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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현대의 창조적 인물들 -파블로 피카소, 월트 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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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현대의 창조적 인물들

-파블로 피카소, 월트 디즈니

주요 수업 내용 수업자료 및 방법

-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세계 - 월트 디즈니의 작품 세계

PPT 강의 토의/ 토론

20세기의 새로운 시각적 경험은 예술사에 있어서 르네상스 시기의 변혁에 비견된다.

전통을 넘어선 새로움을 추구한 아방가르드와 추상미술은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세 상을 바라보게 하였다. 이것이 진정한 창조였는지 아니면 파괴와 혼돈으로부터 야기된 무질서였는지는 역사가 판단할 일이겠으나, 어쨌든 흥미로우면서도 중요한 변화의 과 정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이런 변화를 가능케 했던 중요한 요인은 영화, 텔레비전 등 매스 미디어의 신기술과 개인주의의 상호작용으로서, 예술가들은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재현한다는 예술 개념에 의문을 던지고 아름다움의 근원을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하였 다.

1.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4)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을 구현한 창조적 개인들 중에 성공을 거둔 인물이라면 단연 파블로 피카소와 월트 디즈니가 돋보인다. 이들은 혼신의 열정으로 참신함을 추구했다. 피카소는 전통적 회화뿐 아니라 조각, 포스터, 광고, 무대배경과 의 상, 가면, 로고, 재떨이, 그리고 머리장식 등의 소품까지 제작했고, 아흔 두 살의 나이 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종이, 캔버스, 돌, 세라믹, 금속, 그리고 기타 가능한 모든 소재 를 사용하며 3만 점이 넘는 방대한 양의 작품을 남겼다. 서른세 권이나 되는 그의 <작 품목록총서(1932~1978)>도 완성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경제적인 성공도 놀랄만한데, 1914년에 백만장자의 대열에 합류하였고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는 억만장자가 되었으며, 죽을 당시에는 모든 예술가를 통틀어 최고의 갑부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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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폴 존슨, 『창조자들』, 이창신 옮김, 황금가지, 2006, pp. 415-416, 419-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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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청색시대 - <늙은 기타 연주자>, 1903, 패널에 유채, 시카고 미술연구소

피카소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출신으로, 수도인 바르셀로나로 진출했으나 화가로서의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1900년 유럽 예술의 중심지인 파리로 다시 옮겨갔다. 파리에 정착한 피카소는 세간에서 천 재로 인정받기 이전, 다양한 화풍의 그림들을 연구하 고 노력하는 고된 시간을 보내게 된다. 파리는 전통 적 재현 예술에 반기를 든 피카소에게 승리를 맛보게 해주었다.

29)

피카소의 활동 초기는 작품 전체에 감도는 푸른색 과 우울하고 애절한 분위기 때문에 청색시대라 불린 다. 이 시기에 피카소는 거지, 부랑자, 떠돌이, 배우, 매춘부, 죄수 등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을 상징적 표현 을 사용하여 그림에 담았다. 소외된 자들의 절망과 비애를 느끼게 하는 이런 그림들은 당시 피카소 자신이 경험하던 세계가 투영된 것일 수도 있다.

<늙은 기타 연주자>는 단순한 절망감을 넘어서서 인간존재의 나약함과 어쩔 수 없 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에 대한 성찰이 표현되어 있다. 이 작품에 짙게 풍기는 시적 인 우수는 스물두 살의 앳된 청년으로 이국땅에서 살아가야하는 천재 화가의 개인적인 슬픔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30)

2)<아비뇽의 아가씨들>, 1907, 캔버스에 유채, 뉴욕 현대미술관

현대 추상미술의 출현에는 피카소의 공헌이 지대하다. 1905년경 세잔느를 비롯한 후 기 인상파 화가들의 회고전과 마티스를 중심으로 한 야수파 화가들의 작품에 자극을 받은 피카소는 청색시대의 작풍을 일신하고 새로운 표현양식을 찾아 나섰다.

1907년에 제작한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후기 인상파는 물론 야수파 작가들의 새로 움에까지 도전하는 대담한 것이었다.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정물이 포함된 다섯 명의 누드화로 완성되었지만, 피카소는 원래 매음굴의 모습을 그리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으 며, 그림의 제목은 바르셀로나의 악명 높은 아비뇽 거리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 작품은 매우 격렬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이 그림을 본 마티스조차 격분할 정 도였다는데, 그 이유는 자연을 재현하려는 시도를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도발적인, 당시에는 매우 이질적이고 낯선 선형 분석을 시도한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31)

29) 위의 책, p. 416.

