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접수▸2009년 2월 20일 수정▸2009년 3월 19일 채택▸2009년 4월 2일
▒ 교신저자 황경식,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 56-1 서울대학교 철학과 Tel 02-880-6234 Fax 02-874-0126 E-mail [email protected]
심신의학(Mind-Body Medicine)의 선구로서의 東醫寶鑑
-東醫寶鑑의 의료철학이 지닌 미래적 가치
황경식
서울대 철학과Donguibogam
as a Pioneer of Mind-Body Medicine- Forward-looking Value of Donguibogam as a Documentary Heritage
Gyeongsik Hwang
Department of Philosophy, 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value of Dongeuibogam has been officially acknowledged as a Memory of the World. However, we should not overlook the forward-looking value of Dongeuibogam in addition to its backward-looking value.
For the past 200 years, Western medicine has attained great achievements in therapeutic medicine based on Descartes' mind-body dualism, which focuses on the body as a separate entity from the mind. Recently, Western medicine modified its previously one-sided track into a new orientation towards holistic mind-body medicine in recognition of the two as an organic whole.
At this point in time, it is essential to draw attention to the forward-looking value of Dongeuibogam, which pioneered mind-body medicine based on the medicinal philosophy of Jing Qi Shen more than 400 years ago.
keywords : Mind-Body Medicine, Donguibogam
I. 세계기록유산으로서의 동의보감
우리나라의 의학전통은 모두 동의보감으로 흘러들어 갔다가 다시 동의보감에서 흘러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동의보감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의 서이다. 동의보감은 허준의 대표적 저작이자 필생의 대작 으로서 중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는 물론 멀리 유럽에까 지 영향을 미친 위대한 의서이다. 오늘날 한의학계에서 80 년대 이전의 漢方이 아닌 韓方醫學(Korean Medicine)으
로 정립하고자 했던 학술운동의 기저에는 동의보감이라 는 찬란하고 귀중한 민족 의학적 전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할 수 있다.
흔히들 동의보감의 역사적 의의로서 전통의학의 통합, 실 용의학의 대중화, 향약자료의 집대성, 민족의학의 정립 등 을 열거한다. 이같이 거론되는 항목들은 모두가 그 나름으 로 동의보감이 세계 기록유산으로서 지니는 가치가 충분 함을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고래로 전해온 한의학의 전통이 체계적으로 정돈되지 못한채 각종 의서에 산재되어 있는 것을 체계적으로 통합하여 하나로 정리한 것 은 한의학의 역사에 있어서 대서특필 할만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이점은 비단 국내에 있어서 뿐만이 아니고 그 당시 중국, 일본 등 한의학적 전통을 공유한 국제사회 일반에서 공인된 평가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나아가 동의보감은 단지 이론서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풍부한 임상경험에 바탕한 실용의학을 목표로 했으며 더욱 이 그 실용성이 단지 의사들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손 쉽게 응용할 수 있도록 구성된 대중의학이라는 점에서도 세 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또한 동의보감은 한문의서 에 그치지 않고 일반대중의 언어인 한글언해를 부기하고 있 다는 점에서 실용의학, 대중의학으로서의 성격을 더욱 뚜렷 이 보여주고 있다.
또한 동의보감은 대중적 실용의학의 연장선상에서 처 방에 이용되는 약재를 우리 국토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향약으로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身土不二라는 의료철학 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나아가 이는 조선의학을 하나의 독립된 의학, 즉 민족의학으로 정립하고자 함에 있어서도 높이 평가할만하다. 물론 의료의 기본원리는 보편적인 것일 지라도 그 구체적 응용은 풍토적 자연과 문화적 요인, 환경 적 요인에 바탕한 의학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상 모든 점에 있어서 동의보감은 세계 기록유산으로 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되나 이에 더하여 동의보감
은 단지 한의학의 역사에 있어서 그 독보적인 가치는 물론 이고 오늘날 동서 통합의학을 지향하는 세계의 보편의학적 트렌드에 있어서도 선구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평가되 는데 그것은 바로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으로서 전일적 심신 의학(Holistic Mind-Body Medicine)의 추세라 할 수 있 다. 심신의학은 전통적 서구의학을 그 하위부분으로 편입하 면서 동양의 광범위한 대체의학적 지류들을 선별, 영입함으 로써 동서통합 의학적 미래를 지향하고 있다.
