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일_2021.04.10 심사기간_2021.05.01-14 게재확정일_2021.06.01 DOI https://doi.org/10.47294/KSBDA.22.3.5
디지털 매체 예술에서 스크린 활용의 미학적 고찰
An Aesthetic Study of the Screen Utilization in Digital Media Arts
권아람, 건국대학교 미디어콘텐츠전공
Kwon, Ahram_Major in Media Contents, Konkuk University
차례 1. 서론
2. 포스트-미디어 시대 매체 개념의 변화 2.1. 디지털 이미지의 민주화
2.2. 매체 형식에서 데이터 형식으로
3. 해부적 관점에서의 스크린 미학 3.1. 스크린 내부의 표현 양상 3.2. 스크린 외부의 표현 양상 4. 결론
References
디지털 매체 예술에서 스크린 활용의 미학적 고찰
An Aesthetic Study of the Screen Utilization in Digital Media Arts
권아람, 건국대학교 미디어콘텐츠전공
Kwon, Ahram_Major in Media Contents, Konkuk University
요약
중심어 매체미학 스크린 미학 영상예술 비디오 설치 확장 영화
현대의 이미지는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다수의 사용자에 의해 무한하게 재생산되며 가상 생태계에 생 존한다. 기존의 디지털 예술이 생산-전달-수용의 관점에서 해석되었다면 네트워크 공간을 지지체로 삼는 영상 데이터와 이의 전파는 순환 관계로 이루어지며 보다 복잡한 연결망으로 얽혀 있다. 이 연구 는 이렇게 다변화하는 영상예술의 흐름 속에서 전통적인 매체 특정성으로 디지털 예술을 분석하는 데 에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새로운 준거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에 본 연구의 목적은 스크린을 기준 으로 기술 발전과 함께 나타나는 영상예술의 변화들을 해부적 관점에서 살펴보며 미학적으로 고찰하 는 것이다. 연구방법은 변화한 매체 개념을 짚어보며 가상과 현실을 교차 매개하는 스크린을 분석 대 상으로 설정하고 동시대 영상작가들의 작품을 근거로 스크린 내부와 외부의 표현 양상들을 해부적 관 점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이에 본문에서는 네트워크의 다중 사용자로 인해 디지털 이미지가 민주화됨 에 따라 포스트-미디어 시대 매체의 개념이 물리적 형식에서 데이터 형식으로 변화해가고 있음을 살 펴보았다. 스크린 내부에서 이미지의 생산 방식은 실제 촬영된 영상에서 발견된 이미지를 재활용하는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법으로 나타나며, 스크린 외부에서는 물리적 공간 내 프로젝션을 건축적으로 배치하고 영상 서사를 실험했던 비디오 설치의 흔적들이 다시 무형의 네트워크 공간으로 플랫폼의 전환을 시도하는 양상이 나타남을 살펴볼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매체 특 정성의 종언 아래 스크린은 네트워크를 통한 이미지의 분배, 그리고 물리적 틀로서 건축적 양식에 안 팎으로 관계하고 있음을 고찰했다. 따라서 스크린이 사물로서 가지는 매체 형식과 그 배경 현상에 근 거해 동시대 영상예술의 지형도를 파악하고 미적 탐구가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하고자 했다.
ABSTRACT
Keywords media aesthetic screen aesthetic video art video installation expended cinema
The contemporary image is reproduced infinitely by multiple users based on the network and survives in the virtual ecosystem. If the existing digital art is interpreted from the perspective of production-delivery-acceptance, the image data based on the network space are formed in a circular relationship and are entangled in a more complex network. In this text, I recognize that there is a limit to analyzing Digital Media Art with the specificity of traditional media in this diversified flow of Contemporary Art, and insist on the need for a new aesthetic. The research method is to look at the changed media concept, set the screen that cross-mediates virtual and reality as the analysis target, and analyze the expression aspects inside and outside the screen from an anatomical point of view based on the works of contemporary video artists. Accordingly, in this article, as digital images are democratized due to multiple users of the network, the concept of media in the Post-Medium era is changing from a physical format to a data format.
Inside the screen, the production method of the image appears in a variety of techniques, from actual filmed footage to Found Footage that recycles found images. In addition, it was possible to observe that the traces of video installations where projections in the physical space were architecturally arranged and video narratives were experimented with, outside the screen, were again attempting to transform the platform into an intangible network space. In conclusion, under the end of media specificity, it was considered that the screen is related to the distribution of images through the network and to the architectural style as a physical frame inside and out.
Therefore, based on the medium format of the screen as an object and its background phenomenon, it was attempted to prove that it is possible to grasp the topographical map of Digital Media Art in contemporary and to explore its new aesthetics.
