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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일서울울란바타르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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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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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 일 서울 울란바타르 9 23( ) -

시 분쯤 집을 떠나 공항에 도착하니 시 분 약속 시간인 시 보다 분이나 빠

8 40 9 20 , 10 40

른데 한규철 교수가 이미 와 있다 부산에서. 7시 비행기를 탔기 때문에 한 시간 전에 도착 한 것이다. 10시가 되기 훨씬 전 모두 도착하고 강선 박사만 10시 5분에 도착하였다 어제.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라 관광객들은 이미 대부분 빠져 나가서인지 오늘은 그렇게 붐비 지는 않았다 출국 검사를 일찍 마치고 들어와 발표자들에게 줄 볼펜을. 30자루 샀다.

* 인천 (12:05) -OM302- 14:35( 울란바타르 )

원래 12시 5분 출발인데 35분이 되어서야 비행가 이륙을 한다 엊저녁. 11시 40분에야 박원길 교수 번역본이 도착하여 몽골에서 준비하는 양혜숙 선생과 내일 일정 등을 상의하느 라 잘 자지 못해서 그런지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이내 잠이 들었다 깨어나서 식사하고 나. 니 이미 비행기는 북경을 지나 몽골 땅에 거의 가까워지고 있다 황량한 사막지대를 날던. 배행기가 숲이 있고 건물이 있는 지역에 이르니 벌써 울란바타르다 예정보다. 10분 늦은 2 시 45분 칭기스칸 국제공항에 내렸다.

작년 알타이 답사에 이어 올해만 벌써 세 번째 찾는 몽골이다 상원이가 일찍 체크인하여. 앞좌석을 마련했기 때문에 일찍 여권 검사는 일찍 마쳤으나 짐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이번. 에 내 짐이 5개인데 그 가운데 몽골 역사연구소에 주기 위해 가지고 온 논문집 고구려연‘ 구 가 든 가방이 맨 마지막에 나왔기 때문이다 고구려연구’ . 27집을 모두 가져오려 하니 그 것만도 30㎏이 넘었다.

마중 나온 여행사 차를 타고 먼저 박물관에 갔다 문이 닫혔다 나중에 들으니 오늘 야유. . 회 가서 그런다고 한다 자나바자르미술관을 관람하였다 입구에 있는 사슴돌과 유물들을. . 자세하게 촬영하였다 몽골 불교미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훌륭한 박물관이다. .

몽골제국의 가면 청동기 사슴돌 돌궐시대 돌사람

(2)

이어서 제일 먼저 우리가 쓸 돈을 바꾸었다 여름에 왔을 때보다 달러 가치가 제법 올라. 있다. 1$=1,192터그럭(Tg), 한국 1 =1.28, 1원 유로=1,673Tg, 중국 1위안 =161Tg. 우선 행 사 비용으로 5,000달러를 바꾸었다.

숙소인 엠파이어호텔에 오니 2일 전에 도착한 박원길 박사가 기다리고 있다 방을 정해. 짐을 놔두고 바로 저녁밥을 먹으러 갔다 아직. 6시가 안 되었지만 한국시간으로는 저녁 7시 다 되어 가기 때문이다 무지개식당이라는 한국음식점인데 한국에 있는 음식점보다 메뉴가. 더 다양하고 가격도 한국과 똑 같다 그래도 여름 한철 관광 성수기가 지나면 손님의 절반, . 이 몽골인이라고 한다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탄 투어플러스 유종식 팀장과 지니 집 두 딸. 과 함께 보드카를 곁들여 화기애애한 저녁밥을 먹었다, .

시 분부터 양혜숙 선생이 와서 행사 진행 상황을 상의하였다 발표문집은 지금 만들

8 50 .

고 있는 중인데 한국 발표자들의 몽골문 텍스트는 한국에서 비전공자들이 짧은 시간에 번, 역을 했기 때문에 다시 고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한국인들이 발표할 때 통역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상의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상의하고 나니. 12시가 다 되었다 저녁. 날씨는 제법 쌀쌀하다.

울란바타르 Hotel Empire 1 박

*************************************************************************

월 월 국제학술대회 참가 첫날 9 24( )

시가 되니 잠이 깬다 한국의 시이기 때문이다 어제 일을 기록하고 나니 시다 시

5 . 6 . 7 . 7

반 호텔에서 아침밥이라고 먹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최악의 아침밥이다 오트밀과, . 우유 달걀 빵이 전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식당 주인이 없는 동안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이, , . 적당히 챙겨 주어 이렇게 된 것이다.

시 분 미리 대기하고 있던 콜택시를 타고 대회장에 가니 분 만인 분에 몽골과학

8 20 10 30

원에 다다랐다 소장 이하 참가자들이 함께 도착하였다 프레젠테이션 준비 등 미리서 준비. . 를 마치고 예정시간인 9시보다 약간 늦게 그러나 비교적 제 시간에 시작되었다, . 80~100명 가까이 회의장을 꽉 메우고 마지막까지, 40명 이상이 계속 참가해 관심도를 측정할 수 있었 다.

---

개회식에 몽골 측에서 J. Boldbaatar 볼드바아타르 몽골 역사학자협회 회장 과학원사( ,

) 와 한국 측에서 한규철 고구려연구회 회장 이 인사말을 하였다 ( ) .

나는 첫 발표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새로운 역사 만들기 30년 그 과정과 평가 에 대해」 서 발표하였는데 양혜숙 선생이 통역을 하고 약, 40분 동안 진행되었다 시간 관계로 모든. 것을 발표하지 못했지만 다민족통일국가의 의미를 논하면서 현재 중국 영역과 청나라 영역, 을 지도로 보여 준 것이 크게 어필한 것으로 보인다 고고학자들에게는 내몽골에 있는 요하. 문명을 중국이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가 하는 것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다섯 번째 발표가 시작된 11시 10분 발표문집에 배부되었다 엊저녁 양선생과 몇 명이. 밤을 새워 한 것이다 한국인 발표 내용은 번역 수준이 내놓을 수 없을 정도라 하지 않았다.

(3)

고 한다 빔프로젝터로 비추면서 하거나 통역을 했는데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도 효과가 없. , 어 아쉽다.

오전에 7명이 발표하였다 토론자가 없기 때문에 한 사람 발표하는데. 30분 정도 걸려 빨 리 진행되었다 원래 오후. 1시부터 낮밥을 먹기로 했는데 12시 38분에 오전 발표가 끝나 길 건너편에 있는 빅토리아호텔에서 낮밥을 먹었다. 60명 정도가 참가했다 호텔식당이라. 제법 격식을 갖추어 경양식을 먹었지만 맛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회장, . 가까이 이런 식당이 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오후 2 ,시 오후 발표를 시작하기 전에 역사연구소 측에 고구려연구회의 책을 기증하였다. 내가 사진을 찍고 기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를 몽골 사람에게 부탁하려고 했는데 몽골 측에서 난색을 표해 사회 보면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사회자가 사진을 찍고 다니는 것도, . 이상하지만 나중에 보면 그래도 제대로 기록을 해 놓은 것이 더 중요하다, .

오후에도 6명이 발표하여 오늘 하루 모두 13명의 발표가 있었다. 5시 50분쯤 모든 일정 이 끝났다 낮밥은 참석한 모든 인원에게 제공하고 저녁밥은 발표자를 비롯하여 초청자에게. 만 식권을 발행하였다.

저녁밥은 good morning hotel 1층에 있는 조선옥에서 한식으로 했다. 40명 가까이 참석 했는데 음식이 푸짐하고 분위기도 좋았다 파전은 몽골 사람들도 좋아하였다 갈비는 너무. . 많고 맛도 별로 없어 많이 남았다 내 전화가 개통되었다 집에 안부 전화를 하였다. . .

식사하는 동안 에르덴바타르와 영어가 통해 얘기를 많이 했다 박원길 박사와 친해 얘기. 를 많이 했는데 모래 지방에 가는 길에 대해서 얘기가 나왔다 현장에서 발굴한 고고학자, . 라 잘 알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 여행사 사장 메니저와 운전수를 오라고 해서 아주 자세. , 하게 길을 가르쳐 주고 고고학 유적을 알려주었다 몽골에서는 중간에 물어볼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잘 못하면 몹시 헤매게 되어 있다 참 잘 된 일이다 더구나 유팀장과 지니가 함께. . 가게 되어 있어 일이 더욱 잘 풀리는 것 같다.

방에 올라와 사진을 다운 받고 일을 마쳤으나 밤10시 밖에 되지 않아 오늘은 10시 조금 넘 어 일찍 잤다.

고구려연구회 논문집을 기증하는 한규철 회장 최근 발굴 결과를 발표한 몽골 고고학자

울란바타르 Empire Hotel 2 박

(4)

월 화 국제학술대회 참가 둘째 날

9 25( ) , .