물론 허준의 동의보감이전에도 한의학의 전통은 심신 일원론 내지는 심신상호작용론의 기초위에서 심신의학을 겨냥하고 있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의보감이전에는 이 같은 심신의학이 단지 직관적, 비체계적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허준은 이 같은 한의학적 발상을 당시 도가 철학이나 유가사상과 접목하여 몸과 마음을 통합적으로 접 근함으로써 보다 온전한 의료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체계적 으로 논의하고 있다.
동의보감은 유불선 3교를 통합한 철학적 기반위에 세 워진 의학체계를 의도한 것으로서 精氣神의 삼위일체에 뿌 리를 두고 내장기의 생리적 기능과 그 직접적인 병증을 일 괄하여 내경편에 다루고 있는데 이는 그야말로 현대 심신의 학의 선구를 이루고 있다할 것이다. 동의보감서문에서 밝 히고 있듯 의술의 기본은 정신수양과 섭생에 두고 보약과 치료는 2차적인 의의를 갖는다고 함으로써 이미 400여 년 전에 현대의학의 선구를 이룬 것은 실로 놀라운 사실이 아
닐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 점에 세계기록 문화유산 으로서 동의보감의 미래적 가치를 두고자 하며 우선 현대 심신의학의 기본원리를 요약한 뒤 동의보감과의 유사성 을 살펴보고자 한다.
Ⅱ. 심신의학의 기본원리
심신의학(Mind-Body Medicine)은 조만간 현대 건강 의료에 있어서 혁명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주장까지 제기 되고 있다. 몸과 마음간의 깊은 상호작용(profound interconnection), 몸의 태생적 치유능력(innate healing capabilities), 치유과정에 있어 주체적 자기책임의 역할 (role of self-responsibility) 등을 인정함으로써 심신의학 은 생체피드백(bio feedback), 심상법(imagery), 최면요법 (hypnotherapy), 명상(meditation), 요가(yoga)등 광범위 한 치유방식들을 활용한다.
지난 삼백여년동안 서구 문명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기계론적 세계관에 의거해서 형성되어 왔으며 이로 인해 거 대한 기술적, 물질적 진보를 성취하게끔 되었다. 서양의학 의 발전 또한 이 같은 사조를 반영하며 그것이 산출한 기술 에 의존해있다. 심신의학의 세계적 권위인 죠지타운 의대 고든(James S. Gordon)교수에 따르면 “데까르트의 철학 이 초경험적, 비물체적 정신을 물질적이고 기계적인 신체활 동으로부터 분리한 이래 과학은 줄곧 신체를 그 구성부분들 로 정확하게 환원하는 일에 몰두해왔다.” 이어서 그는 말하 기를 “이 같은 접근은 엄청난 성과를 가져왔는데 특히 감염 질환의 치료, 인슐린 등 절실히 필요한 물질의 합성, 생명을 구조하는 지극히 복잡한 외과적 절차의 창출 등을 성취하게 되었다”고 했다.1)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같은 생명 의료적 모형의 성취는 오랫동안 인간의 시야를 좁게 만드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
사람들은 모든 질병을 일차적으로 기계적인 신체부위의 역 기능이나 오작동으로 간주하고 의사는 그러한 부품을 수리 하는 책임을 지는 기술자로 보게끔 되었다. 첨단의료기술의 발달을 대가로 사람들은 건강과 질병에 대해서 심리적, 사 회적, 경제적, 환경적 영향력의 중대성과 정신작용이 육체 에 미치게 될 엄청난 힘을 시야에서 놓치게 된 것이다.
