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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국기

■ 그리스 국기는 1822.1.1. 에피다브로스 제1차 독립평의회에서 채택

■ 십자는 그리스가 그리스정교를 국교로 채택한 그리스도교 국가임을 의미

■ 청색과 백색은 그리스의 국가색(國家色)으로 청색은 오토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그리스인의 투쟁과 그리스의 청명한 하늘을 상징하며 백색은 자유와 독립을 추구해 온 그리스인의 순수한 열정을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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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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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Ⅰ. 개 관

Ⅱ. 약 사

Ⅲ. 정치정세 및 동향

Ⅳ. 대외정책 및 주요관계

Ⅴ. 경제 산업

Ⅵ. 사회·문화 및 교육

Ⅶ. 국 방

Ⅷ. 우리나라와의 관계

Ⅸ. 북한과의 관계

Ⅹ. 부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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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개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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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 명 : 그리스 공화국(The Hellenic Republic)

○ 국경일 : 3월 25일(독립기념일)

○ 수 도 : 아테네(Athens, 370만명)

○ 면 적 : 131,957㎢(한국의 1.3배)

○ 지 형 : 산지 43%, 구릉지 27%, 평지 30%

○ 기 후 : 지중해성 기후 (여름 고온건조, 겨울 온난다습)

○ 인 구 : 1,037만명(’21년 추정치)

○ 종 교 : 그리스정교(90%), 기독교(3%), 이슬람교(1.3%) 등

○ 언 어 : 그리스어

○ EU(’81년 가입), NATO(’52년 가입) 회원국

○ 정부형태 : 대통령제 가미 내각책임제

○ 의회구성(총 300석, ’19.7.7.)

- 신민당 158석, 급진좌파연합 86석, 변화의 당 22석, 공산당 15석, 그리 스적 해결 10석, MeRa25 9석

○ 주요인사

- 대 통 령 : 카테리나 사켈라로풀루(Katerina Sakellaropoulou) - 총 리 :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Kyriakos Mitsotakis) - 의회의장 : 콘스탄티노스 타술라스(Constantine Tassoulas) - 외교장관 : 니코스 덴디아스(Nikos Dendias)

○ GDP : 1,893억 달러(’20년)

○ 1인당 GDP : 18,168 달러(’20년 추정치)

○ 성장률 : -8.2%(’20년)

○ 교역규모 : 906억 달러(’20년)

- 수출 : 351억 달러 / 수입 : 555억 달러(204억 달러 적자)

○ 화폐단위 : 유로화

○ 산업비중 : 서비스(80%), 제조업(16%), 농업(4%)

○ 실업률 : 15.8%

○ 예산(’20년) : 47.85억불, GDP 대비 2.58%

○ 국가부채(GDP 대비) : 213.1%

○ 재정수지(GDP 대비) : 7.5% 적자

○ 군사력 : 107,600명(현역병) (’19년)

○ 국방예산 : 49.4억불, GDP 대비 2.28% (’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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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약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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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스 문명 기원

○ 그리스 문명의 기원인 에게(Aegea) 문명은 전기 크레타문명(혹은 미노스문명, B.C 3000-1400)과 후기 미케네문명(B.C 1400-1200)으로 구분되며, 이 문명의 주인공은 아케아인, 이오니아인, 에올리아인, 도리아인임.

○ 고대 그리스인은 B.C 1000년경까지 씨족공동체를 유지하다가 B.C 8-9세기에 폴리스(Polis)를 형성하였고, 스스로를 "헬레네"인이라고 지칭하면서 선민의식을 갖게 됨.

2. 고대 국가시대

○ 고대 폴리스(Polis)가 발전하여 형성된 도시국가들 가운데 가장 일찍 성장한 것은 아테네와 스파르타이며, 각각 독자적 정부형태를 발전시켰고, 대외적으로는 식민도시 건설을 통해 세력을 확장함.

○ 페르시아전쟁(B.C 492-479) 후 아테네는 페리클레스(Pericles, B.C. 495-429) 지도하 최대의 전성기를 누렸으며, 스파르타에 대항한 펠로폰네소스전쟁(B.C 431-404) 등 내란에도 불구하고 연극, 철학, 역사, 수사학 등 전반적인 학문 분야에서 두드러진 업적을 남김.

3. 이민족 지배시대

○ B.C 388년 마케도니아 출신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아테네가 정복된 이후 그리스는 로마·비잔티움, 오스만제국에 이르기까지 이민족 지배하에 놓임.

- 마케도니아 기간 (B.C 388-B.C 2세기)

• 고대 그리스 문화를 동경하던 알렉산더는 정복사업과 더불어 광범위한 지역에 그리스 문화를 전파했고, 그 결과 그리스와 동방의 정신이 융합된 범세계적 문화, 즉 헬레니즘(B.C. 323-146) 문화가 만들어짐.

알렉산더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마케도니아가 삼분되면서 그리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휘하 장군 중 하나였던 “안티고노스”의 지배하에 들어감.

- 로마 비잔티움 지배기간 (B.C. 2세기-1453)

• B.C 2세기경부터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395년 로마제국 분열 후에는 비잔티움(동로마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감. 당시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그리스 문명을 보존, 전파시키는 중심지 역할을 담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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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만제국 지배기간 (1453-1821)

• 오스만제국 지배 하에서 이슬람교로의 개종은 원칙적으로 자유였으나, 이슬람교도가 되면 지배계층의 특권을 누릴 수도 있었던데 반해, 개종을 거부한 기독교도는 비잔티움 시대 농민이나 봉건제하 농노보다 조금 나은 생활을 감수해야 하였음.

• 밀레트 제도 하에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그리스 정교인들의 자치를 관할, 일부 그리스인들(파나리오테스)은 오스만 제국에서 정부 통역관, 왈라키아 및 몰도바 공국의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러시아 제국에서도 고위 관리로 활동함.

• 18세기 서유럽 근대화, 계몽주의, 프랑스혁명, 나폴레옹전쟁은

그리스인들의 민족주의를 자극하였으며, 그리스 상인들은 해운업을 통해 중산층으로 성장함.

- 그리스 독립 전쟁 (1821-1832)

• 1821.12월 비밀결사 ‘동지회’와 그 지도자 알렉산드로스 입실란티스의 봉기를 시작으로 오스만 제국에 대한 무력 봉기가 전국에 확산되면서 그리스 반란군이 그리스를 장악함.

• 1824.7월 오스만 제국 요청에 따른 이집트의 참전으로 반란군이 상당 부분의 지배를 상실한 가운데, 러시아‧영국‧프랑스가 1826년부터 개입하여 나바리노 해전(1827.10월)에서 이집트군을 격퇴함.

• 1828-29 러시아-터키 전쟁에서의 오스만 제국의 패배로 1830.2월 러‧영‧불간 런던 협정이 체결되어 그리스 독립이 보장, 1932.5월 런던 회의를 통해 군주정으로 독립함.

4. 근대국가 형성기간 (1832-1913)

○ 독립왕국이긴 했으나 영국·프랑스·러시아에 의한 내정간섭이 지속되었고 오토(Otto) 1세 국왕 치하기간(1832-1863)중 3명의 섭정에 의한 개혁도 실패하였음. 1843년 영국, 러시아의 배후 조종에 의한 군부쿠데타 발생 등 정국불안이 계속되었으며, 과거 찬란했던 그리스 회복을 목표로 한 "Megali Idea(위대한 계획)"도 주변 강대국에 의해 좌절됨.

○ 조지(George) 1세 치하(1863-1913)인 1863년 입헌군주국이 되었으며, 1872년 부터는 대외 지향적인 테오도로스 델리이아니스(Theodoros Deliyiannes)와 국내우선주의자인 카릴라소 트리쿠페스(Charilaso Tricoupes)가 주도하는 양당에 의해 정국이 주도됨.

○ 1878년 사이프러스가 오스만제국 지배로부터 영국 지배로 넘어갔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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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는 1912-13년간 발발한 제1, 2차 발칸전쟁에서 승리하여 마케도니아 일부 지역을 회복함.

5. 양차 세계대전기간(1914-1944) 및 그리스 내전(1944-1949)

○ 제1차 세계대전시 독일 출신 국왕 콘스탄틴(Constantine) 1세는 중립을 유지 하였으나 연합군의 압력으로 1917년 국왕이 추방되면서 그리스는 연합군에 합류함.

