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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 시가의 結構 분석을 통한 처세태도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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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康 시가의 結構 분석을 통한 처세태도 연구*

– ‘入世’에서 ‘出世’로 –

35)

심 우 영**

❙국문초록❙

이 논문은 혜강의 시를 대상으로 결구 분석을 통하여

入世

에서

出世

를 지향한 처세태도를 밝히는 데 목적 을 두었다

.

그의 사상 기조는 노장사상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유가적 정치 이상도 일부 존재하고 있었다

.

그리 고 그의 시 총

11

53

수를 대상으로 각 단편시 및 연작시의 결구를 분석하였는데

,

대부분

입세

에서

출세

로 가는 순차적인 배열 구조를 이루고 있다

.

그의 시에는 유가적 제세 의지는 거의 보이지 않고

,

다만 「내 뜻을 술회하다

(

述志詩

)

」 제

1

수에

고아한 뜻 펼칠 수가 없구나

.(

雅志不得施

)’

라는 시구가 등장하는데

, ‘

雅志

가 곧 노 장의 無爲之治가 가능했던 상고사회처럼 만들겠다는 뜻이므로

,

그의 도가적

입세

정신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

그리고

출세

의 이유는 대부분

고결한 자신

현실적 고민 세계

두 가지에 해당한다

. ‘

출세

로의 전환 또한 크게

은일

유선

그리고

도가의 소요경계

로 나눌 수가 있는데

, ‘

은일

은 은일 추구와 육체적 실천 그리고 정신적 자락으로 나타났고

, ‘

유선

은 인격적 독립과 정신적 해탈을 목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상상 속 선계의 모 습과 다양한 활동이 그려졌으며

,

그의 현학사상이 가미된

도가의 소요경계

는 무위의 도를 구축하고 玄虛와 소 요유의 경계를 지향하며 萬物齊同의 사상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

[

주제어

]

嵇康

,

入世

,

出世

,

結構

,

隱逸

,

遊仙

,

逍遙遊

,

無爲

,

仙界

,

神仙

,

處世態度

❘목 차❘

.

들어가면서

.

혜강의 사상 기조

.

단편시 및 연작시의 결구 분석

. ‘

입세

정신 및

출세

사상

.

나오면서

* 본 연구는 2018학년도 상명대학교 교내연구비를 지원 받아 수행하였음(2018-A000-0175).

**상명대학교 글로벌지역학부대학 중국어권지역전공 교수 / wyshim@smu.ac.kr

(2)

Ⅰ. 들어가면서

중국 전통 士人들의 인격 특색은

入世

出世

의 이원론적 대립 형태를 띤다

. ‘

입세

는 유가사상의 적극적 인 실천정신으로

捨生取義

1)라는 인생 최고 도덕표준을 제시하여

德治愛民

이라는 정치문화를 형성하였다

.

반면에

출세

는 도가사상의 소극적인 정신경계로

和諧自然

을 인생 최고의 이상으로 설정하여

隱逸遊仙

의 정신문화를 탄생시켰다

.

입세

를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入世出仕

라고 할 수 있는데

,

이것의 인격 형성은 춘추전국시대에 유 가학설의

建功立業

정신이 바탕이 되어 전해 내려오다가

,

한대 이래로 정치 학설의 한 의식 형태로 자리매 김하였다

.

한편

출세

出世隱逸

이라고 할 수 있는데

,

이것의 인격 형성은 도가학설 특히 장자의 인생철학 이자 처세태도인

逍遙遊

사상이 원천이 되어 전해 내려오다가

,

·

위 교체기에 이르러 조식을 비롯한 많은 사인들이 노자와 장자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

2)

·

진 교체기에 이르러 개성의 자유와 독립 의식 의 각성을 강력하게 표방하면서 확립되었다

.

혜강은 어려서부터 몸에 익힌 유가의 생활태도로 인해 濟世意志가 있었으나

,

사마씨 세력의 정권 탈취 야 욕과 허위적인 명교의 예법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

노장사상에 심취하고 현학에 통달하여 결국

越名敎而任 自然

”(

「釋私論」

)

을 주장하였다

.

이것은 노장 사상을 근간으로 사마씨들이 치세 이념으로 치부한 유가사상을 비판 성토하는 것이며

,

또한 그들이 표방하는 예교의 속박을 벗어나 심신의 자유와 정신적 소요경계를 추구 해야 한다는 장자의 사상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

그리하여

출세은일

적 인격 형성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오로 지 인격의 독립과 자유를 목표로 은일을 실천하고 遊仙을 상상하면서

沖靜得自然

3)이라는 최고 경계를 추 구하였다

.

이러한 그의 인생 역정과 사상의 변화 그리고 심리적 갈등이 내재된 감정과 뜻의 기복 등이 오롯 이 시에 담겨 있다

.

그의 시는 현재 총

11

53

수가 전해져 오는데

,

4) 그 내용 속에는 위진 교체기에 처한 시인으로서 성년이 되자 노장사상에 심취하여 유가적인 제세의지는 이미 꺾여 사라지고

,

오히려 험악한 정치 상황으로 인해 겪 는 고통과 두려움

,

인간 본래의 자유로운 삶에 대한 추구

,

노장사상의 설리를 통한

高蹈出世

에 대한 강력한 희망

,

산림 속의 은일자락

,

그리고 양생론을 바탕으로 한 이상세계인 신선세계 등이 담겨 있다

.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분석해 보면

,

한 수의 단편시 안에 여러 내용이 순차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있고

,

혹은 한 조의 연작시 가 동일한 주제로 내용이 점층적 구조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

대부분 세 단계를 거치면서 변화를 보이는데

,

먼저 현실적 고민과 울분에서 시작하여

,

다음에 은일을 행하고

,

종국에는 유선을 택하여 나아간다

.

이 논문은

1) 󰡔孟子·告子篇󰡕에 등장하는 말로, “목숨을 잃을지언정 옳은 일을 해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2) 仲長統, 徐干, 王昶 등이 老莊의 ‘淸淨寡欲’, ‘全眞保性’의 사상을 자신들의 규범으로 삼아 ‘保身遠禍’를 꾀했다. 하지만 초보 단계를 벗어나지 못해 자각적인 인생추구의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3) 「내 뜻을 술회하다(述志詩)」 제1수

4) 戴明揚의 󰡔嵇康集校注󰡕(北京, 人民書局, 2014)에는 총 11편 53수가 실려 있으나, 그 중 「잡시」 한 수는 모두 여덟 편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리고 󰡔新譯嵇中散集󰡕(臺北, 三民書局, 1998)에는 篇題와 體裁가 일부 상이함을 보여 총 14편 60수로 되어 있다. 이 논문은 전자를 저본으로 삼는다.

(3)

바로 이런 점에 착안하여

,

단편시에 있어서의 순차적 결구와 연작시에 있어서의 점층적 결구를 분석한 후

,

그것을 통해 나타난 처세태도가 어떤 정신에서 시작하여 어떤 사상으로 승화되었는지 탐색하고자 한다

.

그리 고

7

결구 분석 이전에 먼저 그의 사상 기조를 살펴봄으로써

,

이 논문의 궁극적인 목적인 시에 나타난 그의 처세 태도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하였다

.

Ⅱ. 혜강의 사상 기조

嵇喜는 「嵇康別傳」에서 이르기를

집안은 대대로 유학을 신봉하였으며

,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

활달하고 호탕함이 탁월하 였다

.

고상한 품격과 굳센 절조는 본성에 따라 행하고

,

명예를 중시하지 않았으며

,

사람을 대함에 크게 너그러웠다

.

스승 없이 배워도

,

두루 모르는 게 없었으며

,

장년이 되자 노장의 학문을 좋아하여

,

한적 하고 조용하게 지내며 아무런 욕심이 없었다

.5)

라고 하였다

.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가 어릴 적부터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유가의 전통교육을 받고 자랐으 나

,

성년이 된 이후에는 노장 공부를 좋아하여

恬靜無欲

의 처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고

,

위진 사인들처럼 심령의 해탈과 안위를 추구하면서 자연스럽게 도가사상에 눈을 돌려 현학이 태동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

그는 「산거원에게 보내는 절교의 편지

(

與山居源絶交書

)

」에서 말하기를

항상 탕왕과 무왕을 비난하고 주공과 공자를 박대해 왔는데

,

만약 출사하여 멈추지 않는다면

,

이 일 은 드러나게 되어 세간의 명교로는 용납이 되지 않을 것이니

,

이게 불가함의 첫 번째 이유라네

.6)

라고 하였는데

,

이것이 빌미가 되어 혜강은 유가학설의 반대자이며 봉건예교의 반역자라는 오명까지 얻게 되 었다

.

