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의 섬유조형을 통해 본 페미니즘의 표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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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00년대 이후의 섬유조형을 통해 본 페미니즘의 표상들 The Representational Images of Feminism in Fiber Art Since 2000 윤순란, 이화여자대학교 섬유패션학부 Youn, Soonran_Division of Fiber & Fashion, Ewha Womans University. 요약 중심어 페미니즘 미술 섬유조형 여성의 몸 섹슈얼리티 모성신화. 본 연구의 목적은 21세기 섬유조형작품에서 전개된 페미니즘의 표상이 여성성에 대한 관례적인 정의 를 해체하거나 섹슈얼리티의 사회적 의미를 환기시키는 방식을 페미니즘의 주요 쟁점과 연계하여 고 찰하는 것이다. 남성적인 시각에서 젠더화된 여성성을 교정하는 범례로서 주목한 현대예술가는 라일 리, 바르보자, 루카스, 버크만, 메사제, 페리, 쉐러이다. 이들의 인체조형작품을 중심으로 생애주기의 보편적 범주 내에서 성찰할 수 있는 네 가지 의제들인 과정 중에 있는 주체로서의 여성의 몸, 전복적 유희를 발화하는 섹슈얼리티, 공적 주체가 될 기회를 박탈하는 모성 신화, 주변화를 가속화시키는 여 성의 노화 등과 관련하여 표상의 의미작용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연구 내용의 핵심을 이룬다. 연 구 방법은 상기한 생애주기의 전환점을 기준으로 조형작품을 표집하여 분류하고 나서 작품 분석의 이 론적 기반으로 버틀러, 크리스테바, 이리가레, 손택, 팔루디의 대표 저작을 참조하여 표현내용을 파악 하는 것이다. 연구 결과, 여성주의의 네 가지 패러다임에서 여성의 몸은 첫째, 고정된 젠더 규범에 대 항하여 차이를 수렴함으로써 유동적인 여성의 삶을 은유하는 기호가 되며 둘째, 부분들로 구성된 하나 의 전체로서 섹슈얼리티를 주체적으로 체험하고 체현하는 장소가 되며 셋째, 가부장적 모성 숭배의 서 사 속에서 여성을 관리 가능한 역할로 축소하기 위한 억압적 장치가 되며 넷째, 사회적 성차별에 노인 차별이 가중되어 배제가 행해지므로 실존의 불안을 상징하는 표상이 됨을 규명할 수 있었다. 여성적인 매체로 저평가되어 온 섬유를 매체로 하는 페미니즘 미술이 남근 중심적 상징계를 해체하거나 여성들 의 삶의 경험을 조형예술 작품으로 제시해 온 부단한 노력의 성과들을 단편적으로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통로가 되길 기대한다.. The paper aims to examine how feminist representations in 21st-century fiber art dissolve the conventional definition of femininity or evoke the social meaning of sexuality in connection with Keyword the major issues of feminism. The contemporary artists who correct gendered femininity from a male-oriented perspective are Riley, Barboza, Lucas, Buckman, Messager, Perry, and Scherer. Focusing on their figurative artworks, the core of the research content is to carefully analyze the art of feminism significations of their representations in relation to four agendas that can be reflected within the fiber art universal category of the life cycle: the female body as a subject in the process, sexuality female body conducting subversive ecstasy, motherhood mythology depriving the opportunities of becoming a sexuality public being, and aging in women accelerating marginalization. The research method is of motherhood mythology collecting and classifying artworks based on the turning point of life cycle described above, and then grasping the expressions in conjunctions with books of Butler, Kristeva, Irigaray, Sontag, and Paludi as the theoretical basis of work analysis. As a result of the study in the four paradigms of feminism, the female body is elucidated as a sign of metaphorizing the life of an adaptable being by converging differences against a fixed gender norm, a place experiencing and embodying sexuality as a subjective whole composed of small parts, an oppressive device to reduce women to a manageable role in the narrative of patriarchal maternity, and a symbol of the anxiety of existence caused by elder discrimination weighted upon social gender discrimination. I hope the paper to be a passageway of recognizing the remarkable outcomes dismantling the phallus-centered symbolic system to present women's life experiences through representational images in fiber art of our time, which have been undervalued as feminine media.. ABSTRACT. 284.