- 전쟁 결과 불가리아와는 뉘이(Neuilly) 조약, 오스만제국과는 세브르(Sevres) 조약을 체결하여 국경을 확정

- 세브르 조약은 터키의 케말 아타튀르크에 의해 무효화되었고 이에 따른 터키와의 전쟁 결과 1923년 로잔(Lausanne) 조약이 체결되어 현재와 같은 영토경계가 확정

○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1.1월-1944.10월 간 독일, 이탈리아, 불가리아 등에 의해 점령되고, 국왕은 이집트로 망명함.

- 연합국의 지원을 받은 레지스탕스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공산당(KKE) 계열의 민족해방전선(EAM)과 그 군사조직인 그리스인민해방군(ELSA), 비공산당 계열인 민족공화동맹(EDES)와 민족‧사회해방(EKKA) 등이 주도 - 주축국의 패색이 짙어지자 미‧영‧소의 승인 하에 1944.5월 모든 세력이

레바논에 모여 그리스 정부 수립에 합의(National Contract)

○ 1944.10월 영국군과 요르기오스 파판드레우(Georgios Papandreou)가 이끄는 망명정부가 아테네에 진주한 후, 레바논 합의에 따른 거국내각인 민족통합 (National Unity) 정부를 수립함.

- 12월 전국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고 있던 EAM-ELSA을 겨냥한 무장해제를 시도하자 민족통합 정부가 분열되고 영국군-정부군과 EAM-ELSA간의 무력투쟁이 발생(12월의 사태)

- 영국의 개입 확대와 소련의 방관*으로 EAM이 패배하면서 1945.2월 바르키자 협정을 통해 휴전이 성립하고 왕정 복구 국민투표와 총선 개최 합의

* 1944.10월 영‧소간 영향권 구획 합의(Percentage Agreement)의 결과, 그리스는 영국의 영향권

○ 1945-1946 우익세력의 친공 민간인 학살 및 고문이 자행되고(White Terror) 동서 냉전이 시작되자, 공산당(KKE)은 1946.3월 총선을 보이콧하였으며, 9월 왕정 복구 국민투표 결과 우익 세력 중심의 왕정이 복구되자 공산당은

그리스민주군(DSE)를 창설하여 게릴라전 전개함.(유고‧알바니아 등 지원) - 1947.12월 공산당은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정규전을 시작하였으나, △트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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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트린(1947.3월)에 따른 미국의 군사 원조 확대, △스탈린‧티토의 갈등 속에서 그리스 공산당의 스탈린 지지로 인한 유고의 지원 중단, △정규전 개시 이후 지속된 전술적 패배로 인해 정부군이 승리하여 내전은 1949.

9월에 종식됨. 반군은 소련 및 동유럽으로 망명하거나 투옥

※ 내전 중 5만명의 전투원과 10만명의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50만명의 난민이 발생하였고, 많은 그리스인들이 미국, 호주, 서유럽 등지로 이주

6. 입헌군주제(1949-1967) 및 군사정권(1967.4-1974.11)

○ 입헌군주제로 복귀한 후 좌우진영의 갈등으로 인한 국론 분열, 내각의 잦은 교체 등 정세가 불안정한 가운데, 1964년 파울(Paul) 국왕 서거로 왕위를 계승한 콘스탄틴(Constantine) 2세가 1965.7월 내각을 일방 해산하여 국내 정치적 위기가 발생함.

○ 1967.4월 요르기오스 파파도풀로스(Georgios Papadopoulos) 육군대령을 중심으로 한 우익 군부에 의한 무혈 쿠데타가 발생함.

- 군사정권은 정당활동 금지 및 계엄령 실시 등 군부독재를 실시하고, 1973.6월 국민투표를 실시, 왕정을 폐지하고 대통령 중심제를 수립하여 7월에 파파도풀로스가 대통령에 취임

○ 1973.11월 이에 반발한 ‘역 쿠데타’가 발생하여, 데메트리오스

요아니데스(Demetrios Ioannides) 헌병준장 등 소수 군부인사들이 내각을 옹립하고 권력을 장악함.

○ 1974.7월 사이프러스내 에노스시(Enosis) 운동(사이프러스와 그리스 병합운동)을 지원하여 군부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터키의 군사 개입으로 사이프러스 분단이 초래되었으며, 군부 세력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퇴진함.

- 이후 프랑스에 망명중이던 콘스탄틴 카라만리스(Constantine Karamanlis) 전 총리가 복귀하여 민정복귀 진행

7. 민정이양 및 공화제의 발전 (1974.11-2009.9.)

○ 1974.11월 민정이양을 위한 총선에서 카라만리스(Karamanlis) 총리가 창당한 신민당이 승리하여, 단독내각을 구성하고, 1975.6월 공화제 헌법을 선포함.

- 국민의 민주화 열망에 부응키 위하여 공산당 합법화 등 좌익세력에 대한 관용, 언론통제 폐지 및 시장경제정책을 추진하였으며 발칸국가 및 제3세계와의 관계 개선에 주력

- 국내 좌우익 세력간 충돌, 경제적 불황, 터키와의 분쟁 격화 등 과제에 직면 - 1981.1.1. 유럽공동체(EC)에 회원국으로 가입, 그리스의 경제성장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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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의 발판을 마련함. 또한 터키와의 영토분쟁과 북부 공산국가로부터의 위협 대응 등에 국가안보에도 활용

○ 1981.10월 총선에서 사회당의 승리로 정권이 교체됨.

- 선거공약의 일환으로 사회주의식 개혁을 추진한바, 선거연령 인하(20세

→18세), 세속혼과 이혼 인정 및 간통죄 폐지, 그리스 정교회의 시민생활 간섭 축소, 대학교육 체제 개혁, 기간산업 국유화, 임금의 물가연동제 등 채택

- 선거공약이었던 EC 및 NATO 탈퇴, 그리스 주둔 미군기지 철수 등을 불이행

- 1986.3월 총리와 의회 권한을 강화하고 대통령 행정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헌법 개정을 단행

○ 1989.6월 및 11월 개최된 총선에서 신민당이 다수의석을 확보하였으나 절대과반수를 얻지 못해 2차에 걸쳐 임시 연립내각 구성, 1990.4월 총선을 통해 콘스탄티노스 미초타키스 총리가 이끄는 신민당이 집권함.

- 1993.10월 총선으로 사회당이 집권하고 2004.3월까지 3회 연속 집권하였으며, 2001.1월부터 그리스는 유로존에 가입

- 2004.3월 총선으로 신민당이 집권, 2007.8월 총선으로 재집권

8. 구제금융 기간(2009.10.-2019.6.)

○ 2009.10월 조기총선에서 승리한 조지 파판드레우(George Papandreu)의 사회당 정부는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로 그리스 경제가 영향을 받자 당초 예상치보다 훨씬 높은 재정적자 규모를 시인하면서 시장 불안을 촉발함.

- 2010.5월 제1차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임금 및 연금 삭감 등 초긴축 재정 정책 실시로 인해 노조 파업과 시위가 연일 지속되고 오히려 경제상황이 악화되자 파판드레우 총리 사임

○ 2011.11월 사회당, 신민당, 그리스정교연합 3당간 과도연립 정부가 출범하여 2차 구제금융협정 비준 및 민간채권단과의 국채교환 계약을 이행함.

○ 2012.5월 총선 결과 신민당이 과반 획득에 실패하고 구제금융협정에 반대하는 급진좌파연합(Syriza)이 부상함.(득표율 2위, 52석)

- 2012.6월 재선거 결과 제1당을 차지한 신민당과 사회당 및 민주좌파가 연립정부를 구성(이후 민주좌파 이탈), 사마라스 총리가 이끄는 연립정부는 그리스 경제 개혁, 난민 및 범죄 문제 대처 등에 주력

○ 2015.1월 총선 결과 급진좌파연합(Syriza)이 독립희랍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집권함.

- 치프라스 총리는 채권단과 그리스 부채탕감, 구제금융요건 완화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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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했으나 독일 주도의 채권단의 강한 반대와 국가 파산위기에 직면하여 이전보다 가혹한 제3차 구제금융협정에 서명한 후 재신임을 묻기 위해 사퇴 - 2015.9월 조기총선 결과 급진좌파연합(Syriza)-독립희랍당 연립정부가

재집권하여 구제금융협정에 따른 각종 긴축정책 시행

9. 미초타키스(Kyriakos Mitsotakis) 신민당 정부(2019.7.-현재)

○ 2019.5월 지방‧유럽의회 선거에서 좌파연합이 긴축정책 및 북마케도니아 국명 협정 등 민심과 괴리된 정책과 제반 국정 실책으로 패배하자 치프라스 총리는 조기총선을 요구하였으며, 7.7. 조기총선에서 미초타키스 대표가 이끄는 제1야당 신민당이 40% 지지(158석)를 확보하여 단독 정부가 출범함.

