읽는 독자이자 디자이너는 ‘시 읽기’를 통해 의식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의 꿈꾸기인 ‘몽상’으로 들어가 시적 이미지 작업으로 들어가게 된다.
다음에서 몽상으로 일어난 ‘상상력’에 대한 바슐라르의 연구 중 큰 흐름인, 4장 연구의 근거가 되는 ‘물질적 상상력’의 4원소와 작업 과정 중 적용되는 ‘상상력의 현상학’에 대해 살펴보겠다.
2.2. 물질적 상상력의 4원소
대상의 물질적 성질에 기반을 두어 만들어지는 이미지가 물질적 이미지(image matérielle)이 고 이를 만드는 것이 물질적 상상력이다. 이것은 대상을 형태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진 ‘물질성’을 바탕으로 확장해 가는 상상력이며 여기에서 ‘물질’은 ‘불, 물, 공기, 흙’인 4원소 로 대표성을 띤다. 하나의 대상이 한 가지 물질성을 가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4원소의 복합적 인 물질성을 띠기도 한다. 바슐라르가 ‘불, 물, 흙, 공기’라는 4원소를 상상력 연구에 적용한 것은, “명석한 사고나 의식된 이미지 이상으로, 꿈은 네 개의 근본적 원소의 지배 아래” 있고, 그것이 동시에 서구의 상상계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이기 때문이다(Bachelard, G., 2020/1942, p.13). 몽상은 이와 같은 4원소의 지배를 받을 수 있으며 이들은 각 사람의 상상을 지배하는 물질이 될 수 있다. 바슐라르는 그의 저서를 중심으로 4원소를 기반으로 한 물질적 상상력에 대해 말하는데, 4장에서 시적 이미지 표현 연구에 적용하는 4원소 개념은 각 저서에서의 그의 주장이 적용된 것이다. 먼저 ‘불’은 ‘불의 정신분석(La psychanalyse du feu, 1938)’과 ‘촛불 (La flamme d'une chandelle, 1961)’, ‘물’은 ‘물과 꿈(L'eau et les rêves, 1942)’, ‘공기’는
‘공기와 꿈(L'air et les songes, 1943)’, ‘흙’은 ‘대지 그리고 흙의 몽상(La terre et les rêveries du repos, 1948)’의 물질적 상상력에 대한 그의 시론이 중심이 되었다.
바슐라르는 시인은 4원소 중 하나의 원소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모든 시인은 자신이 애호하는 원소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시로 반영되어 나온다고 여겼다(Hong, M., 2016). 그 결과, 시인으로부터 반영된 4원소 이미지가 내포된 시를 읽고, 디자이너도 작업의 과정에서 시인과 의식의 교감 속에 도출된 주관적 상상력으로, 4원소와 관련된 시적 대상과 본인과의 일치감 속에 새로운 시적 이미지를 창출할 수 있게 된다.
2.3. 상상력의 현상학
바슐라르가 상상력 연구에 현상학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 ‘상상력의 현상학’으로, 현상학을 통해 상상력의 활동 자체를 설명하고자 했고, 그것의 목적은 “시적 이미지에 의해 변화된 주체의 의식 포착을 밝히는 것”이었다(Hong, M., 2016, p.47). 바슐라르가 사용한 ‘의식’의 개념은 일반적인 철학 개념이나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무의식의 반대 혹은 일반적인 현상학에서 말 하는 인식의 주체도 아니다. 그가 말한 의식은 정신분석학에서의 무의식과 현상학에서의 의식 의 중간지대 어딘가에 있으며, 존재(1'être)의 아래에, 무(le néant)의 위에 있는 ‘영혼’의 상태 로 기존의 철학적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분류가 될 수 있는 의식이다(Hong, M., 2016). 그러기에 바슐라르는 ‘시’에 대해 “이미지란 사상에 앞서는 것이라는 것을 정확히 밝히 기 위해서는, 시란 정신의 현상학이 아니라 차라리 영혼의 현상학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라 고 주장했다(Bachelard, G., 2003/1957, p.47). 그가 말하는 ‘의식’은 무엇보다 개인의 주관성 과 관련이 있으며 이미지란 우리들 의식의 현상이므로 주관적 가치가 있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주관성의 반대편에 있는 객관성이란 주관적이지 않은, 모든 주관적 가치들 을 배제한 것을 의미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순수한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Hong, M., 2016). 시집 표지 디자인에서의 이미지는 주관성의 종합이며, 과정과 결과 모두 주관성을 존중 하는 이론을 통해서만 연구될 수 있으므로 바슐라르의 상상력 개념이 디자이너의 고유한 상상 력의 표출인 시적 이미지 표현 방법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상력의 현상학 개념 중 시 읽기에서 시적 이미지에 이르는 과정에 적용되는 디자이너 영혼의 ‘울림(reverberation)’
개념을 3.1에서 살펴보았다.