(3) 1. 서론 표상은 사회문화적 정체성과 상관된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서 즉각적이고 광범위한 효과를 추동하는 장치이다. 기존의 미술사는 가부장제에 결탁하여 여성에 대한 제도 적 차별을 정당화하는 표상들을 재생산하는 데 기여해왔다. 남성 중심으로 젠더화된 표상의 공동체에서 여성은 주체로 간주되지 않았다.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성적 매력을 지닌 몸으로 제한되거나, 남성의 시각에서 용납 가능한 역할로 밀어 넣기 위해 여성성을 모성에만 등치시키 는 이미지를 통해 젠더 헤게모니를 강화해온 것이다. 남성의 시각이 여전히 특권적인 규범으로 작동하고 있긴 해도 현대미술에서 젠더 정체성 간의 기울기가 과거에 비해 점차 완화되는 추세 이며, 섹슈얼리티 범주 내의 각종 차이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변화이다. 여성을 표현대상이 아닌 주체로 설정하는 예술적 탐구인 페미니즘 미술은 여성성과 상관된 편파적 관행을 교정한다. 여성의 정체성을 여성 스스로 규정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동등한 발언의 기회를 성취하기 위한 각별한 노력인 것이다. 2000년대 이후의 섬유조형에서 여성성을 표상하는 작품 사례를 통해, 페미니즘이 수면 위로 끌어올린 여러 문제들 중에서 주목할 만한 네 가지 기제인 몸, 섹슈얼리티, 모성, 노화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남성중심의 미술사가 담지한 근원적인 한계인 편향된 여성상의 표현을 지양하고, 왜곡된 여성성을 여성의 시각으로 교정함 으로써 세계관을 확장하려는 예술적 시도를 강화하는 데 연구의 의의를 둔다. 섬유를 미술재료 로 활용한 조형예술작품에 집중하게 된 경위는 전통적으로 여성성의 부산물로 치부되어온 매 체에 페미니즘의 표상을 전략적으로 새겨 넣음으로써, 순수미술이라는 고정된 범주의 확고부 동한 틀에서 벗어나 타자성(otherness)을 수용하고 예술영역을 확장하도록 사고의 전환을 추 동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의 화두인 여성성(femininity)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젠더 불균형이란 맥락 내에서 정 체성을 규명하기 위한 기제로서 작용한다. 남성적인 범주에서 파생된 여성성을 교정하는 시도 로서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섹슈얼리티와 관계된 작품을 표집하여, 섬유예술이 페미니즘 표상을 통해 21세기 조형예술의 전통을 풍요롭게 확장시킨 방식을 밝히는 것이 연구의 주요 목적이다. 그와 같은 조형예술작품이 출원한 미술사적 배경을 먼저 살펴보기 위해, 2장에서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이론과 실제의 결합으로서 페미니즘 미술이 대두되어 확산된 양상을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의 시기1)를 중심으로 개괄적으로 고찰한다. 본고의 핵심인 3장에서는 여성성의 형성 조건이나 사회적 의미를 환기시키는 네 가지 유형을 생애주기를 기준으로 분류하여 섬유 예술을 매체로 취하는 21세기의 페미니즘 미술의 표상에 대한 논의를 개진할 것이다. 첫 번째 유형은 과정 중에 있는 주체로서의 여성성을 다룬 라일리와 바르보자의 작품, 두 번째는 복수성 에 기초한 몸과 성적 쾌락을 다룬 루카스와 버크만의 작품, 세 번째는 풍자와 해학을 통한 모성 신화의 희화화를 다룬 메사제와 페리의 작품, 네 번째는 주변화를 가속화시키는 노화의 여성적 경험을 다룬 쉐러의 작품이다. 여성성에 대한 관례적인 정의를 해체하거나 여성들의 삶의 경험 을 좀 더 직설적으로 나타내는 표본을 제시하기 위해 여성의 몸이나 의인화된 사물을 표현대상 으로 취한 조형작품으로 표상의 연구범위를 좁혔음을 밝혀둔다.. 2. 페미니즘 미술, 이론과 실제의 긴밀한 결합 백인남성에 의한 기존의 미술사에서 재현되어 온 여성상은 여성성을 대상화하여 지배 이데올 로기인 남성다움에 대한 헤게모니를 강화하는 데 이용되어왔다. 스페인의 페미니스트 미술 비 평가인 자비에 아라키스타인(Xabier Arakistain, 1966-)에 의하면 여성주의 관점을 미술사에 도입하도록 만든 결정적인 전환점은 1971년 아트뉴스(Artnews) 잡지를 통해 발표된 린다 노 클린(Linda Nochlin, 1931-)의 아티클,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s?)」와 그로부터 10년 뒤인 1981년에 그리젤다 폴록 (Griselda pollock, 1949-)과 로지카 파커(Rozsika Parker, 1945-2010)가 공동으로 저술한 1) 참정권 운동을 중심으로 결집했던 제 1세대 페미니즘이 20세기 초반에 종료되고 암흑기(1920-1960)를 거쳐, 제 2세대 페미니즘 운동이 전개된 시기이다. 특히 1970년대는 페미니즘 미술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시기이기도 하다. 기초조형학연구 21권 4호 (통권100호). 285.
(4) Old Mistresses: Woman, Art and Ideology이다.2) 부권 사회를 종속시키기 위한 장치로서 미술사가 편집되어 온 관례를 폭로하고 남성적 시각에 준거하는 패러다임이 간과해 온 부분을 조명함으로써, 미술학계와 전시기획 분야에서 과소평가되었던 여성 작가들을 주목하여 인식을 갱신하도록 기초를 제공한 것이다. 그들은 여성이 예술적 재능의 결핍 때문이 아니라 기회의 박탈로 인해 미술사에서 소외되었고, 서구 미술사를 관통하는 재현미술 전통에서 재현의 주체 가 아닌 대상으로서만 소비되었음을 비판한다. 여성이 곧 자연이라는 관념뿐 아니라 성적 욕망 의 대상으로서 소유할 수 있는 나체, 즉 성기에 갇힌 존재라는 오랜 신화의 허구를 조명한 것이 다. 노클린과 폴록은 여성 미술가를 향한 부정적인 고정관념뿐 아니라 그들의 조형예술 실험을 주류 미술계에 편입하기 위한 투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의 편협성을 교정하고, 그들이 세운 업적을 여성주의의 맥락에서 재평가하는 계기를 마련한 이론가로 평가되고 있다. 페미니즘 미술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체제 속에서 주변화된 타자(marginalized other)의 조 건에 집중하여 성차별적 구조를 폭로하고 비판의식을 상기시킴으로써 교정의 계기를 제공하는 정치적 제스처로 볼 수 있다. 그리젤다 폴록(1988)에 의하면 페미니즘 미술과 이론의 핵심은 “첫째, 성차의 사회적 생산과 그것과 관련된 젠더 계급에 과도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재현체계, 즉 재현 주체를 남성으로 간주하는 것에 대한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정치적 비평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며 둘째, 여성을 남성적 욕망, 환상, 혐오가 투사된 여성적 대상물로 포장하지 않은 주체로서 표현하는 방식을 발견하는 것이다.”3)라고 설명한다. 그와 같은 논지에 부응하는 범례 로서 샤피로, 쿠사마, 부르주아, 해밀턴의 작품을 선정하여 페미니즘 이론과 실제의 결합 양상 을 살펴보겠다. 작품 선정의 범위는 논제에 의거하여 형식적인 측면에서 섬유를 주재료로 사용 하고, 시기상으로 페미니즘 미술이 미술사에서 처음으로 대거 확산된 1970년대 전후인 1960 년대부터 80년대 사이에 발표된 작품에 집중하였다. 이는 3장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할 21세기 섬유조형작품의 사례가 출원한 미술사적 배경을 먼저 알아보기 위함이다. 20세기 모더니즘 양식의 페미니즘 미술에서 주요 작가로 호명되는 미리엄 샤피로(Miriam Schapiro, 1923-2015)는 페마주(femmage)4)로 남녀 양성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그림 1> 은 회화의 전통적인 방식인 캔버스 위에 여성의 수공예 전통인 천 조각 잇기(piecing)와 자수를 형식적이며 도상학적인 요소로 폭넓게 적용한 작품이다. 10개의 패널이 병렬되어 1,525cm 폭을 이루며, 기모노가 주요 모티브이다. 노마 부르드(Norma Broude, 1941-)에 의하면 ‘샤피 로는 주류 미술계에서 수공예적인 장식미술을 미학적인 가치와 표현적 의미를 지닌 대상으로 완벽하게 드러낸 선구적인, 최초의 작가로 평가된다. 