- 19.7.7. 총선 결과(총300석)(괄호 득표율): 신민당 158(39.58%), 좌파연합 86(31.53%), 변화의 당(사회당의 후신) 22(8.10%), 공산당 15(5.3%), 그리스적 해결 10 (3.7%), Mera25 9(3.44%) [독립희랍당은 총선 불참]

○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는 2019.7.8. 효율성, 전문성과 능력 중심의 내각을 구성하고, 디지털 행정과 관료주의 개혁을 통한 공공부문의 과감한 혁신과 감세, 외국인 투자 유치, 일자리 창출 등 경제 성장 정책을 중점 추진 중임.

*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는 콘스탄티노스 미초타키스 전 총리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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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정치정세 및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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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 관

○ 1975.6월 프랑스와 독일 헌법의 절충 형태로서 의원내각제 정부형태를 규정 하는 민주공화제 헌법을 채택함.

○ 1986.3월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내용의 개정헌법을 채택하고 의원 내각제적 요소를 강화시킴. 이후 2001년, 2008년 2차례 개정됨.

- 대통령은 의례적이고 상징적인 권한만을 갖게 하고, 의회와 총리 권한을 강화

2. 정치 체제

○ 대통령제를 가미한 내각책임제 정부형태로 그리스 헌법은 국민 주권 원리와 행정부·입법부 및 사법부의 3권 분립을 보장함.

○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그리스정교 이외 여타 종교 선택의 자유를 보장함.

3. 대통령

○ 지위 및 선출방식 : 대통령은 헌법상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으로서 의회에서 선출됨. 임기는 5년이며 1회에 한해 중임이 가능함.

○ 대통령은 △총리 지명 및 총리가 제청한 각료 임명권, △군 총사령관으로서의 군통수권 및 전쟁선포권, △대통령 선출 불가능시 또는 총리 요청시 의회해산권,

△대법원판사 임명권, △법률공포 및 조약비준권, △의회 동의하 국민투표 실시권, △총리 동의하 대국민 성명 발표권 등의 권한을 보유 (단, 총리 지명, 정부 구성 명령, 의회 해산, 법률 공포 거부 외 권한 행사에는 각료의 부서 필요)

※ 역대 대통령 명단(1974년 왕정 폐지, 1975.6월 공화제 헌법 선포 이후) - 1대 1975.6. - 80.5. Constantine Tastsos

- 2대 1980.5. - 85.3. Constantine Karamanlis - 3대 1985.3.30. - 90.5.4. Christos Sartzetakis - 4대 1990.5.5. - 95.3.10. Constantine Karamanlis

- 5대 1995.3.10. - 05.3.12. Konstantinos Stephanopoulos - 6대 2005.3.12. - 15.3.13. Karolos Papoulias

- 7대 2015.3.13. - 20.3.13. Prokopis Pavlopoulos - 8대 2020.3.13. - 현재 Katerina Sakellaropoulou * 1974.12-75.6 Michael Stassinopoulos(임시정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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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행정부

○ 총리 및 각료로 구성되는 내각은 헌법 및 법률에 의한 일반정책의 수립 및 집행을 담당함.

○ 총리는 다수당 총재로서 사실상 행정부를 통솔. 대통령이 의회 추천에 따라 지명하고, 각료는 총리 제청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하며, 내각은 의회 재적의원 과반수 이상의 신임 하에서만 존립이 가능함.

○ 총리 및 내각 구성(2019.7월 현재)

- 총리 :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Kyriakos Mitsotakis), 2019.7월 취임

부총리(Deputy Prime Minister) Panagiotis Pikrammenos 국무장관 (State Minister) George Gerapetritis 총리보좌 장관(Minister to Prime Minister) Akis Skertsos 정부대변인(Government Spokesperson) Aristotelia Peloni 재무부(Ministry of Finance) Christos Staikouras 개발투자부(Ministry of Development and Investment) Adonis Georgiadis 외교부(Ministry of Foreign Affairs) Nikos Dendias

시민보호부(Ministry of Citizens’ Protection) Michalis Chrysochoidis 국방부(Ministry of National Defense) Nikos Panagiotopoulos 교육종교부(Ministry of Education and Religious Affairs) Niki Kerameus

노동사회부(Ministry of Labor and Social Affairs) Costas Hatzidakis 보건부(Ministry of Health) Vassilis Kikilias 환경에너지부(Ministry of Environment and Energy) Kostas Skrekas 문화체육부(Ministry of Culture and Sports) Lina Mendoni 법무부(Ministry of Justice) Costas Tsiaras 내무부(Ministry of Interior) Makis Voridis 디지털정책부(Ministry of Digital Policy) Kyriakos Pierrakakis 건설교통부(Ministry of Infrastructure and Transport) Kostas A. Karamanlis 해운도서정책부(Ministry of Shipping and Insular Policy) Yiannis Plakiotakis 농업개발식품부(Ministry of Agricultural Development and Food) Spilios Livanos 관광부(Ministry of Tourism) Haris Theocharis 이주난민부(Ministry of Migration and Asylum) Pangiotis Mitara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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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의 회

○ 단원제로서 4년 임기 의원 300명으로 구성됨.

○ 주요 권한은 입법권, 대통령 선출권, 총리후보자 추천권, 대통령 및 각료 탄핵권, 내각 불신임권, 국민투표실시 요청권 등임.

○ 주요정당 : 신민당(New Democracy), 좌파연합(Syriza: Coalition of the Radical Left), 변화의 당(KINAL: Movement for Change), 공산당(KKE:

Communist Party of Greece), 그리스적 해결(Greek Solution), MeRA25 등

○ 의장단 : 의장 및 부의장 8명으로 구성됨.

○ 직전 총선은 2019.7월에 실시되었으며, 차기 총선 2023년 예정

※ 2021.6월 현재 정당별 의원 배석 수 (2019.7.7. 총선 결과) : 신민당 158, 좌파연합 86, 변화의 당 22, 공산당 15, 그리스적 해결 10, Mera25 9

6. 사법부

○ 3심제로서 대법원, 고등법원, 하급법원(민사, 형사 및 행정법원으로 구분)으로 구성되며, 위헌심판을 위한 최고특별법원 및 행정기관령에 대한 위법심판을 위한 행정법원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음.

* 국사원(Council of State)은 헌법재판소 및 최고행정법원 역할 담당

○ 각급 판사는 사법위원회(Judicial Council)의 자문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며,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한 정년 65세까지 재직할 수 있으며 재판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영리목적의 겸직은 금지하고 있음.

7. 지방행정

○ 구성

- 그리스 행정구역은 13개 지방(Region), 325개 기초자치단체(Municipality)와 1개 자치주(Autonomous State)로 구분됨.

- 지방행정의 수장인 각 지역의 주지사(Governor)와 기초자치단체의 시장(Mayor)은 4년마다 실시되는 지방선거로 선출됨. 각 지방의 위원회(Regional Council, 인구에 따라 41~101명), 기초단체 위원회(Municipal Council, 인구에 따라 1~49명)를 구성하는 위원도 4년마다 실시되는 지방선거로 선출됨.

- 1개 자치구는 아토스 산(Mount Athos)임. 그리스 정교의 성지로 자치구 특권을 보유함.

○ 2019.5.26.(1차), 6.2.(결선) 지방선거 결과, 13개 지역 중 12개 주지사, 아테네 및 테살로니키 주요 2개 도시 뿐 아니라 인구 5만명 이상 기초단체

50%(152명)에서 신민당 지지 후보가 당선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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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정 당

가 . 신민당(New Democracy Party : ND) (총재: Kyriakos Mitsotakis)

○ 1974.11월 민정 복귀를 계기로 카라만리스(Karamanlis) 전 총리가 창당한 보수우파 정당

○ 1974.11월 이후 7년간 집권당으로서 국내정치의 민주화, EC 가입 등 정치·사회적으로는 안정을 회복시켰으나 경제정책의 실패로 1981.6월 총선에서 패배함. (신민당 지지율 35.86%, 사회당 지지율 48.06%)

○ 1985.6월 총선에서 신민당은 사회당에게 5%차로 패배함. (신민당 지지율 40.85%, 사회당 지지율 45.82%)

○ 1989.5월 총선에서는 44.25%의 최고 지지율을 얻었으나 의회 과반수를 획득하지 못하여 사회당 및 좌파연합과 연립정부를 구성함. 이어 11월 총선에서도 역시 의회 과반수를 얻지 못해 또 다시 연립정부를 구성함.

