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분권 시대의 주거정책
서종균 前 서울주택도시공사 처장
전환의 시대, 지방을 포함한 주거정책 구상이 필요하다
1.
중앙집중적 주거정책의 역사
우리나라 주거정책은 중앙집중적 성격이 강하다. 중앙정부가 정책의 세부적인 사항까지 결정하는 경우가 많고, 중앙정부 산하의 공조직들이 정책 실행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지방정부의 역할은 정책 결정이나 실행 모두에서 매우 제한적이다.
주거정책의 중앙집중적 성격은 역사적 산물이며,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적 상황이 있었다. 급격한 도시화 를 경험하는 동안 대규모 주택 공급의 과제에 대응해야 했고, 중앙집중적인 체제는 상당히 효과적으로 그 역할을 수행했다. 지난 30년간은 중앙정부가 중심이 되어 공공임대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했고, 그것은 주거 문제 완화에 기여했다. 다른 주거정책도 중앙정부가 내용과 지원 규모를 결정했으며, 지방정부는 일부 정책 에서 전달자 정도의 역할만 해왔다.
주거정책의 경험 속에서 중앙정부 주도의 정책의 한계 혹은 지방화의 필요를 확인하기도 한다. 지역 상 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택지 개발이 진행되면서, 도심은 쇠퇴하는데 외곽에서 그린벨트를 풀어서 주택 공급을 위한 땅을 개발하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 중앙정부가 세부적으로 정해둔 공공임대주택 입주자 선정 기준에 따라 영구임대주택 단지에는 극단적으로 저소득층이 집중하고 있고, 이런 기준을 바꾸는 것에 대한 무관심은 지역사회 침체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무색하게 만든다. 이런 경우 중앙정부 주도의 주거정책 을 유지하는 것이 옳은지 의심하게 된다.
정책이 정교해지고 더 효과적인 것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발견되는 문제가 반영된 반성과 쇄 신 과정이 필요하다. 지방정부는 이런 과정에서 협력적인 조직의 일부가 될 수 있다. 현재는 지방정부에 이 런 역할이 기대되지 않고, 그런 일을 할 동기도 부족해 보인다.
지금까지 주거정책 지방화를 추진하지 않았던 것은 지방정부가 아니라 중앙정부의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당면한 목표 물량 달성을 위해서 기존의 효과적인 체제를 바꾸는 것은 위험하게 여겨졌다. 지방정부 와의 협력은 중앙공기업인 LH와의 협력에 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결과도 장담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 겨졌다. 이런 선택을 한 것은 이해가 가는 면이 있지만, 정당하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지방정부의 주거정책에 대한 방관적 태도는 중앙정부 중심의 주거정책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만들어진 것 이다. 중앙정부 주도의 주거정책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지면, 앞으로도 지방정부로부터 높은 수준의 협력은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
주거정책에서 지방정부의 역할이 빈약해 보인다. 지방정부가 주거정책으로 활용할 수단이 거의 없었던 것 이다. 역할이 없으면 책임감을 갖기도 어렵다. 대부분의 지방정부는 주거정책을 그리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
았고,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을 자기 역할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뭔가 활용할 수단이 있어야 문제도 눈에 들어오고 책임도 질 수 있는데,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지방정부가 구체적인 정책 수단과 자원 배분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때 주거 문제에 대응하는 실질적인 주체가 될 것이다. 그래야 주거정책의 결정에 참여하는 주체로 지방정부의 역량을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 다. 지금까지는 그런 변화의 필요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모두 절실하지 않았다.
주거정책에서 권한과 역할에 대한 요구는 지방정부마다 매우 다르다. 그래서 다수 지방정부는 주거정책의 지방화를 원하지 않거나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이해되기도 한다. 특수한 지역의 요구만으로 지방화를 선택 할 수는 없다고 한다. 주거정책의 권한을 지방으로 넘기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거나 상황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지방정부의 태도가 어떤가에 따라서 권한을 넘기고 말고를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앙집중적 주거정책이 형성되고 이어져 오는 동안 형성된 조직과 역학 관계는 그것을 지속하고자 하는 힘을 갖게 되었다. 기존 체제를 바꾸는 논리에 저항하는 것은 관료화된 조직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이고, 주거정책을 둘러싼 정부나 공공조직도 마찬가지이다. 조직의 자기 이해는 구체적인 선택에서 그 조직 의 사명보다 강하게 작용하곤 한다.