주류가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표현함으 로써 장식미술에 낮은 지위를 설정한 그 당시의 성적 편견에 의한 인위적인 장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그 결과 장식적인, 다시 말해 단지 시각적인 공예작품이 역사적인 정당성을 지닐 수 있는 길을 개척하였다.’5) 라고 평가된다.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 1929-)는 수작업으로 봉제하여 솜을 채워 넣은 무수한 돌기로 의자의 전면을 뒤덮은 <그림 2>의 “축적(Accumulation)” 연작을 통해 성적인 불안감을 묘사 했다. 여성 미술가에 의해서 평범한 가구가 남근 형상에 뒤덮여 섹슈얼하게 전이된 데에 대해 60년대 당시 미술계에 커다란 반향이 일었다. 섹슈얼리티의 범주에서 전통적으로 주변화 되었 던 여성의 위치를 전복하여 전면에 나섬으로써 남성의 억압적인 성적 판타지뿐 아니라 정복과 지배의 폭력적 정서에 저항한 것이다.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는 <그림 3>에서 터키 에페소스(Ephesus)의 온 몸에 젖가슴이 달린 아르테미스6) 동상을 패러디하여 자신의 몸에 무수한 젖가슴을 달은 2) Xabier Arakistain, “Forward”, Helena Reckitt 편저, 『The Art of Feminism: Images that Shaped the Fight for Equality』, Tate Publishing, 2018, p.7 3) 그리젤다 폴록(1988), 전유신 역, 「페미니즘으로 미술사에 개입하기」, 윤난지 편저, 같은 책, p.57 4) 사피로가 고안해낸 용어로, 페미니티(femninity)와 콜라쥬(collage)의 합성어이다. 5) 노마 부르드, 황신원 역, 「미리엄 샤피로와 ‘페마주’: 20세기 미술에 나타난 장식과 추상의 대립에 관한 고찰」, 윤난지 편저, 앞의 책, p.341 6)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아르테미스는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쌍둥이 동생인 아폴론의 출산을 도왔고, 어머니 레토를 겁탈 당할 위기에서 구한다. 출산의 신 또는 사냥과 달의 수호신으로 불린다. 286.
(5) 채, 고대의 여신과 자신을 연결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와 같이 여성에 내재된 신성을 대변하는 이미지는 부르주아가 전 생애에 걸쳐 탐구한 여성의 순환적 생명력의 원천이 되었다. 앤 해밀턴(Ann Hamilton, 1956-)의 <그림 4>는 세탁을 마친 8백 장의 남성용 셔츠가 쌓아올 려진 테이블에 여성이 앉아있는 설치미술 작품이다. 능동적인 주체가 아닌 종속적인 타자로 여성을 규정하고 육아와 가사노동을 전담케 하는 가부장적 제도의 구조적 모순과 소외를 문제 제기하는 사례이다. 끝없이 반복되고 그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사노동의 고단한 굴레로 인해 여성에게 집은 안식의 장소가 아닌, 더 넓은 세상으로의 나아감을 가로막는 억압 장치로 기능한다. 이 지난한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을 모성이나 사랑의 행위로 이상화하는 가부장적 사고는 여성의 노동을 정치경제적 맥락에서 지워버리는 것이다.. <그림 1> 미리엄 사피로(Miriam Schapiro), “Anatomy of Kimono”, 10개의 패널, 캔버스 위에 천과 아크릴 페인트, 200x1,523cm, 1976 (이미지 출처 https://www.tandfonline.com/doi/abs/10.1080/00043249.1977.10793342) <그림 2>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 “Accumulation No.2“, 봉제 형식의 모듈 조합, 1962 (이미지 출처 https://www.moma.org/interactives/exhibitions/1998/kusama/manual/kusama_8.html) <그림 3>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Avenza”, 1975 (이미지 출처 https://www.nytimes.com/2016/01/24/arts/design/a-look-inside-louise-bourgeoiss-home-just-how-she-left-it.html) <그림 4> 앤 헤밀턴(Ann Hamilton), “Still Life”, 1988 (이미지 출처 https://annhamiltonstudio.com/projects/stilllife.html). 3. 21세기 섬유조형의 페미니즘 표상들 본 장에서는 21세기 섬유조형작품에서 묘사된 페미니즘의 표상을 중심으로 그 흐름과 쟁점을 파악할 것이다. 기존 미술사의 관행에 대항하는 다양한 여성주의 패러다임 중에서 네 가지 의제 에 집중한다. 생애 주기의 전환점이 발생하는 순서에 따라 몸, 섹슈얼리티, 모성, 노화로 구분하 여, 각 단계를 대표하는 작품 사례에서 여성 고유의 정체성 탐색과 상관된 표상과 여성성 간의 의미작용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분석 대상은 여성주의 서사를 좀 더 직설적 으로 발화하는 예시를 선정하기 위해서 몸 또는 몸을 의인화하는 사물을 표현대상으로 취한 사례들로 표집범위를 한정한다. 여성성은 몸을 통해 체험되고 체현(體現)되는 것이므로 여자 의 몸은 여성의 삶을 은유하는 대표적인 기호로서 페미니즘 미술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표상 의 의미작용은 상대적이고 맥락에 따라 변화하는 속성을 지닌다. 과거 10만년 동안 감춰지거나 왜곡되거나 대상화되어 온 여자의 몸이 여성성에 대한 관례적인 범주에서 벗어나 어떻게 우리 시대 여성의 표상을 나타내는지 살펴보겠다. 3.1. 라일리 & 바르보자: 여성, 과정 중에 있는 주체의 몸 젠더 연구의 지형은 여성뿐 아니라 모든 주체들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으며, 고정된 정체성과 이에 근거한 불평등 구조를 문제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총체적이고 자율적인 주체라 는 근대적 인간 개념이 와해되고 남/여의 이분법적 대립구도가 해체되면서 다중화한 성 정체성 을 지향하게 된 것이다. 젠더 정체성을 가변적이고 우연적인 것으로 보아 여성을 ‘과정 중에 있는 주체(subject-in-process)’로 규정하는 대표적인 이론가는 후기구조주의적 관점을 바탕 으로 한 버틀러이다.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1990)는 「성, 젠더, 욕망의 주체들」을 통해 일관되고 견고한 주체로서의 여성의 범주뿐 아니라 이원적 젠더 체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젠더의 이분법을 만들어낸 권력구조를 비판하고, 복수성과 유동성을 담지한 젠더 개념을 바탕으로 ‘여성들’이 무엇인지를 미리 가정하지 않는 연합의 정치학(coalitional politics)을 제 안한다. 이는 총체적이고 고정된 젠더 규범의 목적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 인종, 기초조형학연구 21권 4호 (통권100호). 287.