일찍 잤더니 2시에 깨서 다시 잠을 청했더니, 5시에 눈이 떠진다 그래도 많이 자서 몸이. 가뿐하다 어제 찍은 사진 가운데 발표자는 하나하나 이름을 붙였다 나중에 알아보기 힘들. . 기 때문이다 기록을 하고 나니. 6시 40분 비교적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일정이다 어제 발표. 장에서는 노트북을 놓고 계속 기록을 했기 때문에 기록이 간단하다.

오늘 발표는 박원길 박사의 사회로 9시 10분 시작되었다 예약한 택시가 늦게 와 우리. 팀이 좀 늦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35명 쯤 참석하였다 오전에. 6명이 발표하였다. 12시 30 분 현재 대회에 참석자가 55명 쯤 된다 모두 진지하게 참여하였고 인원도 적은 편은 아니. , 다.

낮밥 먹고 오후에는 역사연구소 소장인 다쉬다와 선생이 직접 사회를 보았다 오후에. 3명 이 더 발표하고 이어서 종합토론까지 무사히 마쳤다 종합토론 말미에 특별히 참석자들에게. 몇 가지 공고를 하였다.

발표도 중요하지만 훌륭한 책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참석자에게 다음과 같은 공고를 하였

* .

다 실제 이번 발표 논문들을 잘 다듬어 책으로 내면 아주 좋은 책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월 일까지 논문을 보충해 주기 바랍니다 지도 도면 사진 주 참고서적 추가 바랍니다

1) 10 15 . , , , , .

년 초 책으로 출판하겠다 한 몽 개국어로 하는데 가능하면 영어로도 냈으면 합니다

2) 2008 . , 2 .

필자 약력 및 연구 업적을 함께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3) .

이곳 발표회장에서는 발표 도중 때때로 손전화가 울려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심지어 회. 장이 사회를 보면서 헨드폰을 받는 정도이다.

폐회식 이야기

마지막 폐회식은 사회를 보던 역사연구소 소장이 몽골 역사학자협회 부회장 자격으로 인 사를 하였다.

(5)

학술적이기를 바랬는데 그 목적이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한국에서는 고구려연구회 이름이지만

“ , . 7

개 대학에서 참가했고 몽골에서는 몽골 국립대, 4 ,명 역사 연구소 7 ,명 고고연구소 4명이 참가하였습 니다 고고연구소 몽골 역사 전문으로 연구하는 기관 학자들이 많이 참가하여 좋은 결과를 낳았습니. , , 다 몽골과 한국의 학자 교류가 많았는데 이 대회도 그 가운데 하나의 큰 성과로 보고 양국의 학문. , , 교류에 이바지 했다고 봅니다 앞으로 진전이 되어야 하고 출판이 되기 위해서는 몽골 학자들이 잘. 준비해 주기 바랍니다 몽골역사학자협회에서는 처음으로 국제회의를 하였습니다 그 밖에. . 8, 9명의 학자들이 질문에 참가해 주었고 큰 성과입니다. .”

그런데 “한규철 회장이 양해한다면 이것으로 대회를 마치겠다 며 자기 이야기만 하고.”

폐회 선언을 해버린다 그러나 한규철 회장은 양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일어서려는. 판국에 간신이 몇 마디 인사를 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무사히 대회는 끝났지만 마지막 순간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오치르 언. , 어학자 국경 전문가 같은 중요한 사람을 소장이 제외시키는 일이 일어났고 마지막 순간에, , 담당자인 간볼트 선생을 해고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대회. 5일 남겨놓고 초청장 찍는 순 간에 주최를 역사연구소에서 몽골 역사학자 협회로 바꾼다고 하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발. 표하고 싶었지만 소장이 허락을 하지 않아 못하는 학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여러 사람들이. 이번 행사로 끝내지 말고 연례행사로 하자고 제안했지만 그렇게 될 것 같이 않다 여기도. 보이지 않는 파벌이 뿌리 깊게 남아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아울러 상부기관에서 국가. 기관이 나서면 안 된다고 하였다는 것을 보면 중국의 눈치를 많이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 다 시작할 때 인사말에 정치적이면 안 된다고 하고 끝날 때 정치적이 아니어서 다행이라. , 고 한 것을 보면 오히려 매우 정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가자들은 모두 중국의 역사왜. 곡을 성토하며 공동대응을 주장하는데 위에서는 소극적으로 나오는 것이 우리나라와 같은, 꼴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어 씁쓸했다.

만찬

<18:00~20:00>

한국인이 지어 금년에 문을 연 선진호텔은 몽골에서 최고의 5성 호텔이다 저녁 만찬은. 이곳에서 갖는다 네 테이블에 나누어 앉았는데 나는. 4명의 고고학자들과 앉았다 마침 한. 국에 초청했던 오치르 국립박물관장도 있어 분위기가 좋았다 에르덴바타르도 어제부터 답. 사갈 곳 안내도 미리 해주고 매일 저녁에 우리를 자기 차로 데려다주는 인연이 있어 마지, 막 만찬은 친구들과의 마지막 만찬이 되었다 술들이 들어가자 여기저기서 웃고 떠드는 소. 리가 난다 모두 친구가 된 것이다. .

이곳 식사는 으뜸 먹거리가 두 번이나 나와서 의아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 접시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먼저 나온 것은 닭고기인데 닭고기나 생선은 몽골에서는 고기가 아니기. 때문에 진짜 고기가 나온 것이라는 에르덴바타르의 해석이다.

수미야바타르 이야기

시쯤 주채혁 교수에게 수미야바타르 선생 전화번호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내일 답사 가

8 .

는 일을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오늘 오전 갑자기 수미야바타르 선생이 우리 답사에 참여하고 싶다고 한다는 것이다 더.

(6)

구나 자기 차가 있으니 자기가 직접 운전을 하여 간다는 것이다 차를 확인하였더니 렌트크. 루져로 답사하기 좋은 차였다 박원길 선생도 오랜 친구이고 한국말도 잘 해 좋을 것이라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좀 어려운 주문이지만 지니에게 우리가 이미 빌려놓은 차를 한. 대 취소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낮밥을 먹고 확인 차 사무실에 갔더니 수미야바타르 선생은 이미 퇴근하고 없었다 중요. 한 일이라 꼭 확인하려고 했는데 바로 회의가 시작되어 그럴 경황이 없었다 저녁. 8시가 되 어 주교수에게 물어보니 분명히 간다고 했다는 것이다 수미야바타를 선생이 나이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60이 넘었다고 한다 부쩍 의심이 들었다. . 60이 넘은 사람이 사흘간 하 루 12시간 이상 운전을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교수에게 전화번호를 받아서 지니. 에게 전화를 해서 내일 출발지와 출발 시간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라고 했다.

얼마 뒤 지니가 전화를 했다 수미야바타르 선생은 내일 가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 오늘 오후 예약해놓은 운전수에게 25,000터그럭을 주고 간신히 해약을 해놓았는데 큰일이 라는 것이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다는 말인가. ? 지니가 간신히 다른 운전사를 구했 다고 했지만 만일 구하지 못했다면 차 한 대에 탈 4명은 포기해야 할 것이며, 4명이 못가면 다른 사람 역시 그만 두어야 할 형편이다 만일 내일 아침. 7시에 기다리다가 이런 일을 당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

한 밤중에 일어난 일

시쯤 돌아와 샤워를 하고 사진 다운 받고 기록을 하다가 잠이 와서 반쯤 일찍 잠이

9 , 10

들었다 그런데 복도가 시끄럽더니 강선 박사가 문을 두드린다 시계을 보니. . 11시 반이 되 었다 방동무가 왔다는 것이다 술이 많이 취했는데 에드덴바타르가 와서 억지로 방으로 들. . 여보낸다 그런데 방으로 들어왔던 방동무가 바로 다시 나간다. .

너무 좋은 친구들입니다

“ .”

아마 친구들에게 간 모양이다. 2일간 계속 친구들 집에 가서 잤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간 줄 알았다 그런데 조금 뒤 프런트에서 전화를 하고 올라왔다 그리고 옷을 벗고 잠자리에. . 들며 내일 답사를 가지 않고, 11시까지 자려고 하니 깨우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 라고 하였다 조금 뒤 갑자기 일어나 누구에겐가 전화를 하더니 친구 집으로 간다고 하면서. 옷을 입고 짐을 모두 들고 나갔다.

이렇게 한밤중의 헤프닝은 끝나고 밤 12시가 되었는데 잠이 오지 않아 이렇게 기록을 마 무리 한다 언제 또 올지 몰라 옷을 입고 있는 중이다. .