중앙정부의 입장에서 이해가 가는 면도 있다. 그동안은 뒤돌아볼 여유도 없이 늘 새로운 정책을 만들기 에 벅찼다. 문제가 터지면 대책을 만드는 것에 온 힘을 쏟았고, 제시된 목표를 관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방정부가 얼마나 협력적인가에 따라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이런 체제가 아직도 상당히 효과적 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한을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적어도 지금까 지의 관점을 유지한다면 적극적인 긍정이 기대되지는 않는다.
2.
낮은 권한과 낮은 관심
,지방정부의 제한적 시도
지방마다 주거 상황이나 문제의 양상이 다른 것은 주거정책을 지방화해야 할 이유로 거론되곤 했다. 지방 정부는 대응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이를 기초로 적절한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우리나라의 정책 상황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지는 못했다.
나라마다 주거정책에서 활용하는 기본적인 수단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공공이나 민간이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사회주택, 소비자의 주거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주거비 보조, 주택 개량이나 개조에 대한 지원이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이런 정책을 설계하고, 그것을 수행할 자원을 조달하는 것은 주로 중앙정 부이다.
이런 주거정책 수단을 지역의 상황에 맞게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지방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주택이 부 족할 때, 주택이 부족하지 않지만 낡거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많을 때, 양질의 주택이 충분히 많을 때 각각의 상황에 맞게 주거정책 수단을 조합하는 방법은 달라진다. 이런 조건이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지방정부는 정책 수단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우리나라 주거정책 상황에서 지방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지방정부의 선택이 란 중앙정부의 정책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수정하거나 중앙정부 정책과 구분되는 정책 수단을 만들고 실시하는 것이다. 차별성을 만드는 것 자체가 주거정책에서 지방정부가 해야 할 역할의 핵심은 아니 다. 하지만 문제에 본격적인 대응이 어려운 상태에서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보다는 뭔가를 하고 있 다는 것을 내세우는 수준에 그치게 된다. 그래서 좀 다른 정책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부각된다.
지방정부는 문제를 확인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자원 활용에 대한 더 큰 결정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지방정부는 그동안 주거정책에 대해서 관심이 별로 없었던 것은 실제로 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지 않았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지역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주거상담 서비스를 지방정부가 담당하는 것 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에서 주거지원을 위한 정책의 투자 규모는 작은 편이 아니다. 특히 주거지원을 위한 자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공공임대주택이고, GDP에서 사회주택에 대한 투자의 비중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런 자원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림 1> OECD 국가의 사회주택 비중과 사회주택에 대한 국가 투자 수준
배분되는 공공임대주택의 일부분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재량권이 있고, 이것은 지역의 문제에 대 응할 수 있는 중요한 가능성이다. 하지만 지방정부의 정책적 우선순위를 반영하기 위한 개입이 원활하지는 않다. 맞춤형 임대주택 등의 이름으로 불리곤 하는 지방정부가 특별히 공급 대상을 정하는 배분 방식은 지 방정부나 임대사업자 모두에게 업무가 늘어나고 신경도 쓰이는 부담스러운 일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공공임대주택과 관련된 지방정부의 역할에 대한 기대는 일부 주택에 대한 배분 결정 정도에 그치지 않는 다. 양질의 부담가능한 주택 공급은 우리 사회가 담당해야 할 과제이고, 모든 지방정부는 이와 관련하여 책 임을 느끼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모든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 이상의 (공공임대주택과 민간비영리 임대주택을 포함하는) 부담가능한 주택을 확보하도록 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 을 경우 부담금을 내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이것은 다양한 계층과 집단이 함께 사는 동네, 그런 동네로 이루어진 도시를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공공임대주택보다 더 자주 지방정부가 활용하고 있는 것은 주거비를 보조하는 것이다. 중앙정부는 주거급 여, 전세임대주택, 보증금 저리 융자 등의 수단으로 소비자들에게 주거비를 지원한다. 주거급여와 관련한 지방정부의 역할은 기준에 따라 전달하는 기능뿐이다. 중앙정부 정책과 별도로 실시되는 보증금 융자에 대 한 이자 지원, 주거급여와 겹치지 않은 범위의 월세 지원 등이 지방정부가 직접 계획해서 집행하는 정책으 로 선택되곤 한다. 이런 수단은 재정만 확보되면 큰 준비 없이 쉽게 시작할 수 있고, 많은 사람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소비자 보조 방식은 정치적 요구에 대응하기도 쉽고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확대도 어렵지 않지 만, 지역의 주택시장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주거비 보조를 지출하는 것에 비해 소비자가 양호 한 거처에 살기 위해서 주거 소비를 확대할 가능성은 크지 않고, 이런 지출의 확대가 공급자가 양질의 주 택 공급을 늘이는 것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더 낮다. 이에 반해 주택시장은 하위시장으로 분절되어 있어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민간임대주택시장의 가격 상승을 초래하기는 쉽고, 이런 현상은 현장에서 자주 확인된다. 결과적으로 지원을 받지 않는 저소득 가구의 부담은 커지고, 재정 부담 등으로 주거비 보조를 축 소할 경우 위기에 처하는 이들도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영향을 고려하여 지방정부의 주거비 보조 방식의 지원은 정책 목적이 명확하고 한시적 지원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경우에 활용하는 것이 적합하다.
