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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솔리니의 정신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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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EP Original Article 精 神 分 析 :第 15 卷 第 1 號 2 0 0 4

J Korean Psychoanalytic Society Vol. 15, No. 1, page 95~102, 2 0 0 4

파솔리니의 정신병리

李 炳 郁

*

Pasolini and His Psychopathology Byung-Wook Lee, M.D.

*

序 論

20세기 영화사에서 이태리 영화는 핵심적인 위치를 점 한다. 로셀리니, 비스콘티, 피에트로 제르미, 비토리오 데시 카, 페데리코 펠리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파솔리니, 타 비아니 형제, 베르톨루치, 토르나토레, 난니 모레티, 로베르 토 베니니 등으로 이어지는 예술적 전통의 맥은 대를 이어 계승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파솔리니는 자신만의 독특한 반골적 기질과 충격적인 화면 구성으로 줄곧 세계의 주목 을 받았다. 그의 문학적 재능은 차치하고라도 그가 보인 파 행적 삶의 여정과 마지막 최후의 모습은 마치 한편의 다큐 멘타리 영화를 보는 것처럼 또 다른 충격과 전율을 일으킨 다. 적어도 파솔리니는 외형적 삶의 성공과는 무관하게 불 행속에서 정신적 방황을 거듭하다 로마 근교에서 변사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예술적 천재성을 지녔으면서도 삶의 행복과는 반대의 길 을 선택한 파솔리니의 굴절된 인생이 무엇에 연유한 것인 지 충분히 관심을 기울여 볼만하다. 파솔리니를 흠모하는 좌파적 성향의 예술가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같은 감독도 그런 유파에 속하는 인물이다. 특히 영화예술의 발전적 측면에서 파솔리니가 갖 는 위치는 매우 독특하며 충격적이기 까지 하다. 그의 급진 적 좌파 경향은 영화적 표현의 근간을 이루는 것인 동시에 그 자신의 심리적 배경을 토대로 한 것이기 때문에 주목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파솔리니의 영화는 동성애와 새도매저키즘을 포함한 잔혹미와 도착적인 메시지로 넘쳐 난다. 그리고 파솔리니의 성장과정은 성인 파솔리니의 파 행적 인생 및 예술활동과 결코 무관치 않다. 그러나 인격적

성숙도와 천재들의 예술적 창의력은 전혀 별개의 차원임을 인정하면서도 파솔리니의 두드러진 정신병리적 특성을 분 석적 시각에서 탐색해 보고자 한다.

파솔리니의 삶과 죽음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는 1922년 3월 5일 이태리 볼 로냐에서 태어나 1975년 11월 2일 오스티아 근처의 외진 들판에서 그의 변사체가 발견되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공적인 삶은 이태리 문학과 영화에 바친 것이었지만 사적인 삶은 어머니에 대한 애정 및 나이 어린 소년들과의 동성애에 바쳐진 삶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파시스트 직업 군인으로 강제적인 성관계를 통하여 결혼한 방탕한 인물이 었다. 파솔리니의 예술적 감수성은 전적으로 모계의 영향 을 받은것으로 어린 파솔리니에게 어머니의 존재는 항상 폭군 아버지의 횡포로부터 어떻게 해서든 구원해야만 될 그런 대상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 및 경쟁 심리는 결 국 그로 하여금 파시스트의 앞잡이였던 아버지와는 정반대 의 노선, 즉 공산주의자의 길을 걷게 하였다. 파솔리니는 좌파적 정치 성향을 보이면서 위선적이고 부패한 부르조아 적 삶에 환멸을 느끼는 동시에 무지하고 가난한 빈민들에 대해 무한한 애정과 동정을 표하기도 하였다.

그는 볼로냐 대학을 졸업한 후 로마로 진출하여 작가로 서의 길을 택하였다. 장래가 촉망되는 시인, 소설가로서 주 목을 받으면서 파솔리니는 1960년대부터 자신의 관심을 영화로 전향하고 당시로서는 매우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작 품들을 연이어 발표하였다. 향후 그의 영화예술세계에서 노 골적으로 드러난 새도매저키즘적 도착심리는 어릴 때부터 그가 목격했던 부모의 관계에서 연원한 것이기 쉽다. 가학 적인 아버지가 피학적인 어머니를 상대로 벌이는 드라마는 어린 파솔리니의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을 것 으로 보인다. 파솔리니는 결혼도 하지 않고 오로지 어머니

*翰林大學校 醫科大學 神經精神科學敎室

Department of Neuro-Psychiatry, College of Medicine, Hallym University,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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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한 그리움과 연모속에서 갈등하며 살았다. 그에게 있 어서 어머니와 관련된 것이면 무조건 사랑의 대상이 되었 다. 그는 어머니의 고향을 사랑했으며 외가에 대한 애착도 유달리 강한 편이었다. 동시에 그는 어린 미소년들과의 동 성애적 관계에 탐닉했다. 그리고 창작 활동의 정점에서 파 솔리니는 갑자기 동기를 잘 알 수 없는 한 소년이 저지른 살인행위의 희생자가 되어 로마 근교 공터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파솔리니의 작품세계

파솔리니는 시인으로 출발했다. 그의 나이 스무살에 발 표한 첫 시집 [카사르사의 시]는 표준어가 아닌 순수한 방 언으로 쓰여진 작품으로 자신의 어머니가 태어난 고향을 배 경으로 한 것이다. 그는 사랑하는 어머니의 향토어를 연구 하고 익혔으며 죽어서도 어머니의 고향에 묻혔다. 그만큼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은 전 생애를 통하여 파솔리 니의 마음을 사로잡은 화두가 되었다. 이미 그 시집에서 물 에 대한 찬미를 통하여 그는 어머니에 대한 동경과 향수를 노래하고 있다(Schweitzer 1986).