그러나 청 兪正燮

(1775~1840)

은 「與山居源絶交書」의

非湯武而薄周孔

이라는 문구에 대해

,

혜강이 비 난한 것은 사마씨 집단이 왕위 찬탈을 위한 수단으로 끌어들인

湯武周孔

을 비난하고 박대한 것이지

,

결코 역사적으로 엄연히 존재하는

탕무주공

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

7) 노신

(1881~1931)

또한 이르기를

5) 󰡔三國志󰡕 권21 「王粲傳」附 「嵇康傳」 南朝 宋 裴松之注, “家世儒學, 少有俊才, 曠邁不群, 高亮任性, 不脩名譽, 寬簡有大量. 學 不師授, 博洽多聞, 長而好老·莊之業, 恬静無欲”

6) “每非湯武而薄周孔, 在人間不止, 此事會顯, 世敎所不容, 此甚不可一也”

7) “其時王肅、皇甫謐之徒, 誣造湯武周孔之言, 康謂簒逆之事, 以聖賢爲口實, 心每非薄之. 要使千載下, 知康所非薄者, 王肅、皇甫 謐等所造, 司馬懿、鍾會等所牽引之湯武周孔也”(范子燁, 「人的自由與仙的優遊」, 南陽師範學院學報(社會科學版) 9: 10, 2010, 47쪽에서 재인용)

(4)

혜강과 완적의 죄명은 예교를 훼손하고 파괴한 데 있다고 줄곧 얘기를 해 왔다

.

그러나 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

위진 시대에는 예교를 숭상하는 자가 얼핏 훌륭한 것처 럼 보이지만

,

실제로는 예교를 훼손 파괴하였고 아예 믿지도 않았다

.

겉으로 예교를 훼손 파괴한 것처 럼 보이는 자들이 오히려 예교를 인정하고 매우 신뢰하였다

.8)

라고 하였다

.

예교를 내세워 정권을 장악하고 온갖 살육을 자행한 사마씨들은 진정한 유가 집단이 아니며

,

오히려 혜강이나 완적 같은 자가 유가사상을 근본으로 취하면서 현실생활의 필요에 의해서 노장사상을 받아 들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로는

,

먼저 혜강이 쓴 「家誡」를 들 수 있는 데

, ‘

신중함

(

)’

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자잘하고 비굴하게 굴지 말고

,

마땅히 크고 관대하게 여유로워야 한다

.

자잘하고 염치를 느끼게끔 굴지 말고 마땅히 크게 양보하여야 한다

.

예를 들어 조정을 위해 관직을 양보하거나 의로움을 위해 생 명을 양보하는 것

,

혹은 공문거와 같이 형을 위하여 죽겠다는 행동 등

,

이런 것이 바로 충신열사의 절 개이다

.9)

라고 하였다

.

대의를 따지고 충신열사의 절개를 지닌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

명 張溥

(1602~

1641)

또한 이르기를

혜중산은 魏朝에서 방탕하였으나 오직 「家誡」에서 만은 공손하고 근면하여 예로써 자

식을 가르치려 하였다

.”

10)라고 하였는데

, ‘

敎子以禮

는 바로 그의 자식이 전통유교의 규범에 따라 올바른 사 람이 되어달라는 요구이다

.

물론 「家誡」는 혜강이 처형당하기 직전에 쓴 것으로

,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깊은 회한이 반영된 것이긴 하지만

,

유가사상이 내심 깊숙이 존재하지 않고선 나올 수 없는 것이었 다

.

그리고 도가로써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펼칠 때도 명교의 흔적을 자주 노출하였는데

,

「성무애악론」에 이 르기를

옛날 왕이 된 자는 천명을 이어받아 만물을 다스리고

,

반드시 간단하면서도 쉬운 교화를 숭상하여 무위의 정치로 다스렸습니다

.

임금은 위에서 조용히 있고

,

신하는 아래에서 순종하니

,

오묘한 교화가 말없이 이루어지고 하늘과 인간이 교합하여 평안해졌습니다

.11)

라고 하였는데

,

여기서

임금은 위에서 조용히 있고

,

신하는 아래에서 순종하니

라는 두 구는 왕과 신하를 구 별하는 인식이 존재한다는 전제하에서

寬容之道

를 중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그리고 「太師箴」에서는 당시

8) 「魏晋风度及文章与药及酒之关系」, 󰡔而已集󰡕, 󰡔魯迅全集󰡕 제3권, 513쪽, “嵇阮的罪名, 一向说他们毁坏礼教. 但据我个人的 意见, 这判断是错的. 魏晋时代, 崇尚礼教的看来似乎很不错, 而实在是毁坏礼教, 不信礼教的. 表面上毁坏礼教者, 实则倒 是承认礼教, 太相信礼教”

9) “不須作小小卑恭, 當大謙裕; 不須作小小廉恥, 當全大讓. 若臨朝讓官, 臨義讓生, 若孔文擧求代兄死, 此忠臣烈士之節” 10) “嵇中散任誕魏朝, 獨「家誡」恭勤, 敎子以禮”

11) “古之王者, 承天理物, 必崇簡易之敎, 御無爲之治; 君靜其上, 臣順其下; 玄化潛通, 天人交泰”

(5)

의 부패현상을 폭로하면서 자연 순박한 전설상의 고대사회를 통해 이상적인 제왕을 미화하기도 했고

, “

단정 하고 장엄한 천자시여

!

언제나 자신의 허물을 들으려 하시고

,

텅 빈 마음으로 백성을 이끌어주시며

,

성심을 다해 충언을 구하십시오

.”

12)라고 하였으니

,

유가의 정치 이상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을 듯하다

.

따라서 그의 사상은 노장이 주를 이루기는 하지만 어릴 적부터 몸에 밴 유가 또한 마음 속 깊이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

그렇다면 이러한 그의 사상 기조가 과연 그의 시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으며

,

처세태도 또한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결구 분석을 통하여 확인해 보고자 한다

.

Ⅲ. 단편시 및 연작시의 결구 분석

1. 단편시의 결구 분석

먼저 「내 뜻을 술회하다

(

述志詩

)

13) 두 수 중 먼저 제

1

14)를 보면

,

1~6

구는 신령스러운 잠룡15)을 등 장시켜 大庭氏와 伏羲氏를 흠모하면서도 승천하지 못하고 배회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

이는 자신을 비유한 것 이다

.

그리고 제

7~12

구는 뜻을 같이 하는 사람 없고 비방만 난무하는 현실에서 곡절 많은 인생으로 근심만 가득하여 평소에 품은

고아한 뜻

(

雅志

)”

을 펼칠 수가 없다고 실토하였다

.

여기서

고아한 뜻

이란 앞에서 언 급한 대정씨와 복희씨 등이 존재한 상고사회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

,

상고 사회는

寂寞無爲

한 성왕 이 존재하여 질박하고도 簡易한 규율로 일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이상 사회였다

.

그런데 이런

고 아한 뜻

을 펼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직전에 언급한 현실 세계에 있다

.

다시 말해

,

자기와 뜻을 같이 하는 자가 없고 속인들은 오히려 비방만 하기 때문에 인생이 순탄치 못하고 근심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

이는 사마 씨 정권에 대한 우회적 현실 비판이다

.

이어지는 제

13~18

구에서는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영월과 장의로 하여 금 각성을 불러 일으켜 성공하였듯이

,

자신도 험악한 현실 세계에서 정신적 승리를 위해 홍애선생을 등장시 켜 신선세계로의 전환을 모색한다

.

그리고 마지막 제

19~26

구에서는 신선세계의 유람을 통해 자유경계의 즐 거움을 맘껏 누리면서 한편으론 부귀영화를 위해 하루 종일 움직이는 속세와 비교하였다

.

12) “穆穆天子, 思問其愆. 虛心導人, 允求讜言”

13) 이 시의 시작 연대에 대해서 두 가지 학설이 있다. 첫째, 侯外廬 등이 지은 󰡔中國思想通史󰡕에서는 그의 입옥은 景元 3년 (262)에 이루어진 것이며, 「술지시」 역시 몇몇 내용으로 보아 그 해에 지은 것이라 하였다. 韓格平, 皮元珍, 曹旭 등이 그것 을 따랐다. 둘째, 莊萬壽는 󰡔嵇康硏究及年譜󰡕에서 후외려가 인용한 시구는 뜻대로 되지 않은 인생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 이며, 속세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얘기하면서 사마소의 방심을 이끌어내는 것이 목적이라며, 옥중에서 쓴 「家誡」나 「幽憤詩」

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보았다. 후자의 설을 따라 그가 하동으로 떠나기 전 甘露 2년(257) 그의 나이 34세 때의 작품으로 보았다.