30) H. W. 잰슨 & A. F. 잰슨, 『서양미술사』, 최기득 옮김, 미진사, 2008, pp. 459-460.

31) 폴 존슨, 『창조자들』, 이창신 옮김, 황금가지, 2006, pp.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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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의 왼쪽에 자리한 세 명은 모나고 각진 형태의 신체로 변형되었고, 오른쪽의 두 명 은 더 이상 사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과격하게 해체된 형태로 원시미술을 연상시키는 얼굴에서는 야만성마저 느끼게 한다. 피카소는 고갱이나 야수파 화가들을 통해서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군도의 조각 에 관한 자료를 접할 수 있었다. 그의 선배 들은 원시조각에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견 했지만, 피카소는 회화 전통과 고전적 미의 이상을 타파하는 수단으로 원시조각을 사용 했다. 피카소는 르네상스 미술이 확립한 인 체의 비례를 무시할 뿐 아니라 형태를 훼손 함으로써 그 존엄성마저 거부하는데, 어떤

비평가는 <아비뇽의 아가씨들>들 두고 ‘바닥에 깔린 깨진 유리조각 같다’고 비난한 적 도 있었다고 한다.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여태까지의 그림들과 달리, 외부 세계를 재현한 이미지가 아니다. 이 그림은 자연과 분리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다. 그림 안의 세계는 고유한 원리와 질서를 따르며, 이것은 결코 자연계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이며, 피카소만의 세 계인 것이다. 피카소의 그림에서 날카로운 모서리와 각진 면 등 표현방법에 주목했던 비평가들은 이러한 새로운 양식을 가리켜 입체주의(Cubism)라 불렀다.

32)

3)분석적 입체주의 - <볼라르의 초상>, 1910, 캔버스에 유채, 푸시킨 국립미술관(모 스크바)

세잔느의 후기 작품을 주의 깊게 연구한 피카소는 여러 각도에서 본 대상의 면을 작게 분할하고 이를 다시 결합시 키는 분석적 입체주의(Analytic Cubism)의 조형어법을 탄생 시킴으로써 작품에 균형감과 세련미를 더하게 된다. 이제 피카소는 대상을 해체하고 인체를 훼손하기만 한다는 주장 에 맞서, 단순한 재현보다 더 의미 있는 입체성을 획득하 고, 결과적으로 진정한 사실주의를 구현할 수 있노라고 반 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로써 미술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되고, 살아있는 생명으로서의 육체와 결별을 고하게 된다. <창조자들>이라

32) H. W. 잰슨 & A. F. 잰슨, 『서양미술사』, 최기득 옮김, 미진사, 2008, pp. 478-480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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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책을 쓴 폴 존슨은 ‘미술에서 재현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와도 같은 입체주의가 피카소 최고의 발명품이라면, 왜 수집가, 미술관, 미술 시장은 그가 재현에 치중하던 시기에 내놓은 초기 작품, 특히 청색 시기의 작품에 더 높은 가치를 매길까’라고 반문 한다.

33)

‘장밋빛 시기’의 작품들과 <아비뇽의 아가씨들>과는 달리, 이제 피카소의 작품들은 완화된 색채를 보여준다. 단색에 가까운 색조는 화면 전체에 차분하고 이지적인 분위 기를 만들어 낸다.

4)종합적 입체주의의 새로운 공간개념 - 조르주 브라크의 <우편물>, 1914, 콜라 주, 필라델피아 미술관 / 피카소의 <세 연주자>, 1921, 캔버스에 유채, 뉴욕 현대미술관

1910년 무렵, 피카소의 입체주의는 미술계의 주류로 통하게 되며, 피카소를 따르는 화가들도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특히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1882-1963)는 피 카소와 절친한 사이였고, 함께 작업을 하였기 때문에 이 시기의 작품들은 둘 중 누구 의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더욱 과감한 방법을 도입하 였는데, 여러 가지 재료를 ‘잘라 붙이는(cut-and-paste)' 방법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작 품의 완결성을 높이기 위해 몇 개의 선을 긋는 방식이었다. 이는 종합적 입체주의 (Synthetic Cubism) 또는 콜라주 입체주의(Collage Cubism)라 불리게 되었다.