우리 마을의 우물

우리 마을의 우물보다 더 신선한 물은 없네 시골스런 사랑의 우물

이는 곧 물과 어머니의 일체감을 통하여 원초적인 사랑 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파솔리니는 나르치스와 다비드를 찾고 달콤한 죽음을 미화 시키기도 하였다. 작가로서의 파솔리니를 지배한 인물은 바로 그의 어머니였다. 모자는 항상 붙어 다녔으며 마치 탯 줄로 이어진 것처럼 그 관계는 돈독하였다. 그러한 공생적 관계는 너무도 강력한 것이어서 그들 모자에 있어서는 제 3 의 인물이 전혀 필요치 않은 듯 했다. 실제로 그의 어머 니는 마치 부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듯이 생활하였으며 파솔리니 자신도 평생동안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었 다. 그들 모자관계는 마치 성모 마리아와 그녀의 아들 예수 의 관계를 축소해 놓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파시스트였던 아버지의 존재는 그들의 밀착된 모자관계를 항상 위협하는 위험한 폭발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어린 나이 때부터 파솔 리니가 맡은 임무는 난폭한 괴물로부터 어머니라는 구원의 여인상을 지키고 보호하는 역할이었다.

그리고 가부장적 권력을 휘두르는 부당한 권위에 대한 도전과 파괴는 파솔리니가 풀어야 할 힘든 과제이기도 했 다. 신성한 임무를 맡은 아들의 입장에서 그는 이성의 유혹

을 물리치고 그 대신에 동성과의 끊임없는 관계 추구를 통 하여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시켜야만 되었다.

성장한 이후에도 그는 줄곧 성적, 정치적 스캔들에 휘말 리곤 하였는데 동성애와 사회주의는 그를 지탱해주는 양대 기둥이었다. 좌파 영화감독으로 유명해진 베르나르도 베르 톨루치는 바로 파솔리니의 문하생으로 그에게서 많은 영향 을 받았다. 역시 진보적 경향의 난니 모레티 감독이 만든 영화 [나의 즐거운 일기]에서도 파솔리니가 살해된 현장을 찾아가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 관한 배경이나 설명은 일체 언급하지 않고 단지 그 현장만을 말 없이 비춰줄 뿐이다. 파솔리니가 전 후 이태리 영화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60년대 들어 영화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던 파솔리니는 그의 초기 영화에서 주로 로마의 빈 민층과 천진난만한 어린 소년들의 세계에 대한 자신의 애 정과 연민을 담아내었다. 그의 초기영화들이 보여주는 주 된 작품 기조는 순수 아마튜어 배우들을 기용하여 다큐멘타 리 형식으로 찍은 것이어서 매우 사실적인 것이 특징이다.

또한 소외된 빈민계층에 초점을 맞추어 그들에 대한 동정 적인 시각에서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매우 진 보적인 성향의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였다. 파솔 리니 영화들에 대한 평가는 실로 각양각색이다. Ellis(1985) 는 자본주의사회에 내재된 야만성을 공격하고 왜곡된 성을 폭로한 측면에서 파솔리니를 새로운 이태리 감독들 가운데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로 높이 평가한 반면에 반 사회적, 반문명적, 비도덕적인 것에 대한 강렬한 동경을 토 대로 사회의 위선을 드러내는데 앞장섰지만 결국 그 스스 로가 파시즘을 공격하기 위해 즐겨 사용하던 표현 방식이 어느 틈에 그가 그토록 혐오하고 증오했던 파시스트의 언 어를 닮아가고 있었다는 점에서 자가당착에 빠진 모습으로 비판하는 입장(씨네21 1999)에 이르기까지 파솔리니의 영 화는 종교계와 교육계, 정치적 단체, 대중매체, 일반 대중 들의 반응에 있어서 제각기 다른 양상을 불러 일으킨다. 그 것은 항상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그 럴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영화는 항상 성과 폭력의 문제를 안고 있는 지뢰밭과도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성과 폭력은 인류가 오랜 세월 해결하지 못한 가장 중요하 고도 골치 아픈 난제중의 난제이기 때문이다.

1962년 작 [맘마 로마]는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이다.