3. 상상력을 통한 시적 이미지의 발현 3.1. 상상력으로 발현되는 시적 이미지
시를 읽는 과정은 시적 상상력의 매개를 통하여 시인과 독자라는 두 의식이 만나는 것으로 시는 시인으로부터 독자에 이르는 의식의 흐름 같은 것이다. 독자의 의식은 작가의 의식이 제공 한 것으로 출발하지만, 독자라는 고유한 존재는 그만의 상상의 세계를 펼칠 수 있는데 독자가 시에 대해 창조적 의식을 가지고 몽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더 이상 수직적인 것이 아니라, 수평적인 것”이 된다(Hong, M., 2016, pp.59-60).
바슐라르는 “울림(reverberation)은 우리들이 우리들 자신의 존재 심화에 이르게 한다.…울림 속에서는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 시를 말한다. 그때 시는 우리들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그것 은 우리들 자신의 언어의 새로운 존재가 되고, 우리들을 그것이 표현하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우리들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것은 표현의 생성인 동시에 우리들의 존재의 생성이기도 하다. 이 경우 표현이 바로 존재를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Bachelard, G., 2003/1957, pp.50-52). 시인이 쓴 시를 읽은 디자이너는 시에서의 이미지를 본인 고유의 것 으로 받아들여 그만의 상상력으로 ‘존재’의 심연에 이른 새로운 시적 이미지를 창조할 수 있게 되며 그것이 시집 표지의 시적 이미지로 드러나게 된다.
그는 시에 대해 말하길, 그것은 인간의 ‘실제 존재’ 같은 것이기에 그것을 언어로나 시각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그 시어의 ‘인상’을 참조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그것의 시적 무한 가운데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Bachelard, G., 2020/1942). “어떤 말의 기치 밑에 영혼은 자신의 종합 적 존재를 발견한다”는 것이다(Bachelard, G., 2003/1957, p.329). 시를 통해 낮에 꾸는 꿈인
‘몽상’하며 시적 이미지를 표현하는 디자이너는 자신의 ‘실체(實體)’에 다다르는 것이며 여기서 형식이란 겉옷과 같은 것이다. 디자인 작업자는 단순히 시어의 ‘인상’이나 ‘형식’의 영향으로 이미지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 가운데 하나의 존재로 ‘사는 것’이며, 여기서 발현된 시적 이미지는 물질적 상상력에 의해 세계의 근본을 이루는 ‘불, 물, 공기, 흙’의 4원소와 맞닿는 다. ‘시적 이미지’를 디자이너의 독자적 상상력의 소산이라고 본다면 이는 예술 작품의 성격도 띨 수 있는데 “예술 작품이란 상상하는 존재의 그 실존성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Bachelard, G., 2003/1957, p.318).
바슐라르는 물질적 상상력의 원리가 형식을 넘어서는 것이라 말하며, 시인이 ‘드넓은’이라는 표현을 쓸 때 객관적인 기하학적 뜻만 지니는 것. 보이는 것에 치중하는 단순히 넓다는 의미가 아닌, 그것을 넘어서는 시적 이미지의 복합체가 ‘드넓은’에 포함되어 있고 이 경우 언어의 객관 적 의미는 ‘빈약한’ 의미를 갖게 된다고 말한다(Bachelard, G., 2003/1957). 디자이너가 시어 를 통해 상상하고 그것을 디자인에서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할 때 시어의 객관적 의미가 아닌 자신의 실재, 존재의 내밀함 가운데에서의 시적 상상을 통해 폭넓은 의미로 시각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디자이너는 시어에 대한 물질적 상상력을 개인적 몽상을 통해 다른 시각으로 펼쳐 보이고 논문에서 고찰하는 시적 이미지는, 바슐라르에 따르면, ‘영혼’ 속에서 종합적 존재 를 발견하여 시각적으로 표출된 결과물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시는 몽상들을 끌어 모을 수 있고, 꿈과 추억을 조합해 낼 수 있다”라고도 말하는데, 자신의 몽상과 꿈과 추억 을 조합하여 새로운 창조적 물질적 상상력의 세계를 시적 이미지를 통해 열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Bachelard, G., 2007/1960, p.18).
