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여성지에 나타난 생활개선 담론의 경향 고찰
- 주생활 및 부엌개량의 내용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Discourse for the Improvement of Living Conditions and Housing through Modern Women’s Magazines
김용범*
Kim, Young-Bum
Abstract
This study aimed to grasp trends of the discourse for improving living conditions carried out since 1920's, when the sense for mending the irrationality of conventional living emerged in various magazines. Among the movement, women intellectuals played an important roles to discuss reforming daily life and unhealthy, inconvenient houseworks. This study found the ideological background and direction of this discourse, and estimated its important role for housing improvement, analyzing the contents of articles published in representative womens’ magazines of the modern times. In the discourse, they thought that it was most important to make houseworks brief and efficient, and concentrated on building rational environment for houseworks. As reforming kitchen system, heating system (Ondol) should be separated from cooking system to improve hygienic and economical condition of houseworks. Reformed kitchen would be equipped with new installations for effectiveness, lightened by sunlight through windows, and finished floor with cement and drainage for sanitation. Also, they suggested new ways of living, planning modern houses with reformed kitchen system, thinking about moving path and distance of housewives. This discourse would be a foundation to the change of kitchen system up to now.
Keywords : Japanese Colonial Period, Movements for Improvement of Living, Womens’ Magazine, Housing Improvement, Kitchen 주 요 어 : 일제강점기, 생활개선운동, 여성 잡지, 주택개량, 부엌(주방)
I. 서 론
1.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
일제강점기의 생활개선운동은 조선인 자국민의 실력양 성을 통해 독립국가를 이룩하고자 했던 사회적 분위기 속 에서 일어났던 사회운동 중의 하나였다.
1920년대부터 민족 신문이 발행되고, 언론사 및 여성단 체, 계몽단체들을 중심으로 계몽지 및 일반대중잡지가 발 간되면서 대중을 향한 지식인들의 개선담론들이 쏟아지기 시작하였고, 전국 각 지에서는 생활개선 강습회와 강연회 들이 줄곳 열렸다. 특히, 1929년 색의단발(色衣斷髮), 건 강증진, 상식보급, 소비절약, 허례페지 등의 5대 강령을 내세운 조선일보사의 ‘생활개신운동’의 주창1)은 이러한 사 회적 기운이 보다 여론화 되어, 대중의 일상생활을 지배 하는 규범으로서 인식되어 갔다. 물론, 여기에는 조선총독 부의 조선인들에 대한 회유책, 그리고 1930년대 농촌진흥 운동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면도 없 지 않지만, 생활개선운동을 통하여 재래생활의 불합리함
에 대한 인식과 개선을 촉진시켰다는 점에서 일상생활의 큰 변화를 일으켰던 계기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생활개선 담론의 구체적인 내용은 당시 여러 분야의 지 식인들이 신문과 잡지 등에 투고한 기사들으로부터 살펴 볼 수가 있는데, 모두 공통적으로 의복과 음식, 주거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전반적인 ‘개조’, ‘개량’을 요구하고 있 었다. 물론, 당대의 담론이 대중의 삶을 곧바로 변화시킬 만큼 조속히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매 체를 통해 산발적으로 확산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문 자 가독이 가능한 계층이 늘어나고 있었던 점2)으로 볼 때, 당대의 생활과 주택을 바라보는 새로운 잣대를 형성 해 가고 있었다.
이러한 담론 중에서 본 연구가 주목하는 것은 여성 지
*정회원(주저자, 교신저자), 가나가와(神奈川)대학 공학연구소 연구 원, 공학박사
1) 十六日은 生活改新宣傳日!(1929.5.12.), 朝鮮日報, 2면
2) 일제강점기의 근대 매체의 보급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 던 것이 사실이다. 소설을 읽고 신문과 잡지를 구독하는 독자 층이 대중의 규모로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문맹 타파와 문자 보급을 위한 브나로드 운동, 중·고등교육의 진학률 증가, 부립 도서관의 설립, 신문 종람소를 통한 독서 공동체(독서회, 청년회, 夜學 등)의 형성 등 당시 지식인들의 계몽 담론들을 받아 들일 기반은 충분하였다고 생 각된다., 천정환(2003). 근대의 책읽기-독자의 탄생과 한국 근대문 학. 푸른역사, 108-128.
식인들의 생활개선 담론이다. 생활개선에 있어서 여성은 재래생활의 불합리함을 몸소 경험하며 개선을 실천에 옮 겨야 할 주역 임과 동시에 담론을 생산해 내는 주체로서, 담론의 중심에 있었으며, 무엇보다 여성들의 담론들에서 읽어낼 수 있는 새로운 주거에 대한 요구는 이 시기에 유 입된 새로운 주거 문화를 수용하고 이후 시대로 이어지 는 변화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박길룡, 박동진, 김윤기 등을 비롯한 유수의 건축가들이 생산한 주택개량론에 있어서 이러한 생활개선 담론이 그 바탕에 있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여성 지식인들이 생산한 생활개선 담 론의 내용 분석을 통해 여성 지식인들의 담론의 방향성 과 역할을 찾아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당대의 대표적인 여성지들을 중심으로 관련 기사의 내용을 분석하고, 여성 지식인들이 가정생활에 있어서 무엇을 불합리하다고 인식 했고, 무엇을 개선하고자 하였는지, 특히 가사노동의 중심 이 되는 부엌의 논의를 중심으로 개량의 내용과 주안점 을 살펴보도록 한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의 분석을 바탕 으로, 여성 지식인 및 건축가들이 여성지를 통해 제안했 던 부엌 및 근대주택 계획안의 개량적 특성을 분석함으 로써, 여성지의 생활개선 담론이 주거 근대화의 모색에 있어서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는지를 평가해 보 도록 한다.
물론, 여성지를 통해 생산된 담론이 모두 여성 지식인 들 만의 것은 아니었으나, 여성지의 특성상 여성 독자를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는 점에서 여성 지식인들의 담론이 다른 매체에 비해 보다 집중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2. 연구방법과 범위
분석 대상으로 삼은 잡지는 <표 1>에서와 같이 한국 최초의 여성지인『家庭雜誌』, 근대 한국의 3대 여성지로 일컫는 『婦人』과 『新女性』, 『新家庭』, 『女性』 그리고 종합지 『別乾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新女性』은 개벽사가 기존에 발간하던 『婦人』을 종 간하고, 가정의 주부 뿐 아니라 젊은 여성 독자층을 확보 하기 위해 잡지명을 개칭하여 발간된 잡지이다. 또, 『別 乾坤』은 1926년 8월에 『開闢』이 총독부에 의해 폐간된
후에 그 後身으로 발간된 잡지로서,『開闢』의 정치적 성 향에서 탈피하여 취미와 실익을 위주로 한 대중잡지를 지 향하고 있었다.3)『別乾坤』은 여성지는 아니지만, 1928년 12월에 ‘生活改善 特輯號’를 기획했을 만큼 생활개선운동 과 관련이 있는 일반 종합지로서 부수적으로 수집 대상 에 포함시켰다.