과거 매춘부였던 맘마 로마는 자신의 아들만큼은 온전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지만 나쁜 친구들과 어울린 아들은 끝

내 사고를 쳐서 병원 침대에 묶여 숨을 거두게 된다는 내

용이다. 물론 여기서 맘마 로마는 파솔리니의 어머니를 상

징한다. 신성한 몸을 더럽혔다는 점에서 두 인물은 일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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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다. 그리고 원치 않은 관계를 통해서 태어난 자식은 일종의

사생아인 셈인데 그런 상징적 차원에서 본다면 예수도 마 찬가지라 할 것이다. 사고를 친 아들이 결국 병원 침대에 묶 여 숨을 거둔다는 설정은 파솔리니가 자신을 예수와 동일 시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물론 맘마 로마는 성모 마리아를 의미할 수도 있다. 1961년 작 [걸인]에도 매춘, 절도 등으 로 살아가는 빈민층의 이야기가 주종을 이루며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은 파솔리니와 함께 이 영화 제작에 참여 했다. 그러나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도착적인 성향이 주된 배경을 이루면서 격렬한 찬반 논쟁을 벌이게 만들기도 하 였는데 특히 70년대에 들어 더욱 노골화되기 시작했다. 특 히 [살로 혹은 소돔의 120일]은 파시스트들의 잔혹성을 폭 로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성도착적인 경향이 파시스트들의 전유물이 아닌 이상 그러한 작품 설정은 다소 빈약한 명분 으로 인하여 설득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으며 오히려 관객 들로 하여금 잔혹하기 짝이 없는 도착적인 흥분과 도덕적 혐오감에 질리도록 만드는 효과만을 낳을 뿐이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파솔리니의 영화적 가치는 인간 내면에 은폐 되어 있는 무의식적 욕망의 세계가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 가 하는 점을 화면을 통해 직접적으로 직면시킨다는 측면 에서 일시적으로나마 상당한 충격효과를 낳는 것이 사실이 다. 그러나 작가 자신에게는 그러한 창작활동을 통하여 스 스로를 합리화시키는 측면도 많다는 점이 드러난다. 파솔 리니는 소외자의 입장에서 자신과 빈민들을 담보로 하여 사 회에 저항하였다. 비록 그 자신은 최고급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며 미소년들을 유혹하는 행각을 계속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빈민가의 아이들과 축구시합을 즐기는 이율배반 성도 엿보이지만 그러한 상호 모순성은 부모에 대한 양가 적 감정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는 카톨릭과 공산당에 대한 그의 이중적인 태도에서도 일관된 모습으로 발견되는 특징 이기도 하다. 그러한 이중성과 모순성은 파솔리니의 모든 작품의 배경을 이루는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카톨릭과 공산당

앞서 말했듯이 파솔리니의 정신적 삶을 지탱해주는 양대 기둥으로서 동성애와 공산주의는 그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요 테마이다. Greene(1992)은 파솔리니의 작품 세계, 특히 영화 작품 기조의 변천과정을 이해하는데 있어 서 그의 주된 정신적 갈등의 배경으로 마르크스주의와 카 톨릭 신앙간의 대립적 모순을 토대로 자신의 논지를 전개 시켜 나갔다. 또한 파솔리니와 동시대를 살았던 불란서의 신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알튀세르 역시 자신의 갈등 해결을

위한 타협안으로서 카톨릭과 공산당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단 체에 동시에 가입함으로써 가족에 대한 거부 및 적대감을 대리충족시킨 바 있었지만(이병욱 1997), 알튀세르와 파 솔리니 두 사람 모두 비극적인 살인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점에서 죽음에 대한 무의식적인 갈망과 전혀 무관치 않음 을 시사해준다고 본다. 적어도 파솔리니에 있어서 가족이 라는 구조는 그다지 탐탁치 않은 주제였으며 오로지 원초 적인 모자관계만이 그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그의 대부분의 작품 기조도 공생적 모자관계를 부 각시키면서도 전체 가족 구조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한걸음 더 나아가 가족 파괴를 추구하는 경 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에게는 어머니의 존재만 중요할 뿐 가족이라는 구조 자체에 대해서는 증오와 환멸만을 느낄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파솔리니는 알튀세르와 비슷한 맥락으로 파

악할 수도 있겠다. 더욱이 카톨릭과 공산당이라는 두 가지

거대한 정신적, 사회적 압력단체가 라틴 유럽, 특히 불란서

와 이태리 두 사회 모두에서 매우 중요한 화두가 되어 왔

다는 점에서 파솔리니와 알튀세르는 유사한 정신병리적 차

원에서 기독교와 공산당을 방어적인 목적으로 이용한 것으

로 볼 수 있다. 공산주의자로서 파솔리니가 카톨릭에 대해

취한 애매모호한 태도는 그 자신의 양가적 감정상태를 반영

하는 것이기도 하다. 카톨릭과 공산주의는 상호 공존과 타

협에 어려운 점이 많을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파솔리

니로 하여금 노골적인 반기독교적 태도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드는 주된 걸림돌은 바로 성모 마리아 숭배에 있다고 하

겠다. 성모의 존재야말로 인간의 원초적 모자관계를 지탱

해주는 유일한 상징물이며 이는 불교에서도 관세음보살이

나 아미타불과 같은 여성적 상징에 대한 숭배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것과 유사한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