이 논문은 2019년도 건국대학교 KU학술연구비 지원에 의한 논문임 This paper was supported by Konkuk University in 2019
1. 서론
이미지를 다루는 영상매체 기반의 비디오와 영화의 형식적 흐름은 각기 고유한 매체 특성을 기반으로 상생해왔다. 영화 산업을 벗어나 촬영, 편집, 상영의 변주를 통해 영화의 전통적 문법 을 거부했던 확장영화와 실험영화 그리고 작가의 주제 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영상 기술의 인지 적 기능을 탐구한 비디오 아트가 그 예이다. 두 영역은 시간을 다루는 기술이라는 공통된 프로 덕션 과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각기 다른 주제 의식으로 출발해 미술관과 극장이라는 서로 다른 공간에 종착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포스트-미디어 시대로 접어들며 두 영역이 가지는 매체 특성은 기존의 형식을 탈피하며 점차 닮아가는 현상을 보인다. 포스트-미디어 시대란,
“텔레비전으로 상징되는 대중매체가 뿜어내는 물신의 조장과 매체 소비자의 동질화 경향을 벗 어나 새로운 분산형 네트워크이자 자율의 테크놀로지인 인터넷을 활용하는 능동적 주체의 등 장을 예견한 시점을 지칭”한다(Lee, K. S., 2017, p.23). 이처럼 각종 디지털 영상 제작 기술이 다양해지고 스크리닝 플랫폼이 물리적 환경에서 네트워크로 옮겨감에 따라 창작 개념과 문법, 영역의 경계 또한 점차 유연해졌다. 1970년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가 주장했던 물리적 실체로서의 매체가 개별 예술의 변별성이자 고유성이 되는 모더니즘적 매체 특정성의 테제는 오늘날 디지털로 재생산된 이미지가 모니터와 극장 스크린, 휴대폰을 오가며 재생되는 현상에 의해 무력화된다. 이는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 1947~)의 매체 특정성 종언과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E Krauss, 1941~)의 ‘포스트-매 체(post-medium)’ 담론에 의해서도 뒷받침되며(Kim, J., 2016), 이 글은 기술 매체가 발전함 에 따라 예술의 개념 또한 변화하는 현상에서 그 배경을 찾고 있다.
본 논문은 현대 매체 기술의 변화 아래 영화와 비디오아트가 복합적 유사성을 보이는 데에서 영상 예술을 새롭게 정의해야 할 준거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스크린을 해부적 구조로 분석해 미적 대상으로 고찰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앞서 언급한 두 이론가의 매체에 관한 해석은 오늘날 변화한 쌍방향 네트워킹 시스템과 동시 분산적인 영상 플랫폼이 개별 예술의 형식을 역으로 결정짓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과거 스크린이란 영상 정보를 고정적으 로 투영하는 막 또는 텔레비전, 컴퓨터 화면을 지칭하거나 더 나아가 영화 그 자체를 의미했다.
그러나 현대의 스크린은 과거에 고정된 매체가 담고 있던 정보를 전송하고 파생시키는 정거장 이자 교차점이 되었다. 영상 정보를 표출하는 방식에서 정보를 빠르게 이동시키고 전송하는 상호작용 인터페이스로 매체의 중요성이 옮겨가면서, 물리적 스크린의 존재는 미술관 공간 내 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형식적 방법론으로 유효하게 되었다. 더불어 시간과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 영상 데이터의 복제-재생-파생의 과정은 예술생산자와 관람자 모두의 역할을 잠재적 창작자로 재-개념화한다. 따라서 동시대 예술 현장의 내부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나타난 담론의 변화와 외부의 기술 환경에서 기인한 매체 형식의 변화는 영화와 미술의 유사성을 낳으 며 영상 예술의 중요한 변환점을 가져오게 된다.
본 논문은 이러한 변화의 현상들 가운데 공통적인 재료로 발견되는 사물로서의 스크린과 스크 린 안팎의 현상적 특징들을 중심으로 논지를 서술한다. 우선 프레임 내부에 존재하는 이미지의 동시대적 개념과 창작 방식을 미디어 환경과 함께 살펴본다. 팬데믹(pandemic) 시대와 함께 등장한 인터넷 스트리밍 ‘오버 더 톱(Over The Top)’ 서비스는 영상의 유통방식과 개념을 데이터 기반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에 근거해 웹 공간을 하나의 생태계로 바라보는 인식이 보편 화되고 있다. 더불어 디스플레이 장치가 다양해짐에 따라 이미지를 수용하는 지각의 다변화는 프레임 밖, 즉 스크린 외부적 차원에서 기인한다. 이와 같이 스크린은 자신의 내 · 외부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현상들을 흡수하고 연결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기존의 전통적인 매체 개념이 현재에 적용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영상 예술의 발전 양상을 매체 형식에 근거해 미학적 관점으로 탐구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에 예술의 가치를 새로운 기준으로 발견할 수 있다 는 데에서 그 의의를 찾고자 한다.
2. 포스트-미디어 시대 매체 개념의 변화 2.1. 디지털 이미지의 민주화
역사적으로 이미지는 평면 위에 사상(事象)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서, 단면의 드로잉 과 회화, 사진, 더불어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교차해 움직이도록 보이게 하는 무빙 이미지를 지칭했다. 그러나 포스트-미디어 시대로의 이행과 함께 이미지는 무형의 데이터로 네트워크 상에 존재하며 사용자에 의해 파생 이미지로 증식하는 잠재력을 지니게 된다. 이미지 생산자가 한정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이미지 편집 기술과 소프트웨어, 전송 플랫폼이 다양해지며 누구나 손 안에서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용자에게 도달한 1차 이미지가 2차 이미지로 재-가공되어 다른 수용자에게 전달될 수 있음을 고려한다면 경우의 수만큼 무한한 이미지가 파생될 수 있다. 창작의 구조가 생산-수용이라는 수직 구조에서 경계가 없는 순환 구조로 변했기 때문이다. 곧, 하나의 이미지가 유사 이미지로 가공되거나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 로 재탄생 될 수 있다는 점은 이미지 자원이 풍요해지며 그만큼 수용과 접근의 길이 열리게 됨을 의미한다.