3.2. 시집 표지 디자인과 시적 이미지
이 연구가 시집 표지를 디자인하는 과정으로부터 동기화된 것이기 때문에, 시적 이미지가 도출 된 매체인 시집 표지와 디자인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시집 표지 디자인은 그것의 큰 범위인 책 표지 디자인의 방법을 통해 먼저 들여다보았고, 이어 ‘이미지’의 일반적 의미와 ‘연구 대상인
‘시적 이미지’가 시집 표지 디자인에서 어떤 요소로 자리하고 있는지, 그리고 대상 시집의 앞표 지 디자인의 세부 요소와 디자인 방향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책 표지 디자인은 책 디자인 요소 중 하나로 본문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은연중에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디자인 방법을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눠본다면, 타이포그래피가 중심이 되어 글자 디자인에서 책 내용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하는 방식 또는 시각 이미지인 사진이나
책 그림(illustration)을 이용하여 그 이미지 속에서 내용을 읽을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이 같은 방식 중 본 논문에서는 표지에서 이미지가 중심이 되어 제목과 함께 내용 을 반영(反映)하는 방식을 중심으로 논하고자 한다.
‘이미지(image)’는 일반적 의미로는 “빛의 굴절이나 반사 등에 의하여 이루어진 물체의 상(像),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모습이나 광경, 영사막이나 브라운관, 모니터 따위에 비추어진 상(像)”
등을 의미한다. 그 개념은 시각적으로 보이는 사물, 마음에서 떠오르는 그림, 혹은 음성과 소리 를 통해 그려지는 상을 비롯해 촉각, 미각, 후각 같은 인간의 모든 감각 기관을 통해 획득되는 형상을 통칭해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Noh, J., 2017). 이 중 ‘시각적 이미지’라는 측면에서 책 표지 디자인에서의 이미지란 대체로 사진이나 책 그림을 뜻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이 논문에 서의 이미지는 ‘시’로부터 발현된 ‘시적 이미지’를 뜻하는 것이다. 이는, 바슐라르는 시를 읽으 면서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주관적 이미지’에 관해 이야기했고, 독자인 디자이너가 ‘시 읽기 과정에서 의식이 살아있는 꿈인 몽상을 통해 물질적 상상력으로 발현한 시각적 이미지’가 곧
‘시적 이미지’가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표지 디자인의 과정은 ‘1) 본문 내용 읽기, 2) 디자인 의뢰자로부터 ‘제목’ 전달받기, 3.1) 책 내용을 바탕으로 제목에 대한 타이포그래피 작업하기, 3.2) 책 내용을 바탕으로 사진, 책 그림(illustration)이 필요한 경우 사진가 나 삽화가에게 작업 의뢰 혹은 디자이너가 직접 작업하기, 3.3) 표지 배치(layout) 디 자인으로 완성하기’로 구성될 수 있다. 이 과 정을 통해 일반적인 표지 디자인을 진행하 여 완성할 수 있으며 과정 중 3.1), 3.2), 3.3)은 대부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사진이나 책 그림을 디자이너가 아닌 사진가나 삽화가에게 의뢰할 경우 디자이너는 이미지에 대해 사진가, 삽화가와 작업에 대한 의견 소통을 진행하는데 연구 대상인 시집 표지의 경우 디자이너가 책 그림까지 작업한 경우로, ‘표지’라고 했을 때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앞표지 (표1)’에서의 ‘시적 이미지’ 표현에 한정하여 고찰한다.
4장에서 살펴볼 연구 대상인 시집의 앞표지 디자인 구성은 ‘Figure 2’와 같다. 대상인 ‘포유류의 사랑’(36권), ‘우유는슬픔기쁨은조각보’(39권), ‘밀서’(40권). ‘미제레레’(34권) 시집은 ‘문예 중앙 시선’의 2013~2015 디자인 포맷(31~41권에 적용)이 적용된 것으로, ‘이미지’가 중심이 되어 제목과 함께 내용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디자인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인해, 디자이너 는 표지 디자인 요소 중 ‘이미지’를 중심으로 디자인을 진행하여 시안 및 최종 이미지 작업을
<Figure 1> Book Cover Plot
<Figure 2> Design of Book Cover for Poetry Book (front)
하게 된다. 이 과정 중에 3.1에서 살펴본 ‘시’로부터의 ‘울림’의 과정과 이를 통한 시인과의 의식 의 교감을 체험한다. 이것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바슐라르가 주장하는 ‘상상력의 현상학’이며, 결과적으로, 연구 대상인 시집의 내용이 되는 ‘시’에서 시인이 상상한 물질적 상상력의 4원소에 대해 디자이너는 디자인 과정 중에 그만의 고유한 물질적 상상력으로 새로운 결과를 창출하게 되고, 이것이 이미지 표현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시적 이미지 사유의 과정과 결과를 바슐라르의 물질적 상상력의 4원소를 통해 고찰하였다.