<우편물>은 브라크가 모조 나뭇결 종이, 증지가 붙어있는 담배 포장지, 신문 제목의 반쪽 그리고 신문지로 만든 카드를 붙여 만든 작품이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왜 갑자기 물감 대신 쓰레기통의 잡동사니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일까? 브라크는 사물을 보기만 할 뿐 아니라 만지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 었다고 말한다. 재료의 가능성들을 고려하도 록 그를 이끈 것은 물질 자체에 대한 바로 이 러한 강한 기호였으며, 그는 물질 형태의 감 촉을 만들어내고 싶었다고 고백하였다.

34)

마치 쟁반에 담긴 물건처럼 그림을 보여주 는 <우편물>은 어떤 대상에 대한 ’재현 (represent)'이면서 동시에 물질 그 자체로서

‘현존(present)'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전의 분석적 입체주의 단계에서는 시도되지 않았던 자기 충족성(self-sufficiency)이 작품에 부여되고, 결국 작품은 스스로 완결된 독립된 세계이며, 물질계와는 격리된 공 간이 되는 것이다. 이는 르네상스 이래로 완전히 새로운 공간 개념으로서, 회화의 역사 에서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게 된다.

33) 폴 존슨, 『창조자들』, 이창신 옮김, 황금가지, 2006, p. 422 참고.

34) 제임스 홀, 『왼쪽-오른쪽의 서양미술사』, 김영선 옮김, 뿌리와이파리, 2008, p. 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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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는 <세 연주자>라는 작품을 통해 재료를 붙이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이러한 새로운 공간 개념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마치 콜라주를 제작하 듯이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오려붙인 종이를 보는 것인 붓으로 칠한 물감을 보는 것 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35)

5)새로운 표현의 가능성 - <세 무희>, 1925, 캔버스에 유채, 테이트 갤러리(런던)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한 피카소의 입체주의는 화가들뿐만 아니라 조각가와 건축가들에게도 지대 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피카소 자신 은 이미 한계에 이른 종합적 입체주의를 벗어나 새 로운 양식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1925년에 제작된 <세 무희>는 전혀 불가능하다 고 생각되는 시도, 즉 종합적 입체주의와 사실적 화 풍의 결합을 그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는가를 보 여 준다. 융은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그를 정신분열 환자라고 했다는데,

36)

피카소는 하나의 ‘시각적인 장난'인 작품 속에서 익살스럽고 기괴하며 무시무시 한 동시에 비극적일 수도 있는 여러 가지 예기치 못한 표현의 가능성을 모색하였던 것이다.

37)

2. 월트 디즈니(Walt Disney, 1901-1966)

미국 중서부 미주리 출신인 디즈니는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환경에서 자랐으며, 진 취적이고 활기찬 성격으로 신기술을 적극 수용하였다.

디즈니는 피카소와 여러 면에서 대조적인 인물이다. 피카소가 구세계의 사람이었다 면, 디즈니는 신세계의 사람이었다. 피카소가 자연에서 멀어져 인위적인 자신만의 세계 를 그렸다면, 디즈니는 자연을 관찰하고 재현하는 일을 기쁨으로 삼았다. 디즈니는 인 간의 상상력보다 더 풍부한 자원은 바로 자연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예 술의 유일한 원천은 자연일 수밖에 없었고, 자연 안에서 가족을 이루는 것이 바로 지 속적인 행복의 요인이었다. 피카소가 여성을 비인간화한 그림을 그렸다면, 디즈니는 동 물을 인격체로 그렸다. 평생 동물의 움직임과 특징을 관찰하고 그리기를 즐겼던 디즈 니는 인간의 감정을 동물에 적용하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디즈니의 힘이

35) H. W. 잰슨 & A. F. 잰슨, 『서양미술사』, 최기득 옮김, 미진사, 2008, pp. 480-481, 487-488.

36) 폴 존슨, 『창조자들』, 이창신 옮김, 황금가지, 2006, pp. 429.

37) H. W. 잰슨 & A. F. 잰슨, 『서양미술사』, 최기득 옮김, 미진사, 2008, pp. 488-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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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해학의 원천이었다.