○ 1990.4월 총선에서 46.88%의 지지를 얻어 의석의 절반인 150석을 확보했으나 1석이 모자라 민주개혁당의 협조로 정부를 구성함.

○ 1996.9월 총선에서 38.6%의 지지율로 107석을 확보하는데 그침에 따라 사회당에 정권을 이양함.

○ 2000.4월 총선에서 38%의 지지율로 126석을 확보하여 정권교체에 실패함.

○ 2004.3월 총선에서 45.43%의 지지율로 165석을 확보하여 집권함.

○ 2007.9월 총선에서 41.84%의 득표율로 총 300석 의석 가운데 152석을 확보, 재집권에 성공함.

○ 2009.10월 조기 총선에서 사회당 43.92%, 신민당 33.48% 득표로 사회당에 정권을 이양함.

- 신민당 패배 요인은 2004년 이래 5년 집권기간 동안 개혁 추진 미흡, 과다한 정부 부채 및 재정적자 발생, 각종 부패 스캔들, 치안 불안, 불법이민 문제 등 국정능력 전반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과 불만

○ 2012.5월 총선에서는 긴축정책을 추진해 오던 신민당, 사회당이 참패하고 연정 구성에 실패한 바, 2012년 6월 2차 총선 결과 구제금융협정에 찬성하는 신민당, 사회당, 민주 좌파로 구성된 연립정부가 출범하였으며, 신민당의 사마라스 대표가 총리로 취임함.

- 2차 총선 결과 신민당이 29.7% 지지율로 129석 확보, 급진좌파연합이 26.9% 지지율로 71석, 사회당은 12.3% 지지율로 33석 확보

○ 2015.9월 총선에서는 75석으로 제1야당의 지위로 후퇴하고, 145석의 좌파연합이 독립희랍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집권함.

○ 2019.7월 총선에서 40% 지지율로 158석을 확보, 신민당 단독정부가 출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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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정책

- 대내정책 : 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주의, 국가안보역량강화

- 대외정책 : 친서방정책, 국제적 지지확보, 사이프러스 적극 지지, 국제평화 및 인권 문제에 적극 참여

나 . 급진좌파연합(Coalition of Radical Left : Syriza) (총재: Alexis Tsipras)

○ 2001년 ‘좌익 일치와 공동노선의 대화장’이란 명칭으로 결성된 좌익환경운동, 부활공산 환경, 좌익일치노선, 세계노동좌익, 그리스공산조직, 활동시민 등 군소 6개 좌익단체 연합이 ‘급진좌파연합’의 모체임.

○ 2003.12월 단체연합정당으로 창당, 2012.5월 단일 정당으로 등록됨.

○ 2012.5월, 6월 선거에서 의석 71석을 차지, 2위당으로 부상함.

○ 2015.9월 선거에서 의석 145석을 차지, 1당으로 부상하고, 독립희랍당(10석)과 연립정부 구성하여 집권함.

○ 2019.7월 선거에서 86석을 차지, 158석을 차지한 신민당에 패배하여 제1야당의 지위로 후퇴함.

○ 기본입장은 경제위기로 고통 받는 일반 그리스 국민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 경제위기 대처 및 안정화, 저소득층에 대한 세금부과 중지 및 세원 파악을 통한 세수 증대, 부유층에 대한 세금부과 등임.

○ 주요정책

- 대내정책 : 사회민주주의, 시장과 금융의 통제, 생산기반의 국영화, 교육 평준화, 언론 및 사법부 통제

- 대외정책 : 인권, 열린 국경, 친러, 친이란, 친아랍, 반유럽, 반미, 친남미(특히 카스트로의 쿠바와 베네수엘라)

다 . 변화의 당(Movement for Change : KINAL) (총재: Fofi Gennimata)

○ 2017.7월 전 사회당(PASOK)* 대표인 Fofi Gennimata가 중도좌파 통합당 결성 추진을 발표한바, Stavros Theodorakis 강당(Potami(江)) 대표도 참여 결정함.

- 2017.8.1. 헌법학자인 Nikos Alevizatos 교수가 창당위원회를 조직하고, 부채위기 발발 후 세력을 상실한 사회당(Pasok)을 중심으로 민주좌파 (Dimar), 강당(Potami)과 중도좌파 인사들을 아우르는 정치 제휴 추진 * 1974년 파판드레우가 창당한 이래 사회당은 저소득층, 청소년 및 진보주의를

지향하는 좌파 정당으로 1981년, 1985년, 1993년, 2009년 총선에서 승리한 주요 정당이었으나, 부채위기 발발후 2012년, 2015년 총선에서 지지율 급감

○ 2017.11월 Gennimata 의원이 56% 지지를 얻어 신당의 대표로 선출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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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8. “변화의 당(Movement for Change”)라는 당 공식 명칭을 발표함.

- 2017.12월 사회당, 강당, 민주좌파 등 3개 정당 소속 의원들이 참여 결정

○ 2018.3.16.-18 변화의당 창당 대회 개최, 공식적으로 새로운 정당으로 출범함.

○ 마케도니아 국명협정에 대한 이견으로 2018.7.2. 강당이 변화의 당에서 탈퇴, 2019.1.20. 민주좌파도 탈퇴, 2019.6.1. 사회당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추앙되는 Evangelos Venizelos도 Gennimata의 리더십을 비판하며 탈퇴함.

○ 2019.7월 조기총선에서 변화당은 8.1%의 지지율로 22석 확보하여 제3정당의 위치를 차지함.

○ 정당 기조: 사회민주주의, 사회 자유주의, 친유럽주의

라 . 공산당(Communist Party of Greece: KKE) (사무총장 겸 대표:

Dimitris Koutsoumbas)

○ 1918.11월 창당

○ 제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 운동 참여, 1946-49 그리스 내전시 반군을 주도함.

○ 1989.6월 선거에 대비해 국제파공산당(KKE-int.)과 합당하여 좌파연합(CLP) 결성함.

○ 1991.6월 7명의 좌파연합 소속의원들이 다마나키 총재의 온건노선에 반발하여 좌파연합과 결별한 후 공산당을 재건하고 알레카 파파리가를 사무총장에 선출함.

○ 2012.5월 총선에서 8.5%, 6월 총선에서 4.5% 지지를 얻어 의석 12석을 확보함.

○ 2013년 말 Aleka Papariga 전 사무총장이 은퇴하고, Dimitris Koutsoumbas 사무총장이 선출됨.

○ 2015.9월 선거에서 15석, 2019.7월 선거에서 5.3% 지지율로 15석 확보함.

(제4위 정당)

마 . 그리스적 해결(Greek Solution: EL) (총재: Kyriakos Velopoulos)

○ 2016.2.28 전 정교연합당(2007-2012, 극우파) 및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Velopoulos에 의해 창당됨.

○ 2019.7월 조기총선에서 3.7% 지지율을 확보(의석 10석)

○ 주요 정당정책

- 경제: 산업개발 및 현대화, 주요 인프라의 국유화 - 외교: 친러, 마케도니아 국명 사용 불허

- 종교: 정교회 지지 - 사법: 사형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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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수주의, 강경한 이주정책

바 . MeRA25 (MERA) (사무총장 겸 총재: Yanis Varoufakis)

○ 2018년 좌파연합의 Varoufakis(15년 재무장관 역임)에 의해 창당됨. (당명 MERA는 “유럽 현실적 비순응 전선“의 약자)

○ 2019.7월 조기총선에서 3.44% 지지율을 확보함.(의석 9석)

○ 주요 정당정책

- 기본입장: “좌파, 녹색, 자유, 그리스“

- 국가부채 재조정

- 국가재원으로 부실기업 구조조정 - 노동자와 창조적인 기업활동 존중

9. 최근 정세 동향

○ 1974년 민정 복귀 이후 경제위기 발생시까지 우익보수당인 신민당(ND)과 중도사회주의 정당인 사회당(Pasok)의 양대 정당이 번갈아 집권하며 그리스 정치를 주도해 왔음.

- 신민당 집권기 :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74~81), 콘스탄티노스 미초타키스(90~93), 코스타스 카라만리스(04~09)

- 사회당 집권기 :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81~89),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93~96), 콘스탄틴 시미티스(96~04)

○ 2009년 국가부채 위기가 발생하자 신민당과 사회당은 경제위기를 초래한 책임에 대한 국민적 비판을 받고 지지율이 점차 하락하게 되고,

좌파연합(Syriza) 등 개혁적 성향의 정당이 점차 부상하면서 우세한 정당을 중심으로 여러 정당간 연립정부 체제가 계속됨.

