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芥子園畵傳과 朝鮮後期 南宗畵 발전에 관한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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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6年 8月

敎育學碩士(美術敎育)學位論文

芥子園畵傳과 朝鮮後期 南宗畵 발전에 관한연구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전공

김 시 내

(2)

芥子園畵傳과 朝鮮後期 南宗畵 발전에 관한연구

Hol d the research regardi ng a won currency cri mi nal record shi p constructi on postscri pt Chi nese pai nti ng devel opment

2006年 8월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전공

김 시 내

(3)

芥子園畵傳과 朝鮮後期 南宗畵 발전에 관한연구

지도교수 김 대 원

이 논문을 敎育學碩士(美術敎育)學位 請求論文으로 提出합니다.

2006年 4月

조선대학교 미술교육전공

미술교육전공

김 시 내

(4)

김시내의 석사학위논문을 인준함

審査委員長 朝鮮大學校 敎授 __________ 인

審査委員 朝鮮大學校 敎授 __________ 인 審査委員 朝鮮大學校 敎授 __________ 인

2006年 6月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5)

목 목 차 차 차

도 도 도판판판목목목차차차 A A

ABBBSSSTTTRRRAAACCCTTT

ⅠⅠⅠ...서서서 론론론···111

ⅡⅡⅡ...개개개자자자원원원화화화전전전의의의 역역역사사사적적적 고고고찰찰찰 ···333 111...명명명...청청청대대대 화화화단단단(((화화화보보보류류류)))···333

1 1

1)))회회회화화화적적적 배배배경경경 ···333 2

2

2)))판판판화화화화화화보보보의의의 배배배경경경 ···555 222...구구구성성성과과과 내내내용용용 ···888 333...내내내용용용분분분석석석 ···777

ⅢⅢⅢ...조조조선선선후후후기기기의의의 개개개자자자원원원화화화전전전 수수수용용용과과과 특특특징징징 ···222111 111...개개개자자자원원원화화화전전전의의의 수수수용용용과과과정정정 ···222222 222...조조조선선선후후후기기기 화화화단단단의의의 특특특징징징 ···333222

1 1

1)))정정정선선선파파파 ···333222 2

2

2)))심심심사사사정정정파파파 ···333333 3

3

3)))추추추사사사파파파 ···333444

ⅣⅣⅣ...조조조선선선후후후기기기 남남남종종종문문문인인인화화화에에에 나나나타타타난난난 개개개자자자원원원화화화전전전 초초초집집집의의의 영영영향향향···333555 111...개개개자자자원원원화화화전전전과과과 當當當代代代 작작작가가가 ···333555

1 1

1)))심심심사사사정정정 ···333555 2

2

2)))최최최 북북북 ···333888 3

3

3)))강강강세세세황황황 ···333999 4

4

4)))강강강희희희안안안 ···444111 5

5

5)))이이이인인인상상상 ···444222 6

6

6)))소소소치치치 허허허련련련 ···444333 7

7

7)))전전전 기기기 ···444666

(6)

VVV...결결결론론론 ···444777

*

*

*참참참고고고문문문헌헌헌 ···444999

*

*

*도도도판판판 ···555222

(7)

A A

AB B BS S ST T TR R RA A AC C CT T T

Hold the research regarding a won currency criminal record ship construction postscript Chinese painting development

kim, Si-Nae

Advisor:Prof. Kim,Dae-Won MajorinFineartEducation

GraduateSchoolofEducation,ChosunUniversity

Held and before won currency hundred which is a core to become right or wrong, anger step of all reason rooms cung step and editing from the request outdoors became beginning in the king dog. 3 years the after 1679 original was completed and it was a white clothe wife's father who is a core pleased the report which will reach and it was a villa name of oneself and it held and to pick the unit it published and they were one thing two second house arithmetic steps.

The candle it shared the landscape painting law of each successive divine favors which pick up with detail expression technique and with an objection records with did a textbook role together in the candle scholars. the candle house publication, probably thick 22 year all people 1701 the whole book difficulty gruel treason step of the 2nd houses and after side candle insect anger hwey step zero wool anger hwey step was published. The whole book difficulty gruel treason step treason anger hwey the king quality kept and this portion which is completed the king Sea three sibling the wool, cung step, edited with anger step of that outside together and it completed lastly. After the whole book and the after side of 2 houses became independent at 2 houses and 3 houses and the name was exchanged.

When hold before won currency it sees the tendency of the future when it is recorded in the life house and the candle Song - the unit where it picks up, the life follower anger even from in is intensively becoming in the anger law of unit branch temple price and 2,3 Song unit which it picks up

(8)

or life great disaster is accomplishing this week of the field. The south bell follower anger character is accomplishing the center with these editing idea which follows motive originality north and south bell Ron, anger law north kind it is presented and it maintains an objectivity.

It went mad to the ship construction postscript flower bed and hold when to observe the some branch regarding a won currency intention to fight effect it tried and with the anger step field of the chain which first is introduced to the ship construction together increased the gain and loss against a Chinese conversation the thing is a wild possibility. delicateness one joke control of of course original work or delivery of color feeling insufficiency but I was burnt composition of the field understand the law which will bloom and became the many help. Should have been held the Chinese painting wind which is recorded before won currency becomes life end neat disaster three where is not the origin features of Chinese painting at second and position it is Japanese-style and the unit script is sharp the as it fades plentifully was accommodated is the thing.The application of the detail technique which the room previous report which is a future last wears out was plentifully become accomplished compared to and that application anger followed in Kaesong and it was unique and it was developed. This time the Chinese painting law appears of course north bell anger Buddhist priest's robe effect together and the paragraph green onion Japanese style this it is connected with the ship construction mid-term Japanese style which becomes popular it is visible with the fact that it will be a natural reflection. Like this with it tries to observe held together and the former of won currency the gain and loss against a Chinese conversation to lead, the textbook role it will be able to practice anger hour it did the anger where the place initial manure where the conversational tendency which is various in the ship construction postscript flower bed is developed is thick it was visible there is a possibility of d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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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 .서 서 서 론 론 론

조선후기의 회화는 조선 초기 및 중기의 전통을 토대로 하고,중국 명.청대(明 . 淸代)의 미술을 한국적 특성에 맞게 개발하여 보다 뚜렷한 민족적 자아의식을 발 현했음은 알려진 사실이다.이는 한마디로 조선후기의 회화가 민족적인 전통성과 함께 새로운 시도와 경향들이 다각적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함축한 뜻일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화풍을 든다면 명말 이래 중국 화단에서 주류를 이루어 왔던 남 종화풍(南宗畵風)이 조선시대 중기부터 점차 수용도기 시작하여 조선후기에는 크게 성행했다.

조선중기 이래 유행한 남종화풍이 조선후기 화단에 어떻게 알려지고 어떠한 역할 을 했는지를 조명해 보는 것은 그림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학습의 또 다른 관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인접 국가이면서 역사적으로 적대적이거나 우호적인 관계를 맺 으면서 공생공영 해왔다.문화적인 교류가 활발히 전개되었으며 회화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각 시대 마다 중국의 주류적 화풍이 큰 시간차 없이 들어와 우리 나라 화단의 화풍형성과 양식 변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중국 대가들의 작품을 접하기 쉽지 않았던 한국의 화가들이 중국화풍을 배우고자 할 때 진작을 대신해서 화법 지침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화보(畵譜)들이었다.

우리나라에 17세기 초부터 들어와 당시 회화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는 「고씨화 보」(顧氏畵譜1603년),「당시화보」(唐詩畵譜)(만력연간),십죽재서화보(十竹齋書 畵譜1627년),십국재전보(十竹齋箋譜1644년),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1679년,1701년) 등이 있다.이들 중 개자원화전은 발간 및 편찬과 관련된 사람들만도 10여 명에 이 르며 각 분야의 전문가에 의해 제작된 체계적인 종합화보이다.

