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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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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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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5학년도

목회학석사 학위논문

요한복음서의 Παρακλητο 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Paraclete in Fourth Gospel

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

신 학 과

최 태 수

(2)

요한복음서의 Παρακλητο 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Paraclete in Fourth Gospel

지도교수 노 재 관

이 논문을 목회학석사 학위(M. Div.)논문으로 제출함.

2005년 11월

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

신 학 과 최 태 수

최태수의 목회학석사 학위논문 인준함.

심사위원장 박 일 민 (인)

심 사 위 원 김 근 수 (인)

심 사 위 원 강 정 진 (인)

(3)

감사의 글

지극히 부족한 자를 불러서 오늘에 이르도록 사랑으로 함께 동행 하여 주시고, 앞 으로도 함께 하여주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영광 그리고 찬송을 드립니다. 짧지 않은 3년의 시간 속에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이었 음을 고백합니다.

많은 격려와 지도를 아끼지 않으셨던 노재관 교수님, 부모님과 같이 따뜻한 마음 을 가지고 위로하여 주시고 힘이 되어 주신 김의환 총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늘 뒤에서 기도해 주시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신 이철근 목사님, 이덕진 목사 님 그리고 성도님들의 기도와 사랑은 잊지 못 할 것입니다.

특별히 365일 변함없이 나를 이해하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랑하는 아내 이철숙 에게 고마운 마음을 드리고 싶고, 사랑하는 아들 사랑이와 같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 니다.

지난 3년의 시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너무도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지나온 시간 이 때로는 힘도 들었지만, 그 때마다 성령님의 위로하심은 견디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의 모든 행사는 내게는 모두 값진 교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길 원합니다. 교수님들의 순전한 가르침을 마음 에 깊이 새깁니다. 이 글을 빌어 오직 주님의 선한 뜻을 좇아 최선을 다 하는 주의 종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2 0 0 5 년 11 월 최 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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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Ⅰ. 서 론 ․․․․․․․․․․․․․․․․․․․․․․․․․․․․․․․․․․․․ 1

가. 연구 동기 및 목적․․․․․․․․․․․․․․․․․․․․․․․․․․․․․․․ 1 나. 연구 방법 및 범위․․․․․․․․․․․․․․․․․․․․․․․․․․․․․․․ 2

Ⅱ. Παρακλητο 의 어원(語原) 및 배경(背景) 고찰․․․․․․․․․․․․․․ 3

가. 어원(語原) 고찰․․․․․․․․․․․․․․․․․․․․․․․․․․․․․․․․ 3 1. 동사형 의미로서의 Παρακλητο ․․․․․․․․․․․․․․․․․․․․․․․ 5 2. 명사형 의미로서의 Παρακλητο ․․․․․․․․․․․․․․․․․․․․․․․ 5 3. 수동태형 의미로서의 Παρακλητο ․․․․․․․․․․․․․․․․․․․․․․ 7 4. 다른 의미로서 Παρακλητο ․․․․․․․․․․․․․․․․․․․․․․․․․ 8 나. 배경(背景) 고찰․․․․․․․․․․․․․․․․․ ․․․․․․․․․․․․․․․10 1. 영지주의․․․․․․․․․․․․․․․․․․․․․․․․․․․․․․․․․․․․10 2. 구약․․․․․․․․․․․․․․․․․․․․․․․․․․․․․․․․․․․․․․13 3. 유대교․․․․․․․․․․․․․․․․․․․․․․․․․․․․․․․․․․․․․16

Ⅲ. 요한복음에 나타난 Παρακλητο 에 대한 이해(理解)․․․․․․․․․․22

가. 역사적(歷史的) 배경․․․․․․․․․․․․․․․․․․․․․․․․․․․․․․ 22 1. 요한 교회의 내적(內的) 상황․․․․․․․․․․․․․․․․․․․․․․․․ 23 2. 요한 교회의 외적(外的) 상황․․․․․․․․․․․․․․․․․․․․․․․․․25 나. Παρακλητο 본문(Text) 분석(分析) 및 주해(註解)․․․․․․․․․․․․․․26 1. 본문 분석(分析) ․․․․․․․․․․․․․․․․․․․․․․․․․․․․․․․ 26 2. 본문 주해(註解)․․․․․․․․․․․․․․․․․․․․․․․․․․․․․․․․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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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Παρακλητο 의 인격(人格) 및 사역(使役)․․․․․․․․․․․․․․․․․55

가. 인격(人格)․․․․․․․․․․․․․․․․․․․․․․․․․․․․․․․․․․․ 55 1. 인격에 대한 논쟁․․․․․․․․․․․․․․․․․․․․․․․․․․․․․․․56 2. 예수의 제 2 자아․․․․․․․․․․․․․․․․․․․․․․․․․․․․․․․58 3. 진리의 성령․․․․․․․․․․․․․․․․․․․․․․․․․․․․․․․․․․60 나. 사역(使役)․․․․․․․․․․․․․․․․․․․․․․․․․․․․․․․․․․․61 1. 예수에 대한 사역․․․․․․․․․․․․․․․․․․․․․․․․․․․․․․․62 2. 변론(辯論) 사역 ․․․․․․․․․․․․․․․․․․․․․․․․․․․․․․․ 63 3. 선교(宣敎) 사역 ․․․․․․․․․․․․․․․․․․․․․․․․․․․․․․․ 64

Ⅴ. 결 론․․․․․․․․․․․․․․․․․․․․․․․․․․․․․․․․․․․․․․66

※ 참고문헌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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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 론

가. 연구 동기 및 목적

1885년 4월 5일 미국의 선교사들의 선교로 시작된 한국의 개신교(改新敎)는 이후 120 여년 동안 급속한 부흥(復興)과 성장(成長)을 해왔다. 이는 교회를 형성시키고, 성장하게 하는 성령(聖靈)의 강력한 사역으로 인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령 사역에 대한 왜곡(歪曲)은 신비주의(神秘主義)와 기복(奇福)적인 바람직하지 못한 경향으로 흘러 교회 와 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특히 ‘성령의 신성(神性)과 인격성(人 格性)’에 대한 오해로 인한 과도한 체험주의(體驗主義)와 은사주의(恩賜主義)가 나타났는 가 하면, 성령의 인격과 사역을 지나치게 감상적(感想的)이거나 주관적(主觀的)인 것에 치우쳐 성령의 내적(內的)인 역사를 등한시하거나 하나의 세력(勢力), 심지어는 영향력 (影響力)으로 조차 이해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1) 이와 같은 현실에서 성령에 대한 바른 지식(知識)과 이해(理解)가 요구된다.

요한복음서는 성령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불식(拂拭)시키고 성령에 관한 바른 지식과 이해를 새롭게 함으로 우리의 사고(思考)와 신앙(信仰)을 보다 깊고 원숙하고 바르게 만 들어 주는 책이다.2) 특별히 4개의 복음서중 요한복음서는 성령에 관심을 갖고, 성령을 강 조(强調)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락방에서 행한 ‘고별설교(告別說敎)’(요 14장-16 장)를 통하여 ‘보혜사 성령’(Παρακλητο )에 대한 놀라운 교훈을 발견하고자 한다.

본 연구를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아직도 교회에 만연(漫然)되고 있는 비인격적이 며, 건전치 못한 성령님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높임으로 Παρακλητο 는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대신하기 위하여 오신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의 영, 곧 예수님의 ‘다른 자아’임을 밝히고 그의 인격적인 사역을 강화시킴으로 신앙에 대한 확신과 영원토록 변치 않고 우 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인격적 임재(臨在)를 통해 교회 사역의 중요성을 상기 (想起)시키는데 있다.

1) 김근수, 「복음서이해」(서울: 나단출판사, 2002), pp. 202-203.