울란바타르 Empire Hotel 3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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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수 울란바타르 체첼레그

9 26( ) -

엊저녁 잠을 설쳐서 6시가 되어서야 기상 다행이 엊저녁 기록을 마쳤으니 사실은 마찬가, 지다 이른 아침이지만. 6시 반에 식당으로 내려가니 아침밥을 준비해 두었다 오늘도 한국. 말을 잘 하는 주인아줌마가 없으니 메뉴가 말이 아니다 그래도 국이라고 끓였는데 너무 짜. 서 모두들 빵을 찍어먹는 정도이지 먹을 수는 없다 달걀 반숙과 빵으로 아침을 때운다. .

(7)

예정보다 늦게 7시 25분 울란바타르 엠파이어호텔을 출발하여 good morning hotel에서 도시락 싣고 몽골 돈 바꾸어 출발하니, 7시 47분이다 울란바타르를 벗어나기 전 기차 역에. 늘어선 끝없는 목재 화물차들이 울란바타르의 건축 붐을 실감나게 한다 현재 울란바타르에. 서는 건축 붐이 일어나고 있으며 주요 간선도로는 공사중이다 발전의 기지개를 켜는 몽골, . 을 느낄 수가 있다.

시내를 벗어나 어느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데 15분이나 걸린다 차 한 대에. 90ℓ씩 기름 을 넣는다 스페어 통까지 채우고. 8시 33분 드디어 대장정에 오른다.

주유소 기름값

* : 90 × 965Tg=86,850Tgℓ 호차 서길수 유종식 지니

1 : , ,

호차 김위현 서병국 주채혁

2 : , ,

호차 한규철 강선 양혜숙

3 : , ,

주유소를 떠난 지 15분도 못가 공사구간이 시작된다 여기서부터는 초원길로 갔다가 공사. 구간 일부를 달리다 곡예를 하며 잘도 달린다 지난번 버스로 갈 때에 비해 대단한 속도로, . 달린다. 1시간 조금 더 달린 9시 59 , 89분 ㎞ 지점이라는 팻말이 있는 곳을 통과한다 이것. 이 지금까지 온 길 가운데는 유일한 표지이다.

시 분 조그마한 마을 을 통과하는데 포장도로가 나온다 그러나 우리 차는 포장

10 10 , (bak) .

도로를 넘어서 다시 초원길로 들어선다 포장길은 북쪽에 있는 바얀항가이라는 마을로 이어. 지는 길이었다.

시 분 룬 솜을 통과한다 지난 여름 이곳에서 밤 시 넘어 저녁밥 먹고 새벽

10 40 (lun) . 12 2

시에 울란바타르로 떠났던 기억이 난다. 공사구간은 아직도 계속되어 erdensant와 갈림길에서 끝이 난다 물론 여기서도 에르뎅산트 거처 하라호린으로 가는 길 Dashinchilen .

공사는 계속된다 이 공사는. 2008년 9월 모두 끝난다고 한다 그때는 하라호린까지 지금의. 절반 시간만 들면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뒤차를 기다리느라. 15분쯤 쉬었다가 출발하여 아 스팔트길을 달리기 시작하는데 우리 차 바퀴 한개가 펑크가 났다 세 운전수가 함께 달려, . 들어 12분 만에 뚝딱 갈아 끼운다 대단한 순발력이다. .

오랜만에 잘 닦인 아스팔트길을 달리며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바라본다 예년 같으면 찬. 바람이 몰아치고 들판의 풀들은 완전히 누런색으로 바뀌어 있어야 하는데 이상 난동으로 파 란 들판이 이어진다. 7월에 왔을 때는 비가 오지 않아 지금보다 푸른색이 더 없었다 여름. 보다 지금이 여행하기 가장 좋은 때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 분 다시 출발하여 분만인 시 분 차가 오른쪽 지름길로 들어선다 친톨고

11 20 28 11 58 .

이로 가기 위해서다 제법 잘 닦인 길을 달려가다 보니 공동묘지처럼 무덤들이 많다 나지. . 막한 언덕을 넘으니 멀리 서쪽에 들판에 종기가 난 것처럼 우뚝 솟은 산이 있고 그 산 꼭대 기에 큰 오보가 뚜렷하게 보인다 좋은 길을 벗어나 서쪽으로 달렸다 소금기로 가득한 호. . 수에는 돌개바람이 불어 마치 간헐천에서 물이 솟는 것처럼 하늘로 용트림하는 경치가 인상 적이다.

시 분 드디어 오늘의 첫 목표인 친톨고이에 도착하였다 톨고이는 몽골말로 언덕

12 18 , . ,

낮은 산을 말하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가는데, ‘친 이란 뜻에 대해서는 설명이 가지각색이’ 다. ‘진짜 라는 뜻이 있다는 지니의 말도 있었고 고고학자 에르덴바타르는 청나라를 뜻할’ , 것이라는 의견도 내어놓았다.

(8)

친톨고이의 오보는 지금까지 보아온 것 가운데 가장 대형이다. gps로 한 바퀴 돌고 지름 을 재보니 60m나 된다 우선 이곳에서 낮밥을 먹으면서 천천히 광활한 주변을 둘러보며 친. 톨고이 성터를 찾았다 바람이 좀 세게 불지만 해가 떠서 그렇게 춥지는 않다 마치 소풍. . 온 학생들처럼 주변을 감상하면서 낮밥을 즐겼다.

친톨고이 성은 남쪽으로 내려가면 흙을 파내는 큰 공사장이 있고 바로 성벽이 이어진다.

우리는 서북 모서리를 통해 나있는 길을 따라 성으로 들어갔다 얼마 안 가 바로 발굴하고. 덮은 장소가 보인다 도착하자마자 질그릇 조각 기와 벽돌 같은 것들이 수없이 눈에 뜨인. , , , 다 돌 하나 없는 토성 한 가운데 발굴하면서 파낸 널돌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모두 집. . 터에서 나온 널돌들인데 그을린 널돌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구들이 있었지 않는가 하는 생각 이 든다. “온돌이 있었다고 하겠다.” 감격한 한규철 교수가 성급한 결론까지 내렸다.

이곳은 요나라 때의 성터인데 금년 발굴 때 발해시대의 질그릇이 나왔다고 한다 발해를, . 멸망시킨 요나라는 발해인들을 상경성 있는 곳으로 많이 옮겼는데 그곳에서 발해인이나 한, 인들 가운데 죄를 지은 사람들을 서북 변경으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바로 그 때. 온 발해인들이 일찍이 만들던 방식대로 질그릇을 만들어 썼다는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요나라의 서경이 이 근방일 텐데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혹시 이곳이 요나라 서경이 아닐

“ .

까?” 요금사 전문가인 김위현 선생의 코멘트다 김위현 선생이 화산돌로 만든 맷돌 조각을. 발견하였다. “이곳에는 화산돌이 많이 보이지 않는데 혹시 발해인들이 상경성에 가져온 것, 이 아닐까?” 모두들 즐거운 해석들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성을 답사하였다.

동문은 전형적인 요나라 옹성이다 지면보다 조금 높게 쌓아 만든 옹성은 요나라 특징처. 럼 상당히 크다 이곳부터는 한규철 선생이. gps를 사용하여 동벽 일부와 북벽 그리고 서벽, 일부를 측량하였다 가끔 치도 보이지만 형태가 많이 무너져 쉽게 확인하기 어렵다. .

친 똘고이 성터(Chin Tolgoyn balgas) **********************************************

요나라 성터 발해 유민의 유물 몽골유적 쪽

* ( ), ( 190~191 )

몽골의 고대 주요 고고유적 몽골의 역사와 문화 쪽

*「 」『 』 175~176

친 톨고이 토성은 1930년대 발견되어 1960년대 처음으로 조사되었고, 2004년 소규모 발굴조사 가 이루어졌으며 2007년 대대적인 발굴이 있었다. 유적은 톨라강 유역에 있고 높고 넓은 덕땅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진흙으로 쌓아 만든 성벽이 지금도 잘 남아있다.

성의 평면은 긴네모꼴이며, 긴축이 남북으로 향하고 있다. 동벽과 서벽은 1,260m, 남과 북벽 은 680m이다. 성벽의 현재 높이는 2.5~4m쯤 되고 너비는 밑변이 35m, 윗면이 4.5m 쯤 된다. (gps 로 잰 거리는 654m였다)

남쪽과 북쪽 외벽에는 치가 6개씩 설치되었고, 동쪽과 서쪽 토성 외벽에 10개씩의 치가 설치

(9)

되어 있다. 토성 모서리에는 망루가 1개씩 설치되어 있다. 동서벽에 각각 2개, 남벽에 1개의 출 입시설이 있는데 너비 6m이고 바깥에 옹성이 설치되어 있다.

---

친톨고이 성벽 발굴터에서 나온 질그릇 조각

발굴터 근방에서 발견된 현무암 맷돌 조각 발굴터에서 나온 그을린 온돌 널돌

나올 때 길을 따라오니 바로 얼마 안 가 큰 길이다 큰 길에서 바라보면 머지않은 곳에. 친톨고이 오보가 보이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만 친톨고이 뒤에 큰 산등성이가 친. 톨고이와 중복되어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오후 2시 55 ,분 친톨고이를 출발하여 30분도 안되어 다쉰칠렌에 도착하였다 한국식 도. 시락으로는 허기를 채울 수 없는 기사들이 상점에서 양고기를 구입한다 역시 몽골인들은. 고기를 먹어야지 김치나 생선으로는 양이 차지 않는 모양이다.