(6) 계급, 성적 지향성의 차이들을 수렴하여 정치적 연대를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윤리적 행위주 체가 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7) 계속 형성되고 있고 유동적이어서 세상과 자신의 경계를 고정 시키지 않는 ‘과정 중인 주체’로서의 여성의 몸은 무어라 규정될 수 없는 애매성을 갖는다. 이원 적 젠더 체계 하에서는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자신의 젠더를 연기하는 수행이 반복적으 로 실행된다. 버틀러에 의하면 젠더는 하나의 수행(performance)이자 불안정한 정체성에 불과 하며, 주체가 어떻게 수행하는지에 따라 양태가 계속 변한다고 말한다.8) 이러한 맥락을 바탕으 로 제도권 문화에서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고착화 한 여성의 성 정체성을 의식적으로 와해시키 는 시도를 조형예술 사례에서 짚어보겠다. 여성이라는 범주는 가부장제 문화가 전제하는 덕목 에서처럼 고정된 것도 확실한 것도 아니며, 저마다의 차이가 각축하며 수용되고 체현되는 장소 를 상징한다. 시각매체를 주축으로 한 대중문화에서 젊고 아름답고 수줍은 여성이나 희생적인 모성을 이상화하여 재현하는 여성상과 실제 현실 사이의 괴리를 조명한 작품 사례들이다. 에린 라일리(Erin M. Riley, 1985-)는 규범화된 젠더 이미지에 내포된 이상주의의 그림자를 묘사한다. 우리 문화가 만든 성적 차이에 배당된 가치는 섹슈얼리티의 계급적 결정 요인으로 작용하며, 젠더 재현의 코드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조건 짓는다. 몸은 저마다 다름에도 불구 하고 대중 매체가 여성의 바람직한 외모의 원형으로 제시하는 이미지는 획일적이다. 여성 신체 에 적용되는 미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대다수 여성의 몸은 너무 과하거나 너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시각매체에서 재현되는 남성상은 신체적 조건과 연령대가 다양하게 연출되어 정해진 표준이 없으므로 덜 짐스러운 데다 치장하는 데 손이 덜 간다. 미디어가 집착하는 정형 화된 여성상은 일반 여성이 자신을 판단할 때 다가서는 거울 위에 터무니없는 기준을 펼쳐 보인다. 그것의 타당성을 의심하고 거울 뒤에 감춰진 프레임을 들춰내는 게 아니라, 대량생산된 거울 이미지에 자신이 부합하지 않는다며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게 만든다. <그림 5>와 <그림 6>은 욕실 거울에 비친 셀피(selfie)이다. 여기에서 거울은 나르시시 즘의 기표로서가 아니라 여성성을 환기시키 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라일리는 거울에 비 친 실생활 속 몸의 현실을 통해 전형적인 섹 슈얼리티에 연루된 행위와 여성성의 고착에 대한 저항의 증거가 상존하는 이미지를 포착 한다. 일종의 자기표현 행위로서 차이를 새 기기 위해 대담한 타투를 몸에 입히는 거침 <그림 5> 에린 라일리(Erin M. Riley), “The Beginning”, 태피스. 없는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이라는. 트리, 122x183cm, 2016. 이데올로기가 조작한 여성성이라는 기표의. <그림 6> 라일리, “4am Hookup Prep”, 태피스트리, 122x183. 권위로 몸을 다시 돌려보낸다. 자기표현의. cm, 2016 (https://erinmriley.com/section/19419.html). 구체적인 즐거움이 소거된 아름다움을 위해. 일상적 의식(daily routine)의 불편을 감내하는 것이다. 여성성은 관례적으로 여성의 몸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다. 여성의 몸은 항상 평가의 대상이 된다. 여성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특징인 아름다움을 입증할 수 있는 통로는 오로지 자신의 몸을 통해서이다. 가부장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스러운 여자는 대개가 수동적이고 조신하고 영원한 소녀 같고 저체중이고 조용한 몸을 지닌 존재이다. 특히 마른 몸이 아름답다는 규정은 가부장 제도에 의존하고 복종하도록 몸매 자체에 미성숙함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미디어를 통해 여성 적인 몸 보여주기의 인습적 기준들과 날씬한 몸에 대한 강박은 여성을 압박하는 현대판 코르셋 이다. 애나 바르보자(Ana Teresa Barboza, 1981-)의 자수 작품은 남성의 시선을 통한 여성성 이라는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전복적인 스티치(subversive stitch)이다. 그는 천에 프린트한 자 신의 사진 이미지 위에 일종의 카모플라지(camouflage)로 장식적인 패턴을 수놓는다. 아름다 7) 주디스 버틀러, 송연승 역, 「성, 젠더, 욕망의 주체들」, 윤난지 편저, 앞의 책, pp.441-461 참조 8) 주디스 버틀러, 조현준 역, 『젠더 허물기』, 문학과 지성사, 2015, pp.343-344 288.