4. 4원소와 시적 이미지의 표현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4원소는 물질적 상상력의 근간을 이루는 ‘불, 물, 공기, 흙’으로, 각각 의 개념을 4권의 시집 표지에 발현된 시적 이미지 표현에 적용하여 연구하였다.
4.1. 불: ‘포유류의 사랑’
박장호 시인의 시집 ‘포유류의 사랑’에 실린 시는 총 53편으로, 그중 ‘불’에 대한 물질적 이미지 를 상상하게 한 시는 ‘문장은 독한 담배처럼 타들어가고’와 ‘포유류의 사랑’이다. ‘문장은 독한 담배처럼 타들어가고’에서의 “문장은 독한 담배처럼 타들어가고 벽에 부딪힌 날들이 연기처럼 흩어졌지.”라는 시어에서 디자이너는 시인의 상상력 근간에 위치한 물질적 상상력의 4원소 중
‘불’을 상상하게 되며, 여기에서 시인이 몽상한 ‘불’에 디자이너가 상상한 ‘불’의 이미지가 더해 져 시안 작업(Figure 3)이 시작된다(Park, J., 2014, pp.16-17).
<Figure 3> Draft Images of ‘Mammalian Love’
먼저 시인의 시어를 겹겹이 쌓은 수 겹의 층을 만들어 ‘그의 언어이나 그의 언어가 아니게 되는 이미지’인 ‘시어 모음 이미지’로 만든다. 처음엔 바탕의 시어 이미지가 검은색이었으나 기존 언어의 의미로 읽지 못 하도록 옅은 회색으로 재설정하고, 이미지 위에 라이터의 ‘불’이라는 질료로 바탕의 시어 이미지를 ‘해체’했다. 이미지 위에 태워진 모양과 위치는 디자이너만의 상 상의 산물로 ‘불’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도구’이자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이와 같은 불의 시적 이미지는 원래 있던 것을 없애는 불의 고유한 성질임과 동시에 시집 표지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하는 ‘존재의 재생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바슐라르는(Bachelard, G., 2017/1961) ‘불태우다’라는 동사가 표현의 세계 한 구역 전체를 지배하고 불타는 언어의 이미지들은 정신을 불태우며, 불꽃이 몽상 대상으로 포착되면 아무리 차가운 상징도 이미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진정한 이미지는 상상에서 원초적 생명으 로 작용할 때 현실 세계를 떠나며, 상상된 이미지에 의해 우리는 ‘시적 몽상’이라는 몽상의 절대 를 경험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Figure 3’에서 ‘차가운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언어적 의미에 가두어져 있던 시어 바탕은 그림을 그리는 도구인 라이터의 ‘불꽃’에 의해 새로운 시적 이미지 로 거듭날 수 있고, 이것이 상상을 기반으로 실제 세계에는 없는 비현실적인 이미지가 되어가는 것이다.
‘Figure 3’의 작업 후, ‘포유류의 사랑’을 통해 또 다른 이미지 작업과 최종 표지 이미지(Figure 4)가 도출되었다. 그 시에는 여러 생명체와 생명을 의미하는 단어가 등장한다. ‘고래, 젖, 물고 기, 모기, 박쥐, 새, 피, 소년, 소녀’ 같은 시어와 제목인 ‘포유류’는 ‘생명’ 이미지와 동시에 생명 이 있는 것만이 가능한 ‘죽음’에 대해 상상하게 하며 그것과 연관하여 붉음과 검정을 떠올리게
한다. 바슐라르는 색을 물질적 바탕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보았고 색을 원초적 질료에 대해 몽상 한 이미지의 하나로 간주했다. 그가 말한 ‘색’은 연금술과 연관성을 갖고 연금술에서의 금속의 변이 과정을 상징적 이미지와 일련의 색으로 표현했다. 색과 원소와의 이러한 연관성은 색을 물체의 표면에 비치는 빛의 현상이 아니라 ‘실체를 지닌 상징성’으로 바라본 것이다. 예를 들어, 검정은 암흑 · 무거움, 하양은 투명함 · 맑음, 노랑은 유동성 · 가변성, 빨강은 열기 · 따뜻함을 나 타내는데 색은 질료에 대한 개인의 체험과도 연결된다(Kim, J., 2006). 디자이너는 라이터의 불을 이용하여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도구에 대한 열기를 몸으로 경험하면서 열에 대한 과거의
‘물질적 체험’으로부터 시에서의 색을 떠올릴 수 있다.