14) 潜龍育神軀, 濯鱗戲蘭池. 延頸慕大庭, 寢足俟皇羲. 慶雲未垂景, 盤桓朝陽陂. 悠悠非吾儔, 圭步應俗宜. 殊類難徧周, 鄙議紛流 離. 轗軻丁悔吝, 雅志不得施. 耕耨感寗越, 馬席激張儀. 逝將離群侶, 杖策追洪崖. 焦明振六翮, 羅者安所羈. 浮遊太清中, 更求 新相知. 比翼翔雲漢, 飮露湌瓊枝. 多念世間人, 夙駕咸驅馳. 沖靜得自然, 榮華安足爲.

15) ‘잠룡’은 아직 하늘에 오르지 않고 물속에 숨어 있는 용으로, 왕위를 잠시 피해 있는 임금이나 기회를 아직 얻지 못하고 묻혀

있는 영웅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6)

이어서 제

2

16)를 분석해 보면

,

역시 네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는데

,

1~4

구는 모두 󰡔장자󰡕에서 인용한 것17)으로

,

俗物

(

斥鷃

,

,

)

과 神物

(

神鳳

,

神龜

)

의 비교를 통해 고귀한 뜻을 지닌 자신을 비유하였 다

.

그리고 제

5~12

구는 현실 세계에서의 자신의 입장을 대변했는데

,

자신에 대한 반성과 속세에 대한 달관 이 주를 이룬다

.

그래서 이어지는 제

13~16

구에서는

옛사람

(

古人

)’

좋은 벗

(

知己

)’

을 떠올렸는데

,

이는 바 로 속세로부터의 탈출 시도이다

.

그리하여 마지막 제

17~22

구에서는 이런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자가 바로 隱士임을 직감하고

,

許由와 巢父가 숨어 살았던 箕山에 올라

,

자연과 함께 하며 魂魄을 올바로 다스려 천년 동안 오래도록 걱정 없이 살기를 바랐다

.

이상의 두 시는 모두 자신을

잠룡

신봉

’·‘

신구

등에 비유하여 고결한 품성과 탈속적인 태도를 지닌 자로 스스로 인정하여 속인과 차별화를 시도한 후에

,

현실세계를 언급하면서 제

1

수는 세속에 대한 비난을

,

2

수는 오히려 자신에 대한 반성과 속세에 대한 달관을 주로 표출하였다

.

그리하여 제

1

수에서는 홍애선생 을 등장시켜

遊仙

을 도모했고

,

2

수에서는 옛사람과 좋은 벗을 등장시켜

은일

을 선택했는데

,

그가 유선을 통해 추구한 것은

충정 상태에서 무위자연의 도를 얻는 것

18)이며

,

은일을 통해 추구한 것은

깊이 숨어 혼 백을 다스리면서 오래도록 편안히 사는 것

19)이었다

.

다시 말해

,

전자는

최고의 정신 경계

,

후자는

양생 을 통한 장수

를 갈망하였다

.

따라서 이 두 시는 모두

고결한 자신

현실적 고민 세계

유선 혹은 은일 추구

의 결구 형태를 띠고 있다

.

,

1

수는

입세

(

고결한 자신

,

현실적 고민 세계

)’

에서

출세

(

유선

)’

으로

,

2

수는

출세

(

은일

)’

로 나아가는 구조이다

.

이와 유사한 결구 형태를 지닌 시로는 「수재로 천거된 형 공목의 입대에 바치는 시

(

兄秀才公穆入軍贈詩

)

열아홉 수 중 제

1

수를 들 수 있다

.

20) 이 시는 내용으로 보아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

1~8

구는 인간세상과는 먼 태산 속에서 고결한 기품과 탈속적인 태도로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한 쌍의 난새를 묘사하 였는데

,

사실은 비흥 수법을 이용한 것이므로

,

형이 종군하기 전 함께 추구했던 태도 즉

,

속세와 인연을 끊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절조를 지키고자 했던 형제의 모습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

9~16

구에서는 상황 이 급변하여 난새가 우인에 의해 속박되고

,

사방팔방으로 쳐진 그물 속에서 세속에 얽매이고 만 정황을 묘사 하였다

.

이것은 바로 위진 교체기의 험악한 정치상황과 형의 종군을 비유한 것이다

.

17~20

구는 이러한 상 황에서 혼자 된 수컷은 자의든 타의든 이별로 인해 생긴 슬픔과 그리움에 비분강개한다

.

21~24

구는 옛날 韓信의

높이 나는 새가 없어지면

,

좋은 활도 사라진다

.”

21)라는 슬픈 탄식처럼 통치자와 신하의 관계를 언급

16) 斥鷃擅蒿林, 仰笑神鳳飛. 坎井蝤蛙宅, 神龜安所歸. 恨自用身拙, 任意多永思. 遠實與世殊, 義譽非所希. 往事既已謬, 來者猶可 追. 何爲人事間, 自令心不夷. 慷慨思古人, 夢想見容輝. 願與知己遇, 舒憤啓其微. 巖穴多隱逸, 輕擧求吾師. 晨登箕山巓, 日夕 不知饑. 玄居養營魄, 千載長自綏.

17) 앞 두 구는 「逍遙遊」, 세 번째 구는 「秋水」, 네 번째 구는 「外物」로부터 나왔다. 18) “沖靜得自然”

19) “玄居養營魄, 千載長自綏”

20) 혜강이 26세 때 이 시를 지어 종군한 형 혜희에게 보내자, 형은 자신의 처세 태도가 동생과는 같지 않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莊萬壽, 󰡔嵇康硏究及年譜󰡕, 臺北, 學生書局, 1990, 108쪽). 이에 혜강은 다시 한 번 그를 설득하기 위해 나머지 18수를 지 었다고 한다. 그래서 吳鈔本 󰡔嵇中散集󰡕 總目에는 이것을 분리하여 제1수는 「五言古風一首」라 하고, 나머지 18수는 「贈兄 秀才入軍十八首」로 나누어 놓았다. 여기서는 제1수를 한 수의 단편시로 보았다.

21) “高鳥盡, 良弓藏”(󰡔史記·淮陰侯列傳󰡕)

(7)

하면서

,

출사하여 살아남기란 정말 험난한 여정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

그리하여 제

25~28

구는 형이 종군 전의 원래 상태인 평민의 신분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학수고대하면서

,

太淸 경계에서 아무런 속박 이나 구속 없이 함께 소요하며 살기를 기원했다

.

이상에서 볼 때

,

이 시는

태산 속의 난새 모습

속세의 환경과 속박

비분강개

험난한 정치 역 정

유선 추구

등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그런데 중간 세 부분은 모두

현실적 고민 세계

로 묶을 수 있어

,

이 시 역시

입세

(

고결한 자신

,

현실적 고민 세계

)’

에서

출세

(

유선

)’

로 나아가는 구조이다

.

다음은 「마음 속 깊은 울분

(

幽憤詩

)

22)를 분석하기로 한다

.

이 시는

呂安 사건

에 연루되어 감옥에 들어 간 다음해인 景元

4

(263)

에 지은 것으로

, ‘

峻切

23)한 풍격이 가장 잘 표현된 시로 알려져 있다

. 4

1

구 총

86

구로 이루어진 장편시이다

.

이 시는 내용으로 보아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는데

,

1~16

구는 스스로 오만불손하다고 여긴 자신의 어릴 적 성장 환경과 성년 이후 노장 사상에 탐닉한 자신을 서술하였다

.

17~54

구는 呂安 사 건에 연루되어 영어의 몸이 된 자신의 성격에 대한 자책과 비방세력에 대한 원망을 서술하였다

.

또한 柳下 惠

,

孫登

,

嚴君平

,

鄭子眞 등의 은사를 내세워 일찍이 진정한 은일을 실행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였다

.

그리

고 제

55~80

구는 비극적인 처지에 놓인 자신을 향한 탄식과 분노를 표출하였는데

,

특히 은일을 상징하는

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와 짝을 이루지 못했음을 매우 후회하였다

.

마지막 제

81~86

구는 백이

·

숙제처럼 遁世 隱逸 하면서 양생을 통해 장수하기를 갈망하였다

.