열여덟 살이 되면서 신문에 만화를 연재하는 일을 시작한 디즈니에게는 두 가지 열 정이 있었다. 하나는 자기 사업을 시작해 남의 지시를 받지 않고 일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의 열정은 만화 영화라는 예술 또는 기술에 뛰어드는 것이었다.

디즈니는 무성 영화를 죽은 영화라 여겼고, 영화에서 음향의 특성이나 질이 성공의 열쇠라고 생각했다. 1928년 초에 공개된 <증기선 윌리, Steamboat Willie>는 미키 마우 스를 이용한 첫 번째 유성 영화였었다. 그림이 움직일 뿐만 아니라 소리를 낸다는 것 은 예술 역사상 획기적인 사건이었고,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만화 영화에서 영상과 음 향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은 디즈니의 기술적 승리 덕분이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미키 마우스가 입을 열어 말을 하고 소리를 지르도록 한 그의 독창적 상상력 덕분이기도 했다.

디즈니의 녹음방식은 이랬다. 음향에는 1분에 필름 약90피트가 필요했다. 낱장의 그 림은 초당 24프레임의 속도로 화면에 영사된다. 음악 박자는 1초에 2비트여서, 12프레 임마다 1비트를 넣는다. 종소리나 징소리 같은 음향 효과를 포함해 이 모든 것이 악보 에 기록된다. 필름에는 검은 잉크로 12프레임마다 표시를 해 둔다. 녹음실에서 필름이 영사될 때 이 표시가 하얗게 번쩍 빛나는데, 이 빛이 시각적 메트로놈이 되고 음악 감 독(또는 음향 감독)이 비트를 맞춘다. 자연스러운 효과를 연출하기까지 엄청난 노력과 시간 그리고 수많은 재녹음이 필요한 작업이며, 영상과 음향이 일치된 필름이 완성되었 을 때 디즈니는 돈이 떨어져 아버지의 차까지 팔아야 했다.

폴 존슨, 『창조자들』, 441-442쪽

이후 사운드 트랙을 보강한 <엉터리 교향곡(Silly Symphonies)> 시리즈를 만들어 냈 고, 미키 마우스 이외에 미니 마우스, 새끼 고양이 피가로, 다람쥐 치프, 강아지 플루 토, 개 구피, 도널드 덕 등 새로운 캐릭터를 계속 선보였다. 디즈니의 작품에서는 그림 과 소리와 움직임이 테크놀로지와 결합하여 전례 없이 풍부한 예술적 상상력을 꽃피우 게 되었다.

디즈니는 색채를 소리만큼 중요한 요인으로 보았다. 테크니컬러를 도입하기 전부터 광범위한 색상을 실험했고, 나무와 꽃, 불과 파도, 바람과 폭풍 등 자연의 색채를 묘사 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신의 선물인 색채는 사물을 실감나게 표현하는 데 가장 중 요한 것이라고 그는 항상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돈을 버는 만큼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물감과 필름, 기타 재료를 최고급으로 마련하였으며, 시간과 비용에 구애받지 않고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올 때 까지 계속 반복하였다. 또한 신기술과 인재 발굴에도 엄청난 투자를 하였다. 1930년대의 디즈니 스튜디오는 바로크 시기 대가들의 작업장과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인재들이 모여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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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신의 스타일을 연구하고, 각자 자신의 능력을 최고로 발휘하였고, 독창적인 아이 디어를 존중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고, 때로는 의견의 불일치로 다투기도 하는 등 일거 리가 넘쳐 항상 분주하였다. 1930년대 중반에는 무려 1000명을 넘는 인력이 디즈니의 스튜디오에서 일했다.

1934년에 기획을 시작하여 1938년에 전 세계에서 개봉한 <백설 공주와 일곱 난장이 (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는 장편동화를 만화화한 작품이다. 당시의 자유 로운 분위기에서 예술적, 기술적 혁신이 도입된 이 작품은 만화 영화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새롭게 하는 것이었다. 단순한 캐릭터 대신, 인간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는 인물 들을 창조했으며, 신체표현이나 자연의 묘사 역시 완벽한 것이었다. 이 작품을 위해 200만 장이 넘는 그림이 사용되었다고 하니, 단일 작업으로는 역사상 가장 방대한 소 묘작업이 행해진 셈이었다.

<백설 공주와 일곱 난장이>가 성공한 후, 또 다른 장편 영화를 연달아 제작하였다.