(7) 움이라는 관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장식적인 패턴은 그 자체가 계급적 용어인 여성다움을 나타내는 기표이다. <그림 7>에서처럼 여자의 몸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성을 새겨 넣는 장소이다. 다채로운 개성이 형형색색으로 깃들 수 없도록 검은색의 실로 온 몸에 장식적인 패턴 을 수놓는다. 검디검은 패턴은 획일적으로 규정된 여성성의 엄격함이 강제하는 불길한 그늘인 전통적 억압과 금기의 무게를 상징한다. <그림 7>이 가부장사회의 시선을 순응적으로 내면화 하는 모습이라면, <그림 8>은 남성의 시각이 만들어 온 여성으로 내 몸을 취급하지 말라는 거부의 몸짓을 나타낸다. 여성적인 신체의 기호로서 주입된 분홍색의 패턴을 단호하게 움켜쥔 손으로 뜯어내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뜯겨나간 실 가닥에 섞인 붉은 실은 왜곡된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 중에 있는 주체가 감수해야 할 고통을 핏빛으로 은유한다.. <그림 7> 애나 바르보자(Ana T. Barboza), “Modos de Vestir(Dressing Codes)”, 캔버스 위의 자수, 2008 <그림 8,9> 바르보자, “Modos de Vestir”, 캔버스 위의 자수, 2006 (<그림 7,8,9> 이미지 출처 http://anateresabarboza.blogspot.com/p/2008.html). 3.2. 루카스 & 버크만: 섹슈얼리티 탐색과 전복적 유희 섹슈얼리티는 단순하게 성적 욕망이나 행위의 차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성에 대해 가지는 태도, 감정, 가치관, 사고, 규범 등 성적인 것 전체를 포괄한다. 뤼스 이리가레(Luce Irigaray, 1977)는 「하나가 아닌 성」에서 남근에 특권을 주는 사회관습에 의해 남성의 성적 쾌락을 위한 도구로서만 치부되어 온 여성의 성이 그 자체로 고유한 특성을 가진 것임을 피력한다. 클리토리스의 능동성과 질의 수동성, 온 몸에 분포한 성감대의 주관적인 직접성이라는 신체적 특징뿐 아니라, 언어적 특성에서도 자기 안에 타자를 지닌 여성의 성은 한 가지로 고정되지 않은 ‘복수성’9)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이리가레에게 에로스는 관능의 쾌락이며 다수로 존재하 는 경이로움이다.10) 에로티시즘을 중심으로 한 페미니즘 미술의 목표는 여성 자신의 성적 쾌락 을 추구할 권리를 포함하여 여성 스스로의 몸에 대한 자율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성적 폭력, 원치 않는 임신, 사회적 낙인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을 방치하여 여성으로 하여금 성적 욕망을 억제하도록 조정하고, 여성을 남성의 성애적 대상으로 환원하여 통제하려는 가부 장제에 대한 저항이다. 새라 루카스(Sarah Lucas, 1962-)는 성 정체성을 은유하는 상징 구조의 일부로서 가구, 담배, 과일, 스타킹과 같은 일상의 사물을 의인화(anthropomorphic)하여 젠더와 상관된 관습적인 사회규범을 비판한다. 1997년부터 시작된 버니(bunny) 연작은 <그림 10,11,12>에서처럼 파 편화된 여성의 인체가 의자에 결합된 형상이다. 욕망을 발산하는 주체와 욕망의 대상이 결합된 혼성체, 요컨대 주체도 대상도 아닌 상징계를 통해 성과 문화에 대한 기존관념에 이의를 제기하 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몸 기저에서 작동하는 욕망을 해부하기 위해 에로틱한 표현, 희화화, 파편화, 재구성(reconfiguration) 형식을 작품에 적용한다. 이는 자신의 몸과 성(sex)을 수치스 러운 것으로 감추도록 가르침을 받아 온 여성에게 터부시되었던 금지된 욕망을 표출하기 위함 이다. <그림 13>은 분홍색 나선형 계단 위에 매듭으로 뒤엉킨 누드 형상(NUD 연작)이 놓여 있다. 여성 신체의 대상화(objectification)를 거부하는 장치로서 경계 위에 있는 성적으로 모호 9) 여성적 재현의 형식으로 이리가레이는 요면(speleology) 개념을 제안한다. 여러 면으로 깎인 요면은 복수성을 지닌 여성의 정체성 을 반사하고 굴절하는데, 단일한 의미로 규정될 수 없다는 이 특성은 데리다의 차연(differance) 개념과 연결된다. 요면은 남성적 현 존을 비추는 나르시시즘적 ’거울(mirror)’에 대치되는 개념이다. 10) 뤼스 이리가레이, 유승민 역, 「하나가 아닌 성」, 윤난지 편저, 앞의 책, pp.123-130 참조 기초조형학연구 21권 4호 (통권100호). 289.
(8) 한 것(sexual ambiguity)을 나타낸다. 루카스에게 여성의 몸은 욕망이나 감각적 향유의 대상이 아니다. 루카스의 작품은 자기 자신의 욕망을 가진 주체로서의 여성을 표상하며, 갑작스러운 성적 흥분 을 은유하는 신체언어를 전시한다. 버니 연작에서 여자의 몸은 시각적인 쾌락이 제거된 채, 관능적인 순간의 전율을 감추지 않고 주도하는 주체의 모습을 나타낸다. 억압됐던 성 에너지의 발산이며, 성적 욕구의 충족이 아닌 욕망의 생성이라는 시작점에 무게 중심을 둔 것이다. 미술 사에 선택적으로 기입된 주류에서 여성 대상에게 투사되는 남성의 응시는 자신의 성적 환상에 맞춰 여성의 몸을 코드화함으로써 하나의 소극적인 전시물인 구경거리(spectacle)로 왜곡한 다. 루카스는 바라보는 자라는 남성적 페티시즘과 그 권위가 부여된 관람자의 관음증적인 쾌락 을 거부한다. 오히려 성적 욕망을 통제하려는 응시를 외설적인 섹슈얼리티를 통해 웃음으로 날려버린다. 남성의 몸이 중앙으로 집중된 남근(phallus) 중심적인 몸인 반면, 여성의 몸은 부 분들로 구성된 하나의 전체라고 볼 수 있다. 여성의 몸은 개개의 부분들이 움직이며 무한히 변화하는 총체이다. 변화 중에 있기에 매 순간 살아있는 몸이다. 하나이면서 동시에 다수로 존재하는 경이를 발화하는 몸이다.. <그림 10> 새라 루카스(Sarah Lucas), “Titty Bunny”, 2018 (이미지 출처 https://www.sarahlucas.com/) <그림 11> 루카스, Titty Doris, 2017 (https://cfa-berlin.de/exhibitions/8035/funqroc/works/) <그림 12> 루카스, “Nobby Bloke”,2017 (https://cfa-berlin.de/exhibitions/8035/funqroc/works/) <그림 13> 루카스, “Father Time”(부분), 2011 (https://www.sadiecoles.com/exhibitions/194/installation_shots/). 조 버크만(Zoë Buckman)의 설치미술 작품은 여성을 대상화(objectification)하는 당대의 여성 주의 이슈를 반영한 빈티지 속옷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쓰인 속옷은 신체를 가혹하게 속박 하는 코르셋, 편안한 착용감의 슬립, 남성의 시각에 호소하는 란제리 등 다양한 시대의 부산물 들이다. 여성의 몸을 최소 형태로 옥죄는 코르셋이나 레이스 장식이 풍부한 이른바 ‘여성적인’ 란제리를 처음으로 대중 시장에 내놓은 시기는 후기 빅토리아시대(1850-1910)이다. 성차를 강조했던 시대인 빅토리아풍11)의 란제리는 여성 섹슈얼리티의 만개가 아니라 억압을 촉발한 다. 유독 여성의 속옷은 실용적 편안함에 기초한 기능적 아이템이 아닌 성적 기호로 유통된다. 그래서 여성의 속옷은 성적 대상으로 역할이 축소된 여성에게 투사되는 에로티시즘의 이기적 이고 폭력적인 본질을 드러내는 매개체이다. 버크만은 유명한 힙합 랩퍼 튜팩(Tupac Shaker) 과 노터리어스 비아이지(Notorious B.I.G.)의 가사로부터 우리 사회 기저에 퍼진 여성을 향한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현상을 비판하는 문장을 발췌하여 개개의 속옷 전면에 수놓는다. 성을 권력의 척도로서 특권화 하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새겨 넣는 장소로서 속옷이 갖는 상징성을 이용한 것이다. 여성이 착용하는 속옷은 페티시(fetish)이며 여성으로 존재하게 하는 표식이다. 속옷뿐 아니라 트랜드를 빙자하여 독립적인 여성 소비자들을 통제하려는 주류 패션 제조업체 가 내세우는 여성스러운 옷은 대개가 불편하다. 굴곡이 있는 마른 체격을 표준으로 제조한 옷에 대다수의 몸을 맞춰야만 하는 실정이다. 자신의 몸이 부적격이라는 부정적인 자각을 유도하고 심리적 고립감을 악화시킬 수밖에 없는 인형 옷들인 것이다.. 11) 빅토리아시대의 복고풍을 향한 낭만적인 향수의 발원지는 미국의 속옷 브랜드인 ‘빅토리아 시크릿’의 매출액 분석에서 드러난다. 매출액의 절반을 차지하는 남성 고객이 레이스와 자수 장식이 화려한 고가의 속옷을 구매한다. 자세한 내용은 ‘수전 팔루디, 황성 원 역, 『백래시,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아르테, 2017, p.309 참조. 290.