이상에서 볼 때

,

이 시는

과거 회고

(

방자한 어린 시절과 성년 이후의 노장 의탁

)’

자책과 원망

탄 식과 분노

은일 추구

등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자신의 뜻을 밝히고

,

감정을 토로하며

,

玄理를 말하지만

,

이 시 역시 전체적인 틀을 보면

입세

(

현실적 고민 세계

)’

에서

출세

(

은일

)’

로 나아가는 구조 이다

.

다음은 「선경에서 노닐다

(

遊仙詩

)

24) 한 수를 분석하기로 한다

.

이 시는 正元 원년

(254)

그의 나이

31

세 때 작품으로

,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

1~6

구는 엄동설한에도 푸름을 잃지 않고 우뚝 솟은 소나 무를 제시해 시인 자신의 절개와 불굴의 의지를 기탁하였다

.

하지만 산 위의 소나무와 통하는 길이 막혀 접 근을 못하니

,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暗喩적으로 표출했다

.

7~12

구는 신선인 王子喬가 그를 仙界로 22) 嗟余薄祜, 少遭不造. 哀煢靡識, 越在繈緥. 母兄鞠育, 有慈無威. 恃愛肆姐, 不訓不師. 爰及冠帶, 馮寵自放. 抗心希古, 任其所

尚. 托好老莊, 賤物貴身. 志在守樸, 養素全眞. 曰余不敏, 好善闇人. 子玉之敗, 屢增惟塵. 大人含弘, 藏垢懷恥. 民之多僻, 政 不由己. 惟此褊心, 顯明臧否. 感悟思愆, 怛若創痏. 欲寡其過, 謗議沸騰. 性不傷物, 頻致怨憎. 昔慚柳惠, 今愧孫登. 内負宿 心, 外恧良朋. 仰慕嚴鄭, 樂道閑居. 與世無營, 神氣晏如. 咨余不淑, 嬰累多虞. 匪降自天, 實由頑疏. 理蔽患結, 卒致囹圄. 對 答鄙訊, 縶此幽阻. 實恥訟免, 時不我與. 雖曰義直, 神辱志沮. 澡身滄浪, 豈云能補. 嗈嗈鳴雁, 奮翼北遊. 順時而動, 得意忘憂. 嗟我憤嘆, 曾莫能儔. 事與願違, 遘兹淹留. 窮達有命, 亦又何求. 古人有言, 善莫近名. 奉時恭默, 咎悔不生. 萬石周愼, 安親保 榮. 世務紛紜, 秪攪予情. 安樂必誡, 迺終利貞. 煌煌靈芝, 一年三秀. 予獨何爲, 有志不就. 懲難思復, 心焉内疚. 庶勗將來, 無 馨無臭. 采薇山阿, 散髮巖岫. 永嘯長吟, 頤性養壽.

23) 劉勰은 혜강 시가를 평하기를 “嵇志淸峻”이라 하였고, 鍾嶸은 “過以峻切”이라 하였다. ‘준절’은 ‘峻烈’과 비슷한 뜻으로 보아

“준엄하고 격렬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24) 遙望山上松, 隆冬鬱青葱. 自遇一何高, 獨立逈無雙. 願想遊其下, 蹊路絶不通. 王喬异我去, 乘雲駕六龍. 飄颻戱玄圃, 黄老路 相逢. 授我自然道, 曠若發童蒙. 採藥鍾山隅, 服食改姿容. 蟬蜕棄穢累, 結友家板桐. 臨觴奏九韶, 雅歌何邕邕. 長與俗人别, 誰 能覩其蹤.

(8)

인도하여 함께 노닐다 黃老를 만나 자연의 도를 전수 받는다

.

13~18

구는 채약과 복식을 통해 신선이 되어 속세와 연루된 모든 것을 버리고 신선들의 본거지인 판동

,

즉 곤륜산에 머물며 술잔을 기울이고 음악을 듣는 모습을 그렸다

.

그리고 마지막 두 구인 제

19~20

구는 오랫동안 속세와 떨어져 살면 자신의 종적조차 찾지 못 할 것이라는 생각에 스스로 만족하였다

.

신선세계를 통한 자유로운 삶을 꿈꿨다

.

이상에서 볼 때

,

이 시는 고결한 자신 → 선계 진입 → 선계 유람 → 속세와의 단절 등의 순서로 결구가 이루어져 있다

.

이 시는

입세

(

고결한 자신

)’

에서

출세

(

유선

)’

로 나아가는 구조이긴 하나

, ‘

유선시

라는 제목에 서 보듯이 선계에서의 유람이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

「잡시」 여덟째 편도 이 시와 내용이 매우 유사하다

.

이상에서 언급한 다섯 수와 한 편의 시는 내용상 다소 차이는 있지만

,

모두

입세

에서

출세

로 나아가는 구조인데

,

이 중 두 수는

은일

,

나머지 세 수와 한 편은

유선

으로 나아가는 구조이다

.

2. 연작시의 결구 분석

연작시란 동일한 주제나 목적을 가지고 서로 관련이 있는 내용을 써서 하나로 묶은 시를 말한다

.

먼저 「수 재로 천거된 형 공목의 입대에 바치는 시」 열아홉 수 중 제

2~19

수를 분석하기로 한다

.

25)

먼저 제

2·3

26)를 보면 형제애와 이상 경계를 추구하였고

,

4~10

27)는 종군한 형에 대한 시인의 감 정

(

그리움

,

외로움

,

슬픔

,

걱정

)

을 그렸으며

,

11

28)

그리움

隱逸自樂의 염원

을 동시에 표출하였다

.

그리하여 제

12

29)에서는 드디어

은일 실천

을 위해 길을 나서고

,

13

30)에서는 은일을 실천하러 가는 도중의

산수자락

정취를 그렸다

.

물론 부분적으로

감정표출

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

그리고 제

14~16

31)는 모두 은둔지에서의

은일자락

그리움

’,

17

32)에서는

신선세계 유람

’,

18

33)에서는

양생을 통한 소 요경계

’,

마지막 제

19

34)에서는

至人 추앙과 物化 추구

등을 표현하였다

.

시인이 일관되게 언급한 형에 대 한 감정적 내용은 빼고 다시 정리하면

유유자적한 원앙의 모습

현실적 고민 세계

은일 염원

25) 「수재로 천거된 형 공목의 입대에 바치는 시」 제1수는 결구의 형태로 보아 단편시로 간주하여 앞 절에서 언급하였다. 26) 鴛鴦于飛, 肅肅其羽. 朝遊高原, 夕宿蘭渚. 邕邕和鳴, 顧眄儔侶. 俛仰慷慨, 優遊容與.(제2수)

鴛鴦于飛, 嘯侶命儔. 朝遊高原, 夕宿中洲. 交頸振翼, 容與清流. 咀嚼蘭蕙, 俛仰優遊.(제3수) 27) 泳彼長川, 言息其滸. 陟彼高岡, 言刈其楚. 嗟我征邁, 獨行踽踽. 仰彼凱風, 涕泣如雨.(제4수)

……良馬既閑, 麗服有暉. 左攬繁弱, 右接忘歸. 風馳電逝, 躡景追飛. 淩厲中原, 顧盼生姿.(제10수) 28) 攜我好仇, 載我輕車. 南淩長阜, 北厲清渠. 仰落驚鴻, 俯引淵魚. 盤于遊畋, 其樂只且.

29) 淩高遠眄, 俯仰咨嗟. 怨彼幽縶, 邈爾路遐. 雖有好音, 誰與清歌. 雖有姝顔, 誰與發華. 仰訊高雲, 俯託輕波. 乘流遠遁, 抱恨 山阿.

30) 輕車迅邁, 息彼長林. 春木載榮, 布葉垂陰. 習習谷風, 吹我素琴. 咬咬黄鳥, 顧儔弄音. 感寤馳情, 思我所欽. 心之憂矣, 永嘯 長吟.

31) 浩浩洪流, 帶我邦畿. 萋萋綠林, 奮榮揚暉. 魚龍瀺灂, 山鳥羣飛. 駕言出遊, 日夕忘歸. 思我良朋, 如渴如饑. 願言不獲, 愴矣其 悲.(제14수)……閑夜肅清, 明月照軒. 微風動袿, 組帳高褰. 旨酒盈尊, 莫與交歡. 瑟琴在御, 誰與鼓彈. 仰慕同趣, 其馨若蘭. 佳人不存, 能不永歎.(제16수)

32) 乘風高遊, 遠登靈丘. 託好松喬, 攜手俱遊. 朝發太華, 夕宿神州. 彈琴詠詩, 聊以忘憂. 33) 琴詩自樂. 遠遊可珍. 含道獨往. 棄智遺身. 寂乎無累. 何求於人. 長寄靈岳. 怡志養神.