또한, 시어의 생명체적 암시는 작업의 실험 단계를 거쳐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디자이너의 몽상 속에 존재하는 생명체인 ‘어떤 것’으로 창조된다. 이때의 표현은 담배에 불을 붙여 바탕인 시어 이미지 위에 직접적으로 그리는 방식이 된다. 그 과정 동안 담배의 몸통에서 태워진 재는 의미를 상실한 시어 이미지와 만나며 우연한 색의 강도와 농도를 형성한다. 표출된 ‘어떤 것’은 눈 · 코 · 입을 가진 옆모습이 흡사 물고기 모양이나 물고기가 아니며 팔을 움직이며 한쪽 다리 를 들고 있는 전신의 모양새는 사람 혹은 동물 같으나 확실치 않다. 그것은 디자이너 고유의 시적 상상의 결과물로, ‘생명’을 상징하는 시어들과 ‘불’이라는 물질로부터의 상상력이 결합하 여 새롭게 창조된 생명체로서의 존재성을 갖는다. 이처럼, 바슐라르는 “열은 실체의 풍부함과 영속성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증거다. 그것만이 생의 강도, 존재의 강도에 직접적인 의미를 부여 한다.”고 말하며, 또한 몽상가는 자신이 보는 것과 자신이 본 것을 결합하며 상상과 기억을 융합한다고도 표현한다(Bachelard, G., 2017/1961, p.21). 즉, 디자이너는 자신의 몽상과 상상 을 통해 새로운 시적 이미지를 도출하고, 그 과정에서 ‘불’에 대한 기억도 함께 결합하여 나타남 을 알 수 있다.
4.2. 물: ‘우유는슬픔기쁨은조각보’
바슐라르는 물의 상태인 기체, 액체, 고체 중 액체일 때가 가장 기본적인 물의 성격이라 말한다.
물이 액체 상태일 때의 물질적인 특징은 투명함, 반사,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름, 수평, 유동성, 물이 가진 깊이에서의 어둠 등이 있다(Lee, H., 2012).
형태가 물질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물질이 형태를 지배한다는 생각은 물질적 몽상을 가능하게 하는 힘인데, 그런 점에서 물은 형태가 없이 물질로만 파악되기 때문에 4원소 중에서 대표적인 물질적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Kwak, K., 2012). 물의 이미지와 연관 지어 고찰할 유형진 시인 의 ‘우유는 슬픔 기쁨은 조각보’는 54편의 시로 묶여 있고, 표지 이미지는 그중 같은 제목인
‘우유는 슬픔 기쁨은 조각보’에서 도출된 상상의 결과이다.
<Figure 4> Draft Images of ‘Mammalian Love’ & Book Cover Design of ‘Mammalian Love’
“우유 사러 갈게, 하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여자가 있다
생각해보니 여자는
우유 사러 갔다 올게, 하지 않고 우유 사러 갈게, 그랬다
…
우유는 슬픔
…
슬픔은 뿌옇게 흐르고 썩으면 냄새가 고약하니까
…
우유는 방안 가득 흘러 넘쳤다”
(Yu, H., 2015, pp.80-81)
이 시에서 시인이 ‘슬픔’으로 단정하는 ‘우유’에 대해 바슐라르는 “우유는 진정제 중의 가장 좋은 진정제이다.…모든 물은 젖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더욱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모든 행복스러운 음료는 모유이다.”라고 말한다(Bachelard, G., 2020/1942, p.227, 229). 그가 말하는 우유는 한편으론 모성이 담긴 ‘행복스러운 음료’이지만, 시인은 그것에 대해 ‘슬픔’이라 고 말하고 이것은 바슐라르의 “마음이 슬플 때 세계의 모든 물은 눈물로 변하는 것이다.”라는 어구와 다시 연결되며 물에 대한 물질적 이미지는 확장되어 간다(Bachelard, G., 2020/1942, p.172). 우유의 일반적인 모성적 의미를 벗어나, ‘우유’라는 시어에 감응력, 즉 영향을 받아 마음이 따라 움직여 독자는 그 ‘물질’에 대한 새로운 몽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디자이너는 시에서 ‘슬픔’으로 단정 지어진 ‘우유’에 대한 확장된 물질적 상상력을 근간으로 시적 이미지를 표출하게 된다.