1) The Burton Goldberg Group, Alternative Medicine, Washington:Future Medicine Publishing Inc., 1994:346
1. 개략심신의 상호관계(Mind-Body Connection)
최근 의료의 한가지 경향은 몸따로 마음따로가 아니라 몸 과 마음을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가운데 건강과 질병 그리고 치료와 예방을 생각한다는 점이다. 원래 서양의학은 근세 초기의 데까르뜨에서 유래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배적 인 사조를 이룬 심신 2원론(mind-body dualism)에 바탕 을 두고 있다. 그래서 몸따로 마음따로 2원적으로 치료해온 것이 전통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이같은 이 원론이 강한 도전에 직면하면서 그에 따라 의료의 패러다임 또한 변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데까르뜨의 심신이원론에 대한 대안적 입장들로서는 심 신동일론(Identity Theory), 심신양면론(Double Aspects Theory)등이 있기는 하나 대체로 심보다 신에 우위를 둔다 는 점에서 유물론(Physicalism)적 경향이 우세를 점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근래에 이르러 이같은 신체우위론을 다소 완화함으로써 정신의 부분적 자립성을 주장하는 심신 수반론(Supervenience Theory)이 제시되어 주목을 끌고 있으며 이는 특히 한국인이면서 미국철학자인 브라운 대학 김재권 교수에의해 주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2)
김교수의 수반론의 특징은 신체 우위론의 경향을 수용하 면서 정신의 독립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시도로서 평가된다.
수반론에 따르면 심신의 관계에 있어서 신체적 사건이 선행 하고 정신적 사건은 그에 의존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 러나 일단 생겨난 정신적 사건은 다시 신체적 사건으로 온 전히 환원될 수 없고 부분적 자립성(partial autonomy)을 갖게 되며 대체로 신체적 사건과 정신적 사건은 공변 (covariation)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심신은 상호작용적 맥락속에 존재하며 대체로 마음은 몸을 타고 간다, 즉 수반 (隨伴, supervene)한다는게 그의 이론이다.
원래 동양의학 특히 한의학에서는 심신의 구분이 불명하 고 심신일원론적인 경향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점은 우리말 표현에 있어서도 많은 정신적 현상들이 장부와 관련 되어 표현되고 있는 점과 유관하다. 애를 태울 때 애간장이 녹는다고 하고 허장성세하는 자는 간뎅이 부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 못마땅하거나 아니꼬울때 비위가 상한다. 겁에 질릴 경우 간이 콩알만해진다. 허영에 들뜰 때 허파에 바람 들다 등등으로 표현된다.
2) 김재권 교수의 심신수반론은 심신이론에 대한 현대 물리주의적 트렌드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정신의 자율성을 옹호하고자 하 는 시도로서 높이 평가되며 그의 이론은 심리철학에서 Kim's Theory로서 인용되고 있다.
이점은 우리의 옛글자에 대한 해석과 관련해서도 매우 시 사적인 함축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 이라는 글자를 통 해 몸과 맘 두가지 모두를 나타내고자 했다. 몸이 곧 맘이고 맘이 곧 몸이라는 논리이며 몸과 맘은 둘이면서 하나요, 하 나이면서 둘이라는 뜻에서 바로 심신일체론 혹은 심신의 긴 밀한 상호작용론을 함축한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데까르뜨 이래의 심신이원론적 발상 을 청산하고 심신 상호작용론내지 심신일원론적 관점에서 우리의 건강개념을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서 이 문 제는 철학적으로 볼 때 건강개념이 삶의 질, 웰빙 등의 개념 을 넘어 심신통합적인 관점에서 훌륭한 삶에 대한 철학적 성찰에까지 맞닿아 있다고 생각된다. 결국 철학자 소크라테 스가 영혼과 마음의 의사였다면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신체 와 몸의 철학자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의학에 따르면 건강(health)이란 단지 ‘질병의 不在’