「당시화보」(唐詩畵譜)나 「십죽재전보」(十竹齋箋譜)가 단지 그림이 포함된 인 쇄물이고 「고씨화보」(顧氏畵譜)와 「십죽재서화보」(十竹齋書畵譜)가 완성도 있 는 회화자체를 보여주고 있다면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은 회화 이론과 그림을 제 작하는 법을 함께 포함하고 있어 교본으로서의 기능에 더욱 충실하였다고 볼 수 있다.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산수,인물,사군자,초충령모화훼(草蟲 翎毛花卉)등 모든 장르에 걸쳐 각종 화법을 유형화시키고,정형화하였으며,기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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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면에 있어서도 다양성을 갖추어 처음 배우는 사람에서부터 전문 화가들까지도 그들의 서법을 연마 하거나 작품에 그 기법을 반영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남북 종론(南北宗論)을 내세운 동기창(董其昌)의 영향아래 발간된 「개자원화전」

(芥子園畵傳)은 조선 남종문인화풍이 형성 발전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개자원 화전에 대한 연구는 조선후기의 남종문인화뿐만 아니라 그 밖의 회화경향을 총체 적으로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본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의 수용에 따른 조선 화단과의 영향 관계를 여러 분야에 걸쳐 다각적인 측면에서 파악해보고자하고 조선후기 남종문인 화에 미친 여러 요소 중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의 영향관계를 구체적으로 파악해 보는 것이 연구목적이다.

II장에서는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의 성립과 내용을 고찰해보고 이어서 III장에서 는 조선후기에 어떻게 수용,정착되었는지를 문헌자료와 작품을 통해 추론해 보고 그것이 조선후기 화단에 미친 영향을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조선후기 화단에 차지 하는 역할과 의의를 규명하고자 한다.이와 같은 연구는 조선후기 화단의 다양한 성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은 韓.中.日 삼국에 광범위한 독자층을 갖고 있으면서 오 늘날까지도 이용되고 있다.

또한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이 남종문인화에 근 현대까지도 끼친 영향이 지대하나 본 논문에서는 조선후기까지만 다루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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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

II I I. . .개 개 개자 자 자원 원 원화 화 화전 전 전( ( (芥 芥 芥子 子 子園 園 園畵 畵 畵傳 傳 傳) ) )의 의 의 역 역 역사 사 사적 적 적 고 고 고찰 찰 찰

1 1 1. . .명 명 명. . .청 청 청대 대 대 화 화 화단 단 단( ( (화 화 화보 보 보류 류 류) ) )

1)회화적 배경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고씨화보」(顧氏畵譜),「당시화보」(唐詩畵譜),「십죽 재서화보」(十竹齋書畵譜)등은 명.청조에 발간된 화보이다.위의 화보들은 좁게 보 면 그림을 종류별로 분류,정리하여 놓은 책이거나 화법을 논한 판본 화보류이다.

즉 화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회화교본이자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모티브를 제공하는 기법서인 것 이다.이러한 화보에는 간략하게 회화 이론을 서술하고 때로 는 그림을 곁들여 기법을 해설한 것이며,각각의 화보의 목제에 맞게 그 문장 내용 에 해당하는 삽화를 알맞게 첨가하고 있다.

또한,화보라는 범주에 포함되지만 넓게 보면 판화의 분야에 속한다.그러므로 위 의 화보류에 대해 회화사의 측면에 대한 판화화보의 배경도 개괄적으로 살펴보겠 다.

명.청대에는 송.원대에 비하여 화가의 수가 증가하고 다양한 화파와 화법의 새 로운 변화가 나타내기 시작했다.

명대화단은 소수의 화가들이 원대의 산수화 화풍을 계승했고,남송원체화풍(南宋院 體畵風)의 형식주의에 입각한 회화의 영향을 받은 절강지역의 절파가 주류를 이루 었으며,복고적인 문화 분위기로서 서예와 명화를 수장하고 감상하는 기풍이 성행 하여 원대 문인사대부화풍의 전통을 계승했던 심주(沈周),문징명(文徵明)등의 오 파(吳派)가 소주(蘇州)에서 일어났다.

대체로 절파는 그 화풍이 경직되고 첨각 함에 비하여 오파는 온화한 곡선이었고 평원,유담한 풍격이었으며 운필에 임해서는 점차 사의(寫意)와 공필(工筆),수묵과 색채와 같은 성향을 띠게 되었다.이후 오파가 청초(淸初)로 연장되어 사왕오운(四 王吳運)왕원기(王原祁1642-1715),왕시민(王時敏1592-1680),왕감(王鑑1598-1677),왕휘 (王翬1632-1717)에게로 이어지며 청대 화단의 정통을 이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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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초의 사왕(四王)이 오파를 정통으로 삼은 것은 곧 동기창(董其昌1555-1636)의 추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에 본격적인 분종론(分宗論)은 막시룡(莫是龍 1539-1587),동기창,진계유(陳繼儒1558-1639)등 이른바 화정삼명사(華亭三名士)1)는 그 이전까지 다소간 모호하고 막연하였던 그림의 이파를 남북선동의 남돈북점(南頓 北漸)2)이라는 종지로서 대입시켜 도출해 냄으로써 분종이론이 귀결을 보았던 것이 다.즉 남북종론의 제창으로 화파를 크게 두 갈래로 정리한 것 중 남종문인화론이 지배적인 회화사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남북종론을 창안한 사람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동기창(董其昌)은 문인화풍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중국 회화사의 체계화를 정립하였으며 나아가 고서화 수장가이 며 감식가로서 명말 회화의 심미안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뿐만 아니라 많은 방작 (倣作)을 내 놓음으로써 문인화가 지향할 바를 제시한 화가이자 학자이며 서예가였 다.

이와 같이 그의 영향력이 막강함에 따라 그의 화론의 영향 또한 컸다.그중 “고인 을 스승으로 삼음으로써 이미 상승하는 것이며,이로부터 나아가 마땅히 천지로써 스승을 삼아야 하는 것이다.”의 내용에서 고인을 스승으로 삼기 위해서는 서화 수 장가들과의 교류가 밑받침되어야 했다.따라서 이들을 통해 역대 명적들을 봄으로 써 전통이라는 영향을 흡수하고 또한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삼게 됨과 동시 에 감상수준과 회화기교를 넓히는 계기가 되어 회화발전의 밑거름을 다진다는 것 을 의미하는 것이다.3)

그러나 청대에 이르면 개인 서화수장가들이 현격히 줄어들며 동기창이 제시한 명 가의 양식적 접근방법을 취하여 특정 작가를 모델로 그 기법을 나름대로 되살리는 형식이 유행했다.

이전 대가들의 화법을 잘 배워 그것들의 장점을 모아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인 데 나무는 누구의 화법으로,돌은 누구의 화법으로 산은 누구의 화법으로 하는 식

1) 화정이라는 지역에서 동기창, 막시용, 진계유 세 사람이 출생한 곳이다. 각자가 극히 긴밀한 우애를 돈 독히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가 같은 고향이면서 서로간의 교류가 긴밀하였으며, 그들 사상의 배경과 화론의 전개방식에 있어 상당 부분이 동일한 점을 지니고 있어 세상은 그들을 <화정의 삼대명 사>로 지칭하였다고 한다.

2) 선종에서는 신회(神會)가 신수(神秀) 이후의 북종선(北宗禪)을 공격하며, 혜능(慧能)을 개조로 하는 남종 선(南宗禪)이 돈교의 가르침이라고 하는데 대하여 북종선은 점오(漸悟)의 열등한 가르침이라고 비난했 다. 이를 가리켜 남돈북점(南頓北漸)이라고 한다.

3) 김명신, 「조선후기 남종문인화에 미친 개자원화전의 영향」. 이화여자대학교 , 1991. p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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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종합적인 집대성론4)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대작가들의 화풍에 대한 이해는 고화를 참조해야 했지만 특권계급이 아 닌 대부분의 화가들은 고화를 접하는 게 어려웠다.이러한 점이 화보의 필요성을 더욱 자극하게 되었고 시대적 요구에 의해 이전에 간행되었던 화보들은 더욱 많은 수요자가 생겨났다.

그러나 동기창이 제시한 그림의 양식적인 방법은 이후 제작태도에서 하나의 전형 으로 되었고,마침내는 형식주의를 낳은 결과가 되었다.이에 또한 화보류가 가장 많이 뒷받침되었다고 생각된다.「고씨화보」의 경우 4세기 때인 진(晋)의 고개지 (顧愷之)로부터 17세기 명(明)의 동기창까지 106명의 화가 가운데 50%이상이 남종 문인화가 들의 작품이고5) 청대 출간된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에 수록된 고 대화가의 화풍에 대한 언급이 상당 부분 동기창의 견해였다고 한다.

바꿔 생각해보면 회화 교과서와 소재의 모티브가 되는 화보의 유행은 회화의 일반 화.대중화.통속화 등의 저변 확대를 시사 하며 .미술사적 이해가 증가되고 새로 운 복제명화집의 형태를 띤 화보가 생겨나게 되었다6)는 것이다.