34) 流俗難悟, 逐物不還. 至人遠鑒, 歸之自然. 萬物爲一, 四海同宅. 與彼共之, 予何所惜. 生若浮寄, 暫見忽終. 世故紛紜, 棄之八 戎. 澤雉雖饑, 不願園林. 安能服御, 勞形苦心. 身貴名賤, 榮辱何在. 貴得肆志, 縱心無悔.

(9)

일 실천

은일 자락

선계 유람

소요경계

물화의 정신경계

등의 순으로 전개된다

.

원앙의 유 유자적한 모습을 비흥의 수법으로 내세워 자유자재의 경계를 갈망한 시인이 은일

,

유선 등의 단계를 거쳐 결 국은

소요경계와 물화의 정신 경계

까지 왔다고 볼 수 있다

.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

「수재로 천거된 형 공목의 입대에 바치는 시」 제

2~19

수는 서정과 현리가 가끔 교 체되거나 융합되어 나타나긴 하지만

,

전체적으로 보면

입세

(

현실적 고민 세계

)’

에서

출세

, ‘

은일

’, ‘

유선

’,

정신경계

의 순으로 나아가는 점층적 배열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다음은 「두 곽씨에게 답하다

(

答二郭

)

」 세 수35)를 분석하기로 한다

(

이하 지면 관계상 원문은 생략하기로 한다

).

1

수는 먼저 시인과 곽씨 형제가 산양에서 만나 함께 안빈낙도하며 기쁨과 사랑으로 친분을 다졌던 과거의 일을 회상하였다

(

1~8

).

그리고 豫讓36)과 聶政37)의 고사를 빌려 자신의 처지와 험악한 사회적 분위기를 말하면서

(

9~16

),

은거하기 위해 다시 산양으로 떠나는 자신의 심정을 적었다

(

17~24

).

2

수 역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

먼저 자신의 과거 삶과 젊은 시절의 은일 동기 그리고 은일 목적 을 간략하게 서술하고

(

1~6

),

다시 장년 시절 겪은 질곡의 인생사와 평소 품은 뜻의 좌절 그리고 은일의 한계를 밝히면서

(

7~16

),

신선 세계를 동경하며 정신상의 초탈과 육체적 해방을 시도하였다

(

17~24

).

3

수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

먼저 복잡한 세상사와 험악한 정치 상황을 설명하고

(

1~8

),

이어서 도가적 처세관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며

(

9~16

),

마지막으로 무위자연의 도에서 점점 멀어지는 사 람들을 개탄하고 배척하였다

(

17~20

).

이상의 내용을 세 가지 전환 구조로 살펴보면

,

1

수는

은일자락

현실적 고민세계

은일 실천

’,

그 리고 제

2

수는

은일동기와 목적

현실적 고민세계

신선세계 동경

’,

마지막 제

3

수는

현실적 고민세계

신선세계 동경

도가적 처세태도 천명

등으로 엮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

이 세 수는 내용적으로 중복 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

과거 산양의 은거시절을 회상하는 것을 시작으로

,

은일 추구와 실천 그리고 은일 생활에서 느낀 한계

,

그래서 추구한 신선세계

,

마지막으로 도가적 처세태도를 견지하겠다는 현재의 각오까지

,

출세를 도모하고 실천하는 과정이 순차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

,

세 수 모두 시작은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

결국은

입세

(

현실적 고민세계

)’

를 거쳐 제

1

수는

은일

,

2

수는

유선

으로

,

3

수는

유선

에서

도가적 정 신경계

로 나아가는 구조이다

.

35) 이 시의 작성 시기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혜강이 20세(243) 때 譙郡을 떠나 山陽으로 떠나기 직전에 지은 것이라 하고, 다른 하나는 혜강이 34세(257) 대장군 사마소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河東(황하의 동쪽으로 山西 夏縣 일대) 지역으로 피해 갈 때 지은 것이라 한다. 이때는 두 곽씨 역시 毋丘儉의 항쟁 사건에 연루되어 서울을 떠날 때다. 이 시의 제4구를 보면, 두 곽씨가 “초연히 북쪽으로 향해 가네(超然來北征)”라고 했고, 제5~8구는 그곳에서 즐겁게 만나 깊은 우정을 나누던 과거의 정경을 회상했으므로, 후자의 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이 시를 지을 당시에는 두 곽씨와 함께할 수 없을 정도 로 상황이 변했다고 하니(제20구), 이 역시 후자의 설을 뒷받침한다.

36) 전국 시대 진나라의 대표적인 義士. BC453년에 晉나라 智伯은 趙나라 襄子를 치려다가, 오히려 趙·韓·魏의 연합군에게 패배하여 멸망했다. 지백의 門客이었던 예양은 다리 밑에 숨어 양자에게 복수하려다 말이 놀라는 바람에 실패했다. 이에 예 양은 양자에게 옷을 벗어 달라 간청해 칼로 세 번 내려친 뒤 태연히 자결했다.

37) 전국 시대 齊나라의 유명한 勇士. 嚴仲子는 한나라 재상인 俠累와 불화가 생겨 제나라로 도망가서 는 백정인 섭정을 포섭하 여 협루를 살해하였다. 섭정은 자신으로 인해 해를 입을지도 모르는 가족과 나라를 위해 정체를 숨기기 위해 자신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눈알을 파낸 뒤 배를 가르고 죽었다.

(10)

다음은 「육언시

(

六言詩

)

」 열 수를 분석하기로 한다

.

이 시는 감로 원년

(256)

그의 나이

33

세 때의 작품이 다

.

38)이 시는 모두

5

1

구로 시작하여

6

4

구로 된 독특한 시체를 가진 것이 특징이다

.

39)

1

수는 태평 성대를 구가한 요

·

순임금의 공평무사함과 훌륭한 인품을 내세워 이상적인 상고사회를 찬미하였다

.

2

수 역시 唐

·

虞시대를 흠모하면서 요

·

순임금의 이상적 치세를 찬미하였다

.

3

수는 무위자연의 도를 실천하는 대인선생을 내세워

無爲之治

를 예찬하였다

.

앞의 두 수에 등장한 요

·

순시대의 태평성대를 무위자연 사상으 로 승화시킨 작품이라 볼 수 있다

.

4

수는 노자가 밝힌

명예

(

)’

(

)’

으로써40) 속세의 인위적인 세상 사를 통렬히 비판하였다

.

이어서 제

5

수는 인위적인 욕망으로 채워진 삶은 재앙만 초래하므로 도와 덕을 벗 삼아 초탈의 경계에서 불로장생한 옛사람들을 찬미하였다

.

6

수는 제한된 공간에서 동일한 가치관으로 살 면서 탐욕과 경쟁으로 점철된 인간세상을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

그가 노자의

無慾

을 추구하는 이유이다

.

7

수는 한무제 때 은사인 동방삭을 내세워 노자의

知足不辱

을 설파하였다

.

8

수는 子文41)과 柳下惠42)를 내 세워 관직이나 녹봉 등 사적인 이익에 연연하지 말고 오로지 자연의 도를 실천할 것을 강조했다

.

노자가 언 급한

攻成身退

의 정신을 그의 정치철학으로 승화시켰다

.

9

수는 老萊子의 처를 칭송하면서 은일을 통해 閑 居樂道하고 淸高之節을 지킬 것을 염원하였다

.

마지막 제

10

수는 옛 현자인 原憲을 내세워 안빈낙도하고 자 연의 도를 실천하면서 재난이 없는 知足의 참된 경지를 갈구했다

.

이상에서 볼 때

,

「육언시」 제

1, 2

수는 요

·

순 임금을 내세워 상고사회의 이상적 치세를 예찬하였고

,

3

수는 대인선생을 내세워

무위지치

로 승화시켰으며

,

4~6

수는 명교로 인한 인위적인 속세의 여러 정황들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자신의 도가적 인생관을 반영하였다

.

그리고 제

7~10

수에서는 고대 몇몇 인물들을 내세워 도가적 처세태도를 일일이 나열하며 추앙하였다

.