가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이다. 신체 뿐만 아니라 감정과 정신, 가족, 직업, 수입, 식생활, 교육, 환경, 개인적 성취와 사회적 안전등 많은 요인이 건강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삶의 질(quality of life)에 영향을 주는 모든 요소가 건강에 영향을 주며 질 높은 삶이 곧 건강한 삶이라고도 할 수 있 다.3)
질병의 치료를 우선적 목표로 삼아온 서양의학은 근대에 이르러 질병을 물리적, 화학적 이상상태로 파악하게 되었으 며 따라서 질병은 대부분 측정 가능한 실체로 간주하고 있 다. 일반적으로 질병을 치료, 예방하는 것은 곧 건강을 회복, 유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의료의 요체는 질병을 예방하 고 치료할 수 있는 충분히 효과적인 방법이 있느냐 하는 것 이며 이런 점에서 현재 서양의학은 질병의 치료와 예방을 통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지식과 방법을 상당 수준 확보 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동서의학을 상대적으로 비교하면 대체로 동양의학에서 는 주목하는 대상이 건강이다. 건강이 무엇이며 어떻게 건 강을 유지하고 상실하며 또한 어떻게 하면 그것을 회복하는 가에 관심을 갖는다. 또한 동양의학은 사람의 상태를 ‘건강’
과 ‘불건강’으로 나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섭생법 이 발달하였으며 불건강에는 여러 가지 증상이 있어 이를 다스림으로써 건강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 동양의학의 기본 이다. 그래서 동양의학에서는 대부분의 불건강 상태를 기술 할 때는 증(症, syndrome)으로 나타내고 구체적인 병명은 별로 없는 편이다.4)
3) 전세일, 동서의학의 만남과 삶의 질 , 제21회 동서문명과 삶의 질 심포지엄, 아산복지재단, 17-36.
반면 서양의학에서는 질병의 개념을 강조하는 쪽이다. 병 이란 무엇이며 병이 어떻게 생겨 진행하고 어떻게 하면 없 어지나 하는 식의 병 중심의 의학이라 할 수 있다. 서양의학 에서는 사람의 상태를 병적 상태와 무병의 상태로 나눈다.
따라서 병을 찾아내는 진단방법이 상당히 발달하였고 또 병 을 치료하는 방법도 수없이 개발되었으며 병명이 많고 다양 하게 세분되어 있다.
2. 심신의학의 원리와 치료과정(Healing Process)
새로운 심신의학은 전통적인 심리학과 물리학의 경계를 넘어 에너지를 우주의 기본유형으로 간주하며 이런 점에서 인간존재를 상호 연관된 우주적 에너지 장의 일부로 보는 동양철학과의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아유르베다, 기공, 요 가등 이들 아시아적 전통은 수세기동안 의식이 심리적, 신 체적 건강을 다스리는데 있어 본질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믿 어오고 있다. 심신의학은 다음과 같은 기본원리들을 망라하 고 있는데 이는 현대서양 의학에 의해 대체로 무시되거나 인정받지 못한 것이라 생각된다.5)
① 각 개인의 고유성(Individual Uniqueness)
② 만성적 스트레스(Chronic Stress)
③ 치유를 위한 자기책임(Self-Responsibility)
④ 신체의 내재적 치유능력(Innate Healing Capabilities)
⑤ 환자-의사의 상호관계(Client-Provider Relationship)
⑥ 다원요인의 체계적 접근(System Approach)
⑦ 에너지장의 관점(Energy Field Perspective)
⑧ 질병은 적이 아닌 메시지(Message, not Enemy)
심신의학은 대체로 심신의 이완을 증진하고 스트레스를 보다 잘 대처할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시작된다. 이와 관련 된 기술들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는데 명상, 생체피드백, 최 면요법, 심상요법, 신경언어프로그램, 기공, 마사지, 체조, 요가, 호흡요법, 점진적 이완기술 등이 있다. 한방탕약, 침구 등도 이완을 증진하는데 이용될 수 있으며, 식이, 운동, 목 욕 등 생활스타일의 변화 또한 건강을 위한 전일적 접근에 있어서 요구된다.6)
① 건강은 정서적 균형요구(Emotional Balance)
4) 전세일, 위의 논문 참조
5) The Burton Goldberg Group, 上揭書, p.350 참조.
6) The Burton Goldberg Group, 上揭書, p.354 참조.