문인화 사조는 청초에 이르러 문인의 심미관 내부에 두 가지의 대립적인 사상이 출현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는데.하나는 옛 것을 본뜨는 의고파(擬古派)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창신파(創新派)이다.문인화 사조에 보수 세력이었던 사왕(四王)―왕원기(王原祁),왕시민(王時敏),왕감(王鑑),왕휘(王翬)이후 문인화의 치명적인 결점은 모방에서 시작하여 변화로 나아갔고 자연을 배우는 우수한 전통 을 벗어나 고법을 묵수한 것 이었다.

즉,고인을 스승으로 삼는데 있어서 고인의 마음을 배우는 것과 고인의 자취를 배 우는 것의 분별을 하지 못하고 의고적인 화가들은 예술의 계승성이라는 문제를 대 함에 있어서 형식주의적인 관점에 치우쳤다.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 이 자연을 스승으로 삼는다는 예술 법칙을 잃어버린 것이다.7)

2 2 2. . .판 판 판화 화 화화 화 화보 보 보의 의 의 배 배 배경 경 경

4) 한정희, 「한국과 중국의 회화」,학고재, 1999, p23 5) 허영환. 「고씨화보연구」. 1991. p232.

6) 고바야시 히로미쓰. 김명선(옮김), 「중국의 전통판화」. 시공사 , 2002. p.109 7) 허영환. 「고씨화보연구」.1991.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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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明)은 경제,사회적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고개를 들어 백성의 생활이 비교적 풍 성하던 때이며,그로 인하여 예술품의 구매력이 높아져서 예술 시장이 형성되었으 며 자연히 경쟁이 격렬해졌다.그리고 이학(理學),지리학(地理學),경학(經學),사학 (史學),문학(文學),예술(藝術)등이 발달하였고 특히 읽을거리로 소설문학이 활발 하게 보급되면서 소설에 삽화판화(목판화)를 결들인 전성기를 이뤘다.

중국 목판화의 발전은 불교 경전의 면지화(面紙畵)판화와 사원에 증정할 목적을 띤 불교판화로 시작되었다고 한다.목판화 제작을 위한 기술적 발전의 뒷받침과 밑 그림 작가나 그것을 겸한 각고의 조형 의욕,그리고 불교의 발전이라는 종교적 동 기가 가장 크다는 것이다.

주로 불교 경전의 삽도 내지 역사서,통속소설,본초서와 같은 실용서의 삽도에 지나지 않았고,제재(題材)도 다양하지 못했다.이후 명대에 들어 삽화를 곁들인 희 곡과 소설의 발달과 더불어 만력 연간(萬曆 年間)이후에는 판화술의 질적,양적 및 기술적인 면에 걸쳐 중국 판화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게 된다.

제재(題材)에 있어서의 가장 큰 새로운 전개는 고대 판화가 불교를 매체로 발달했 던 것처럼 명(明)시대 판화가 문학,특히 대중적인 통속문학을 매체로 하여 크게 발달한 점이다.즉 명 시대 판화는 이전 시대까지의 판화와는 달리 통속문학의 삽 화로서의 수요가 많았다.이는 판화와 대중화된 문학과의 관계가 더욱 긴밀해지면 서 삽화로서의 판화가 대량 생산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또 새로운 경향은 회화교본에서 복제명화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화보류가 잇달아 출판되었다는 점이다.특히 「고씨화보」(顧氏畵譜)는 복제명화집(複製名畵 集)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명말 화단의 추세에 따라 판화로 복제할 만한 과 거의 화가나 작품에 대한 회화사적 평가 기준이 화보 제작에 관련되었던 문인이나 직업화 가된 회화사적 평가 기준이 화보 제작에 관련되었던 문인이나 직업화 가된 문인,혹은 전문화가들 사이에 어느 정도 공통적으로 마련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지를 얻을 만한 화가와 작품이 결정되면 ,역대 화가들의 구도를 열거한 화집을 참고하여 화보를 판각하고 이를 복제명화집 형태로 세간에 널리 선보였을 것으로 생각8)된다.

명 말(明末)엔 기법적인 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었다.아마추어 화가들 이 발휘하기 시작한 옛 대가들의 양식에 대한 백과사전식 지식은 색도인쇄(色度印

8) 고바야시 히로미쓰 , 김명선(옮김), 「중국의 전통판화」. 시공사. 2002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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刷)9)의 발전에 의한 것이다.색의 종류와 농담의 변화에 따라 수십 장이나 되는 부 분 판도를 사용하여 다색중쇄로 찍어내는 색채판화가 획기적인 기법이었던 것이다.

1633년에 출판된 「십죽재서화보」(十竹齋書畵譜)10)에서 색도인쇄의 절정을 이루 었고 이후 그림에 대한 입문서가 점차 출판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679년에 5권으로 출판된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이다.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은 역대 명가(名家)들의 특징적인 화법(畵法)과 작품이 한 책에 수록되어 있어 고전을 접할 기회와 진품을 구하기가 힘들었던 시대에 선 인(先人)의 화적(畵蹟)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복제명화집 으로서,동시에 회화이론과 작화법을 겸하고 있어 회화교과서로서의 성격을 갖춘 종합화보라 할 수 있다.

「개자원」(芥子園)이라는 명칭은 이어(李漁)의 별장이름으로서,정원 안에 작은 언덕이 있는데,그 모양이 겨자씨처럼 작아서 개자(芥子)라고 한 것에서 유래하였 다.개자원(芥子園)의 주인인 이어(李漁)의 호를 따서 일명(一名)「입옹화전」(笠 翁畵傳)이라고도 한다.

화전(畵傳)이 간행된 경위를 보면 명말(明末)의 산수화명가(山水畵名家)이류방(李 流芳 1575-1619)이 그린 화본(畵本)을 그의 후손들이 소장하였는데 명말(明末)의 예술 애호가인 이어(李漁)가 이를 인수하여 그의 사위인 심심우(沈心友)로 하여금 개자원에서 왕개(王槩 1662-1722)에게 부탁하여 먼저의 이류방(李流芳)의 화본(畵 本)을 수정하여 강희(康熙)18년(1679)에 초집(初集)산수화보(산수화보)5권을 선두 로 간행되었다. 이후 강희(康熙)40년(1701)에 二集 매난국죽보(梅蘭菊竹譜) 8권

〔권1․2난보(蘭譜),권3․4 죽보(竹譜),권5․6매보(梅譜),권7․8 국보(菊譜)〕, 三集 화훼초충모화보(花卉草蟲毛畵譜) 4권 〔권1․2 초본화훼화보(草本花卉畵譜), 3․4권 목본화훼우모보(木本花卉羽毛譜)〕가 나왔다.

初集,二集,三集의 편집체계는 모두 회화 이론편과 도해(圖解)된 작화법 및 각 고 인(古人)의 전도(全圖)로 구성되어 있다.또한 모두 각종 형식,소위 남북종(南北宗) 형식을 두루 갖추고 있으나 기저에 깔린 기본 편집 구성은 문인적 사고에 의거하 고 있다.

9) 세계에 알려진 가장 초기의 색도인쇄는 1346년의 명문이 있는 두루마리로 된 불교 경전에 두 가지 색 으로 인쇄된 권두화이다. : 마이클 설리번. 한정희 외 .예경. 1999. p203. 참조

10) 「십죽재서화보」는 天啓(천계)7년(1627) 秋冬사이에 완성되었는데 崇禎(숭정)6년(1633)에 이르러 다 시 성천거사에 청하여 화보소인의 題를 얻었다. : 「중국 전통판화 예술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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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3. . .구 구 구성 성 성과 과 과내 내 내용 용 용

1)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초집(1집)5권11)

개자원화전초집은 1679년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초집은 1권 『이론편』(理論 編),2권 『수보』(樹譜),3권 『산석보』(山石譜),4권 『인물옥자보』(人物屋字譜), 5권 『모방명가화보』(摸倣名家畵譜)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은 李漁의 서(序1679),「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제5권까지의 목차,왕개(王 槪)의 청재당화학천설(靑在堂畵學淺設),설색명법(設色名法)이 쓰여 있는 이론부분 이다.이어의 서에는 산수화를 직접 그리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그의 바람과 왕 개가 편집한 개자원화전을 간행키에 이른 경위를 진솔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는 제대로 된 산수보(山水譜)가 없었던 그 당시에 개자원화전이 산수화법의 전수에 중 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확언하고 있다.하지만 이 서문은 초집에만 붙인 것이어서 산수화 이외에는 언급이 안 되었다,이어의 항후에 2.3집이 간행되었으므로 그의 관계는 초집에만 국한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청대당화학천설』(靑在堂畵學淺說)은 청재당(靑在堂)이 알고 있는 역대화론 중 에서 회화학습에 필요한 기본적인 회화이론을 해설해 놓은 것이다.