2) W. 바클레이, 「성령의 약속」, 서기산 역(서울: 기독교문사, 1982), p.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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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요한복음에 나타난 Παρακλητο 의 인격(人格)과 사역(使役)에 대한 성경적 인 이해(理解)를 통하여 신앙(信仰)을 재정비(再整備)하고 바람직한 Παρακλητο 에 대한 관심(觀心)과 바른 신앙을 고취(高趣)시키는데 목적(目的)을 두고자 한다.

나. 연구 방법 및 범위

본 논문은 먼저 Παρακλητο 의 인격(人格)과 사역(使役)을 고찰함에 있어 기본적으로 주석적(註釋的)인 방법에 의존(依存)하였다.

먼저 Παρακλητο 라는 독특한 명칭(名稱)의 어원(語原)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먼저 고 찰해 보고, Παρακλητο 의 개념이 될 만한 다양한 배경(背景)들을 고찰하고자 한다. 요 한복음서 저자의 Παρακλητο 에 대한 이해를 위해 역사적 배경을 검토해 본 후 본문(本 文) 분석(分析)과 본문(本文) 주해(註解)를 통하여 여러 학자들의 주석을 참고하여 성경 적 바른 이해를 고찰(考察)한 후 Παρακλητο 의 인격과 사역에 대해 주석적(註釋的)으로 연구하고자 한다.

연구의 범위는 주제의 특성상 ‘보혜사’(Παρακλητο )에 대하여 언급된 고별설교(告別說 敎)(요 14:16- 17; 14:26; 15:26-27; 16:7-15)와 요일 2:1을 주요 대상으로 국한(局限)하기 로 한다. 물론 본 연구의 주장을 풍부히 하기 위해 신약(新約)(구약(舊約)도 포함)의 다른 본문도 사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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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Παρακλητο 의 어원 및 배경 고찰

가. 어원(語源) 고찰

Παρακλητο 는 신약성경 중에서 요한 문헌에서만 사용되어진 독특한 용어로 “보혜 사”(요한복음서) “대언자(代言者)”(요한1서)로 불리며 성령의 오심과 관련이 있다. 오직 요한복음서에 4번, 요한 1서에 1번 나오고 있다.3) 요한복음에서는 고별설교4)에서 발견되 어지는 독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보혜사의 본질적인 의미는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우리는 보통 Παρακλητο 를 성령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Παρακλη το = το Πνευμα το Αγιον 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Παρακλητο 의 의미는 아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으며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매우 어렵고 난해한 용어이기 때 문이다. 또한 원어로도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번역상 문제점이 많이 있다. 어떤 학자는 헬라어의 파라칼레오(Παρακληω)동사에서 그 의미를 찾고, 어떤 학자는 그 가능성을 부정하는 사례도 있다. 헬라어 단어는 법정적인 의미로서 “변호자”라 는 분명한 의미를 가지며, 요한일서 2장 1절에서는 이러한 의미로 예수에게 적용되고 있 다. 요한복음에서 Παρακλητο 는 세상을 확신시키는 법정적인 사역을 행사하지만, 그것은 변호하는 Παρακλητο 보다는 기소하는 Παρακλητο 의 사역이다(요 16:8). 요한의 Παρακλ ητο 는 일차적으로 제자들을 변호하는 자라기보다는 그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교사라 3) 요한복음 14:16, 26; 15:26; 16:7, 요한일서 2:1에서 각 한 번씩 나온다.

① 요 14:16 - kajgw; ejrwthvsw to;n patevra kai; a[llon paravklhton dwvsei uJmi'n, i{na meq! uJmw'n eij" to;n aijw'na h\/,

② 요 14:26 - oJ de; paravklhto", to; Pneu'ma to; $Agion, o~ pevmyei oJ path;r ejn tw'/ ojnovmativ mou, ejkei'no"

uJma'"didavxei pavnta, kai; uJpomnhvsei uJma'" pavnta a~ ei\pon uJmi'n.

③ 요 15:26 - o{tan e[lqh/ oJ paravklhto", o~n ejgw; pevmyw uJmi'n para; tou' patrov", to; pneu'ma th'"

ajlhqeiva", o~ para; tou' patro;" ejkporeuvetai, ejkei'no" marturhvsei peri; ejmou':

④ 요 16:7 - ajll! ejgw; th;n ajlhvqeian levgw uJmi'n: sumfevrei uJmi'n i{na ejgw; ajpevlqw: eja;n ga;r mh; ajpevlqw, oJ paravklhto" oujk ejleuvsetai pro;" uJma'": eja;n de; poreuqw', pevmyw aujto;n pro;" uJma'".

⑤ 요일 2:1 - Tekniva mou, tau'ta gravfw uJmi'n, i{na mh; aJmavrthte. kai; ejavn ti" aJmavrth/, paravklhton e[comen pro;" to;n patevra, !Ihsou'n Cristo;n divkaion:

4) 고별설교는 위대한 지도자들이 그의 백성을 떠나게 될 때 하는 설교로써 예수께서 제자들을 떠 나기 전에 행하는 설교문, 즉 요 13-16장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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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점에서 언어적인 문제가 발견된다.5)

언어적인 해결은 히브리어 ‘멜리츠’(מליץ)에서 발견된다. 이 단어는 욥기 33장 23절에 서 ‘중보자’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멜리츠’라는 단어는 아니지만 중보자의 개념은 욥기 16 장 19절에서 ‘싸아드’(שׁהד)와 19장 25절에서 ‘변호자’란 의미로 발견된다. 이 두 구절에서 욥의 타르굼(תרגומ)6)은 외래적인 페라클레타(peracleta)를 사용한다. 히브리어 멜리츠는 쿰란 문헌에서 ‘지식의 해석자’ 또는 ‘교사’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다른 곳에서는 ‘중보자’

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분명히 멜리츠는 중보자와 교사의 개념을 결합시켰다. 타르굼에 서 외래어 페라클레타가 사용된 것을 보면, 전적으로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주후 1세기와 그 후에도 팔레스틴 유대교에서뿐만 아니라, 헬라 유대교에서도 광범위하게 사 용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7)

브라운(R. E. Brown)은 Παρακλητο 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8)

① ‘곁으로 부르다’란 기본적인 의미를 가진 Παρακλειν의 수동적인 형태로 ‘돕기 위해 곁으로 부름을 받은자’란 뜻에서 ‘변호자’(advocator).

② Παρακλειν의 능동적인 의미인 ‘중재, 탄원, 호소하다’란 의미가 반영된 ‘중보자’

(intercessor), ‘중재자’(mediater), ‘대언자’(spokesman).

③ Παρακλειν의 능동적인 의미인 ‘위로하다’란 의미가 반영된 ‘위로자’(comforter).

④ Παρακλησι 와 관련하여 사도들의 증언 가운데 나타난 ‘권고’(exhortation)와 ‘격려’

(encouragement)등 다양한 의미가 들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버어지(G. M. Burge)는 이 용어의 독특성을 유지하고 다양한 기능을 상실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어떠한 번역도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며 아스톤(J. Ashton)은 영어의

‘paraclete’가 파라클레토스에 대한 독특하고 합리적인 명칭이라고 주장한다.9) 여러 학자

5) G. E. 래드, 「신약신학」, 신성종. 이한수 공역(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p. 387.

6) תרגומ 는 바벨론 포로 후, 유대인은 아람어를 쓰게 되었다. 그 때문에 회당에서는 히브리어 성서가 낭독되는 때, 해석자의 필요가 생겼다(느 8:8 비교). 회당에서는 낭독자가 성서의 한 구 절을 읽을때, ‘통역자’(מתרגמן)가 민중의 용어인 아람어로 역했다. 이 통역은 자연히 의역으로 되기 쉬웠다. 처음에는 구술이었는데, 후에는 성문으로 되었다. 그것이 이른바“타르굼”이고, 성 서의 본문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7) Ibid., p. 387.