서 어머니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을 지녔던 파솔리니에 있

어서 카톨릭의 부정은 곧 어머니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반역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알튀세르와 비슷한 동기에서 카

톨릭과 공산당이라는 두 개의 모순된 양대 기둥에 의지한

채 모순된 삶을 살아야만 되었다. 다시 말해서 파솔리니는

어머니에 대한 숭배 때문에 카톨릭을 등질 수 없었고 아버

지에 대한 반역 때문에 공산당에 가입했던 것이다. 그리고

카톨릭과 공산당이라는 순수한 이념의 두 집단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동성애에 대하여 그다지 거부적이지 않다는 점이

며 뿐만 아니라 가족의 가치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일치한다. 파솔리니가 가장 마음 편하게 선택할

길은 이미 정해진 셈이다. 두 집단은 그에게 가장 위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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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수 있는 합리적 근거와 타당성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파솔리니 자신의 양가적 태도에서 비롯하는 모순성에 있으며 실제로 그는 카톨릭과 공산당에 대하여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순 은 자신의 어릴적 부모와의 관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동성애와 새도매저키즘

동성애는 수많은 예술가들을 연상시킨다. 고대 그리이스 의 여류시인 사포를 위시하여 레오나르도 다 빈치, 영국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 및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 프랑스의 마르셀 프루스트, 일본의 미시마 유키오 등은 한 시대를 풍 미한 동성애자들이었다. Freud(1910a)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분석에서 그의 동성애적 경향을 어머니에 대한 애착 과 연관지어 설명하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설명 은 결국 나르시시즘적 자기애 autoerotism로 돌아가고 만 다. 왜냐하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억압한 소년은 자신을 어머니의 위치에 고정시키고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함으 로써 결국 스스로를 자신의 새로운 사랑의 대상으로 선택하 고 모델로 삼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동성애자가 된다는 설명이기 때문이다. 고전적 분석학파에서는 동성애 의 심리적 역동을 전통적인 오이디푸스 갈등 차원에서 해 석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그러나 Jones(1927)는 동성애 환 자들의 분석 경험을 토대로 이들 환자에서 강한 구순적 에 로티시즘과 새디즘의 존재를 발견하고 구순기 고착의 중요 성을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오늘날에 와서는 동성 애에 있어서 구순기적 요인을 크게 강조하는 경향이 생겼으 며 동성애 관계에 있는 두 사람 모두를 그들의 환상속에 존재하는 모자관계를 상징하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파솔리니는 삶의 행적이 비교적 소상히 파악될 수 있는 동시에 동성애가 엄격한 사회적 지탄을 받지않고 있 는 이 시대에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현대 예술가이기에 다 행히도 그의 예술적 가치는 지금까지도 온전히 보존될 수 있 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의 비참한 최후는 여지껏 그 진 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경찰의 공식적인 발표 는 17세 소년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 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의 동성애 파트너에게 살해되었다는 점이다. 파솔리니는 이미 젊은 시절, 초등학교 교사로 일할 때부터 어린 소년에 대한 병적인 집착으로 고발되어 해직 된 경력이 있었다. 이성과의 성적 접촉을 거부하고 동성애 적 사랑에 집착한 그의 행적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 나 어머니에 대한 근친상간적 욕구를 부인하기 위한 방어

일수는 있다. 여성과의 접촉은 자신의 근친상간적 욕망을 자극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에 그러한 욕망으로부터 도피하 는 수단으로서 동성애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또한 그는 어려서부터 죽음에의 동경 같은 경향을 보였는 데 결국 자신의 동성애 파트너의 손에 의해 살해되는 비극 을 맞이하고 말았다. 이는 마치 동성애 친구의 손에 의해 목 이 잘려나간 미시마 유키오의 경우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미시마는 스스로 자결을 선택한 입장이었고 만약 할복이 실 패할 경우에 친구가 대신 자신의 목을 칼로 베어주기를 미 리 부탁한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는 있겠다 (이병욱 2001).

이태리의 분석가 Ferraro(2003)는 정신적 양성성 psy- chic bisexuality과 창조성간의 밀접한 관련성을 주장하였 는데, 그에 의하면 양성성이란 부모와의 동일시의 표현뿐 아니라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에 관련된 자기의 속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다 순수한 정신적 개념으로 이해해야한다고 하 였다. 그는 이러한 양성성이 차단되고 부조화에 빠지게 될 경우, 개인적 창의력 발휘에 어려움을 겪게된다고 주장하였 는데, 파솔리니의 경우에는 왕성한 창조력을 발휘하면서도 적절한 양성적 관계의 균형을 유지하였는지 여부에 대해서 는 의문의 여지가 많을 것 같다. 수많은 예술가들의 경우에 서 보듯이 양성성 확립에 실패한 듯이 보이면서도 탁월한 창조성을 발휘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이 보 인 정신병리적 곤경과 갈등이 창의력을 자극시키는 원동력 이 된 경우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동성애적 경향을 포함한 인간의 성애적 측면에 대한 정신 분석학계의 관심이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유럽의 분 석학계가 더욱 그런 경향을 보이고있다는 점이 특징이기도 하다. 그런 관점에서 Chodorow(1992)가 이제는 더 이상 이성애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하지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동성애를 이성애에 비하여 병적인 증상이라고 주장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 것은 적어도 성성 sexuality에 관 한한 전통적 이론의 고수가 그만큼 힘들게 되었음을 인정 한 것이며 이를 뒷받침하듯 이태리의 분석가 Lingiardi와 Capozzi(2004)가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오늘날 대다수의 이태리 분석가들이 동성애를 부정적 시각에서 보는 전통적 입장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사실 이다.