이 잡지들로부터 모두 94건의 생활개선 담론의 중심이 되는 기사들을 모을 수 있었고, 그 중에서 주생활 및 주 택개량에 대한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41건의 기사에 대 해 기술 내용의 분석을 시도하였다.
II. 생활개선 담론의 전개와 쟁점
1. 생활개선운동과 여성지
생활개선의 사회적 분위기가 본격화 된 것은 1920년대 초부터 총독부가 ‘문화정치’를 표방한 정책 전환으로부터 민족 신문과 대중잡지가 발간되었던 것이 계기였다. 특히, 취미와 실익을 위주한 대중잡지, 그 중에서도 여성지는 처음부터 여성운동의 구심점이자, 일제강점기 동안 줄곳 생활개선의 주요한 논의의 창구였다.
생활개선운동의 확산에 있어서 여성 지식인들의 역할은 남성 지식인들 못지 않게 컸다. 운동의 초기부터 각종 신 문과 잡지에는 김마리아, 박에스터, 차미리사, 김활란, 신 준려, 박인덕 등 생활개선을 주장하는 여성 지식인들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이들 대부분은 크리스트교 선교사로부터 근대 교육을 받아, 여성의 교육 확대나 평 등 사상과 같은 서구의 여성관을 바탕으로 여성 해방을 위해 일상생활의 개조를 앞장서서 피력하고 있었던 것이 다.4)
동시에, 그들은 주로 여학교나 전문학교에서 여성의 근 대 교육을 직접 일임하고 있었으며, 여성 단체를 결성하 고5) 여성지를 창간하여 보다 조직적으로 활동하였다.
언론 규제완화 이후에 최초로 발간된 여성지는 1920년 3월에 창간한『新女子』였다. 당시 동경에서 유학을 하고 표 1. 분석대상 잡지개요와 기사 수
구분 잡지명 발행사 발행기간 발행
호수 분석/수집 기사수
여성잡지
家庭誌 가정잡지사(신민회)
1906.16.~1907.12. 7 13/14 1907.18.~1908.17. 불명 10/10 婦人
개벽사
1922.16.~1923.18. 15 13/15 新女性 1923.19.~1926.10. 31 15/11 1931.11.~1934.18. 42 15/16 新家庭 신가정사 1933.11.~1936.17. 45 10/18 女性조선일보사 1936.14.~1940.12. 57 18/38 종합지 別乾坤 개벽사 1926.11.~1934.18. 74 17/12
3) 최덕교(2004). 한국잡지백년(II). 현암사, 32-36.
4) 여성 지식인들의 이름을 통해서 보더라도, 이들이 크리스트교로 부터 사상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김마리아는 ‘애국 부인회’를 주도적으로 결성한 인물로서, 성모 마리아의 이름을 자신 의 이름에 그대로 사용하였고, 최초의 여의사인 박에스터, ‘근화 여 학교’를 설립한 차미리사 등 모두 크리스트교의 세례명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이화여자전문학교’의 교수인 김활란(‘헬렌’의 조선식 이 름), 『新女子』 창간의 주역이었던 신준려(‘줄리아’의 조선식 이름) 등 서양인의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여 이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연 구공간 수유+너머 근대매체연구팀(2005). 매체로 본 근대여성 풍속 사-신여성. 한겨례신문사, 49-51.
5) 일제강점기 동안 결성되었던 여성 단체는 근우회(槿友會), 조선여 자기독청년회, 조선여성소비조합, 불교여자청년회, 조선직업부인협 회, 가정부인협회, 내성단(內誠團), 조선여자절제회, 조선보육협회, 여자신용조합, 조선간호부회, 동유회(東遊會) 등이 있다. 그 중에서 여성 야학(夜學)이나 요리, 위생, 봉제, 원예 등의 가정 강습회를 여 는 등 가정 부인의 교육에 주력했던 단체는 조선여자기독청년회와 가정부인협회였다., ‘京城 各 女性團體의 陣容’(新家庭, 1(4), 1933.4., 42-52)과 ‘女性團體 르-포르타쥬’(女性, 3(5), 1938.6., 36-39)를 참조
돌아온 여류 시인이자 수필가였던 김일엽이 잡지의 창간 사를 장식했는데, 그 일부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아.. 새로운 시대는 왔습니다. 모든 헌 것은 거꾸러지 고 온갖 새 것을 세울 때가 왔습니다. 가진 것을 모두 개 조할 때가 왔습니다. 모든 ‘非’ 모든 ‘惡’이 사라질 때가 왔습니다. 가진 것을 모두 개조하여야 할 때가 왔습니다.
… 사회를 개조하려면 먼저 사회의 원소인 가정을 개조하 여야 하고, 가정을 개조하려면 가정의 주인 될 여자를 해 방하여야 할 것은 물론입니다. …(하략)’
창간사에서 새 시대를 위한 사회 개조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됨을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여성의 해방, 즉 여성이 가정 내에서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가정이 요구 되었다.
또, 창간 다음 달인 4월에는 김일엽이 ‘우리 新女子의 要求와 主張’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였는데 이 신여성 의 선언에 대해서 대중들 사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켜 신여성운동의 불을 밝히는 계기가 되었고6), 이러한 분위 기 속에서 생활개선의 기운도 함께 무르익어 갔다.
그러나 이렇게 여성 및 생활개선운동의 불을 지핀 『新 女子』는 통권 4호로 발간을 짧게 마쳤다. 이후, 여성 운 동과 더불어 생활개선의 맥을 이어갔던 것은 3대 근대 여 성지인 『新女性』, 『新家庭』, 그리고 『女性』이었다.
2. 생활개선 담론에 있어서의 여성관
여성지의 생활개선 담론에서 나타나는 여성관은 가정 내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겼던 점에서 본래 가 부장제의 가족제도에서와 마찬가지이지만, 남성 중심의 전 근대적인 여성관에서 벗어나 남성과 평등한 지위를 가진 여성이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가정의 운용에 충실했을 때, 비로소 생활개선을 이룩할 수 있다는 관념이 강하게 작 용하고 있었다. 가정의 경제와 육아의 책임을 맡는 주부 로서 자주적인 가정생활의 개조를 요구하고 있었으며, 그 러한 자주성이 소위 ‘구여성’과 ‘신여성’의 차이를 나타내 는 기준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남성과 동등한 교양과 취
미를 갖춘 신여성의 미덕을 요구하면서도 자유 연애를 외 치며 가정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하거나 허식과 사치에 물 든 신여성은 비판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이러한 양분론적 여성관은 민족의식이 여성 평등과 같 은 근대적 여성상을 수용함과 동시에, 현모양처식 교육 이념을 바탕으로 했던 총독부의 동화정책으로부터의 영향 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7)
생활개선 담론에서도 현모양처와 신여성을 사이에 두고 갈등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상적인 가 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정에 충실한 주부, 가정의 운용 과 육아를 담당하는 ‘어머니’로서의 주부가 되기를 여성 독자들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이것은 여성 지식인들이 단 지 총독부의 훈육적 교육 이념에 따르기 보다는, 주권 회 복과 미래의 독립 국가 건설을 위한 차세대 양성, 그러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가정의 의무이자 가정을 도맡는 주 부의 막중한 책임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중앙여고를 설립했던 황신덕(黃信德)은 그 어머니의 사 명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는데, 사뭇 비장한 어조가 느 껴진다.