8) R. E. Brown, "The Paraclete in the Fourth Gospel", NTS 13(1968), pp. 116-19

9) J. Ashton, "Paraclete", Anchor Bible Dictionary, vol . 5(New York: Doubleday, 1992), p.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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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파라클레토스의 의미를 한 마디로 설명하기에는 아주 복잡하 고 다양해서 단지 사전적인 조사나 문헌적 연구로는 그 의미를 결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고 하겠다. 그래서 먼저 본 장에서는 Παρακλητο 에 대한 어원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 다.

1. 동사형 의미로서의 Παρακλητο

Παρακλητο 의 동사형인 Παρακαλεω는 신약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① 누구의 편으로 부르다. 소집하다. 초청하다(눅 8:41; 행 8:31; 9:38; 16:9, 15).

② 누구의 편으로 소환하다. 도움을 청하다(마 26:53; 고후 12:8).

③ 격려하다. 청원하다(행 14:22; 16:40; 20:1; 롬 12:18; 고전 4:16; 고후 10:1).

④ 호소하다. 탄원하다(마 8:5; 막 1:40; 눅 7:4).

⑤ 위로하다(마 5:4; 눅 16:25; 고후 1:4, 6, 7). 등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동사형이 잘 쓰이지 않고 있다. 한글 개역판의 ‘보혜사’, ‘대언자’ 혹은 공동번역의 ‘협조 자’, ‘변호해 주시는 분’으로 번역되고 있는데 번역된 부분들이 Πρακαλεω의 다양한 의미 들에 비춰 볼 때 단어의 한 의미만을 나타내는 것들이므로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2. 명사형 의미로서의 Παρακλητο

Παρακαλειν의 명사형의 의미로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중재하다’, ‘탄원하다’, ‘호 소하다’란 의미가 반영된 ‘중보자’(intercessor), ‘중재자’(mediator), ‘대언자’(spokesman)이 고, 또 하나는 ‘위로하다’란 의미가 반영된 ‘위로자’(comforter)가 있다.

1) 중재, 탄원, 호소를 뜻하는 의미

중재, 탄원, 호소의 의미는 후대 유대교 랍비들에 의해 법정적 용어에서 종교적 어휘로 차용되었다. Παρακλητο 를 פרקליט나 פרקליטא로 음역하여 사용하는 랍비들은 일반적 으로 συνηρορο (상담하다, 옹호하다: 아람어 표기로 סנינור)와 연결된 ‘변호자’ (Ad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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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의 의미로 받아들여 항상 ‘하나님 앞에서의 변호자’를 가리키는 종교적 어휘로 사용 하였다.10) 이러한 파라클레토스의 ‘중재자’ 개념은 욥기의 타르굼 에서도 나타난다.11) 신약성서에서도 이러한 의미는 요한1서 2장 1절에서 나타난다.12) 본 구절에서는 예수 님께서는 하나님과 함께 계시면서 죄에 빠진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중보하시는 분으로 나 타난다. 실제로 요한복음 17장의 ‘대제사장의 기도’ 중에 자신의 제자들(요 17:9-19)과 그 들의 복음 전파로 믿게 된 자들(17, 20 이하)을 위한 기도 부분은 대제사장으로서 그리스 도인들을 위해 대변하는 ‘중재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요한 복음서의 Παρακλητο 를 ‘중재자’나 ‘대변인’이라는 의미로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 냐하면, 요한복음서의 Παρακλητο 는 예수님의 기능을 감당하지만 예수님이 아니며, 하 나님과 있지 않고 제자들 안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제자들을 위해 대신 간구하고 변호 하는 중재 역할을 찾아 볼 수 없고, 오히려 부재(不在)인 예수님을 위해 말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13) 요한복음서에서 Παρακλητο 는 하늘에 계시는 예수님이 아니고, 지상 에서 제자들과 함께 활동하고 예수님의 지상사역을 계속 이행하는 ‘성령’으로 표현하고 있다. Παρακλητο 는 그리스도인들을 변호하기 위한 중재자나 대변인이 아니라 제자 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위해 진리와 죄의 심판에 대해 말씀하시는 분인 것이다.14)

2) ‘위로하다’를 뜻하는 의미

다비스(J. G. Davies)는 70인 역본에 나타난 용례를 근거하여 ‘위로자’(慰勞者)의 개념 이 가장 타당한 일차적 의미라고 주장하였다.15) 그는 동사 Παρακλειν이 70인 역본에

10) J. Behm, "Παρακλητο ",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vol. 5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3), pp. 801-802.

11) Ibid.

12) 요일 2:1 - “Tekniva mou, tau'ta gravfw uJmi'n, i{na mh; aJmavrthte. kai; ejavn ti" aJmavrth/, paravklhton e[comen pro;" to;n patevra, !Ihsou'n Cristo;n divkaion:”

(참조 :표준 새번역 -나의 자녀 여러분,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씁니다. 누가 죄를 지을지라도 아버지 앞에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 우리에게 계시는데,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3) 요 14:26; 15:26 14) 요 16:8-11.

15) J. G. Davies, “The Primary Meaning of Paracletos”, JTS 4(1953), pp. 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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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회 사용되었는데, 78회 중에서 61번은 히브리어 “נהט”(위안)을 어근으로 하는 뜻을 가 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신약성경과 초대교부들의 글에서도 ‘위로하다’의 의미로 사용되 었던 것이 사실이다.16) 그러나 요한복음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고, Παρακλητο 가 나오 는 본문들에서 부분적으로나 간접적으로는 인정되지만, Παρακλητο 가 제자들을 위로한 다는 구체적 또는 간접적인 기능에 대한 표현은 없다.17) 그러므로 ‘위로’라는 번역은 Παρ ακλητο 의 간접적이고 부분적인 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포괄적인 의미로는 부적합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칫 Παρακλητο 의 기능을 불투명하게 할 수 있으므 로 적절하게 해석되었다고 할 수 없으나 이런 해석을 통해 그 기능의 단면을 볼 수 있 다.

3. 수동태형 의미로서의 Παρακλητο

Παρακλητο 는 언어학적으로 볼 때 Παρακλειν이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동사적 형용사 로서 수동태형의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어떤 행위를 주체적으로 하는 자가 아니라 어떤 주관자에 의하여 수동적으로 행위를 하는 인물을 지칭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도움을 주 기 위해서 옆으로 불리어진 자’ 또는 ‘불리어져서 옆에 있는 자’라는 뜻을 일차적으로 나 타낸다.18) 이 의미가 발전하여 ‘변호사’와 같은 전문적인 ‘조언자(助言者)’는 아니라 하더 라도 ‘법정에서 도움을 주는 자’ 곧 상담자와 같은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

라틴 교부들이 Παρακλητο 를 advocatus로 번역하여 사용했던 것은 바로 이런 뜻을 잘 살린 하나의 실례라고 할 수 있다. 모리스(L. Morris)도 이러한 쓰임이 바나바의 편지 에서 발견되며, 이 용어는 법정에서 방어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법정용어라고 간주하고 있다. 신약성경 밖에서는 ‘법정 안에서 법적인 조언을 하는 자’ 또는 ‘돕는자’ 혹은 ‘변호 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어졌다.19) 이런 해석은 종종 제자들이 피고로서 심문을 받을 때 제 자들을 변호하기 위해 오신다는 신약 성경의 다른 곳에서 끌어낸 의미와 연결된다. 요한

16) W. 바클레이,「신약성서의 메시지」 신성종 역(서울: 컨콜디아사, 1993), pp. 234-235.

17) R. E. Brown, The Paraclete in the Fourth Gospel, p. 117.

18) Ibid.