더불어, 현실에 기반한 초기 사진과 영화처럼 원본과 복제의 위계 관계는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 제작 기술에 의해 가상이 곧 원본이 되는 관계로 전복된다. 기록 매체인 사진과 영화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 생산 방식과 달리, 소프트웨어 프레임 내에서 순수 형상을 만들어가는 디지털 이미 지 생산 방식은 가상공간을 모태로 삼는다. 현실과 다른 새로운 세계가 구현된다는 뜻이다.
기억 속 잃어버린 인물을 되살린 AR(Augmented Reality) 그리고 3D 애니메이션 속 가상 캐릭 터들은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며, 이미지가 현실을 보조하는 매체가 아니라 또 다른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즉, 네트워크는 하나의 공간이, 데이터는 포맷 유형에 따라 개별 종족이 되어 비물질은 비로소 인지 가능한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한편, 이미지는 자기 복제 및 변형, 파생이 가능한 생물학적 특징을 가질 뿐 아니라 정치적 성향 을 지닌다. 미디어 아티스트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1966~)은 그의 필름 <November>
(2004)에서 쿠르디스탄 테러리스트로 간주되어 터키 경찰에 의해 사살되고 흔적 없이 사라진 친구의 궤적을 쫓는다. 그 과정에서 친구의 사진이 쿠루드족(Kurd)에 의해 저항의 아이콘으로 복제되고 이용되는 장면을 마주하고 이미지의 존재를 탐구하기에 이른다. 하나의 이미지가 가 진 상징성이 특정 집단의 이념과 목적에 의해 가공되고 전파되는 영향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후 그녀는 미디어와 이미지가 갖는 정치적인 힘과 개인의 무력함, 예술과 정치, 경제가 결속 하는 관계를 고찰한다. 미술사학자 데이비드 조슬릿(David Joselit, 1990~)은 네트워크 시대 가 텔레비전과 함께 이미지의 존재 방식을 바꾸어 놓은 점에 주목하며 디지털 이미지의 순환을 생태학적 관점에서 해석한다. 이어서, 이미지가 어디에나 침투하는 바이러스와 같으며 누구나 취할 수 있는 인공보철물적(prosthetic) 아바타(avatar)1)라고 표현한다(Joselit, D., 2016, p.11). 이러한 은유는 이미지가 기존 사회 시스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능동적 주체가 될 수 있으며 그 자체로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전통적 예술이 하나의 독립적인 일품 (masterpiece)으로서 지위를 보존했다면 디지털 시대인 현재, 원본의 지위에 물음을 제기하는 복제의 독립성만이 예술 담론을 지속 가능하게 하며 이미지의 민주화가 미술 형식의 자유화를 여는 중요한 배경이 되는 것이다.
<Figure 1> Hito Steyerl, November, 2004 (www.estherschipper.com)
1) 조슬릿은 이를 ‘이미지-사건(image-event)’으로 지칭하며 이미지를 생태계로 바라보는 ‘생태형식주의(eco-formalism)’ 방법론을 제시함으로써 20세기 미술사를 새롭게 조망한다.
2.2. 매체 형식에서 데이터 형식으로
디지털 환경을 모태로 삼는 데이터 기반의 예술은 ‘아우라 없는 아우라(Aura ohne Aura)’
(Shim, H., 2017)를 창출한다. 이는 원본이 없는 디지털 예술 작품에서 물질적 단서 대신 장소, 흔적, 사건 등을 지각할 때 발생하는 아우라적 경험 방식을 의미한다(Shim, H., 2017, p.279~288). 1936년 기술복제 시대에 벤야민이 주장한 ‘아우라의 붕괴’는 순수 디지털 창작이 가능한 동시대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앞서 언급한 복제의 원리로 생산되는 2차 이미지 가공과 순수 디지털 작품에 적합한 동시대 이론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일례로, 미국 AI 스타트 업 ‘브러드(Brud)’가 2016년 제작한 가상 캐릭터 ‘릴 미켈라(Lil Miquela)’는 음반을 발매하고 유명 브랜드와 협업하는 등 SNS 상에서 많은 팔로워를 확보하며 대중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플루언서(influencer)로 자리 잡았다. 2000년대 초반까지 가상의 캐릭터는 아바타의 개념으 로 사이버 공간에서 활동하기 위한 대리물이나 분신으로 사용되었으나 렌더링 된 가상 인물은 어느새 현실을 능가하게 되었다. 이는 디지털 환경이 크게 체화되고 콘텐츠와의 심리적 교감도 가 높아진 것을 뜻한다. 그래픽 이미지 기술력의 진보, 상호작용 서비스의 증대, 네트워크 접속 의 용이함으로 가능하게 된 현상이다. 반면, 부작용으로 나타난 인터넷 중독, 리셋 증후군 (Reset Syndrome)2)과 같은 현상 또한 디지털 환경이 실제 환경만큼 인간에게 의식화되었음 을 증명한다. 곧, 실제와 가상의 세계를 중첩적으로 인식하는 현세대는 비물질을 물질과 같이 지각하고 있음을 뜻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기존의 창작 원리와 형식에 대한 거부로 나타난 것처럼 포스트-미디어 시 대의 예술 작품은 거대 통신망을 유영하는 비물질로 존재한다.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이미지와 영상, 하이퍼텍스트로 구성된 페이지, 프로그램 언어는 데이터 정보 단위로만 존재하기 때문이 다. 여기서 기존의 미술에서 장르를 구분하는 기준이 재료적 특수성이었다면 디지털 정보의 특수성은 파일의 양식인 확장자(filename extension)로 해석할 수 있다. 곧, 형식은 디지털 포맷으로, 크기는 디지털 규격으로, 공간 범위는 가상의 차원(3D)으로 변화한다. 여러 겹의 이미지로 만들어진 영상이 단일한 물리적 스크린에서 상영되던 과거와 달리 웹 페이지를 통해 다수의 PC 화면과 휴대폰 스크린에서 나타날 수 있는 동시성을 갖는 이유는 이처럼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진 이미지의 민주화와 디지털이 실제처럼 체화된 세대로의 전환에 있을 것이다.