명일의 조선을 건설할 만한 씩씩한 일꾼을 길러내는 어 머니 … 당장 병없이 튼튼하게 자라도록 노력하는 것만도 어머니의 피와 땀을 얼마나 많이 짜내이는 일입니까. 오늘 의 조선을 광휘잇는 새 조선으로 만들 수 잇는 인물을 길 러내일 어머니! … 의지가 굳세인 어머니, 진취성 잇는 어 머니, 조선을 아는 어머니, 희생적 정신을 가진 어머니가 많이 생겨나는 날 우리 사회에는 힘찬 용사가 쏟아저 나 올 것입니다. … 새 조선은 이 사명을 다하는 어머니들의 노력 여하에 달렷음이 사실임을 어찌 하리까!8)
이러한 여성관을 바탕으로, 생활개선 담론은 변화하는 사회 구조와 생활양식에 적합한 가정으로의 개조를 지향 하였고, 가족 구성원 간의 존중, 실익, 취미 위주의 근대 적 ‘신가정’을 모델로 삼고 있었다. 무엇보다 여성의 인 격을 존중해 주면서 여성이 가정 내에서 교양 생활을 누 릴 수 있도록 함이 요구됨에 따라, 가사노동에 걸리는 금 전과 시간, 여성의 노동을 줄이는 것, 즉 가사의 합리화 방안을 모색하는 쪽으로 자연히 담론이 집중되었다. 예를 들어, 의복 개량에 있어서는 재래의 백의(白衣) 대신에 염 색 옷을 만들어 입으면 의복비를 줄이면서 주부의 세탁 노동을 경감시킬 수 있다는 견해나, 식단을 짜서 계획적 으로 장을 보고 식사 시간을 일정히 하도록 하자는 주장 은 모두 가사 합리화를 목표하는 것이었다.
III. 생활개선 담론의 기술 내용과 동향
여성지의 생활개선 담론 중에서 주생활의 개선 및 주
6) 최덕교(2004). 한국잡지백년(I). 현암사, 306-308.
7) 조혜현(2003). 한일 근대 ‘신여성’ 비교 연구: 여성지 ‘新女子’와
‘靑革沓’을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경기대학교, 17-18.
8) 黃信德(1933.5.). 조선은 이러한 어머니를 요구한다. 新家庭, 1(5), 12-15.
그림 1. 『新女子』 창간호 표지
택개량은 주로 가정 내 불합리를 초래하는 세간살이의 검 토와 생활 습관의 개조로부터 시작하여, 가사 노동의 핵 심 공간인 부엌의 설비 개량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 재 래식 부엌의 구조를 개선한 개량부엌의 제안으로 전개되 었다. 이러한 담론의 기술 동향을 살펴 보면, 다음의 <표 2>와 같다. 이 표를 통해 여성지의 생활개선 담론의 주요 개량점과 담론의 순차적 흐름을 함께 밝혀 놓았다.
1. 담론의 이념과 내용 변화
여성 잡지의 생활개선 담론은,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위생과 경제 관념을 기본으로 논의되고 있다. 가정 생활 에 있어서 비위생적인 올바르지 못한 생활 습관과 원인 을 지적하여 이를 바로 잡고, 비경제적인 생활 상태를 보 다 경제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자 하는 여성 지식인들의 논제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각 기사의 텍스트 내에서 위생과 경제 관념을 함의하는 용어들을 추 출하고 용어의 쓰임새나 빈도를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살 펴본 결과, 대체로 위생 관념보다는 경제적 차원에서의 개 선을 보다 중요하게 논의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9) 특 히, 여성들(저자 혹은 독자) 사이에서 불필요하고도 과도 한 전통적 가사 노동 방식이 가장 불합리 하다는 체험적 인식을 충분히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10), 무엇보다 노동 경제의 측면에서 가사 작업을 보다 간결하고 편리하게 개 선하는 것이 급무였다.
이러한 논지를 바탕으로, 주생활의 개선 논의는 ‘청소’
와 같은 위생적 차원보다 가사 노동을 줄일 수 있는 방 안들에 집중되고 있었다.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불규칙 적인 생활 습관을 고치고(‘규칙생활’), 불필요한 형식을 줄 이는 것(‘허례폐지’), 특히, 규칙적인 생활로의 개선은 시 간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생활
을 영위함도 의미하였다. 이것은 곧 기능에 따른 주거 공 간의 분화, 즉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른 공·사 공간의 분 리, 개인실의 요구 등 근대적 주거계획과도 관련이 있는 개선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들의 규칙적인 식사와 단 란, 접객을 위해 식당을 설치하거나 부엌의 개량에 있어 서도 일상생활의 기능적인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인식하였 다.11)
주택개량 논의의 경우, 주택의 환기와 채광 개선 등의 위생적 개선점으로부터 가사 노동과 직결되는 부엌(주방) 을 비롯하여 욕실, 장독대, 대청과 행랑 등으로 개량의 범 위가 넓어져 갔다. 특히, 부엌의 개량은 1930년을 전후하 여 논의가 집중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최소한도의 시간과 노력으로 최대의 능률을 얻을 수 있는 부엌의 구조와 설 비의 개량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러한 논의를 거쳐, 1930 년대 중반부터는 건축가를 포함한 여러 분야의 지식인들 이 저마다 개량부엌안을 제안하였으며, 부엌의 구조를 개 선하여 작업 공간을 집약시킴으로써 장독이나 대청, 행랑 폐지 등의 개선점이 대두되었다. 이것은 다음 장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2. 담론 형식의 다양화
여성지의 생활개선 담론은 초기 일상생활에서의 개선점 으로부터 점점 담론의 폭이 주택개량의 차원으로 보다 확 대되어 가면서 담론의 방식도 다양해져 갔다. 여성 지식 인들의 생활개선 담론은 산문을 통해 독자들에게 일방적 으로 전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생활개선의 본보기로서 명사 부인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그들의 주택과 생활 모 습을 독자들에게 공개함으로써 개선의 모범을 제시하였다.