먼저 이 글의 서두에서 그가 개자원화전을 편집한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가슴에 오악의 풍경을 간직하고 붓놀림이 대자재(大自在)의 신운(神韻)을 발휘하며 만권(萬卷)의 책을 읽고 만 리(萬里)의 길을 여행하여 달려가 동원(董源), 거연(巨然)의 경지에 뛰어들고 곧바로 고장강(顧長康),정법사(鄭法士)의 진수를 파 악할 기개가 필요할 따름이다…….법식을 떠나고자 할 경우에는 먼저 법식을 배워 야 한다.쉽게 그리고 싶으면 먼저 신중히 그리는 태도를 배워야 한다.간결한 필 치를 체득하고 싶으면 먼저 학습과정에서 세세히 그리는 필법을 배워야 한다.옛 사람들은 6法(법),6要(요),6長(장),3病(병),12忌(기)라는 것을 말했는데 이것을

11) 이 부분은 허영환, (개자원화전), (미술사학연구론,1993) 김명선의 앞의 글,pp. 21-26.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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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그는 그림을 자세하게 그리던 간단하게 그리던 혹은 쉽게 그리던 어렵게 그리 상 관없이 수련을 쌓느냐 안 쌓느냐가 중요하며 讀書萬卷 行萬理道’(독서만권 행만 리도)를 통해 고인의 뜻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또한 ‘욕류법 심선류법’(欲 無法 心先有法)이라는 주장은 개자원화전에 소개한 여러 화론들과 고인의 화법에 대한 수련을 먼저 거친 후에야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 즉 무법(無法)의 세계에 이를 수 있다는 뜻으로 그의 의도를 해석할 수 있다.

『청재당화학천설』(靑在堂畵學淺說)에는 사혁(謝赫)의 『고화품은』(古畵品銀)에 서부터 시작하여 오대(五代)의 형호(荊活),宋의 류도순(劉道醇),곽약허(郭若虛),元 의 하문언(夏文彦)그리고 明의 동기창(董其昌)에 이르기까지 역대화가들의 화론들 을 발췌 편집하여 싣고 있는데,대부분이 화론을 동기창의 『화안』(畵眼)에서 인 용하고 있어 개자원화전 의 간행 취지가 남종화론을 소개하는데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주요내용은 표1에서 보는 바와 같이 17칙(則)이다.

『고씨화보』가 피상적인 작품소개에 그치는 것과 달리 개자원화전은 화파를 이 룬 각 명가들의 수법(樹法),석법(石法),인물(人物),영모법(翎毛法)을 자세하게 분 석함으로써 화법의 체계적인 습득을 가능하게 한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데,화보를 꾸민 자료가 오파계(吳派系)화가인 이유방(李流芳)에게서 나온 것이고 편찬자인 왕 씨(王氏)삼형제가 모두 동기창의 남북 종론을 추종하던 인물들이어서 결국 화 보의 전체적 내용은 오파 남종화풍을 소개,지도하고자 하는 성격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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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1)「靑在堂畵學淺說」의 주요내용

칙(則) 저자(著者) 내용

6법(法) (남제)사혁(謝赫) 「고화품록」(古畵品錄)-통괄적인 회화품평 기 준

6요(要)6장 (송)유도순(劉道醇)

「성조명화평」(聖朝名畵評)6요(기운겸력(氣韻兼 力),격물지지격지구노(格物至知格枝,俱老)변이합 리(變異合理),채회유택(彩繪有澤),거래자연(去來 自然),사학사단(師學捨短)

6장(추로구필(麤鹵求筆),,세교구력(細巧求力),광 괴구리(狂怪求理),무묵구염(無墨求染),평화구장) 3병(病) (송)곽약허(郭若虛)

판(版)(팔의 힘이 약하고 붓이 졸렬하여 입체감 이 원만하지 못함)

각(刻)(마음과 손이 어긋남),결(경물이 엉겨 붙 음)

12기(忌) (원)요자연(饒自然)

포치박새(布置迫塞),원근불분(遠近不分),유무기맥 (由無氣脈),수무원류(水無源流),경무이험(境無夷, 險)노무출입(路無出入),석지일면(石止一面),수소 사지(樹少四肢),인물구루(人物傴僂)루각착잡(樓 閣錯雜)

3품(品) (원)하문언(夏文彦)

신품(神品)(작가의 천성),묘품(妙品)(필묵과 색채 의 사용이 뛰어남),능품(能品)(형태가 유사하면 서도 규범을 잃지 않음)

분종(分宗) (명)동기창(동기창),

막시용(莫是龍) 선종에서와 같이 그림이 남북종으로 나뉜 경우 중품(重品)

회화에 조예가 깊었던 문인들의 인품을 존중해 야할 필요성을 말함

성가(成家) 일가를 이루는 것,일파를 일으키는 것 (유파형 성에 대한 내용)

능변(能變) 시대에 따라 변하는 양식

계준(計皴) 준법의 종류를 열거(피마준(披麻皴),난마준(亂麻 皴),지마준(芝麻皴),대부벽(大釜劈),소부벽(小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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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화보가 대량 도입되자,조선화단은 화본 방적이 유행하면서 그 전체를 유사하게 그려낸다.

끝 부분에 나오는 ‘파사’(破邪)나 ‘거속’(去俗)의 내용 등은 왕개(王槪)의 문인적 회 화관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설색각법』(設色各法)에서는 채색의 범위를 천지만물까지 확대하여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천연안료(주로 석채)의 재료,제조법,사 용법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또한 비단감별법,아교물 들이는 법,종이의 종 류,태점 찍는 법,낙관,접시의 사용법,호분의 변색에 대처하는 법,금지(金紙)의 사용법 등 초학자의 학습에 도움이 되는 내용들을 다뤄 교본의 역할을 충실히 하 고 있다.

『화학천설』(畵學淺說)의 ‘중윤선량’(重潤渲梁)에서도 먹과 채색의 혼합법이 나오 지만 『설색각법』(設色各法)을 이와 같이 따로 언급하는 것은 수묵과 채색을 대립 적으로 보기보다 이들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수묵과 채색에 대한 이런 자세한 설명은 배움에 있어 선택의 폭을 넓게 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제2권부터는 도판중심이며 제4권까지 주로 묵색 위주이나 간혹 채색인쇄가 있다 제2권은 나무에 관한 모든 형식을 소상하게 그림으로 싣고 이에 대한 설명을 덧 붙인 수보(樹譜)이다.나무 및 잎의 형태를 그리는 다양한 법식과 명칭을 실은 후 劈),운두준(雲頭皴),우점준(雨點皴),탄와준(彈渦, 皴)하엽준(荷葉皴)

역명(嶧名) 운필법과 산수의 이름을 풀이

용필(用筆) 문인,서가,화가들의 붓의 사용법

용먹(用墨) 먹의 사용 (희먹발먹,구먹,신먹의 사용법) 중윤선량(

重潤渲梁) 옅은 먹의 사용 방법,먹과 채색의 혼합법 천지위치(

天地位置) 구도의 법칙

파사(破邪) (명)도적수(屠赤水) 「고반여사」(考槃餘事)「화전」(畵箋)-정두선 (鄭頭仙),장복양(張復陽)등을 사마로 몰고 있음 거속(去俗) 속기를 줄이는 방법으로 독서를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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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들의 나무 및 잡수 그리는 법까지 자세하게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실린 제가(諸家)들이란 왕유를 비롯하여 동원(董源),범관(范寬),곽희(郭 熙),마원(馬遠),소소(蕭昭),연중목(燕仲穆),가구사(柯九思),형호(荊浩),관동(關 仝),하규(夏珪),조운서(曹雲西),이당(李唐),예운림(倪雲林),황공망(黃公望),오진 (吳鎭),왕몽(王蒙),유송년(劉松年),미불(米芾)등으로 소위 종파의 구분 없이 이들 의 모든 형식을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그림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어느 한쪽의 편파적인 것을 제공하지 않 고 이와 같이 다양한 형식을 제시함에 따라 그리는 사람의 선택의 폭을 넓게 해 주며 이러한 체계는 개자원화전 全三集에 모두 해당되고 또한 이 화보의 특징이 라 할 수 있다.

