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학습활동
<한국의 고전작가와 작품세계 6>
충암 김정과 유배문학
담당교수 : 하정승
충암 김정과 유배문학
• 유배지는 쓸쓸하다. 타의에 의해 고향과 가족, 삶의 터전을 떠나 갇힌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는 유배인(流配人)은 고통스럽다. 더구나 유배 지가, 너무나 아름답고 이국적이기까지 한 제주도라면, 유배 생활은 그 풍광만큼이나 더욱 쓸쓸하다. 그래서 유배지에서 창작된 시는 때로 는 독자를 울리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한다. 유 배시(流配詩), 유배문학(流配文學)이 갖는 최고의 미학적 매력은 바로 그 쓸쓸함과 처절함, 그리고 삶에 대한 간절함이다. 극형이 예상되는 중형의 죄수일수록 이 점은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우리 문학사에서 유배문학의 미적 특질을 보여주는 작품은 상당히 많이 있다. 고려시대
「정과정」을 필두로 머나먼 중국의 오지에서 죽어간 고려말 척약재 김 구용이 남긴 시, 조선조 가사문학의 대표작인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 서포 김만중의 소설, 조선후기 추사 김정희의 한시에 이르기까지 언뜻 떠오르는 작품만도 여럿이다. 이제 소개하고자 하는 김정(金淨)의 한 시 역시 한국 유배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충암 김정과 유배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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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1486-1521)은 호가 충암(冲庵)으로 조선조 중종 때 주로 활동했던 문인이다. 그가 우리 역사에서 이름을 남기 게 된 것은 1519년 발생한 기묘사화(己卯士禍) 때문이다.
그는 조광조와 더불어 사림을 대표하는 인물로 지목되어 충청도 금산(錦山)과 전라도 진도를 거쳐 제주도에 유배되 었다. 그가 제주도에 위리안치된 것은 1520년 여름이고, 사약을 받고 운명한 것이 그 다음해인 1521년 10월이었으 니 제주도 유배 생활은 대략 1년 남짓이다. 그는 이 기간에 제주에서 보고 겪은 상황과 지역의 풍속, 자연, 생활상 등 을 기록하여 「제주풍토록」이라고 이름하였는데, 16세기 제주 지역 연구의 좋은 자료가 된다. 김정은 유배기간 동안
「 제주풍토록」 외에도 틈만 나면 시를 썼다. 이 시기 시들은
그의 인생 최후의 작품들로 그가 얼마나 뛰어난 시적 재주
를 가진 시인이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충암 김정과 유배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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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작품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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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는 언제나 음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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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마을엔 종일토록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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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아는지 꽃은 절로 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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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달은 허공에 떠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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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고향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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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생을 외딴 섬에서 마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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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운수를 정해 놓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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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막혔다 울어본들 무엇하리요
충암 김정과 유배문학
• 海國恒陰翳 荒村盡日風
• 知春花自發 入夜月臨空
• 鄕思千山外 殘生絶島中
• 蒼天應有定 何用哭途窮
• 인용시는 1520년 3월 상순에 지은 것으로 세주(細註)에 부기되어 있 으니 김정이 서울에서 유배를 떠나 제주도로 가기 직전 진도에 머물렀 을 때의 작품이다. 하지만 섬의 풍광과 시인이 겪고 있는 상황은 제주 시절과 큰 차이가 없다고 판단된다. 시제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이 시 는 시인의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와 회한을 풀기 위해 쓴 시이다. 바닷 가 특유의 해풍과 소금기 등으로 인해 어촌은 언제나 음산하고 황량하 기 그지없다. 이는 시인이 머무르고 있던 곳의 상황을 묘사한 것이지 만, 동시에 시인 자신의 음울한 심적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주변의 풍광은 음산하고 쓸쓸하지만, 봄은 이 바닷가에도 예외 없이 찾아오고 꽃은 어김없이 피어나며, 밤이 되면 달은 여느 곳처럼 떠오른다. 여기도 사람이 사는 마을인 것이다.
충암 김정과 유배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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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흐드러지게 핀 유배지의 봄날 밤에 시인은 무슨 생각
을 하고 있었을까? 인용시의 5-6구를 보면, 처음에는 저 바
다 너머에 있는 고향의 가족들을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생각은 점차 자기의 처지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앞날의
운명으로 옮겨간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앞으로 살 날이
많이 남은 것 같지 않고, 멀리 떨어진 이 절해(絶海)의 고도
(孤島)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것 같다. 하지만 죽고 사는 것
은 하늘이 정해 놓은 운수인 것, “길이 막혔다 울어본들 무
엇”하겠는가? 참으로 쓸쓸하고 서럽다. 22살에 장원 급제
하여 환로에 오른 뒤, 34살의 젊은 나이에 형조판서 벼슬
을 했던 조선 최고의 촉망받던 엘리트 청년이 기묘사화의
덫에 걸려 봄날의 꽃처럼 덧없이 사라지게 될 운명에 처해
있다.
충암 김정과 유배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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