② 공유와 교류, 상호지지(Sharing and Support)
③ 치유의 심상으로 유도(Imagery in Healing)
④ 이완을 위한 호흡조절(Breathing for Relaxation)
Ⅲ. 동의보감의 精氣神과 심신의학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동의보감은 한의학이라는 전통 의학적 측면과 유불선이라는 전통사상적 측면을 통합함으 로써 그야말로 심신전일적 진단과 치유를 겨냥하는 의료체 계라 할 수 있다. 보다 좁혀서 말하면 동의보감은 유가의 관점에서 도교와 한의학을 아우르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유가적 관점이란 도교에 있어서 종교적인 관점 을 배제한 양생법과 한의학적 체계를 접목, 이를 실용적으 로 이용하려는 사고로서 일종의 유가적 계몽주의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심신이론에 있어 도교와 유가는 심신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보려는 심신의학적 지향을 갖 는 철학사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점은 근대이후 서양의학이 바탕을 두고 있는 데까르뜨 이래의 심신이원론을 비판하고 심신일원론 내지는 심신상 호작용론을 철학적 기반으로 하는 최근 심신의학적 경향과 허준의 동의보감에 의해 이론적 체계를 얻게된 한의학이 몸과 마음에 대한 통일한 철학적 배경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동의보감에 있어서 精氣神 사상은 심신이 불가 분의 영향을 주고 받는 상호작용적 일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현대의 심신의학은 전통적인 심리학과 물리학의 경계를 넘어 에너지(氣)를 우주의 기본유형으로 간주하며 이런 점에서 인간존재를 상호연관된 우주적 에너지 장의 일 부로 보는 동의보감의 철학적 기반과의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7)
심신의학의 원리들 중 하나인 각 개인의 고유성(indi- vidual uniqueness)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도 동의보감
의 개인관과 일맥상통한다. 이 두 의료체계는 어떤 두사람 도 꼭 같을 수는 없는 까닭에 비록 그들이 동일한 질병을 갖는다 해도 회복의 길이 서로 다를 수 있다고 본다. 동일한 질병도 서로 다른 사람의 경우에 있어서는 상이한 요인들의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 같은 원리는 전통적인 한의학이나 아유르베다 의
7) 조남호, 동의보감의 의의-도교와 유가의 측면을 중심으로 참조
학에서는 인정된 지 오래지만 서양의학에서는 비교적 새로 운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동일한 질환도 사람에 따라 감염에 의한 것일 수도, 심리적 스트레스나 영양부족, 생리화학적 불균형에 의한 것일 수가 있는 것이다. 생화학자 윌리암스(Roger Williams)박사는 이런 현상을 ‘생화학적 개체성(biochemical individuality)’이라 부르며 각 개인들 이 유전적, 환경적 요인에 의해 유니크 한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동의보감이 이같이 질병의 개별성에 주목하는 것은 후일 이제마의 사상체질론 내지 체질의학론(constitution medicine)의 선구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8) 심신의학에 있어서 기본적인 전제중 하나는 만성적인 스 트레스나 균형의 결여가 병을 유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한 긴장의 이완이나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적극적 방법과 균 형의 회복이 건강을 결과한다고 한다. 스트레스 그 자체보 다 더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각 개인의 자신감 과 정신력등 전반적인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이점에 있어서
동의보감 또한 불교의 수행이나 유교의 수행 혹은 도가의 양생법을 통해 심신의 기능을 사전에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점에서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 같은 심신의학적 경향은 깊은 예방의학(preventive medicine)적 함축 또한 지니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영국의 심장의학자 닉슨(Peter Nixon)의 설명에 따르면 증대되는 스트레스와 흥분은 신체기능에 다양한 변화를 유 발함으로써 드디어는 면역기능, 단백질합성, 심장기능 등에 장애를 일으켜 드디어는 심장질환, 암, 우울증 등을 결과하 게 된다는 것이다. 심신의학에서는 치유를 위한 스트레스 완화법으로서 각종 이완요법을 권장하고 있다. 심상지도, 생체 피드백, 특히 명상수련은 심장박동, 혈압완화 등을 도 움으로써 질병발생율을 감소시키고 건강을 증진하게 된다 는 것이다.9)
또한 심신의학은 환자가 치료의 모든 단계에 있어 의료적 개입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자이기 보다는 능동적 파트너 로서 환자의 적극적인 자기책임(self-responsibility)를 강 조한다. 환자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는 질병에 수반하 는 두려움과 우울증을 감소시키고 무력감과 절망감으로부 터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증대시키게 된다.