시 분 다쉰칠렌을 떠나 잠깐 졸았는데 차가 큰길을 벗어난다 멀리 관광캠프가 보이

3 25 , .

는데 바로 그 옆이라고 한다. 3시 40분 tourist camp를 지나 47분 Har Bukhyn balgas(하 르 부힌 성터 에 다다랐다) .

하르 부힌 성터

Har Bukhyn balgas( ) N47°53.198', E103°53.513' ********

불간아이막 다스치엔에서 서쪽으로 12㎞ 지점에 있다. 하르보엔강 남쪽에 있는 500×500m의 네 모난 도성. ‘하다 상긴 발가스’라고도 한다. 이 유적은 두 개의 시대와 관계가 있다. 처음 건 설된 것은 9~11세기 현재 중국의 북방을 지배했던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이다. 성안에는 질그릇 조각이나 기와가 많이 발견되고 있는데, 그 생김새가 9세기 위구르제국시대의 것이나 러시아 남 부 흑해 주변에서 나온 것과 아주 비슷하다.

성벽 한 가운데 북서쪽에 티베트 풍의 건축물이 남아있다. 이것은 17세기 초의 건축으로 성벽 의 서쪽 불탑 안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쓴 몽골말 문서가 발견되었다. 석조건물터 북쪽에 작은 하

(10)

루부헨박물관이 있는데 몽골문 문서가 전시되어 있다.(입장료 3,000 터그렉) ---

먼저 차로 북벽 옹성에 있는 탑을 보았다 탑은. 17세기 후대 것이라고 했는데 바로 북문 옹성 입구에 세웠다 이어서 한교수는. gps로 성벽 측량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성벽과 성안 건축물을 답사하며 사진을 찍었다 옹성 치 각대가 뚜렷하게 남아있다 성안에 남아있는. , , . 돌로 쌓은 건축물은 아주 특이했다 막돌을 깨서 반듯하게 한 면을 밖으로 하여 한줄을 쌓. 고 그 다음 줄은 널돌로 2, 3층 쌓고 틈도 빈틈없이 메워 아름다운 조형미를 갖추었다 박. 물관에는 9~10세기 위구르 시대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데 탑과 함께, 17세기에 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그마한 박물관 앞에 다 훼손된 거북받침대 2개와 연꽃무늬가 잘 새겨진 건출물 부속품 이 놓여있다 안에 이것저것 자그마한 물건들을 모아놓았는데 박물관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 끄러운 수준이다 안내 책자에 나온 문자 적힌 유물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없다 그래도 이. . 런 곳에 박물관이라고 이름이 붙은 건물이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옹성 문에 후대에 세운 탑 17세기에 세웠다는 정교한 탑

성안의 집터 담벼락 쌓는 법 - 아주 특이한 무늬다

시 시 분 어기호수에서 저녁밥 먹고 출발 7 ~ 8 10 :

어기호수(N47°47.344‘, E102°45.828) **************************************************

새 두루미와 오리( ) 관찰, 낚시로 유명. Skyland Tour가 운영하는 Ugi Tourist Camp(하루 식사 없으면

2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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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앞으로 체첼레그까지 120㎞인데 4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우선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라면. . 을 끓여서 도시락과 함께 먹었다 추워서 있는 것 다 꺼내 입었지만. 8월 대보름달이 비치는 호수가에서 먹는 저녁밥은 아주 환상적이었다.

체첼레그까지는 예상보다 조금 빨리 3시간 만에 다다랐다 깜깜한 밤이 아니라 대낮처럼. 밝은 달빛 아래 낮처럼 속도를 냈기 때문일 것이다.

시 분 체첼레그 호텔에 도착 아르 뒤 등 순데르 높은 지대 호텔이다 일본 안내

11 14 . ( , ) ( ) .

책자에는 “최근 새로 지은 건물이라 설비가 좋다고 했는데 새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다 따뜻한 물이 안 나오는 것은 물론 이 추위에 난방도 되지 않는다. , .

사진, gps 다운 받고 12시 조금 넘어 차가운 침구를 덥히며 잠을 청한다.

주요 기록

시 분 울란바타르 엠파이어호텔 출발 7 25 :

시 분 에서 도시락 싣고 출발

7 35 : good morning hotel 시 분 몽골 돈 바꾸어 출발 7 47 :

시 분 시 분 주유소 8 7 ~8 33 :

시 분 비포장 공사길 시작 8 47 :

시 분 지점 통과

9 59 : 89㎞

시 분 룬 이전 마지막 마을 통과

10 10 : (bak)

시 분 룬 솜 통과 10 40 : (lun)

시 분 와 갈림길에서 뒷차 기다리느라 쉼

10 51 : erdensant Dashinchilen

시 분 아스팔트 길을 출발했으나 우리 차가 바로 펑크가 남 11 08 :

시 분 펑크 때워 출발 11 20 :

시 분 친톨고이 가는 지름길로 들어섬 11 58 :

시 분 친톨고이에 도착 12 18 :

오후 2시 55분 : 친톨고이에서 출발

시 분 분 다쉰칠렌에 도착하여 기사들 양고기 구입 3 18 ~ 25 :

(12)

시 분 통과 3 40 : tourist camp

시 분 시 분 하르 부힌 성터

3 47 ~4 56 : Har Bukhyn balgas( ) 시 시 분 우기호수에서 저녁밥 먹고 출발

7 ~ 8 10 :

시 분 체첼레그 호텔에 도착 11 14

way point

001 empire hotel

002 good morning hotel 주유소

003

큰 길에서 친톨골이로 갈라지는 지점 004

친톨고이 도착 005

친톨고이 006

친톨고이 007

친톨고이 008

친톨고이 오보 꼭대기 009

친톨고이 성 발굴터 010

동벽 011

동벽 옹성문 012~013

서벽 014

친톨고이에서 나와 큰길과 만나는 곳 이곳에서 들어가면 가깝다

015 . .

비포장도로 시작 016

하르 부힌 성터로 들어가는 길 017

018 tourist camp

하르 부힌 성터 북벽 옹성 019 Har Bukhyn balgas( )

옹성에 있는 탑 020

옹성벽 동쪽과 성벽이 만나는 곳 021

하르 부힌 성터 022~066 Har Bukhyn balgas( )

우기호수 저녁밥 먹은 곳 067

체첼레크 호텔 068

체체레그 1 박

월 목 체첼레그 하라호린

9 27( ) (Tsetserleg) -

시 기상하여 불을 켰다 유팀장이 이불로 얼굴을 덮고 자기 때문에 미안한 생각 없이 불

5 .

을 켜고 기록을 하였다 이때 세수를 하여 다행이었다 아침. . 6시에 일어나 대원들은 물이 나오지 않아 세수를 못했다고 한다 호텔 식사는 아침부터 고기가 나오는데 좀 딱딱한 편이. 다 그래도 아침을 든든하게 먹을 수 있어 좋았다. .

체체를레그 정원이라는 뜻( )***********************************************************

(13)

아르항가이 아이막의 수도로 자연보호지역으로 지정된 볼간산이라 불리는 바위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아르항가이의 ‘아르’는 북쪽을 , ‘항가이’는 산림이나 산이 많고 물이 풍부 한 비옥한 토지를 뜻한다.

하라호린의 에르덴 조가 건립된 같은 해 1586년 볼간산 남쪽 기슭에 절이 세워졌다. 몽골에서 유명한 고승인 자야 게겐 들이 있던 절이다. 그 뒤 사원 수가 증가하여 1655년에는 후레 사원을( 중심으로 한 문전 거리 가 되었다) . 그것이 현재의 체첼레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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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분쯤 출발하였으나 차 기름을 넣느라 분이 되어서야 체첼레그를 떠난다 바로

8 20 40 .

서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니 높은 고개를 오른다 마침 박물관 예약 전화하느라 차가. 서 있는 동안 고개에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이깔나무가 이제 단풍이 들기 시작하여 예쁜. 색을 가진 데다 아주 기묘한 바위가 있어 한 번 구경할만하다.

체첼레그 고개 위의 이깔나무와 바위

고개를 넘어 25㎞만 가면 이흐 타미르라는 마을에 다다른다 고개도 길을 모두 닦았고. , 고개 넘어서부터는 아스팔트를 모두 깔았으나 아직 개통하지는 않았다 일부 구간 공사가. 덜 끝난 모양이다.