그만큼 작품의 주제와 양식을 기반으로 서술되던 역사적인 흐름과 장르 구분은 급격한 기술 발전과 함께 변화한 동시대 영상 예술을 규정하는 데에 어려움을 가져온다. 본문에서는 이를 배경으로 영상예술이 인접 기술과 인지 환경을 수용하며 근본적인 존재 방식을 바꾸어가고 있음에 주목하며 실제와 가상을 매개하는 창으로서의 스크린을 미적 대상으로 설정해 분석하 고자 한다. 효과와 기술이 곧 내용이며 존재의 방식이 되는 현시점에서 스크린이라는 매체를 중심으로 창작의 방식과 표현 양상에 초점을 둔 이러한 접근은 영상 예술을 새롭게 정의하는 데에 중요한 기제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다음 장에서는 스크린을 영상예술의 미학적 준거로 삼아 그 안팎을 해부적 관점으로 분석하고 ‘스크린 미학’이 라는 용어를 새롭게 제시하고자 한다.
3. 해부적 관점에서의 스크린 미학
영상 예술은 영화와 미술의 갈래 아래 서로의 표현 방식들을 수렴, 모방하며 현대 영상예술의 흐름으로 이어져 왔다. 이는 매뉴얼에 따르는 촬영 및 편집 기법의 탈피, 영상 스크리닝 (screening)의 변화로 영화의 경계를 탐구했던 감독들과 물리적 스크린의 건축적 구성 안에서 지각의 방식을 실험한 초기 비디오 설치 작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1970년대 서사구조를 탈피 하고 필름 위에 물리적 조작을 가해 지각적 이미지를 탐구한 스탠 브래키지(James Stanley Brakhage, 1933~2003)와 리즈 로즈(Lis Rhodes, 1942~), 영화적 서사를 멀티채널 스크린으 로 구현한 아이작 줄리언(Isaac Julien, 1960~)과 더그 에이트킨(Doug Aitken, 1968~)이 전 자와 후자를 대변한다. 영화에서 미술적 기법을 도입하거나 반대로 미술에서 영화적 기법을
2) 컴퓨터 시스템을 초기화 시키듯 현실을 회피하고자 할 때 사이버 세계와 현실 세계를 혼동하는 증상
<Figure 2> Lil Miquela (www.instagram.com/lilmiq uela)
도입한 두 흐름 아래 영상 문법은 서사적 측면과 물질적 교섭이라는 두 가지 방법 내에서 실험 되어왔다. 그 중 서사적 실험은 프레임(frame)이라는 화면 공간 내에서 촬영과 편집기법을 이용해 내러티브를 붕괴하거나 이미지를 재활용해 작가의 주제를 전달하는 시도이다. 두 번째, 물질적 실험은 스크린 밖, 즉 영상이 투사되는 프로젝터, 디지털 스크린, 물리적 공간 그리고 관객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다. 이에 더불어 팬데믹 시대에 이른 현재, 중요성이 더욱 커진 네트워크 환경은 소통의 경로인 스크린을 더욱 조망하게 했다. 위와 같이, 물리적 공간과 디지 털 공간 사이에서 두 세계를 매개하는 스크린은 영상 예술의 형식적 경계를 짓는 중요한 요인임 을 시사한다.
과거 소수의 유선 방송국에서 단일 영상을 다수에게 전달하던 TV 브라운관 스크린이 고정된 포맷으로 일방적 취향을 전달하는 매체이자 이미지의 종착지 역할을 했다면, 오늘날의 스크린 은 관람자(시청자)의 개인적 의사와 취향을 적극 반영한다. 1983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David Cronenberg, 1943~)의 영화 ‘비디오드롬(Videodrome)’에서 주인공이 TV 화면 속으 로 빨려 들어가고 다시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모습은 미디어 산업이 주시하지 못한 스크린 밖 개인의 내밀한 욕망과 욕구를 신체의 기이한 변형이라는 형태를 빌려 상징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이러한 욕망은 현실과 미디어 속 환경을 폭력적으로 뒤섞으며 반영된다. 오늘날의 터치스 크린과 인터넷 시스템, 빅데이터 분석기술로 사용자 맞춤형 정보가 제시되는 것도 이와 같은 욕망과 자본이 만난 결과이다. 그리고 이미지의 종착지이자 출력매체에 지나지 않았던 스크린 이 입력과 출력을 동시에 담당하게 됨으로써 수동적이었던 관람자는 능동적이며 주도적인 행 위자로 서게 된다. 따라서 스크린은 단순히 상을 투사하는 고정 사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현실의 일부가 된 가상과 물리적 현실을 연결하는 교차로(crossroad)이자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담는 장치(interface)가 된다.