이 같은 과정으로 인해 실제로 면역력과 치유력을 증대시키
8) Roger John Williams, Nutrition Against Disease:
Environmental Prevention, New York:Bantam Books, 1972 참조.
9) David Seedhouse, Alan Cribb, Changing Ideas in Health Care, New York:John Wiley & Sons, 1990 참 조.
는 각종 실험보고가 있다.
이점과 상관된 것으로서 심신의학은 신체의 타고난 치유 력(innate healing capabilities)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자 생력을 가정하는 동양의학의 전통과 유사성을 보인다. 이점 은 “의사는 치료하고 자연은 치유한다”는 격언 속에 담긴 동양철학적 사유를 잘 말해주고 있다. 신체는 건강과 균형 을 향해 움직이는 타고난 생물학적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신체가 자율적으로 상처를 아물게 한다는 사실이나 주 지되고 있는 바 플라스보효과(placebo effect)에 의해서도 잘 설명되고 있다. 또한 플라스보효과는 환자자신의 치유에 대한 긍정적 태도에 의해서도 크게 달라지는 것으로 보고되 고 있다.10)
물론 이상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현대 심신의학은 한의학 이나 아유르베다 의학 등 동양의학 전반과의 상당한 가족유 사성(family resemblance)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심신의학적 체계를 의학이론상 가장 주제적 으로 확립한 것은 허준의 동의보감의 기여라 할만하다.
이를 위해 그는 80~90여 편에 달하는 전통한의서를 하나 의 체계로 통합하는 것은 물론 유․불․도 삼교에 관류하는 심신의학적 맥락과 한의학을 접목시킴으로써 그야말로 이 미 400여 년전에 거대한 통합의학적 체계를 확립했다는 점 은 세계 기록문화 유산으로서 충분히 가치 있는 문건이며 더욱이 그것이 단지 이미 죽어있는 과거의 유산으로서가 아 니라 오늘날에도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는(working) 한의 학 지침서로서 그리고 서구에서도 다시 미래의학으로서 각 광받고 있는 심신의학의 선구라는 점이 높이 평가되고도 남 을 만큼 가치 있는 점이라 사료된다.
Ⅳ.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세계적인 기록유산
1. 동의보감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기 록유산이라 할만하다. 우선 동의보감은 그 당시까지 중국 전래의 한의학에만 의존하던 한국이 의료종속적인 위치에 서 벗어나서 독자적인 의료체계를 정립한 의서이다. 한국 한의학사는 일단 동의보감으로 종합된 후 그로부터 다시 분기되는 바 동의보감은 그야말로 한국 한의학의 저수지 에 비견할만하다.
나아가 동의보감은 身土不二의 정신에 입각, 한국에서 자생하고 널리 구할 수 있는 향약자료에 의거, 처방을 제시
10) Achterberg, J., Imagery in Healing; Shamanism and Modern Medicine, Boston MA:Shambala, 1985 참조.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향약의학, 민족의학의 성격을 지닌다 는 점에서 지극히 한국적인 한의학의 효시라 할 수 있다.
또한 동의보감은 당시 양대전란으로 피폐한 민생과 열악 한 의료를 구원하고자 일반민중이 쉽게 이해하고 실제로 이 용할 수 있게 서민의 복지를 염두에 둔 민중의학, 대중의학 이라는 점에서도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가 어렵다.
2. 그러나 동의보감은 단지 특정한 시대나 장소에 국한 되는 의의와 가치를 지닌 의서가 아니다. 당시 한중일을 위 시한 동양 의료권은 한의학이 주도하고 있었다. 이러한 한 의학의 역사에 있어 동의보감의 기여는 그야말로 한중일 삼국이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인정하는 그야말로 국제적 으로 공인된 권위를 지닌 의학고전이라 할 수 있다.