시 분 제일 먼저 간 곳이 타미르 강가에 당당하게 서 있는 타이하르바위

9 23 , (Taihar

이다 높이 의 거대한 바위가 기묘한 모양을 하고 서 있어 예부터 많은 전설을 Chuluu) . 26m

낳는 바위다 아침 햇빛을 받아 더욱 신성한 기운을 내뿜고 있다 왼쪽에 고대 문자가 있다. . 고 해서 찾아보려고 했으나 너무 많은 낙서 때문에 불가능했다.

타이하르(Taikhar)바위 - 체체를레그에서 북쪽으로 15 **********************

☼ ㎞

타이르강 주변에 있는 높이 26m 정도의 커다란 바위. 바위에는 관광객이 쓴 세계 각국의 문자 가 씌여 있다. 원래는 불교 관계 진언이 티베트어로 씌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관광객의 기념 비로 변해버렸다. 타이하르 바위근처에는 초원이 넓고 양이나 야크 무리가 유유히 풀을 뜯는 경 치가 보인다. 근처에 타이하르 관광캠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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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타이하르 바위 앞에서 답사단 일동 타미르강의 아름다운 가을 경치

이흐 타미르 큰 기운 큰 힘 에 다다르니( , ) 10 ,시 먼저 마을 회관 뒤에 있는 돌사람과 사슴 돌을 찍었다 머리가 없는 돌궐 돌사람이지만 몸통부분은 수염 잔 칼 같은 부분이 아주 분. , , 명하게 잘 남아있고 사슴돌도 제법 훌륭한 작품이다 안내할 사람 찾고 어제 펑크난 것 때, . , 우고 낮밥 시키고 하느라 시간이 걸려, 11시 12분에야 마을을 떠난다 원래는 모두 구경하. 고 체첼레그에서 낮밥을 먹기로 했는데 너무 늦어져 이곳에서 낮밥 먹고 답사를 계속하기, 로 하였다.

황금 의자 의 돌사람과 께렉수르

* Altan Sandal( )

마을을 떠나 서쪽으로 20분쯤 달리자 넓은 들판에 우뚝 솟은 황금(Atan)의자(sandal)산이 눈앞에 들어온다 성스러운 황금의자산 타미르강 분지 같이 산이 둘려 쌓인 평원 아주 명. , , , 당자리다 기사가 먼저 안내한 곳은 돌사람 목이 떨어져 있는 것을 옆에서 세우고 사진을. , 찍었다 목이 떨어진 돌사람은 잘 조각하고 크기도 큰 반면 평지에 서 있는 작은 사람은. , 돌의 재질도 그렇고 생김새도 그저 흉내만 낸 정도이다.

황금의자산을 올라갔다 날씨도 좋고 강 강가 나무 겔 말 소 같은 것들이 어울린 절경. , , , , 이다 모두 마치 소풍 온 기분으로 주변을 돌아본다 내가 이 산을 오르기로 마음 먹은 것. .

마을 회관 뒤의 사슴돌 마을에 가져온 돌사람

(15)

은 여기서 바로 아래 내려다보이는 께렉수르를 찍기 위해서이다 완전히 손바닥 위에 놓고. 내려다보이는 것처럼 완연한 모양새를 보여준다 조감도를 보듯 내려다보는 께렉수르는 작. 은 한 개 빼놓고는 모두 네모꼴이라는 것이다 한 변이. 100m가 넘는 것도 있고 작은 것들 도 여러 개 함께 있어 청동기시대 이 지역에 상당한 세력집단이 거주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동안 둥그런 께렉수르만 찍어 네모난 께렉수르를 찍고 싶었는데 이 지역에는. 대부분이 네모난 것이라 원을 풀었다.

대형 청동시 시대 께렉수르와 제사터 넓은 들판에 설치된 청동기 시대의 께렉수르들

알탄 산달 평원에 남은 돌궐시대의 돌사람

이흐타미르에 돌아오니 이미 1시 12분이다 기사식당에서 간단히 낮밥을 먹고 박물관에. , 전화하러 우체국까지 갔으나 실패했다 이 지역은 스카이텔이 안되고 모비콤만 되는데 우리. 는 모두 스카이텔 전화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2시 6분에야 출발 북쪽으로 향해 초원길을 달린다, . 2시 33 ,분 처음 도착한 곳은 사 슴돌과 께렉수르가 있는 언덕이다 여기가 호디긴 톨고이 우물 언덕 이라고 한다 언덕 위에. ( ) . 자리 잡은 께렉수르도 멋있지만 누어있는 사슴돌은 정말 명품이다. 4000년을 서있다 피곤 해 누어있는 사슴돌은 아직도 그 아름다움을 전혀 잃지 않고 있다. 250×40×24㎝

이곳은 안내자가 안내할 계획에 없는 곳이라 뜻밖의 수확이었다 무덤 하나는 도굴을 하. 고 그대로 버려두어 보기가 안 좋다.

(16)

사슴돌

* Shivert

다시 고개를 넘어 얼마 안 가니 쉬베트가 나온다 아주 잘 생긴 사슴돌이 동강이 나있다. . 거기서 산 쪽을 바라보니 산비탈 평평한 곳에 께렉수르가 자리 잡고 그 앞에 다시 제대로, 서 있는 사슴돌이 있다 산허리 들판에 곳곳에 최고의 청동기 예술품이 지천으로 널려 있으. 니 그야말로 야외박물관이다. 2m 10㎝ 키 큰 목동과의 한 때도 즐거운 추억이었다 강가로. 나오는 도중 한 변 길이가 150m나 되는 께렉수르를 측량하였다.

쉬베트 사슴돌(1) 쉬베트 사슴돌 (2)

(17)

몽골 목동 와 글쓴이 2.1m( ) 1.73m( )

고대 무덤

* Hudagiyn tolgoy

쉬베트에서 강가로 나오니 크고 작은 께렉수르가 마치 공동묘지처럼 널려 있다 주로 강 쪽. 을 향해 경치 좋은 산비탈이나 언덕에 있다 특히 산 높은 곳까지 무덤 쓰듯 다닥다닥 작은. 께렉수르를 만들어 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거대한 께렉수르만 보다가 작은 것들이 모여 있. 는 것을 보니 께렉수르가 무덤이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마침. 5개의 사슴돌이 어지 럽게 깨지고 넘어지고 한 곳이 있어 촬영하였다 잘 모여 있을 때는 참 장관이었겠구나 하. 는 생각이 드는데 완전 아수라장이다 여기저기서 주어다 모아놓았는지도 모른다, . .

버려진 청동기 사슴돌 사슴돌 사이로 산꼭대기에 보이는 께렉수르

산꼭대기 바위산 아래 자리 잡은 작은 께렉수르들

(18)

고구려와 같은 시기인 제 돌궐 시기의 보가트 비석

* 1

시간은 이미 5 ,시 마음이 바쁘다 이 지역에서 가중 중요한 볼거리인 보가트 비석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체첼레그에 달려오니. 5시 40 ,분 안내인과 친분이 있는 직원이 기 다려 주어 고구려 시대 돌궐 4대 카간의 비석을 볼 수 있었다 아직도 소그드 문자가 선명. 하다 이 비석은 돌궐사에서는 광개토태왕비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많이 부서졌지만 이 비. . 석의 존재는 돌궐사 복원에 절대적인 기준이 될 것이다 아니 제 돌궐시대 유일한 비석이기. 1 도 하다.

아쉬운 것은 이 비석을 가져온 원래 자리를 지나치면서 다녀오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다. 녀온 이흐 타미르 허흐 노르( Khur Nuur) 황금의자(Altan Sandar)에서 서쪽에 있는 산 정 상 호수 가에 있다고 한다 다음으로 미룬다. .

아르항가이 아이막 박물관 입장료( 2500, 외부 사진 2000, 내부 사진 5000, 09시~18시) **

자야인 게겐 사원(Zayain Gegenii Süm)으로 1586년 세워졌다. 1679년에는 1000명이 넘는 스님 이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1937년 종교를 부정하는 사회주의 좌익사상의 탄압을 받아 대부분 사원은 부서지고 스님들은 쫓겨났다. 그 뒤 1967년 파괴를 면한 사원이 아이막 박물관이 되어 현 재에 이르렀다. 문을 들어서면 정원에 거북좌대에 서있는 보고드비문이 있다.

내부에는 몽골 풍속문화에 관한 전시품 석기시대부터 혁명기까지 이나 귀금속제품( ) , 수공예품 따위가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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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시대 보고드(Bugud, Bugat) 비석 ***********************************************

제 돌궐1 4대 타스발가한(他鉢可汗, 572~581)을 위해 지었다고 보이는 부구트(Bugut)유적에서 는 돌비석, 기와 이은 건물, 발발이 확인되었는데, 돌사람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유적은 가장 바깥쪽에 아주 낮은 긴네모꼴 흙담(59×30m) 이 있고 그 안에 먼저 낮게 되었다 다시 높게 만든 긴네모꼴 기단(36×22m)이 있다. 흙담 동남쪽에 해당되는 가에 잘린 곳이 있는데, 이곳이 입구였던 것으로 보인다. 기단 중간에서 약간 서쪽으로 한 변의 길이가 7.5m쯤 되는 바른 네모꼴 돌무지가 있다. 구라슈토르누이는 이 아래 화장한 피장자의 유해가 있었다고 추측했으나 중심부분은 도굴로 심하게 파괴되어 확인할 수는 없다.

