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에 대한 기독교적 반성 1
최 용 준
1. 서론: 문제의 제기
문화는 전형적으로 인간적인 현상이다. 식물이나 동물세계에는 문화가 없다. 오직 인간만이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또한 문화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우리는 어떤 특정한 문화권내에 태어나 그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고, 동시에 타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문화의 변동을 경험하기도 하고, 우리 자신의 창조적 능력에 의해 우리의 고유 문화를 변경시킬 수도 있다. 요컨대, 인간의 삶은 문화에 의해 특징 지워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화란 도대체 무엇인가? 광범위하게 말한다면 문화란 인간 활동의 총체요, 그 활동의 산물들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란 하나의 삶의 방식이요, 주위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된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한다면, 문화란 자연 및 사회 환경에 대한 인간의 반응으로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문화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적’인 역사적 과정이며, 이 과정은 인간의 삶을 보다 향상시키고,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가 발전되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러므로 문화에는 다양성이 있다. 서양문화는 동양문화와 다르다. 그리고 동양문화 내에도 한국문화는 일본문화와 같지 않다. 더 나아가 한국문화자체도 역사적으로 많은 변천을 겪었으며, 현대 한국문화 내에도 청소년 문화 등과 같은 다양한 하부문화(subculture)가 있다. 이런 점에서 어떤 학자들은 문화적 다양성 내지 상이성이 ‘문화적 상대주의’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문화의 다양성이란 결국 각 문화가 서로 상대적임을 암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어떤 한 특정한 문화가 다른 모든 문화들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며, 한 문화의 규범체계나 가치체계가 타 문화의 그것들을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문화의 규범들은 그 문화 내에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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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93 년 ‘목회와 신학’ 12 월호에 실렸던 것을 다시 다듬은 것입니다.적용되며, 문화가 시대적으로나 장소적으로 변할 수록 그 규범체계도 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문화의 다양성을 문화 상대주의와 동일시 할 수 있을 것인가?
문화상대주의와 밀접하게 관련된 또 하나의 문제는 문화의 발전에 관한 것으로서, ‘원시’문화 대
‘현대’문화와의 관계가 어떠한가 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입장은 ‘원시’문화가 ‘현대’문화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것은 단지 전자를 후자의 기준에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각 ‘원시’문화의 가치체계, 행위유형 및 사회체제가 현대사회 못지 않게 복잡하다고 하는 최근 일련의 문화인류학적 연구에 의해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우리가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열등하다고 느껴지는 문화가 그 문화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문화도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해서는 안되며, 우리의 기준으로 타 문화를 쉽게 원시적 혹은 저급한 문화라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문화의 ‘발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상의 논의는 다시금 다음 문제를 제기한다: 즉, 왜 서구문화가 일반적으로 물질적인 풍요, 과학 기술적 진보 및 군사력에 있어 세계를 지배한다고 여겨지는가 하는 것이다. 무엇이 현대 서구문화를 그렇게 동양 및 ‘원시’문화와 다르게 만들었는가? 이러한 차이를 설명할 만한 깊은 동인(motive)이 현대 서구문화에 있는가? 한 문화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어느 정도로 그 문화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가? 한 문화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확신이 그 문화의 개현(disclosure)에 어느 정도로 형성력을 가지고 있는가? 예를 들어 서구사회는 기독교와 인본주의(humanism) 양자 모두가 서구문화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두 요소가 현대에서 서구문화를 지배적인 문화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가?
만일 기독교가 서구문화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면 서구문화를 기독교문화라고 간주할 수 있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바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본주의 문화 역시 서구문화의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독교문화란 무엇인가? 문화와 기독교의 관계는 무엇인가? 기독교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 즉, 창조, 타락, 구속, 그리고 최후의 완성과 문화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만약 한 문화가 그 문화의 종교적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면, 기독교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은 문화는 필연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가진 문화와 갈등 또는 긴장관계에 서게 될 것이다. 그 양자간의 충돌 또는 대면(confrontation)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긴장관계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가? 본고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기독교적 세계관의 입장에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
2. 문화의 개념
위에서 필자는 문화를 ‘인간활동의 총체 및 그 활동의 산물이며, 주위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된 삶의 양식 또는 라이프 스타일, 그리고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고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역사적이고 동적인 과정’이라고 잠정적인 정의를 내려보았다. 원래 문화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cultus” 및 “cultura”라는 명사와 “colo” 또는 “colere”라는 동사에서 나왔는데 어원적으로
‘경작하다, 돌보다, 장식하다, 거주하다, 예배하다’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화란의 저명한 철학자였던 반 퍼슨(C.A.van Peursen)교수는 그의 여러 저작들을 통해 문화에 대한 통찰력 있는 관점들을 제시하고 있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그는 문화의 개념을 크게 두 가지, 즉 광의의 개념과 협의의 개념으로 나누고 있다. 협의의 개념은 문화를 단지 인간의 정신적 산물로만 이해한다. 따라서 먹고, 자고, 걷고, 자전거를 타는 등의 육체적인 활동은 문화의 영역이 아니라고 본다. 문화란 예를 들어, 예술, 철학, 과학, 윤리, 정치 및 종교와 같은 영적이고 정신적인 것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쉽게 엘리트적 문화우월주의에 빠져 다른 문화들을 무시하기 쉽다. 예를 들면 희랍인들이 자신들의 문화 이외의 것은 모두 야만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나, 동양의 중화사상(Sino-centrism)등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최근의 문화개념은 보다 광의의 개념을 선호하고 있는데 이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보다 많은 소위 ‘원시’문화와의 접촉을 통한 연구결과이다. 이 관점은 전통적인 ‘문화인’/‘야만인’의 도식을 과감히 깨뜨리고 ‘원시’문화 내에도 풍부한 인간의 문화활동이 있음을 인정하는 입장이다.