3.1. 스크린 내부의 표현 양상
스크린 내부, 즉 프레임 속 장면은 카메라를 이용해 현실의 대상을 촬영하거나 디지털 파일로 변환된 이미지를 재활용한 영상 이미지 혹은 디지털 환경을 모태로 삼아 탄생하는 순수 디지털 이미지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가 기존의 영화와 사진 또는 다른 매체 속 이미지를 편집하고 합성하는 행위와 같이 재가공(Bourriaud, N., 2017/2016, pp.31-46)되는 ‘재생산 이미지’로 설명된다면 후자는 디지털 공간이 본토이며 픽셀(pixel)을 유전자로 삼아 만들어진 순수 2D
& 3D 그래픽, 알고리즘 이미지를 포함한다. 실사 촬영을 거쳐 영화적 문법을 따르는 아이작 줄리언(Isaac Julien, 1960~)은 <플레이타임(Playtime)>(2014), <캐피탈(Kapital)>(2013) 등을 통해 성 소수자의 정체성과 도시 자본주의의 관계를 영화적 서사와 다채널 영상설치로 풀어낸다. 더그 에이트킨(Doug Aitken, 1968~) 또한 실제 퍼포밍 장면과 음악을 함께 편집한 영상을 다중 스크린과 건축 외관에 투사해 몽환적 분위기의 서사를 극대화한다. 두 작가가 현실 속 대상을 직접 촬영해 영화적 문법으로 프레임 안에 담아낸 반면 크리스천 마클레이(Christian Marclay, 1955~)는 이미 제작된 수천 개의 영화에서 시간을 나타내는 장면을 모아 24시간을 구성하는 <시계(The Clock)>(2010~2011)를 선보인다. 그는 4,000여 편의 영화 속 장면들 을 가져와 실제의 시간과 일치하도록 편집하고 상영함으로써 스크린 속 공간과 현실을 동일한 시간상에 중첩시킨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따로 촬영한 영상은 없으며 모두 기존 영화의 장면이
<Figure 5> Christian Marclay, The Clock, 2010-2011 (www.macm.org, www.moma.org)
<Figure 4> Isaac Julien, Playtime, 2014, 7.1 Channel Video Installation, 66 Minutes 57 Seconds (www.publicdelivery.org)
<Figure 3> David Cronenberg, Videodrome, 1983 (www.cine21.com)
재활용되었다. 이렇게 기존에 만들어진 영상 이미지들을 새로운 영상으로 편집하는 기법을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라고 하는데, 왜곡(diversion), 옛 필름 편집(compilation), 콜 라주(collage), 아상블라주(assemblage)와 같은 표현이 여기에 속한다(Min, J., 2017, p.17).
마클레이가 편집한 영화 속 시간은 현실의 시간과 중첩되고, 아카이브 된 필름은 현실로 소환되 며 새로운 시간성을 획득한다. 작가의 의도에 의해 기존의 이미지가 전유(appropriation)됨으 로써 재활용된 이미지는 새로운 맥락 아래 놓이게 되는 것이다. 앞의 예에서 살펴보았듯 영상 예술에서 창작과 전유는 예술가의 의도와 카메라 사용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영상 소스의 출처를 떠나 현실을 포착한 이미지를 사용한 1950~1960년대 작가군과 아래의 같이 순수하게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의존해 디지털로 모델링 된 세계를 구현하는 1980 년대 기점의 작가들로 구분된다.
애드 앳킨스(Ed Atkins, 1982~)는 디지털 시대 현대인의 신체가 갖는 의미와 개인의 정체성 을 모션 캡처와 CGI 기술을 활용한 3D 애니메이션 그리고 육중하고 압도적인 스크린 설치로 표현한다. <세이프 컨덕트(Safe Conduct)>(2016)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된 남성 캐 릭터의 신체가 공항 검색대에서 분해되는 장면을 통해 시스템에 의해 낱낱이 조각나는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세실 에반스(Cecile B. Evans, 1983~) 또한 기술과 이데올로기, 신체 사이 에서 감정이 지닌 가치에 대해 3D 애니메이션 기법을 통해 이야기한다. 디지털 공간에서 CGI와 3D 기술로 탄생한 순수 디지털 이미지는 실사 영상 그리고 재생산 이미지와 다르게 인위적이며 인공적이다. 이는 컴퓨터 그래픽 영상 콘텐츠가 증폭하던 1990년대에서 2000년대를 겪은 세 대가 지각하는 디지털 감각이다. 앞선 세대가 자본주의의 가속화에 따른 급격한 도시 변화와 개인의 정체성을 다루었다면, 네트워크와 함께 유년기를 보내며 정보의 세계화와 무한한 표현 의 자유를 획득한 후세대는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 작품의 주제와 표현기법에서 변화를 가져오 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존 라프만(John Rafman, 1982~)3)은 게임 엔진을 이용해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드는
‘머시니마(Machinima)’4) 기술을 이용하는데, 특히 <A Man Digging>(2013)에선 디지털 세 계를 상징하는 코드를 작품에 차용하며 온라인에서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과 개인의 정체성을 작품의 주제로 다룬다. 주목할 점은 마클레이가 인접 매체인 영화의 장면을 가져와 자신의 작품 으로 재활용했다면 라프만 또한 타 매체인 게임의 이미지를 재-전유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복제와 재가공이 용이한 이미지의 취약성을 이용해 이미지를 샘플처럼 이용하고 리믹스 (remix)한다. 전통적인 예술창작 방식에서 벗어나 저자성(authority)을 전복하고 예술 생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 포스트-미디어 시대의 자율 테크놀 로지로 인한 정보의 민주화 그리고 데이터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권력이 재배치된 데에서 기인한다. 원본과 복사는 모두 재생산 과정에서 생긴 산물이라는 조너선 스턴(Jonathan Sterne)의 주장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그에 따르면 발터 벤야민의 연구는 전통적 도식화에 불과하다. 벤야민은 복제를 원본을 위상화하기 위한 존재로 상정했지만, 복제물의 가치와 아우 라는 원본과 동일하다는 말이다(Gunkel, D. J., 2018).