제3권은 산석보(山石譜)로서 기본구성은 제2권과 마찬가지이다.그 내용은 돌 그 리는 법과 준법(皴法)의 형식을 제가(諸家)의 법으로 나타냈으며,산을 그리는 유형 역시 제가의 법으로 표현하고 있다.그 밖에 폭포나 물,구름의 표현법까지 갖추고 있다.

제4권은 인물옥우보(人物屋宇譜)로서 산수화를 그리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들 일점경인물(一點景人物),점경조수(點景鳥獸),다리 그리는 법에서 가옥(초 가,기와집),누각(樓閣)을 그리는 여러 가지 법,탑,배 그리고 정자나 다락의 실내 에 갖추어야 하는 일용품에 이르기까지 소상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중 “산수화의 점격인물을 그리는 여러 화법은 너무 정교해도 안 되며 너무 기 세가 없어도 안 된다.산수화 속의 인물은 학처럼 맑게 여위어서 멀리서 보기에 신 선 같은 느낌이 들어야 한다.조금이라도 세속적인 냄새가 나서는 안 된다.”그리 고 극사의 인물을 그리는 법에서는 “초서(草書)는 해서에 비하면 매우 어렵다.그 것과 마찬가지로 초화(草畵)는 진의(眞意)에 비해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사(寫)라 이르고 또 반드시 의(意)를 덧붙이는 것은 뜻이 없으면서 함부로 붓을 대는 일이 있어서 안 됨을 보이는 것이다.12)라고 설명하고 있는 반면,누각 (樓閣)을 그리는 방식에는 “고인은 반드시 호방하면서 세심하지 않은 이는 없었다.

괘선을 그은 그림은 장이들이 할 짓이라고 팽개친 채 익히지 않아서 좋을 턱이 없 다.괘선 속의 그림은 선종의 계율로부터 시작해야한다.그렇게 하면 일생동안 빗 나가지 않아도 된다.만약 그렇지 않을 때는 야호선(夜狐禪)의 무리가 되고 말 것

12) 주35),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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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그것과 마찬가지고 괘선 속의 그림은 화가의 귀중한 규율인 것이며 배우는 이가 들어가는 입구라 할 수 있다.13)

이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종파의 구별 없이 다양한 화법을 실은 것처 럼 이 역시 호방함과 정교함을 같이 실으므로 써 그림을 배우는 자에게 마땅히 정 밀한 데서부터 시작하여 사의(寫意)에 이르러야한다14)는 정신에 입각해야 함을 가 르친다고 할 수 있다.

이상 제2권에서 제4권까지 산수를 그리는데 필요한 모든 형식들을 총망라하여 상 세한 이론과 함께 도판으로 제시하고 있어 그림을 그리는 자들이 금과옥조로 삼을 만하다고 할 수 있다.

제5권 『모방명가화보』(模倣名家畵譜)는 제 4권까지의 각종 화풍들을 종합하여 응용 할 수 있도록 각 시대의 대표적 산수화가의 작품 전도(全圖)40폭이 모각(模 刻)되어 실려 있다.전도는 횡장각식(橫長各式),궁화식(宮紈式),접선식(摺扇式)의 3 항목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그림마다 제시가 있어 시,서,화를 모두 갖추고 있음 을 알 수 있다.

각식의 말미에는 전육찬(錢陸燦),진부요(陳扶搖),왕개(王槪),심인백(沈因伯)의 발 문이 적혀있다.황장각식(橫長各式)에는 가로 세로 폭의 비율이 서로 다른 그림 20 폭을 소개했는데.이는 모두 왕개(王槪)가 정사년(1677)봄부터 기미년(1679)겨울 까지 40여 개월 동안 그린 것이다.거연(巨然)의 《황산도》(黃山圖),황공망(黃公 望)의 《부춘산도》(富春山圖),심주(沈周)의 《벽오청서도》(碧梧淸暑圖)등이 있다.

궁환식(宮紈式)에는 10폭의 원형 그림을 소개했는데 이공린(李公麟)의 《선산누각 도》(仙山樓閣圖),남영(藍瑛)의 《산수도》(山水圖),미우인(米友仁)의 《산수도》, 예찬(倪瓚)의 《공정도》(空亭圖)등이다.궁환식의 왕개의 발문에는 개자원화전이 출판되고 난 뒤의 활용에 대해 고심한 흔적이 드러난다.

“내가 한가히 틈틈이 끼적거린 그림과 글은 결국 세상에 공개되어야 할 것 같은데,지금부터 그것을 보는 사람으로,나를 잘 배우지 않는다면 나는 더욱 두려 워할 할 것이며 나를 잘 배운다면 나는 더더욱 두려워할 것이다.왜 그런가.나를 잘 배운다면 반드시 교묘히 훔쳐서 내 졸렬함을 돌려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3) 주35), p.360.

14) 갈로(1982), 앞글,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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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선식에는 10폭의 부채 그림과 왕개의 편찬 작업을 창힐(蒼頡)의 業15)에 비유하여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심인백의 발문이 있다.

2)개자원화집(芥子園畵傳)2집

초집이 이루어졌을 때 이어는 왕개(王槪)를 격려하며 일초일목(一草一木)과 비조곤 충(飛鳥昆蟲)에 관한 화보의 간행도 권유하였다.이것이 22년 후 2집이 탄생되게 된 시발점이었다.16)

원래 2집은 『난죽매국보』(蘭竹梅菊譜)를 후편으로 『초충화훼보』(草蟲花卉譜)와

『영모화훼보』(翎毛花卉譜)를 나누어 간행하였으나 후에 2집과 3집으로 독립되어 그 명칭이 바뀌었다.구성을 보면 왕개의 화전합편서(畵傳合編序),제승(諸昇)의 난 죽보서(蘭竹譜序),심인백의 화전합집예언(畵傳合集例言)난보(蘭譜),죽보(竹譜),여 춘(余椿)의 매국보서(梅菊譜序),매보(梅譜),국보(菊譜)등으로 되어있다.

화전합집예언에 나온 2집의 성립과정은 이렇다.심인백은 2집에 들어갈 그림 중에 난죽(蘭竹)은 제승(諸昇)에게 매국(梅菊)과 화훼보(花卉譜)한 권은 왕질(王質)에게 부탁하였고 이들은 3년만인 1682년에 이를 완성하였다.그러나 심인백은 2집 원본 을 곧 판각에 부치지 않고 그림 속의 색채와 인쇄의 정미함을 위해 각인의 명수(名 手)를 찾는데 18년의 세월을 보냈다.이렇게 어렵게 적임자를 찾고서야 왕 씨 삼형 제에게 그 뒤를 부탁하였다.둘째 복초(宓草)는 난죽매국 220여 매에서 1/2을 늘이 거나 줄이고 초목화훼 중에 비조와 곤충 2백 20여 매에서는 모사하고 추가한 것이 7/10이 되며 매 책마다 명색(名色)을 그리고 모사 하였다.이를 판목에 새기는 일은 셋째 가직(可直)이 주재했으며,왕개가 전체를 감수하는 일을 맡았다.마침내 1701 년 2집이 간행되어 세상에 유포되었다.『개자원화전』이 증(繒)․ 각(刻)․ 인(印) 에 있어서 정교함을 얻은 것은 이러한 각고의 노력 끝에 나온 결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화전합집예언에서는 이외에 제영(題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 어 흥미롭다.

“제영(題詠)에 있어서는 고금의 제귀(題句),즉 당에서 원명에 이르기까지 시,

15) 창힐이 문자를 처음 만들었을떄 천지의 비밀을 누설한 까닭으로 하늘이 곡식을 뿌리고 귀신은 밤에 울 었다고 한다. 『개자원화전』을 간행하는 것도 천지의 비밀을 누설하는 것과 같이 뛰어난 업적임을 비 유한 것이다

16) 「개자원화전」2집, 화전화집예언, 1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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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부,찬이 다 그림과 들어맞는 것을 택했다.원래 가귀(佳句)가 있는 것은 그 진 본을 보존하고 제영이 없었던 것은 대신 이름 지어 써주기를 청하기도 했다.혹은 넉자를 써주기도 하고,혹은 전현(前賢)의 것을 모방하기도 했다.그리하여 자법(子 法)의 제체(諸體)가 다 갖추어지기에 이르고,조각에서는 조금도 잃은 바가 없어서 될수록 서와 화가 아울러 아름다운 경지에 이를 것을 기약했다.”