주택 개량과 개조에 대한 지원은 중앙정부 정책으로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주택 개량에 대한 지원은 에 너지 효율화나 특정한 주거지의 정책적 활성화가 필요한 경우 등 특별한 정책 목적과 관련해서 추진되는 것이 유리하다. 노인과 장애인 등이 집에서 생활하는 것과 관련한 불편을 줄이기 위한 주택 개조는 돌봄에 대한 필요와 시설이나 병원에 대한 수요를 줄이는 효율적인 정책 투자로 여겨지고 있으며, 지역사회에서 자 립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정책에 대한 수요를 중앙정부가 충족시키지 못한 영역에서 지방정부의 정책이 형성되곤 하는데, 주택 개 량이나 개조에 대한 지원이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주택 개조, 낮은 수준의 집수리 지원, 노후 주거지의 주택 개량에 대한 지원 등이 지방정부의 주거정책에서 자주 발견된다. 하지만 문제의 규모에 비해 투입되는 자원은 제한적이어서 실질적인 정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이 정책 수단의 가능성을 여전히 중앙정부는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있으며,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구색을 갖추는 수 준에 대응에 그치고 있다.
주거정책 수단들을 지방정부가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방정부가 지역 의 주거 문제를 잘 파악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책임감을 갖고 대응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방정 부의 변화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계획적 시도가 없는 것을 비판해야 한다. 지금보다 더 많은
자원 배분에 대한 결정권을 지방정부가 가지고 있어야 하고, 중앙정부는 지방정부가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적절한 수준에서 제어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아직 이런 방법을 깊이 생각해보 지 않은 듯하다.
3. ‘
모두를 위한 주거
’실현을 위한 주거정책
현재 주거정책을 고려하는 태도가 유지된 상태에서 중앙정부의 입장에서 지방정부를 활용할 때 어떤 이 익이 있을지를 생각하면, 권한의 지방 이양을 통해서 당장 기대할 수 있는 편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다. 지방정부의 역할이 커지면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가 풀리기보다는 절차가 복잡해지고 갈등이 커질 것 이라고 예상할 것이다. 주거정책 지방화가 방향은 옳지만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지방정부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늘 지역 상황에 부합하는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주거정책 지방화를 통해서 지역 상황에 더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고 시민들의 자기 결정권이 더 존중할 수도 있지만, 이런 주 장은 이론적이고 실제 지방이 주도할 경우 예상되는 문제들의 리스트는 구체적이고 길다. 지방화를 위해서 중앙정부는 지방정부가 문제를 진단하고 상황에 맞게 적절한 대안을 선택하는 것과 관련해서 방향을 제시 하고 적절하게 유도할 수단을 갖춘 상태에서 제한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관점이 달라지면 상황은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 “모두를 위한 주거(Housing for All)”라는 관점 에서 보면 지방정부의 역할은 더 확장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모두를 위한 주거가 주거정책의 목표가 되 면, 홈리스 문제 해소, 지역사회 자립생활에 대한 기회 제공, 평생 살 수 있는 동네 만들기 등이 중요하게 고려될 것이다. 기후위기 또한 전환적 사고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주택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주택에 사용되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과제로 등장한다. 생활 방식을 바꾸고, 일과 돌봄에 대한 새로 운 접근 방법도 주거정책이 함께 대응해야 할 변화이다.