돌무지 동쪽에는 나무기둥이 8개 발견되었는데 발굴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기둥이 본래 몇 개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평기와가 제법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꽤 큰 건물이었다고 생각한다. 1956년 처음으로 조사한 몽골의 도르지스렌은 이 건물은 벽이 없이 지붕 만 있는 정자였다고 생각하고, 82년에 다시 조사한 보이토프(Voitov)는 정자에서 동쪽으로 지붕 이 이 있는 복도가 이어져 있었다고 생각하였다.

현재 체체레겔 박물관에 소장된 거북받침 돌비석은 위 부분에 이리의 배 아래 벌거벗은 어린 아이가 돋을새김으로 그려져 있는데, 한문 사료에 전해진 돌궐의 선조가 이리였다는 전설과 관련 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돌비석 정면과 두 측면에는 소그드문이 새겨져 있어 러시아 연구자들ㄹ 이 해독하여 발표하였고, 일본에서도 새로운 해독을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은 모두 불교적 색체 가 강하다. 뒷면에는 브라후미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닳아 없어져 전혀 읽을 수가 없다.(몽일조 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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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제 돌궐 시대 보고드 비석1

소그도 문자로 된 제 돌궐 시대의 비문1

시 분 박물관을 떠나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하라호린 으로 달린다 빨갛게

6 20 (117 )㎞ .

지는 해를 등에 지고 달리는데 앞에 붉은 달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석양 노을과 관계가 있. 는 것인지 모르지만 달이 붉은 색으로 떠오르는 것은 참 특이한 현상이었다.

시 분 첸겔에 도착해 물어보았지만 돌사람이 없다고 한다

6 53 .

시 분 호톤트에 도착하니 이미 밤이 늦었다 지나가는 아이에게 박물관을 물어보니

8 30 .

길 건너에 있다고 한다 건너에 가서 한 집의 문을 두드렸으나 열리지 않는다 이미 밤이. . 늦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 기사는 이리 저리 다니더니 드디어 찾아냈다 박물관 앞에는 나. . 무로 된 집이 있다는 에르덴바타르 박사의 힌트가 주효했던 것이다 기사들이 헤드라이트로. 비쳐주어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시 분 어제보다는 제법 일찍 목적지에 다다랐다 지난 여름에 왔던 관광캠프라 그래

9 40 , .

도 낮이 익다 준비해둔 밥을 먹고 한 방에 자게 된 한규철 교수와 얘기를 나눈 뒤. 12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하라호린 1 박

월 금 하라호린 허셔차이담 울란바타르

9 28( ) - -

시 캠프 직원이 우리 난로에 불을 지피러 왔을 때 일어났다 그러나 시 반 식사시간이

5 . 6

라 기록을 미쳐 다 하지 못하고 떠날 준비를 하였다.

오전 일정 데메엔 탁타 출루 돌 의 사슴돌과 께렉수르

* (1) : (Demeen, ) (Chuluu, )

(20)

예정시간 7시보다 늦게 7시 40분 출발하였다 원래는 이곳보다 더 먼 곳을 기획했지만. 시간이 모자라 가까운 곳을 한 군데 들렸다 가기로 했다 마침 지니와 기사기 이곳을 안다. 고 해서 다행이다 하라호린에서 남쪽 고개를 넘어 오르혼강을 따라 얼마 안가. (7, 8 )㎞ 있 다 처음 강을 건너려던 차가 바퀴가 빠지려고 하자 다시 되돌아 나와 좀 더 상류 여울로. 올라가 건넌다 비가 많이 올 때는 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

강을 건너자마자 바로 께렉수르가 나오고 첫 께렉수르를 지나자 잘 생긴 사슴돌이 하나 나온다 이곳은 향해 산이 병풍처럼 둘려 쌓여 있고 앞에는 오르혼강이 흐르고 있으며 포. , , 근한 품 같은 넓은 초원이 있어 명당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지세와 께렉수르를. 찍기 위해 기사에게 산 위를 올라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거의 정상까지 실어다 주어 명당 파노라마를 바라볼 수 있었다 산꼭대기에 샤먼나무가 한 구루 있고 능선에 꾸르간이 몇. , 기 있다 바람도 불지 않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늦가을 아침을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는 것. 은 천상의 기분이다.

계속 남아있고 싶었으나 오늘도 갈 길이 바쁘다 시내로 들어와 외국인이 가장 많이 오는. 대 지역 가운데 하나라는 하라호린 에르덴조 절로 갔다

3 .

사람 꼴을 한 해가 인상적인 사슴돌 산위에서 오르혼강을 내려다 보는 답사단

오전 일정 에르덴죠 사원

* (2)

시 반쯤 에르덴조 사원에 다다라 분간 사원을 둘러보았다 스님들이 아직 출근을 하

9 30 .

지 않아 경을 읽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관광철이 지나지나서인지 한산하다 이곳은 아직도, . 관광지로서는 유명하지만 불교가 생활화 되었다는 몽골에서 그 실질적인 임무를 제대로 하 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10 ,시 에르덴조사원 출발.

에르덴조 사원

* *********************************************************************

올란바타르에서 360km에 위치. 아브타이샌 한 왕이름 에 의해 세워진 에르덴조 사원은 몽골( ) 옛 수도 하르호린의 폐허 위에 1585년에 세워진 몽골 최초의 불교사원이다. 1944년부터 보호지역 으로 지정.

에르덴조는 108개의 불탑으로 성벽과 같은 벽을 이루고 있다. 이후 하르호린과 같이 이 사원 은 만주와 스탈린 사회주의 침략에 붕괴되어 손실을 많이 입게 된다. 1965년까지 폐쇄되어 있다 가 그 이후 박물관으로 다시 개장하여 운영하여오다가 1990년에 공산주의가 무너진 후 종교의 자 유가 회복되었고 사원은 점차 관광지라는 또 다른 모습으로 활기를 띄게 되었다.

(21)

오전 일정 (3) : 허셔 차이담 제 돌궐을 세운 퀼테긴 빌게카간의 비석 무덤 발굴지 ( 2 , , )

시 분 허셔 차이담 도착하였다 허셔 차이담으로 가는 아스팔트길은 터키 정

10 30 , . 45㎞

부에서 파견한 TIKA에서 비용을 대 금년 여름 7월 20일에 새로 개통한 길이다 길이 곧고. 편편해 몽골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이다.

허셔 차이담에 도착해 보니 지난 여름에 비해 공사가 많이 진척되어 박물관도 제법 형태 를 갖추었다 그런데 공사하는 사람들만 있고 열쇠를 가진 책임자가 친척집에 가고 없다고. 한다 지니가 친척집으로 책임자를 찾으러 가는 사이에 오토바이를 탄 책임자가 왔다 현재. . 공사중이라 보기 힘들다는 것을 설득하여 박물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지난 여름에. 는 들판에 서 있던 퀼테긴의 비석도 어느 사이 박물관 안으로 옮겨져 빌게 카한의 비석과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퀼테긴 기념유적 빌게카간 기념 유적

* Hoshoo Tsaydam (684~731) , (683~734) **********

쿨테긴의 유적은 돌궐 때 유명한 장군이고 훌륭한 대신인 쿨테긴의 비석에 있는 곳인데, 밖에 해자가 파진 67×27m 성벽의 한 부분이다. 비석은 거북 받침대 위에 세웠다. 쿨테긴과 부인의 사 당과 석상은 유적 한 가운데서 발견되었다. 역사가와 언어학자들은 룬문자로 기록된 비문과 거북 받침대에 조각에 써진 글을 해석해 냈는데, 8세기 초 설립된 돌궐제국의 빛나는 역사와 조국을 통일하고, 영토를 넓히고, 가난한 사람들을 잘살게 하고, 고아들이 큰 가족을 이룩하도록 도운 쿨테긴의 영웅적 죽음을 적고 있다. 돌궐 궁정의 대신들은 조각한 많은 입상과 좌상들이 쿨테긴 의 석상 주변에서 발견되었다. 이 유적은 아르항가이 아이막, 햐샤트 숨에 있고, 732년에 만들어 진 것이다. 이 유적에서 1㎞ 떨어진 곳에 그의 형제인 빌게카간의 비석이 있다.

돌궐 비석 가운데 유일하게 고구려 가 언급된 비석

* (Bük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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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자의 호의 덕분에 덮어둔 커버를 벗기고 자세하게 비문을 촬영할 수가 있었다 아울. 러 옆방에 가져다 놓은 빌게의 무덤에서 출토된 석상들도 마음대로 보고 사진을 찍을 수 있 었다.