1930년대의 여성 잡지계를 주름 잡았던 『新女性』과
『新家庭』, 양 잡지에는 이제껏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알 고 싶었던 명사 가정의 속 모습을 경쟁적으로 대중 앞에 드러내고 있었다. 기자가 명사 가정을 방문하여 명사들(주 로 여성 지식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주택 내부의 이곳 저 곳을 비춘다. 어디를 어떻게 고쳤으며, 어떻게 사용하면 편리하게 개선된 삶을 누릴 수 있는지를 직접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가정 방문기에서 기자는 여성의 가사 활동과 관 련된 공간들로서, 부엌12)을 중심으로 식사실, 응접실 등의 가족 공용공간과 여성의 사적 공간으로서의 서재 그리고 위생 설비로서의 목욕실 등에 주로 눈을 돌렸다. 특히, 부 위생 관념에 있어서 ‘실내가 어둡거나 침침하면 위생에 좋지 않다’
라는 견해는, 실내의 채광 부족을 전염병의 원인으로 여겼던 이전 시 대의 위생론적 인식이 그대로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한, 경제 관념은 가정 경제의 운용, 특히 가계지출의 절약은 물론이 거니와, 노동의 양적인 절감 뿐 아니라, 동작의 간편함과 편리함(동 작 경제)을 고려하는 포괄적인 개념이었다.
10) 우리 조선 사람의 생활이 넘우나 원시 형식이 남어잇고 넘우 나 엄격한 구식도덕에만 흘너서 힘은 죽게 드리고도 편리치는 못하 고 허례만 차리다가 한 맛 지 일허 바리고 마럿는가 함니다.
조선녀자의 일로는 부억에서 하로세 의 음식치닥거리 그야말로 일 중의 큰일임니다., 金貞雲(1925.2.). 生活改善, 오늘부터 고칠 것, 누 구던지 고칠 것-집집이 곳칠 것의 한가지, 新女性, 3(2), 32.
우리의 살님사리는 너무 복잡하고도 분주하다. … 의식주(衣食住), 소제, 세탁, 음식, 바누질, 다듸미, 이런 것으로 시간을 다 허비한다.
… 참으로 자긔를 위하야 허비하는 시간은 퍽이나 적다, 一記者 (1926.10.). 簡易한 生活改造, 新女性, 4(10), 29.
9) 위생과 경제 관념에 관련된 용어들
위생 경제
비위생, 위생에 좋지 않은,
더러운, 불결한, 어두운, 침침한 불경제, 낭비, 분수에 맞지 않는, 헛되이, 사치스러운
위생에 좋은, 깨끗한, 밝은,
청결한, 정결한 절약, 절감, 돈이 적게 드는, 간이한, 간소한, 편리한, 쓸모 있는
11) (朴吉龍) 부엌 얘기가 났으니 말이지오만 … 문제는 생활의 조직 화가 없는 탓이지오. 침실이라던가 식당이라던가가 분활적으로 조직 이 되어 있지 않은 탓이지오., 住宅問題 座談會(1936.1.). 新家庭, 4(1), 60.
12) 가정 방문기를 담당한 기자는 부엌 탐방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기술 하였다.
‘여자의 일생 가운데서 가장 오래 머므르는 곧이 부억이다’라는 말 을 들은 적이 잇습니다. 해 잘 들고 위생에 좋고 일하기 편하고 노 력 적게 들고 경제적인 부억이 조건에 꼭 들어맞는 부억을 찾으려고 돌아다디든 긔자의 발걸음은 …, 新家庭巡 (第二回)-부억訪問記 (1933.6.). 新家庭, 1(6), 117.
엌 탐방에서는 주로 최신식 설비에 대한 대중들의 호기 심을 풀어 주는 측면도 있었지만, 그보다 언제나 깨끗하 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정돈된 부엌의 모습이 강
조되었다.13)
한편, 1930년대 중반부터는 생활개선에 관한 좌담회가 자주 개최되었다. 생활개선 좌담회는 가정 생활개선 전반 표 2. 여성 잡지의 주생활 개선 및 주택개량에 관한 기술 내용
일련번호 년 잡지
명 기사 제목
주제 관념 주생활의 개선 주택개량
항목 위 생 경
제 노동 절감
청소 식모 폐지
규칙 생활
허례 폐지
환기 통풍
채광 조명
변소 개량
욕실 설치
장독 폐지
온돌 개량
부엌 개량
규모 축소
대청 폐지
행랑 폐지
가구 간소 K01
1906 家 庭雜 誌
가정경제론
K02 위생의 근원은 만복의 성취
K03 더운 온돌에 간죠를 제하는 법 □
H01 1922 婦 人
衛生的 家庭을 만드시오 ● ● ◑ ■
H02 生活改善과 家庭經濟-社會問題硏究所에서 ●
H03 1923 婦人들이여, 녀름은 닥처옴니다, 衛生에 注意하여야 살겟슴니다 ○ ● □ □ H04
1925 新 女性
生活改善, 세 가지를 통틀어 이러케 고첫스면 좆켓슴니다 ○ □ ◑ ■
H05 새해부텨 곳치고 십은 것, 해보고 십은 일 ● ● ● □
H06 生活改善, 집집이 곳칠 것의 한 가지 ●
H07 家庭生活改造와 그 實際 ●
H08 1926 簡易한 生活改造 ● ● ◑
B01
1928 別 乾坤
生活改善論議, 四百萬 成員이 體行하는 新生活 ●
B02 現下問題 名士意見-生活改善案 提議 ● ● ● □ ◑ ■
B03 女子로서의 生活改善提案, 爲先 急한 것 몃 가지 ◑ ■
B04 新生活을 하야본 實驗 ● □ ◑
B05 돈 덜 들고 새롭고 便利한 집을 지은 이약기 □ □ ◑
B06 1930 家庭生活改新-새해부터 實行하려는 것 ● ●
B07 住宅으로 본 朝鮮사람과 녀름 ● □ □ □
H09
1931 新 女性
主婦啓蒙篇-살님사리 大檢討(一) ● ● □ □ ◑ ■
H10 主婦啓蒙篇-살님사리 大檢討(二) ●
H11 名士家庭 부엌 參觀記(其一) ◑
H12 名士家庭 부엌 參觀記(其二) □ ◑
H13 1933
當代女人生活探訪記 ◑
F01
新家 庭
新家庭巡(第二回)-부엌 訪問記 ● ◑
F02 生活改善의 實際問題, 廚房浴室下水口의 改善 ● □ ◑
F03 家庭巡(第四回)-衛生設備 訪問記 □
F04 1934
여름과 주택 □ □ □
F05 家庭生活의 合理化 運動 ● □ ■
F06 家庭經濟에 對한 移動 座談會 ●
F07 燃料經濟의 溫突 ◑ ◑
F08 三處女의 理想, 그들의 아름다운 꿈 이야기 ● ● ● □ □ ■
F09 1936
住宅問題 座談會 □ □ □ ◑ ■ ■
F10 溫突은 어떻게 改良할가? ◑
L01
女性
새 살림의 부엌은 이렇게 했으면 ◑
L02 1938
나의 한 가지 設計 ◑
L03 朝鮮家庭生活制度의 檢討 ● ■
L04 家庭婦人 座談會 □ □ □
L05 1939 非常時 國民生活改善案 ● ● □ □ ■
L06 家庭生活改善 座談會 □ □ □ ◑ ■
L07 1940 食母를 토론하는 座談會 ● ◑
L08 生活改善의 理想과 實際 ● ● □
: 위생관념 : 경제관념
○: 위생관념과 관련된 주생활의 개선점/ □: 위생관념과 관련된 주택개량
●: 경제관념과 관련된 주생활의 개선점/ ■: 경제관념과 관련된 주택개량/ ◑: 위생과 경제관념이 모두 관련된 주택개량
에 대한 당대의 지식인들의 의견을 묻는 자리였다. 주로 신가정사와 조선일보사 주최로 각 분야의 지식인들이 모 여서 일상 생활로부터 겪는 여러 가지 불편하고 불합리 한, 개선되어야 할 문제점들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교환 하고 그 개선 방안을 함께 모색하였다. 이러한 문답형식 의 자유로운 대화를 독자들에게 직접 들려줌으로써, 생활 개선에 대한 여성 지식인들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 고 담론을 보다 공론화 하고자 하였다. 더욱이, 주택의 전 문적 지식을 갖춘 건축가를 좌담회에 참석시켜서 생활개 선과 더불어 주택개량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보다 관심 을 갖도록 하였다.