‘슬픔은 뿌옇게 흐르고’라는 어구에서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물의 성질을 시각화하게 되며 이는 백색이 아닌, 상하기 시작한 우유 같은 색으로 ‘슬픔(눈물)’의 흘러내림으로 표현된다.
동시에, 이와 같은 흘러내림은 물의 속성인 ‘반영(reflection)’에 의해 다시 밑에서 위로 솟구치 는 물의 이미지로 일부 드러난다.
표지 이미지의 바탕은 시간이 흐른 후의 썩은 우유와 같고 이 위에서 눈물은 부유하듯 흘러내린 다. 바슐라르는 기본적으로 물은 “흔드는 원소(élement becant)”라 말한다(Bachelard, G., 2020/1942, p.246). 이 의미는 엄마의 자궁 혹은 요람 같은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슬픔 또한 감정의 ‘흔들림’을 뜻하며 이는 ‘우유’에서의 모성의 의미가 ‘슬픔’같이 흔들리는 정서가 될 수 있다는 물질적 이미지의 전환이 되기도 한다.
또한, “물에는 모든 색깔이나 맛이나 냄새가 스며들어 있다.”라고 표현했는데, ‘우유는 방안 가득 흘러 넘쳤다’라는 시어와 연관 지어 이미지를 살펴보면, 방안 가득 넘쳐흐르기 시작한 우유가 표지 바탕에 슬픔과 눈물의 색, 맛, 냄새로 스며들어 시적 이미지로 드러나고 있다 (Bachelard, G., 2020/1942, p.134). 시의 이미지를 받아들인 디자이너는 그것의 상관 주관적 가치를 느끼며 본인이 가진 시에 대한 ‘열광’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 그 이미지를 디자인해 다시 말하는 것인데(Bachelard, G., 2003/1957), 그렇게 되면 시집 표지 이미지를 보는 독자도 이미지의 색, 맛, 냄새가 그의 감각을 통해 전달되어 또 다른 상상력의 세계로 갈 수 있게 된다. 이처럼 한 영혼에서 다른 영혼으로 시적 이미지가 전달되는 것은, 바슐라르가 말하는 몽상을 통한 상상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Figure 5> A Draft Image of ‘Milk is Sad, Joy is a Patchwork’
<Figure 6> Book Cover Design of ‘Milk is Sad, Joy is a Patchwork’
4.3. 흙: ‘밀서’
‘밀서’는 홍일표 시인의 시집으로 65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고 이 중 ‘밀서’의 시어로부터 ‘흙’에 대한 물질적 상상이 이미지화되었다.
“내 몸에 들어가 있는 밤이 빠지지 않는다…나는 기침을 하면서 8시간 전 저녁을 열고 들어간 당신의 눈알을 뱉어낸다…사과꽃은 누군가 찢어 놓고 간 벤치 위 흰 적막이다…여기 없는 당신 을 처형하고 나를 처형한다…눈 앞에 없던 몇 개의 근심과 고독이 외래 식물처럼 혀끝에서 개화 한다 나는 밤의 혀를 만질 수 없다…올챙이 같은 햇살들을 쏟아놓는 순간 나는 비에 젖지 않는 빗방울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Hong, I., 2015, pp.18-19)
먼저, 위의 시 중 ‘밤, 눈알, 사과꽃, 처형, 근심과 고독, 비, 빗방울’에서 검은색, 흰색, 푸른빛과 같은 이미지의 주요 색을 상상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 색은 상상력이 원초적 질료에 대해 몽상한 이미지의 하나로 간주할 수 있으며, 색은 개인의 질료에 대한 다양한 체험과 연결되어 나타나므로, 표출된 색은 디자이너가 과거에 체험했던 질료에 대한 물질적 상상을 기반으로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바슐라르는 ‘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에서 흙, 식물과 뿌리의 시적 이미지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것은 “근심과 고독이 외래 식물처럼 혀끝에서 개화한다 나는 밤의 혀를 만질 수 없다”라는 시어와 연관되어 표지에서 주요한 이미지로 드러난다. 시어를 읽으면서 디자이너는 시각, 후각, 청각 같은 감각들이 확장되는 것을 경험하고 이때 시에 대한 상상력은 대상에서의 에너지와 생명력으로부터 새롭게 조성된 주체적, 물질적 이미지로 드러난다.