, ‘

상고사회

(

무위지치

)

예찬

현실적 고민세계

(

명교 사 회 비판

)’

출세

(

도가적 삶의 추구

)’

등의 배열 구조를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

다음은 「다시 사언시를 짓다

(

重作四言詩

)

(

일명 「秋胡行」

)

43)일곱 수를 분석하기로 한다

.

이 연작시는 正 元 원년

(254)

그의 나이

31

세 때 작품이다

.

매 수마다 첫 두 구를 중첩하고 마지막에

노래하노니

(

歌以言 之

)”

를 넣은 후 다시 첫 두 구의 내용을 반복하여 수미상관 기법으로 마무리했는데

,

이는 모두 조조의 「추호 행」 시체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

1

수는 부귀영화가 우환의 근원이므로 빈천만이 해결책이라고 보았다

.

2

수에서도 다시 부귀와 빈천을 비교하며 李斯의 일화를 용전하여 부귀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 하였다

.

3

수는

하늘과 땅은 찼다 비었다 하고

,

시간과 더불어 사라졌다 생겼다 한다

.”

44)라는 천지만물의

38) 莊萬壽, 앞의 책, 1990, 168~169쪽.

39) 이 시가 현존하는 최초의 ‘육언시’이다. 唐代의 皮日休 등이 간혹 육언시를 지었다. 40) “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得與亡孰病? 是故甚愛必大費, 多臧必厚亡”(󰡔노자󰡕 제44장)

41) 춘추 시대 楚나라의 저명한 令尹, 즉 재상이다. 성은 鬭이고, 이름은 谷於菟이다. ‘자문’은 그의 字다. “令尹子文三仕爲令尹, 無喜色; 三已之, 無慍色”(󰡔논어·공야장󰡕)

42) BC 720~BC 621. 춘추 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세 번이나 축출되었으나 도를 끝까지 지켜 추앙받는 인물이다. “柳下惠爲士 師, 三黜. 人曰:“子未可以去乎?” 曰:“直道而事人, 焉往而不三黜? 枉道而事人, 何必去父母之邦?”(󰡔논어·미자󰡕)

43) 오초본에는 원래 「重作六言詩十首代秋胡歌詩七首」라고 제목을 붙였으나, 「重作六言詩十首」는 망실되고 「代秋胡歌詩七首」

만 남았다. 張燮本은 이 시를 「秋胡行七首」라고 했고, 󰡔詩紀󰡕, 󰡔漢魏詩乘󰡕, 󰡔古樂苑󰡕 등은 제목 아래 주를 달아 「重作四言 詩」라 했다.

44) “天地盈虛, 與時消息”(󰡔周易·豊󰡕)

(11)

생성과 운행 법칙을 인간의 삶에 적용하여 자연의 순리에 따라 충실하고 믿음직스럽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이 라고 하였다

.

4

수는 정신이 수고롭고 욕심이 조급하면 병이 들고 주색에 찌들면 요절함을 경고하면서 요절 한 안회를 내세워 양생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

5

수는 도가적 무장을 통해

지혜 끊고 배움 버려서

45) 현묵 의 경계에서 정신적 유람을 할 것을 제안했다

.

그리고 잘못해도 후회하지 않고 잘해도 자랑하지 않는 생활 태도

,

낚시로 즐거움을 찾고 산발한 채로 노래 부르며 돌아다니는 은일 생활 방식을 제시했다

.

6

수는 전형 적인 유선시이다

.

왕자교와 더불어 하늘을 환유하면서 양생을 통해서 신선이 되기를 앙모하였다

.

7

수 역시 전형적인 유선시이다

.

앞의 시는 선계로

팔극

을 설정한 데 비해

,

이 시는 곤륜산의

層城

’,

46)

天庭

을 배 경으로 하고 있다

.

그리고 앞의 시는 신선이 준

신약

羽化登仙

47)의 매개물로 등장한 반면

,

이 시는 西王 母로부터 전수받은

도술

을 통해 불로장수를 위해서 신선들의 거처인 천정으로 오른다

.

이상에서 볼 때

,

「다시 사언시를 짓다」는 악부시라 내용상 굳이

秋胡

48)와 관련지을 필요는 없지만

,

작품 속에 배어 있는 정신은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

.

일곱 수 모두 說理를 위주로 했으며

,

시인의 인생관과 처세 태도를 서술하면서 현실적 고민세계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제시했다

.

그리고 지혜와 배움을 포기함으로써

無欲無憂

를 실천한 고대 眞人을 추종했고

,

궁극적으로는 은둔과 유선을 통해 속세를 초탈하는 것을 이상 경 계로 삼았다

.

, ‘

현실적 고민세계

(

부귀영화에 대한 비판

)’

자연스러운 삶 예찬

양생과 도가적 삶 지 향

은일

제시 →

유선

추구 등의 배열 구조를 갖추고 있다

.

이상에서 서술한 연작시 네 편의 배열구조를 요약하면

,

「수재로 천거된 형 공목의 입대에 바치는 시」 제

2~19

수는 원앙의 유유자적한 모습을 비흥의 수법으로 내세워 자유자재의 경계를 갈망한 시인이 은일

,

유선 등의 단 계를 거쳐 결국은

소요경계와 물화의 정신 경계

에 도달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

「두 곽씨에게 답하다」 세 수 는 내용적으로 중복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

과거 산양의 은거시절을 회상하는 것을 시작으로

,

은일 추구와 실 천 그리고 은일생활에서 느낀 한계

,

그래서 추구한 신선세계

,

마지막으로 도가적 처세태도를 견지하겠다는 현재 의 각오까지

,

출세를 도모하고 실천하는 과정이 순차적으로 잘 배열되어 있다

.

「육언시」 열 수 또한 먼저 자신 이 추구했던 이상사회를 제시하고 이어서 명교를 내세운 당시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아울러 몇몇 고대 은 사들의 처세태도를 일일이 나열하며 추앙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

「다시 사언시를 짓다」

(

일명 秋胡行

)

일곱 수는 說理를 위주로 했으며

,

시인의 인생관과 처세 원칙을 주로 서술했다

.

지혜와 배움을 포기함으로써

無欲無憂

를 실천한 고대 眞人을 추종했고

,

궁극적으로는 은둔과 유선을 통해 속세를 초탈하는 것을 이상 경계로 삼는 구조 로 되어 있다

.

따라서 이상의 연작시 네 편은 시작과 순서가 조금씩 다르긴 하나

,

대부분

입세

에서

출세

로 가 는 배열구조이며

,

궁극적으로는

도가적 소요경계

를 추구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45) “絶智棄學”

46) 곤륜산에는 세 층이 있는데, 제일 위층이 ‘層城’이며, 일명 ‘天庭’으로 大帝가 거주하는 곳이다. 47)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르다.

48) 노나라 사람으로,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다른 곳에서 벼슬을 시작하여 3년이 지난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거의 집에 도착 할 무렵 뽕잎 따는 여인에게 반해 황금으로 유혹했으나, 그녀는 유부녀임을 밝히며 거절하였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와 보니 그녀가 바로 그의 부인이었다. 부인은 그 사실을 알고 치욕감을 느껴 沂水에서 자살했다. 후대 사람들이 이를 슬피 여겨

「秋胡行」을 지었다. 조조와 조비 역시 「추호행」을 지었다.

(12)

Ⅳ. ‘입세’ 정신 및 ‘출세’ 사상

1. ‘입세’ 정신과 ‘출세’ 이유

그의 형인 혜희가 지은 「혜강전」에서는

家世儒學

이란 말을 넣었고

,

󰡔진서

·

혜강전󰡕에는 그의 풍채를 일 컬어

龍章鳳姿

라 하였으며

,

鍾會는 사마소에게 이르기를

臥龍

이라 하였다

.

후대의 顔延之도 「五君詠

·

嵇 中散」에서

봉황의 깃촉이 때때로 꺾여도

,

용의 성질을 누가 길들일 수 있겠는가

?”

49)라고 하여 그를

에 비유하였다

.

그리고 그가 직접 쓴 「석사론」

,

「명담론」

,

「성무애악론」 등에도 유가 경전을 자주 인용하였다

.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혜강의 마음속에는 濟世의 의지가 존재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

하지만 조씨와 사마 씨의 정권 쟁탈전으로 인하여 음모와 살육이 난무하고 정치적 공포 분위기가 극에 달하자

,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 정치는 어디에서도 구현할 수 없고

,

오히려 자신의 생명까지 위협 받는 처지에서 出仕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

그리하여 山陽으로 歸隱을 하게 되는데

,

이때가 대략 그가 노장사상에 심취하기 시작

20

(243)

정도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

따라서 그의 시가에는 적극적인 유가적 제세의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

50) 다만 감로

2

(257)

그의 나이

34

세 때 하동으로 떠나기 직전 지은 「내 뜻을 술회하다」 제

1

수에

제세

와 관련하여 자신의

고아한 뜻

(

雅志

)”

을 언급하였는데

,

이것을 보기로 한다

.