살펴본 바와 같이 영상 예술에서 이미지의 생산 방식은 시대의 기술 발전에 따라 촬영된 이미지 또는 순수 디지털 이미지로 구분되며 이는 다시 순수 창작과 전유의 기법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다음 단락에서는 스크린 외부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스크리닝 방식과 관람자의 수용적 측면을 다각도로 탐구하는 사례들을 살펴보고 스크린 설치와 영상 전달 방식의 변화를 분석하 고자 한다.
3) 2008년 카메라 대신 구글 스트리트 뷰(Street View)로 촬영 된 세계 각지의 사진 중 기이한 장면들을 모아 <아홉 개의 눈 (Nine-Eyes)>을 발표하고 인지도를 얻었다. 이 작품 또한 파운드 푸티지와 같이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제공된 이미지를 사용한다.
4) 머시니마(Machinima)는 기계(Machine)와 영화(Cinema)의 합성어로 폴 마리노(Paul Marino)가 출간한 『Visionary Machinima』
(2005)에서 처음 명칭 되었다(Picard, M., 2006, p.3).
<Figure 6> John Rafman, A Man Digging, 2013 (www.jonrafman.com)
<Figure 7> Ed Atkins, Safe Conduct, 2016
(www.artviewer.org)
3.2. 스크린 외부의 표현 양상
위에서 스크린 내부의 표현 양상으로 프레임 속 영상 이미지가 생산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었 다면 영상예술을 미학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외부 요인으로 스크린 설계와 스크리닝 방식에 주목할 수 있다. 미술관 공간 내에 영상 작품을 선보이는 방식은 크게 화이트 큐브(White Cube)에서 TV브라운관을 조각적 설치로 풀어낸 비디오 설치와 미술관을 암전된 블랙 큐브 (Black Cube)로 조성하고 빛을 투사하는 비디오 프로젝션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다양한 디지털 장비로 공간을 점유하고 물리적 형태를 확장하려는 시도는 더욱 다양하게 나타난다.
단일한 영상을 빔 프로젝션이나 플랫한(flattend) 액정 스크린에 단채널로 투사하는 싱글 채널 (single channel) 영상부터 스크린을 병치하거나 분할해 여러 개의 채널로 나타내는 멀티 채널 (multi-channel)까지 스크린의 복수화와 건축화 양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서 프로젝션 빛의 입자가 가지는 성질과 스크린의 물리적 형태는 작품의 내용과 결합되며 관객이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댄 그레이엄(Dan Graham, 1942~)은 그의 작품에서 시공간을 조작하고 관객의 인식을 교란하는 주체성을 가진 대상으로 스크린을 사용한다.
<Time Delay Room>(1974)에서는 분할된 공 간에 관객 자신의 모습이 담긴 실시간 영상을 시 간 격차를 두고 송출함으로써 관객이 현재의 시 간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현실 감각을 교란시킨 다. 여기서 스크린은 작품의 물리적 지지체인 동 시에 주변 환경과 상호적으로 관계하며 관람자 의 지각을 변동시키는 주체적인 존재로 역할함 을 증명한다.
대표적인 스크린의 복수화와 건축화 양상으로 앞서 언급한 아이작 줄리언과 더그 에이트킨의 경우를 살펴볼 수 있다. 이들은 영상을 멀티채널 로 편집하고 다각도로 배치된 스크린에 투사해 관객이 이동하는 위치에 따라 다른 장면을 감상 하도록 유도한다. 영화의 서사적 문법을 공간 안에 분산적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관객의 동선을 고려하는 다중 스크린의 이러한 건축성은 다분히 조각적인 성격으로 대중매체가 이미지를 재 현하는 방식에 길들여진 관객의 관습적 지각을 해체시킨다(Baik, Y., 2011, p.205). 여기서 스크린은 납작한 표면과 매끈한 물성을 가진 하나의 사물이므로 종횡으로 배치될 수 있는 조형 적 탐구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다중 스크린 속 형상은 관객의 주위를 배회하며 스크린 사이 다양한 사건과 시간의 변조를 가능케 한다. 아이작 줄리언은 등장인물을 포착한 카메라의 시점과 스크린의 배치로 관객의 시점을 일치시키며 영상 속 공간과 전시 공간을 하나로 중첩시 킨다. 더그 에이트킨은 규격화된 비율의 스크린 대신 조이트로프(Zoetrope)처럼 인간의 시야 각을 고려하는 원형 스크린으로 관객을 감싼다. 불빛이 스크린 전체로 흘러가는 마지막 장면은 관객을 영상 속 공간으로 완전히 인도한다. 곧 카메라를 통해 평면적으로 포착되었던 영상 속 장면은 스크린의 건축적 탐구를 통해 물리적으로 재 구현됨으로써 공간성을 다시 부여받는다.