<Figure 7> Draft Images of ‘Secret Letter’ & Book Cover Design of ‘Secret Letter’
표지 이미지 스케치와 최종 이미지(Figure 7)에는 식물의 이미지뿐 아니라 흙, 대지에 감춰진 뿌리의 이미지도 같이 표현되어 있다. 바슐라르는 “뿌리는 살아 있는 죽은 존재이며…뿌리는 지탱하는 힘인 동시에 찌르는 힘이다.”라고 말하는데, 시에서 ‘처형’과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생명과 소멸에 대한 말이 ‘뿌리’의 이미지로 표현되어 드러난다(Bachelard, G., 2019/1948, p.320). 시에서 ‘혀’는 뿌리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뿌리는 우리를 먼 과거로, 우리 인류의 저 아득한 과거로 데려간다.”라는 데에서 인체 혹은 근원적인 것으로부터의 물질적 상상력이 불러일으켜 진다(Bachelard, G., 2019/1948, p.330). 그러므로, ‘혀’는 뿌리가 자기 몸을 담는 근본인 ‘흙’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게 된다.
같은 저서에서 “휴식과 동요는 아주 자주 병치 되는 독자적 이미지들을 갖는다.”라고 말하는데, 최종 표지 이미지에서 흰 원이 휴식을 의미한다면 같이 병치 된 ‘혀끝에서 개화한 외래 식물들’
의 이미지는 근심과 고독을 담는 ‘동요’이다(Bachelard, G., 2019/1948, p.371). 여기에서 식물
이미지는 ‘미궁(迷宮)’과 연결된다. 미궁은 들어가면 나올 길을 쉽게 찾을 수 없게 되어 있는 곳으로, 바슐라르는 동굴이 휴식이라면 미궁은 운동성을 가지며, 식물의 뿌리를 “식물적 미궁”
이라고 표현했다(Bachelard, G., 2019/1948, p.372). 근심과 고독을 담아 혀끝에서 개화한 식 물은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인 차가운 미궁 이미지로 표출되며 이는 최종 표지에서 암흑·무거움을 의미하는 검정의 색 공간과 맞닿는다. 식물 이미지와 병치 된 세 개의 흰 원은 ‘눈알, 벤치 위 흰 적막인 사과꽃, 비에 젖지 않는 빗방울’ 이미지를 동시에 담아내며 근심과 고독의 미궁인 식물과 함께 디자이너의 독자적 시적 이미지로 드러난다.
4.4. 공기: ‘미제레레’
‘미제레레’는 50편의 시가 수록된 김안 시인의 시집이다. 표지 작업은 특정 시에서 몽상하지 않고, 전체 시 읽기 중에 시적 이미지로 상상된 시의 말이 중심이 되었다. 중심이 된 시어는
‘방, 창, 뼈, 죽음, 거울, 백지, 종이, 꽃, 입, 말, 혀, 눈’이다. 바슐라르는 공기에 대한 상상력에서 시구 사이는 숫자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시어 사이의 호흡처럼 가속되다가 느려지며 시는 “공 기적 질료가 언어적 형태 속에 살러 오는 것”이라 표현했다(Bachelard, G., 2003/1957, p.428).
즉, 시를 읽는 과정에서 시의 말들은 사이 간 호흡을 하며 공기적 상상력을 띄게 되는 것이다.
‘미제레레’ 표지 이미지는, 바슐라르가 시인의 시로부터 비롯된 독자 자신의 표현은 ‘존재의 생성’과 같다고 말한 것과 연관 지어, 공기로부터의 상상력을 디자이너의 실존적 ‘행위’와 연결 하여 진행하였다. 이와 같은 작업이 진행된 배경은 김안 시인의 시가 디자이너에게 격한 ‘감정 의 동요(動搖)’를 주었고, 이런 ‘흔들림’은 평면 작업이 아닌 좀 더 ‘공기’ 중의 ‘역동적인 운동 성’을 띠는 ‘행위’와 연결되어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바슐라르는 윌리엄 브레이크(William Blake)의 말을 재인용 하여 “상상력은 어떤 하나의 상태 가 아니라 인간 실존 그 자체”라고 하였다(Bachelard, G., 2019/1948, p.320). 상상력이 ‘인간 실존 그 자체’라는 것은 상상한 것을 작업한 표지 이미지에도 디자이너의 실존이 담긴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존이란 ‘실제 존재한다’라는 의미로 디자이너의 실체인 ‘작업하는 몸’과 연관 지을 수 있다.