<피노키오(Pinicchio)>, <판타지아(Fantasia)>, <덤보(Dumbo)>, <밤비(Bambi)>가 그것 이다.

디즈니가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그림의 대상에 애정을 불어넣는 것이었 다. 피카소가 그린 일그러지고 해체된 여자의 모습에서는 경멸과 증오만이 느껴진다.

그러나 디즈니는 동물들의 익살맞은 행동이나 자연의 움직임에 대해 어린아이처럼 경 이에 찬 시선을 보낸다. 그러한 경의와 사랑으로 대상을 살아 움직이게 했다. 가능성은 끝이 없었고, 이것은 새로운 의인화 예술이었다.

디즈니는 상상력이 풍부한 그림, 대본, 공학 기술을 한데 아울러 유성 만화영화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를 발명한 셈이다. 1920년대 말, 미키 마우스는 영화계에서 가장 유명 한 인물이 되었고, 그 유명세는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

38)

3. 현대의 왜곡된 천재상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천재라는 개념을 다음과 같은 내용에 연결시키곤 한다.

- 천재는 창의성을 독점하는 존재.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오는 기상천외한 천재적 작품.

- 이기적이고 교만한 천재, 비정상적이거나, 괴짜이고, 일반인들과는 완벽하게 다른 천재.

- 그러나 멋진 부자인 천재.

- 아놀드 하우저는 ‘낭만주의의 광기’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천재성을 정의하였다.

38) 폴 존슨, 『창조자들』, 이창신 옮김, 황금가지, 2006, pp. 433-444 참고.

(8)

- ‘살바도르 달리는 머리가 아파 쉬던 중 늘어진 시계의 형상이 떠올라 <기억의 지 속>이라는 작품을 탄생시키게 되었는데, 그것도 아주 빠른 시간 안에 그려내었다’라는 식의 묘사도 천재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요소이다.

1) 천재, 창의성, 심리학

- 창의성의 발현으로서의 예술과 광기가 본격적으로 연관 지어진 것은 예술가들이 현인을 대신해서 위인으로 간주되고, 독창성과 상상력이 이성을 대신해서 위인의 특성 으로 간주되기 시작한 17세기였다. 영국 작가인 Robert Burton은 “모든 시인은 미쳤 다”고 선언했다(1621).

- Denis Diderot(1713-1784, 드디 디드로), 계몽사상가, “열정만이 나를 움직이며, 예 술적 천재는 열정과 함께 태어나고 이와 함께 죽는다”. 열정의 극단에서 발견되는 광 기와 예술적 천재성이 연관되어 있다는 낭만주의 이념의 핵심적 사상.

- 낭만주의 사조에서 예술적 천재는 ‘마니아’의 아우라를 지닌 사람. 범인이나 부르 주아와는 차별성을 지닌 사람. “천재는 어딘가 좀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라는 이미지 는 낭만주의 예술가에 의해서 스스로 조장된 것이었다.

*

“천재들의 창조성은 범인이 이해할 수 없는 섬광과 같은 영감에 의한 것이다”라는 천재성의 신화는 지난 50년간의 연구를 통해 깨지게 되었다.

- 피카소의 <게르니카>, 1937, 아른하임의 분석

매우 독창적인 작품이기에, 만약 창의성의 근원이 무의식에 세계에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무의식에서 갑자기 영감이나 통찰로 튀어나온 것이라면 <게르니카>를 완성해 나가는 전 단계들을 잘 살펴보면 그런 통찰이나 영감의 흔적, 즉 그림의 형태가 갑자 기 변화하는 흔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른하임은 피카소가 스케치했던 그 종이들 을 아무리 분석 해봐도 어떤 통찰이나 영감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날짜를 기입한, 50점 에 가까운 스케치). 단지 완성된 그림의 형태가 되기까지 조금씩 개선되거나 변화한 흔 적은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어떤 그림의 형상이나 형태가 결정된 통찰의 흔적은 없었 다. 오히려 피카소가 자신의 비전, 신념, 생각을 그림에 구현하기 위해서 상당히 의식 적인 노력을 기울인 흔적들만 발견될 뿐이었다. 따라서 아른하임은 적어도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은 무의식적인 통찰이나 영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다. 화가나 예술가는 자신의 생각, 신념, 비전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매우 의식적이고 목표지향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이다.