○ 2009.10월 총선에서 승리한 조지 파판드레우 사회당 정부는 당초 예상보다 훨씬 높은 재정적자 규모를 시인하면서 시장 불안을 촉발시키는 한편, 2010.5월 제1차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임금 및 연금 삭감 등 긴축정책을 실시하여 노조 파업 및 시위로 사회 불안이 가중됨.

- 파판드레우 총리는 1차 구제금융으로 상황이 개선되지 않은 가운데 제2차 구제금융 지원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를 제안하자 강한 국민적 반발에 부딪히면서 총리직을 사임함.

○ 2011년 사회당 주도 신민당, 그리스정교연합과의 3당 과도연립정부, 2012년 신민당 주도 사회당, 민주좌파와의 3당 연립정부는 1차, 2차 구제금융을 수용하여 긴축 정책을 추진해 온 바, 노조들의 파업과 시위 등 사회불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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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중된 가운데 경제위기는 지속됨.

- 2012년 총선에서는 신민당, 사회당이 참패하고, 좌파연합(Syriza)이 제2당으로 부상

○ 2015.1월 그리스가 2차 구제금융을 지원받아 경제회생을 위한 막바지 긴축 노력이 한창인 시기에 치러진 총선에서 좌파연합(Syriza)이 긴축반대,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 등의 인기 영합적인 정책을 내걸고 제1당의 지위를 확보하였으며 (의회 과반수 2석 부족), 치프라스 대표는 독립희랍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기로 하고 총리로 취임함.

○ 치프라스 총리는 취임 후 채권단과 협상을 새롭게 개시하였으나, 채권단의 강경한 입장에 부딪히고 2015.8월 대규모 국채 만기가 도래하는 상황이 발생함.

- 7.5. 채권단 제안 수락 여부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하고(찬성 38.69%, 반대 61.3%), 유로존 탈퇴 및 자국화폐 복귀를 언급하는 등 위기감을 고조 - 자국화폐 복귀가 경제를 붕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예상되자 유로존

탈퇴를 포기하고 채권단의 모든 조건을 수락, 2015.8월 제3차 구제금융 협정을 체결하고 파산위기를 모면

○ 치프라스 총리는 지난 총선의 공약 내용을 이행할 수 없다는 이유로 좌파연합 (Syriza)에 대한 지지가 아직 유지되는 상황에서 2015.9.20. 조기 총선이 실시됨.

- 과반수에는 미달하나 35% 득표율(145석)로 다시 제1당이 된바, 독립희랍당 (10석)과 연립 정부를 재출범

- 그리스 국민들은 유로존 존속 필요성과 구제금융체제하 경제 개혁을 지속할 인물로 치프라스 총리를 재신임한 것으로 평가

○ 치프라스 총리는 집권동안 지속적인 개혁으로 2018년 구제금융 종료, 마케도니아 국명 협상 합의 등 주요 성과를 거두었으나, 국내정치적으로 난민위기, 국민소득 감소, 경제활동 둔화, 사회 및 치안문제 악화, ‘북마케도니아’ 국명 양보, 사법부 간섭 등 제반 실책으로 지지율이 하락함.

- 특히, 열린 국경 정책으로 터키를 통해 그리스 동부 도서지역에 대규모의 난민이 유입되어 그리스와 유럽에 사회경제적 문제를 야기

○ 2019.5월 지방‧유럽의회 선거에서 여당인 좌파연합이 패배하자 치프라스 총리는 타개책으로 2019.7월 2개월 조기총선을 실시하였으나 역시 패배하고, 미초타키스 대표가 이끄는 신민당이 40% 지지율(158석)로 승리함.

○ 미초타키스 총리는 안정적 의회 과반수를 기반으로 신만당 단독 정부를 출범 하였으며, 국민들의 안위와 사회통합, 경제성장 및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에 두고, 정부의 효율 및 능력 기조 하에 혁신과 국가이미지 제고 추진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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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대외정책 및 주요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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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 관

○ 신민당 집권시(1974.11.-1981.10.)에는 친서방정책을 근간으로 하여 EU 및 NATO와의 관계정립을 통한 서방과의 관계 긴밀화, 발칸제국과의 우호협력 강화, 대미관계 중시, 아랍제국과의 관계 개선, 동구권 및 소련과의 경제협력 증대 등을 주요외교정책으로 내세우고 대 터키 관계개선 및 헬싱키 최종의정서에 따른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핵무기 경쟁 종식을 위한 군축협상을 지지함.

○ 1981.10월 총선에서 승리한 사회당 정부는 외교정책 기조를 "평화"와 "현실주의

"에 두고, 기본적으로는 친서방 노선을 견지하면서도 실리 위주의 다면외교정책을 표방함.

- 동서남북의 십자선에 위치한 유럽, 발칸 및 지중해 국가임을 강조하면서 소 련 및 동구권 국가와의 협력강화, 발칸 및 아랍제국과의 친선우호협력 강화, PLO 입장 지지 및 대이스라엘 강경자세, 비동맹권과의 유대강화 등 주변제 국과의 실리추구관계 유지와 아울러 국제평화를 위한 군축 및 비핵화 운동 에도 적극 참여

- 한편, 대 터키 관계는 에게해 영유권 분쟁 및 사이프러스 분쟁에 대한 강경 자세 고수로 긴장이 고조되어 왔으며, 대 EU 및 NATO 관계에 있어서는 집권초기 이들 2개 기구에 대한 탈퇴 입장에서 경제적 실리 및 안보차원상 입장으로 변경, 1986.2월 EU 잔류 및 1987.1월 NATO 잔류 방침을 결정 한 바 있으나, NATO와는 유럽지역 미사일 배치 반대, 그리스 주둔 미군기 지 철수, 폴란드 계엄령 비난 거부, NATO 합동군사훈련에 대한 수시 불참 등을 통해 독자 입장 견지

○ 1990.4월 총선에서 승리한 신민당 정부는 과거 사회당 정부의 대 서방 의존 탈피 및 실리외교 추구가 그리스를 고립시켰다는 판단하에 대 터키 관계 개선 및 서방과의 관계 강화 등 탈고립정책을 추구함.

○ 1993.10월 총선에서 47%의 지지를 얻어 3번째로 집권한 사회당은 시대 변화의 추세에 따라 과거 친소·반미 노선에서 탈피하여 친서방 노선을 채택함.

○ 1996.1월 취임한 시미티스 총리의 사회당 정부는 EU 의장국을 수임하는 등 EU 및 EU회원국과 협력관계를 긴밀히 하는 한편, 발칸내 영향력 확대를 추구 하면서, 대 터키 관계개선 노력을 강화함.

○ 시미티스 사회당 정부는 역대 정부가 견지해온 터키의 EU 가입 반대정책을 전면 수정, 터키가 여타 EU 후보국가들과 마찬가지로 EU 가입조건(코펜하겐 기준)을 충족하는 한 터키의 EU 가입을 지지할 것이라고 선언함.

※ 1993.6월 코펜하겐 개최 EU 이사회에서 신규회원국 가입을 위한 3대 전제조건을 제시한바, ① 정치 :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안정된 제도, 법의 지배, 인권과 소수민 족 권리 존중, ② 경제 : 시장경제, ③ 유럽연합의 다양한 정치, 경제, 통화정책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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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달성을 위한 유럽공동체법 준수

○ 그리스는 1999.12월 헬싱키 EU 정상회담시 터키의 EU 가입을 지지하기로 전략적 결단을 내림.

○ 2004.3. 총선에서 승리, 집권한 신민당의 카라만리스 총리는 사이프러스의 EU 가입 및 아테네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실현한 후 EU 외교정책 기조에 따른 외교노선 및 미국 등 서방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함.

○ 2004-2009.9월 간 집권당인 신민당 대표 카라만리스 총리는 러시아-불가리아 -그리스를 연결하는 카스피해저(Bourgas -Alexandroupolis) 송유관 건설사업 으로 그리스의 에너지 자원 허브화를 목적으로 한 친러적 대외정책을 추진한 바,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터키와의 에게해 문제, 마케도니아 국명 문제, 사이프러스 문제 등 그리스의 외교 현안에서 지지를 얻지 못했음.

○ 2009.10월 조기총선에서 43.9%의 지지율로 의석 160석을 확보하여 승리한 사회당대표 조지 파판드레우 총리는 이전 사회당 정부에서 다년간 외교장관직을 역임한 경험을 통해 이미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정치인이었고, 전통적으로 친미적인 가문의 성향으로 총리 취임 후 약 1년간 총리 자신이 외교장관직을 겸임하면서 대미 관계 개선 및 증대에 노력함.