이것은 모방작가의 전도(全圖)에서처럼 『개자원화전』이 단순한 화법지침서를 뛰 어넘어 수준높은 시화보(詩畵譜)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려준다.난(蘭)․ 죽(竹)․

매(梅)․국(菊)의 4보는 모두 첫머리에 청재당(靑在堂)(난.죽.매.국)천설(淺 設)이 있어 사군자 각 화법의 원류와 가결에 대해 자세히 해설하고 있다.그 뒤에 기본을 싣고 마지막에는 각각의 고금제명인도(古今諸名人圖)를 실어 자세한 이론과 기본법,모방작을 함께 다색쇄(多色刷)도판이다.이러한 편집구성은 3집에서도 공통 적으로 적용된다.만자 첫 머리에 화법원유(畵法源流)를 밝혀 사람으로 하여금 비 롯하는 곳을 알게 하고,다음으로 화법가결(畵法歌訣)을 밝혀 근본으로 삼을 바를 알게 하고 다음으로 기수각식(起手各式)즉 기본양식을 밝혀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 는 방식을 알게 했다.뒤에는 널리 고금 명화를 전폭(全幅)모사하여 사람으로 하 여금 사승(師承)함이 있음을 알게 했다17)

3)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3집

3집의 구성은 왕택홍(王澤弘)의 序,왕저(王著)의 초충화훼보서(草蟲畵卉譜序),영모 화훼보서(翎毛花卉譜序),초충화훼보(草蟲畵卉譜),영모화훼보(翎毛花卉譜),설색제 법(設色諸法)등으로 되어있다.

2집의 원본은 책처럼 만들었기 때문에 두 장이 합쳐진 그림에서는 중간에 중단되 는 결함을 면할 길이 없었으나,3집은 화첩처럼 앞뒤의 종이를 붙여 만들었으므로 그림을 손상시키지 않게 구성되었다 그림속의 제시에 이르러서는 고인의 것을 채 택했고,전혀 맞지 않는 경우에만 새 시구를 만들어 넣었다.제시 중의 자법은 널 리 명사들에게 청하여 글씨를 얻었고 각을 하는 직공들도 반드시 일류만 가려 썼 다.18)

17) 「개자원화전」 2집, 화전합집예언, 5칙 18) 「개자원화전」 3집, 왕택홍의 序 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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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화보의 앞쪽에는 2집에서처럼 청재당화훼초충천설(靑在堂花卉草蟲淺設)과 청재 당화훼영모(靑在堂花卉翎毛)천설을 자세히 소개하였다.이어서 꽃,풀벌레,새,짐 승,줄기,가지,바위,열매 등 수 백가지 그림을 예시하였다.그림의 경우 앞쪽에서 는 화훼초충의 이름 정도 썼지만 뒤쪽의 크고 자세한 그림에서는 그림에 알맞은 시도 있어서 시.서.화 의 아름다움을 함께 볼 수 있게 하였다.

설색제법은 3집의 권말(卷末)에 수록되어 있다.초집에서 권두(卷頭)에 게재한 것 과 달리 권말에 수록한 이유에 대해 편자(編者)는 자세한 이론과 기본 각식,전도 를 실은 것을 설색법으로 마무리 짓고자 한 것이라 하였다.또한 이것을 그릇을 만 드는 법과 공자의 ‘증자후소’(繒者後素)등에 비유하여 대문에서 안방에 이르는 순 서를 아는 것처럼 명료해 질 것 이라고 밝히고 있다.초집과 3집의 설색법에 나오 는 색의 종류와 조제법은 공통적인 것이 많으나 전자는 산수에서의 색의 쓰임을 설명한 것이고,후자는 영모초충화훼에서의 색의 쓰임을 말하고 있다.초집에서는 색 외에 종이,낙관,접시 등 그림 전반에 대한 설명이 더 나와 있고,3집에서는 傳 粉,烟煤,藤黃,磁石 (전분,연매,등황,자석)등 산수보다 영모초충화훼에서 특히 자주 쓰이는 색에 대해 자세히 부연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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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 4. . .내 내 내용 용 용분 분 분석 석 석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이 초학자의 학습용으로 간행되어 남북종 각 체의 다양 한 형식을 보여주고는 있으나 편찬자의 취향과 회화관이 편집방향에 결정적인 영 향을 미쳤음은 주지의 사실이다.각 집의 내용 분석을 통해 이러한 영향 관계 및 특징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초집 5권 전도 40폭의 산수화가들은 송․ 원․ 명 문인화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편찬자의 취향과 저변에 깔린 회화정신이 명말 이후 주도권을 잡고 있는 남종문인화에 있음을 알려준다.

동기창의 남종화 해석을 수용하면서 새로운 조형감각을 적용하여 참신한 화풍을 창출한 이들이 안휘파(安徽派)화가들이다.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의 산석보에 나오 는 여러 준법들 형활관동준법(荊活關仝皴法),유송년(劉松年),예고원산(倪高遠山), 운류천단법(雲流泉斷法)등에서는 암벽이 ‘ㄴ’자형으로 꺾여 수직으로 중첩되며 늘 어진 안휘파의 독특한 바위산 표현이 보인다.또한 모방각가화보에는 명말청초 동 기창을 비롯하여 사왕오운 등 정통파로 분류되는 화가들의 그림은 한 점도 없는 반면 소운종(蕭雲從),이유방(李流芳),홍인(弘仁)등 안휘파화가들의 작품이 실려 있다.이러한 화보의 내용이나 편찬된 시기로 보아 개자원화전은 원말사대가나 오 파의 원래 양식이 아닌 명말 청초에 재해석되어진 양식화된 남종화법을 보이며,특 히 안휘파 양식의 영향이 많이 나타난 화보라고 할 수 있다.19)이러한 영향은 개자 원화전의 토대가 된 화보를 만든 이유방(李流芳)이 초기 안휘파화가였다는 사실과 도 관계가 있다.

명말청초에 출판된 판화들은 그 내용면에서 이전에 출판된 화보들을 바탕으로 하 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출판된 화보들을 인용하는 것은 화보 출판의 일반적인 경 향이었다.개자원화전 역시 이미 출판되어 있던 화보들 예컨대 소운종 (蕭雲從)의

『태평산수도』 (太平山水圖),호정언(胡正言)의『십죽재전보』(十竹齋書畵譜)등 명 말청초의 판화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이 가운데 소운종의 『태평산수도』(太 19) 이예성, 「현재 심사정 회화연구」,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0, PP.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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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山水圖)는 문인화가에 의한 최초의 산수판화로서 개자원화전 초집을 결정짓는 데 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측된다.20)실제로 개자원화전 초집에서는 태 평산수도에서 많은 힌트를 얻어 전도 혹은 부분을 차용하고 있다.『태평산수도』

(太平山水圖)는 소운종(蕭雲從)이 안휘일대의 실경을 보고 그린 판화 밑그림을 고 대 명가들의 작품 양식에 의거하여 완성한 듯 각 그림의 말미에 각 화가들의 관기 가 적혀있다.이들 화가들의 이름은 왕유(王維),이사훈(李思訓),오도자(吳道子),형 호(荊活),거연(巨然),범관(范寬),이성(李成),곽희(郭熙),이공인(李公麟),미우인 (米友仁),마원(馬遠,하규(夏珪),황공망(黃公望),예찬(倪瓚),심주(沈周),당인(唐 寅)등이다.따라서 이후에 간행된 개자원화전 초집의 제작에 왕개가 이 화보를 참 작하였을 것 이다.개자원화전 초집은 이 밖에 고씨화보,『화수』의 「천형도모」

(天形道貌),『십죽재전보』의 소인물상을 베끼고 있다고 지적되기도 하였다.원래 교본 제작이라는 것이 누구나 봐서 배우기에 보편타당한 것을 실어야 하므로 여러 화가의 특수성을 유형화시키고 이를 응용하는 데는 기존의 화보나 화적을 참고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명성에 비해 내용의 독창성이 부족하다거나 빈곤하다는 비 판의 목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자원화전은 초학자의 학습교본용 뿐만 아니 라 선인의 화적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모자람이 없었던 종 합화보라 할 수 있다.

2집이 書를 배우는 법식으로 그림을 배우기를 요구하고 있는데 대해,3집은 詩를 배우는 법식으로 조수 초목에 적용하고 있어 초집에서의 문인적 기본정신이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집 「난죽매국보」에서 난은 잎에서 꽃으로,죽은 마디에서 잎으로.매화는 가지 에서 꽃으로.국은 꽃에서 잎의 순서로 가장 본체가 되는 것부터 완성에 이르기까 지의 방법이 단계적으로 실려 있고.몰골법과 쌍구법을 함께 실어 초학자가 각 체 에 구애되지 않고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그 중 여기에서는 몰골과 쌍구법이 비슷 한 비중으로 제시된 국보(菊譜)에 대해서만 살펴보기로 하겠다.