<Figure 9> Isaac Julien, Playtime, Exhibition View, 2014 (Platform-L Contemporary Art Center)
<Figure 10> Doug Aitken, SONG1, Exhibition View, 2018 (Copenhagen Contemporary)
<Figure 8> Dan Graham, Time Delay Room, 1974 (www.medienkunstnetz.de)
나아가 애드 앳킨스는 비디오 프로젝션에서 증발되는 빛의 특성을 디지털 스크린을 사용해 보완한다. 디지털 스크린의 물성을 재료의 차원으로 접근해 공간을 재건축하는 것이다. 스크린 을 건축적 요소로 활용한 앞의 작가들과 달리 디지털 스크린이 발산하는 인공적인 빛의 특성과 LED 스크린의 물성 또한 서사를 비유하는 매개로 사용한다. 공항검색대에서 분해된 디지털 신체가 등장하는 영상 <세이프 컨덕트(Safe Conduct)>(2016)에서는 컨베이어에 매달린 세 개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압도적이면서도 무기력한 감각을 전달한다. 앞선 작가들과 다르게 앳킨스의 작품에서 스크린은 작품의 내용을 물리적으로 소환하는 메타포(metaphor)이자 알레 고리(allegory)로 작용한다. 특히, <올드 푸드(Old Food)>(2017)에선 우리 주변의 ‘플라스 틱’과 관계하는 인간의 내밀한 이중적 욕망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생성된 신화적 인물로 대변하 는데, CGI로 만들어진 인물들의 인공미는 플라스틱 표면의 디지털 액정으로 극대화되며 알레 고리를 강화한다.
<Figure 11> Ed Atkins, Safe Conduct, Exhibition View, 2016 (www.mmk.art)
<Figure 12> Ed Atkins, Old Food, Exhibition View, 2017 (www.singer-akustik.de)
영상과 스크린에 기반한 이러한 접근은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 기술과 함께 다양한 갈래로 나아 가고 있다. 존 라프만은 2006년 구글 스트리트 사진을 전유해 작품으로 발표한 것과 같이
<Transdimensional Serpent>(2016)에서 HMD(Head Mounted Display)를 이용해 스크린을 관람자의 망막으로 옮겼다. 더불어 장영혜중공업이 웹기반 멀티미디어 아트에서 보여준 궤적 과 같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작품을 공개해 사용자의 PC와 휴대폰에서 볼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물리적 전시 공간이 휴대용 디스플레이 기기를 통해 개인의 손 안으로 옮겨가며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벗어난 것이다. 팬데믹과 함께 온라인 공간에 대한 체화도가 높아진 현재, 가상 에 대한 필연적 주목성은 이와 같은 현상이 앞으로 심화할 것임을 예고한다. 이미 온라인 전시 를 비롯한 공연 중계, 심지어 인터넷 방송까지 예술 작품의 형식으로 포섭되는 현상이 이를 뒷받침한다. 마노비치는 포스트-미디어 시대의 미학을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의 전환에 서 찾는다(Manovich, L., 2014/2001, pp.6-8). 곧, 미디어의 기능이 아니라 데이터를 경험하 는 방식으로 관점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디지털 시대에선 정보 행위가 곧 예술의 주제 가 된다는 부리오의 주장과 같이 포스트-매체 시대 예술작품은 매체의 양식이 아닌 정보의 생산방식과 과정으로 경험되는 것이다(Bourriaud, N., 2017/2016, p.88). 결국 스크린 너머 데이터로 존재하는 예술작품은 디지털의 혼성적 문화 아래 무한한 공간의 자유를 얻으며 새로운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스크린을 기준으로 한 영상 미학은 소프트웨어와 하드 웨어의 연결 관계 그리고 이미지 환경과 이미지 생산 방식의 관계에서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 1924~1989)은 “인간과 기술적 대상 사이의 적합한 관계 방식을 수립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기술적 대상들 고유의 존재 방식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라고 설명하며 “기술적 대상들은 단순한 사용 도구가 아니라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자기 나름의 발생과 진화를 겪어 개체화된 것들”(Kim, J. H., 2017, p.65)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질료(내용, 소프트웨어)와 형상(틀, 하드웨어)은 이분법적 주종 관계가 아닌 상호 간의 힘으로 조절되는 것이다. 기술적 대상들과 인간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도구와 표현 대상으 로 여겨졌던 이미지는 가상 생태계의 주인이 되고 기술 지지체와 창작자의 개입을 통해 원재료
<Figure 13> Jon Rafman, Transdimensional Serpent, 2016, Mixed Media with VR Video (www.artsy.com)
에서 무한히 파생되고 증식하는 생명력을 갖게 된다. 나아가 파생된 이미지를 복합적 지각으로 경험하는 인간의 인식능력은 또 다른 창작의 전환을 이어갈 것이다. 인간의 지성은 실재의 본질 을 인식하기 위한 순수 사변적 능력이라기보다 물질을 조작하기 위해 발달한 삶의 능력이며 실재를 재구성하려는 제작 기능을 갖기 때문이다(Kim, J. H., 2017, p.91). 따라서 포스트-미 디어 시대로의 이행과 함께 이루어지는 동시대 이미지 창작 방식의 변화를 주시하며 분석하는 것은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아래는 위에 언급된 스크린 내부와 외부의 표현 양상들을 이미지 생산방식으로 구분하고 기법 과 작가, 시기를 목록화한 표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영상예술의 생산-전달-수용의 과정에서 스크린은 내용과 형식, 가상과 실재를 매개하는 교차점이자 정거장으로서 전 과정의 미적 형식 을 결정짓는 중요한 틀이 된다. “스크린 내부에선 수행성의 인과적 쾌락 원칙에 따라 프로그램 된 사용자 친화적 인터페이스가, 그리고 스크린 외부에는 스크린 프레임과 클릭 장치를 제외하 고는 어떤 제약 조건의 간섭도 받지 않는 시스루(see-through) 재질의 플라스틱 조형물이 자리 잡는 상황”(Park, H., 2009, p.180)처럼 스크린 내 · 외부가 동등하게 역할 균형과 미적 기준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매체는 앞으로 더욱 향상된 인터페이스와 출력 기능을 가진 기계로 발전할 것이다. 이에 따라 창작자는 매체를 도구적 관습에 따라 사용하지 않고, 기술의 내 · 외부의 현상에서 새로운 규칙을 찾아내고 의미를 변주해 포스트-미디어의 시대 예술의 규정을 바꾸어갈 것이다.