홈리스 문제는 복지 분야가 대응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주거정책의 과제로 보지 않았던 것은 부끄러 운 일이다. 홈리스 문제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미비한 것이 중요한 원인이지만, 직접적으로는 주거비를 부담하지 못하고 거처를 상실하면서 나타나는 주거안전망의 문 제이기도 하다.
홈리스 정책이 거리에서의 긴급구호와 생활시설 지원 중심으로 추진되었던 것은 주거정책의 미흡한 대응 과 무관하지 않다. 과거 홈리스 정책은 예방과 지역사회 재정착 기능이 없는, 앞뒤가 잘린 정책이었다. 그 런데 주거복지센터, 지원주택,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등 주거정책 수단들이 등장하면서 변화의 가능성이 나타났다. 주거위기가구가 노숙에 이르지 않도록 지역사회 차원에서 예방하는 것은 주거상담을 비롯한 지역 사회 주거안전망 정책의 목표이다. 긴급주거지원과 긴급임시주택도 더 적극적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다. 만 성적 노숙인이 지역사회에 재정착할 수 있는 지원주택을 비롯하여 집을 제공하고 유지하도록 지원하는 것 은 주거정책과의 협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런 기능은 모든 사람이 집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주거정책의 목표로 삼을 수 있는 토대이다.
노숙 예방을 통하여 해마다 발생하는 거리노숙인의 규모를 크게 줄이고, 거리에서 발견된 사람은 신속하게 임시적인 거처를 제공하고, 노숙인시설이나 임시거처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영구적인 거처를 구할 수 있도록 주거상담과 사례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종래에는 홈리스 문제를 거의 없애는 것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살 곳이 없는 이가 없는 모두를 위한 주거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을 갖추는 것이다.
이런 정책은 복지와 주거 분야의 협력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으며, 지방정부가 분명한 방향을 가지고 관 련 주체들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조정하는 일을 해야 가능하다. 그리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을 만들고 자원을 확보하는 역할은 중앙정부가 수행해야 한다.
주거정책은 지역사회 자립생활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고려되어야 한다. 그동안 자기 집에서 생활할 수 없 을 것이라고 여겨지던 사람들에게 주거와 돌봄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지원을 통해서 자기 집에서 독립적으 로 생활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지역사회 자립생활의 기회를 권리로 보장하기 위해서 지원주택, 주거 약자용 주택, 주택 개조, 유니버설 디자인의 주택 적용 등의 주거정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에서 계속 거주하기 어려운 여건 때문에 요양시설이나 요양병원을 가야 하는 노인들이 많다. 요 양병원 입원환자의 58%는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여건이 제공될 경우 퇴원해야 할 ‘사회적 입원’ 상태이 다. 이로 인해 과도한 의료비 지출을 초래하고 재정적 부담이 되고 있다. 지역사회에 거주할 수 있는 여건 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 정부의 부담은 앞으로도 급격하게 늘어날 것이다. 주택 개조를 통해서 살던 집의 여건을 개선하는 것, 그것도 어려우면 생활하기 편리한 환경이 갖추어진 집으로 이사를 할 수 있도록 지원 하는 것, 또 지원과 주거가 결합된 지원주택 등의 대안이 제공되면 입원환자의 상당수는 집에서 돌아가기를 원할 것이다. 치료와 간호도 집에서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면 그 효과는 더 커질 것이다.
<그림 2> OECD 국가의 요양시설 및 요양병원 병상 제공 수준
탈시설화 추세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시설에는 인지적 어려움 때문에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해도 자립생활 을 선택하기 어려운 이들이 다수 남아 있다. 정신병원 역시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지 지 않아서 장기간 입원한 환자들의 비중이 매우 높다. 지원주택은 이런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다.
팬데믹 상황은 시설 거주의 위험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코로나19 사망자 중 요양병원이나 시설거주자 비 중이 매우 높다. 4월 UN Human Rights Office of the High Commissioner의 보고에 따르면 시설거 주 사망자 비중이 42∼57% 수준이며, 한국은 39%이다. 시설은 생존을 위협하는 안전하지 않은 거주 형 태로 여겨지고 있고, 지역사회에 독립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해야 함을 확인했다. 지역사회 자 립생활을 선택하지 못하는 장애요인을 확인하고, 부족한 지역사회에서 제공되는 사회서비스를 강화하고 주 거정책 차원에서의 고려가 절실히 요구된다.