화화두식(畵花頭式)에서는 평정장변화(平頂長辨花)(위가 평평하고 꽃잎이 긴 꽃), 고정찬변화(高頂灒辨花)(위가 불룩하고 꽃잎이 많이 모여 있는 꽃),찬정첨변화(攢 頂尖辨花)(위로 향한 끝이 뾰족한 꽃),포심첨변화(抱心尖辨花)(꽃술을 안은 뾰족한 꽃),층정아변화(層頂亞辨花)(아자형의 꽃잎이 정상에 층층이 포개어진 꽃),찬심세

20) 「개자원화전」이 朝鮮後期 화단에 미친 영향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3), p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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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瓚心細辨花)(꽃술에 모여든 가는 꽃잎의 꽃),점묵엽식(點墨葉式)(먹으로 찍어 그리는 잎의 식),구륵엽식(鉤勒葉式)(구륵법으로 그리는 잎의 식),화두생지점엽구륵 식(花頭生枝葉式)(가지에서 나온 꽃과 잎에다 줄을 긋는 묵화식화법),구륵화두지엽 식(鉤勒花頭枝葉式)(구륵법으로 그리는 꽃가지 잎의 식)등 총 10종류의 국화 그리 는 법이 다양한 형태로 나와 있다.「난죽매국보」의 고금제명인도에는 송.원대의 화가가 조금 등장하고 대부분 명대 화가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3집은 원래 2집의 후편으로 초본화훼에 초충을 첨가한 「초충화훼보」와 목본화 훼에 비조를 덧붙인 「영모화훼보」로 간행되었다.화보가 놓인 순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어 그 짜임이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풀과 나무를 구분하지 못하다가 작약 연꽃의 초본이 먼저 있었고 그 뒤에 모란 도가 부용이 비로소 목자가 붙어서 구별되었다.개자원에서 화보를 만드는데 있어 서 초화(草花)를 목화(木花)보다 앞에 놓은 것은 참으로 까닭이 있다 하겠다.”

“영모를 배치하는 데는 흔히 나무 꽃을 이용하고,풀벌레를 그리는 데 주로 풀꽃을 썼다.대게 서로 어울리는 것을 가지고 분류한 까닭이다.

이 화보에서는 그런 까닭으로 초화와 초충을 앞에 놓고 목화와 영모는 뒤에 두었 는데 순서를 따라서 나아가게 한 것일 뿐 창의적인 것은 아니다.옛사람들은 화목 이라 하고 충조라 했다.꽃과 나무 벌레와 새의 선후는 이미 여기에서부터 결정되 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초충화훼보」에서는 먼저 초본화훼에 대해 초본사변오판화두기수식(草本四瓣五瓣 花頭起手式)(네 개,다섯 개의 꽃잎으로 된 꽃),장체화두식(長蒂花頭式)(꼭지가 긴 꽃),결아다판대화두식(缺亞多瓣大花頭式)(톱니 모양의 꽃잎이 많은 큰 꽃),첨원대 판연화식(尖圓大瓣蓮花式)(뾰족하고 둥근 큰 꽃잎의 연꽃),명종이형화두식(名種異 形花頭式)(각종 형태가 다른 꽃들),초본명화첨엽기수식(草本名花尖葉起手式)(끝이 뾰족한 각종 잎 둥근 잎),엽식,장엽식,아엽식(葉式,長葉式,亞葉式)(톱니 같은 잎),초본명화경기수식(草本名花梗起手式),근하점철태초식(根下點綴苔草式)(뿌리께 에 덧붙여 그리는 이끼나 풀을 그리는 방식)등 여러 가지 법식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그러나 초충에 대해서는 단지 초충점철식(草蟲點綴式)(초충을 찍어 그리는 식)로 분류했을 뿐 각각의 곤충별로 한두 가지 정도의 예시그림만 싣고 있어 그 비중이 화훼에 비해 미비하다.하지만 영모화훼보 에서는 목본화훼 뿐만 아니라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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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의 소개도 자세히 되어 있다.답지식(踏枝式)(가지를 밟는 방식)5종,비입식(飛立 式)(날고 있는 새와 서있는 새)5종,세구영모기수식(細鉤翎毛起手式)(가는 선으로 새를 그리는 방식)7종,번신비투이식(飜身飛鬪二式)(몸을 뒤치는 새와 날면서 싸우 는 새를 그리는 방식)2종,욕파식(欲波式)(물에서 노는 새를 그리는 방식)1종 등으 로 나뉘어 있으며 새 그리는 법식을 순서대로 설명해 놓아 초학자를 배려했다.

2집,3집의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색채의 면에 의한 회화의 묘사는 기법적으로

『십죽재서화보』나 『십죽재전보』 등에서 계승한 것이지만 한편 청초(淸初)의 복 고적 화법으로 유행한 윤곽선을 이용하지 많고 몰골화훼화의 존재를 반영한 것도 있다.2집과 3집 고금명인제인도화의 전도는 모두 5도판화의 다채로운 색채가 도판 의 그림에 생동감을 주어 원화를 보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특히 판화사적 측면에서 보면 십죽재서화보의 두판기법21)(餖板技法)으로 5도 판화 의 전통을 더욱 발전시켜 증․ 각․ 인(增․刻․인)3방면에서 새로운 업적을 이루 었다고 하겠다.

이상을 종합하여 『개자원화전』의 특징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화전을 꾸민 자료가 오파계 안휘파화가인 이유방에게서 나온 것이고 편찬자 인 왕 씨 삼형제가 모두 동기창의 추종자라는 데서 전체적 내용이 남종화풍에 치 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회화,목각,인쇄,등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특히 판화의 수인색(水印色)이 탁월했기 때문에 후대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셋째,초학자의 학습교본용으로 이론과 실제에서 빈틈이 없었던 철저한 회화교과 서였다.예를 들어 『고씨화보』가 한 화가에 한 작품만 실려 있기 때문에 그 화가 의 세부적인 기법을 공부하기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개자원화전은 한 작가의 나무 표현,산석 표현 등을 두루 살필 수 있어 회화공부에 더 도움이 되게 구성되어 있 다.

넷째,고대명가의 화법을 한 책 안에서 볼 수 있는 복제명화집이었다.

다섯째,수준 높은 시화보로서 문인들이 詩 .書 .畵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이유 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21) 두판기법은 분판, 분색의 채색인쇄을 말하며, 인쇄과정에서 고도의 정확성과 엄격성이 요구되는 수준 높은 기술을 필요로 한다. 기 기법을 사용하면 색의 농담, 선염 등의 상태가 마치 종이 위해 붓으로 채 색한 듯이 가볍고 맑게 할 수 있어 필묵 설색의 묘미를 얻을 수 있고 자연스러워 원화를 보는 듯 한 미 묘한 효과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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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Ⅲ Ⅲ. . .조 조 조선 선 선후 후 후기 기 기의 의 의 개 개 개자 자 자원 원 원화 화 화전 전 전( ( (芥子園畵傳) 수 수 수용 용 용과 과 과 특 특 특징 징 징

「새로운 화법의 전개와 새로운 회화관의 탄생」22)을 바탕으로 한 조선시대후기23) 회화의 변모 중 산수화 부문에서 가장 주목할 만 한 점은 남종문인화의 풍미와 남 종화법에 기반을 두고 일어난 진경산수화의 발달을 들 수 있겠다.

바로 이 남종문인화24)의 보급에 진작(眞作)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화보 류 고씨화보(顧氏畵譜),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당시화보(唐詩畵譜),십죽재화보(十 竹齋畵譜)등이다.25)

그 중 개자원화전은 동기창의 남북종론 제창이후 간행된 시대적 소산물로서 그 시대의 경향인 남종문인화의 성격을 바탕으로 삼으면서도 남.북종을 불문한 다양 한 화법의 형식과 이론을 갖춘 회화교과서로서의 기능을 가진 명실상부한 종합화 보이다.

따라서 이 화보가 조선시대에 유입됨으로써 초집은 산수화에,二集 三集은 사군 자와 화조화 분야에서 각기 기법적인 측면과 다양한 소재 그리고 구도와 색채감각 등의 큰 변화를 일으키는데 실질적인 공로가 컸다고 생각한다.

본 장에서는 개자원화전이 조선후기에 전래되어 수용되는 과정을 문헌과 작품을 통해 살펴본 후 그 영향 관계를 산수화 부문에 국한하여 분석해 보고자 한다.