본문에서는 이렇게 점차 복잡하고 다양해지는 기술 매체와 예술의 표현 양식 아래 스크린이 영상예술의 현재를 파악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음을 규정하고자 했다. 주목할 점은 새로운 매체 시대에 태어난 세대에 이를수록 무형의 소프트웨어 기술과 네트워크에 대응하는 태도가 유연하며 작품 주제와 형식을 능숙히 다룬다는 점이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현상 아래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근거로 스크린 내 · 외부의 표현 양상이 영상 예술의 현 지형을 파악하는 데서 중요한 미학적 기준이 될 수 있음을 탐구하고자 했다.
4. 결론
본 연구의 목표는 포스트-매체 시대로의 이행에 따라 복합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영상 예술을 분석할 때 있어서 스크린이 미학적 준거로 작용할 수 있음을 사례와 함께 증명하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네트워크 상에서 누구나 이미지를 편집하고 배포할 수 있도록 창작자와 수용자의 개념이 변화하는 ‘이미지의 민주화’ 현상에서 이러한 연구의 배경을 찾고자 했다. 가 상현실이 실제처럼 체화되면서 나타나는 감각은 우리에게 가상을 하나의 생태계로 파악하는
해부적 구조 이미지 생산방식 기법 작가 시기
스크린 내부
현실 기반 이미지
촬영된 이미지 창작
· 아이작 줄리언
· 더그 에이트킨
· 양푸동 1950~1960
파운드 푸티지 전유 · 크리스천 마클레이
순수 디지털 이미지
그래픽 엔진
(2D, 3D) 창작
· 애드 앳킨스
· 세실 에반스
· 이안 쳉 1980~
머시니마 전유 · 존 라프만
스크린 외부
물리적 기반
프로젝션 단일, 다중 · 더그 에이트킨
1950~1980
디지털 스크린 단일, 다중 · 애드 앳킨스
가상 기반
물리적 채널 가상 영상표시장치
· 존 라프만 1980~
가상채널 네트워크 기반
<Table 1> Image Production Method and Technique according to the Anatomical View of the Screen
발견을 가져왔다. 기존의 예술작품이 물리적 현존인 매체의 특정성을 기반으로 정의되었다면 가상 생태계의 등장은 무형의 디지털 예술을 해석하는 위한 새로운 기준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이를 위해 스크린 내부와 외부의 표현양상을 동시대 예술가의 작업과 함께 살펴보며 분석하고 자 했다.
본문에서는 이미지가 담기는 사각의 프레임 공간으로서 스크린 내부에서 디지털 입자로 발현 되는 영상 이미지의 생산 방식에 주목하고자 했다. 이와 함께 스크린 외부의 표현 양상으로 영상 스크리닝 방식과 물리적 공간이 관계하는 방식을 탐구하고자 했다. 여러 프레임이 모여 전달되는 영상 이미지는 동시대에 이를수록 실사 영상을 사용하는 영화적 문법보다 그래픽 엔진을 이용해 순수 디지털 이미지로 만들어지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기존의 이미지를 전유하는 파운드 푸티지와 머시니마 기법은 앞서 언급한 이미지 조작의 유연성과 가변성을 뒷받침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물리적 스크린의 조형성을 탐구한 멀티 스크린과 네트 워크 기반의 영상 송출 방식은 예술가들이 이미 미술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넘어 새로 운 수단을 탐구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본 연구는 영상 예술이 이제 더는 선형적인 창작- 전달-수용의 관계에 있지 않고 창작과 수용이 순환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고 있음을 스크 린이라는 틀을 통해 서술했다.
이와 같이 스크린은 디지털 생태계와 현실계 사이에서 창작 언어가 복합적으로 상생하며 새롭 게 예술 지형을 열어가는 여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본문에서는 기술 매체의 급속한 발전, 새로운 예술 세대의 등장, 창작 문법의 변화에 따라 작품을 해석하는 기준 또한 시대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스크린을 미학적 준거로 제시하며 논의를 펼쳤다. 따라서 스크린 의 매체 형식에 근거한 미학적 관점은 동시대 급변하는 영상 예술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와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예술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인접 매체와 기술 형식들을 변주하고 뒤섞으며 변화할 것이다. 비록 본문에서는 매체 형식에 근거해 논의를 폈지만 지면상 다루지 못한 기술 매체의 특성과 예술 작품의 사회적, 주제적 측면은 향후 연구에서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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