박물관을 보고나와 빌게카간과 퀼테긴의 비석이 있던 원 무덤 터를 가서 보았다 본뜬 비. 석들이 서 있고 일부 제사 터와 유물들이 현장에 남아있으나 썰렁한 분위기다 현재 담을, . 쌓는 공사기 진행 중에 있다.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돌궐에 대한 관심이 없었는데 최근 방영되고 있는 대조영에서, 제 돌궐의 묵철과 아들 빌게 나중에 카한이 된다 와 퀼테긴 돈유쿡 같은 인물이 등장하고2 , ( ) , 있어 점차 한국사와 직간접으로 영향이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고 있다 빌게카한 퀼테긴 돈. , , 유쿡의 비석은 고구려사에서 마치 광개토태왕비와 중원고구려비가 잊혀진 역사를 되살려주 듯 기록이 부족한 돌궐사를 보강해주는데 결정적인, 1차 자료를 제공해 준다 현재 몽골에. 서도 대조영이 방영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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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안으로 들여오는 작업 중 - 퀼테긴ㆍ빌게카한 비석 빌게 무덤의 돌사람

빌게카한 유적에 남은 제사터 제사터 주변의 건물 지붕 기와

시 분 허셔 차이담 출발 12 00 :

하라호린 출발 울란바타르로 ,

시 분 하라호린에 도착하여 충전을 부탁한 배터리를 찾아서 바로 울란바타르로 출 12 30 ,

발하였다. 1시간쯤 지나 지난 여름 낮밥을 먹었던 바얀고비를 지나 라샨트라는 마을 앞 기 사식당에서 낮밥을 먹었다 도시락으로 싸가지고 온 만두는 저녁에 먹기로 하고 여기서 양. , 고기와 작은 물만두가 들어있는 현지식으로 때웠다 해지기 전에 더 볼 것이 있어 서둘렀지. 만 이곳에서 차에 기름을 넣기 때문에 시간이 걸려 2시 반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시 분 잘 닦인 아스팔트를 달리던 차가 대로를 벗어나 산길로 들어선다 여기가 바로

2 55 .

에르덴산트(Erdensant)라는 마을인데 우리 기사가 “지름길을 안다 며 걱정하지 말라고 한.”

다 작년처럼 일반 차들이 다니는 길로 가지 않고 산길로 들어선 것은 중간에 옹고트 같은. 유적들이 제법 있기 때문이다 포장길을 벗어나자마자 기사는 차를 세우고 산길을 달릴 준. 비를 한다 준비란 바로 뒷좌석 밑에 감춰두었던 장총. 2자루를 꺼내서 운전석 옆에 비치하 는 것이었다. “도중에 늑대를 잡을 수 있다 는 것이 그 이유다 차는 달리기 시작하고 나.” . , 는 산속에 있는 모든 동물들이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도록 마음의 텔레파시를 보냈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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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행사 기간 동안 산목숨을 죽이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 동안 단 한 대의 차도 만나지 않는 산길을 요리조리 잘도 달린다 다행히 많이 나

1 .

타나던 동물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아스팔트를 달리듯 빠른 속도로 차를 모는 운. 전수는 눈을 번득이며 주변을 살핀다 다행히 하루에. 12시간씩 운전을 해도 조는 것을 보지 못했다.

시 분 온도르쉬레에트 에 다다르자 바로 톨강 이 나타난다 15 55 , (Ondorshireet) (Tuul gol) . 울란바타르의 헨티산맥(Henteyn nuruu)에서 발원하는 이 톨강은 울란바타르를 지나면서 몽 골 수도의 젖줄이 되고 이곳과 론, (Lun)을 지나 오르혼 세렝게강과 합류하여 결국 바이칼호- 수로 들어가는 중요한 강이다 사막지역이라 흐르는 물은 많지 않지만 상당히 넓은 강가 벌. 판을 형성하고 있다.

넓은 평야를 이루면서 흐르는 톨강

도중에 강을 내려다보는 곳에서 잠간 휴식을 취하고 얼마 안가, 16시 40분 톨강을 건너 는 다리를 지나니 5분도 안가 길가 좌우로 거대한 께렉수르들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갈 길. 이 바쁘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간단히 조사를 마쳤지만 해가 서산에 가까워 져 마음. 이 바쁘다. 이곳은 원래 예정에 없던 것인데 지도에 나타난 우얀긴 우조르(Uyangyn 유적으로 보인다 이 주변에는 물어볼 사람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지도에 의존하는

Uzuur) .

길 밖에 없다 처음 께렉수르를 보았을 때 감탄을 자아냈던 대원들이 이제는 작은 운동장만. 한 께렉수를 보아도 “또 께렉수르야?”할 정도로 이번 답사에는 수많은 께렉수르를 만난다. 한규철 회장이 gps를 들고 오른쪽에 있는 께렉수르를 측량하였다 산 아래 있는 께렉수르는. 만 찍는 선에서 만족해야 했다 시 분 서둘러 작업을 마치고 다시 산길을 달리

waypoint . 5 10

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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께렉수르 언저리에는 수많은 제사터들이 몰려 있어 장관을 이룬다.

시 분 또 께렉수르가 보이는 것이 아마 모린 톨고이를 지나고 있는 모양이다 그냥

17 53 , .

지나쳤다 아직 옹고트. (Ongot)유적이 더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험난한 길을 택해 산길. 로 들어선 것은 에르덴바타르 박사와 얘를 나눌 때 이 지역 유적을 소개해 주었기 때문이 다 험난해도 새로운 유적을 볼 수 있다는 추천 때문에 아주 새로운 답사길을 가게 되었다. . 모린 톨고이를 지나면서 우리는 다시 톨강 가 넓은 평원을 달리게 되었다.

이번 함께 간 3대의 차 가운데 우리 차 운전수는 가장 거칠게 달린다 어떤 차도 자기 앞. 에 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험한 곳이라고 하더라도 뒤에 탄 손님을 배려하지 않는다 그래, . 도 나는 이 운전수가 좋았다 바로 누구보다 이 지역 길을 잘 알기 때문이다 몽골 초원에. . 서는 몇 시간을 가도 길을 물어볼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길눈이 밝은 운전수가 최고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곳은 일반 차들이 다니는 곳이 아니고 지역 사람들만 이용. 하는 도로다 함께 동승한 유팀장이. “한국 사람으로는 아마 우리가 맨 먼저 지나가는 사람 들일 것이다 고 평가할 정도이다 그런데 떠나기 전부터 우리 기사 감보르트는 그 길을 안.” . 다고 했다 물론 께렉수르나 사슴돌이 있는 곳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을 보러 다. . 니는 손님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옹고트 지역에 오니 가끔 산 밑과 강가에 유목민 겔이 보인다 기사는 무조건 산 밑에 있. 는 겔을 향해 달린다 뭐라고 물어보니 한 여인네가 강 쪽을 가리킨다 바로 아래인 것 같. . 은데 나중에 gps에서 거리를 재보니 4.4㎞이다. 4㎞ 밖 초원에 있는 방향만 가리켜주었는 데도 신기하게 운전수는 유적 앞에 우리를 정확하게 데려다 주었다.

이 유적은 주변의 돌사람과 발발 돌짐승들은 모아 놓은 모둠, (綜合)유적이었다.

The Ongot Monument Ensemble

The mnument ensemble was constructed by the Tureg tribes during the Ⅵ Ⅷ~ century AD for the noblemen of the tribe

Monunument consists of more than 30 man like figure, lion and sheep figure, and about 550 standing 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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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고트 종합유적

종합유적은 6~8세기 돌궐족들이 자기 종족의 귀족들을 위해 세웠다. 유적은 30개 이상의 사람 꼴 (석 상) , 사자ㆍ양 (석 상) , 그리고 550개쯤 되는 발발 선돌 로 구성되어 있다( ) .

생각보다 많은 유물들이 한군데 모아 철창을 세워 관리하고 있어 놀랐다 주로 돌궐 유적. 에서 가져온 돌사람과 돌사자 돌양 같은 것인데 이곳 석질이 단단하지 못해 완전한 것은, , 거의 없고 간신히 형태만 남은 것도 많다 상당히 큰 석곽도 있는데 이것은 청동기 때 것, . 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발발은. 550개 나 되 차로 달려도 한참 가야할 만큼 길게 남, 아있어 제법 규모를 갖춘 종합유적이다, .