潜龍育神軀

,

잠룡은 신령스런 몸집 키우면서 濯鱗戲蘭池

.

비늘 씻으며 난지에서 노닌다

.

延頸慕大庭

,

목 뻗어서 대정씨를 그리워하고 寢足俟皇羲

.

걸음 멈추고는 복희씨를 기다린다

.

慶雲未垂景

,

오색구름 그림자 드리우지 않아 盤桓朝陽陂

.

태양 향한 못에서 이리저리 배회한다

.

悠悠非吾儔

,

두루 다녀 봐도 내 짝은 없고

圭步應俗宜

.

사람들은 반걸음마다 속된 일과 어울리니

,

殊類難徧周

,

다른 부류라 두루 장단 맞추기 어렵고 鄙議紛流離

.

비방하는 말만 어지럽게 떠돈다

.

轗軻丁悔吝

,

인생이 순탄치 못해 근심을 만나

雅志不得施

.

평소에 품은 고아한 뜻 펼칠 수가 없구나

.

자신을

잠룡

에 비유하여 무위로 다스리는 상고사회를 찬미하고

,

자신의

고아한 뜻

을 속세에서 펼치지 못함을 매우 안타까워하였다

.

鍾會는 혜강을 모함하며

輕時傲世

라고 하였고

,

向秀와 유협은 그의 의지와 취

49) “鸞翮有時鎩 龍性誰能馴”

50) 고평릉의 난이 일어난 嘉平 원년(249) 즉, 그의 나이 26세 때 「수재로 천거된 형 공목의 입대에 바치는 시」 열아홉 수를 처음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莊萬壽, 앞의 책, 1990, 104~108쪽).

(13)

향을 함축하여 이르기를 각각

嵇志遠而疎

”, “

嵇志淸峻

이라 하였다

. “

輕時傲世

는 그 당시의 時政을 경시하 고 무시한다는 것이지만

,

이면에는 먼 과거

(

遠古

)

로 회귀하고자 하는 뜻이 강하고

, “

遠而疎

淸峻

은 그의 淸遠高潔한 인생 志趣와 시가의 풍격을 말하는 것이지만

,

그의 소탈하고 고결한 인격미와 청정무욕의 내재 정신 그리고 豪爽하고 淸逸한 풍채가 맞물려

,

그가 추구하는 이상사회가 대정

황희

시대와 같은 아득히 먼 옛날에 있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

51) 그가 먼 옛날을 추종한 것은 안으로는 청정무위의 노장사상이 기초가 된 것이고 겉으로는 암흑시기인 정시시대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

따라서 그의

고아한 뜻

은 굴원처 럼 직접 治世하거나 재능을 펼치는 그런 큰 뜻이 아니고

,

何晏의 경우처럼 개인의 야심이 가미된 이율배반적 인

言志

52)와도 다르며

,

陸機나 左思 등과 같은

功成身退

,

儒家의 立德이나 立命 이후의

超世之志

와도 다르다

.

오로지 출사가 아닌 사회 변혁을 통하여 노

·

장의 無爲而治가 가능했던 상고사회처럼 만드는 것이 바로 그의

고아한 뜻

이었다

.

이것이 바로 그의 입세 정신이다

.

그러나 그는

고아한 뜻

을 펼칠 수가 없었다

.

그 이유를

悠悠非吾儔

~

轗軻丁悔吝

다섯 구에 서술해 놓 았다

.

자기와 뜻을 같이 하는 친구가 없고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니 금방 비방하는 소리가 나돌고

,

정 치 사회적 변화로 인하여 겪은 정신적 고통과 불안한 심리 상태가 그로 하여금 고결한 뜻을 포기하게끔 하였 다

.

이것이 또한 출세의 이유이기도 하다

.

이것을

현실적 고민 세계

의 범주에 넣었다

.

다음으로 「선경에서 노닐다」 첫 여섯 구를 보기로 한다

.

遙望山上松

,

멀리 산 위 소나무를 바라보니 隆冬鬱青葱

.

한겨울인데도 푸르고 울창하다

.

自遇一何高

,

스스로 때를 만나 얼마나 높은지 獨立逈無雙

.

홀로 솟아 멀리까지 견줄 게 없네

.

願想遊其下

,

원컨대 그 아래에서 놀고 싶으나 蹊路絶不通

.

오솔길 끊어져 통하지 않는구나

.

이 시는 엄동설한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를 통하여 자신의 절개와 불굴의 의지를 기탁하려 하였다

.

하지만 산 위의 소나무와 통하는 길이 막혀 접근을 못한다

.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암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이처럼

소나무

는 고결하면서도 도도한 자신의 心性을 대변하고 있다

.

또한 시인은 소나무 외에 난 새

(

),

잠룡

(

潛龍

),

붕새

(

神鳳

),

신령스런 거북이

(

神龜

)

등으로 자신을 표현하여 출세의 이유로 삼았다

.

이것 을

고결한 자신

으로 명명하였다

.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

출세의 이유는 크게

현실적 고민세계

고결한 자신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

이것으로 혜강의 시를 정리해 보면

, ‘

현실적 고민세계

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타나는데

,

53) 그가 얼마나 현실에 대한 고민이 깊었는가를 알 수 있다

.

51) 이외에 요·순시대를 찬미한 시로는 「육언시」 제1·2수가 있다. 52) 하안은 「내 뜻을 말하다(言志詩)」 두 수를 썼다.

53) 첫째, ‘고결한 자신’만을 출세의 이유로 내세운 시는 「선경에서 노닐다」와 「잡시」 셋째·여덟째 편 등이다. 둘째, ‘현실적 고민세계’만을 출세의 이유로 내세운 시는 「마음 속 깊은 울분」, 「수재로 천거된 형 공목의 입대에 바치는 시」 제4~10수,

(14)

2. ‘출세’로의 전환 및 현학사상

이리하여 그는 출세의 길을 가게 되는데

,

크게 세 가지 방법을 택한다

.

하나는 歸隱을 통한

은일

의 길이 고

,

다른 하나는 仙界를 통한

유선

의 길이며

,

또 다른 하나는 玄理가 작용한

도가의 소요경계

이다

.

(1) 은일 추구와 실천 그리고 自樂

혜강의 은일은 몇 가지 과정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는데

,

먼저 은일 추구와 관련된 내용을 「내 뜻을 술 회하다」 제

2

수에서 보기로 한다

.

巖穴多隱逸

,

바위 동굴에는 은사가 많으니 輕擧求吾師

.

훌쩍 날아 내 스승을 구하리라

.

晨登箕山巓

,

아침에 기산 꼭대기에 오르면 日夕不知饑

.

저녁이 되어도 배고픔을 모른다네

.

玄居養營魄

,

깊은 곳에 숨어 혼백을 다스리면서 千載長自綏

.

천년 동안 오래도록 편안히 살리라

.

그는 당시의 암흑사회에서 자신의 인생과 사회에 대한 심한 좌절감을 느끼면서

,

비분강개한 심정으로 옛 사람을 그리워하며 한편으로 知己를 만나기를 원했다

.

하지만 여의치 않아 장차 스승으로 모실 동굴 속 은사 를 훌쩍 날아 구하고자 하였다

.

54) 그리하여 許由와 巢父가 숨어 살던 箕山에 올라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며 배고픔을 잊은 채

,

혼백을 올바로 다스려 천년 동안 오래도록 걱정 없이 살기를 바랐다

.

다시 말해

,

산 속에 서 은거하며 양생을 통한 長壽를 갈망한 것이다

.

그리고 이와 비슷한 즉

,

은일을 통한 장수를 추구한 시구로 는 「마음속 깊은 울분」 한 수의 마지막 여섯 구가 있는데

,

이 시구를 보기로 한다

.

庶勗將來

,

바라건대 장래에는 애써서 無馨無臭

.

자연과 더불어 은거하며 살리라 采薇山阿

,

산언덕에서 고사리 캐며

散髮巖岫

.

바위 동굴에서 머리 풀어 헤치고

,

永嘯長吟

,

느릿느릿 길게 소리 지르며 頤性養壽

.

생명을 키우고 수명을 더하리라

.