○ 2010.5월 팔레스타인 구호물자 수송선에 탑승한 터키인 9명이 이스라엘 군 공격으로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급격히 악화된 이스라엘-터키 관계와 이스라엘의 외교적 고립 위기 타개를 위해 이스라엘은 그리스와 사이프러스에 국방 및 에너지분야의 협력을 제안하였고, 2011.7월 파판드레우 총리는 이스 라엘과 사이프러스를 방문하면서 양국 우호관계는 크게 격상되었음. 파판드레우 총리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증진 노력과 더불어 팔레스타인 지도자 압바스와 면담하여 팔레스타인과의 우호관계 지속을 천명하였음.

○ 파판드레우 총리는 터키와의 관계개선을 최우선 외교정책 과제로 설정하고 취임 직후 터키 에르도안 총리와의 양자회담 개최 등 터키와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을 경주하였으며, 에게해 자원탐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터키측도 그리스와 관계개선을 추구하였음.

○ 2011.7월 파풀리아스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공식 방문하여, 이스 라엘과는 협력 가능한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협정을 체결하고, 압바스 팔레스 타인 지도자와 면담을 통해 그리스의 지지를 표명하였음.

○ 시리아 사태 발발과 터키와 이스라엘 간 관계악화 후, 2012년 3월 미국을 안 전보장국으로 하여 이스라엘-사이프러스-그리스 간 수자원 및 에너지(천연가 스-석유) 개발 협력 협정이 체결됨. 또한, 그리스는 사이프러스와 함께 이스라 엘과 이집트와의 각각의 3자 협력 체제를 형성하고 역내 중요한 성장과 안정 의 요소로 활용하고 있음.

- 공공 및 민간 부문, 특히 에너지, 관광, R&D, 환경, 수자원 관리, 테러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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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 이주 부문 공동 협력 사업을 위한 긴밀한 협력 추진

- 그 외, 농업, 공동 화재 대처, 환경 보호 (해상 오염 대처 포함), 자연재해 공동대응, 긴급상황 시 정보공유, 공동 탐색 구조 훈련, 보건 의료, 전염병 관리, 천연가스 및 신재생 에너지 기술 개발, 교육, 통신, 3국 간 로밍 체제 구축, 해운 등 광범위한 부문에서 협력 가능성 타진

○ 2015.9월 조기 총선에서 35.5%의 득표율로 승리를 거둔 치프라스 총리는 독립 희랍당(3% 득표)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그리스 부채 해결 및 투자유치를 위해 미국 및 EU 등 서방국가와 협력하는 한편, 러시아 및 중국 등과도 협력을 추진함.

○ 2019.7월 조기 총선에서 40%의 득표율로 승리를 거둔 미초타키스 총리는 신민당 단독 정부를 구성하고, 2021년 그리스 독립전쟁 200주년을 기점으로 ‘개방적이고 새로운 그리스’로 국가브랜드를 재창출한다는 목표로 외교부의 경제통상 및 공공외교 기능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음.

- EU, 미국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친유럽․친서방의 전통적인 외교 정책 기조를 강화하면서, 중국과의 경제협력 유지, 러시아와의 종교․문화적 유대를 토대 로 한 협력도 병행

2. 외교정책 기본 입장

○ 그리스는 유럽, 아시아, 중동 및 아프리카에 인접하고 발칸반도의 남단에 위치 한 지정학적 입지를 활용하여, 발칸지역·지중해 및 중동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지역안정의 축으로서 위상을 추구하고 있음.

○ 그리스는 UN 창설 회원국의 하나이며, 1981년 EU의 전신인 EC의 10번째 회 원국이 되었으며 2001년 유로존에 가입함. 또한, OECD, NATO, OSCE, WTO, ICAO, IMO, ILO, IAEA, WHO, UNESCO 등 주요 지역·국제기구에서 적극적 활동을 수행하고 있음.

- 2005~6년간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수임

○ Nikos Dendias 외교장관이 2019.7월 의회 연설을 통해 밝힌 신민당 정부의 외교기조는 △야당과의 협의, 국민 컨센서스 등 민주적 절차 강화, △대외강경 론, 민족주의․파풀리즘을 배제하고 국익 최우선의 가치 추구, △‘New Greece’

로 국가브랜드를 재창출하기 위해 경제통상 외교, 홍보․공공외교 기능 강화, △ 재외동포, 국내 부처와의 유기적 협력 등 외교 자산 통합 활용 등이며, 주요 외교과제는 다음과 같음.

- 그리스의 EU내 역할 및 위상 강화 - 사이프러스 문제 해결 노력

- 대터키 관계 개선

- 발칸 지역 안정 및 번영에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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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마케도니아 국명 협정(Prespa 협정)의 이행

- 동부지중해 자원 개발 및 지역 협력을 통한 에너지 허브 국가 추진

3. 주요 대외관계 현황

가 . 터키와의 관계

⑴ 역사적 배경

○ 그리스 정교 종주국으로서 그리스반도를 지배하던 동로마 제국이 1453년 오 토만제국에 의해 멸망된 이후 약 400년간 터키인 지배하에 있었음.

○ 그리스는 1821년부터 본토와 도서지방을 점령하던 터키와 이탈리아로부터 독 립운동을 시작하였고, 발칸전쟁, 1차세계대전을 거쳐 현재의 국경을 확보하였 음. 독립전에 이탈리아에 속했던 터키 본토와 매우 근접한 에게해의 도서지역 이 그리스에 복귀되면서, 그리스와 터키의 영유권 문제가 발생하였음.

○ 1821.3월 "Hetairia Philike"라는 비밀결사의 지도자인 입실란티스 형제의 거 병으로 7년간(1821-27) 독립운동을 전개한 후 1830.2월 영국, 프랑스, 러시 아간 "런던의정서" 체결로 독립이 보장됨.(1830.3.25. 독립)

○ 1912년 결성된 발칸4국 동맹의 일원으로서 제1차 발칸전쟁에 참전하여 터키 로부터 "크레타"섬을, 제1차 세계대전시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에게"해 제도를 회복하였으며, 소아시아 지역의 거점인 스미르나(이즈미르)에 군대를 진주시키기도 하였음.

○ 1차 대전 후 터키가 피폐해진 상황에서 스미르나를 발판으로 소아시아 내륙까 지 회복하고자 하였으나 앙카라 근교의 사키리아 전투에서 케말 아타투르크가 이끄는 터키군에 크게 패해 결국 스미르나를 포함한 소아시아 전체에서 철수함.

- 1923년 터키와 1차대전 참전 연합국간 평화협정인 로잔느 조약으로 현재의 그리스-터키국경이 확정되고 별도 협정으로 터키내 그리스인 100만명과 그 리스내 터키인 50만명을 맞교환/추방

○ 1974년 터키의 사이프러스 군사개입 및 1970년대 이후 터키의 에게해 영유권 주장 등으로 에게해를 중점으로 터키와 영유권 분쟁이 격화되었음.

○ 특히 터키와 에게해·항공정보구역(FIR)·영해·이미아(Imia) 섬 영유권 등을 둘러 싸고 양국간 불화를 악화시키는 사건들이 계속 발생하였으나 1997.7월 마드리 드에서 개최된 NATO 정상회담을 계기로 시미티스 총리는 데미렐 터키 대통 령과 만나 그리스-터키 간 화해원칙 합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동성명을 발 표하여 양국간 긴장관계가 다소 완화되는 데 기여함.

○ 1999년 양국 지진사태에 상호 원조함으로써 이후 화해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며, 1999.8월 그리스 - 터키간 차관보급 회담에서 관광, 환경, 경제통상, 문화, 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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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대응, 마약, 조직범죄, 불법이민, 지역협력 등 비정치적 분야에서 협력하여 나가기로 하고,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함.

○ 터키의 EU 가입문제에 있어서 터키가 여타 유럽과 같이 인권, 종교 자유, 소 수민족보호를 철저히 존중하면서 평화와 민주주의 번영 및 안정을 지지하며 터키와 EU 가입협상을 2005.10.3. 개시키로 한 2004.12월 EU 정상회의 결 정을 지지함.

○ 2004.3월 집권한 신민당 정부는 터키와의 장기적 관계 강화에 주안점을 둠.

2004.5월 터키 총리의 그리스 방문, 2005.4월 그리스 외교장관의 터키 방문 등 고위급 인사교류가 진전되었으며, 교류와 협력이 증대됨.