19) L. 모리스, 「요한신학」, 홍찬혁 역(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5), pp. 218-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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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15:26(증거 한다)과 요한복음 16:8-11(세상의 악함을 책망한다)의 구절은 이런 의미 를 지지해 주고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 내의 다른 구절들을 살펴보면 제자들을 보호하는 법정적인 의미는 발견되지 않는다.20) 따라서 Παρακλητο 라는 용어는 ‘누군가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 앞에 나타나 도움을 주고 보호해 주는 자’ 곧 ‘중재자’, ‘돕는자’, ‘변호자’와 같은 뜻으로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는 개념을 지닌 용어라 하겠다.

4. 다른 의미로서 Παρακλητο

αρακλειν과 관련해서 브라운(R. E. Brown)은 ‘위로’, ‘격려’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주 장한다.21) 또한 바레트(C. K. Barret)는 그의 책에서 Παρακλητο 가 신약성경 안에서 ‘위 로하다’, ‘권면하다’와 동일 어원의 말들의 용법을 고려해 봄으로서 Παρακλητο 라는 성령 의 명칭이 Παρακλειν의 의미를 포함한다고 보았다.22) 바클레이(W. Barclay)는 고대 희 랍 문헌들 속에서 ‘권고’ 나 ‘역설’을 의미하는 사용 용례를 들고 무엇보다도 ‘전투에 출전 하려는 군대들을 권고하는데’ 사용되어진 예를 통해서, Παρακλητο 가 연약한 마음에 용 기를 주고 기력이 없는 팔에 전투를 위한 힘을 주며 일반적이 사람으로 하여금 위험하고 난처한 상황에 용감하게 대처하도록 만드는 ‘격려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23) 하지만 요한복음서 에는 Παρακλητο 는 이러한 의미의 용도로 사용되어지는 사례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들은 근거(根據)라 없어 보이며, ‘성령의 역사를 암시적 (暗示的)으로나마 위로와 격려로 제한 한다는 것은 그 역사를 유감스럽게 경시하는 것이 되고 만다.’24)고 주장한 내용으로 보아 Παρακλητο 가 한정되어 사용되어지는 것은 바 람직한 것이 될 수 없다.

결국 이 용어의 사용은 한 가지의 뜻으로만 고착되게 사용되어 오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25) 어떤 학자들은 ‘변호자’(辯護者)를 가장 좋은 번역으로 보고 있는데, 모리스(L.

Morris)의 경우엔 Παρακλητο 의 법정적인 기능은 상담자나 변호자로서 명확히 정의된

20) Ibid.

21) Ibid.

22) C. K. Barrett, The Gospel According to st. John, SPCK, 1978.

23) W. 바클레이, 「신약성서의 메시지」, pp. 238-239.

24) Ibid., p. 118.

25) Ibid.

(14)

것이 아니라고 한다. 변호자는 한 명 이상일 수도 있고 또한 피고인의 소송을 전담하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법정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피고인을 위해서 일어선 친구라면 누구든지 Παρακλητο 라고 불려진다. 또 중보자나 탄원자, 대언 자의 의미도 좋은 번역이라 할 수 없다. 또한 ‘helper’(돕는자)의 일반적인 의미도 완전히 Παρακλητο 가 갖고 있는 복합적인 의미를 다 드러내지는 못한다.26) ‘comforter’(위로자) 란 용어도 위클리프 당시에는 현재와 같이 좁은 ‘위로’의 의미만 지닌 단어가 아니었다.

본래 라틴어는 con(함께), fortis(용기)라는 단어의 합성어로 ‘용기를 주시는 분’ 우리로 하 여금 용감할 수 있게 해 주는 분,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위기와 격변과 투쟁과 싸움에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을 의미하였다.27) 그러나 ‘comforter’의 일반적 뜻 가운 데 라틴어 본래의 의미는 이미 사멸(死滅)되었고 오늘날에 와서는 ‘위로’의 뜻을 지니게 된바 Παρακλητο 의 개념을 반영하기에는 부적합한 것이다. 이에 대해 프루머 (Plummer)는 ‘변호자가 요한 저작에 나오는 본 용어의 근본적인 개념을 나타낼 수 있는 상당어 이다’고 주장한다. Παρακλητο 에는 변호, 설득, 가르침의 개념이 현저하게 드러 나 있다. 즉 그는 우리의 마음에 참된 분별과 삶의 진실 된 도리를 제시해주며 우리의 대적인 세상을 정죄하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변호자로서 표현되었다.

그러나 변호자는 Παρακλητο 가 담당하는 또 다른 기능인 ‘설득’과 ‘가르침’의 기능을 포 괄하지 못한다. 이와 관련하여 윌리암(C. K. Williams)이 ‘친구’로 번역한 것은 법정적 의 미는 내포하지 못할지라도 Παρακλητο 의 다른 측면을 잘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 다.28) 그 외에도 ‘법정 후견인’ 또는 전문적인 의미가 배제된 ‘돕는자’로 개역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라도 Παρακλητο 의 전 개념을 포괄 할 수 있는 단어를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와 같이 Παρακλητο 는 고착된 용어로만 쓰이지 않는 역사를 갖고 있으며, 특히 요 한복음에 사용될 때는 그 의미가 요한복음서 저자의 신학적인 의도에 따라 변형되어 사 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그리스도에게 한 번 적용 되었고(요일

26) L. 모리스, 「요한복음」, 이상훈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3), p. 305.

27) W. 바클레이, 「성령의 약속」 서기산 역(서울: 기독교문사, 1982), p. 54.

28) Leon Morris,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Grand Rapids: Eerdmans Publishing Co., 1971), p. 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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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그 밖의 모든 신약성경에서는 ‘성령’이란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요14:16, 26; 15:26;

16:7). 특히 요한복음 14:26에서 Παρακλητο 는 ‘성령’으로, 그리고 요한복음 15:26에서는

‘진리의 성령’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 성령이 지금 여기서 과거의 예수님을 증언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예수님도 말해주고 있다. 왜냐하면 Παρακλητο 는 예수님의 다른 모습이 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Παρακλητο 는 과거의 예수님과 미래의 예수님을 완전하게 나 타내 주는 유일한 분이다.

나. 배경(背景) 고찰

요한복음서의 독특한 Παρακλητο 의 본질을 검토하기 위하여 시도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접근은 Παρακλητο 의 개념의 배경이 될 만한 요소들을 고찰하는 것이다. ‘성령’(το πνευμα το αγιον)을 ‘Παρακλητο ’라고 호칭한 것은 오직 신약성경 가운데 요한 저작 뿐인데 이것은 요한의 교회만이 Παρακλητο 라고 불리는 분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 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용어는 요한의 교회 안에서 고유한 ‘삶의 자리’를 지닌 독특한 개념이라 하겠다.29) 그렇지만 이 용어의 기원과 개념에 관한 문제는 많은 학자들에 의하 여 논쟁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매우 다양하며, 서로 간에 적지 않은 모순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한복음서의 저자가 Παρακλητο 라는 단어를 선택할 수 있었 던 사상적 배경을 발견할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사상적 배경을 영지주의와 구약과 유대 교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1. 영지주의

Παρακλητο 가 영지주의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로는 바우어(W.

Bauer), 빈디쉬(H. Windish), 베이커(H. Becker)와 불트만(R. Bultmann)을 들 수 있으며 대표자는 불트만이라 할 수 있다.