2) 대안적 천재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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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존슨의 <창조자들>에서 인용한 다음의 글을 읽고, 천재성이란 무엇인가, 현대에 요구되는 천재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위대한 예술가가 악마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사악한 면과 창조적인 면이 공존했던 천재들은 얼마든지 있다. 피카소가 그린 왜 곡된 여성의 모습은 그가 여자들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면서 얻는 기쁨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그는 분노하면 여자들을 학대했지만 일부러 그럴 때도 있었다. 한 번은 그의 정부 두 명이 서로 주먹다짐을 하는 동안, 정작 싸움을 붙인 피카소는 그 옆에서 태연하게 그림을 그린 일도 있는데, 이때 그린 그림이 바로 <게르니카>이다.

그는 동료 예술가와 주변사람들을 이용하고 이간질하고, 오로지 자신의 필요와 관심과 야망만을 추구하였다. 피카소의 첫 성공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후원자 막스 자코브가 나치에 체포되어 구원을 요청하자 피카소는 냉소적인 농담을 던졌을 뿐이었고, 결국 자코브는 독방에서 죽게 되었다. 피카소의 작품에 매료되다가도, 그 생애를 알게 되고 나면 치를 떠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극에 달한 이기심과 사악함이 그의 업적과 마구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그의 창조성에는 과거에 대한 경멸이 담겨 있었고, 과거에서 벗 어나려면 무자비해져야 했다. 그는 창작자이자 미적 기업가로서 전지전능했다. 한번 일 을 시작하면 다른 감정은 일체 배제한 채 워낙 열정적으로 몰두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직 자기만을 생각할 뿐 의무감이라고는 전혀 없었고, 그러나 보니 스스로를 고무시 키는 힘이 넘쳤다. 이기주의는 또한 그의 관심을 자연에서 피카소 자신에게로 돌리는 힘이 되었고, 이때의 집중력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1910년경부터는 자연에 아예 관심을 끊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자를 그린 그림을 제외하면, 마음 바깥세계를 그리는 법이 없었다. 자연을 배제하면서 본인에게 집착하는 강도가 더욱 세졌지만 그러면서 되레 마음의 평화를 잃었다. 피카소라는 삼업을 움직인 막강한 기 계장치들, 곧 수많은 여성, 대저택, 금괴, 무제한적 명성, 엄청난 부, 그를 둘러싼 아첨 등은 그 어느 것도 늙어가는 피카소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의 무자비한 성격과 작품 상당수에서 눈에 띄는 야만성은 그의 정신세계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불안감에 서 기인한 듯하며, 이 불안감은 차츰 악화되어 종국에는 절망으로 치달았다. 성적 능력 이 다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아들 클로드에게 “나는 늙고 너는 젊다. 차라리 네가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참담하게 말할 정도였다. 피카소가 있었기에 워홀은 “예술은 무 엇이든 용서가 된다.”라는 그럴듯한 말을 지어낼 수 있었다. 피카소의 말년은 재산을 둘러싼 가족 간의 싸움으로 얼룩졌다. 그가 죽은 뒤로도 격렬한 법정 다툼이 여러 해 지속되었다. 마리테레즈는 스스로 목을 맸고, 그의 아내는 권총으로 자살했으며, 장남 은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다. 정부 중 몇 사람은 궁핍하게 살다 죽었다. 피카소는 공 산주의자이자 무신론자이면서 원시적 미신에 푹 빠졌던 터라 이발사를 따로 두고 머리 를 자를 정도였는데, 다른 사람이 머리카락을 가져가 자신을 ‘조정’하는 마술을 부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한평생 도덕적으로 무질서 속에 살던 그가 떠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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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심한 무질서를 남겨 놓은 꼴이었다. 피카소의 창조적 영향력에만 초점을 맞춘다 면 20세기 미술사에서 그를 빼놓을 수 없겠지만, 도덕과 개인의 행복을 논하자면 방대 한 창조적 업적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속적인 성공도 행복을 가져다주니 못할 수 도 있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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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대안적 천재상을 제시할 수 있겠다. - 선한 의지를 지닌 천재

- 공동체를 지향하는 천재 - 소통하는 천재

39) 폴 존슨, 『창조자들』, 이창신 옮김, 황금가지, 2006, pp. 427, 431-433, 45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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