반 퍼슨 교수는 이러한 광범위한 문화이해를 바탕으로 문화를 한마디로 ‘자연에 대한 개발 (transforming nature)’이라고 설명한다. 즉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자연을 객관화하고 연구대상으로
삼아 이를 변화,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발전과정은 한마디로 자연을 정복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이 견해는 자연과 무관한 인간의 정신적 문화활동-예술, 철학 등-을 간과한다는 점에서 약점이 있다.
문화의 다양성과 관련해 그는 문화를 하나의 현실에 대한 ‘관점(perspective)’으로 이해한다. 각 문화는 하나의 안경처럼 그것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이해하고 경험한다는 것이다.
에스키모의 눈(snow)에 대한 관점과 이해는 서울사람들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여기서 관점이란 다른 말로 ‘세계관’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 또는 세계관은 부단히 변화한다. 그래서 그는 문화가 명사가 아니라 ‘복수형의 동사’라고 표현한다. 즉 문화란 단지 박물관의 전시품들처럼 화석화된 것이 아니라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 의한 협동적 활동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문화의 동적인 변화과정을 그는 ‘개현과정(the process of opening)’이라고 부른다.
자연에 잠재된 것들이 인간의 유익을 위해 개발되므로 그는 문화를 ‘세계의 개현 (wereldontsluiting: opening up of the world)’이라고도 한다.
또한 그는 이러한 문화의 변화 및 개현과정을 인간이 부단히 변화하는 주위환경에 대해 적응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strategy)’이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은 궁극적으로 삶의 의미에 대한 탐구까지도 포함한다. 이와 관련하여 반 퍼슨 교수는 문화를 하나의 ‘학습과정(learning process)’으로 본다. 예를 들면, 예술영역에서 인간은 새로운 형태의 표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종교의 영역에서는 여러 가지 상징들과 의례를 통해 신적 존재와의 접촉을 시도하며, 기술의 경우도 새로운 도전과 요구에 맞춰 부단히 개발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전략과 변화하는 상황간의 계속적인 상호작용을 강조하기 위해 그는 또한 문화를 하나의
‘오픈 시스템’으로 설명한다. 즉 그것은 주위상황과는 구별되지만 동시에 그것과 연속적인 상호작용을 갖는 구조를 뜻한다. 이는 인간의 문화가 반성, 토론이 가능하며, 필요 시 변경, 발전 또는 심지어 파괴도 가능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문화활동에 대한 역할에 있어 반 퍼슨 교수는 동물의 제한성과 비교해 인간의 자유 및 책임성을 강조한다. 자연세계는 닫혀져 있으나 인간의 문화세계는 항상 열려 있다.
문화의 창조 및 발전을 통해 인간은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가능성의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긍정적으로 실현될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데 인간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화의 인간적인 성격과 관련하여, 반 퍼슨 교수는 문화에는 ‘신적 영역(the zone of the divine)’이 있다고 말한다. 문화를 통해 인간은 절대자 또는 무한자를 추구함으로 인간의 문화활동에는 ‘초월’ 내지 ‘영원’에 대한 관심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문화의 궁극적 관심은 종교적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반 퍼슨 교수는 문화의 애매성(ambiguity)을 언급하는데 이는 타락한 인간이 신적 존재를 추구하나 영적인 눈이 어두워 기껏해야 ‘알지 못하는 신’밖에 모른다는 것이다.
화란의 기독교 철학자 도여베르트(H. Dooyeweerd)는 문화를 크게 두가지 관점에서 보았는데, 하나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현상으로서(예: 정치 문화, 과학 문명, 예술 문화, 교회 문화 등) 다른 하나는 현실의 한 국면 내지는 양상(modal aspect)으로서 본 것이다. 특히 후자에서 그는 문화적 양상을 역사적 양상과 동일시하면서 그 핵심적 요소는 ‘형성력(formative power)'이라고 설명한다. 즉 문화란 주어진 재료를 사용하여 인간이 자유로운 통제 및 형성을 통해 산출하는 모든 활동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도여베르트는 문화적 활동이 창조 규범을 따라 행해야 할 하나의 ‘사명(task, Aufgabe)’임을 강조한다. 문화적 대리인(agent)으로서 인간은 규범적 원리, 즉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사랑을 위한 문화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의 개념을 고찰함에 있어서 마지막으로 언급해야 할 점은 문화의 ‘응답성(responsive character)’이다. 즉 문화란 발전을 위한 규범적 원리를 제정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반응이라는 말이다. 인간의 세계관 및 삶 전체가 사실은 하나님을 향한 하나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화란 자유대학의 철학 교수였던 헤르쯔마(H. Geertsema)박사는 인간됨의 의미를
‘homo respondens(응답적 존재)’라고 말한바 있다.2
2 최용준, 응답하는 인간, 서울: SFC, 200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