불트만은 Παρακλητο 란 용어가 영지주의적인 배경에서 나왔다고 보는데 그의 주장은

29) 최갑종, 「성령과 율법」(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7), p.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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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다.30) 그는 먼저 요한복음서의 Παρακλητο 의 말씀들에서 Παρακλητο 의 기능 을 찾아내는데 그 기능은 예수님 자신처럼 계시자로서 묘사된다고 설명하며 그 근거로 요한복음서 14:16절에서 분명히 두 보혜사, 즉 예수와 그의 후계자의 연속적인 파송을 언 급한다. 여기에서 볼트만은 요한복음서 저자가 교회적(敎會的) 전승(傳承)에서나 자신의 의도에서 계시자가 중복으로 올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저자가 적절한 상(像)을 발견하기 만 한다면 예수를 대신하는 Παρακλητο 의 상(像)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 다 그 기원은 계시(啓示)가 역사적인 담지자(擔持者)에게 배제적으로 집중되는 것이 아니 라, 다양한 연속적인 전달자에게 나누어지고 그들 안에서 되풀이되는 관심을 갖는 공동 체 속에 있다고 밝힌다. 이러한 관점은 이방적(異邦的)이며, 유대적인 그리고 기독교적인 영지주의에서 되풀이되고 만난다고 밝힌다. 즉 클레멘트 문헌과 만다 교인들에게서 나타 나며 만다교에서 체계적(體系的)으로 전개되었다. 불트만은 Παρακλητο 가 ‘변호자’도 아 니고 ‘위로자’가 아니라 ‘조력자’나 ‘돕는 자’로 나타난다고 보며 그는 ‘돕는 자’로 나타난 다고 보며 그는 ‘돕는 자’에 관한 만다교의 진술들을 참조하고 있다. 거기에 따르면 영지 주의적 계시자는 인간을 그들의 인식(認識)의 길로 안내하는 영혼의 돕는 자, 동반자와 인도자로 묘사되며 이 돕는 자의 형태는 독자적인 신화적(神話的) 존재가 되었는데 고유 한 이름으로 ‘Jawar’(돕는 자)란 칭호를 갖고 있다. 요한복음의 Παρακλητο 의 형태가 바 로 요한이 그의 전거(典據)에서 발견한 영지주의의 ‘돕는자’의 모습과 같은 것이라고 주 장한다.31)

그러나 이런 주장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비판을 받는다. 먼저 영지주의 신화에서 계시 자는 혼들의 인도자, 동반자, 협조자 등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만다교 에서는 교대로 파견 되는 수많은 계시자들이 있는데 반하여 요한복음에서는 예수와 Παρακλητο 둘 밖에 없 다. 즉 만다교 에서는 Παρακλητο 가 하나의 칭호가 아닐 뿐만 아니라 영지주의는 혼들 의 귀천 내지는 상승에 관한 문제에 그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뮬러(U. B. Muller)는 만다교 문헌에서 나타나는 ‘협조자’의 영지주의적인 모 습은 Παρακλητο 개념의 배경이 아니며 여러 가지 ‘협조자’-모습(Helfer-Gestalten)에 대 해 고정되지 않는 명칭을 사용하기 때문에 구원자의 모습이 많으며(근본적으로 제한되지 30) R. 불트만, 「요한복음서 연구」, 허혁 역(서울: 성광문화사. 1979), pp. 624-626.

31)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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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고)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서 볼트만의 견해(見解)를 반박한다.32)

브라운(R. E. Brown)도 역시 불트만의 견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33)

첫째, 요한복음서에는 만다교에 나오고 있는 수많은 하늘 계시자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으며 오직 떠나가시는 예수와 제자들과 함께 머무는 ‘진리의 영’ 이 두 가지의 모습 외 에는 나타나지 않는다(요 14:17).

둘째, 만다교의 계시자들은 동시(同時)에 나타나고 있지만 요한복음서에는 Παρακλητο 가 예수와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떠난 뒤 그의 뒤를 이어서 Παρακλητο 가 나타나고 있다(요 16:7).

셋째, 만다교의 계시자들은 법정적인 면에 대해 언급(言及)이 없지만, 요한복음서의 Πα ρακλητο 는 법정적인 기능을 지니고 있다(요 16:8-11).

넷째, 만다교의 Jawar(Yawar: Helfer)는 독특한 계시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종종 Jawar Zier와 결합되는데 이른 다른 협조자를 묘사하기 위해 다른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따 라서 Παρακλητο 에 상응하는 말이 Jawar라는 것은 전혀 명확하지 못하다. 더 나아가 Π αρακλητο 가 헬라어에서 일차적으로 명확하게 ‘협조자’로 또는 ‘친구’로 사용되지 않았다 는 점과, ‘협조자’라는 명칭으로 βοηθο 가 더 자연스러운 번역이라는 사실은 이 같은 점 을 더욱 명확하게 밝혀준다.

베츠(O. Betz)는 요한복음서가 다소 영지주의화(靈知主義化)된 경향(傾向)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발견된 영지주의 문서 ‘Nag Hammadi'34)를 비교 연구한 결과 요한복음 서의 보혜사 개념과 관련된 사고(思考)와 상이(相異)하게 나타난 것이 증명(證明)되었다 고 한다.

스몰리(S. S. Smalley)는 만다교가 요한복음서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요 소로 ‘연대문제’를 거론 하였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서의 저자가 독특하게 사용한 Παρακλ ητο 라는 단어는 영지주의적 배경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 할 수 있다.

32) U. B. 뮬러, “요한복음의 보혜사의 표상”, 「신학사상」30(1980 겨울호), p. 31.

33) R. E. Brown, The Paraclete in the Fourth Gospel, pp. 119-120.

34) 1945-6년 이집트의 상부 나일강 Nag Hammadi 마을 근처에서 발굴된 영지주의 문서임.

(18)

2. 구약

Παρακλητο 가 히브리어 어느 단어에서 번역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구약에 나타난 몇몇 사상과 개념에서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1) 선구자 - 완성자(Forerunner- Fulfiller)개념

‘선구자 - 완성자’개념은 첫 인물이 죽고 떠나면 그 다음 인물이 그의 자리를 대신하여 그의 일을 계속 수행하고 그의 메시지를 해석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35) 이런 실례로는 모세-여호수아, 엘리야-엘리사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각각의 경우에 있어서 두 번째 인 물은 첫 번째 인물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즉 여호수아는 다른 모세(신발을 적시지 않 고 물을 건너는 것)이고, 엘리사는 다른 엘리야(같은 형태의 기적을 일으킨다.)이다.36) 이 런 관계는 성령 개념에 있어서도 일치한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손을 얹었을 때 여호수 아는 지혜의 영으로 충만했고(신 34:9),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감을 갑절로 받았다(왕하 2:9-15). 이러한 ‘선구자-완성자’ 개념은 요한복음서의 저자가 보여주는 Παρακλητο 와 예수님 사이의 개념과 매우 비슷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일종의 선구자로 나타나는 반 면에 Παρακλητο 는 완성자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본캄(G. Bornkamm)은 ‘선구자-완성자’의 개념을 ‘세례요한-예수님’으로 보고 있다.37) 여기에서 세례요한은 예수님에게 성령이 임하도록 하는 한 도구(道具)에 불과하고, 예수 님은 하나님 나라의 선포자로서 세례요한을 대신한다. 본캄은 ‘선구자-완성자’ 개념이 요 한복음서의 중요한 표현수단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예수와 Παρακλητο 와의 관계가 ‘선 구자-완성자’의 개념으로 구성되기 전에 이미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관계가 이 개념(槪念) 으로 구성(構成)되었다고 본다.38)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예수가 다른 어떤 이에게 종속(從屬)되어 있다는 사 실을 암시(暗示)할지도 모르는 한 전승을 요한복음서 저자가 사용했다는 것이다.39) 그래 35) R. E. Brown, The Paraclete in the Fourth Gospel, p. 120.

36) Ibid.

37) 김득중, 「요한의 신학」(서울: 컨콜디아사, 1996), pp. 302-303에서 재인용.

38) Ibid.

39) Ibid.