이러한 좌담회에서는 주로 의식주 개선의 문제, 가정 경 제, 육아와 아동 교육, 식모의 존폐 문제 등 생활 상의 다양한 개선점들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 졌으며, 주택개량
에 관해서는 건축가 박길룡이 주로 참여하여 재래주택에 서의 여성들의 고충과 개선되기를 바라는 점들을 들어주 고 함께 대책을 논의하거나 자신의 주택개량에도 반영시 키고자 노력하였다.
IV. 부엌 개량과 근대 주거계획
1. 재래식 부엌에 대한 견해
부엌 개량에 있어서 실제 개량되어야 할 재래식 부엌 의 불합리한 점들은, 담론의 동향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당대 지식인들에 의해 자주 거론되는 논의 중에 하나였다.
그 중에서도 재래식 부엌의 구조 개량이 담론 내에서 가장 주요한 화제였다. 위생적인 문제도 고려해야 하지만, 부엌이 협소하여 불을 때는 온돌 아궁이 외에는 가사에 필요한 다른 설비를 둘 공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14) 부엌이 좁으니까 찬장이나 뒤주 같 은 세간을 대청에 늘어 놓을 수 밖에 없고, 마당에는 장 독대와 수도가 있어 자연히 주부의 동선이 불필요하게 길 어지고, 작업 능률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특히 부엌 의 낮은 천정 위로 다락이 있어 가사 내내 구부리고 앉 아 작업을 해야 한다든지, 필요 이상으로 장독대가 앞마 당을 차지하고 있다든지15), 부엌의 문지방이 높아 마루나 장독대 같은 곳으로 출입이 잦다 보니 더 많은 노동을 허 비하게 되는 점은 매우 비능률적이며 불합리한 것으로 모 두 공감하고 있었다.
13) 부엌은 … 위치도 좃커니와 몹시도 안이 하엿다. 반질반질 하게 닥거노은 밥상이라던지 한 부억 벽이 말쓱한 것이 퍽도 씨 들의 생활여하를 알 수가 잇섯다. … 혹 찬장 안이나 엇던가 하여 기 웃이 듸려다 보앗스나 역시 하게 씨서 언처노은 사긔그릇이라 던지 놋그릇이 그리 만치는 안어도 접혀 잇는 것이 가장 함 을 늣기게 하엿다., 名士家庭 부엌 參觀記(其一)(1931.10.). 新女性, 5(9), 49.
부엌은 … 日光이 잘 쏘이는 벽이 한 것과 긔률잇게 나란히 언 저노흔 그릇이 보기 조왓지만은 쓰지 안은 상이라 하야 먼지가 ㅅㄱㅏ 북이 씨운 상이 둘이 흠이라면 흠이다. (金河星氏의 廚房)/ 부억이 세 멘공쿠리-트로 얌전이 노이엿고 큰 가마솟이 셋이 죽 노이여 잇다. 바 로 부억 엽 랑하 엽흐로 쌀곡간과 찬간이 칸을 막어 청결히 노이엿 고 … 밧갓흐로는 지하실이 잇고 그 속에는 김치, 이, 새우젓, 굴젓 등이 만히 늘어노여 잇섯다. … 모든 것이 규률잇게 잘 되엿스 나 찬장 압과 부억 압헤 너무 늘어노은 물건이 조곰 흠이라고 볼는 지? (高瓊熙氏의 廚房), 名士家庭 부엌 參觀記(其二)(1931.11.). 新女 性, 5(11), 78-85.
14) 在來의 廚房은 廚房으로 둘만한 아무 設備가 없으므로 마루나 뜰이 주방으로 使用되고 있다. 在來의 廚房은 完全 廚房이라 할 수 없고, 다만 溫突에 불을 때이는 火口 ‘부뚜막’이 있을 뿐이다., 朴吉 龍(1936.4.). 새 살림의 부엌은 이렇게 했으면. 女性, 1(1), 34.
15) (宋今璇) 장독대는 현 시대에 있어서는 의의 없는 존재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화초 한 포기라도 더 심을 곳에 독개그릇 늘어 놓아 냄새와 파리나 끓게 하는 것은 아무 점으로 보아도 신통치 못합니다./
(鄭燦英) 가정 중심으로 삼다 싶이 뜰 전부를 장독대에만 사용하여 가지고 장치할 필요는 없지오. 대개 구가정에서는 … 장독을 많이 늘 어 놓고 훌륭히 장치하여 놓면 만족히 여기고 부자집인 줄로만 생각 하니, 그것은 다 옛날 낡어빠진 이상입니다., 家庭生活의 合理化 運 動-장독대를 廢止하자(1934.9.). 新家庭, 2(9), 40-41.
그림 2. 가정방문기에 소개된 여성 지식인들의 생활 모습. 왼쪽부터 김활란(金活蘭), 서은숙(徐恩淑)의 서재(『新家庭』, 1934)
그림 3. 주택개선 좌담회(『新家庭』, 1936)와 가정 생활개선 좌담회 (『女性』, 1939)의 광경. 건축가 박길룡(朴吉龍)(가운데 양 복 차림의 남성)과 여성 지식인들이 함께 토론을 벌이고 있다.
그림 4. 京城地方住家의 廚(朴吉龍, 『東亞日報』, 1932)
이러한 재래식 부엌의 불합리한 점은 건축가 김종량(金 宗亮)의 부인 조계은(趙啓恩)의 글을 통해 잘 알 수가 있다.