(9) <그림 14,15,16> 조 버크만(Zoë Buckman), “Every Curve”, 란제리 위의 자수, 2016 (<그림 14,15,16> 이미지 출처 https://www.zoebuckman.com/art/every-curve-art/). 3.3. 메사제 & 페리: 풍자와 해학을 통한 모성신화의 희화화 모성을 여성의 필수불가결한 본성으로 주입하는 관습이 야기하는 해악은 여성으로 하여금 공 적 주체가 될 기회를 박탈한다. 모성신화는 가부장제의 존속에 필요한 조건이다. 켈리 올리버 (Kelly Olver, 1957-)에 의하면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 1976)가 “눈물을 흘리는 성모”에서 성모(Virgin Mother)의 신화는 여성의 열락(jouissance)을 제거하고 모성을 희생에 등치시켜 왜곡함으로써 상징계에서 어머니를 통제하는 효과적인 장치가 되어왔음을 폭로한다 고 피력한다. 부권을 대리하는 장치로서 모성적 메타포12)를 통해 완전 불멸의 신성한 어머니 상을 강제한다는 것이다. 크리스테바는 코라(chora) 기호계적인 모성적 육체를 복원하기 위해 파괴와 공격과 소유 관념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모성 담론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어머니가 경험하는 임신과 출산,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와의 동일시를 통한 딸의 사랑을 여성윤리학(herethics)의 모델로 제시한다.13) 크리스테바에게 임신과 출산은 폭력적이고 고 통스런 경험 속에서 기쁨으로 타자를 자신 안에 품는 사랑의 출발점이다. 그러므로 어머니와 아이의 양자관계는 모든 사회적 연대에 기초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모성신화의 허구를 폭로하 거나 모성성의 근간이 되는 임신, 출산, 양육의 의미를 해학적인 시선으로 탐색하는 사례로서 메사제와 그레이슨의 작품 사례를 분석하겠다. 풍자와 해학을 통해 배후에 드리운 아이러니를 폭로하는 웃음은 고통이 야기한 슬픔과 분노를 대신하여, 억압 주체의 권위와 관습적인 의미를 해체하고 전복하는 전략적 도구이다. 여성에게 모성을 강조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를 통해 여성의 몸에 가한 억압과 착취의 유구한 역사가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신랄한 웃음 속에서 인지 하도록 하여 인식의 전환을 유도하는 장치인 것이다. 아네트 메사제(Annette Messager, 1943-)는 1970년대 이래로 아동기의 놀이에서부터 사회 내에서의 성 역할에 이르기까지 여성성을 재현하는 방식과 상관된 현실적 갈등 68㎜(본문의 1/2). 을 해학적으로 묘사한다. 199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봉제 형식의 조형물(stuffed figures)인 <그림 17>은 여 성의 생물학적 특징으로 곧잘 소환되는 자궁 형상이다. 부 권사회는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초극에 가까운 절대적인 가 치를 위해 여성에게 부과되는 고된 현실과 제한적인 삶의 조건들을 수긍하고 받아들이도록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림 17> 아네트 메사제 (Annette. 이때의 자궁은 근원적인 모성의 발원지이며 여성의 무한한. Messager), “Uterus Giving the Finger”,. 희생을 바탕으로 유지되는 세계의 필수불가결한 인큐베이. 80x80x13cm, 2017 (https://www.mariangoodman.com/artists/ 52-annette-messager/works/36668/). 터에 지나지 않는다. 메사제는 가부장제의 존속을 위해 제 도화된 규범들에 의해 분홍색 자궁으로 축소된 여성의 몸 이 억압 기제를 향해 검고 단호한 거부의 손짓을 취하게. 한다. 모성신화를 통해 알레고리화 되어 은닉될 수밖에 없었던 여성 서사를 복원하기 위한 첫걸 12) 말씀에 복종하여 잉태하게 만들고 침묵하게 하는 귀, 아이를 위한 모유, 자기희생을 암시하는 눈물 등이다. 13) 켈리 올리버, 박미연 역, 「애브젝트한 어머니」. 윤난지 편저, 앞의 책, p.166 기초조형학연구 21권 4호 (통권100호). 291.