(19)

서 본캄은 요한복음서 저자가 보혜사 전승에 대하여 두 가지를 변경시켰다고 보았다.40) 첫째, 요한복음서 저자가 예수님과 Παρακλητο 는 궁극적으로 하나이며, 같은 것이라 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선구자-완성자’ 도식을 요한복음서 저자가 그 두 가지 존재 양상 (樣相)을 구별하기 위해서 한 구제주상(a Single Saviour Figuer)에 적용하였다는 것이다.

둘째, ‘선구자-완성자’ 도식에 암시된 주도권 문제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즉 Παρακλητ ο 는 아버지와 예수에게 종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캄의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세례 요한은 원래 메시아의 선구자가 아니라 예수의 목격자에 불과하다. 또한 세례요한은 나 중에 자기 뒤에 오게 될 자를 지시하지 않고 미리 ‘사람들 가운데 있는’(요 1:26) 이미 온 자를 지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이 선구자이고 예수님이 완성자라는 도식은 요한 복음서 저자의 의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세례요한보다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요 1:15. 30).

그러므로 ‘선구자-완성자’ 도식에서는 Παρακλητο 와 예수님 사이의 개념의 유사성을 찾을 수 있으나, 세례요한과 예수님 사이의 도식은 부적합하다고 하겠다.

2) 예언자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영 개념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임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 하였다. 이사야에게 주 여호와의 신이 임한 것은 곧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 하기 위함이었다(사 61:1). 에스겔에게 여호와의신이 임한 것도 주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 하기 위함이었다(겔 2:2-7). 또한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의 신으로 이전의 여러 선지자 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듣지 않았고 이로 인해 그들의 땅은 황무하게 되었다고 스가랴에게 말씀하셨다(슥 7:8-14). 이처럼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신이 그들에게 임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였다. 곧 하나님의 영은 신적 인 계시와 영감의 장본인이었다.41)

신약의 사도들도 구약의 예언자들이 담당했던 역할과 매우 비슷한 역할을 하였다. 즉

40) Ibid.

41) W. H. Griffith Thomas, The Holy Spirit of God(Grand Rapids: Eerdmans Pub. Co., 1976), p. 12.

(20)

사도들의 역할은 역사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해석하는 역할이다.42) 요한복음서에 서 사도들은 고별설교에서 Παρακλητο 를 받는 자들로 되어 있다(요 14:16, 26; 15:26;

16:7).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사람들의 해석적 역할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자신을 화해(和解)시켰다는 사실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고 후 5:19)43) 요한복음서의 저자는 Παρακλητο 를 예수께서 보내시는 제자들에게(요 13:20) 약속된 자로서 묘사하였고, 따라서 Παρακλητο 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그들을 위해 해 석하게 될 것이다. Παρακλητο 는 예수의 이름으로 와서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친다 고 하실 때에 이것은 예수께서 가르쳤던 말씀들의 충분한 의미를 알도록 하는 가르침 곧 온전한 해석을 의미한다(요 14:26; 16:13-14 참고.). 그리고 사도들은 Παρακλητο 에 의해 깨우쳐진 온전한 의미를 전달하는 자들이다. 이것은 구약의 예언자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과 유사성이 있다.

브라운(R. E. Brown)은 비록 예언자들에게 임한 성령의 개념이 Παρακλητο 의 가르치 고 해석하는 역할에 대한 요한복음서의 표상(表象)과 평행(平行)을 이룬다고 할지라도 Π αρακλητο 가 지니는 법정적인 성격은 충분히 설명할 수가 없다고 지적한다.44) 물론 구 약의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영이 임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였을 뿐이지 그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제자들을 위해 변호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찾아보기 힘 들다. 그러나 브라운의 지적이 요한복음서 저자가 구약의 예언자적인 영의 개념을 Παρακ λητο 의 표상의 한 측면으로 삼았으리라는 가정(假定)을 묵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요 한복음서 저자의 구약 지식은 넓고도 깊은 것이었고, 구약의 내용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드러내 보일 만큼 능숙하게 사용하였다.45) 프리드(E. D. Freed)는 요한복음서에 나타나는 구약성경 인용 구절들을 연구하였는데, 그 결과 그는 요한복음서 저자의 구약성경 인용 기법은 그가 유대적 전통과 유대주의 성경들의 내용에 대해 철저한 훈련을 받았음을 보 여준다고 주장하였다.46) 그러므로 요한은 구약 인용에 있어 잘 훈련 받은 사람으로서, 예

42) R. E. Brown, The Paraclete in the Fourth Gospel, p. 121.

43) Ibid.

44) Ibid.

45) S. S. 스몰리, 「요한신학」, 김경신역(서울: 풍만사, 1987), p. 97.

46) D. Freed, Old Testament Quotations in the Gospel of John(Leiden: Brill, 1965). S. S.

Smally, 97.에서 재인용.

(21)

언자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영의 개념에서 Παρακλητο 의 개념의 어떤 측면을 끌어올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지금까지 Παρακλητο 의 배경이 될 만한 요소들을 구약에서 살펴보았다. ‘선구자-완성 자’ 개념이나 ‘예언자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영’의 개념 가운데 나타난 요소들 중에, Παρα κλητο 개념과 평형이 될 만한 요소들을 요한복음서 저자가 끌어왔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Παρακλητο 의 개념의 배경을 유대교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3. 유대교

Παρακλητο 의 개념은 구약의 사상적(思想的) 영향을 이어받고 있는 유대교에도 나타 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1) ‘천상(天上) 변호자(辯護者)’의 개념

유대교 전통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천상 변호자’가 필요하다. 이 변 호자는 법정적인 임무를 갖는다. 구약적인 변호자 개념은 다양하게 사용된다. 하나님의

‘증인들’과 ‘보증인들’(욥 16:19; 19:25; 33, 23, 26)이 변호자로 등장하고 ‘천사’(단 8:16;

9:21; 10:21)도 변호자로 나타나고, ‘성령’(잠 1:7-9)도 변호자의 기능을 떠맡았다.47) 언어 상으로 Παρακλητο 가 변호자 명칭과 관련된다는 것이었다. 특히 벰(J. Behm)은 이 변호 자를 가리키는 히브리말 ‘פרקליט’가 Παρακλητο 라는 용어와 발음상 일치를 이룬다고 여김으로써 이 가설을 더욱 지지하고 있다.48) 그러나 유대교의 ‘천상 변호자’의 개념에 가까운 뜻으로는 천상 예수 그리스도를 Παρακλητο 로 묘사한 부분이 오직 한 군데 뿐 이며(요일 2:1), 또한 요한복음서에는 Παρακλητο 의 활동 장소가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 럼 천상(天上)의 장소보다는 지상(地上)의 장소로 나타나고 있다. 즉 제자들 곧 그리스도 인들의 공동체 안에서(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Παρακλητο 의 위상이 부각되 고 있다. 따라서 Παρακλητο 의 기원과 개념을 ‘천상 변호자’의 전통 속에서 찾으려는 이

47) 김희성, “요한의 보혜사 - 성령론”, 「교수 논총」제7집(1996): 28.

48) 이영헌, “요한공동체와 파라클레토스”, 「신학전망」제93호(1991): 3-4.

(22)

들의 시도는 성경적인 근거가 빈약하여 비판의 대상이 된다고 할 수 있다.49)

2) 후기 유대교 묵시문학의 ‘인자’ 개념

슐츠(S. Schulz)는 묵시 문학가들이 사용한 광범위한 ‘작별인사’ 안에서 인자에 관한 전 승과 Παρακλητο 에 관한 전승 사이에 몇 가지 공통점을 제시하면서, 인자(人子)의 개념 과 Παρακλητο 개념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다고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50)

첫째, 영을 소유한 자로서의 인자의 표상은 Παρακλητο 와 영을 동일시하는 것과 일치 한다.

둘째, Παρακλητο 의 법정적인 기능은 인자의 법정적인 기능에서 유래한다.