설거질 하는 대(臺)가 없이 부뜨막 구석에나 아무데나 업디려 설거질을 하게 되는 것과 그 밖에 무슨 일이든지 앉거나 업디려서 하게 되므로 일의 능률이 없는 것이 탈 입니다. … 배선대(配膳臺=상 채리는 선반)가 없이 마루 끝 에서 상을 보게 되니까 노력과 시간의 불경제와 외관상으 로 불미한 점이 잇고 … 大廳은 … 겨울에는 늘 거기를 通 過해 다니는 곳이라 몬지가 만히 니러나는데 不拘하고 … 마루 에서 料理를 하니 第一 몬지 만흔 곳을 골나 다 니면서 飮食 그릇을 펴처 놋는 셈입니다. … 부억에는 놉 흔 門지방이 잇서서 부억에서 불 고 밥 지으랴 솟에서 닉힌 飮食을 가지고 마루 으로 料理하러 드나드느라고 主婦가 하로에 몃十 차레를 그 門지방을 넘어 다니는지 이 로 혜아릴 수가 업스니 …16)
이러한 논의 아래, 재래식 부엌을 보다 위생적이고 가 사 노동상 효율적인 구조로 개량하기 위해서는 종래의 구 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 해져 갔고, 조계은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그 개량의 중 심에는 온돌을 비롯한 설비적 문제가 놓여 있었다.
2. 부엌의 개량 논의와 계획 1) 논의의 내용
생활개선 담론 내에서 부엌 개량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 아보기 위해, 앞서 고찰한 기술 내용 중에서 부엌 개량에 관한 내용을 재차 정리해 보면 <표 3>과 같다.
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부엌의 개량 논의는 부엌 내 에 가사작업 공간을 어떻게 집약시키느냐 하는 문제(‘작 업공간집약’)에 집중되었다. 여기에는 부엌의 설비 개량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했으며, 1930년대 중반 부엌을 보 다 합리적으로 개량할 수 있는 계획안들이 도출되면서 부 엌의 배치와 다른 실과의 연락 관계를 고려한 주거계획 적 차원에 도달하고 있었다. 부엌의 위생 개선에 있어서 는 채광과 환기를 위해 부엌을 일광이 잘 드는 동남향으 로 배치하고 유리창을 설치하는 것은 물론, 배수와 오물 처리를 고려하여 부엌의 바닥을 시멘트로 마감하여야 한 다는 의견들이 주로 거론되었다.
무엇보다 부엌의 설비 개량에 있어서 담론의 초점은 취 사와 안방의 온돌 난방을 겸하는 종래의 아궁이를 폐지 하는 것(‘신식화로’)이었다. 재래식 부엌의 구조를 근본적 으로 개선하고 위생으로나 경제로나 보다 능률적인 가사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부엌과 온돌과의 긴밀한 관계로부 터 비롯되는 구조적 불합리함을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었 다.17) 또한, 부엌의 구조에 있어서 다락과 문지방을 폐지 하여 주부의 노동을 경감시키고 작업능률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도 온돌 개량이 우선되어야 했다.
2) 개량부엌의 제안
이러한 재래식 부엌의 개량 논의는 논의로만 그치지 않 고, 실제 개량된 부엌의 선례를 소개하거나 특히, 1930년 대 건축가를 비롯하여 여성 지식인들이 직접 계획한 개 량부엌 설계안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그림 5>는 『新家庭』의 ‘新家庭巡 ’에서 소개된 세 브란스 의원 의사인 이용설(李容卨) 씨 가정과 상업가 김 노석(金路奭) 씨 가정의 부엌이다. 이씨 가정의 부엌은 찬 마루를 설치하고 바닥은 시멘트로 마감하였으며, 찬마루 위 벽면의 찬장과 ‘냉장긔’(냉장고)를 둠으로써 구부리지 않고 서서 편리하게 음식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찬마루로부터 바로 의자식 테이블이 놓인 식당으로 연결되어 있다.18) 이에 비해, 김씨 가정의 부엌은 순 재 래식 부엌으로, 찬간과 수납실을 부엌 옆에 두고 부엌에 찬마루를 두어 역시 가사능률와 편리함을 도모하였다.19) 특히, 흙바닥의 재래식 부엌이지만, 유리문을 설치하여 채
16) 趙啓恩(1933.8.). 家庭衛生特輯-廚房·浴室·下水口의 改善-설 거질대와 상차리는 선반. 新家庭, 1(8), 14-15.
17) (李萬鶴) 부억이 깊은 것을 페지 할려면 밥짖는 것을 다른데서 하기 전에는 매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즉, 부억이 깊은 것은 취사겸 용(炊事兼用)의 관계인데 무엇보다도 그것을 따로 분리시키기 전에 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 (朴吉龍) 요컨대는 부엌에서 아궁이를 떼 내는게 문제이겠죠. … 그렇게 한다면 문제는 어데로 ‘아궁이’를 가 저갈 것이냐인데, 그것을 해결하기에 조선 가옥은 너무도 어렵단 말 입니다., 住宅問題 座談會(1936.1.). 新家庭, 4(1), 60.
18) 新家庭巡 (第2回)-부억探訪記-折衷式改良廚房을 보고(1933.6.).
新家庭, 1(6), 117-119.
표 3. 부엌 개량에 관한 기술 내용 항목
일련번호
위생 경제 실 배치 규모 안전
채광통풍바닥 마감
배수오물 처리
작업공간 집약
설비개량문지방 폐지
방위/배치 변경
타실과의 관계
다락폐지평수 증가방화 신식 벽체
화로수납 설비
H01 ○ ○
H04 ○ ●
H08 ○ ●
B02 ○ ●
B03 ○ ● ●
B04 ● ◑ ○
B05 ○ ● ● ○
H09 ○ ○ ●
H11 ● ○
H12 ○ ● ●
H13 ○ ●
F01 ○ ○ ○ ● ● ○
F02 ○ ○ ○ ● ◑ ● ● ○ ● ◑ ○
F07 ◑
F09 ◑ ● ◑
L01 ○ ○ ● ◑ ● ●
L02 ●
L06 ● ◑ ● ● ◑
L07 ●
○: 위생과 관련된 부엌의 개량점/ ●: 작업능률과 관련된 부엌의 개량점
◑: 위생과 작업능률이 모두 관련된 부엌의 개량점
광과 환기를 좋게 하고 항상 청결을 유지하는 주부의 모 습을 강조하고 있었다. 양 가정의 부엌은 이른바 서양 절 충식과 재래식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는 선례로서, 무엇 보다도 기거양식과 상관없이 누구든지 개량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실천을 하면 얼마든지 이렇게 깨끗하고 편 리한 부엌을 만들 수 있음을 독자들에게 보여 주려는 의 도를 느낄 수 있다.
부엌 개량안의 경우, 먼저 건축가가 제안한 개량부엌의 대표적인 예로서 박길룡이 『女性』에 소개한 부엌개량안 이 있다.