<그림 3> 코로나19 사망자 중 시설거주자 비중
지원주택은 시설이나 병원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고 여겨지는 이들에게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수단이다. 주거약자용 주택은 기존 주택을 고쳐도 생활하기 좋은 여건을 제공하기 어려울 때 대안으로 고려될 수 있다. 고령자복지주택도 마찬가지로 활용할 수 있다. 지원주택과 주거약자용 주택, 고령자복지주택은 돌봄이 필요한 이들에게 제공하고, 돌봄 관련 사정을 통해서 그 필요를 판단하여 입주자를 선정하는 것이 적절하다. 따라서 지원주택 및 주거약자용 주택, 고령자복지주택에 대한 배분 권한 은 지방정부가 수행하는 것이 적절하다.
모든 주택은 주택 개조가 용이하고 접근성이 보장되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여 건설하는 것이 바람 직하다. 그리고 장애나 질병으로 몸이 불편해질 경우에는 주택 개조를 통하여 살던 곳에서 보다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환경을 갖출 필요가 있다. 주택 개조에 대한 필요 역시 지방정부가 돌봄에 대한 필요를 사 정하는 것과 함께 판단하고, 지방정부에게 그런 지원을 해야 할 책무를 부여하는 것이 적절하다. 주택 개조
는 낙상을 예방하고, 요양병원과 시설에 대한 수요를 줄이고, 돌봄 서비스에 대한 필요로 감소시키는 효율 적인 정책 투자로 여겨진다.
기존의 주택 개조 지원은 양적으로 매우 부족하고, 정책을 집행하는 방식도 이용자 중심적이지 않아서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일정 시기에만 신청할 수 있고, 정해진 예산을 소진하는 식으로 사업을 해왔다. 적절한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는 수단이 될 수 있게 주택 개조 지 원 프로그램을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언제든 주택 개조에 대한 신청을 할 수 있고, 지방정부는 일정한 기간 안에 사정을 하고 자격이 되면 지원을 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기초자치단체마 다 일정한 물량 이상의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예산을 확보하고, 사정을 담당할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주택개조와 지원주택, 주거약자용 주택, 고령자복지주택에 대한 필요를 사정하고 자원을 배분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기초자치단체에 주거사정관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 주거사정관은 그밖에도 지역의 주거 문제 에 대응하기 위해서 보다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건강을 침해하거나 안전하지 않은 주거환경에 대한 조 치를 취할 수 있고, 임대차관계에서 임대인이 적절한 주거를 제공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도 개입할 수 있으며, 지역에서 우선적으로 대응해야 할 주거권 침해 상황을 조사하고 대응책을 강구할 수도 있다.
지역사회 자립생활과 관련한 주거정책 수단의 발전은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자기 집을 유지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한 정책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거처와 돌봄 서비스가 제공 방식에서 시설과 공동생활가정의 비 중은 줄어들고,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할 가능성은 훨씬 커질 것이다. 지방정부 차원에서 주거와 돌 봄의 협력 체계가 갖추어지고, 지방정부에 의한 주거지원에 대한 필요 사정이 다른 돌봄 분야와 함께 통합 적으로 이루어지고, 개인의 필요에 맞게 자원이 배분될 수 있다.
4.
주거권 실현을 위한 주거정책에서 지방정부의 역할
주거정책 지방화는 권리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권리라는 말은 바람직한 추상적인 지향점을 제시하기 위 해서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이 국가나 다른 주체들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가 되기도 한다. 권리가 침해된 상황에 대해서 국가가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정의할 수도 있고, 권리 침해와 관련해서 국가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될 경우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다. 권리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발전해가는 경향이 있다.
주거권과 관련한 국가의 의무를 보다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시민이 직접 요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역할이 더 커져야 한다. 지방정부는 기본적인 생활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일을 직접 수행하는 주체 즉 보장기관의 역할을 하게 된다. 국가가 의무적으로 대응해야 주거권 침해 상황을 정의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을 만드는 과정은 대부분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일상 에서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하는 활동과 침해된 권리와 관련한 요구에 대응해야 하는 것은 지방정부이다.