뮐러(U. B. Muller)는 슐츠의 첫 번째 주장의 병행문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 다.51) 또한 두 번째 주장에서 Παρακλητο 의 법정적인 기능은 인자의 법정적인 기능에서 유래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Παρακλητο 의 법정적인 기능은 하늘의 왕 앞에서 변호 하는 모습이 없으며, 사람들을 위하여도 변호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예수만을 위해 변호 하신다. 나아가 유대교의 묵시문한에서의 인자는 바다의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와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자이다.52) 그러나 요한복음서의 Παρακλητο 는 아버지와(요 14:6, 26), 아들로부터(요 15:26; 16:7)오는 자이다.

슐츠(S. Schulz)는 요한복음서의 Παρακλητο 의 원래적인 모체(母體)로서 후기 유대교 의 인자표상(人子表象)을 중요시하였지만 이에 대한 증거가 매우 빈약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요한복음서 저자의 Παρακλητο 개념의 배경은 후기 유대교 묵시문학의 ‘인자’ 개 념으로 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3) 후기 유대교의 천사 개념

브라운(R. E. Brown)은 후기 유대교의 천사 개념이 Παρακλητο 의 법정적인 성격을 49) Ibid.

50) U. B. 뮬러, “요한복음의 보혜사 표상”,「신학사상」제30집(1980): 645-646.

51) Ibid.

52) Robert H. Pffeiffer, History of New Testament Times with an Introduction to the Apocry- pha(New York: Harper & Brothers Pub., 1949), p. 84.

(23)

위한 최상의 평행(平行)을 제공한 것으로 본다.53) 후기 유대교의 천사의 모습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변하는 것이고, 유대 종파주의(쿰란)에서는 벨리알과 악의 세력을 대항하는 빛 의 세력의 지도자로서 천사적인 ‘진리의 영’ 개념이 있다는 것이다.54)

이원론적(二元論的)인 투쟁은 쿰란에서 충분히 발전되었다. 특히 쿰란의 ‘공동체생활 규범(훈련규범)’에 보면 모든 사람들은 ‘빛의 세력’(the forces of light)과 ‘어둠의 세 력’(the forces of darkness), 이 둘 중 하나에 의해 인도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IQS 3:18-19).55) 선한 영은 ‘진리의 영’(the Spirit of Truth, 3:19), ‘빛의 왕자’(the Prince of light, 3:20), ‘하나님의 진리의 천사’[his (god's) Angel of Truth, 3:24], ‘성령’(the Holy Spirit, 4:21; 8:16)등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다. 반대로 악의 영은 ‘반역의 영’(the spirit of Perversion, 3:19), ‘어둠의 천사’(the Angel of Darkness, 3:21), ‘파괴의 천사’(the Angel of Destruction, 4:21)등으로 묘사되어 있다.56) 특히 천사 미가엘은 쿰란종파들을 위해 중 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전쟁두루마리’(the War Scroll)에서 미가엘은 어두움의 지도자인 벨리알에 대항하여 빛의 세력을 인도하고 있다(IQM 17:6-8; 13:10).57)

여기에서 특별히 관심을 끄는 것은 ‘진리의 영’이란 표현이다(IQS 3:19).요한복음서 저자는 Παρακλητο 를 ‘진리의 영’으로 그의 복음서에 세 번(요 14:17; 15:26; 16:13)이나 언급하고 있고, 기독교 이전의 유일한 평행은 쿰란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58) 이런 평행 적 용법으로 많은 학자들은 쿰란의 인격화된 이원론이 요한복음서의 Παρακλητο 의 형 성의 최상의 원형을 제공하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베츠는 Παρακλητο 의 연구에 있 어 쿰란을 철저히 이용한 첫 번째 사람으로, 그의 주장을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 음과 같다.

첫째, 베츠는 요한이 유대의 묵시주의와 쿰란 문헌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고 믿는다.

그는 유대주의에서 ‘변호자’로서 사용되어진 Παρακλητο 라는 단어가 요한에게 알려진 것 으로 보았다. 그는 요한의 우주론이 쿰란의 엄격한 이원론에서 기인한 것으로 본다. 즉

53) R. E. Brow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p. 1138.

54) R. E. Brown, The Paraclete in the Fourth Gospel, p. 121.

55) G. M. Burge, The Anointed Community(Grand Rapids: Eerdmans Pub. co., 1987), p. 16.

56) Ibid.

57) Ibid.

58)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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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싸움에서는 인격적인 인물이 싸우고, 지상의 싸움에서는 비인격적인 세력(힘)이 싸운다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의 모습이 요한에 의해 병합되었다는 것이다.59)

둘째, 미가엘이 Παρακλητο 표상의 형성에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베츠는 요한계시록의 그리스도-미가엘 관계(계 19:11-20:10; 12:7-12)로부터 단서를 취하여 이것이 혹시 요한복 음서에서 위장된 예수-Παρακλητο 의 관계가 아닌지 물었다. 계시록에서는 이 표상의 인 격적인 이름(미가엘)을 발견할 수 있고(Παρακλητο 는 없다). 요한복음서에서는 그의 기 능적인 명칭 (Παρακλητο )을 찾아볼 수 있다(미가엘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 베츠는 쿰란의 유대적 신화론을 요한의 고유한 기독론에 끌어온 것은 요한의 독 특한 속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는 그의 승귀로 그가 변호자의 역할을 맡았던 천상 으로 갔다(천상의 변호자, 요일 2:1). 그 대신 그는 미가엘 곧 ‘두 번째 Παρακλητο ’를 보 내어 어둠의 세력들과 싸우는데 진리의 영과 힘을 합치도록 하셨다. 베츠에 의하면 첫 번째 Παρακλητο 인 그리스도는 천상에 갔고, 미가엘은 그때까지 그곳에 있었다. 그리스 도는 천상에서 그의 공동체를 위한 변호자로서 일하신다. 곧 그는 죄를 대언하시고(요일 2:1), 간구에 응답하신다(요 14:13-14; 15:16; 16:23). 두 번째 Παρακλητο 인 미가엘은 ‘진 리의 영’으로서 지상에 왔다. 여기서 그는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하고 제자들을 인도하며 악의세력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한다.

베츠는 이러한 주장을 전개하면서 요한복음서의 Παρακλητο 표상 안에서 인격적이면 서 비인격적인 특성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요한이 미가엘의 상(想)과 지상에 온 진리 의 영과 혼합시킴으로 이러한 독특한 혼성물(混成物)을 형성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베츠 의 주장은 비평(批評)의 여지를 갖고 있다.

첫째, 베츠는 요한복음서 저자와가 쿰란으로 부터 직접적인 영향(影響)을 받았다고 가 정(假定)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직 충분히 입증(立證)되지 않은 사실이다. 만일 영향이 있 었더라도 간접적(間接的)인 것으로 봐야한다.60) 요한복음서에는 쿰란의 인용(引用)이 나 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베츠는 미가엘의 표상이 Παρακλητο 의 표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 하는데, 요한복음서의 Παρακλητο 에서 천사적인 특성을 거의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그 59) Ibid.

60) R. E. Brown, The Paraclete in the Fourth Gospel, p. 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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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장은 유지 될 수 없다.61)

셋째, 베츠가 미가엘-Παρακλητο 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끌어온 계시록의 사용은 매우 상상적이다. 미가엘은 종말에 그리스도를 돕는 자로서 행동하는 반면(계 12:7), 요한복음 서의 Παρακλητο 는 중재자의 표상(오순절과 재림사이의)을 갖는다.62) 그러므로 요한복 음서의 Παρακλητο 표상(表象)이 천사 미가엘에 의해 형성(形成)되어졌다는 주장(主張) 은 더 많은 실질적(實質的)인 증거(證據)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후기 유대교 천사 개념에서, 악의 세력에 대항(對抗)하여 선택(選擇)된 자들을 인도하는 천사적인(인격적인) 영의 개념이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변(代辯)하는 천사의 모습이나 빛의 세력의 지도자로서 ‘진리의 영’의 개념에서 Παρακλητο 와 비교가 될 만한 요소들은 있다고 하겠다.