이 개량안은 온돌 난방을 각 방마다 함실 아궁이로 대 체하고20), 3평 가량의 부엌에 신식 화덕 그리고 가사와 조리에 필요한 개수대와 찬장, 뒤주, 기타 세간들을 모두 집중 배치한 안이다.21) 또, 유리창을 두어 채광과 통풍의 문제를 해결하고, 부엌 내 설비 뿐만 아니라 부엌의 배치 에 있어서도 안방과 식모방으로 직접 출입하도록 하거나 장독대를 뒷마당 곁으로 옮겨 부엌과 가깝게 통행하도록 하여 주부의 동선 거리를 최소화 하였다.
이 신식 부엌의 계획안은 아마도 당시 부엌 개량의 본 보기라고 해도 될 만큼 이상적이었다. 이 부엌에 대한 그 의 설명을 살펴보면, 오늘날의 주방 설비 수준에 못지 않 은 것임을 알 수 있다<그림 6의 평면을 참조>.
높이가 二尺五寸이고 그 구조는 벽돌을 싸어 외면은 ‘타 일’을 붙이고 그 우에 철판(鐵板)으로 만든 흡기통(吸氣筒) 이 있어 연기나 냄새로 밖갔으로 뽐어 내게 하였다. … 주 방 설비에 가장 중요한 것이니 그 중앙(1)에 개수통이다
수통(5)이 있고 배수구가 있어 이 곳에서 식기(食器) 기타 모든 물건을 씻게 되고 그 좌편(2)가 (1)에서 씻은 물건을 이 곳에 놓아 두면 물이 지게 된다. 개수통 오른편은 물 건을 써는 ‘도마’고 그 뒤에 있는 구녕(3)은 그 벽 밖았에 있는 쓰레기통으로 통하게 되여 … 도마에서 그대로 쓰러 기 구녕에 넣으면 그대로 쓰레기통에 나가게 되었고 이 도 마 밑에 설합이 있어 칼, 기타 모든 도구(道具)를 넣어 두 게 되었다. … (다)는 조리대(調理台)니 … 그 밑은 … 조 미료(調味料)라든지 식료품을 넣어 두게 되었고 그우 벽에 붙은 장(바)은 부엌 편과 식당 편이나 앞과 뒤에 유리 미 닫이를 다라놓아서 이 곳에 식기, 수저 같은 것을 두고 식 당에서나 부엌에서나 자유롭게 집어 쓰게 한 것이다.22) 신식 화덕에는 주로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였지만 나무 를 사용하더라도 재래 아궁이에 드는 것보다 경제적이었 으며23), 주부의 가사를 경감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설비 였다. 그러나 석탄을 사용하는 신식 화덕은 당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일부 지식인 계층에서만 구비할 수 있는 설 비였기 때문에 곧바로 널리 보급 되기에는 힘들었다. 반 드시 신식 화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개량 부엌으로서 온돌 난방과 취사의 분리 문제는 비단 건축가 뿐만 아니 라 여성 지식인들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다. 아래 <그림
19) 新家庭巡 (第2回)-부억探訪記-純朝鮮式부억을 찾어(1933.6.).
新家庭, 1(6), 119-121.
20) 食料調理에 所用되는 諸般設備를 完全하게 할 것이고 … 炊飯採 煖 兼用의 焚口를 廢止하고 溫突焚口는 採煖專用의 ‘함실 아궁이’로 곳치고 炊飯은 炊飯專用의 화덕으로 할 것이다., 朴吉龍, 앞의 글, 34 21) 在來로 마루에 있는 찬장, 두주라든지 뜰에 있는 水道, 排水口라 든지 이것을 廚房에 設置할 것이다., 朴吉龍, 앞의 글, 34.
22) 朴吉龍, 앞의 글, 34-35.
23) (李萬鶴) 제가 실험해 본 결과의 연료(燃料)에 대한 경제적 조사 를 말슴해 보면, 함실 온돌에 불때는 것보다 취사를 겸용하는데 연 료가 거의 배(倍)나 들드군요. 그럼 점으로 보아도 취사겸용 만은 불 필요한 것 같애요., 앞의 글/(朴吉龍) 부억의 붓두막을 떼고 함실 아 궁지를 맨들고 솟은 화덕에다 따루 거러야 합니다. … 실험을 해보 니까 나무가 훨신 적게 들구 좋다 든데요., 앞의 글, 60.
그림 5. 여성지에 소개된 개량부엌의 실례(『新家庭』, 1933)
그림 6. 건축가 박길룡의 부엌 개량안(『女性』, 1936)
7>의 여성 지식인들이 제안한 개량안을 보면 그러한 인 식을 알 수 있는데, 왼쪽은 박길룡의 안과 마찬가지로 신 식 설비를 갖춘 조계은의 개량주방 계획안이고, 오른쪽은 경성여자상업학교의 송옥선(宋玉璇)이 재래식 부엌에 개량 을 가미하여 제안한 안이다.
조계은의 신식 주방안의 경우, 주방과 식당에서부터 제 반 설비의 배치에 이르기까지 주부의 작업 동선을 주의 깊게 배려한 점을 엿볼 수 있는데, 음식 준비의 순서에 따라 배선대, 식기장, 냉장고, 개수대 등을 배치하였고, 부 엌에서 식당으로 바로 연결되도록 함으로써 동선을 최소 화 하고 있다. 그 밖에 부엌 바닥을 시멘트로 마감하고 배수 설비를 갖추어 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하고 오물 처 리가 용이하도록 하였다. 또, 방화벽도 함께 설치해서 내 화 성능을 높임으로써 안전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24)
송옥선의 재래식 개량 부엌안은 취사 전용 아궁이를 개 수대, 조리대와 함께 따로 설치하여 작업공간을 집약시킴 과 동시에, 다락을 없애고 안방과 직접 연락이 되도록 출 입문을 두어 작업의 편의를 높였다, 부엌의 바닥 대부분 을 마루로 하고 아궁이와 수도, 개수대 등 물을 사용하는 곳은 시멘트로 바닥을 마감하여 청결을 유지하도록 하였 으며, 온돌은 부엌 밑 지하실에서 난방하도록 하면서 동 시에 부엌에서 직접 출입하면서 저장소로 사용하게끔 하 였다.25)
3. 새로운 주거 양식의 제안
이처럼 여성지의 생활개선 담론은 주택개량에 있어서 재래식 부엌 개량에 중점을 두고 있었으나, 이 외에도 주 택 전체의 개량, 즉 안방의 채광과 환기의 문제라든지, 대 청의 활용 문제나 행랑을 폐지하는 것, 변소 개량 등 주 택 각 부의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었다.
이러한 의견들이 모여서 점차 중론적인 개량론에 이르 러, 건축가 뿐 아니라 각계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재래 생활의 개량에 적합한 주거 양식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몇몇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한 개량안을 직접
설계하여 제안하기도 하였고26), 혹은 실제로 그러한 주택 을 지어서 살아본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주거 양식에 대 한 의견을 피력하였다.