(10) 음이다. 자궁은 여성의 생물학적 기호이자 모성의 거점이며, 남성적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전략적 요새이다. 모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므로 신의 경지인 절대적인 희생을 강요할 게 아니라, 그러한 헌신이 인간의 일이고 인간이란 태생적 으로 결함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가임기와 완경 시기에 생물학적 시계를 거론하며 노화를 겁내도록 조장하는 풍토를 지양하고 생식력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 기혼의 직장여성을 번아웃시키는 사회적 불평등, 경력단절로 인한 경제권 상실과 사회 복귀의 불가능성과 같은 사회적 문제들의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모성을 지키는 일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림 18> 그레이슨 페리(Grayson Perry), “The Adoration of the Cage Fighters”, 모사, 면사, 아크릴사, 폴리에스터사, 견사, 200x400cm, 2012 (이미지 출처 https://www.victoria-miro.com/exhibitions/429/). 그레이슨 페리(Grayson Perry, 1960-)는 우회적인 풍자와 해학을 통해 모성신화의 남성적 허구에 관한 은유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림 18>은 2016년 런던에서 열린 개인전 “The Vanity of Small Differrence”14)의 발표작품이다. 18세기 영국 화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1997-1764)의 “A Rake’s Progress”(1733) 연작15)과 초기 르네상스 회화를 패러 디 형식의 레퍼런스로 취해 21세기 영국의 사회규범과 소비문화, 즉 사회계급과 연동하는 취향 의 문제를 풍자한다. 팀 레이크웰(Tim Rakewell)이라는 가상의 인물이 노동자계급에서 태어 나 중산층을 거쳐 상류층으로 상승 이동하고 종국에는 몰락하고 마는 일대기를 여섯 점의 대형 태피스트리16)로 나누어 구성한 전시회이다. 연작의 첫 번째 피스인 <그림 18>에서 페리는 안드레아 만테그나(Andrea mantegna, 1431-1506) 회화에 등장하는 성모상 및 인물상의 포 즈를 차용한다.17) 이미지의 무대배경은 할머니(화면 중앙 상단 이미지)집의 거실이다. 화면 오른편에는 신생아가 어머니 품에 안긴 채로 어머니의 관심을 놓고 휴대전화와 경쟁하고 있다. 화면 중앙 하단에서는 노동자계급의 거주지역인 선더랜드(Sunderland)의 상징인 축구 유니폼 과 광부의 램프를 아기에게 선사하기 위해 테스토스테론이 충만한 두 명의 케이지 파이터(cage fighter)가 무릎을 꿇고 있다. 화면 왼편에 위치한 네 명의 친구들은 클럽 나들이에 합류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뒤로 한 채 작별을 고하고 있다. 상술한 세 부분을 구분하는 테두리인 ‘GOD’이 라는 타이포그래피는 배후에서 작동하는 모성신화가 세대를 이어 여성을 구속하는 케이지임을 나타내는 장치이다. 그러므로 제목에서 지시하는 대상인 케이지 파이터는 도상학적으로 화면 중앙의 두 남성이면서 동시에 어머니를 은유하게 된다. <그림 18>은 가부장적 사회를 존속시키기 위한 기제로서의 모성 숭배, 사회적 관계망의 단절 14) 페리는 이 개인전의 제목이 프로이드(Sigmunt Freud)의 『Civilisation and it’s Discontents』(1929-1930)에서 전개된 정신분 석개념인 “the narcissism of small differences”를 변용한 것임을 작가노트에서 밝힌다. 사실 대다수의 타인과 별다른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자신이 독특한 개성을 지녔다고 열정적으로 도취되는 성향을 지시한다. 15) 호가스의 초기 작품으로 18세기 당시 영국사회의 계급이동과 상관된 소비문화를 풍자한 8점의 회화로 구성된다. 젊은 남자주인공 인 톰 레이크웰(Tom Rakewell)이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고 나서 상류층으로의 계급이동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로 인해 방탕한 생 활로 재산을 탕진한 후 정신병원에 감금되는 일생을 그린 내용이다. (자세한 내용은 https://www.theoldie.co.uk/blog/williamhogarths-fashionable-orgy 참조, 2020년 5월 19일 접속) 16) 스케치를 어도비 포토샵의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한 후 플랑드르(Flanders, 벨기에의 작은 커뮤니티)에서 한 이미지 당 여섯 점의 에디션을 자카드직기로 제작(한 점(200x400cm) 당 직조에 5시간이 소요됨)했다. 17) Fiona Godfrey, “The Vanity of Small Difference: Grason Ferry”, 『Education Pack 2018』, Arts Council Collection, 2018, p.14 292.
(11) 이라는 비가시적인 현실을 인식하도록 질문을 던진다. 임신과 출산뿐 아니라 양육마저 책임을 도맡게 하는 현실은 어머니로 하여금 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주체가 아닌 타자를 위한 장소로서 살도록 요구 받게 한다. 모성신화가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에 전적으로 기반을 두고 있음에도 가부장제를 대변하는 두 남성이 경외하는 대상은 어머니가 아닌 갓 태어난 남자 아이이다. 모성 숭배 문화는 남성적 이데올로기의 허구이다. 여성의 독립에 대한 자신들의 우려를 가부장적 온정주의의 가면 뒤에 은폐한다. 전통 문화적 서사 속에서 여성을 관리 가능한 역할로 축소시키 고 가부장주의의 제도적 규범에 순응하도록 압력을 가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3.4. 쉐러: 주변화를 가속화시키는 노화의 여성적 경험 젊음과 아름다움을 이상적인 여성의 지표로 상정하는 사회에서 노년기의 도래는 여성에게 상 대적으로 더욱 극심한 상실감을 초래한다. 내적 감정은 생생하게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노화 라는 불가항력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몸이 자신을 배반하고 있다는 패배감이 상실감에 혼합되 어 부정적인 감정을 촉발한다. 노년기에 들면 이제 자신이 사회가 부양해야 할 잉여적 존재로서 타자화 되고 주변화 되었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감내해야 한다. 이는 단명하지 않는 한 인간이 라면 누구나 통과해야 할 여정이지만, 노년기의 심리적 진입 시기는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빠르 게 시작되고 평균수명이 상대적으로 길기에 더 오래 지속된다. 수전 손택(Susan Sontag, 1972)은 “The Double Standard of Aging”에서 여성의 효용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발생하는 성적, 경제적 차별을 조명하고 젠더의 이중 잣대를 비판한다. 