파솔리니가 비록 자살이 아니라 타살로 인해 목숨을 잃기

는 했지만 인적이 드문 로마 근교의 외진 들판에까지 함께

동행했다는 사실이 의문스런 점이기도 하다. 그는 반오이디

푸스적인 사회적 윤리 기준에 대해 반역한 죄로 너무도 값비

싼 대가를 치루었는지도 모른다. 파솔리니는 어찌보면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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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사노바와는 정반대의 극단적인 수단으로 자신의 근친상간

적 욕구를 실현시키려 했는지도 모른다. 드러난 증거는 없 지만 그가 미성년인 동성애 파트너로 하여금 강렬한 공격 성을 유발시켰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Freud (1920)는 인간의 본능을 에로스와 타나토스로 이원화시킴 으로써 비로소 공격적 파괴적 본성에 주목하게 되었지만 그 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호배타적인 차원에서 설명하였 을 뿐이다. 오히려 Stoller(1979)는 적개심이 배제된 성은 성적 무관심과 지루함을 초래할 뿐이라고 하면서 공격성과 성적 흥분과의 밀접한 관련성을 강조하였다. 그러한 주장은 인간의 성과 공격성이 상호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 관계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서, 이는 공격성이 결여된 성의 무미건조성에 대하여 언급했던 Kernberg(1995)의 견해와 일치하는 것이며 이러한 주장은 결국 사랑과 미움의 진정한 통합이야말로 건전한 애정관계의 불가피한 조건이 라는 결론에까지 이르도록하게 만든 주된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영화의 세계로 뛰어든 이후, 파솔리니가 만든 작품들은 한결같이 충격적인 파급효과를 낳았다. 그의 영화들이 던지 는 장면들과 메시지는 가히 충격적이다. 파솔리니는 영화에 서 전혀 새로운 표현 수단을 발견하고 몹시 흥분하였다. 그 가 전하는 메시지는 대략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가 마르크스주의요, 둘째는 성적 도착의 정당성이며, 셋째는 오 이디푸스적 갈등이라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요인들은 파 솔리니의 모순되고 역설적인 심적 상태를 그대로 반영한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신봉은 전형적인 파시스트의 하수인 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복수였으며, 어머니에 대한 근친상 간적 욕망은 파솔리니의 정상적인 결혼을 가로막는 주된 장애물이었다. 어린 미소년들은 성인이 되는 것에 대한 그 자신의 두려움과 거부감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아름 다운 어머니와 야비한 아버지의 이미지가 축소되고 중복된 상태의 상징적 대상일 수도 있다. 동성애에 대한 분석적 연 구로 유명한 Socarides(1978)는 동성애의 역동적 기원을 어머니에 대한 과도한 근친상간적 욕망과 접근 불가능한 아 버지와의 강한 감정적 관계에서 찾았다. 어머니에 대한 성 적 소망은 불안과 죄책감을 유발하는 동시에 어머니에 매 달리고자 하는 욕구와 그녀와의 밀접한 접촉을 회피하고자 하는 의도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되며 성인기에 가서도 계 속해서 다른 모든 여성들과의 접촉을 기피하게 된다는 것 이다. 파솔리니는 이러한 도식적 설명에 잘 들어맞는 특성 들을 실제로 보여준다. 그러나 불안의 성애화 및 도덕적 피 학증, 그리고 파트너와의 나르시시즘적 동일시도 고려해볼 수 있는 요인들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파솔리니는 나이

가 든 이후에도 계속해서 어린 미성년들을 상대로 동성애적 관계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소아성애증 pedophilia 경향도 배제할 수 없지만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기는 어렵다. 비록 Freud(1905)는 자신의 비교적 초기 논문에서 동성애와 새 도매저키즘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 바 있지만 그것은 리비 도가 부착되는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관점에서 이루어진 점 이 특징이다. 다시 말해서 갈등 해소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내용은 아니라는 뜻이다.