22) 이동주(1982), 「한국회화소사」, 개정판(서울: 서문당), P.195.

23) 이 시기구분은 안휘준(1980), 「한국회화사」(서울: 일지사), P.92의 약 1700~약 1850을 조선후기로 설정한 것에 따랐다.

24) 조선시대 남종화에 관한 연구는 안휘준(1988), “한국남종산수화의 변천”, 「한국회화의 전통」,(서울:

문예출판사), PP.250-309.

김기홍(1983), “현재 심사정의 남종화풍”, 「간송문화」제25호, PP.41-57.

강관식(1990), “조선후기 남종화풍의 흐름”,「간송문화」제39호, PP.47-63 참조 25) 안휘준(1988), 「한국회화의 전통」(서울: 문예출판사), PP.280-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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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1. . .개 개 개자 자 자원 원 원화 화 화전 전 전의 의 의 수 수 수용 용 용과 과 과정 정 정

개자원화전이 조선시대 언제 유입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고 다만 이동주 선생의 英祖(1725-1776)초년 간에는 이미 도입되었다26)는 것만이 통 례로 되어 있다.

그런데 1708년에 김창업(金昌業658-1722)이 조정만(趙正萬1656-1739)에게 「무고 송이반환」(撫孤松而盤桓)을 그려 주었다는 기록으로서 개자원화전초집 卷四의 “무 고송이반환”을 방작한 것일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따라서 개자원화전은 1708년에는 이미 들어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 견해가 제시되었다.

그리고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卷四 김창업條의 노가재집(老稼齋集)에서 발췌한 대목에 “조정이가 광주로 부임되어 김창업이 사는 곳을 지나다가 방문했다.다음날 부채를 보내어 그림을 부탁하고 또 서일절(書一絶)을 보이므로 부채에 그림도 그려 그것을 돌려주었다.」

…….君을 위하여 여백에 무슨 물건을 본뜰까(무엇을 그릴까)? 권조한운「倦鳥閑 雲」“이 行이 마땅하겠다.:부채 속에 그린 그림이 연명(淵明)의 무고송도(撫孤松 圖)”라는 것이다.27)

여기에서 보면 김창업이 부채에 뭘 그릴까 고심하다가 마침내 도연명의 귀거래사 의 한 구절과 결부시켜 표현하였음은 분명하다.이것은 한편으로는 중국 시문학을 고전으로 생각하던 문화담당자들의 외래문화 지향적 경향28)을 엿보게도 해주는 점 이다.

그런데 이 모티브 무고송이반환(撫孤松而盤桓)<삽도1>은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중 기 이정(李禎1578-1607)의 산수도화첩 제10葉 <삽도2>에 이것을 소재로 한 그림이 있고 「십죽재전보」<삽도3>에도 있으며 조영석의 제작시기를 알 수 없는 송하소 요도 (松下逍遙圖)<삽도4>및 역시 년대를 알 수 없는 정선의 작품<삽도5> 에도 등장하고 있는데 단지 필과 묵의 기법 표현들이 다를 뿐이다.

26) 이동주(1981), 「우리나라의 옛 그림」, 서울: 박영사, PP.62-63 27) 오세창(1917), 「군역서화징」, 서울: 학문각, 영이본, 1970, P.159

28) 유준영(1986), “정선의 송간묘선 분석 시론,”「한국문화연구」제 2집, P.122.

(31)

<삽도1>

<삽도2> <삽도3>

(32)

<삽도4> <삽도5>

따라서 이 모티브는 前시대나 다른 화보에도 실려 있음으로 봐서 개자원화전만이 갖고 있는 고유성은 아니다.문제는 도연명의 시구가 회화화(繪畵化)된 것이 언제 부터인지가 관건이다.그런즉 앞의 경우는 싯귀절만의 우연일치인지 정말 개자원화 전에 예시된 그림과 시구를 보고 모티브를 삼았는지에 관해서는 좀 더 확실한 자 료가 제시되어야 가능할 것 같다.

다음은 실제 작품을 통해서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의 수용측면을 살펴본다.현재 남아있는 화적중 가장 연대가 앞서면서 기년이 분명하고 개자원화전의 영향을 살 필 수 있는 정선의 「사계산수도」29)(四季山水圖)를 통해 개자원화전의 초기 수용 단계를 밝혀본다.

정선(1676-1759)은 조선후기초의 회화사에서 영향력이 컸던 당시 집권층인 西人, 노론 계열의 안동김씨 집안의 김창업(金昌業)을 비롯한 시.서,화모임인 동인(同 人)이하곤(1677-1724),조영석(1686-1761)등과도 교류가 두터운 이른바 백악예림(白 岳藝林)의 한사람이었다.

이 작품은 기해년(1719)담헌(澹軒)이하곤의 발문이 적힌 화첩으로서30)춘하추동 4 계절을 나타낸 산수화이며 정선 44세 때 그린 필치이다.이 작품에 관해서는 이미 전형적인 화보 풍으로서 각 경치의 모티브를 「당씨화보」(唐氏畵譜)나 「고씨화

29) 정양모(1983), 「겸재정선」, 한국의 미 1, 개정판, 서울: 중앙일보

30) 이하곤의 발문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이선옥(1987), “담헌 이하곤의 회화관”서울대 석사학위논문, pp.68-70, 최완수(1988), “겸재진경산수화” 「간송문화」제35호, pp.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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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顧氏畵譜)에서 부분적으로 조합한 것이라고 최완수씨가 논술한 것이 있다.31) 그러나 전체의 구성은 당씨화보나 고씨화보에서 부분적으로 응용하였을 지라도 필 과 묵을 쓰는 구체적인 묘법에서 개자원화전이 미친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특히

「동경산수」(冬景山水)<삽도6>의 수목표현 (화살표시 부분)은 황공망기법<삽도 7>이 차용된 점과 소나무의 표현을 진한 농묵으로 줄기를 몰골법으로 나타내고 잎 을 편 점을 찍어 표현한 점,각 산수의 언덕과 산자락의 준법 등은 개자원화전 제 2권(수보)를 충분히 익힌 결과로서 그중의 대미수법(大米樹法),소미수법(小米樹 法)<삽도8>,편점극원소수(扁點極遠小樹)<삽도9>,피마준등이 적절히 반영되었다 고 생각한다.

<삽도6>

<삽도7>

31) 최완수(1983), 앞글, pp45-47. 참조

(34)

<삽도8>

<삽도9> <삽도10>

더욱이 이 화첩의 발문의 내용 중에 이하곤이 정선에게 “내가 일찍이 장난삼아 정 선에게 이르러 말하기를 자네의 그림이 원래 황공망의 「부춘산도」(富春山圖)에서 나온 것 같다고 하자 정선 역시 웃으며 수긍하였다.”32)는 기록이 있다.윗구절처럼 이 그림(삽도6)은 황공망의 「부춘산도」와는 거리가 있지만,정선은 그 필 의(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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意)를 개자원화전에서 보고 익힌 기법중 황공망기법 <삽도7>이나 피마준으로 전달 하려는 나름의 의도가 있지 않았나.추측된다.

그리고 그의 초기진경산수 즉 「신묘년풍악도첩」(辛卯年楓岳圖帖)33)<삽도10>에 서 표현하고 있는 소나무기법(넓게는 침엽수)은 왕숙명(王叔明)의 산두원송(山頭遠 松)<삽도11>이나 곽성희(郭成熙)대소군송법(大小群松法)<삽도12>을 차용하고 있 는 것을 알 수 있다.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우리나라 진경산수화계의 태두라 할 정 선도 그의 화기 수련에는 다양한 화보를 통해 끊임없이 연마하고 이들을 적절히 수용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삽도11> <삽도12>

또한 화보에서 익힌 소나무기법 등은 후에 그의 체험과 모방사이의 시각적 형상의 차이를 실감하고 한국적 수형(樹型)의 소나무 표현에 성공한다.이것은 곧 진경이 란 눈앞에 있는 실경이란 뜻인데 실경이란 대상에 임해서 회화적 구상화를 하는 한 그것을 그리는 화법도실경의 현실감각에서 찾아 표현해야 된다.34)는 점을 정선 이 간파하고 자기화한 결과라 생각한다.

32) 이하곤, 「두타초」권15 「두정원백선화권」, 이선옥(1987), 앞글, p69. 참조.

33) 이 작품의 시기 추정 및 자세한 것은 최완수(1988), pp.37-63

34) 이동주(1983), “겸재일파의 진경산수”「한국의 미 1」, (서울: 중앙일보, 개정판),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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