여성이 생애 주기에서 가임기를 지나고 나면 더 이상 성적인 존재가 아닌 것으로 간주되는 고정관념을 지적한 것이다.18) 타자로서의 삶을 살도록 이미 사회적 운명을 타고난 여성이 가임 기를 지나면서 재차 주변화가 가속되고, 완경과 함께 시작되는 갱년기와 노년기의 진입을 거치 면서 3중, 4중의 주변화가 행해진다. 성차별에 노년 차별이 가중되어 행해지는 배제인 것이다. 생애의 후반기에 자리한 노인의 몸을 대상으로 한 작품은 현저하게 빈약한 편이여서 미술을 포함한 시각매체분야에서 그 존재를 찾아보기 힘들다. 젊음 을 이상적인 미의 기준으로 상정하는 대중문화의 암묵적인 차별에서 기인한다. 쉐러(Deidre Scherer)는 1980년대 이래 로 나이 듦, 죽음, 애도를 작품의 주제로 삼아 노년기의 존엄 33㎜. 한 아름다움을 그려낸다. <그림 19>에서 생애 주기의 막바 지에 다다른 여성의 몸이, 마지막 여정을 은유하는 머리맡의 열려진 창을 향해 수직구도로 연결되어 있다. 앙상한 두 팔로 가슴을 감싸 안은 포즈를 통해 불가항력적인 죽음 앞에서 나 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 실존의 불안을 암시한다. 동일 노동에 서의 불평등한 임금뿐 아니라 무보수 가사노동의 책임,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탓에 선택되는 시간제 노동의 최 저임금이 누적되어 노인 빈곤율에서 여성이 상대적으로 더 심. <그림 19> 데이드레 쉐러(Deidre Scherer) “Open. Windows”,. 퀼트,. 94x125cm,. 각한 실정이다. 생애의 마지막 과정을 존엄하게 치룰 수 있는. 2000. 기회비용이 적을 수밖에 없다. 돌봄 노동이 여성에게 편중되. (https://www.dscherer.com/portfolios/. 어 있으므로 죽어감의 지난한 고통 속에서 자신의 마지막 보. traveling-exhibitions/). 살핌을 다른 여성에게 의존하게 된다.. 4. 결론 및 제언 이상에서 살펴본 사례들은 21세기 섬유조형에서 표상을 통해 과정 중에 있는 주체로서의 여성 의 몸, 전복적 유희를 발화하는 섹슈얼리티, 공적 주체가 될 기회를 박탈하는 모성 신화, 주변화 를 가속화시키는 여성의 노화라는 생애주기와 상관된 페미니즘의 네 가지 의제들을 시각적으 18) Susan Sontag, 「The Double Standard of Aging」, Saturday Review of the Society 55, Saturday Review Press, 1972, pp.28-39 참조 기초조형학연구 21권 4호 (통권100호). 293.
(12) 로 구현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페미니즘 미술은 남성중심으로 기술된 기존의 미술사가 담지할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한계인 편향된 여성상의 표현을 지양하고 왜곡된 여성성을 여성의 시각 으로 교정함으로써 세계관을 확장하려는 시도로 규정된다. 그래서 여성성의 회복을 목표로 하 는 미술은 단순히 미학적인 맥락에서만이 아니라 사회, 역사, 문화, 정치를 포괄하는 다원적인 관점에서 의미작용을 고찰하도록 요청한다. 페미니즘 미술은 어떻게 가장 비정치적인 것이 가 장 정치적일 수 있는지를 일깨우는 표본이며, 절반의 미술사가 잃어버렸던 나머지 반쪽이 제자 리를 찾아 여성만이 젠더 표지를 달지 않음으로써 상호주관성이 균형을 이루는 미래가 도래할 때까지 지속될 과제일 것이다. 상황은 나아지고 있지만 모든 사람들의 평등한 권리를 찾기 위해 가야할 길은 멀고 더디다. 페미니즘의 핵심은 인간의 존엄성과 젠더 평등에 준거하여 여성에게 더 넓은 경험의 폭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분법의 세계에서 한 쪽으로 치우친 해석의 단일성에 기대어 대의와 명분이 만들어낸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기울기를 완화 하기 위해서는 먼저 각자에게 주어진 특권의 범위와 영향력을 인정하고 나서, 그러한 특권을 타고나지 못한 이들이 미처 상상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토록 해야 한다. 주머니 있는 옷을 찾을 수 없는 불편을, 사회 진입에서의 차별을, 자신의 신체를 양도하지 않을 권리를 입법부가 제한하는 박해를, 강간을 문화라고 지칭하는 사회의 폭력을 일상으로 헤쳐 나가며 삶을 지탱하는 사람들이 우리 인류의 반을 차지한다. 남성중심의 획일적인 미술사에서 주변으로 밀려나 발화될 수 없었던 여성 창작주체와 이론가 들의 약진은 지극히 고무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여성적인 매체로 저평가되어 온 섬유를 매체로 하는 페미니즘 미술이 남근 중심적 상징계를 해체하거나 여성들의 삶의 경험을 조형예 술 작품으로 제시해 온 부단한 노력의 성과들을 단편적으로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통로가 되었 길 기대한다. N번방 성 착취 사건과 같이 여성혐오가 극점으로 분출하는 현 시점에서 대안적 시각으로 여성적 패러다임에 주목할 필요가 분명해 보인다. 여성은 수평적 시선으로 타자와 관계를 맺고 유대를 다짐으로써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주체이다. 위계와 갈등을 조장하는 이원론적 논리를 넘어서 배제보다는 포용, 경쟁보다는 공생, 투쟁보다는 화해 를 지향하는 여성적 태도를 통해 타자에 대한 배려와 윤리의 필요성에 대한 성찰이 요청되는 이유이다. 유구한 가부장적 전통에서 주변화된 여성은 바깥에서 전적으로 다른 것, 접근할 수 없는 것, 미래에 와야 할 것을 체득한 존재이므로 그들의 목소리에 실린 새로운 전망에 귀 기울 일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를 추구하고 그 사이에서 균열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교집합을 찾기 위한 노력이다. 본고는 젠더 포지션과 여성이라는 보편적 범주 내에 서 성찰할 수 있는 몇 가지 의제들에 관한 것이었다. 향후의 연구 과제는 다양한 개별 경험과 저마다의 삶이 지니는 특수성을 페미니즘의 스펙트럼 내에서 조망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린다 노클린 외 18人, 윤난지 편저, 『페미니즘과 미술』, 눈빛출판사, 2009 수전 팔루디, 황성원 역, 『백래시,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아르테, 2017 이희원 외 15人, 『페미니즘, 차이와 사이』, 문학동네, 2011 주디스 버틀러, 조현준 역, 『젠더 허물기』, 문학과 지성사, 2015 G. Pollock & R. Parker, 『Old Mistresses: Woman, Art and Ideology』, Pantheon, 1981 Helena Reckitt 편저, 『The Art of Feminism: Images that Shaped the Fight for Equality』, Tate Publishing, 2018 Christina Reading, 「Re-presenting Melancholy: Figurative Art and Feminism」, The University of Brington 박사학위청구논문, 2015 Susan Sontag, 「The Double Standard of Aging」, Saturday Review of the Society 55, Saturday Review Press, 1972.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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