동성애를 이성애에 대한 거부 및 회피라는 관점에서 생각 해본다면 이성과의 성적 접촉에 대하여 두려움을 지니게된 역동적 배경을 고찰해 보지 않을 수 없다. Freud(1910b)는 남성들의 배우자 선택에 관여되는 다양한 역동적 요인들을 살펴본 바 있지만, 소위 성적 공황 sexual panic을 야기하는 원인이 근친상간적 욕망의 거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파솔 리니의 경우에도 그러한 설명이 적용될 수는 있겠다. 그러 나 Kaplan(1987)의 한 여성환자 증례에서도 보듯이 자신 의 불안정한 어머니와의 파괴적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 자신과 동성인 모든 여성들을 불신하는 가운데 성적으 로 바람직한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회피하게 되는 경우도 있 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동성애와 무관한 성적 공황 및 회피 도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될 것이다. 파솔리니의 동성애 는 어머니와의 공생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모든 여성들과의 성적 접촉을 거부해야된다는 점과 자신의 근친 상간적 욕망을 일깨우기 쉬운 모든 위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시켜야 한다는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과 동성인 아버지에 대한 적대적 양가감정의 반복 강박 행위로 간주할 수도 있겠다.

파솔리니의 아버지는 가학적인 인물이었으며 어머니는

피학적 특성을 지닌 가련한 이미지의 여성이었다. 그가 자

신의 영화들을 통하여 표현한 새도매저키즘적 경향들은 결

국 파솔리니 자신의 부모관계를 우회적인 수법으로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을 가해자인 아버지로부터 피

해자인 어머니를 구원하는 사명을 띄고 태어난 것처럼 스스

로 인식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임무는 매우 위험한

사명이었으며 결국 그는 어린 남창으로부터 무참히 살해되

는 운명을 겪음으로써 스스로 징벌을 가한 오이디푸스처럼

자신이 맡은 위태로운 임무를 마감하였다. Fine(1979)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새도매저키즘적 해결 방식에 대하

여 언급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금기시되는 사회에서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은 반동형성 기전에 의해 사랑으로 변

형되기 쉽다고 하였다. 이러한 변형은 특수한 유형의 초자아

를 낳게 되는데 상대에 대한 가학과 피학의 관계를 사랑으

로 충만한 특수 관계로 경험하는 심리적 왜곡을 지니게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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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솔리니의 정신병리

100

든다. 다시 말해서 사랑과 미움의 차이에 대한 혼란된 분별 의식을 지니게 되는 것이 특징이다.

파솔리니는 자신이 무신론자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토 대로 한 수 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는 공산주의자이면 서도 현대 이태리의 여러 급진적 운동들을 신랄하게 비판하 기도 했던 인물이다(Greene 1992). 영화 [마태복음 1964 년], [오이디푸스왕 1967년], [테오레마 1968년], [메데아 1970년], [캔터베리 이야기 1971년] 등은 그의 로마시대에 나온 작품들로서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사회적 물의를 일 으킨 작품들이다. 특히 [테오레마]는 종교계로부터 비난이 쏟아진 작품으로 어느 부유한 가정에 찾아든 낯선 남자로 인 해 가족 전체가 도덕적 파탄을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이 낯 선 이방인은 거의 신적인 또는 악마적인 존재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딸, 하녀와 아들 모두를 유혹하여 정신적 파 괴로 이끈다. 이 작품에서 한 부유한 가정을 파괴시키는 주 인공은 다름 아닌 파솔리니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외견상 으로만 본다면 타락한 부르조아에 대한 징벌같이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내면적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파솔리니 자신의 근친상간적 욕구 및 아버지에 대한 가학적 징벌, 동 성애적 충동 그리고 가족에 대한 증오심 등을 모두 포괄하 는 환상의 세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초서의 소설을 표현주의적 수법으로 영화화한 [캔터베리 이야기]는 사춘기 소년들과의 배설행위 및 새도매저키즘에 대 한 파솔리니 자신의 집착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이는 그후 1975년에 사드백작의 원작소설을 나치 파시스트 통치하의 북부이태리 살로 지방으로 무대를 옮겨 영화로 만든 [살로 혹은 소돔의 120일]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고위직 관리들이 미소년, 소녀들을 고성에 감금하고 잔혹하고 도착적인 성의 향연 및 고문, 강간 등의 비인간적 행각을 벌이다가 결국에 는 무참하게 살해한다는 내용으로 가학증과 피학증, 오물기 호증 coprophilia과 항문애, 동성애 등의 온갖 변태적 행위 와 잔혹한 장면들로 악명이 자자했던 작품이다. 특히 파시 스트들이 소년들에게 강제로 대변을 먹이는 장면과 무참하 게 소년들을 살해하는 마지막 장면 등은 영화사상 가장 가 학적이고도 도착적인 영화로 꼽힐만하다. 그러나 Fromm (1973)도 언급하였듯이 인간의 잔혹한 파괴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도매저키즘과 네크로필리아 necrophilia를 피 해 갈 수 없다. 그는 항문애적 새디스트의 예로 히틀러, 히믈 러, 스탈린 등의 인물들을 제시했지만 파솔리니는 공산주의 자들의 잔혹성은 전혀 다루지 않고 그러한 파괴적인 도착적 특성을 파시스트들에게로만 돌렸는데 그것은 아버지에 대 한 적대감이 그만큼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영화 역시 외견상으로는 파시스트에 대한 그의 적대감을 표현한 것이