○ 카라만리스 총리와 에르도안 터키 총리가 2005.7월 터키 마르마라해

Karacabey와 그리스 Trace 지역 Komitini을 연결하는 가스관 기공식에 함께 참석, 양국간 화해협력 및 선린우호 관계 증진을 평가함.

○ 바코야니스 외교장관은 2006.6월 이스탄불을 비공식 방문, 귤 터키 외교장관 과 외교장관회담을 갖고, 양국 공군기지간 직통전화(hotline) 설치, 에게해상 3 개월간(6.15-9.15) 하계 군사훈련 중단 등 신뢰구축조치에 합의함.

- 2006.5.23. 터키공군과 그리스 공군전투기의 에게해 상공 충돌사고로 인한 양국간 긴장관계를 다소 완화

○ 2009.10월 집권한 사회당 파판드레우 총리는 터키와의 관계개선을 최우선 외 교정책관제로 삼고 취임 직후 터키 에르도안 총리와의 양자회담 개최 등 터키 와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을 기울인바, 에게해 자원탐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 고 있는 터키측도 그리스와 관계개선을 원하였음.

- 다만, 그리스 언론은 터키가 양국간 최대 현안문제인 에게해 대륙붕 경계획 정문제, 사이프러스문제 관련 양보는 하지 않은 채 대화와 협상만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

- 터키 군함이 2010.3월 그리스 영해, 심지어 아테네 인근 수니온 곶까지 침 범하는 사건 발생

○ 2009-12년 사회당 및 연립정부의 외교장관들은 다붓오울루 터키 외교장관과 의 비공식 면담을 통해 양국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지속했으나, 그리스의 해저석유탐사 추진과 사이프러스의 천연가스 발견 이후 터키는 사이프러스측

‘해저 가스전 Block 12’ 근해에 해군함정과 전투기를 파견, 개발구역을 감시하 는 이스라엘 해군과 대치하는 등 긴장이 고조되었음.

○ 2013.3월 사마라스 총리는 터키를 방문 에르도안 터키 총리와 면담하여 터키 의 EU 가입에 대한 그리스의 지지를 표명하고, 상호 존중, 양국 영유권 및 국 제법 존중을 통한 양국 우호 신뢰 관계를 형성해 나가자고 함.

- 2013.6월 Venizelos 그리스 부총리도 터키를 방문하여 관계부처별 고위급 위원회를 통해 양국 우호관계를 발전시키기로 하고, 특히 교역, 문화,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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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부문의 협력을 추진하기로 협의

○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5월 에르도안 터키 총리가 그리스 북부 Thraki 지방 회교도 공동체 지역을 비공식 방문하여 그리스 내 터키 소수민족의 인권보장 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여 양국간 마찰을 야기함.

- 또한, 2013.11월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폴란드 방문 중 ‘사이프러스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언급하여 그리스와 사이프러스의 반터키 정서 촉발

○ 2015.2월 그리스-이집트-사이프러스 3국 정상(Tsipras 그리스 총리, Abdel Fattah El-Sisi 이집트 대통령, Anastasiades 사이프러스 대통령)은 아테네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역내 안정 및 대테러 협력, 3국간 배타경제수역 설정 협상 추진에 합의함.

- 이에 대해 터키는 3국간 배타적 경제수역 설정은 그리스와 터키 간 해양 경 계 분쟁에 여타 국가가 그리스의 입장을 옹호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며 반발

○ 2016.7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쿠데타 주도자들을 진압한 후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고 반그리스, 반사이프러스 등 국수주의 정서를 고조시킴. 한편, 터키는 최첨단 장비 도입을 통한 군비 증강을 추진 중인 바, 경제위기로 인해 군비 감축이 불가피한 그리스측에 우려를 야기함.

- 터키 정부는 2016.11월 미국 F35 전투기 25대 도입과 러시아 S-400 미사일 시스템 도입 등 장기적 군비증강 계획 발표

○ 2017.12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그리스를 방문하여 65년만의 터키 대통령 방문으로 양국 관계 개선에 기대가 있었으나, 에르도안 대통령은 공개석상에서 다소 무례한 태도로 에게해 분쟁 등에 대한 자국의 입장을 되풀이하고 양국 국경의 토대인 1923년 로잔 조약 개정 등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결과를 초래함.

- 2019.2월 치프라스 총리는 터키를 방문하여 양국간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위한 대화채널 유지, 경제협력 등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 지속 합의

○ 2019.9월 미초타키스 총리는 유엔총회 참석 계기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양 자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 개선 필요성에 대해 공통 인식하에 난민, 사이프러스 문제, 양국 소수민족 보호, 터키 쿠데타 연루 군인 신병 인도 등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함.

- 미초타키스 정부는 대터키 선린 관계의 초석은 국제법 존중에 있으며, 터키가 도발·위협시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

○ 2019년 말부터 2020년 하반기까지 터키의 그리스에 대한 반복적인 도발이 진 행되었으며 2021.6월 현재 양국은 긴장 속에서 화해 모색을 위한 탐색적 대화 (explanatory talks)를 진행 중임.

* 터키는 2019.11월 터키-트리폴리 정부 해양경계 MOU 체결, 2020.2월 터키의 이 주민 대상 육상 국경 개방, 2020.7월 소피아 성당 모스크 전환, 2020.8월-11월 터 키 탐사선의 그리스 대륙붕 해역 탐사 등 일련의 도발을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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⑵ 에게해 분쟁

○ 그리스와 터키 본토 해안은 에게해 해안을 양국이 거의 대등하게 양분하는 양 상이지만, 대다수 에게해 섬들이 그리스에 속함에 따라 양국간 에게해 도서 영 유권 및 영공에 대한 권리, 영해·대륙붕 설정 권한 및 자원개발 이권 관련 분 쟁이 지속됨.

- 특히 그리스령 레스보스(Lesbos), 히오스(Chios), 사모스(Samos), 도데카네스 (Dodecanese) 군도 등은 터키 서해안에 근접한 위치에 있어(사모스의 경우 500m) 터키가 본토 해안으로부터 어떠한 수역을 선포하는 것도 방해하고 있는 상황

- 터키측은 그리스가 에게해 도서들에 광범위한 수역을 선포함으로써 에게해 를 ‘그리스의 호수’로 만들고자 한다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한편, 그리스 측은 터키가 에게해 절반에 대해 터키 관할권이 미치는 수역을 선포함으로 써 터키에 근접한 그리스령 섬들을 모국으로부터 고립시킬 것을 우려

○ 1973.11월 터키정부가 에게해상 양국간 대륙붕 경계에 관한 지도를 일방적으 로 작성하여 에게해 대륙붕 탐사를 진행하자 그리스가 이를 주권침해 문제로 제기함으로써 표면화됨. 1987.3월 그리스가 북부 에게해 타소스섬 인근 공해 수역에 대한 석유탐사 활동계획 발표로 터키와는 군사적 충돌의 위기를 맞이 하였으나, EU 회원국, 유엔 및 미국의 중재로 일단 긴장이 해소된 바 있음.

- 그리스측 입장 : 유엔해양법(1982년)에 의거 에게해 그리스 도서에 대한 대 륙붕 설정 권한은 국제적으로 인정되고 있으므로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며, 터키측의 주장을 대륙붕 문제의 정치문제화 기도라고 비난

- 터키측 입장 : 대륙붕 자연연장설에 의거 터키 본토로부터 연장된 에게해 대륙붕은 도서 존재에 관계없이 터키의 탐사 및 개발권이 인정되며, 국제사법 재판소 결정(1976년 및 1978년)에 따라 ‘양국간의 형평 원칙과 주변 환경을 고려한 양국간 협상에 의한 해결’ 원칙에 의거 그리스와의 협상을 요구

○ 1994, 1996년 에게해 도서 영유권 분쟁으로 그리스-터키간 무력 충돌 위기까 지 고조 되었으며, NATO 사무총장의 중재로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신뢰 구축 방안이 논의됨.

○ 2019.11월 터키는 대륙붕 권원에 대한 자료를 유엔에 제출하고 에르도안 대통령 -리비아 알사라지(Al-Sarraj) 총리간 해양 MOU를 서명한 바, 그리스는 자국의 해양 주권을 침해하고 에게해 섬(Crete, Rodes, Karpathos, Kastelorizo 등)의 효과를 무시한 국제법상 불법이며 무효라고 항의함.