한의학의 역사는 학술유파의 논쟁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온 역사라 할 수 있다. 그 당시 학술유파를 대표하는 집단은 金元四大家로 대변되는데 동의보감은 당시까지 존재했 던 이들 여러 학술유파의 논쟁들을 하나의 체계로 엮어냈다 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의학자들은 나름의 임상경험과 황제내경의 기초이론을 결합하여 각기 독창적인 의학이론 과 치료방법을 발전시켰으나 지리적 특색이나 개인적 임상 에 따라 각양각색의 의학이론이 백가쟁명으로 전개된 것이 금원시대의 난맥상이었다.
허준의 동의보감은 이같은 다양한 의학이론과 처방전 을 통합하고 체계화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동의보감은 국내에서도 다양한 판본이 나와 있고 특히 중 국에서는 수십종의 판본이 그리고 일본에서도 다수의 판본 과 더불어 주석서, 연구서, 번역서들이 나온 것을 보면 가히 한 시대를 획하는 의료고전으로서 공인되었다고 할만하다.
또한 동의보감은 단지 박물관에 보관될 과거의 유적으 로서만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니다. 전래의 의학과 유불선 3교 의 철학을 집대성하여 정기신 삼위일체론을 기본개념으로 체계화한 동의보감의 의학이론은 그야말로 현대의 대체 의학에서 각광받고 있는 심신의학(Mind-Body Medicine) 의 선구로서 오늘날에도 유효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료의 패 러다임으로서도 유망한, 그야말로 살아있는 의료체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심신이원론적 존재가 아니라 마음과 몸이 상호작 용하는 유기적 전일체인 까닭에 진단에 있어서나 처방에 있 어서 심신의학적인 접근이 필수적이라는게 400여 년전 동 의보감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요 그것이 서구의 최근 의료경향과도 합치한다는 점은 놀랄말한 역사적 사례가 아 닐 수 없는 것이다.
3. 또한 동의보감이 제시하는 체질론적 변증이론 역시
오늘날의 심신의학적 경향과 일맥 상통하는 바다. 사람을 획일적인 잣대가 아니라 개체의 고유성에 따라 차별적으로 다루는 것을 체질론이라 부른다. 서양의학에서는 고대로부 터 히포크라테스, 갈렌 등에서 전형적으로 제시되며 조선말 기 이제마가 사상체질의학이라는 고유한 체질론을 주장한 데 이르기까지 중국의학에서는 미미한 잔재만이 남아있는 체질의학이 동의보감의 또 한가지 자랑이며 탁월한 독창 성이라 할만하다. 허준은 사람을 구별하여 치료해야할 이유 를 몇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상중하기론, 비수론, 흑 백론, 장단론, 남녀노소론, 용겁론, 직업론 등이 그러하다.
4. 물론 동의보감이라는 의서와 그 저자인 허준을 따로 떼어놓고 논할 순 없다. 그러나 동의보감이 기록유산으로 서 대단한 가치가 있음은 물론이지만 허준이라는 의료인 또 한 대서특필 할 만한 존재라 생각된다. 허준은 당시 양대전 란을 겪고서 피폐한 민생을 수습하기 위해 선조로부터 명을 받고 민생을 돕기 위해 동의보감의 집필 프로젝트에 착수 하긴 했으나 그 집필과정이나 내용에 있어 의사로서, 또한 의료인으로서 허준이 보인 전범은 높이 평가되어 마땅하다.
그래서 이미 한국에서는 동의보감 혹은 허준을 주제로 한 역사 드라마를 수차례 제작, 방영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 도 양주시에는 MBC 테마파크 공원에 대장금 세트장과 더 불어 허준 세트장이 나란히 보존되어 있으며 중국, 일본을 위시해서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연일 답지하고 있음은 가 히 허준의 역사적 가치를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상을 다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동의보감의 기록유산 적 가치는
① 전통한의학의 통합을 통한 이론적 체계화
② 향약자료의 집대성에 의한 민중의학․민족의학의 정립
③ 체계적․실용적 의료 이론서로 국제적 공인(한중일의 판본, 번역, 주석서 출간)
④ 심․신 전일론에 의거한 심신의학의 선구
⑤ 살신성인하는 의성으로 상징되는 허준 등
이상으로서 동의보감이 갖는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 장 세계적인 기록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사 료된다.
Ⅴ.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