지만 파솔리니 자신의 도착적인 욕구와 환상의 세계를 여 실히 드러낸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속에서 평범한 이성간 의 사랑이 발견되면 즉각적으로 처형시키는데 이는 파솔리 니 자신의 근친상간적 욕망에 대한 부정이며 반동형성이기 도 하다. 그는 이 작품을 완성시키지 못한채 동성애 파트너 인 거리의 소년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파솔리니의 영화를 지탱해주는 두 가지 주요 테마는 성과 폭력이다. 그리고 성과 폭력을 가장 끈끈하게 이어주는 것은 새도매저키즘이라고 할 수 있으며 결국 파솔리니는 자신의 동성애적 새도매저키즘 이라는 도착적 환상과 욕구를 예술작업으로 승화시키는데 만 족하지 못하고 현실생활에서도 성취하고자 욕심을 부린 결 과, 그 자신 스스로가 오히려 그가 그토록 집착하고 추구했던 성과 폭력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파솔리니와 오이디푸스

파솔리니의 어린 시절은 고통스럽지만 역설적이게도 행 복으로 가득찬 시기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도덕성에 문제가 많았던 아버지의 존재 때문에 모자가 겪은 정신적 고통은 이 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럴수록 그들 모자간의 관 계는 더욱 밀착되고 서로 의지하며 격려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파솔리니의 가족은 이미 출발부터 문제가 많았다.

그의 아버지는 방탕한 직업군인으로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적극 동조한 인물이었다. 강제적인 성추행으로 결혼에 응 했던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멀리 하였으며 부부관계는 당 연히 불행할 수 밖에 없었다. 어린 파솔리니는 어머니의 오 른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그녀로부터 시를 배웠다. 발 랄하면서도 몽상적인 경향의 어머니는 남편 대신 어린 파 솔리니에게서 대리 만족을 얻었으며 그 역시 아버지로부터 학대받은 어머니를 보호할 책무를 느꼈다. 아버지에 대한 반 감과 적대감은 우익 파시스트였던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길, 즉 공산당에 입당함으로써 멋지게 복수할 수 있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우익이었던 아버지에 대항하여 좌익의 길을 선 택한 것이다. 파솔리니의 정치적 이념은 죽을 때까지 변하 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삶과 모든 작품들은 어머니에 대한 헌시와도 같은 의미를 지닌 것들이다. 그만큼 어머니의 존 재는 파솔리니의 세계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 는 신성 불가침의 영역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동경은 그녀의 고향인 카사르사 지방에 대

한 애정으로 나타나며 파솔리니의 나이 20세에 발표한 최

초의 시집 [카사르사의 시]는 그 지방의 프리울리 방언으

로 씌여진 작품이었다. 방언에 익숙치 않아 사전을 찾아가

며 쓸 정도로 그는 어머니의 고향을 사랑했다(Schweitz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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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炳 郁

101 1986). 그리고 그가 죽은 후, 시신이 묻힌 곳도 카사르사 지

방의 묘지였다. 어머니는 그녀 자신의 고향 이야기를 어린 파솔리니에게 자주 들려주면서 시를 읽어 주기도 했는데 총명했던 그는 7세 경부터 시를 쓰기도 했다. 어머니와 함 께 하는 시간이야말로 그에게는 축복의 기회였으며 무엇과 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그들 모자는 함께 들 판을 자주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이처럼 밀 착된 관계는 파솔리니로 하여금 어머니 이외의 다른 여성 들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파솔리니가 만든 영화 [오이디푸스 왕]은 [마태복음]과 더불어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지만 그가 선택한 주요 테마가 오이디푸스 갈등이라는 점에서 자신의 핵심적인 문제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를 학대한 가해자 아버지로부터 순결한 어머니를 지키고 구원 해야만 한다는 파솔리니의 구원환상은 자신의 근친상간적 욕망을 은폐시키기에 안성마춤이다. 그는 성모 마리아 대 신 어머니를 믿었으며 잔혹한 아버지를 거부하면서 동시에 신의 존재를 거부했다. 그의 양가적 감정은 자신이 거부하고 적대했던 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 및 죄책감에서 드 러난다. 파솔리니의 이율배반성은 신을 거부하면서도 성서 의 내용을 토대로 만든 영화작품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예수를 사랑의 메신저로서가 아니라 체제를 전복하는 혁명가로 표현한다. 파솔리니의 상징계에서는 자신의 모자 관계를 신성한 성모와 예수의 관계로 대입시킨다. 그는 어머 니를 차지하고 학대자로부터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아버지 에 대적하는 혁명가의 임무를 자처한다. 따라서 가부장적 체제에 대한 도전과 전복은 결국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며 어머니를 차지하기 위한 아들의 욕망을 나타낸다. 오이디푸 스는 자신의 저주받은 운명을 한탄하며 스스로 눈을 찔러 앞을 못보게 되었지만 파솔리니는 가학적인 성행위 요구에 반발한 소년의 손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파솔리니를 직접 살해한 사실을 자백한 17세 소년 펠로 시는 부당한 성행위를 강요하는 파솔리니의 태도에 두려움 을 느낀 나머지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울타리목을 빼앗아 내 리쳤다고 진술하였다. 나이 오십을 넘긴 파솔리니의 입장에 서 늘 그래왔던 매일 밤의 야간 산책에서 벌인 지속적인 미 소년 사냥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꿈틀대는 육체와 동물적인 사랑 그리고 젊음을 찬미했던 그에게 다 가온 육체적 힘의 한계는 항상 영원한 아들로서의 피해의 식에 사로잡혀 지내올 수 밖에 없었던 파솔리니에게 자신도 이미 아버지의 나이에 도달하고 말았다는 자괴감을 느끼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어린 소년들과의 성적인 행위 자체 가 그에게는 동년배의 동성간에 이루어지는 순수성을 이미