○ 2020.5월 터키는 국영석유회사의 에게해 섬 남부 해역에 대한 탐사‧개발 인허가 신청을 관보에 게재하였으며, 2020년 하반기에는 그리스 대륙붕 해역에 탐사선을 보내 도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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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는 이탈리아, 이집트와 해양경계 협정을 체결하고, 알바니아와 기존 해 양경계 협정의 문제를 ICJ를 통해 해결키로 합의하는 방식으로 대응

⑶ 항공정보구역(FIR) 문제

○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그리스에 위임한 에게해 상공의 항공정보구역 (Flight Information Regions)내에 1974.8월 터키가 일방적으로 경계선을 구 획, 동 항공구역을 통과하는 모든 민간 및 군용 항공기는 터키 항공당국의 통 제권 하에 있다고 주장하자 그리스가 이에 대한 대응조치로 에게해 상공을 통 과하여 터키를 왕래하는 모든 항공기에 대한 비행금지 조치를 취함.

- 터키측 입장 : "국제민간항공기구"에서 설정한 에게해상 그리스 관할 항공정 보구역이 터키 본토에 근접하여 구획되어 있음에 반발, 국방상 안전 확보를 이유로 동 항공안전구역의 재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여 왔고, 1980.2월 이후 민간항공기에 대한 통제권은 해제하였으나, 군용기에 대해서는 통제권 을 계속 주장

- 그리스측 입장 : 유럽지역 국제민간항공기구회의(1952년 및 1958년)에서 그리스에 위임한 에게해상 항공정보구역은 영토 및 영해를 기준으로 설정된 것이므로 터키 주장은 영공에 대한 주권침해이며 국가 안전보장의 심각한 위해 요인

⑷ 영해문제

○ 1982년 유엔해양법회의에서 영해의 12해리 원칙이 채택됨에 따라 그리스측은 그리스 영해를 6해리에서 12해리로 확장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였으며, 터 키측은 동 조치를 개전 사유(Casus Belli)로 간주한다는 강경자세로 대응함으 로써 양국간 긴장이 격화됨.

- 그리스 입장 : 국제해양법상 영해 범위는 12해리로 인정되고 있으며, 터키 측이 흑해와 아나톨리아반도 남부 지중해에서는 자국 영해에 12해리 원칙 을 적용하고 있으므로 에게해상 그리스 영해 확장은 당연한 조치

- 터키측 입장 : 유엔해양법상 영해 규정은 ‘최대 12해리 원칙’이므로 주변국 가와의 관계가 특별한 고려대상이 되어야 하는바, 에게해 상 12 해리 영해 원칙이 적용될 경우 에게해 전체가 그리스의 내해가 되므로 터키의 해상 통 로가 완전히 봉쇄되는 한편, 대륙붕 독점이 필연적이라고 비난하고 그리스 와의 전쟁도 불사한다는 강경 입장으로 대응

○ 2020년 그리스는 터키의 에게해 도발에 대응하여 이탈리아와 접경한 이오니아 해의 영해를 12해리로 확장하는 조치를 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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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사이프러스 문제

⑴ 사이프러스 문제 배경

○ 사이프러스는 1571년 오스만 터키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감.

○ 1960년 사이프러스 독립시 인구의 약 80%를 차지하는 그리스계 사이프러스 인들은 종교, 언어 및 문화 등이 동일한 그리스에 융합을 희망하였으나, 영국, 그리스, 터키간 합의에 따라 독립하게 됨. 1960.8월 사이프러스가 영국의 지 배에서 독립한 직후, Enosis(본토와의 병합) 운동의 기치 아래 그리스계 주민 의 터키계 주민에 대한 차별정책이 강화되어 양측간 유혈충돌이 발생함.

○ 이에 따라 1964.4월 유엔평화유지군(UNFICYP)이 사이프러스에 파견되었고, 계속적인 그리스계의 차별대우에 반발한 터키계는 1967.12월 시한부 '터키계 임시정부'를 수립 함. 그후 그리스계의 터키계에 대한 탄압은 점차 심화되어 1974.7월 그리스계 사이프러스 국방경비대에 소속된 그리스군 장교들이 당시 이오니데스 군사정권의 조종하에 쿠데타를 일으킴으로써 절정에 이름. 터키는 이에 대한 대응조치로서 자국민 보호와 사이프러스 독립 보장이라는 명목 하에 사이프러스에 대한 군사 개입을 단행하였으며, 1974.8월 소위 ‘녹색선’(Green Line)을 경계로 사이프러스 북부지역(전 영토의 40%)을 점령함으로써 사실상 사이프러스에 양계 독립정부의 출현 및 영토 분할을 초래함.

○ 남북 영토분할 이후 1975.2월 터키계 사이프러스 연방공화국(Turkish Federated State of Cyprus Republic)이 수립되었으며, 유엔 사무총장 주선 하에 1975.2월-1976.2월 간 제1차 양계 정상회담, 1977.1-2월간 양계 제2차 정상회담 개최(4국 기본합의 사항 채택), 1979.5월 양계 제3차 정상회담(10개 합의사항 채택), 1984.9-12월 간 유엔사무총장과 양계 정상간 개별 접근회담 (Proximity Talks) 등이 개최되었으나 양계 간 주장의 대립으로 진전을 이루지 못함.

○ 또한, 1983.10월 그리스계 키프리아누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시 양계회담의 기존합의 사항을 전면 부정하는 성명을 발표함에 따라 1983.11.15 ‘북부 사이 프러스 터키계 공화국(Turkish Republic of Northern Cyprus: TRNC)’이 북부 사이프러스 지역에 수립됨으로써 양계간의 공식회담은 중단됨.

○ 그간 유엔, 미국 등 서방측 중재 노력에도 불구, 문제해결에 전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던 중, 1988.8월 유엔중재에 의한 양측간 정상회담이 개최되었으며, 이후 양 정상은 뉴욕, 제네바 등지에서 계속 협상을 벌였으나, 통합 이후 정치 체제 및 지분 확보 등에 대한 이견으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음.

○ 1997.8.11.-15.간 스위스 Glion에서 개최된 남북 사이프러스 대통령 회담은 북사이프러스 측이 EU의 사이프러스 가입검토 개시 결정 철회를 요구함으로써 결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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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12월 뉴욕, 2000.1-2월 제네바, 2000.7-8월 제네바, 2000.9월 뉴욕, 2003년 헤이그에서 유엔 사무총장 중재로 남북 사이프러스 대통령간 회담 (Proximity Talks)이 개최되었으나, 통합방안에 대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함.

⑵ 그리스측 입장

○ 그리스 정부는 사이프러스 문제를 유엔 결의안의 테두리 내에서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어떠한 방안이나 토의도 환영하는 바, 유엔사무총장과 유엔특 별대표의 제반 활동에 대한 조정(Coordination)이 문제 해결의 기본요소라는 입장임.

○ 유엔이 인정한 사이프러스공화국(1960.8.16. 독립 및 9.20. 유엔 정회원국 가 입)의 주권회복을 위하여 그리스계에 대한 경제, 외교 지원 등을 제공하는 한 편, 그리스계측 사이프러스 분쟁 해결방안의 실현을 통해 사이프러스 내에서 자국 이익 및 대터키 분쟁에서의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있음.

○ 사이프러스 통일 협상관련 그리스의 역할은 사이프러스가 협상을 통해 유엔 결의에 따라 포괄적 해결을 이루도록 지지하는 것이며, 시대착오적인 안전보장 체제를 폐지하여 사이프러스의 온전한 주권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임. 그리스 는 안전보장체제 이외 통일 협상의 여타 쟁점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 장임.

(3) 터키측 입장

○ 터키계 사이프러스측은 1974.8. 터키 군사개입으로 초래된 양계 분할 상태를 유지하고 터키계 주권과 평등한 참정권 보장을 전제로 자치적 독립지역 정부 를 인정하는 ‘국가간 연합’(Confederation) 방안을 주장함.

- 터키는 통일 후에도 북사이프러스 통제가 용이한 2개 국가 방안 (Confederation) 주장

(4) 사이프러스 분쟁 해결방안

○ 사이프러스 주둔 터키군 및 터키계 신규 이민(1974.8월 이후) 즉각 철수, 실효성 있는 국제적 보장 협정 체결 및 3대 기본권(거주의 자유, 이전의 자유 및 재산 소유권 보장)을 전제로 한 유엔 결의안 범위 내에서의 분쟁해결을 주장하며, 강력한 중앙정부하 연방제(Federation)를 채택하되, 인구 비례에 의한 영토 재 조정(그리스계 82%, 터키계 18%) 및 그리스계 피난민의 원거주지(북부지역) 복귀문제 등의 일괄 타결방안을 제시함.

○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최종 중재안을 두고 2004.4.24. 실시된 남북 사이 프러스 국민투표에서 북사이프러스는 찬성(찬 : 64.91%, 반 : 35.09%)한데 반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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