이 시는 혜강이 여안 사건을 변호하다가 종회와 呂巽의 모함으로 영어의 몸이 되었을 때 지은 것으로

,

「두 곽씨에게 답하다(答二郭)」 제1~3수, 「육언시(六言詩)」 제4~6수, 「다시 사언시를 짓다(일명 「추호행」)」 제1·2수, 그리 고 「잡시」 여섯째·일곱째 편 등이다. 셋째, ‘고결한 자신’과 ‘현실적 고민세계’를 동시에 출세의 이유로 내세운 시는 「내 뜻을 술회하다」 제1·2수와 「수재로 천거된 형 공목의 입대에 바치는 시」 제1수 등이다.

54) 그가 저술한 󰡔聖賢高士傳贊󰡕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5)

의 마지막 작품이다

.

그의 인생 역정과 그가 추구했던 삶

,

그리고 자신에 대한 회한과 반성

,

출감 이후의 소 망 등을 솔직 담백하게 일일이 나열했다

.

일종의 자전적 술회시라고 볼 수 있다

.

위에 소개한 여섯 구는 출 감 후의 소망을 밝힌 것인데

,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산기슭에서 고사리 캐고

,

동굴 속에서 산발한 채 살면서

,

휘파람 늘여 뽑고 노래 길게 읊조리며

,

양생하면서 장수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

속세를 초월한 진정한 은사의 삶을 살고자 한 것이다

.

하지만 이런 소망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

그런데 앞의 두 시에 나타난 은일 추구는 모두 바위 동굴 속의 은사를 롤 모델로 내세웠지만

,

전자가 정신 적 이상적 은일에 가깝다면 후자는 육체적 현실적 은일에 좀 더 다가가 있다

.

이상이 직접적인 언급을 통하여 자신의 은일 추구를 표출한 것이라면

,

간접적인 방법으로 표출한 경우도 있다

.

「육언시」 제

9

수를 보기로 한다

.

老來妻賢明

,

노래자의 처는 현명했으니

不願夫子相荆

,

남편이 초나라 재상 되는 것을 원치 않아 相將避祿隱耕

.

함께 관직을 피해 숨어서 농사지었다

.

樂道閑居採萍

,

한가롭게 살면서 도를 즐기고 마름 풀 캐어 終厲高節不傾

.

평생토록 높은 절개 힘쓰며 기울지 않았다

.

노래자55)는 세상을 피해 蒙山 양지에서 농사짓고 살았는데

,

초나라 왕이 직접 찾아와 함께 나라를 다스릴 것을 제의했다

.

이에 노래자는 스스럼없이 승낙했으나

,

나중에 집으로 돌아온 처가 이 사실을 알고는 먼저 장강 남쪽으로 가서 숨어 버렸다

.

이에 노래자도 처를 따라 은거하였다

.

이렇게 해서 남편의 보신을 이루었 고

,

피세 사상을 몸소 실천했다

.

혜강은 이처럼 노래자의 고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은일 추구를 표출하였다

.

그리고 「마음속 깊은 울분」 한 수에도 柳下惠

,

孫登

,

嚴君平

,

鄭子眞 등의 은사를 내세워

,

한편으론 진정한 은일을 실천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면서 한편으론 그들을 그리워하며 은일을 추구하였다

.

은일 실천과 관련하여서는

,

그가 「두 곽씨에게 답하다」 제

2

수에서 언급한 시구가 있는데 보기로 한다

.

因疏遂成懶

,

건성으로 지내다 마침내 나태해져 寢跡北山阿

.

북쪽 산모퉁이로 행적을 감추었다

.

但願養性命

,

단지 본성만 잘 기르길 원했을 뿐 終己靡有他

.

평생토록 다른 생각 하지 않았다

.

여기서

북쪽 산모퉁이

는 하내군 산양현의 태항산 지맥인 蘇門山으로 추정되며

,

그의 나이

20

(243)

55) 노래자는 춘추 말기 은사로 초나라 사람이다. 康王 때 태어나 惠王 때 죽었다. 민간 전설로 전해지는 24명 효자 중 한 사람 이며, 도가가 형성되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한다. 󰡔사기·老莊申韓傳󰡕에 “著書十五篇, 言道家之用”이라고 되어 있다.

(16)

王戎과 처음 만나 죽림 활동을 시작할 때인 것으로 보인다

.

56)산림 속의 은일이 유행한 것은 예교의 속박에 서 벗어나 인간의 자연 본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시대적 조류이기도 했지만

,

도가에서는 자연산수 중에 도 의 본성이 담겨 있다고 보기 때문에

,

도의 구현을 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

따라서 산림 중에 산다는 것 은 도의 깊은 뜻을 깨닫고 자연과의 交融을 실현할 수 있다고 여겼다

.

아울러 당시에 유행한 현학은

를 말하고

虛靜

’, ‘

無情

’, ‘

不動心

을 강조하므로

,

산림 속 은거는 세상사와 隔絶할 수 있고 속세와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 정신과 도가 합일하는 경계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

그리고 「수재로 천거된 형 공목의 입 대에 바치는 시」 제

12

수 마지막 두 구에

물길 따라 멀리 달아나고자

,

한을 품은 채 산모퉁이 돌아가리

.”

57) 라고 한 뒤

,

13

수에 은둔처로 가는 도중에 보고 듣고 느낀 감흥을 표현하였다

.

58) 이어서 제

14

수에 은둔처 의 정경을 묘사하였는데 보기로 한다

.

浩浩洪流

,

가없이 넓은 거대한 물줄기가 帶我邦畿

.

내가 머무는 경기 땅을 두르고

,

萋萋綠林

,

빽빽이 우거진 푸른 숲에는 奮榮揚暉

.

온갖 꽃이 만발해 광채가 나네

.

魚龍瀺灂

,

어룡이 물소리 내며 헤엄치고 山鳥羣飛

.

산새들은 떼 지어 날아다니니

,

駕言出遊

,

수레 몰고 놀러 나가서는 日夕忘歸

.

해가 져도 돌아올 줄 모르네

.

시인이 돌아간 곳은 京城 주변 지역으로 거대한 물줄기가 휘감아 도는 경기 땅이다

.

우거진 숲 속에서 자 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

그곳에는 속세의 시끄러움도 없고

,

관리 사회의 오탁함도 없으니

,

고결한 心志를 가 진 시인으로서는 가장 공명 화해할 수 있는 곳이다

.

󰡔진서

·

혜강전󰡕에 이르기를

산과 물에서 노닐며 그 뜻 을 얻으니 홀연 돌아가기를 잊었노라

.”

59)라고 하였듯이

,

그는 완전히 자연에 매료되어 스스로 즐거움을 만끽 하였다

.

그리고 「술자리」 제

2

수도 흐르는 물결 위에 떠 있는 배를 자신이 겪은 인생의 풍파에 비유하면서

,

산수자연 속에서 긴 노 내려놓고 낚싯대 던져 놓은 채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

60) 이외에 도가적 무장을 통해 은일의 즐거움을 묘사한 시도 있는데

,

「다시 사언시를 짓다」 제

5

수를 보기로 한다

.

絶智棄學

,

지혜 끊고 배움 버려서

遊心於玄默

.

마음은 현묵

61)

의 경계에서 노니네

.

56) 혜강(저), 심우영(역), 󰡔혜강시집󰡕, 서울, 지만지, 2015, 144쪽. 57) “乘流遠遁, 抱恨山阿”

58) “輕車迅邁, 息彼長林. 春木載榮, 布葉垂陰. 習習谷風, 吹我素琴. 咬咬黄鳥, 顧儔弄音” 59) “遊山澤, 會其得意, 忽焉忘返”

60) “淡淡流水, 淪胥而逝. 泛泛栢舟, 載浮載滯. 微嘯清風, 鼓檝容裔. 放櫂投竿, 優遊卒歲” 61) 그윽하고 고요하며 욕심이 없는 경계. 즉, ‘淸靜無爲’의 경계.

참조

관련 문서

→ 4世孫 금역당공(琴易堂公) 복창(復昌) → 5世孫 ②통정공(通政公) 의달(義達) → 6世孫 ④춘식(春植) → 7世孫 ▢ 系子 예석(禮錫) → 8世孫 삼우(三友) → 9世孫 ①효권 (孝權)

【계대(系代)】 ②판서공(判書公) 이양직(李良直) → 1世孫 ①연천현감공(璉川縣監 公) 사강(思剛) → 2世孫 ②연와공(蓮窩公) 말손(末孫) → 3世孫 유경(有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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