4) 인격화된 지혜

브라운(R. E. Brown)은 독특하게 인격화된 지혜(智慧)의 표상(表象)이 요한복음서의 Π αρακλητο 를 위한 중요한 배경(背景)이라고 주장한다.63)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주 님의 선택받은 백성들 안에 거하며(Sir 24:12), 그들에게 ‘이해의 은사’(the gift of understanding)를 주신다. 지혜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예언하듯 가르칠 것이며 그 가르 침을 모든 미래의 세대에 남겨 둘 것이다”(Sir 24:33). 이것은 요한복음서의 Παρακλητο 의 가르침 곧 “너희에게 장래 일을 알릴 것”(요 16:13)이라는 사실과 유사성(類似性)이 있다. 또한 에녹서는 사람들에 의한 지혜(智慧)의 거부(拒否)를 언급하고 있는데(Enoch 42:2), 이것은 세상이 Παρακλητο 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요한의 주장(요 14:17)과 비교될 수 있다.

브라운은 이처럼 인격화된 지혜와 요한복음서의 Παρακλητο 사이에 병행적(竝行的) 유 사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Παρακλητο 의 배경을 인격화된 지혜로 보는 브라운의 주장에 일리는 있으나 더욱 폭넓은 근거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61) U. B. 뮬러, “요한복음의 보혜사 표”, p. 640.

62) G. M. Burge, The Anointed Community, p. 20.

63) R. E. Brow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p. 1139.

(26)

이상에서 Παρακλητο 의 개념의 배경이 될 만한 요소들을 고찰해 보았다. Παρακλητο 는 영지주의적인 배경을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만다교 문헌은 수많은 하늘 계시자가 있 으며, 계시자들은 동시에 나타나고 있지만 요한복음서에는 Παρακλητο 가 예수와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떠난 뒤 그의 뒤를 이어서 Παρακλητο 가 나타나고 있다 (요 16:7). 만다교의 계시자들은 법정적인 면에 대해 언급이 없지만, 요한복음서의 Παρακ λητο 는 법정적인 기능을 지니고 있다(요 16:8-11). 만다교가 요한복음서에 영향을 끼치 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요소로 만다교 문헌은 기독교 이후의 것이기에 요한복음서 저자의 Παρακλητο 개념에 영향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서 저자는 구약 인용에 있어 잘 훈련 받은 사람으로서, ‘선구자-완성 자’ 개념이나 ‘예언자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영’의 개념에서 Παρακλητο 의 개념의 어떤 측면을 끌어올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요한복음서의 저자가 독특하게 사용하고 있는 Παρ ακλητο 의 표상은, 기본적인 요소들이 우선적으로 구약에 근거하고 있으며, 유대교의 사 상이 녹아있다고 말할 수 있다.

(27)

Ⅲ. 요한복음에 나타난 Παρακλητο 에 대한 이해

요한복음서 저자가 독특하게 이해하고 있는 Παρακλητο 의 본질을 밝히기 위하여 앞에서 Παρακλητο 의 어원적 고찰을 하였고, 그 배경이 될 만한 요소들을 살펴보았다.

Παρακλητο 라는 어원은 매우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단어임이 드러났다. Παρα κλητο 의 표상은 기본적인 요소들이 우선적으로 구약에 근거하고 있으며, 유대교의 사상 이 녹아있음을 살펴보았다.

이제 Παρακλητο 에 대한 이런 선이해(先理解)를 가지고 요한복음서 저자의 역사적 배경과 Παρακλητο 에 대해 스스로 묘사하고 있는 내용(본문 분석 및 주해를 이용)들을 검토하므로 Παρακλητο 의 본질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가. 역사적 배경

요한복음의 역사적 진전 과정에 따르면 Παρακλητο 가 등장하는 고별설교(요 14-17 장)은 예수께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붙잡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 밤, 그의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가지는 중에 주어졌다(요 13:1-3; 18:1-10). 그러므 로 예수의 아버지께로 귀한, 그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사건에 의한 영광 받으심, 그리고 예수님과 제자들의 일시적 이별(離別)과 그로 인한 제자들의 불안(不安)과 근심(謹審)이 고별설교의 역사적 무대를 형성한다. 고별설교의 핵심부분을 차지하는 보혜사의 메시지 는 예수와 제자들과의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에서 주어진 것이다. 또한 요한복음에 나오 는 예수의 고별설교는 요한의 성령론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신약 성경 가운데서 오직 요한만이 고별설교에서 성령을 보혜사로 소개한다. 예수를 대신할 혹은 그의 뒤를 이을 ‘다른 보혜사’로 강조하고 있다.

브라운은 요한복음서의 저자가 그의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 그의 공동체 안에 두 가지 의 큰 문제가 있었는데 하나는 예수와 요한 공동체를 다리 놓아주는 살아있는 연결체(連 結體)인 사도적 증인들의 죽음으로부터 오는 교회의 혼란(混亂)을 극복하고 대응(對應)하 기 위해 Παρακλητο 란 개념을 끌어들였다고 밝히고 있다. 둘째는 약속된 종말이 지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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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는데서 오는 공백(空白)을 메우기 위해 Παρακλητο 란 개념을 사용하였다는 것이 다.64) 요한복음의 저자가 ‘보혜사 성령’의 개념을 자신의 저서에 수록해야 할 특별한 필 요성이 요한 공동체의 역사적 정황에서 요청되어졌기 때문이다.

1. 요한 교회의 내적(內的) 상황

다른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요한복음서도 단순히 역사를 기록하는데 그 초점(焦點) 이 있기 보다는 특수한 요한 교회의 긴급한 필요성에 응답하기 위해 쓰여 졌다. 당 시 요한 교회의 내적인 문제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예수님과의 연결을 보 증하는 중인들의 죽음으로 인한 단절감(斷絶感), 둘째는 약속된 종말(終末)이 지연되 어지는데서 오는 문제이다. 사도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들이 예수님과 초대교회 를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요한복음서가 기록될 당시 사도들은 하나씩 죽어가고 있었고, 그들이 다 죽을 경우 예수님과 교회를 연결시켜 줄 사람이 누구인 가에 대한 의혹(疑惑)과 불안(不安)이 교회 가운데 제기(提起)되었을 것이고 역사의 예수님과 직접적인 연결 고리를 잃어가는 요한 교회는 심한 불안감으로 말미암아 혼 란(混亂)이 야기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과의 단절감에서 오는 불안과 좌절은 교회 내부에서 교회를 점점 잠식해 갔을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붕괴 위기 상황에서 예수님과 연결되는 실제적인 연결 고리가 아직도 영원히 존재함을 보증하는 믿음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에서 Παρακλητο 의 개념은 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해답으로 등장한다.65)

예수님의 ‘영광의 때’는 예수님 부재(不在)의 시작이다. 그러나 예수는 다시 올 것이며 (요 14:3) 그 시간의 공백을 영원하도록 함께하는 Παρακλητο 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이 다(요 14:16f.). 더욱이 예수가 떠나가야만 믿는 자들에게 유익이 되는 Παρακλητο 를 보 낼 수 있다(요 16:7). Παρακλητο 가 예수의 지상 현존보다 믿는 자들에게 더 유익이 되 는 것은 Παρακλητο 를 통하여 예수는 육체적 제한성을 초월하여 항상 믿는 자들과 함

64) R. E. Brow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pp. 1141-1143.

65) R. E. Brown, The Paraclete in the Fourth Gospel, pp. 128-12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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