<Figure 8> Draft Images of ‘Miserere’
작업의 방식은 먼저 시를 종이에 각각 프린트한 다음 시로부터의 ‘상상’을 ‘손’에 담아 구기는
‘행위’를 한다. 구겨진 종이엔 시인의 시어가 녹아 들어가 있고 시어가 없는 면도 침묵의 공간으 로 작용한다. 구겨진 면과 구겨지지 않은 면은 우연의 효과이면서 ‘시적 공기’가 흐르는 ‘사이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시행은 언제나 움직임을 가지며, 이미지는 시행의 선 속에 살며시 끼어들어 상상력을 이끌고” 가고, 구겨진 채 공기가 흐르는 ‘시적 공간’엔 시에 대한 디자이너 고유의 감정과 상상력이 담겨 있는 것이다(Bachelard, G., 2003/1957, p.58). 작업의 과정에서 손은 공기 중에 역동성을 띠는데, “역동적인 손은, 힘의 상상력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야말로, 인간의 모든 사고와 행동과 몽상을 사물에, 또 일하는 사람을 작품으로 옮기는, 투영하 는 사고의 특별한 경우”라고 바슐라르는 말한다(Bachelard, G., 1993/1942, pp.155-156). 상
상력의 행위로 구겨진 ‘시의 말 덩어리’를 디자이너는 ‘몸’을 이용해 ‘공기’ 중에 던져서 바닥에 떨어뜨리는 행위(performance)를 한다. 이와 같은 ‘역동적인 손’의 결과로 디자이너의 사고와 행동과 몽상이 시적 이미지로 ‘옮겨지는’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의 모양과 지점은 디자이 너만의 ‘시적 이미지의 지도’가 된다. “몸을 바깥으로 기입하는 것(inscription- dehors), 몸을 텍스트 바깥으로 내놓는 것(mise hors-texte), 이것이 몸의 텍스트가 그리는 가장 고유한 움 직임이다.…그러한 자리들로부터…어떤 다이어그램, 어떤 계측 망, 어떤 접목의 지형도와 복합 성의 지도가 그려질 것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Nancy, J., 2018/2006, pp.15-16) 이러한 공기 중의 역동적인 손을 통한 ‘시적 이미지’의 우연한 위치를 갖는 ‘지도’는 최종 표지의 이미 지가 되어 간다.
색은 ‘방, 창, 뼈, 죽음, 거울, 백지, 종이, 꽃, 입, 말, 혀, 눈’이라는 시어와 제목인 ‘미제레레’에서 의 종교적 상상으로 검정과 빨강으로 나타났는데, 이 또한 디자이너가 과거에 체험했던 대상에 대한 물질적 이미지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하겠다.
5. 결론 및 제언
지금까지 시집 표지에서의 시적 이미지 표현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가스통 바슐라르의 상상력 개념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이 연구로, 몽상을 통한 작업의 과정에서 일어난 주관적 상상력의 작용을 이해하고, 상상 세계의 물질적 이미지인 ‘불, 물, 공기, 흙’의 개념을 실제 작업인 시집 표지 이미지에 적용하여 고찰함으로써, 이미지 표현 연구의 새로운 방향성을 탐색해 볼 수 있었다.
‘시적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와 구분되는 점은 ‘시’로부터의 이미지라는 것이다. 시는 합리주의, 이성적 사고 체계와는 다른 방식인 ‘상상’을 포함하는 개인의 주관적 세계로부터의 결과물이다.
바슐라르는 물질적 상상력의 원리가 형식을 넘어서는 것이고, 시인이 ‘드넓은’이라는 표현을 쓸 때 객관적인 기하학적 뜻. 보이는 것에 치중하는 단순히 넓다는 의미가 아닌 그것을 넘어서 는 시적 이미지의 복합체가 ‘드넓은’에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시를 읽는 독자 또한, 시적 대상을 ‘형태’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진 ‘물질성’을 바탕으로 새롭게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시어는 디자이너의 ‘주관적 상상력’으로 ‘형상화’되어 시적 이미지의 복합체로 창조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시로부터 도출된 이미지의 표현을 연구하는 데 있어 형식적, 객관적인 이미지 표현 방법론이 아닌 이미지와 상상력을 중심으로 주관적 상상계 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 가스통 바슐라르의 상상력 개념이 중심이 되었다.
이 연구는, ‘시적 이미지 표현 방법론 연구’의 다양성 및 확장성에 기여할 수 있고, 더불어 기초 조형 이미지 연구의 저변 확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후속 연구와 실험으로, 시적 이미지 표현 및 작업 방법론에 대한 다각화된 관점에서의 연구, 디자인 작업에서의 시적 이미지 표현 실험, 그리고 시와 디자인, 이미지 사이의 예술 매체 간 ‘차이’ 및 ‘융합’에 관한 문제를 탐구하는 연구가 지속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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