넘어선 부자지간의 성행위를 연상시키기에 족했을 것이다.

평소에 운동으로 단련된 그가 오히려 허약하고 어린 소년에 게 매를 맞고 죽었다는 것은 그 자신의 내면에 존재했던 죄 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Abel 등(1980)이 언급하였듯이 강간환상 rape fan- tasy의 행동화로 인하여 상대의 심한 저항을 야기시켰을 수 도 있다. 다시 말해서 그의 무의식에 자리잡은 어머니에 대 한 근친상간적 욕구 및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를 지 키려는 구원환상뿐 아니라 역설적으로 자신의 아버지가 어 머니에 했던 것과 똑같이 그 역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강 간환상을 동시에 지녔을 수도 있다. 그러한 환상은 동성과 의 성관계에서도 강렬한 흥분을 일으켰을 수 있다. 흥분과 죄의식 이 모든 복잡한 과정이 파솔리니의 정신세계를 혼란 에 빠트린 주된 요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처럼 파솔리니 는 평소 자신의 영화에서 즐겨 묘사했던 새도매저키즘적 죽 음과 유사한 방식으로 최후를 맞이했는데 이는 결국 그 자 신이 평생토록 해결하지 못하였던 부모와의 도착적인 관계 를 현실생활에서 재연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그 결과는 비 극적인 종말로 막을 내리고 말았지만 시공을 뛰어 넘은 현대 로마의 오이디푸스는 [오이디푸스 왕]이라는 걸작 영화를 남긴채 우리들 앞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다.

結 語

파솔리니의 삶과 죽음은 비록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예 술가였지만 자신의 무의식적 욕망과 갈등에서 결코 자유로 울 수 없었던 한 신경증적 인간의 삶의 궤적을 보여준다.

기존의 모든 가치관을 전복시키고자 했던 파솔리니의 야심

찬 시도는 동시대의 반항적인 세대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영

감을 주었다. 그는 일생동안 성과 폭력이라는 주제에 집착

했으며 그리고 자신의 최후도 성과 폭력에 의해 마무리되었

다. 어머니에 대한 절대적 신앙과 아버지에 대한 반역은 그

의 삶을 지탱하는 강력한 추진력이었으며 그러한 갈등과 욕

망에서 비롯한 창의성은 그로 하여금 놀라운 예술적 업적을

낳게 하는 동기를 마련해주었다. 심리적 건강이 오히려 예

술적 창조성에 걸림돌이 되는 수가 많다는 사실을 상기한

다면 비록 본인은 불행한 삶을 영위했다 하더라도 그가 남

긴 작품들은 파솔리니 자신보다 더욱 값진 유산으로 보존될

것이기 때문에 그가 보인 정신병리는 부차적인 문제로 간

주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파솔리니의 생애를 통하여 우리

가 얻을 수 있는 소득은 그의 창조성 뿐만 아니라 그러한 예

술적 작업의 원동력을 마련한 삶의 발달과정과 정신역동에

주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는 점이 될 것이다.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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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솔리니의 정신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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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하지 않은 한 예술가의 삶은 그래서 보편적 심리이론으 로서의 정신분석적 관점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하나의 예증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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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Pasolini and His Psychopathology Byung-Wook Lee, M.D.

Pier Paolo Pasolini(1922-1975) was a famous writer and movie director in postwar Italy. He was murdered by a homosexual prostitute boy, and his body was found in a deserted field outside Rome. This paper studies his psychopathology through life, and especially focuses on his overt homosexuality and latent moral sadomasochistic tendencies. These traits were revealed in his famous movies which include “Teorema”, “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tthew”, “The Decameron”, “The Canterbury Tales”, “Oedipus Rex”, and “Salo”.

This paper discusses Pasolini’s life and death, and his psychopathology in relation to the movies mentioned above. The major concern is Pasolini’s Oedipal theme including incestuous wishes and rescue fantasy or rape fantasy, with revenge and murder wish for his father. His unstable ambivalence to his parents is also related to his ambivalent attitude to Catholicism and Marxism. In spite of the limitations of psychoanalytic study on creative artists, I try do study Pasolini with daring speculation and psychodynamic formulation. I admire Pasolini's creative genius even though he shows many psychopathological problems.

KEY WORDS

: Pasolini·Psychopathology·Homosexuality·Oedipal Issues.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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