시민은 자신의 권리를 지방정부에 요구할 수 있고, 다른 주체들과의 사이에서 침해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서 지방정부에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 주거권이 국가가 의무적으로 보장해야 할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의하
는 방향으로 발전할수록 지방정부의 주거권 침해 상황을 확인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역할은 커진다.
주거정책의 수단이 국가가 자원을 직접 투입하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거와 관련된 다양한 주체들 의 활동이나 그들의 관계에 규칙을 정하고 개입하기도 한다. 이런 역할을 현장에서 직접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쪽방, 고시원, 불법 개조 원룸 등 열악한 거처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주거정책의 중요한 대상이다.
이와 관련해서 한편으로는 저렴하고 양호한 거처의 공급을 확대하여 주택시장의 여건을 완화해야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준 이하의 거처가 확산되지 않도록 하고 적절한 방식의 규제를 병행해야 한다. 이 정책 은 중앙정부는 방향을 정하고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지방정부가 현장을 확인하고 공권력을 행사하는 집행 기능을 해야 가능하다. 지방정부의 이런 역할은 최소한의 주거환경을 충족하는 거처를 제공 하도록 하는 사적인 계약 관계에 대한 기준을 제공하는 개입이다.
코로나19 등으로 거처를 상실할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국가가 긴급하게 주거대책을 제공하는 것이 의무 로 여겨지면, 시민들은 지방정부에 긴급한 상황에 임시적으로 머물 수 있는 거처를 요청할 수 있게 된다.
지역사회 자립생활에 대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권리로 인정될 경우, 자립생활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이들은 일정한 시간 안에 필요한 지원이 제공될 것이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적절 히 이해하지 않은 경우 지방정부는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비난받게 될 것이다.
상당한 수준의 주거지원을 위한 자원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주거권 침해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 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권리의 차원으로 보장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확인하고, 이와 관련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책임과 역할을 정하는 것이 몇 가지 영역에서 고려될 수 있다. 주거상담 서비스를 받을 권리, 당장 살 곳이 없을 때 임시적인 거처를 제공받을 권리, 몸이 불편해도 집안에서 주거생활을 할 수 있게 주 택 개조 지원을 받을 권리, 지역사회 자립생활에 대한 권리 등이다. 이런 권리의 보장을 위해서는 지방정부 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5.
주거정책 지방화를 위한 계획
중앙정부는 주거정책의 전국적 집행 조직이 아니라 종합적인 판단과 정책 결정을 하는 기관이어야 한다.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국가가 해야 할 과제를 정하고, 국민의 주거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 는 수단을 만들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 관련 주체들에게 책무와 권한을 부여하는 일을 해야 한다.
지방정부의 역할은 새로운 실험을 하고 중앙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하는 정도에 국한되지 않 는다. 새로운 관점으로 주거정책을 전환할 때 필수적이고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할 주체이다. 관점을 세우 고 정책 수단을 정비하여 지방정부를 활용할 계획을 구체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모든 기초자치단체에 주거복지센터를 설치하여 모든 시민들에게 주거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지방 정부가 지역의 주거 문제를 확인하고 정보를 축적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또한 주거복지센터는 위기가구에
대한 상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지방정부가 이런 기능을 담당할 때 여러 부문과 통합된 사회 안전망을 완성하는 것에 유리하다.
돌봄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에 대응하여 주거정책이 담당해야 할 과제를 확인하고, 지방정부가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는 것이다. 주택 개조, 지원주택에 대한 정책을 중앙정부 차원에서 신속 하게 설계하고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지방정부에게 주택 개조, 지원주택, 주거약자용 주택, 고령자 복지주택의 배분과 관련하여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주거사정을 실시하고 이를 토대로 자원 배 분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적절하다.
또한 기존 주거정책 영역 중에서는 공공임대주택의 공급과 배분에서 지방정부의 책임과 권한을 다시 설 정하는 것을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주거비 보조와 주택 개량 등의 주거정책 영역에서 도 지방정부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효과적인 자원 활용을 하는 방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문제에 대한 인식 정도는 그것을 해결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는 가능성과 무관하지 않다. 당면한 과제 부터 지방정부의 개입을 통해서 진전이 기대되는 정책 영역부터 지방정부의 역할을 확대해가는 변화를 모 색할 필요가 있다. 준비하는 만큼 기대하는 만큼 지방정부는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