그 중에서 여성지에 실린 몇 개의 개량안을 살펴보면,
<그림 8>은 이화여자전문학교 음악과를 졸업하고 미국교 비유학을 다녀왔던 고봉경(高鳳京)이 제안한 개량주택안이 다. ‘조선식 문화주택’이라고 소개된 이 안은, 주방과 식 당을 주거 내 동선의 중심 위치에 배치하고 주방 옆에 욕 실과 변소 등의 설비를 배치하여 가사 공간을 집약시키 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방이 정북으로 면해 향이 다소 좋지 못한 듯 하나, 거실을 제외한 모든 실은 주방으로부터 복도를 통해 통 행하게끔 하였고, 식모방과 식당으로 직접 출입할 수 있 도록 하여 주부의 동선을 배려하였다. 또, 현관에서 직접 들어가는 거실은 응접실 역할을 하고 중앙의 식당이 가 족실을 겸해 가족 생활의 중심이 되도록 의도하였다. 동 시에 각 온돌방은 그 쓰임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어느 정도 독립성을 고려하여 배치되어 있다. 온돌 난방은 지 하실에서 때도록 하고, 주택 서측 외부로부터 복도 밑을 따라 지하실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림 9>는 연희전문학교 수물과(數物科) 강사 이만학 (李萬鶴)27)의 개량안으로, 전형적인 일본식 중복도 주택의 실 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상거실은 모두 남향으로 배치 하고 부엌은 북동향, 욕실과 변소, 식모방은 모두 북향으 로 배치하였으며, 서측 현관으로부터 중앙의 복도를 중심 으로 주거 내 동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부엌은 아궁이와 찬장, 찬마루를 두어 재래식의 개량 부 엌으로 계획하였으나, 장독대는 부엌으로부터 다소 먼 감 이 없지 않다. 현관 옆 계단으로 연결되는 지하실에서 각
24) 趙啓恩, 앞의 글, 15-16.
25) 宋玉璇(1933.8.). 家庭衛生特輯-廚房·浴室·下水口의 改善-다 섯가지 개선. 新家庭, 1(8), 16-17.
26) 대표적으로, 신가정사가 주최한 주택개선 좌담회 이후, 건축가 박길룡을 필두로 좌담회에 참석했던 지식인들이 ‘實現可能한 改良 住宅의 一案’이라는 제목으로 매월 자기 만의 설계안을 소개하였다.
여기에 참여했던 지식인은 朴吉龍, 高鳳京, 金袂 , 李萬鶴, 宋今璇, 孫貞圭 등이다.
27) 당시 연희전문학교 수물과에는 건축과가 있었는데, 그가『新家 庭』에 온돌 개량에 관한 연재(溫突은 어떻게 改良할가?)를 하거나 주택문제 좌담회에서는 온돌에 대한 의견을 자주 언급했던 것으로 보아 건축을 전공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림 7. 조계은의 신식 주방안과 송옥선의 재래식 부엌 개량안 (『新家庭』, 1933)
그림 8. 고봉경의 조선식 문화주택(『新家庭』, 1936)
방의 온돌 난방을 해결하고, 안방의 온돌 난방은 부엌의 아궁이로부터 취사 겸용의 재래식이지만, 난방과 취사용 아궁이를 구별하여 효율을 높였다.28) 또, 온돌방에는 반드 시 반침을 두어 수납 공간을 배려하였다.
위 <그림 10>의 평면은 1928년 12월 창간 2주년을 기 념하여 발간된『別乾坤』 생활개선 특집호에 수록된 것으 로, 천도교 출신 사회운동가 이성환(李晟煥)의 주택이다.
그의 부인이자 문학가인 조백추(趙白萩)의 이름으로 소개 되고 있는 이 주택은 동소문 내 혜화동 모처 40평 가량 의 대지에 지어진 것이었다.
이 주택의 가장 큰 특징은 부엌을 채광과 통풍이 양호 한 남향으로 배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의 식당 겸 거
실과 아동실(기사본문에서는 ‘안방’으로 부름) 그리고 서 재는 남향으로 두고 응접실과 중간방 그리고 예비실(객 실), 현관, 부속실은 북향으로 배치하였다.29)
부엌은 재래식을 개량한 것으로, 식당 겸 거실과 바로 연결되도록 하고 이 식당 겸 거실은 아동실(안방)과 장지 (미닫이문)로 구획하여, 가족의 일상생활의 중심이 되도록 하였다. 현관 옆 응접실과 기타 부속실과의 동선을 분리 시키기 위해 중간방과 복도를 두었으나 주거 내 동선이 다소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30) 모든 실은 온돌을 사용하 고 현관 옆 응접실은 서양실로 계획하여 기거양식의 절 충을 시도한 점이 특징적인 안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건축가 박길룡의 안을 살펴보면, 재래식 주 택의 의장과 구조를 유지하면서 내부의 실 배치를 개선 한 것이 눈에 띤다. 특히, 주택 중앙의 대청 자리에 안방 (온돌)을 두어, 채광과 통풍이 가장 양호한 곳에 가족생활 의 중심이 되도록 함으로써, 재래 안방의 불합리한 구조 를 개선하였다.31)
주방은 그 동쪽으로 두어 채광 문제를 해결하고, 찬마 루를 사이에 두고 식모실과 바로 연결되도록 하였다. 장
28) 주택문제 좌담회에서 그는 재래식 아궁이를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언급하고 있다.
또 한가지 실험해 본 결과에, 부뚜막에 있는 가마솥 세 개 중에서 가 운뎃것 하나를 빼고 그 아궁이를 취온용(取溫用)으로 쓴다면 매우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취온(取溫)하는데 열(熱)의 방사작용(放射作用)이 잘 되어서 훌륭합니다., 앞의 글, 60.
그림 9. 이만학의 ‘實現可能한 改良住宅의 一案’(『新家庭』, 1936)
그림 10. 이성환·조백추씨 주택의 평면과 외관(『別乾坤』, 1928)
그림 11.박길룡의 ‘實現可能한 改良住宅의 一案’(『新家庭』, 1936)
29) 부억을 第一 밝게 하고 空氣가 만히 流通하야 恒常 新鮮하게 할 것, 안房이라는 家族常居室을 밝게 하게 日光과 空氣가 充分하 게 드러오게 하여야 하고 그리 만히 쓰지 안는 應接室이나 마루, 出 入口 가튼 것은 뒤 으로 구석지게 내여도 조흘 것, 이러케 지어본 것이 이 집임니다., 趙白萩(1928.12.). 돈 덜들고 새롭게 便利한 집을 지은 이약이. 別乾坤, 16-17, 87.
30) 지금 생각해서 잘못된 이 하나 잇는 것은 書齋나 便所에 갈 ㅅㄷㅐ에 복도가 안 자기의 房압 지 밧게 업는 고로 客室로 豫備한 空房을 지나 다니게 된 것임니다. 客室이닛가 늘 누가 잇슬 房은 아 니지만 左右間 不便하게 된 것임니다. 客室이 조곰 좁아지드래도 玄 關 지 복도를 通해 노앗드면 조앗슬 것임니다., 앞의 글, 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