지는 해를 바라보며 1000년 이상 초원을 지키고 있는 외로운 돌궐의 돌사람들과 짧은 시 간을 보냈다 해가 지고 나면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기 때문에 가까운 유목민 겔로 가서 저. 녁밥을 먹었다 눈치 빠른 우리 운전수와 지니는 우리가 유적을 촬영하는 동안 미리 가서. 라면을 끓여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바얀얼기 지역 카자흐인들은 대부분 겔에 중국산 태양전지를 설치해 텔레비전을 보고 전 등을 하나 켜는데 이곳에는 해가 지자 촛불을 켠다 외지 사람들 왔다고 주변 겔에서 모두, . 모여들어 겔이 가득 찼다 이 집 주인은 이곳 자연보호구역을 지키는 책임자라고 한다 지. . 금 울란바타르를 갔는데 어제 잡은 늑대를 팔러 갔다고 한다 늑대가 이 집 양을 두 마리, . 잡아먹었는데 주인이 기어이 그 늑대를 잡았다고 한다 늑대는 몽골에서 최고의 사냥감이, . 다 가죽은 물론 고기도 약으로 쓰이고 쓸개는 따로 비싼 값에 나간다고 한다 늑대 한 마. , . 리에 120달러 약( 11만원 쯤 가는데 보통 사람 한 달 월급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 운전수도) , . 늑대 잡는다고 총을 가지고 다니는 모양이다 돌아오는 길에 운전수가 늑대에 대해 하는 말. 을 지니가 이렇게 통역했다.

그리고 남자 늑대 계란 먹으면 남자 계란이 좋아진답니다

“ , .”

(26)

저녁밥 먹고 떠나려니 이미 7시 45 ,분 밝은 달이 온 누리를 비치고 있어 가을 정취를 북 돋아준다 옹고트에서. 2시간 반쯤 더 달려 울란바타르 엠파이어 호텔에 도착한 것은 밤 10 시 10분이다 예정했던. 9시보다 1시간 이상 더 걸렸다.

일간의 강행군에 지친 대원들에게 내일은 아침 시 식사시간이라고 이르고 각자 방으로

3 8

들어갔다 오랜만에 샤워하고 내일 떠나기 위해 짐 정리하고 나니 오늘도. , 12시가 다 되었 다.

주요 기록

시 분 캠프 출발 7 40 :

시 분 데메엔 출루 출발 9 14 :

시 분 에르덴조절 출발 10 0 :

시 분 허셔 차이담 도착 10 30 : (45 )㎞

시 분 허셔 차이담 출발 12 00 :

시 분 하라호린 도착 12 30 :

시 분 라샨트 식당 도착 13 40 :

시 분 라샨트 출발 14 30 :

시 분 에르덴산트 에서 포장도로 벗어나 산길로 들어섬 14 55 : (Erdensant)

시 분 온도르쉬레에트 통과

15 55 : (Ondorshireet) 시 분 톨강 다리

16 40 :

시 분 시 분 우얀긴 우조르 께렉수르 도착

16 45 ~ 17 8 : (Uyangyn Uzuur) 시 분 모린 톨고이 통과

17 53 : ?

시 분 옹고트 돌사람 유적지 18 40 : (Ongot)

시 분 몽골 겔에서 저녁밥 먹고 출발 19 45 :

시 분 사격장 통과 20 45 :

시 분 울란바타르 엠파이어호텔에 도착 22 10 :

GPS waypoint

001 : Gel Camp 지울 것 002 :

(27)

허셔 차이담 003 :

004 : Rashant 에르덴산트

005 : (Erdensant) 007 : Ondorshireet

톨강 다리 008 :

우얀긴 우조르

009~14 : (Uyangyn Uzuur)(?)

우얀긴 우조르 산 밑

015 : (Uyangyn Uzuur)(?) 께렉수르 모린 톨고이

016 : ( ?)

온고트 돌사람 전시장 017 : (Ongot)

사격장 018 :

울란바타르 엠파이어 호텔 019 :

울란바타르 Empire Hotel 4 박

월 토 귀국

9 29( )

시 일어나 기록을 하고 있는데 시에 양혜숙 선생이 와서 시간 동안 학술대회 뒤처리

6 7 1

를 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정된 논문을 거두어 번역해 책으로 내는 문제였다. .

오늘은 12시쯤 공항에 나가면 되기 때문에 그 안에 이곳 불교 사원을 대표하는 간단사와 박물관을 보기로 하였다 먼저 간 박물관에서. 2시간 동안 자세하게 보고 촬영하였다 특히. 이번 답사에서 본 돌궐 유적에서 출토된 많은 유물들이 이곳 국립 중앙박물관에 있기 때문 에 중점적으로 촬영하였다.

박물관에 전시된 13세기 몽골 지도 - 고구려가 몽골의 영토로 표시되어 있다.

(28)

빌게 카한 유적에서 나온 금관 퀼테긴의 머리 조각상

간단사는 모든 몽골인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지만 외국인들에게는 하나하나 찾아서 표 를 사도록 한다 아울러 불상은 물론 밖에서 법당 안만 찍어도 돈을 내야 한다 이러한 간. . 단사의 현황과 몽골 불교의 문제점에 대한 좋은 글이 있어 소개한다. [블로그 : 이산 (xtopaz)]

몽골문화답사(4) : 간단사에는 법당이 없다! 간단사를 통해 본 몽골불교의 과제들 -

몽골불교의 중심지라는 간단사를 자세히 둘러본 사람이라면 몇가지 특징적인 점들을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재가불자 평신도 들을 위한 법당공간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 간단사 내 각 법당의 구조는 스님들의 의식을 집전하기 위한 공간구조로, 재가불자들은 다만 간이로 마련된 벤치에 앉 아서 바라볼 수만 있을 뿐 법회에 참석한다거나 설법을 듣는다거나 하는 개념 자체가 공간배치에 반영되어 있지 않다.

둘째, 스님들은 독경을 티베트 경전을 가지고 티베트어로 독송한다. 벤치에 앉아 있는 재가 불자들은 당연히 티베트 어를 모르고 그저 들을 뿐이다. 몽골어로 된 경전이 있었고 티벳과는 다 른 몽골의 염불과 독송법이 있었음에도 사회주의 시절에 티베트어의 독송과 염불만만을 허락한 때문이다.

셋째, 간단사 정문 앞에 모여 있는 작은 절들은 대개 스님들이 재가불자들에게 점을 봐주는 점집들이다. 밀교권에서 치병이나 점성은 대중들을 교화하는 방편의 하나로 쓰이면서 우리의 기 복불교의 개념을 넘어서고 있으나, 현재의 몽골불교의 사원들은 다른 기능없이 사실상 점집 역할 로써만 살아가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넷째, 간단사 내에는 참배객들을 위한 화장실이나 쉴 수 있는 벤치, 물을 마실 수 있는 곳, 영어안내판, 쓰레기통 등 편의시설이 전혀 없다. 경내에서도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으며 상업용 차량 출입도 자유롭다. 관광지로써도 수행도량으로써도 경내 정비가 잘 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위와 같은 간단사의 문제들은 몽골불교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 다.

우선, 재가불자들에 대한 교육이나 대중법회 등은 승가에 대한 관리와 교육도 미비한 상황에

(29)

서 사실 요원한 일이다. 대중교육과 재가불자들의 조직화된 모습같은 한국불교의 현황은 몽골불 교계 인사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두번째로 몽골불교의 전통을 복원해야 함에도 티벳불교계가 미치는 몽골에 대한 영향력이 오 히려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전통복원을 위한 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티벳불교 단체들은 몽골불 교 자체를 진흥시키기보다 티벳불교를 전파하는데 더 투자한다.

세 번째로 볼 수 있는 것은 불교의 상업화 이전에 절을 찾아 점을 보는 재가신도들 모두가 불교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고, 점보는 것 이외에 불교의 다른 부분을 접해보지 못한다는게 문제이다. 재가신도들에 대한 제대로 된 불교이해교육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총본산에 대한 시설투자로만 말하자면 참배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말하기 이전 에 스님들의 숙소조차 없어 90년대 들어 종교의 자유를 획득한 이후 새로 출가를 한 스님들도 집 에서 출퇴근 할 수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간단사 불교미술대학 같은 경우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교실에서 숙식하며 빵으로 끼니를 넘기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기도 하다.

간단사를 나와 바로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봉고 차를 운영하는 몽골인 모기. (9998-0299) 씨는 한국에 가서 7년간 일하면서 단 한 번도 고국에 오지 않고 돈을 벌어 성공한 노동자 였다 지금 몰고 있는 차도 한국에 있을 때 성실하게 일했기 때문에 사장이 준 차를. 300만 원이라는 운임을 주고 드려와 영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말도 잘해 한나절이지만 편하. 게 시내구경도 하고 공항에도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울란바타르 (13:30) -OM301- 인천 (17:35)

일주일간의 몽골 체류지만, 2일간 중요한 학술회의를 무사히 마치고, 3일간의 답사도 기 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금년에 벌써 세 번째 몽골을 다녀오는데 중국을 들어갈 수 없. , 게 되니 몽골에 할 일이 많아진 모양이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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